20210712
갑작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나?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의 대상만을 향한 그 감정을 말한다. 그래 오타쿠가 사랑하면 뭘 사랑하겠는가. 그게 연예인이든 영화든 만화든 소설이든 본인의 반려동물이든 혹은 인형이나 자캐든. 나는 언제나 뭔가를 열려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지금도 사랑은 하고있지만 이게 정말 열렬한가 고민해보면 열렬하진 않다. 속된말로 갓생이라고 말하는 쪽에 좀 더 가깝지. 폰 잠금화면은 몇년전에 찍은 내 사진이다. 캐나다에 갔었고, 그 때 찍은 사진은 정말 많다. 일단 자연이 예쁘고, 내가 들어가있다. 배경화면은 얼마 전에 다녀온 드라이브때 찍은 사진. 하늘이 보라색이라 뜬금없이 트렌디한 색이네 싶었다. 하여튼간에 내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내가 찍고 편집한 여행 영상을 보고 내 사진을 둘러보고 운동을 다니면서 옷가지를 살까 고민한다. 뭔가 내가 어릴 적부터 해 온 사랑의 분야는 아니다. 나를 사랑한지는 얼마되지않아 그런 걸 수도 있다. 자의식 비대에 가까운 자기혐오를 했던 기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대놓고 자기애가 넘치는 시기보다는 자기혐오를 하는 시기가 자의식과잉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동족혐오 분야는 여전히 중학생때 즈음에 멈춘거 같다.
나는 배우와 아이돌을 가장 긴 시간동안 아주 오래, 큰 목소리로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런 거에 비해 마음이 떠난 순간은 참 보잘 것 없었다. 아이돌 콘서트에 갔고, 그 날은 무척 피곤했다. 하필이면 고척이기도 했고. 시작부터 사람은 드글드글 때를 이뤘고, 꾸역꾸역 팬클럽 특전을 받고, 해가 미친듯이 내리꽂혔다. 하필 이 때는 스탠딩이었고 순서는 개판이 되서 스탠딩 줄이 엉망으로 입장을 시작하고 초장부터 사람들이 와르르 뛰어갔다. 일단 펜스를 못잡았다는게 가장 큰 패인이었다. 애매하게 펜스 잡은 사람 바로 뒤. 사이드 돌출쪽에 서서 오매불망 아이돌이 나와주기를 기다려야하는 자리. 내 앞 뒤는 중국인이 꽤나 있었는데, 대기 내내 미친듯이 음성메세지를 주고받더라. 그리고 어떻게든 뒤에서는 펜스 잡겠다고 공연도 시작안했는데 밀고 들어오고. 욕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무대 내내 어떻게 서있었는지가 의문이다. 그냥 차라리 강친한테 뽑혀나가는 사람들처럼 뽑혀나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다들 좋아서 소리지르는게 아니라 정말 압사당할까봐 비명을 질려서 멤버 하나가 정색하고 밀지말라고 진정하라고 말했다. (물론 그 소리를 듣고도 미친듯이 밀려왔다. 내 코 앞에서 그런 발언한 탓에 정말 갈비뼈 부러지는 줄 알았다. ) 내가 뭘봤는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감정이 안남고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이 스탠딩이 첫스탠딩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모르겠다. 그 날의 감정이 그랬다. 구역마다 악착같이 사람을 집어넣은 고척돔. 질서 밥말아먹은 하루의 시작. 미치도록 더운 안팎의 공기. 콘서트가 다 끝나고 그 미묘한 하얀 조명이 다 켜지고 와르르 공연장을 다 나가 바닥에 널부러진 부숴진 응원봉, 슬로건, 굿즈 타월 같은걸 보면서 오늘의 무대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귀에 맴도는건 앞뒤로 공연 내내 음성메세지를 주고받던 중국말 밖에 없었다. 웃긴게 사람이 너무 많고 몰려서 핸드폰이 안터졌다. 데이터도 전화도 안터져서 친구랑은 겨우 만나 안녕을 외치고 갔다. 그런데 하필 그 때는 왜 또 차대절을 했는지, 너덜너덜하게 차대절차에 올라타서 가져온 클렌징티슈로 화장을 싹싹지우고 대충 에센스를 바르고 기대서 폰으로 퍼시픽림을 보면서 집에 갔다. 퍼시픽림, 드럽게 재미없었다. 이미 내 기분은 영화를 즐길 기분이 아니긴 했지만서도. 프리뷰같은거 볼 힘도 없었다. 관광버스는 추웠고 서울에서 부산은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어슴푸레도 아닌 아직은 시꺼먼 새벽에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찜질방에 가서 씻고 드러누웠다. 집에 들어가서 어수선하게 씻고 자기엔 엄마아빠가 있었으니까. 그때서야 느꼈다. 좆됐네....맘 떴나본데?
그 뒤로 뭔가를 사랑하게 된 건 영화였다. (중간에 게임이 있지만 게임장르는 뭐 어찌됐든 여전히 바짓가랑이 붙들고 있으니 패스) 사실 그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만해도 눈물이 차오른다는 기준이 내 사랑의 절정이라면 얘도 내 사랑의 절정을 찍고있긴했다. (개빡치지만 아이돌이 보고싶어 울어본 적이 많았다.) 난 영화 주인공을 너무 사랑했고, 오죽하면 사막같은데서 자라다 처음으로 비보는 장면을 본 뒤로는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면 내새끼 생각이 나서 그냥 눈물이 났다....야 네가 행복하면 됐다.....그래 이 영화 난 여전히 사랑하나? 그런데 사랑할 수 없게 됐다. 이건 시리즈물이고 다음 시리즈막편에서 감독이 개시발럼이어서 오타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영화를 밥도 못말아먹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난 이때 정말 자기 전마다 누워서 베개를 적셨다. 근 6개월동안이나. 보통 사람이 화를 내는 건 15분이고 그 이후로는 내가 화내기를 선택해서 내는 거라던데 난 내 의지로 6개월이 넘게 화가 잔뜩 나있는 상태였다. 서두만 꺼내면 눈물이 났고 뇌절했던 얼마전에 그립고 감독을 죽이고 싶었다. 사람이 상사병에 걸리면 그런 기분일까? 난 여전히 그 영화를 사랑하는데 사랑할 수 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사랑해. 핵폐기물이 좀 더 용이할 듯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이 상영회 할 때 갈걸, 전주영화제때 갈 걸, 행사 할 때 갈 걸. 다들 축제분위기 하하호호일 그 때 즐길 걸. 아직도 PTSD 마냥 트라우마가 됐다. 밤낮상관없이 줄줄 울고 기력도 없고 뭔가를 봐도 햇살같은 시트콤류가 아니면 씹어삼킬 수도 없었다. 옘병 내가 무슨 피에스타 브나나원앳탐빅뱅이론프렌즈 꾹 삼킨채 ㅅㅂ.
그렇게 지금은 벌써 1년 반이 흘렀고 뭘 사랑해야할지 모르겠다. 애니를 사랑해보려고 해도 이미 그 과정도 단행본 넨도로이드 회지까지 좍좍 긁어모으던 때가 있었다. 뭐 결과는 쌤쌤이다.
나는 사랑을 땔감으로 매번 불을 지피고 살았는데 찾은게 없다. 사람과 연애를 해보라고? 무슨 천년의 사랑을 할 거라고 딱히 할 마음도 없다. 짝사랑도 해봤고 들이대서 얼레벌레 연애도 해봤는데 인생사에 딱히 도움되지않는다. 오히려 해악이면 해악이지. 나랑 연애할 거 아니면 하는 거 아니다. 아직도 빡친다. 내 최애 영화 같이 보러갔는데 (본인도 이거 안다그랬고 재밌다고 언급하길래 같이 보러감 개봉날에) 옆에서 처자고 나와서 나혼자 미쳐날뛰는 오타쿠처럼 좋았던 부분 좔좔 흥분해서 말하다 옆에서 입꾹 다물고 있어서 머쓱해져서 걍 집 감. ㅅㅂ..... 연애 할 시간에 아이맥스를 한탕 더 뛰었어야했다. 그냥 그럴 걸 진짜.
아 얘기가 계속 세네. 여튼간에 너무 많이 데이고 울던 심장이라 뭔가 다시 사랑할 수 있으까 싶고 그렇다. 물론 어제 우정리 노트2 생방보고 2시간동안 눈물 줄줄 흘리긴했는데 이전만큼 미쳐서 원동력이 되진 않는단 말이지? 이야기에 과몰입하는건 언제나 그랬으니까. 뭔가를 미친듯이 사랑 할 수 있나, 피곤하겠지만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이렇게 파르르 살아가는 건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난 사랑과 희망을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