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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화장실을 가기위해 내 방을 벗어나니 우리 집 거실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어릴 적 부터 맡았던 시골집 냄새. 오늘 저녁에 고등어를 구워서 그런걸까? 정말 생선냄새 때문에? 새까만 밤과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냄새. 이건 노인의 냄새다. 사람은 늙어가며 몸 속 피지가 산화된다. 그 산화된 냄새. 매일 같이 몸을 씻어 피지를 닦아내더라도 나는 냄새가 있다. 우리 엄마는 늙어가고있다. 당연히도 나는 엄마 또래에 비해 늦게 태어난 자식이다. 그 시절에 비해 늦은 결혼이었고 나와 오빠는 늦게 본 아이였다. 엉거주춤 화장실에서 돌아온 내 방은 여전히 안 치운 내 냄새가 나는 곳이다. 청소를 미룬 탓에 조금 퀘퀘하기도 하고 이불냄새가 나기도 한다. 우리 집은 원래 항상 그런 냄새로 가득찬 곳이었다. 미묘한 이불냄새 집냄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방을 벗어나면 그 냄새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늘 방 문을 닫은 채 지내고 엄마는 겨울이 아닌 이상 방문을 활짝 열고 지낸다. 냄새를 알아채고 나니 누운 자리에서 쉽사리 잠이 들지않는다. 나는 당장에 일상생활동안 많은 노인을 만난다. 길, 대중교통, 직장, 가게 모든 곳에서 노인을 만나지만 사실 내게 노인은 꽤나 멀다 생각했다. 나는 친가쪽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예 얼굴조차 기억하지못하는 어릴 적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가진 노인과의 기억은 할머니집에 누워있다가 탐낸 할머니의 브로치 그리고 오래된 수동 재봉틀이었다. 발로 페달을 꾹꾹 밟아야만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초록색 재봉틀과 긴 옷핀이 달린 금속 브로치. 분명 할머니가 돌아가시 전에 그 브로치만큼은 내가 받아왔던 것 같은데, 어디에 둔 건지 기억은 나지않는다. 그 후 우리집은 두번의 이사를 겪었고 버려지거나 창고 깊숙히 처박힌 물건도 많았다. 그래서 그 정도의 추억만큼 내게 노인은 내게 작은 존재감으로 신경쓰지않은 한 구석에 있었다. 그런 내 옆에 어느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는 노인이 되고있었다. 매장 키오스크에 미숙하고, 카카오톡의 대수롭지않은 업데이트에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어하는 그런 노인이. 보통 부모들은 불쑥 커버린 자식들에게 놀라곤 하다던데, 그 반대 역시도 마찬가지다. 검버섯이 생기고 있고 키는 쪼그라드는 부모를 보는 자식도 갑작스러워 놀라고있다. 평생을 매일 보니,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분명 내 유치원 수업을 참관한 하얀 화장품과 파란색 아이섀도를 바른 그런 얼굴인데. 나는 이 노인은 책임 질 수 있을까? 없을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당장의 1년 뒤 나도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10대 시절을 지나 20대의 중반부를 달려가면서도 여전히 1년 뒤를 알 수 없다. 그와 동시에 가족을 늙어가고있다. 할머니가 될 수 도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엄마에겐 손주가 있어야하겠지만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오빠란 작자뿐인데 영 성한 놈은 아니라 믿음이 없다. 매번 관짝에 소금뿌릴 소리 같겠지만 나는 노부모를 부양할 의지도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이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거다. 피붙이라 그런게 아니라 나를 키웠기때문이다. 거기에는 시간과 세월이 있지않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