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 THE FOOL
피눈물 흘리는 중
행더풀 번역글이 비공개됐어요....다시 보러 들어갔다가 피눈물 흘리는중 어쨰서죠 어쨰서죠......
출처 : https://twitter.com/Pooooon_D (@Pooooon_D)
Hang the Fool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e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e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186526?view_adult=true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http://blog.naver.com/pastan/220790824214
다들 행더풀 봐주면 좋겠다.
난 옵치커플링은 리버시블 상관없는데 행더풀이 약간 맥한조맥 한조맥한조...?
하여튼 그럼. 번역도 너무 좋고 내용이 개쩔어....
진짜 이거 내 뇌안에서 공식 나중에 나오더라도 이겨벌임....진짜...트루.....
블쟈 정책상 따로 회지는 못내시고 개인 소장용으로 출간 가능하다고 해서
번역자 분 교정 다 끝나면 표지 외주 맡겨서 소장본 출력할까 생각중.
진짜 인생 팬픽;;; 너무 좋아...진자...최고야.....게이브 캐 해석이 내 심금을 울려따
<내가 몰아보기 쉬우려고....넣는....>
챕터1
Hang the Fool - Chapter 1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e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e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186526?view_adult=true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시작은 밤이다. 인공 조명 불빛 아래로, 감시 기지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절벽을 깎아서 만들어진 지브롤터 감시 기지 내부는 큰 암석 속에 차폐되어 있다. 여름이 되면 날씨가 온화해지고,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 소리와 바다새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어우러진다. 기지가 폐쇄된 이후로 배편이 다시 운항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대형 유조선들이 절벽을 지나 웅웅거리며 수평선을 가로지른다. 길게 빠진 선체가 해협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등대를 지나간다.
제시 맥크리는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오렌지색 화물선의 항로를 지켜본다. 그는 윈스턴의 연구실 밖에 있는 2층 통로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석양이 하늘에서 사라지며 만드는 자줏빛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담배가 남기는 자취는 짙고 강하다. 치글러 박사가 이 냄새를 맡으면, 지저분한 습관에 대해 꾸중을 하겠지.
그녀는 꾸중할 것이고 그는 기뻐할 것이다. 오버워치가 해산된 이후로, 메르시의 목소리가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채로만 5년을 보냈으니. 그래도 기억 속에 갇힌 수백 명의 목소리 중에서는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었다. 제시는 메르시를 끄집어내서 오래된 음성 메시지처럼 재생시킨다. 반복되는 음성 : 오늘은 좀 어떤가요, 맥크리? 팔은 어때요? 눈은 어때요? 가끔은 메르시가 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오래 전에 잊어버린 얼굴들이 했던 질문과 말들도 흐릿하게 섞인다. 총은 잘 쏘나? 말은 잘 타나? 오늘은 잘 했나?
떠돌이 인생은 외롭다. 길 위에서, 은신처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고단한 여정 속에서, 제시 맥크리는 자신을 살아있게 해주는 -- 더 중요하게는, 제대로 기능하게 해주는 습관을 하나 들였다. 제정신으로 있게 해주는 습관. 맥크리는 생각을 닫고 목소리들을 더 가까이 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사람과 전혀 교류하지 않고도 몇 일씩을 버틸 수 있었다.
윈스턴이 오버워치를 재소집하고 3주가 지났다. 응답한 요원들은 지브롤터에서 모이기로 했다. 공동 침실은 작고, 비좁고, 약간씩 무너져 있었다. 제시의 방은 버려진 장비 상자로 채워져 있었고, 쥐들이 살다 간 흔적도 있었다. 청소 로봇과 힘든 노동으로 이틀만에 청소를 끝냈지만, 저녁이 되면 아직도 숨쉬기 힘들 만큼 퀴퀴한 냄새가 났다. 윈스턴은 탈론의 급습 이후로 감시 기지 보안을 재구축하는 데 약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테나의 자가진단 프로그램으로 수리를 마치는 데 꼬박 72시간이 걸렸고, 윈스턴은 아테나의 섹터 일부를 격리하고 드라이브를 정리해야 하는 것 때문에 아직도 걱정이다. 하지만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윈스턴은 행동을 빨리 해야만 했다. 거처를 확보해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응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맥크리가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먼지와 검댕에 덮여서, 잔뜩 헝클어진 머리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오느라 피곤에 찌들어서. 그는 녹스빌 남부, 스모키 산에 있는 오두막집에 몸을 숨기고, 애틀란타에서부터 자신을 쫓아온 현상금 사냥꾼들이 없어졌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제시는 침착하게, 너무 열성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윈스턴 (그리고 윈스턴이 연결해 준 허풍쟁이 레나)에게 농담을 건네고, 갈 수 있으면 가겠다고 확약했다. 맥크리는 그린스보로에서 가장 가까운 여객기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 여객기 화물실 내부의 단열 처리된 저장 컨테이너)에 올라탔다.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마드리드까지는 스키퍼 제트기, 마드리드에서 말라가까지는 고속 기차, 말라가에서 지브롤터까지는 화물 트럭 뒷칸과 약간의 히치하이킹으로 -- 그의 서툴고 억양이 센 스페인어를 신경쓰지 않고, 대신 돈을 원한 사람들의 차에 타서 -- 결국 감시 기지까지 도착해냈다. 맥크리의 왼팔에는 유지 보수가 필요했고, 몸의 나머지 부분에는 샤워가 필요했다.
레나는 맥크리에게서 나는 냄새를 신경쓰지 않고, 펄쩍 뛰어올라 그를 껴안았다: 레나가 너무 크게 웃어대는 통에 귀가 울렸다: 레나는 윈스턴에게로 다시 돌아갔고, 윈스턴은 맥크리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맥크리를 품 안으로 불러들여, 우렁찬 고함과 함께 으스러뜨리듯 껴안아 주었다.
“내 가장 친애하는 이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군!” 기사가 제시를 놓아주고 폭탄 같은 소리로 크게 외쳤다. “브리기테가 자네를 보고 싶어했다네. 그 모자를 아직도 갖고 있는 걸 보면 아주 좋아할 거야."
“이걸 아직도 갖고 있다니, 저도 좋네요.” 제시가 말했다. 그는 뺨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나서야 자신이 여태껏 미소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씩 하나씩, 요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앙겔라는 맥크리가 오고 나서 3일 뒤에 도착했다. 재회는 그야말로 의기충천 그 자체였다: 맥크리는 사람들이 울고 웃는 소리에 이끌려 숙소 로비로 나갔다. 귀에 닿는 밝은 소음들에 몸이 가볍게 떨린다. 그녀를 보는 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엄청났다. 데드락이 함정 수사에 걸리고 블랙워치에 등록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고도, 사람들이 진짜 천사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을 오버워치가 영입해냈을 때의 경외감은 희미해지질 않았다. 종교는 오래 전에 제시 맥크리를 떠났지만 -- 아니, 맥크리가 종교를 떠났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 천사에게 건네는 그의 인사가 아이러니할지언정 따뜻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빛이라도 본 줄 알았네,” 의사가 그의 팔을 향해 달려오자 맥크리가 쉰 소리로 말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선생님? 그 예쁜 얼굴 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모르겠네요.”
“맥크리,” 몇 초간 껴안고, 한숨을 쉬고, 떨어지기까지 앙겔라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맥크리가 공손하게 모자를 벗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그거 쓰고 다녀요!”
“뭐 말이에요?”
앙겔라가 활짝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하얗게 빛난다. “당신 모자!”
재미있군: 아마 독일인이라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모자 지키느라 밤낮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선생님.” 맥크리는 트레이서가 앙겔라에게 다가서서 쾌활하게 재잘거릴 수 있도록 비켜서며 대답했다. 앙겔라는 좋아 보였다. 단정했고, 표정이 밝았고, 머리카락은 금빛이었다. 한 올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이보리 색 외투와 슬랙스에서는 얼룩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이들지 않는 것도 독일인이라서 그랬던 걸까? 앙겔라는 맥크리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에서 단 하루도 더 늙어 보이지 않았다. 5년이 지났는데 주름진 자국 하나도 없었다. 맥크리는 앙겔라가 치료소를 정돈하러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사실을 생각했지만: 모욕적으로 굴지 않기 위해서,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성의 나이나 외모에 대해 질문하는 건 예의바르지 않다. 조용히 유전학에 공을 돌리는 게 낫겠지. 그리고 어쨌든, 생각해 봐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 앙겔라는 스위스 출신이었지, 독일 출신이 아니었다.
스위스 출신이라고. 맥크리는 다시 통로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과거형으로 생각했던 것을 정정하고, 또 한 척의 배가 항로를 따라 떠내려가는 풍경에 집중하려 애쓴다. 앙겔라는 스위스인이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형의 개념이 아니다. 앙겔라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라인하르트도 그렇고, 트레이서도 그렇고 윈스턴도 그렇고 걸걸하게 늙은 토르비욘도 그렇다.
그리고 등대의 불빛이 깜박이자, 맥크리의 생각 속으로 겐지가 흘러들어온다. 그 사이보그는 지브롤터에 도착하고 3일 뒤 다시 떠났다. 오랜 동료들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기는 했지만, 겐지의 감시 기지 귀환은 일시적 목적지 변경이었고, 그에겐 중요한 일이 있었다. 샴발리 수도원으로 소환되어서 최대한 빨리 그 곳에 가야만 했던 거다. 겐지는 일주일 내로, 가능하면 친애하는 스승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모두에게 약속했다. 젠야타는 오버워치 요원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요원들은 그의 지도에 잘 따를 것이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 중 일부의 화합을 지켜보는 기회를 누릴 것이다.
화해. 이상하고, 의문감까지 드는 단어 선택이다. 맥크리는 입술 안쪽을 씹으며 줄무늬 갈매기 몇 마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걸 지켜본다.
윈스턴이 오버워치 귀환을 위해 계획한 게 뭐든 간에, 확실히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아주 많은 화해가 필요할 거다. 3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소집된 요원들은 의문감과 호기심과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 그 중 대다수는 침울한 거절이나 노골적인 침묵에 맞닥뜨렸다. 모두가 답을 원하고, 아무도 답을 입 밖으로 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메르시는 계속 입을 꼭 다물고만 있다. 그녀는 제시가 놓친 진실을 듣기 위해 가장 먼저 불러세울 인물이다. 지금 이 시간, 메르시는 치료소에 몸을 숨기고 있다: 할 일이 많고, 제때 끝날 가능성은 낮다. 제시는 커피나 핫 초콜릿 같은 것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다친 척을 할 수도 있고, 의수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페커리 돼지처럼 사무실에 코를 들이밀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쫓아다닐 수도 있다.
잭과 게이브의 이야기: 강습 사령관, 블랙워치의 리더, 만(灣) 크기의 크레이터를 남기며 폭파된 스위스 기지에서 파멸한 전우들. 하지만 제시 맥크리의 믿음 속에선, 진정한 영웅은 죽지 않는다.
그는 연기를 뿜어낸다. 거의 웃음을 터뜨린다.
“캐치프레이즈야,” 그는 작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오늘밤은 앙겔라를 혼자 놔두기로 한다.
등대의 불빛이 두 번 더 -- 느릿하고, 힘없는 박자로 깜박인다. 활주로 아래 저 멀리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진다. 라벤더 색 하늘은 빠르게 쪽빛으로 변하고, 곧 어두워져 별이 총총한 검은색으로 덮인다.
시간은 충분하다. 성급히 행동해서 좋을 게 없다: 꼭 모두가 돌아오는 도중인 지금 답을 찾으려 다툴 필요는 없다. 제시는 담뱃재를 털어내고, 자기 자신이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잭과 게이브의 발라드가 -- 아니, 분명 애통하고 침울한, 흙먼지와 참사 이야기겠지 -- 곧 연주될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걸 들으려고 여기 있는 거다. 제시는 적어도 난 여기 있어, 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가 끌어내는 목소리는 앙겔라의 목소리보다 더 부드럽다 -- 연기처럼, 더 깊고, . 짙은 눈과 더 짙은 머리카락을 가진, 갈색 피부의 매부리코 여자가 거칠게 말하는 소리. 몇 년이나 보지 못했는데도, 바람 소리에 충분히 오래 귀를 기울이면 그녀가 한시도 곁을 떠난 적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적어도 넌 여기 있구나 -- 적어도, 적어도.
맥크리는 천천히 입에 문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빼서 비틀며, 의수를 난간으로 내린다.
갈매기들이 울어댄다. 맥크리는 곁눈질로 작은 돌들이 절벽 위에서 그의 왼편으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맥크리는 고개를 들고 남자와, 남자의 손에 잡힌 활과, 시위에 매겨지고 당겨진 화살을 본다.
30미터 밖에, 갑자기 : 그가 있다.
심장 박동 하나. 절벽 위의 궁수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절벽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꼿꼿하고 굳건히, 무릎을 굽히고 근육을 긴장시키고 서 있다. 흐릿한 불빛으로 남자의 갑옷 윤곽이 보인다. 발끝에서 무릎까지는 금속, 허벅지를 감싼 검은색 천, 비틀린 허리에 단단히 고정된 외투 같은 무언가. 궁수의 얼굴은 바위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한 조각의 천이 -- 황혼에 색이 바랜, 창백한 흰색 -- 깃발처럼 등 뒤에서 휘날리고 있다.
그리고 제시 맥크리는 지난 몇 초간 자신이 시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몰랐을 뿐. 그의 운명은 바위 끝에 유령처럼 서 있는 조각상 같은 암살자가 팽팽하게 당긴 한 가닥 줄로, 삶과 죽음 사이에 걸려 있었다.
심장 박동 하나. 갈매기들이 사라졌다.
빠르게 끝이 난다. 소리지를 기회조차 없다. 맥크리는 목소리들을 잊어버린다: 그는 앙겔라와 잭과 게이브를 잊어버린다. 오른손이 장전된 피스키퍼를 홀스터에서 빼낼 때 그는 오직 아마리만을 생각한다. 빛이 부족해서 총신은 반짝이지 않는다. 맥크리는 해머를 코킹한다. 그는 심장으로 조준한다. 영혼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은 빗나간다. 제시는 반동으로 휘청하고 거칠게 해머를 당긴다. 첫 번째 화살은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와, 탁 하고 꽂힌다. 두 번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오직 고통뿐. 제시는 무릎을 꿇고 왼쪽 팔꿈치를 관통한 화살을 부여잡고 뒹군다: 떨어뜨린 담배가 부츠에 짓밟힌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난간에서 떨어져나와, 시야를 잃은 채 연구실 로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맥크리와 충돌한 기계들이 삑삑거리며 금속 바닥에 떨어지고 흩어진다.
오른쪽 귀에 꽂힌 통신기에 엄지를 갖다대기도 전에 아테나가 말한다.
“맥크리 요원,” 모든 방향에서 한 번에 들려오는 것 같은 낮은 기계음. “상태를 보고하세요.”
“암살자가 있어,” 제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그는 왼팔 의수 윗부분을 움켜쥐고, 일어나려 애쓰며 외친다. 박차가 바닥을 긁는다. “암살자가 있어, 절벽 위에, 저격수야. 피격당했어.”
로비에 경고음이 울려댄다.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에 느닷없이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본능이 일을 하기 시작하자 팔을 찢는 것 같던 통증이 누그러진다. 맥크리는 일어나서 피스키퍼를 장전하며 통로를 확인하기 위해 출입구 옆으로 붙는다. 붉은 점멸등이 방금 화살을 맞은 장소를 비추고 있다. 문틀 끝에서는, 겨우 절벽 끝밖에 보이지 않는다. 쏠 준비는 되어 있다: 시야만 확보하면 된다.
궁수는 사라졌다.
“맥크리!” 통신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윈스턴이다. 숨을 헐떡이고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 뛰어오고 있는 거겠지. “위치가 어딥니까?”
제시는 왼쪽 팔을 구부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상체를 숙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화살이 깨끗하게 관통해서, 금속으로 된 화살촉이 팔꿈치 반대편으로 튀어나온 것까지 보인다. 벽에 몸을 기대자 화살대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거의 즐겁게 춤을 춘다. 제시는 심호흡을 하고 화살깃에 초점을 맞춘 시야가 울렁대는 걸 느낀다. 부드럽고, 잘 손질된 -- 오리털 같은 크림색.
모자가 눈썹 위까지 미끄러져 내려온다. 첫 번째 화살이 모자 챙에 꽂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게 그때다.
“동쪽,” 그가 대답한다. “항구 맞은편, 왼쪽 팔을 당했어, 진입할 때 조심해!”
아테나의 엠블렘이 로비 구석에 매달려 있는 스크린에 반짝 나타난다. 그녀의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푸른 빛이 붉은 점멸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침입자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아테나가 또렷하게 말한다. “근접 범위를 벗어났어요. 절벽을 오르고 있습니다.”
윈스턴이 통신기 저편에서 꿍얼거린다. “올라간다고? 어떻게? 라펠 기어나 벨트를 쓰나?”
아테나의 엠블렘이 반짝인다. “보기에는, 맨손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맥크리는 오른쪽 손목을 휙 털어 옆으로 모자를 내팽개친다. 그는 침을 뱉고, 깃털 윗부분의 화살대를 잡고 부러뜨려 버린다. “멋지군, 자기가 로빈 훗이라고 생각하는 염소가 나타났네.” 맥크리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린다. “다음에는 또 무슨 현대 과학이 나타나려나?”
“저 왔어요,” 앙겔라가 끼어든다. 위성으로 전달되는 신호가 윙윙거리며 통신선에 살아난다. “상황이 어떻죠? 누가 다쳤나요? 부상자는 어디 있죠?”
“맥크리가 다쳤어요,” 윈스턴이 대답한다. “제가 가까이 있습니다.”
실제로 충분히 가까웠다: 윈스턴은 쿵쿵거리며 로비 문을 지나고 있다. 그는 코를 킁킁대며 피와 화약 냄새를 맡고, 맥크리가 던져버린 모자를 거의 밟을 뻔한다.
윈스턴의 황금색 눈이 맥크리의 왼팔에 꽂힌 화살을 보고 커진다.
“궁수였군요,” 그가 말한다.
“헝거 게임에 저격을 당했어,” 제시가 으르렁거리며, 피스키퍼를 잡은 팔을 출입구 쪽으로 수평하게 들어올린다. “절벽 위로 올라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지?”
윈스턴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긴장해, 코를 킁킁거리면서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왔다. “제트 팩이나 로켓 부스터겠죠.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장비나 도구 없이는 올라가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속도도 느릴 거예요. 앙겔라의 수트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산등성이에서 마주보고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려워요.” 그는 맥크리의 팔을 다시 보고는 얼굴을 찌푸린다. “당장 치료소로 가야겠어요. 독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시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인다. 윈스턴이 맞지만, 후퇴하는 건 질색이다. “놈을 놓쳤어. 쐈는데, 그 자식을 놓쳤다고. 조명이 안 좋았어.”
“트레이서 왔어!” 레나가 통신기를 울렸다. “늦어서 미안해, 친구들. 경보음을 듣고 화물 구역을 수색했어. 누가 침입한 흔적은 없고, 발사대 쪽도 마찬가지야.”
윈스턴이 통신기에 손가락을 댄다. “확인이 정말 빠르군요.”
“트레이서 요원의 정찰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아테나가 덧붙인다. “침입자가 제 센서에서 사라졌습니다. 추적할 수 없어요. 절벽에서 벗어난 게 분명합니다.”
“라인하르트 연결!” 기사가 우렁차게 외친다: 윈스턴과 맥크리는 동시에 머리를 숙이며, 그 성량에 얼굴을 찌푸린다. “침입자는 어디 있나? 지금 전면 화물 구역으로 가고 있네!”
“살짝 늦으셨네!” 트레이서는 거의 웃고 있다. “거긴 벌써 다 확인했어요, 덩치 큰 친구!”
제시도 뭐라고 말하려 하지만, 팔꿈치에서 바닥으로 부드럽게 뚝, 뚝 떨어지는 피 때문에 통신에 집중할 수가 없다.
“메르시, 맥크리가 치료소로 가고 있습니다.” 윈스턴이 통신으로 말한다. 그가 출입구 키패드를 두들기고, 통로로 이어지는 문을 밀어 닫는다. 울려대던 경보음이 멈춘다: 바깥에서는, 점멸등이 계속해서 감시 기지 외벽과 임시 발판을 붉은 네온 빛으로 훑고 있다. “화살에 맞았어요, 독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화살이라고!” 트레이서가 말한다. “그거 참! 특이한 저격수네.”
맥크리는 팔을 움켜쥔 채로 벽에서 떨어진다. 팔꿈치가 고통스럽게 욱신거리며 맥박친다. 상처는 의수가 시작되는 부분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낮았다면 금속판에 맞았을 거다. 조금만 더 높았다면 섬광탄을 던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살은 팔 전체를 딱딱하게 굳어서, 쓸모없게 만드는 위치에 꽂혔다. 오른손 엄지로 피스키퍼를 장전할 수는 있지만, 균형이 엉망이다. 자세가 심하게 기울어졌다.
맥크리의 사고는 하나의 확신 속에서 맴돌다가 방전된다. 네 개의 단어가 심장에 새긴 문신처럼 머릿속에서 쿵쿵 뛰어댄다 :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clever fella. Good shot).
“알겠습니다.” 앙겔라가 통신기 너머로 응답한다. “맥크리를 받을 준비가 됐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시.” 정말 자신감 있는 목소리다. “금방 빼내고 꿰매 줄게요.”
“주변을 순찰하고 있네!” 라인하르트가 우렁차게 소리친다. “레-나! 함께 하세나! 하-하! 그 암벽 등반가 녀석이 보이기만 하면, 즉시 우리가 잡아오겠네!”
“가고 있어요, 덩치 큰 친구!” 트레이서의 활기찬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멀어진다. 무거운 것 두 개가 규칙적으로 철컹거리며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윈스턴은 더 이상 꾸물거릴 생각이 없다: 맥크리가 복도를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가 움직인다.
윈스턴은 맥크리의 -- 창백하게 빛나는 화살이 아직도 챙에 꽂혀있는 -- 모자를 집어들고, 뒤를 따라 내려간다.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
앙겔라 치글러가 제시 맥크리에게서 화살을 빼내는 데 30분이 걸린다. 라인하르트와 트레이서는 습격자의 다른 흔적을 찾아내지 못한다: 윈스턴은 그 30분의 시간 대부분을, 찍혔을지도 모르는 암살 용의자를 찾아 감시 카메라 데이터를 훑어보는 데 사용한다. 맥크리는 앙겔라의 콘솔을 통해 윈스턴이 맹렬하게 타이핑하는 걸 지켜본다. 그 유인원은 안경을 바로잡거나 코 밑을 긁을 때를 빼고는 전혀 멈추지 않았다.
옛날이랑 똑같군, 긴장감과 갑작스러운 안도감이 이상하게 섞인 머릿속 안개 너머로, 멍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옛날이랑 똑같네요,” 앙겔라가 소리내서 말해 맥크리가 놀란다. 그녀는 거의 노래하듯, 가볍지만 걱정스럽게, 환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환자에게 화나기도 한 외과의사 같은 톤으로 말한다.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꿰매 주고 몇 년이 지났는데, 그새 피부가 좀 탄 것 같아요.”
“그 앨버커키 태양이 말이죠,” 맥크리가 느릿하게 말한다. 덜 긴장한 상태였다면, 능글맞게 웃었을 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을 까맣게 태워버린답니다.”
“그렇겠죠,” 앙겔라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보안경 너머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휙 넘긴다. “자외선 차단제, 아직 쓰고 있길 바라요.” 그녀가 마지막 한 올을 꿰맨다. “차단지수 35나 더 높은 거, 자외선은 조심하면 할수록 좋으니까요.”
맥크리는 웃음을 삼킨다 -- 따뜻한 기분이다. 약간 당황스럽긴 하지만. 방금 화살촉 길이가 거의 위스키 잔만한 화살을 팔에서 빼낸 메르시가, 꾸중을 하다니! 자외선 차단 같은 것들에 대해서!
“저 알잖아요, 선생님.” 제시가 비꼬듯 말한다. “항상 선생님 말 잘 듣는 거. 어기는 건 꿈도 안 꾸죠.”
“그래요, 이제 움직이지 마세요.” 앙겔라가 의료도구 트레이를 옆에 가져다 놓자, 가위가 찰칵거린다. 그녀가 장갑 낀 손끝으로 꼼꼼하게 이두박근을 누른다. “어때요? 아픈가요?”
“아니오, 선생님.” 제시는 앙겔라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수술대에 옆으로 누워서 왼팔을 쭉 뻗고 있다. “따끔하지도 않아요.”
“좋아요.” 그녀가 미소짓는다. “국소마취제 효과는 한 시간 안에 사라질 거에요. 아마 진통제가 필요하겠죠. 그래도 너무 많이 복용하면 안 돼요. 붓기가 가라앉으면 힘줄을 재건하는 수술 일정을 잡아야 할 겁니다.” 앙겔라가 일회용 물티슈 한 박스를 잡아뜯고 의자를 책상 가까이로 당긴다.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시가 한숨을 쉰다. 머리가 아프다: 편두통이 눈 바로 뒤를 두들기기 시작한 것 같다.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살을 째고 있네요.”
앙겔라가 혀를 찬다. “무슨 소리를.” 그녀는 의자 끝에 구두 뒷굽을 걸고 앉아서, 피부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한다. “재소집 이후 첫 부상이 제가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보는 게 나을 거에요. 화살촉이 그렇게 컸는데 부러진 뼈도 없고, 기적 같아요. 더 심한 부상이 될 수도 있었어요.”
윈스턴이 콘솔 화면에서 낮게 신음한다. "정말 이상한걸요."
“뭐가?” 맥크리가 묻는다.
“감시 카메라와 센서에 아무 흔적도 없습니다.” 윈스턴이 대답한다. “아무것도, 그림자조차 없어요. 발자국도, 움직임도 없어요. 완전히 시야 밖에서, 절벽 밑에서 곧바로 올라왔을 가능성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음, 벨트나 도구를 사용했다면, 고정점을 만들어야 했겠죠.” 윈스턴이 스크린을 향해 손짓을 하며, 설명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한 곳에 오래 있어야 했을 테니까, 분명 센서 드론에 모습이 잡혔을 겁니다. 아테나가 15분마다 드론으로 외부를 스캔하니까요. 아주 대단한 기술이 없다면, 그렇게 빨리 고정점을 잡고 라펠 강하로 착지해서 화살을 쏘고 도망쳐나가기는 정말 힘들 겁니다.”
맥크리는 왼쪽 발을 꿈틀거린다. 박차가 짤강거린다. 그는 마음 한 구석으로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건 자기답지 않았고, 빗나가게 쏘는 건 더더욱 그랬다. 물론, 조명이 나빴을지도 모르지만 -- 그는 더 나쁜 기상 조건에서 더 멀리 있는 것도 맞춘 적 있고, 아직 명사수다. 진찰대에 반듯이 누운 맥크리는, 약하고 어색한 기분이 든다. 앙겔라는 그가 벨트와 홀스터를 벗게 했다: 셔츠 소매는 어깨까지 걷어올려졌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도록 허락해주기 전에 그녀가 그를 죽일 가능성이 더 컸다. 맥크리는 불편하게 몸을 움직인다. “솔직히 말하면, 그 놈이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어. 내 시야 밖에 있었어.”
“만약 죽일 의도로 온 거라면, 아무도 모르는 거죠.” 윈스턴이 중얼거린다.
제시는 자신의 의수를 닦고 있는 앙겔라에게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
앙겔라는 분홍빛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다. 그녀는 임무에 충실해 보인다 -- 너무 충실하다, 오가는 대화에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 중이에요.”
“아, 물론 놈이 도마뱀처럼 춤추면서 바위를 기어내려오진 않았겠죠.” 맥크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느릿하게 말한다. “조명이 나쁜 곳에서밖에 보지 못해서 -- 사실은 남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키가 커 보이진 않았으니, 여자일 수도 있죠. 모르는 거지만. 자세가 강했어요. 다리가 의족일지도 모릅니다. 내 말은 -- 활을 당기고, 겨누고 있는 게, 거의 조각상 같더라구요.” 그가 시험대 패드에 머리를 뒤로 기댄다. “무슨 바위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트레이서와 라인하르트 요원이 수색을 중단했습니다,” 아테나가 머리 위에서 끼어든다. “다음 48시간 동안 위협 수준을 상향 유지하고, 센서 모니터링 간격을 더 짧게 줄이겠습니다.”
윈스턴이 묻는다. “디스크에 그만한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은 충분해?”
“아니오.” 아테나의 디스플레이가 깜박거린다.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8시간마다 피드를 갱신하고 캐시를 지워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뭔가 걸리는 게 없는지 계속 모니터링해야 할 거에요, 윈스턴. 놓치는 영상이 없도록 다른 요원들과 교대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맥크리가 한숨쉰다. “나도 하지. 어차피 잠도 못 잘 거야. 이틀 동안 카메라 쳐다보고 있는 게 휴식에 제일 가까울 것 같군.”
“쉬세요,” 앙겔라가 끼어든다. “지속적인 경계 상태는 뇌파에 해롭고 치유 과정에 방해될 수 있어요.” 그녀가 구둣굽으로 의자를 빙글 돌린다. “윈스턴, 레나나 토르비욘의 도움을 받도록 해요.”
“제시도 할 수 있어요.” 윈스턴이 어깨를 으쓱한다. “제시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냥 앉아서 몇 시간 카메라 쳐다보는 겁니다. 몸 쓰는 일 없어요.”
“보던 TV 좀 마저 보게 해 줘요,” 맥크리가 약하게 씩 웃어 보이며, 쉰 소리로 말한다. “요 몇 달간 느긋하게 쉬어본 적도 없다구요, 선생님. 여가 시간 좀 갖게 놔 주시죠.”
앙겔라가 차가운 눈으로 맥크리를 바라본다. “다음에 꿰맨 실 뺄 때 국소마취제 안 놔 줄 거에요. 제발(Bitte).” 그녀가 더러워진 티슈를 휴지통에 던져넣고 장갑을 휙 벗는다. “지금 맞은 게 효과가 떨어지면 필요할 물건을 좀 가져올게요.”
앙겔라는 일어나서 방을 가로지르다가, 책상 위에 개어져 있는 맥크리의 빨간색 서라피와, 그 위에 놓인 화살 꽂힌 모자를 본다. 앙겔라가 멈춘다. 그녀는 모자를 향해 걸어가, 작고 창백한 손으로 모자 챙을 잡고, 집어든다.
“모자를 쐈군요,” 앙겔라가 작게 말한다.
제시가 턱을 몸 쪽으로 당겨 고개를 든다. “그런데요.”
“그렇다면, 머리를 노렸다는 거군요.” 앙겔라가 깃 바로 윗부분의 화살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빗맞췄고요.”
윈스턴이 귀밑을 긁는다. "그래도 두 발째는 맞췄잖습니까."
“팔을 노린 거에요.” 앙겔라가 푸른 눈을 가늘게 뜨고, 화살깃을 시선과 손끝으로 훑으며 말한다. “약점에 명중했지만 뼈는 부러지지 않았죠. 근육을 관통시킬 의도였던 겁니다.”
“그럴 의도였다구요?” 윈스턴이 반복한다. “그럼 첫번째 화살을 일부러 빗맞췄다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제시가 말한다. “처음부터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거죠.” 그는 얼굴을 찌푸린다: 메르시가 떠올리고 있는 그 상황을 이해하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저절로 어두워지고 일그러진다. “그 정도 거리에서,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내 몸 어디에든 원하는 대로 화살을 관통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그걸 원했다면 얼마든지.”
“당신이 그 남자를 쐈고,” 앙겔라가 덧붙인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가 쐈죠.”
윈스턴이 헛기침을 한다. “그러니까, 제시가 먼저 쐈군요.”
맥크리가 콧방귀를 뀐다. “내가 먼저 쐈지.”
“당신이 먼저 쐈는데도,” 앙겔라가 끼어든다, “당신을 죽이고 싶어하진 않았어요. 자기방어 차원에서조차도. 화살은 잘 조준되어 있었어요. 죽이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게 이 남자의 목적이었고, 실제로 해냈죠, 모두가 봤듯이.” 그녀는 뭔가 특별한 것을 찾기라도 하듯 화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 단서, 흔적. “전 이 사람이 암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해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윈스턴이 코웃음친다. “음, 좋은 일을 해주러 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치글러 박사님.”
“내가 쏘지 않았다고 해도, 놈이 안 쐈을지는 모르는 겁니다.” 맥크리가 한숨을 쉰다. “말싸움할 가치도 없어요. 무장해 있었고 공격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고요. 어떻게 그 절벽 위에 있었는지, 어떻게 도망친 건지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놈을 찾아서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알아내야 해요.”
“같은 생각이에요.” 앙겔라가 서라피 위에 모자를 돌려놓는다. 그녀는 윈스턴이나 맥크리 쪽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그녀가 조용해진다: 윈스턴은 다시 카메라 영상을 넘겨보기 시작하고, 맥크리는 수술대 쿠션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두통을 억누른다. 앙겔라는 의료 도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캐비닛들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방을 채우도록 놔둔다. 마침내 말하기로 결심할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서 누구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지 제가 아는 것 같네요.”
맥크리가 한쪽 눈을 뜬다. 그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신다. “그게 누굽니까?”
“그 사람 동생.”
윈스턴이 올려다본다. 맥크리는 앞으로 당겨 앉는다. 아테나의 A자 모양 엠블렘이 흥미롭다는 듯 스크린에서 반짝인다. 맥크리는 목까지 심장이 튀어오른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눈과 센서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돌아선 치글러 박사를 향한다. 눈가에 슬픔과 회한이 비친다: 제시는 그녀가 이런 표정을 하는 걸 여러 번 봤다 -- 보통은 일하느라 지쳤을 때. 하지만 이런 침울함은 새로운 종류다. 제시는 이번 주에 처음으로 그 표정을 봤다.
잭과 게이브에 대해 물었을 때.
“동생이라구요?” 윈스턴이 얼굴을 찡그리며, 크게 소리친다.
앙겔라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털어낸다.
“그래요,” 그녀가 마침내 대답한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름으로 말하면: 겐지.”
챕터2
Hang the Fool - Chapter 2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221104?view_adult=true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사건 4일 후, 스케이트를 가진 루시우라는 꼬맹이가 브라질에서 날아왔다. 아침 식사 시간에 감시 기지 식당에서 레나가 모두에게 그를 소개한다. 루시우는 과장 없이, 쾌활함 그 자체다 -- 미소와 하이파이브로 이루어진 것 같다. 루시우는 라임빛이 도는 초록색 져지에 헐렁한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다. 발끝에 개구리가 그려진 노란색 운동화가 리놀륨 바닥을 끽끽거린다. 가방에는 롤러블레이드가 매달려 있고, 목에는 헤드폰이 걸려 있다. 아무도 루시우가 그만큼 키가 작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그 에너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윈스턴!” 루시우가 노래를 흥얼거리듯 말한다. “오랜만이야, 아미고!” 그가 윈스턴에게 주먹 인사를 제안한다. 윈스턴은 호응해 주지만, 그 동작에 당황한 듯 약간 반응이 늦다. “Man, 나 너무 흥분돼” -- 소년은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더니, 팔을 휙휙 돌리고, 손가락을 리듬에 맞춰 튕긴다. 원-투, 원-투 -- “인생에 둘도 없을 기회야, 여기 와서 얼마나 기쁜지 말문도 못 열겠어.”
이 음악 치료사는 트레이서와 윈스턴의 제의로 오버워치에 신규 영입됐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와 음악의 힘에 의한 치유를 주장하는 루시우의 소셜 미디어 글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브롤터로 향하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했다. 장비 수속과 운송 비용으로 추가금 2000 레알이 들었다. 그는 현금으로 지불했고 도착해서 최종 목적지까지 모든 장비를 배송으로 부쳤다.
평소 같았다면 제시는 이런 열정적인 성격에 이끌렸을 것이다. 프로필에는 그 소년이 대단한 자유의 투사라고 나와 있고, 두 개의 음악이 부드럽게 전환되게 하는 크로스페이드 수트의 놀라운 설계에 대한 소문 또한 자자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로 심해진 왼팔의 통증 때문에 문제가 좀 생겼다.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 맥크리의 잠버릇은 집고양이의 그것 같았다 : 깜빡깜빡 잠들고, 낮잠을 자고, 폭면하고. 안전하고 적당한 공간이 있으면 아무 때나 잠에 빠져들고. 공동 숙소에 돌아와서 그 습관이 고쳐진 건 아니다. 습격당하고 나서부터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 이불 밑에서 몸을 새우처럼 말고,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나는 싸구려 베개에 머리를 기대면 -- 맥크리는 한 시간 안에 다시 일어난다. 뇌가 전원을 끄지 않는다. 아주 작은 소음에도 눈이 번쩍 뜨인다. 그는 앙겔라에게 수면제를 달라고 할까 고민한다.
맥크리는 커피를 한 잔 따라낸다. 그는 머그 컵을 들고 한 모금 마시고서 거의 뿜을 뻔한다. 식당 커피는 라인하르트가 맡고 있는데, 오늘은 너무 진하게 우려내서 거의 커피를 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게 바로 자네가 놓치고 있던 걸세!” 기사가 거대한 손으로 맥크리의 오른쪽 어깨를 두들기며 웃는다. “미국인들이 어떻게 커피를 마시는지 안다네, 맥크리, 그냥 물하고 콩 아닌가! 하지만 이걸 마시면, 믿어보게” -- 그가 주전자를 높이 들어올린다 -- “가슴에 기운이 펄펄 나지!”
라인하르트가 너무 세게 주전자를 내려놓는 통에 커피가 주전자 가장자리로 튀어올라 넘친다. 제시가 중얼거린다. “뭐가 나긴 하겠군요, 그래.” 따스하고 행복한 오전 8시의 가슴쓰림 같은 게 말이지.
제시는 평소 같았으면, 라인하르트에게 20가지 정도의 짖궂은 맞장구로 받아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맥빠지고 둔한 기분이다 -- 그로기 상태다. 따라갈 수가 없다.
모두가 토르비욘이 만든 아침 식사 앞에 앉는다 : 달걀, 소시지, 호밀빵, 죽, 반짝이는 블루베리 한 그릇. ¹⁾그라블락스 연어 한 접시씩이 각자에게 돌아가고 (맥크리는 사양하며, 눈을 빛내고 있는 트레이서에게 자기 몫을 양보한다), 앙겔라가 구운 크로와상 한 바구니가 따라온다.
¹⁾ 소금과 여러 종류의 허브를 이용해 저장한 연어
“그래,” 모두가 음식을 밀어넣기 시작하자 토르비욘이 새 동료에게 말한다. “자네가 그 요란한 음악하는 친구로군.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비슈카르 사를 애먹인 녀석 말이지.”
“그게 나죠.” 루시우가 바스락거리며 갈색 설탕 봉지를 뜯고 죽에 뿌린다. “그걸로 아주 조금 유명해졌죠.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불편하진 않으실 것 같은데.”
토르비욘이 말했다. “그래, 우린 신경 안 써.” 그가 딱딱한 토스트 위에 마가린을 두껍게 바른다. “어차피 우리가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아침밥 먹기만 해도 다시 유명해질 텐데 뭘.”
“페트라스 조약으로 모든 오버워치 활동이 불법화됐거든요.” 윈스턴이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서 덧붙인다.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전(前)오버워치 스탭들을 감시 기지에 다시 모으는 것만으로도, 이미... 좀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당신을 영입하면서, 루시우” -- 그가 바나나로 소년을 가리킨다 -- “우린 조약을 실제로 위반했어요.”
“대놓고 선을 넘었지.” 토르비욘이 기쁘게 동의한다. “세상에 이것보다 부당한 게 있을까. 한 방 먹여서 정말 기분이 좋아. 세상은 예전만큼 오버워치를 필요로 해. 더할지도 모르지, 돌아다니는 옴닉들에 변절자 무리들까지 나타났으니.”
“우린 주목받을 거에요.” 앙겔라가 커피를 저으며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고, 새로 영입할 인재들도 많으니까.” 그녀가 머그 컵을 홀짝인다. “이런 일이 오랫동안 조용하게 있을 순 없죠.”
“주목을 끌게 되면 그걸 잘 다룰 겁니다.” 윈스턴이 단언했다. “시간을 들여서 능력을 강화하고, 정비를 갖춰서 정보 수집 임무를 몇 개 하고 진짜 싸움에 들어갈 계획이에요. 우리가 예전처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걸 증명하면” -- 윈스턴이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고 있는 라인하르트와 시선을 교환한다. “-- 페트라스 조약을 철회시키고 다시 원래대로 활동할 수 있을 겁니다.”
“루시우!” 트레이서가 말한다. “리우에서 했던 일 얘기해 줘!” 그녀의 턱이 신나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파벨라에서 비슈카르랑 했던 거!”
루시우가 땋은 머리를 휙 넘기며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뭐, 제가 전부 다 한 건 아니에요. 리우 데 자네이루의 민중 시위였죠. 비슈카르가 들어와서, 도시를 재개발한대나 뭐래나. 우리 이웃집들을 다 허물어버리고 비슈카르 기술로 재건축을 한다는 커~다란 계획이 있었답니다. 그게 투표권 가진 사람들하고는 안 맞았던 거죠. 파벨라는 우리 집이고, 오래된 전통이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어요. 항의하고 시위했는데도 기업에선 전혀 듣질 않았고.” 루시우가 설탕 봉지를 하나 더 집어든다. “진짜 괴로웠다구요, you know? 허물어지기 직전인 우리 집을 보는 게. 그래서 제가 말했죠” -- 그가 입술을 다물고 ‘푸르르’ 떠는 소리를 냈다 -- “‘그래, 그게 너희들 방식인가 본데, 우리 삶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 리우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될 거야.’” 루시우가 그릇 안으로 설탕을 나선형으로 부어넣는다.
“시민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렸다구요?” 앙겔라가 커피잔 너머로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다. “그냥 하이테크 건축 회사인 줄 알았는데. 추구하는 디자인이...”
“고급화?” 루시우가 눈썹을 치켜들고, 까만 눈으로 탁자 건너편의 앙겔라를 강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끊는다. “맞아요, 그게 그놈들 전문이죠. 그리고 다른 것들도 있는데 말이죠, y'know, 통행 금지, 노동력 착취,” -- 루시우는 혐의를 하나 댈 때마다 장갑 낀 손가락을 하나씩 편다 -- “과도한 경찰력 동원, 불법 억류, 재판도 변호도 없는 구속에...”
앙겔라가 물러난다. 그녀는 바로 옆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인하르트와 시선을 교환한다. “아, 그렇군요.”
“짜게 굴려는 건 아닌데,” 루시우가 완전 짜게 굴려는 의도로 가득한 태도로 대답한다. “사실을 알고 보니, 비슈카르는 풀숲 속에 숨은 커다랗고 늙은 뱀이었다구요. 이미지 관리는 끝내주죠. 범죄 은폐하는 건 더 잘하고.”
“꽤 심각한 범죄들이로군,” 맥크리가 달걀에 칠리 소스를 뿌리며 말한다. “나도 비슈카르가 작은 집들까지 부숴버리는 걸 좋아하진 않아. 지구상 모든 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어떻게 놈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했나?”
루시우가 웃음을 터뜨린다. 제시는 루시우가 의자에 기대앉는 모습을 보며, 레나보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man. 비슈카르가 떠나고 나서 녀석들 기술을 손에 넣고는 다같이 도시를 청소했죠. 누구의 집도 무너지지 않았고, 누구의 땅도 뒤엎히지 않았어요. 단결의 힘이죠.” 그가 오른손 주먹을 들고 맥크리의 얼굴을 향해서, 천천히 공중으로 펀치를 날린다. 그가 외친다: “다-안-결!”
라인하르트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기엔 자넨 너무 어려.”
“헹.” 루시우가 양손으로 깍지를 낀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흠, 뭐.” 그는 씩 웃고 있다. “마흔여섯? 마흔다섯?”
“하.” 라인하르트가 루시우의 얼굴에 대고 악의 없이 손가락을 흔든다. “이 녀석 좀 봐! 나한테 아부하려고 하네!”
대화는 대중 문화와 TV 쇼 쪽으로 흘러간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중세 판타지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옴닉 사태 훨씬 전에 출판되어서 곧 세 번째 리메이크가 TV로 공개될 예정인 작품이다. 제시는 조용히 달걀을 먹는다. 왼쪽 팔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는 앙겔라가 쳐다보고 있을 때 윗팔을 문지르는 실수를 한다.
아파요? 그녀가 옅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모양으로 묻는다.
맥크리는 달걀 마지막 조각을 씹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앙겔라가 얼굴을 찌푸린다. 봐 줄까요?
맥크리가 고개를 젓는다. 잠이나 자야겠어요, 그가 입모양으로 대답한다.
“--- 그리고 완결을 안 냈다고!” 라인하르트가 탁자를 주먹으로 두들기며 포효한다. “이건 범죄일세, 환상적인 이야기를 써서 수백만의 마음을 앗아가 놓고, 책을 5개 내고, 미완성 상태로 남겨놓다니!”
“여기서 기사랑 용은 심각한 문제야,” 약간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루시우에게 레나가 다 들으라는 듯 속삭인다. “여기서는 뭐, 보통이라고 할 수 있지.”
“원작이 없어!” 라인하르트가 계속한다. “아예 없어! 시리즈를 리메이크할 때마다 항상 결말이 달라! 계속 새 감독이 와서 마틴이 어떻게 완결을 냈을지에 대한 이론을 바꾸고” -- 라인하르트는 너무 열성적으로 말하느라 맥크리가 탁자에서 일어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 “그리고 항상, 항상” -- 맥크리가 모자를 쓰고 조용히 두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경례를 보내는 것도 모른다 -- “점점 신빙성이 떨어지고, 매번 더 많이 죽이기만 하지. 불필요한 죽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용은 덜 나오고, 상스러운 대사에, 노출만 더 많아지고 --”
맥크리는 식당을 뒤로 하고 숙소가 있는 층으로 내려간다. 그는 통신기를 꺼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친절한 말상대가 되어 주기엔 너무 우울했다.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텅 빈 복도가 짤강거리는 박차 소리로 울린다. 맥크리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잠금이 풀리고 문이 옆으로 열린다. 그는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잠금 버튼을 엄지로 누른다. 바닥에 버려져 있던 알루미늄 소다 캔이 걷어차여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탁자 밑으로 굴러간다. 텅 빈 담배 상자가 그 다음으로 발에 걸린다. 제시가 비틀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켜자: 천장에 달린 할로겐 등 불빛 아래로 허름한 방이 비춰진다.
스위스 본부에 있던 숙소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제시는 어쨌든 방이 있어서 좋았다. 방 안쪽 벽에는 딱딱한 매트리스가 깔린 이층 침대가 붙어 있고, 붙박이장과 서랍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방에 연결된 작은 공간 안에는 화장실과 욕실을 나누는 조잡한 가림막이 있다. 가구는 몇 개 없다: 플라스틱, 비닐, 싸구려 합판. 찬장과 옷장 사이에 고정된 컴퓨터 콘솔 위에는 모니터가 두 개 올려져 있다. 바닥은 쥐가 부분부분 갉아먹은 빨간 러그에 반 정도 덮여 있다.
맥크리는 한숨을 쉰다. 그는 어깨를 돌려 보고, 인상을 쓰며 윗팔을 문지른다. 맥크리는 빠르게 방 상황을 확인한다 : 침대 (지저분함), 바닥 (쓰레기가 많음), 욕실 (샤워기 있음), 냉난방 장치 (냉방 모드), 소형 냉장고 (꽉 참). 진통제 (찬장 맨 위에), 빗 (바로 그 옆에), 문 (잠김), 딱 하나 있는 창문 (닫힘). 가슴 보호대 (바닥에 버려짐), 덧대 입는 가죽 바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무릎 보호대 (비스킷 포장지 더미 옆에). 탄약 (찬장 위에 있는 상자 안에), 섬광탄 (침대 옆에 있는 큰 나무 상자 안에), 담배 (빌어먹을 -- 아까 걷어차버린 게 마지막이었나 보다). 맥크리는 벽시계를 확인한다 : 0922.
피스키퍼는 서랍 안에 들어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필요하면, 그냥 손을 뻗기만 하면 된다. 맥크리는 벨트를 풀어서 회색 벽에 붙어 있는 코트 걸이를 향해 던진다: 벨트 버클 끝부분이 벽에 부딪힌다. 제시는 몸을 굽히고 올이 풀려나가고 있는 홀스터를 확인한다. 탄약통 홀더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꿰매지 않으면 떨어질 것 같다.
맥크리는 모자를 텅 빈 책꽂이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갈색 셔츠를 머리 위로 당겨서 벗고 -- 왼팔을 압박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 두 개 있는 의자 중 하나에 걸쳐 놓는다.
침대 옆에는 전신 거울이 수직으로 걸려 있다. 누가 언제 마지막으로 닦았는지도 모를 만큼 더럽다. 오른쪽 구석에는 검은 자국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 있다. 누가 걷어차서 깨진 것 같다. 제시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흘끗 본다. 그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더 곧게 몸을 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려 몸을 돌린다.
제시 맥크리는 서른여덟이었고 그 나이로 보였다. 그는 덩치가 크진 않았다. 라인하르트 빌헬름과 함께 살면 누구라도 덩치가 크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게 되고, 제시는 체구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뼈대는 튼튼하고, 넓은 어깨는 보기 좋은 근육질이었다. 제시는 아까 방을 살펴본 것처럼, 자기 자신을 검토한다 : 햇볕에 탄 피부, 진흙색 눈, 큰 입과 진한 눈썹. 가슴과 팔뚝을 덮은 굵고 짙은 털.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턱수염. 그는 모든 면에서 지저분해 보였다 -- 날씨에 닳아 끝부분이 해지고 봉제부위가 뜯어지고 있는 그의 옷처럼 말이다. 갈비뼈와 어깨에는 긴 상처가 나 있다. 젊었을 때 떡 벌어져 있던 가슴은 이제 약간 처졌다. 구부정한 자세를 하면, 복근이 접히는 살 속으로 사라진다. 맥크리는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집어넣고, 아랫배에 둘러진 살을 꼬집는다. 예전처럼 호리호리하진 않다. 더는 ‘다부지다’고는 못 하겠다. 탄산음료를 너무 많이 마신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하지만 아직 : 제시는 야성적이고 악당 같은 분위기로 빛난다. 기계 팔과 붕대 -- 심지어 텁수룩한 갈색 머리카락과 살짝 나오기 시작한 배에도 불구하고 -- 그는 잘생겼다. 눈가 주름 옆으로 지는 그림자와 수염에는 뭔가 유혹적인 게 있었다. 불량배 같고, 거칠고 강인한 매력. 그는 세월이 길들이기에 실패한 존재였다.
여기까지는 맥크리가 더러운 거울을 보면서, 살짝 나온 배를 찌르며 자기 자신에게 말한 내용이다. 맥크리의 몸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라인하르트의 이상한 얘기 속에 나오는 기사가 된 기분이 든다. 더 이상 맞지 않는 불편한 갑옷의 무게에 짓눌린 기사. 치글러 박사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했고, 신경과 근육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심신이 축축 처졌다. 팔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걸 떨쳐낼 수 없다는 게, 버겁고 혼란스러웠다. 그는 마음 한편으로 부상이라는 게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다 자신을 쏜 개자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시는 습격당한 날 밤을 돌이켜본다 -- 치료소에서 폭로된 사실과, 불안해하던 메르시를.
“겐지에게 들었어요,” 그녀는 턱에 손마디를 대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형제가 있다고요. 일본에 남겨두고 온 형이 있다고 했어요. 사이가 어땠는지는 말한 적 없어요. 딱 한 번, 아마 형이 죽은 것 같다고 하긴 했지만.” 앙겔라는 제시, 윈스턴과 시선을 교환한다. “시마다 가문을 상대했던 임무, 둘 다 기억하죠?”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겐지는 그 임무들의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었어요. 성공에 필수적인 존재였죠. 시마다 일족에 대해 겐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현황, 구성원, 무장 상황--”
“이 호크아이가 겐지의 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맥크리가 부어오른 팔꿈치를 가리키며 끼어들었다. “죽은 녀석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해요?”
“죽은 것 같다고 했어요, 제시. 그리고 확신하는 이유는 암벽 타는 기술이에요.” 앙겔라가 천장을 가리켰다. “이런 경사를 근력만으로 기어오르고 -- 그렇게 빠르게 오르내리는 건 -- 음, 확실히 기술이 뛰어나야 할 거에요.” 그녀가 입술을 앙다문다. “정확히 말하면, 훈련이 필요하죠. 겐지가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도록 수 년간 받았던 훈련 같은 거요. 무슨 암살자 집안 전통으로, 가문에서 배우는 특수한 기술이라고 했어요. 시마다 일족에게만 대대로 전해진다고 했죠.” 앙겔라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궁술도 마찬가지에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겐지는 형 이야기를 몇 번밖에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중에 한 번-- 형이 활을 잘 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궁수 중 하나일 거라고요.”
“경고해 주는 게 좋겠어,” 맥크리가 으르렁거렸다. “당장 통신을 연결해야 해. 진짜 겐지의 형제가 맞다면, 그 화살로 내가 아니라 겐지를 쏘려고 한 걸지도 모릅니다.”
“겐지의 통신기는 꺼져 있어요.” 앙겔라가 고개를 저었다. “평화와 고독을 찾으러 샴발리에 갔으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우리에게 연락할 거에요.”
“그나저나, 겐지 형이 뭐하러 여기 온 걸까요?” 윈스턴이 물었다. “동생을 찾고 있었다면, 겐지는 여길 이미 떠났는데 -- 네팔로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맥크리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가 짜증을 내며, 느릿느릿 말했다. “늦었나 보지. 하늘을 나는 닌자 구름이 도쿄에서 좀 늦게 출발했다든가, 그런 거겠지.”
“겐지에게 직접 물어봐야 해요.” 앙겔라가 갑자기 간결하게 마무리지었다. “그 동안은, 추측만 할 뿐이에요. 그 자가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는 대화를 마치고 싶어, 진통제를 꺼내러 의료 캐비닛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또다시, 회피하는 거다. 앙겔라와 그녀의 비밀들.
가장 놀라운 사실을 드러낸 비밀들. 세상에서 제일 잘 쏘는 궁수!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궁술의 달인이 겐지의 망할 형이란다!
맥크리는 턱선을 긁는다. 그의 시선이 팔에 감긴 붕대에서, 왼쪽 갈비뼈 바로 아래의 타원형 상흔으로 향한다.
피곤에 지친 목소리가 의식 저편에서 미끄러져 온다: 또 아마리다. 낮고 연기 같은 목소리. 운이 안 좋았구나, 카우보이.
물론, 아마리는 알 것이다. 그 상처를 얻은 날에 같이 있었으니까: 블랙워치, 복무 4개월차, 야외 작전. 기지로 돌아가는 의료 수송차에서 아마리는 맥크리 옆에 앉아 있었다. 그가 들것 위에서 몸을 구부리는 걸 독수리 같은 눈으로 쳐다보면서. 망설였구나. 그 말이 맞았다. 그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넌 타이밍이 젬병이야. 그는 반박하려고 했다. 아니, 넌 타이밍이 젬병이야, 카우보이, 내가 충고 하나 해 주지. 아마리는 베레모를 거칠게 벗고, 긴 흑발을 뒤로 넘겼다. 다음 번엔, 똑똑하게 쏴. 아니면 아예 쏘지 마. 호루스 문신이 그녀의 뺨 위에서 낫처럼 반짝였다. 총이 네 손에 있을 때는 -- 아마리는 부드럽게, 따뜻하게, 치명적으로 몸을 굽혔다 -- 영혼으로 방아쇠를 당겨.
제시는 얼굴을 돌린다. 거울 보는 건 이제 됐다. 젠장, 깨어 있다는 게 아나 아마리의 유령 목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라면 이제 그 짓도 다 했다.
맥크리는 불을 끄고: 부츠를 걷어차듯 벗어던지고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눈을 감감고,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술 사이로 내쉰다. 제시는 양을 세고, 머릿속으로 시계추를 흔들고, 산타 페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상상한다. 회전초와 ²⁾뷰트와 멀리 떨어진 산들을 생각한다. 매미, 아니면 -- 사막 쏙독새 소리도.
²⁾건조지대 고원에서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우뚝 솟은 지형.
미국 서부 고원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두 시간이 지난다. 맥크리는 샛노란 태양 아래 흰 모래가 구워지는 꿈을 꾼다. 회색 비를 뿌려대는 먹구름에 태양이 삼켜진다. 맥크리는 폭풍우가 토네이도를 몰고 오기 직전에 복도에서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덜컥 깨어난다.
“루시우!” 레나가 복도 아래쪽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거기 괜찮아, 친구?”
“어-안녕, 미안.” 두 번 더 쿵쿵거리고,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루시우의 웃음소리가 숙소 벽을 간지럽힌다. “그냥 스피커 세팅하고 있었어.”
제시는 신음한다: 그는 베개 밑에 머리를 쑤셔넣고, 뺨을 매트리스에 대고 누른다. 숨쉴 때 발생하는 열 때문에 콧구멍이 간지럽다. 바깥에서는, 작아진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재잘거리고 있다. 더 이상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다. 신경쓰지도 않는다.
앙겔라에게 수면제를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제시는 결국 잠드는 데 실패했다는 걸 인정할 때까지 5분을 꼬박 침대에 처박혀 있는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 어깨를 돌려 보고, 서랍 속을 뒤져 속옷 사이에 묻혀 있던 담배를 한 개피 찾아낸다. 제시는 찬장에 있던 라이터를 휙 집어들고, 발을 끌며 창문가로 걸어가 유리를 옆으로 밀어 연다. 그는 담배를 꼭 쥐고, 말아서, 불을 붙이고, 피운다.
길게 한 번 빨아들이고 나자, 기분이 좀 낫다. 8시간의 방해 없는 숙면은 아니지만-- 젠장, 도움이 된다.
몇 분간 창가에서 담배를 피운 끝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맥크리는 컴퓨터 콘솔로 걸어가 측면을 발로 찬다. 스크린이 켜지며, 파랗게 빛나며 흰색 로그인 창을 띄운다. 그는 의자에 털썩 앉아 독수리 타자로 키패드를 두들겨 로그인 정보를 입력한다.
|| || 로그인 >> [Agent ID]: 3945_45
|| || 로그인 >> [Password]: highn00n
그는 ‘엔터’ 키를 누른다.
로그인 성공. 어서 오세요, 맥크리 요원님.
“고마워요, honey,” 맥크리가 이 사이로 담배를 문 채, 소리내서 대답한다. 그가 손끝으로 자판을 천천히 눌러나간다.
|| || 검색 >> [입력]: 겐지_
검색중...
236개의 결과가 검색되었습니다.
>> 시마다 겐지
>> 연령 : 35세
>> 국적 : 일본
>> 직업 : 모험가
>> 행동 근거지 : 샴발리 수도원, 네팔
>> 소속 : 오버워치 [재소집]
>> 관계자 : 해당 없음
>> 주 무기[계속.]...
“아냐,” 맥크리가 담배 끝을 씹으며 검색 창을 닫는다. 그는 ‘엔터’ 키를 누르고 다시 시작한다.
|| || QUERY >> [INPUT]: 겐지 관계자_
검색중...
0개의 결과가 검색되었습니다.
“하.” 맥크리는 다른 검색어를 시도해 본다.
|| || QUERY >> [INPUT]: 겐지 가족_
검색중...
0개의 결과가 검색되었습니다.
맥크리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계속 타이핑한다.
|| || QUERY >> [INPUT]: 겐지 형제_
검색중...
0개의 결과가 검색되었습니다.
실망에 찬 한숨을 내뱉자마자, 스크린에 새로운 메시지가 뜬다.
요원님, 음성 인터페이스로 검색을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제시는 움찔한다. 복도에선 더 이상 루시우나 트레이서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지만, 자기가 검색하는 내용을 다른 사람이 우연히 들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낮게 ‘에-’하고 부정하곤, 담배를 문 입술을 오므리며 타이핑으로 대답한다.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해서, 오른손만을 사용한다.
|| || SYSTEM >> [INPUT]: 아니 괜찮아요 아테나 고맙지만 괜챃ㄴ아요_
답신은 거의 즉시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요원님. 더 궁금하신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여쭤보세요.
“아주 친절하시군요, darlin’,” 맥크리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중얼거린다.
|| || QUERY >> [INPUT]: 시마다 형제_
검색중...
29개의 결과가 검색되었습니다.
“빙고,” 스크린이 로딩을 시작하자 제시가 쉰 소리로 말한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섞인 창이 삑 소리를 내며 나타난다.
경고 : 외부 링크는 안전하지 않은 웹사이트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하시겠...
“하라고, 제기랄.” 제시는 경고 메시지가 다 뜨기도 전에 검지 끝을 엔터 키에 쑤셔박는다.
첫 번째 글은 오사카 매스컴에서 낸 기사였다. 일-영 번역기를 사용해서 읽어야만 했다. 번역된 결과물은 딱 그럭저럭 읽을 만한 수준이다.
시마다 가문의 사업가 겸 CEO가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나다 - 시마다 고로 추모회, 하나무라에서 개최
제시는 페이지의 나머지 부분을 훑어보지만 아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기사에는 시마다 가문의 가장이 하나무라에 있는 자택에서 평온하게 잠자듯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장례식에는 관계자만 참석했고 추모회에는 일반 대중들까지 모두 참여했다. 사진은 없다. 페이지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발행 날짜가 있다. 둘 다 11년 전이다.
가장 아랫부분에는 -- 번역기가 이상하게 번역한 -- 문장이 하나 있다 : 시마다 형제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그 문장 뒤에는 4개의 한자가 있고, 그 중 2개는 같은 모양이다. 제시는 그게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제시는 눈이 아파올 때까지 실눈을 뜨고 스크린을 쳐다본다. 일본어를 알기만 했더라면.
두 번째 글은 뉴 재팬 타임즈의 기사다. 결과물이 첫 번째 것보다 더 실망스러워서, 다 읽어볼 필요도 없다. 기사는 하나무라에서 열리는 전통 혼례식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 중 하나는 시마다 성에서 치러진 것이었다. 맥크리는 이 글을 쓴 기자가 여행지를 홍보할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었던 건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다. 기사의 주제는 논평에서 일화로 튀었다가, 공무원들이 인터뷰로 지역 경제를 발전시켜 주는 시마다 가문을 찬양하는 부분으로 이동했다. 페이지는 분홍색 꽃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상아색 탑과 높은 나무 문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나무 밑에 진주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서 있는 사진도 하나 있다. 머리를 흰 두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아래로 향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미소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기사를 닫고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는다.
제시는 세 번째 글에서 검색이 성공했다는 걸 깨닫는다.
공장 폭발 후 시마다 가문의 재건축 계약 성사 - 화재 희생자 추모회에 장남이 출석해
기사에는 사진이 있지만, 곧바로 뜨지는 않는다. 커서를 빙빙 돌리자, 행진하는 글자들 사이로 그림 대신 뜨는 네모 칸이 나타난다. 맥크리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왼팔이 둔한 통증으로 욱신거린다.
사진이 나타난다. 제시는 눈을 깜빡인다. 웃음기 없고 인상이 차가운 젊은 남자가 스크린 너머를 쏘아보고 있다. 제시의 담배 끝에 맺힌 재가 무릎으로 떨어지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마다 한조 : 27세. 날카롭고 여윈 얼굴에 각을 잡듯이 다듬어진 긴 흑발. 제시는 그의 광대뼈와 깨끗하게 면도된 턱의 윤곽을 살펴본다. 한조의 시선은 냉혹하다 -- 사납고 짙은 눈썹 아래로 상대방을 차갑게 평가하는 것처럼. 제시는 즉시 그 강렬한 눈빛에 사로잡혀 버린다. 가늘고 검은 칼로 베이는 것 같다.
제시는 물러난다. 갑자기 뭔가 음란한 걸 보다가 걸린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그는 한조가 이 사진을 직접 찍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냉랭한 한조가 고압적으로 멸시를 담아 카메라를 쳐다보는 법을 연습해서, 사진을 보는 사람이 움츠러들게 만드는 데 시간을 쓰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겐지도 때이른 죽음을 맞기 전에 이렇게 생겼을까?
제시는 다시 사진을 본다. 10년, 아니 그 이상은 된 것 같다. 자신을 쏜 남자는 이제 이렇게 보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제시는 이 얼굴을 상상한다 -- 이 깎아낸 것 같은 강한 이목구비, 거만한 눈과 무자비한 입 -- 바위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얼굴. 그는 남자가 활을 들고, 시위를 매기고, 활줄을 당기며, 자신의 미간을 조준하는 걸 상상한다. 남자가 자신을 증오하고, 고함치고 으르렁대며, 화살을 퍼부어 망할 ³⁾성 세바스티아누스처럼 만들어버리는 상상을.
³⁾원기둥에 밧줄로 묶인 채 화살을 맞는 젊은이로 상징되는 기독교의 성인
맥크리는 침을 꿀꺽 삼킨다. 팔의 통증이 거의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는 진통제를 먹기 전에 꽉 채운 1분 동안 사진을 응시한다. 맥크리는 일어나서, 몸을 움찔하고, ‘젠장’이라고 내뱉는다. 왼쪽 다리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제시는 손가락을 퉁겨 불 꺼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곤 찬장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간다. 앙겔라의 목소리가 통증 속을 스쳐지나간다. 많이 심하면 두 알 먹어요. 6시간 이내에는 재복용하지 말고.
제시는 오렌지색 플라스틱 병을 흔들어 흰 알약을 세 개 꺼낸다. 그는 세 번째 알약을 반으로 쪼개고: 삼킬 때 쓸 음료를 찾으려 소형 냉장고 안을 뒤진다. 남아있는 건 두 캔뿐이다 (‘가득 찼다’는 말은 이제 쓸 수 없겠군). 그는 체리맛 탄산 음료 하나를 꺼내서 딴다. 캔이 쉿 소리를 내며 열린다.
음료를 마시며 기사에 나왔던 사진을 생각하자 냉기가 등골을 타고 기어오른다. 제시는 스스로에게 멈추라고 명령한다: 그 날렵하고 사악한 눈매 말고, 아무거나 다른 걸 생각하라고.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
“가서 딸이나 쳐(Go blow yourself),” 제시가 캔 너머로 소리내서 중얼거린다.
타이밍이 젬병이야, 카우보이. 아마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다. 꼬맹이, 그게 운 나쁘게 빗나간 거냐.
아, 그를 살아있게 해주는 이 더러운 습관들.
샤워를 해야만 했다. 물을 틀려고 욕실 문을 열자마자 컴퓨터가 경고음을 울린다. 맥크리는 멈추고: 스크린을 재작동시키러 돌아간다. 시마다에 대한 기사 페이지가 아직 떠 있다. 그는 한조가 노려보는 시선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전에 창을 닫는다. 작업 표시줄에서 메일 아이콘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다. 맥크리는 눈을 찌푸리고 스크린을 두 번 탭한다.
윈스턴에게서 온 메시지다. 제목은 굵고 선명한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비슈카르 조사 임무 - 리장 킥오프
[1급 기밀]
참가 요원 : 트레이서, 맥크리, 겐지, 루시우
7월 6일 - (예정) 2100
메모 : 상황 보고 및 상담 요망. 7월 5일 1700 감시 기지 지브롤터. 겐지는 금주 안으로 귀환 예정.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일을 굴려 봅시다.
맥크리는 머리를 긁는다. “아침식사 후에 누가 격려 연설이라도 받았나 보군.” 그가 혼잣말한다. 준비 기간이 일주일밖에 안 되는 중국에서의 4인 임무는 전혀 작게 들리지 않았지만 -- 젠장, 또 모르지. 더 미친 작전에도 참가해 봤다. 데드락, 블랙워치 둘 다에서. 게다가, 루시우가 참가한다면, 아마 시시한 임무일 거다.
강조하는데 : 그는 시시하길 바란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꼬맹이를 위해서.
그리고 겐지가 올 거다. 맥크리가 딱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답신으로 ‘확인’ 버튼을 탭하자 제목 줄이 푸른색으로 반짝인다. 맥크리는 일어나서: 반쯤 타다 만 담배를 바닥에서 주워들고 찬장 위에 올려둔다. 그는 스크린을 끄고 욕실로 사라진다. 창문 밖에서는 루시우가 한낮의 태양빛을 받으며, 회색 비행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역주]
¹⁾ 그라블락스 : 소금과 여러 종류의 허브를 이용해 저장한 연어.
²⁾ 뷰트 : 건조지대 고원에서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우뚝 솟은 지형. 미국 서부 고원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³⁾ 성 세바스티아누스 : 원기둥에 밧줄로 묶인 채 화살을 맞는 젊은이로 상징되는 기독교의 성인.
챕터3
Hang the Fool - Chapter 3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288862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비행선이 덜컹거리자 그는 도착했다는 걸 깨닫는다. 비행장으로 내려앉아 천천히 주행하는 동안 화물칸 문이 열릴 것이다. 블랙워치 A분대는 장비 회수 전 집결지점으로 이동해서: 유니폼을 입고, 모든 걸 확인한 뒤, 캡틴 레예스와 함께 출동할 것이다. 정예 요원 여섯이 레예스를 따라 구역 내로 진입해 명령에 따라 방해되는 적을 무력화할 거다. 맥크리는 레예스가 지시하지 않는 이상 최전선에 나서지는 않는다. 그는 보통 섬광탄을 준비하고, 측면을 방어하는 역할이다.
맥크리는 비행선 안, 레예스 맞은편에 앉아 있다. 둘은 안전띠를 매고 다른 요원 다섯 명과 함께 그물 의자에 비좁게 모여앉아 있다. 순환되는 공기가 먼지와 엔진 소음으로 웅웅거린다. 레예스의 등은 비행기 벽에 닿아 있다. 맥크리가 몸을 굽혀 무릎 안쪽에 팔꿈치를 댄다. 그는 전투복과 부츠, 군용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모자도 박차도 없다. 맥크리가 레예스를 쳐다보자, 레예스도 마주본다. 객실 내부 조명이 레예스의 흉터진 얼굴을 붉게 비춘다.
검은 옷에, 피범벅으로, 덜컹거리는 강철판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에 있는 그 모습은 -- 지옥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 같다.
비행선이 하강한다. 기체의 움직임에 둘 모두 휘청한다. 맥크리는 씩 웃어보인다. 레예스는 웃지 않고: 눈을 찌푸리고 어두운 눈동자로 맥크리를 쏘아본다. 레예스가 맥크리에게 뭐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엔진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맥크리는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안다. 그는 더 활짝 미소짓는다. 맥크리가 입모양으로 대답하며, 모자 없이 드러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곤 텁수룩한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그리고 레예스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모자를 가리키자, 레예스가 삐딱하게 웃음짓는다. 레예스가 보이지 않는 모자 챙을 기울이는 것 같은 제스처를 보낸다. 맥크리도 똑같이 한다. 이제 둘 다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고 있다.
비행선이 착륙하고 엔진이 포효한다. 맥크리는 일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레예스를 돌아본다. 레예스는 입술을 적시고, 검지와 중지를 까닥이며 출동 사인을 보낸다. 맥크리는 준비됐다. 그가 안전벨트를 풀고 있을 때, 객실이 덜컹이며 비행선이 멈추고 레예스가 일어난다. 레예스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어깨 너머로 그를 본다. 저음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
“어이. ¹⁾이스트우드.”
제시가 눈을 뜬다. 그가 눈을 깜빡인다.
루시우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괜찮아?”
둘은 리장의 시장 안에 있는 라멘 가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지난 3일간 저녁을 먹었던 곳과 같은 장소다. 둘 다 임무 복장을 차려입었다. 맥크리는 모자를 쓰고 검은 서라피로 가슴 보호대를 감추고 있고, 루시우는 수트 위로 보라색 후드티를 입고 있다. 잠복 근무 첫날 저녁에는 시선이 많이 끌렸다. 둘째날 밤은 좀 더 조용했고: 오늘밤은, 아무도 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복되는 건 안심되는 법이지, 라고 맥크리는 루시우에게 말했었다. 풍경에 섞여들어간다고 해도 아직 누군가가 보고 있을 수 있어. 풍경이 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
맥크리가 턱수염을 긁는다. 그는 그릇 속에 가라앉아 있는 분홍빛 돼지고기 조각들을 내려다보고, 젓가락을 들어 면발 사이에 숨어 있을 주황색 새우를 찾아본다.
“괜찮아,” 그가 중얼거린다. “어, 괜찮아. 잠깐 멍해 있었던 것뿐이야.”
“정신 차려, 이스트우드.” 루시우가 의자에 스케이트를 부딪힌다. 그는 어묵 라멘과 녹차 버블티를 먹고 있다. “임무 도중에 멍해 있으면 안 되지. 우리가 백업이라고 해서 긴장을 풀어도 되는 건 아냐!”
루시우가 음료를 빨아들이자 달달한 검은색 알갱이들이 큰 빨대를 타고 올라간다. 맥크리는 그걸 보며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 애쓴다.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가 있어?”
“이거 괜찮아, 한번 먹어봐. 녹차 맛이 최고야. 아보카도 들어있어.”
“아니, 내 말은, 그 알갱이가.” 맥크리가 핫 소스를 그릇 안에 잔뜩 뿌린다. “무슨 올챙이 먹는 것 같다구.”
“아, 쫌, man.” 루시우가 코를 찌푸리며 신음한다. “토나오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개구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
“좋아하긴 하지만 먹고 싶은 건 아냐.” 루시우가 받아친다. “좀, 이스트우드 --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때, ‘네 모자 좋아해?’” 루시우가 눈을 굴린다. “‘어, 좋아한다고. 그럼, 먹지 그래.’ 아주 그냥 모자를 다 먹어버리라고.”
맥크리는 건조하게 웃고 음식을 마저 먹기 시작한다.
---
4인조 팀은 리장에서의 5일짜리 임무 막바지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제법 매끄럽게 진행됐다. 루시우가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비슈카르가 귀중한 정보를 루청 인터스텔라 타워에 있는 서버 클러스터에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레나는 2일간 타워를 정찰해 메인 데이터 센터로 접근하는 3개의 접근 경로를 알아냈다. 그녀는 조심스럽고 복잡하게 움직이며(보안 팀의 이동 경로와 교대 시간을 기억하면서) 타워에 잡입하고 클러스터에 접근하는 루트를 알아냈다. 윈스턴이 준 추출용 드라이브를 꽂고 5분만 기다리면, 빙고 : 타워 아래쪽 정원에 집결해, 이동 수단으로 가서, 획득한 비슈카르 정보를 갖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맥크리와 루시우는 순찰하며 방해물이 없는지 주변 환경을 살피는 역할이었다. 수상한 게 발견되면, 그들이 임무를 취소할 것이다. 트레이서의 접근 루트가 위태로워지면, 백업 팀으로 들어가고.
임무 셋째 날, 팀은 비슈카르 건축가 중 핵심 인물들이 기술 회의 때문에 루청 타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맥크리는 루청 타워가 이 손님들을 받는 동안 보안 수준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에 놀란다. 사실은, 더 낮췄다. 트레이서는 보안 요원의 감소를 이득이라고 해석했다. 맥크리는 그 반대로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행사를 하면서 보안 수준을 낮출 이유? 비슈카르가 무모한 보안 규약에 동의한 게 아니라면, 자기들 보안 요원을 직접 데리고 왔겠지.
겐지는 지브롤터에서 시간이 지연돼서, 넷째 날 도착했다. 감시 기지에 남아 있는 요원들에게 젠야타를 소개하고, 리장으로 가는 비행선에 숨어들어가 은밀하게 나타난 것이다. 글자 그대로 은밀하게: 한밤중에, 팀원들이 레나의 호텔 방에서 텍사스 홀덤 포커를 치고 있을 때. 사이보그는 빌딩 외벽을 기어올라, 레나의 방 발코니까지 올라와서, 난간 끝에서 갑자기 나타나 쾌활하게 ‘안녕하십니까.’하고 손을 흔들었다. 요원들은 자기들을 놀래킨 죄를 빠르게 용서해 준다 -- 특히 레나와 루시우는, 그 판을 완전히 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빨리. 지각한 것을 보충이라도 하듯이, 겐지는 요원들을 도울 의지로 가득했다.
그는 맥크리를 불러 세울 의지로도 가득했다.
“치글러 박사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맥크리를 따라나가서 겐지가 말했다. “부상 때문에, 당신이 임무에 참가하는 걸 말리고 싶어하셨습니다. 박사님께서 당신을 보내주시다니 놀랍군요.”
“영원히 처져 있을 순 없지,” 맥크리는 담뱃재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는 벽에 기댔다. “빨리 나았어, 어쨌든, 상태는 정상이라고. 얼마나 빨리 고치시는지 알잖아.”
“알고 있습니다.” 겐지가 중국 사자처럼 생긴 콘크리트 조각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박사님께서 습격자와 그 화살에 대한 보고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 본 것들과 여기 와서 당신에게 들은 이야기 모두가 제게 확신을 주는군요. 당신을 쏜 남자는 분명히 제 형일 겁니다.” 그는 맥크리가 가볍게 웃고 머리를 기울이는 걸 알아차렸다. “불행하군요. 제 형을 이렇게 소개하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운이 없어,” 맥크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다 나은 팔을 문질렀다. “그래, 그 말이 딱이군.”
“우린 지난 봄에 다시 만났습니다.” 겐지는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달을 보며 말했다. “재소집 바로 전에, 하나무라로 돌아가 형을 찾았죠. 10년만에 처음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겐지의 머리끈이 후덥지근한 바람에 휘날렸다. 맥크리는 속이 뒤틀렸다. 그 궁수의 머리 뒤에서 저것과 비슷하게 펄럭이는 천조각을 본 적이 있지 않았던가?
“시마다 제국의 방식이 우릴 갈라놨죠.” 겐지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의 화합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성격으로 미루어 봐서 한조가 절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형의 근면성실함을 과소평가했어요. 절 아주 멀리서부터 쫓아왔더군요.”
맥크리가 말했다. “그 말은 내가 맞았다는 뜻인 것 같은데.”
겐지가 다시 맥크리에게로 바이저를 기울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널 찾아서 감시 기지로 왔지만 한발 늦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겐지가 일어섰다. “아까 제가 말했듯이, 불행한 일이죠. 제가 있었다면, 당신이 다치진 않았을 겁니다.” 겐지는 윙 소리와 아주 작은 찰칵 소리를 내며 맥크리 옆에 착지한다. 그는 손바닥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형의 행동에 대한 제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을 놀라게 하고 상처입혀 죄송합니다.”
맥크리가 겐지를 조금 덜 좋아하기만 했다면 계속 부루퉁해 있었을 것이다. “사과할 필요 없어, 네가 쏜 게 아니니까.” 그가 담배를 뻐끔거렸다. “나 알잖아, 잘 극복할 거야.” 그가 모자 챙을 젖혔다. “너한테 나쁜 감정 없어, 겐지 군(Genji-kun).”
겐지가 긴장을 푼다. 거의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시마다 가문의 전사들은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대대로 훈련받아 온, 일본에서 가장 뛰어나고 치명적인 암살자들이죠. 형은 훌륭한 자산이자, 귀중한 아군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맥크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이보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누구의?” 그리고, 불신하며: “오버워치의?”
“그렇습니다. 제 원래 목적은 형을 제 스승, 젠야타에게 소개해 고통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목숨을 구해주신 치글러 박사님께 소개하고요. 윈스턴이 제게 연락했을 때, 그게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겐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맥크리를 응시했다. “다시 태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오버워치 안에서, 형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겐지는 땅을 빠르게 기어가는 딱정벌레를 내려다본다. “형은 고통받고 있어요.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 많은 일들을 했죠.”
맥크리가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여긴 네 형이 있을 장소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냐.” 맥크리는 머리를 뒤로 기울여 호텔 앞뜰을 내려다본다. “한창때는 마음에 화가 많은 친구들이 오버워치에 많이 들어왔었지. 별로 효과가 없었어. 동료들에게도 안 좋았고. 난 말야,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옛날 일에서 배운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겐지의 시선은 거의 수심에 잠겨 있었다. “잭과 가브리엘 얘기를 하는 거죠?”
멀리서 시계 소리가 울리며 시간을 알려왔다 : 11시. 맥크리는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 끝을 비벼 끄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 대화는 갈 데까지 갔다고, 그는 결정했다.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군.” 맥크리가 한숨쉬었다. “나한테 모든 해답이 있는 건 아냐.” 맥크리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난 그냥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 사람일 뿐이야.”
“그리고 전 이 세월이 지난 뒤에도 당신이 그러고 있다는 게 존경스럽습니다.” 겐지가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맥크리.” 그의 기계 음성은 거의 애정 있게 들렸다. “다시 한번 함께 싸울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너랑 같이 일하게 돼서 진짜 흥분돼, man.” 라멘 가게를 나와서, 루시우가 맥크리에게 말한다. 그는 총잡이 옆으로 느릿하고 태평스럽게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진다. “장난 아냐, 진짜 진심이라구.”
“아, 그래, 고마워, 친구.” 맥크리는 루시우의 열정적인 칭송에 어색한 기분이 든다 -- 심지어, 약간 바보가 된 기분까지.
“You know, 인터넷에서 얘기 들었어. 현상금하고 전부 다.”
“어, 그래.” 맥크리가 담뱃불을 붙인다: 근처 가게에는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담배가 없었다. “나쁜 녀석들을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고 다니면 그렇게 되지. 너도 다 아는 일일 것 같은데.”
“맞아, 우리 말 좀 통하네!” 맥크리가 담뱃갑을 건네려 하자, 루시우가 손바닥을 든다. “아냐, 괜찮아. 끊었거든.”
“잘했네.” 맥크리는 조잡하게 꿰맨 탄약 벨트 뒤로 담뱃갑을 구겨넣는다. “지저분한 습관이지.”
“Hey, 그런데 레나가 너 총 솜씨에 대해서도 말해줬는데 말야,” -- 루시우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서 땅을 가리키며, 총 소리를 흉내낸다. 퓨, 퓨 -- “명사수라면서. ²⁾이름 없는 남자. 맞지?”
²⁾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무법자' 3부작의 주인공
아주 약간 바보같은 기분이라고, 맥크리는 걸어가며 생각한다. “너무 흥분하진 말라고, 결국엔 나도 인간일 뿐이야.”
둘은 임무가 2단계로 접어들 때까지 시장 거리를 하릴없이 걷는다. 트레이서와 겐지는 루청 타워로 진입하면서 무선 통신으로 연락을 취하고: 보안 요원이 교대하는 틈을 타 목표물로 접근한다. 맥크리는 침착하려고 노력한다. 담배 맛이 아주 좋진 않지만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된다.
5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봐,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루시우가 묻는다. “그게 말야, y'know.” 그가 손으로 둘을 번갈아 가리킨다. “남자 대 남자로.”
맥크리가 눈썹 한 쪽을 치켜든다. “될 것 같은데.”
음악 치료사가 스케이트를 타고 가까이 온다. “레나 남자친구 있어?” 그가 후드티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넣는다. “있잖아, you know. 좋아하는 사람은?”
맥크리는 평정심을 총동원해 겨우 웃음을 참아낸다. “뭐라고?”
“그냥 물어보는 거야,” 루시우가 천진하게 대답한다. “Y'know, 난 그냥 -- 무슨 말 했다가 어색해지기 싫어서 --”
“없는 게 확실해,” 맥크리가 입에 문 담배를 빼내며 말을 끊는다. “남자친구.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 그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뭉갠다 --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사생활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으니까. 하지만 난 항상 레나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지.”
루시우가 웃음을 터뜨린다. “아. 아냐, man. 나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 그냥 좀 궁금했던 것 같아. y'know?”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예쁘니까.”
“그래 맞아, 친구. 진짜 예쁘지.”
정원 입구까지 가는 동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흐른다. 루시우가 말을 꺼낸다: “넌 어때, 이스트우드?”
“응?”
“어떠냐구, 남자친구 있어?”
제시가 재미있어하며, 가볍게 냉소적인 대답으로 받아치려 할 때 통신기가 치직거린다. 레나다. 한창 들떠 있다.
“안녕, 친구들!” 그녀가 말한다. “정보 수집 성공했어!”
“추출 완료.” 겐지의 왜곡된 목소리가 울린다. “기록 복사본을 확보했습니다. 집결 지점으로 가는 중입니다.”
루시우와 맥크리가 시선을 교환한다. “서둘러야겠어,” 전자가 말한다. 후자는 ‘그래,’하고 길게 빼며 대답한다.
“체크포인트에서 만나지.” 맥크리가 통신으로 대답하고, 루시우와 함께 정원으로 출발한다.
둘은 문게이트 앞에서 흰색 제복을 입은 요원 둘과 마주친다. 요원 둘 중 하나는 선명하게 푸른빛을 발하는 은색 인공 팔을 장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날개 달린 바이저를 쓰고 두꺼운 푸른색 방패를 들고 있다. 루시우는 요원들이 입고 있는 재킷에 선명하게 새겨진 로고를 알아보고 급정지한다. 요원들이 다가오자 루시우가 욕을 내뱉는다.
비슈카르다. 맥크리가 의심했던 대로: 자기들 보안 요원을 데리고 온 거다.
“이 구역은 현재 출입금지입니다.” 방패 요원이 말한다. 그의 영어 실력은 매끄럽다. “내일 아침까지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돌아가 주셔야겠습니다.”
맥크리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아, 그냥 지나가는 건데.” 그가 느릿하게 말한다. “우리 차가 저-기 아래 있거든요” -- 그가 요원들 건너편을 아무렇게나 가리킨다 -- “그냥 돌아다니는 중이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빨리 지나갈게요.”
“상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L1층으로 가서 그쪽 길을 쓰십시오.” 은색 팔 요원은 약간 영국 악센트를 쓴다. 그녀는 루시우를 보더니 눈을 찌푸린다. “루청 정원 구역 내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코드 4189에 의해 롤러블레이드, 스케이트보드, 호버보드 등은 금지되어 있 --”
“잠깐.” 방패 요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태도를 공격적으로 바꾼다. “잠깐. 기다려.” 그가 음악 치료사를 향해 걸어간다. “너를 알고 있다.”
루시우가 발끈한다. 그가 헤드셋으로 왼손을 올린다. “그래, 당연히 알고 있겠지.”
“워, 좀 기다려요.” 맥크리의 시선이 빠르게 요원과 치료사 사이를 내달린다. “흥분하지 말고, 친구들 -- 우린 그냥 지나가려는 겁니다.”
“사건 번호 290-A, 리우 데 자네이루, 너구나!” 요원이 방패를 들어올린다.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절도와 공공 기물 파손 혐의로 비슈카르 관할 내에서 수배 중이지!”
통신기 저편에서, 레나가 보고한다. “컨트롤 센터에서 나가고 있어. 앞으로 40초 안에 집결지에 도착해!”
“헬리카, 직원들에게 알려.” 방패 요원이 동료에게 말한다. 그가 맥크리를 본다. “너희 둘은 우리와 같이 가줘야겠다.”
“싫은데.” 맥크리가 끼어들기 전에, 루시우가 벨트 스위치를 올린다. “탈출하자, 이스트우드!” 음악이 곧바로 시작된다. 크로스페이드 수트에서 전자음이 터져나와, 시끄럽게 고막을 울린다. 루시우가 허리춤의 홀스터에서 소리 증폭기를 빼든다. 증폭기 스피커가 밝은 네온 그린 색깔로 빛난다. 음악 치료사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자 요원들은 뒤로 물러서고 -- 야시장 지하 클럽처럼 쿵쿵거리는 소음과 초록색 불꽃놀이 같은 잔상이 남는다 -- 루시우는 문을 지나간다.
요원들로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맥크리가 피스키퍼를 뽑아들고 은색 팔 요원을 겨누는 것 또한 예상치 못했다. 맥크리가 해머를 코킹한다. 요원들이 얼어붙는다.
“좀 실례할게, 친구들.” 그가 뛰쳐나가며 소리를 지른다. “늦으면 안 되는 버스가 있어서 말야.”
요원들이 총을 피해 뒤로 물러서며 이를 악문다. 도망치는 맥크리에게 방패 요원이 바이저에 손가락을 대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프랙터스! 헬리카와 내가 적을 발견했다, 지원군으로 레마와 아트락서스를 보내!”
맥크리는 빠르게 루시우를 따라잡는다. 크로스페이드 수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덕분에 아드레날린 분출이 극에 달했을 때처럼 가볍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다리가 아프거나 지치지도 않는다. 10마일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미안해, man!” 루시우가 텅 빈 정원을 가로지르며 뒤에서 소리친다. “여기 누굴 해치려고 온 것도 아니지만, 잡히려고 온 것도 아니라서!” 그 표정은 두려움이나 공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맥크리는 이 소년이 짜릿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신나기까지 한 것 같다 -- 난생 처음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루시우는 화분을 훌쩍 뛰어넘고 탁 착지해, 매끄럽게 스피드를 올린다. 루시우가 밝게 웃음을 터뜨린다. 맥크리는 거의 씩 웃는다.
임무에서 마지막으로 재미라는 걸 느낀 게 언제였지?
그들이 집결 지점 -- 탑처럼 생긴 지붕의 여행자용 정류장 -- 에 도착하자마자, 트레이서와 겐지가 벽을 넘어 내려온다.
“뒤를 쫓아오는 친구들이 있어,” 맥크리가 거칠게 말한다. “입구에 비슈카르 보안 요원이 있었어. 두 명.”
“비행선은 어디 있습니까?” 겐지가 묻는다.
“2번 게이트 지나서, 동쪽 출구야.”
“흩어져야 합니다. 트레이서와 루시우는 비행선으로 가는 걸 우선하고, 맥크리와 제가 뒤에서 커버하면서 보안 요원을 막도록 하죠.”
머리 위에서 경적이 시끄럽게 울린다. 정류장 지붕 위에 나란히 설치된 스피커들에서 나오는 소리다. 맥크리의 피를 얼어붙게 하는 저음의, 빌어먹을 음조.
“주목하세요,” 컴퓨터 음성이 냉엄하게 울려퍼진다. “실제 상황입니다. 루청 타워 정원 부근에서 테러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모든 요원은 컨트롤 센터 로비 5-A로 보고하세요. 반복합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루청 타워 정원 부근에서 테러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모든 요원은 --”
“가자!” 트레이서가 앞장서서 달려나가며 소리친다. “루시우, 스피드 증폭해줘! 여기서 나가자구.”
음악 치료사가 소리 증폭기 스위치를 올린다. 수트에서 흘러나오는 음량이 크게 부풀어오른다. 루시우와 트레이서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벗어난다. 맥크리는 겐지를 향해 몸을 돌린다. 겐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바로 그 때 총잡이는 뒤쪽 벽을 잘라내는 밝은 푸른색 레이저를 본다.
“겐지! 엎드려!”
쉭 하는 소리가 나고 폭발이 뒤따른다. 겐지는 깜짝 놀란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도망친다. 맥크리는 파열음이 들릴 때까지 레이저 방향으로 세 번 피스키퍼를 쏜다. 흰색 금속 파편이 땅바닥으로 흩어진다: 벽에 터렛이 설치되어 있었던 거다. 겐지가 돌연 소리친다 : ‘맥크리!’
문에서 마주쳤던 요원 두 명이 정류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비슷한 흰색 제복 차림을 한 두 명이 가세해 있었다: 한 명은 커다란 흰색 라이플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휘어진 장검으로 무장했다.
“무릎 꿇어!” 라이플을 든 요원이 총에 달린 레버를 당기며 소리친다. 총신이 은은한 바닷빛으로 빛나며 충전되기 시작한다. “항복하지 않으면 제거하겠다!”
겐지는 동요하는 기색 없이 검을 뽑아든다. “누가 항복할지 한번 보자고.”
라이플이 발사됨과 동시에 검을 든 요원이 앞으로 달려든다. 맥크리는 펄스 탄환을 피해 뒤로 구른다: 겐지가 뛰어오르자 검을 든 요원이 따라서 뛰어올라 공격한다. 겐지는 그녀의 검을 쳐내고, 이어지는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막아낸다. 부딪히는 강철 소리가 찢어지듯 정류장 내부를 울린다.
맥크리는 루시우와 먼 길을 달려오느라 숨이 벅차서, 정원 벽과 정류장 기둥 사이로 엄폐한다. 그는 기둥 옆에서 은색 팔을 가진 요원 헬리카를 조준하고 세 발을 쏜다. 기둥 뒤로 숨을 때 그녀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 놈 잡았고,” 맥크리가 중얼거린다.
라이플 요원이 장전하고 한 발을 더 쏜다. 총알은 맥크리 앞에 있는 벽에 맞아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큰 구멍이 하나 뚫린다.
“장난 아니군,” 재장전하고 있는 맥크리의 머리 위로 수리검이 쉭 날아가자, 그가 숨을 내쉰다.
맥크리는 몇 년간 겐지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 놀라움은 여전하다. 닌자와 칼잡이는 보통 사람이라면 올라갈 엄두도 못 낼 각도의 정류장 벽을 오르내리며 맞붙고 있다. 이 여자 요원은 (프랙터스가 ‘아트락서스’라고 부름) 부츠에 달린 가속기를 이용해 쉽게 겐지의 속도를 따라잡는다. 그녀의 검과 움직임 모두 푸른 잔상을 남긴다. 하지만 아트락서스는 적에게 단 일격도 제대로 먹일 수 없고: 겐지는 자신과 비슷한 빠르기로 움직이는 적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가 없다. 둘은 앞뒤로 부딪히며 푸른색과 녹색의 빛줄기를 남긴다.
덕분에 맥크리는 나머지 두 요원을 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는다. 프랙터스는 방패를 휘둘러 총알 두 발을 튕겨내지만, 오른팔에 세 발째를 맞고 만다. 맥크리는 레마가 자신을 향해 파괴적인 라이플 탄환을 쏘자 잽싸게 굴러 기둥에서 멀어진다. 기둥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정류장 건물이 흔들린다.
“트레이서!” 겐지가 통신기에 대고 외친다. 그는 아트락서스를 끌고 정류장을 나와 근처 찻집 지붕 위에서 교전하고 있다. “비행선에 도착했습니까?”
트레이서가 대답한다. “거의 다 왔어! 그쪽은 어때?”
“아주 귀찮게 됐어!” 맥크리가 재장전하면서, 다른 기둥을 지나치며 대답한다. “겐지, 일단 탈출하자!”
그가 모퉁이를 돌자 프랙터스의 널찍한 푸른색 방패가 막아선다.
“으아아!”
프랙터스가 고함치며 돌진하자 맥크리는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총을 갈겼지만 전부 방패에 막힌다. 충돌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눈이 회복되기 직전에 직감이 발동한다. 맥크리는 프랙터스가 방패를 들어올리자마자 벨트에서 섬광탄을 잡아빼 던진다. 프랙터스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치고: 맥크리는 피스키퍼를 들고 놈의 가슴에다 총알 여섯 발을 전부 쏴박는다. 말끔한 흰색 벽에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두 놈 잡았고,” 맥크리가 말한다. 그가 코에 튄 핏방울을 닦아낸다.
맥크리가 방패를 집어들고 돌아서자 레마와 그의 라이플이 보인다.
“아, 또 저거야.”
총신이 빛난다. 레마가 조준한다.
“제기랄!”
맥크리는 방패를 들어올리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레마가 방아쇠를 당긴다. 맥크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숙일 시간밖에 없었다. 그리고 --
쾅!
맥크리는 폭발음이 들리자 방패 아래로 급히 몸을 숨긴다. 화살 한 발이 머리 위를 지나쳐 근처 벽을 밝게 비춘다. 맥크리는 레마가 라이플을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고, 잔디밭에 천천히 얼굴부터 쓰러지는 걸 본다.
“도대체 뭐야?” 맥크리가 소리친다. 그는 일어서서, 방패를 간신히 이끌고, 비틀거리며 전진한다. 레마는 연기를 뿜고 있는 라이플 위로 쓰러져 있다.
그 때 눈에 들어오는 건 : 곧고 하얀 선. 길고, 창백하고, 바늘처럼 빛나는.
화살이 레마의 검은 머리를 뚫고 뒤통수에서 튀어나와 있다.
맥크리의 심장 박동이 천둥치듯 귀에서 울린다. 목이 바짝 탄다. 아주 잠깐 동안, 숨조차 쉴 수 없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오르며 네 개의 단어가 입술 밖으로 새어나온다.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한 놈 더 있어!” 맥크리가 통신기로 말한다. “높은 곳에! 궁수다!”
정원 건너편에서, 아트락서스를 따돌리려 빠르게 내달리고 있던 겐지는, 맥크리의 통신을 듣고 거의 속도가 꺾인다.
“한조.” 그가 중얼거리는 동안 아트락서스가 검을 들고 접근한다.
겐지가 구른다. 그는 찻집 지붕에서 떨어져 나와 잔디밭 위에 착지하고, 재빠르게 도망치려 한다. 아트락서스가 그 위로 떨어져 목에 검을 겨눈다. 겐지가 화살 소리를 알아차리자마자 나무로 된 찻집 벽에 화살이 꽂힌다: 아트락서스는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비틀거린다. 겐지가 검을 뽑아들고 배후를 공격한다. 부츠에 달린 가속기 하나가 부서지고 방전된다.
“깁스 프로토콜 개시해!” 아트락서스가 이를 악물고 소리친다. “누구 없어 -- 아무나 !”
겐지가 그녀를 걷어차 조용히 시킨다. 아트락서스는 굴러서 도망치려 하지만, 이제 사이보그가 더 빠르다. 그는 휘어진 녹색 검을 휘둘러 그녀를 끝장내 버린다.
“네 명 다 잡았군.” 맥크리가 방패를 들고 접근하며, 입모양으로 중얼거린다. 겐지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눈을 들고 위쪽을 살피고 있다.
정류장 지붕 위에서 그림자가 움직인다. 맥크리와 겐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 그는 거기 있다.
한조는 날렵하게 두 번 점프해 정원 다리에 착지한다. 탑처럼 생긴 정류장 지붕 위에서 벽으로 뛰어내리고, 그 다음에는 벽에서 땅으로. 화살이 시위에 걸려 있지만, 줄은 당겨진 상태가 아니다. 한조는 빠르고 신중하게 걸음을 내딛어 다리 끝까지 이동한다. 그가 활을 들어올리고 천천히 잔디밭으로 들어온다. 정류장 불빛이 그 얼굴을 비춘다.
그는 작다. 그게 제시의 첫인상이다: 그가 얼마나 작은지, 전경에서 봤을 때 얼마나 키가 작은지. 겐지보다 많이 커 보이지 않는다. 맥크리는 한조가 언제든지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다급하게 훑어본다. 검은 머리카락, 잔인해 보이는 눈썹, 사악한 입매, 강렬한 목선. 어깨가 넓고, 다부지고 유연하다. 기사 사진에서 본 젊은 남자는 더 이상 없지만, 차갑고 엄중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검은 눈 근처에는 옅게 주름이 져 있고, 관자놀이 옆에는 회색 머리카락이 나 있다. 용 문신의 머리 부분이 손목을, 기다란 몸통이 노출된 왼팔을 휘감고 있다.
한조가 둘을 향해 소리 없이 걸어온다. 흐르는 듯한, 우아한 기계 같은 움직임: 굳건하고, 정확하고, 망설임 없는 발걸음. 맥크리는 그렇게 치명적인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해낼 수 없다.
화살 같군, 그가 생각한다. 이 남자는 무기다.
“형.” 겐지가 말한다.
“안녕하신가,” 맥크리는 공격적으로 인사한다.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노려보기만 한다.
맥크리의 시선은 겐지와 그 형 사이를 왕복한다. 머리 위에서, 스피커가 꺼지는 소리가 난다. 맥크리는 정적 때문에 불안해진다. 연기 냄새, 피비린내, 라이플의 오존 냄새가 나고, 겐지의 통풍구가 과열돼 증기가 나오는 것도 보인다. 하지만 정원에 흐르는 정적은 숨이 막힐 만큼 고압적이다.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똑똑한 --
“친구들.” 맥크리가 입을 연다. “이 순간을 망치기 싫지만, 빨리 여길 나가야--”
한조가 활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쏜다. 화살은 맥크리의 왼쪽 뺨을 스치고 지나가 뒤쪽에 있던 정류장 건물 벽에 꽂힌다. 맥크리가 비명을 지른다. 그는 오른쪽으로 몸을 숙이며, 방패 뒤에 숨는다.
“이제 그만해, 형!” 겐지가 앞으로 나선다. “공격을 멈춰. 지금은 때가 아냐.”
한조는 이미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가 날카롭게 동생을 째려보고 한 걸음 물러난다. 맥크리는 방패 뒤에 숨어서, 경계하듯 궁수를 쏘아본다.
분노를 뚫고 엄습하는 첫 번째 깨달음 : 위협 사격치고는, 굉장히 얼굴에 가까웠다.
“화살을 낭비하지 마.” 겐지가 말한다. “우린 임무 중이야. 지원하러 온 거라면--”
“그래, 망할 화살 낭비하지 말라고!” 맥크리가 겐지의 말을 자르고 외친다. 그가 방패 뒤에서 고개를 내민다. “자, 여기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이런 데서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
“조용히 해라.” 한조가 고함친다. 또 날아올지도 모르는 화살을 피해, 맥크리는 다시 방패 뒤로 숨는다. 동시에 약간은, 궁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담긴 증오를 피하기 위해서.
두 번째 깨달음 : 한조의 목소리는 강렬하다. 그 차갑고 고압적인 시선만큼.
“너희를 지원하러 온 게 아니다.” 한조가 말한다. “너희가 여기 왜 왔는지는 내 알 바 아냐.”
“답을 원하잖아, 한조.” 겐지가 간결하게 대답한다. “구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냐.”
맥크리가 발끈하며 덧붙인다: “맞아, 지금은 진짜 이럴 때가 아니라고.”
“우릴 지원하러 온 게 아니라면 --” 겐지가 입을 뗀다.
“우루사이! ” 한조가 둘에게 소리친다. 겐지보다는 맥크리를 향해. 맥크리는 일본어를 많이 알진 못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아듣는다: 입 다물라.
깨달음 세 번째 : 몸 왼쪽을 거의 벗고 다녀도 안전한 곳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나?
총잡이는 한계에 달했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통신기가 치직거리며 켜진다. “활주하고 있어!” 트레이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친다. “이륙할 준비 끝났어, 친구들, 너희 둘만 오면 돼!”
“우린 가겠어.” 겐지가 찻집 지붕 위로 뛰어오른다. 그의 형은 빙글 돌아서서 동생이 벽을 타고 올라 문게이트를 뛰어넘는 걸 쳐다본다. 맥크리는 한조가 동생을 쫓아 뛰어오르는 걸 보고 놀라지 않는다. 신경이 조금만 덜 곤두서 있었다면,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보고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거의 죽일 뻔한 남자를 보고 감탄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그거지.
맥크리가 시마다 형제를 따라 동쪽 문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거의 비틀거리며 사자 조각상 뒤로 몸을 숙인다. 땅의 진동은 규칙적으로 쿵쿵거리는 소리로 변한다. 맥크리는 레이저가 충전되는 소리를 알아차린다.
겐지의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로 들려온다 : “뭔가 거대한 것이 타워에서 동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맥크리는 석상 너머를 응시한다. “난 이럴 때가 진짜 싫어.”
세 번 더 쿵쿵거린다. 겐지가 다시 말한다. “옴닉입니다!”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반구형 옴닉이 -- 동물의 그것처럼 생긴 매끄러운 다리로 느리게 움직이며 -- 건물 근처로 다가온다. 둥근 외장이 하얗게 빛난다. 머리 부분 측면에는, 기다란 패널 두 개가 비슈카르 바이저에 달린 날개처럼 달려 있다. 4개의 포탑 팔이 윙윙거리며 위치를 조정하고, 맥크리를 직격으로 조준한다.
“깁스 프로토콜 온라인.” 삑 소리가 나고, 포탑들이 붉게 빛난다.
레마의 라이플보다 충전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렇겐 안 될 걸, 친구!” 맥크리가 발사되는 레이저를 피해 구르며 소리친다. 조각상이 폭발과 함께 증발해 버린다. 맥크리는 골목을 돌아 통신기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헐떡인다. “세상이 무너져도 저건 나 혼자 못 해치우겠는데!”
“로프 걸고 올라타 버려, 이스트우드!” 루시우가 응원한다. “너보다 덩치가 크면, 올라타서 로데오를 해!”
농담? 이런 상황에? “루시우, 너 진짜 패 버린다.” 맥크리는 숨가쁘게 달리며, 기침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옴닉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트레이서가 대답한다. “곧 이륙할 거야, 맥크리, 창문이 곧 닫혀!”
맥크리는 자신을 쫓아오는 옴닉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좀 힘들 것 같은데!”
“Alright, 이스트우드, 지금 어딨어?” 다시 루시우다. “내가 데리러 나갈게!”
“거기 있어, 내가 해결할게.” 맥크리가 가쁜 숨을 내뱉는다. 마음 속으로, 지금 상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옴닉을 피해 네 블록을 도망가자 인적 없는 거리가 나타난다. 가로등 몇 개는 꺼져 있다: 맥크리는 또 한 번의 레이저 공격을 피해 뒷골목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건물들이 전부 버려진 것 같다는 것만을 알아차린다. 그런 걸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옴닉은 빠르게 추격해왔고, 그는 속도를 늦출 수 없다.
맥크리가 지치자 행운도 그를 떠난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으로 꺾자 -- 막다른 길이 나타난다. 어두운 골목 끝은 건물 3층 높이의 절벽으로 이어져 있다. 아래쪽은 고속도로다. 맥크리가 급정지하자 박차가 짤강거린다. 그는 휙 돌아서지만, 갇혔다. 도망칠 길은 아래쪽밖에 없다.
옴닉이 골목에서 철커덕거리며 나타나자 절망으로 가슴이 철렁인다.
“겐지!” 맥크리가 통신기에 대고 소리친다. “어딨어, 젠장, 나 지금 튀겨지기 직전이야!”
“그쪽이 보입니다!” 사이보그가 미친 듯 소리친다. “조금만 버텨요, 맥크리!”
구석에 몰린 먹잇감을 발견하고, 옴닉이 빠르게 다가온다. 맥크리는 피스키퍼를 들고 쏜다. 하나, 둘 -- 그리고, 절망적으로 나머지를 쏟아붓는다. 셋, 넷, 다섯, 여섯. 총알은 옴닉의 외장에 맞고 돌멩이처럼 무력하게 튕겨나온다. 맥크리는 재장전하려 탄약 벨트에 손을 뻗었지만, 비어 있다: 정신없이 달리는 사이에 바늘땀이 끊어져서 마지막 남은 총알을 다 떨어뜨렸나 보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는 섬광탄을 던진다 -- 그리고 하나 더. 그게 마지막이다.
“먹어라, 젠장, 이 개 같은--”
아무 효과도 없다. 긁힌 자국조차 없다. 옴닉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 정지한다.
겐지가 소리친다. “맥크리! 다 와 갑니다!”
포탑이 붉은색으로 충전되기 시작한다.
맥크리는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닫는다. 가슴이 욱신거린다. 이게 끝일지도 모르겠군 : 밤거리의 어두운 골목 끝, 포탑의 진홍색 불빛, 끔찍한 마지막 폭발. 맥크리는 기이하고 끔찍한 슬픔이 맥박치는 걸 느낀다 -- 거의 공포만큼이나 놀라운 아픔이다. 옴닉에게 한 방 먹고, 재로 변하겠지. 맥크리는 붉은 빛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지옥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운이 안 좋았어, 카우보이. 공포로 굳어버린 의식 뒤편에서 목소리가 한숨을 쉬고, 그는 자신이 죽기 직전이라는 걸 안다.
“맞아요, 아나.” 모든 게 끝나기 직전에, 그가 나직이 말한다.
밤하늘이 돌연 빛으로 폭발한다. 맥크리가 지금까지 본 그 어느 것보다 더 밝게. 야성의 장대한 빛이 달려오며 아가리를 벌리고 검은 거리를 집어삼킨다. 그것은 목구멍처럼 열려 옴닉을 집어삼키고 통째로 먹어치운다. 포탑은 재로 변하고, 외장은 산산조각나고, 옴닉의 매끄러운 다리는 갈가리 찢겨 바스러진다.
아니, 입이 맞다. 두 마리가, 엄니를 세우고 입을 쩍 벌리며, 턱을 뻗는다. 그리고 우렁차게 울부짖는다 -- 하늘 저편에서 나타나며 포효한다.
세상에, 저건 무슨 한 쌍의 --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온 세상이 귀가 먹먹해지는 천상의 소음으로 가득해져, 맥크리는 무릎을 꿇는다. 별이 보이고 천둥 소리가 들린다. 맥크리는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떨려 이를 악문다. 그는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수그리고 앉은 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 -- 목소리들도, 유령들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의 정신은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열린다. 열린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분노가 들어온다.
바람이 들어온다.
떨림과 함께, 모든 게 끝난다. 빛이 옅어지고: 포효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로 잦아든다. 용들은 여린 안개 한 줄기로 사라진다.
맥크리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가 비틀거리며 땅에서 일어선다. 용들이 사라지자 주변 세상은 다시 소용돌이치며 밤으로 돌아온다. 맥크리는 숨을 들이마신다. 턱이 떨어져내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방금 본 걸 믿을 수 없다.
옴닉은 사라졌다. 조각조각 부서졌다. 거리에는 온통 옴닉의 외장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맥크리는 가슴을 움켜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 있다. 가느다랗고 작은 신호음이 귀를 울린다. 그는 손을 올려 귀에서 통신기를 잡아빼 버린다.
맥크리는 한조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 움직임을 보자마자 피스키퍼를 궁수의 머리로 조준한다. 한조는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지만, 줄을 당기지는 않는다.
궁수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맥크리는 그 모든 걸 감당하기 힘들었다.
“무기를 낮춰.” 한조가 내뱉는다.
“방금 그게 도대체 뭐야?” 제시가 이를 악물고 말한다.
“그 - 무기를 - 낮춰라.” 한조가 거의 위협하듯, 반복한다.
제시는 가슴이 들썩이도록 거칠게 호흡한다. “네가 한 거야?” 그가 피스키퍼의 총신을 망가진 옴닉을 향해 돌린다. “지금 이걸 -- 네가 한 거냐고?”
이제 한조는 총잡이 주변을 거닐며, 노려본다. “섬광탄을 다 썼고, 탄환도 떨어졌지. 네가 달리는 걸 봤다. 네겐 아무것도 없어.” 그는 턱을 위로 치켜든다. “무기를 낮춰라, 망신당하기 전에.”
천천히 제시가 오른팔을 떨군다.
“네가 했어,” 제시가 숨을 헐떡이며 쏘아붙인다. “방금 그거, 네가 한 거지. 그 빛하고 푸른색.”
“그래.”
“그것들은 --”
“용이다.”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는 불쾌감 비슷한 무언가를 띤 눈으로 총잡이를 면밀히 뜯어본다. “용의 분노에서 살아남았군.”
제시는 웃어야 할지 신음해야 할지 모른다. 목구멍에서 나온 소리는 그 두 가지가 섞인 것처럼 들린다. “그- 런가 본데?”
“넌 내 아군이 아니다.” 한조가 말한다. “넌 살아있으면 안 돼. 시마다 가문과 그 아군 이외에는 누구도 용의 힘을 마주하고 살아남아서 입을 놀리지 못했다.”
총잡이가 발끈한다. “아, 그럼 날 죽이려고 했다는 거네.”
한조가 조소했다. “지금까지 수 천 번도 넘게 그럴 기회가 있었지.”
제시는 냉소적이다. “적당한 때가 오길 기다렸나 보지.”
“하.” 한조가 내뱉는다. “내가 여기 오기 위해 뭘 참아야 했는지 넌 아무것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아직 죽지는 않았어.”
“운이었겠지.” 한조가 받아친다. “용은 가치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분명히 둘 중 하나일 거다. 네놈이 보이는 것보다 강하거나, 아니면 네가 누릴 자격이 없는 행운의 축복을 받았거나.”
“뭐, 내가 강해 보이지 않는다고?” 제시가 거의 도전받은 것처럼 말한다.
한조가 코웃음친다. “넌 --”
제시가 기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비유적인 질문이었어, 대답하지 말자고, 고마워.”
“감사 인사는 됐다.”
제시는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두개골이 머릿가죽에서 떨어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나 지금 비꼬는 거거든.”
“나도 비꼬는 게 뭔지는 안다.”
“네가 그렇게 친절하지(friendly) 않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나?”
한조의 얼굴에 미약한 불쾌감이 스친다. “우린 친구(friend)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삭하게 튀겨지지 않게 막아주고 나면, 최소한 악수라는 걸 하거든.”
한조가 코웃음친다. “방금 전까지 한창 전투 중이었는데. 내가 왜 너와 악수를 해야 하지?”
“신경쓰지 마,” 제시가 총을 홀스터에 꽂아넣으며 중얼거린다. 그가 벨트를 끌어올리고 모자를 바로잡는다. “You know, 그냥 말도 하지 말 걸 그랬어. 로빈 후드 짓이나 하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최고야.”
이제 한조가 비웃을 차례다: 그가 그 별명을 듣고 코를 찌푸린다. “바보 같군.”
“칭찬 고맙네, 친구.”
“칭찬하는 게 아니다.”
“그럼 날 쏘던지.”
“너 같은” -- 한조가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고심한다 -- “배은망덕한 녀석한테는 화살을 더 낭비하지 않을 거다.”
“어찌됐건,” 제시가 심드렁하게, 길게 빼며 말한다. “자, ³⁾사지타리우스. 도와준 거 고마워. 네가 챔피언이야, 그건 확실하네.” 그가 서라피를 바로잡고, 어깨에서 먼지를 털어낸다. “내 목숨 구해줘서 고맙고, 용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 재미 보고. 잘 살아. 난 시간 맞춰 가야 해서, 이 난리법석은 그만둬야겠어.”
³⁾궁수로 상징되는 별자리
그가 걸음을 떼려 할 때 한조가 말한다. “잠깐.”
제시는 으르렁거리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만 했다. “뭔데.”
궁수가 최대한 곧게 몸을 펴고, 제시와 마주보고 선다. 아주 잠깐 동안, 제시는 그의 차갑고 매정한 눈 안에 극히 미량의 경멸감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보라 할지언정, 용에게서 살아남았다는 건 인정받을 만한 업적이다. 운이 좋았건 아니건, 네 안에 용의 심판을 견뎌낼 만큼 강한 무언가가 있었나 보군.”
한조가 그를 향해 다가오자 맥크리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한조는 아주 약간만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의 시선은 총잡이의 얼굴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 제시는 자신이 사실 살아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 사실 자신은 죽었고, 이건 무슨 사후에 보는 이상한 환상이라는 생각. 그는 한조를 내려다보며 그 순간이 영원 같다고 생각한다.
깨달음 네 번째 : 이 남자는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와도 같지 않다.
“시마다 한조.” 궁수가 말한다. 자기 소개 치고는, 친근함 없는 목소리다.
“제시 맥크리.” 그가 모자를 기울이며 대답한다. 반사적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동작이다.
한조가 혼란스러운 듯 눈썹을 찌푸린다. “맥-크리?”
“그래. 맥크리.”
“맥크리.” 한조가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린다. “흠.”
사후 환상이라고, 제시가 머리를 흔들며 확신한다. “그래, 어, 스코틀랜드.” -- 그가 마른 침을 삼킨다 -- “음, 스코틀랜드 이름이야.”
“스코틀랜드.” 한조는 아직 인상을 쓰고 있다. 그가 일본어로 뭔가 낮게 중얼거린다. 맥크리는 중간에 ‘카우보이’와 ‘텍사스’라는 단어를 들었다고 확신한다.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가 한 손을 든다.
“좋아, 그럼, 난 이제 내 갈 길을 가야 --”
“이스트-우우우우우드! 내가 왔어!”
익숙한 목소리가 골목 저편에서 울리고, 그 소리를 네온 그린 색 빛줄기가 쫓아온다.
맥크리는 그날 밤 이후로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나서도 이 날을 돌이켜볼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할 거다 : 모든 말, 모든 행동, 모든 측면들을. 뭔가를 다르게 했다면 어땠을지 -- 그렇게 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또 어떤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지.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서 영화 장면처럼 흘러갈 터였다. 그리고 항상 같은 결론에 다다르겠지.
한조와 함께 있으면, 모든 일이 아주 느리거나 아니면 빌어먹도록 빠르게 일어난다.
루시우가 코너를 돌아 스케이트로 벽을 타고 -- 벽 옆이 아니라, 벽 위를 달려서 -- 도착했을 때, 옴닉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옴닉의 잔해도 파편도 길거리에 널려 있는 외장 조각들도 보지 못한다. 루시우는 위쪽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인 겐지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한조가 돌아서서 활을 겨누는 모습만을 본다. 그리고 맥크리가 피스키퍼를 집어넣은 채 손을 들고 있는 모습도. 화살은 시위에 매겨져 있고, 줄은 뒤로 당겨져 있다. 맥크리는 소리치기 직전이고 -- 활과 -- 화살. 팽팽하고 창백한 줄.
아주 느리거나 너무 빠르게. 이번엔, 후자다.
“멈춰!” 맥크리가 소리친다.
“물러서!” 루시우가 증폭기의 방아쇠를 당기며 외친다.
음파가 한조의 가슴을 정확히 때린다. 화살은 하늘로 향한다: 한조는 맥크리에게로 똑바로 날아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맥크리는 부딪힌 충격 때문에 숨이 턱 막힌다.
곤두박질치며 추락하는 동안, 달이 호를 그리며 하늘 위에서 흔들린다.
건물 3층 높이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내장이 관성에 의해 위로 쏠린다.
그리고 의식을 잃기 직전, 얻어맞듯 들이닥치는 다섯 번째 깨달음. 달과, 화살과, 금방이라도 닥칠 충돌에 대한 생각들을 뒤덮는 자각. 사실 몇 초 지나지 않아 땅에 부딪힐 게 분명하다 -- 언제라도, 중력에 의해. 그러나 신성한 깨달음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얼굴 위로 펄럭이며, 추락하며 거칠게 휘날리는. 물고기 꼬리처럼 뺨을 가로지르는.
깨달음 다섯 번째 : 그의 머리끈은 흰색이 아니다. 금색이다.
[역주]
¹⁾클린트 이스트우드 : ‘무법자’ 시리즈에서 카우보이를 연기한 전설적인 배우.
²⁾이름 없는 남자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무법자' 3부작의 주인공.
³⁾사지타리우스 : 궁수로 상징되는 별자리.
챕터4
Hang the Fool - Chapter 4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367422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여기, 들어올리세요 -- 다리 조심해요. 잘 잡았습니까?”
“잡았어, 잡았어, 너 진짜 잘한다, 겐지. 살살 내려놓자.”
“다리를 조심해요. 다쳤습니다.”
음악 소리에 정신이 든다. 속삭이듯이 희미하게 울리며, 귓가에서 쿵쿵거리는 비트. 주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들. 천천히 환해지는 빛에 의식이 돌아오면서 느끼는 건, 부드럽고 시원한 감촉이다.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 ¹⁾바이탈 -- 체크, 바이탈 문제 없어 -- 바이탈 문제 없어, 겐지 형은 괜찮아. 오케이, 맥크리, 나한테 맥크리 데려다줘. 이스트우드의 바이탈도 괜찮아 --”
“루시우, 괜찮아? 상황 통제 가능해?”
“괜찮아. 괜찮아, 레나. 괜찮아. 잘 하고 있어 --”
“딱 좋네, 이제 이륙할 거거든. 계기판은 문제 없으니까, 출발할게. 모두 자리에 앉아서 안전띠 매.”
“알겠어. 겐지, 네 형 안전띠 매는 것 좀 도와줘.”
“잠깐. 루시우, 보십시오. 맥크리가 --”
눈을 뜨자 초점이 맺히며 흐릿한 색상들이 형태를 이뤄나간다. 그는 눈을 깜빡인다: 몸이 앞으로 흔들려 턱이 세라피 깃 부분에 닿는다. 주변은 밝고 따뜻하다. 숨을 들이마시자 약간 거슬리는 오존 냄새가 난다. 필터에 여과된 공기다. 비행선 안에 있는 게 분명하다.
맥크리는 의자 머리 부분 쿠션에 뒤통수를 부딪히고는 모자가 없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루시우와 겐지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한 걸음 물러난다. 겐지는 맥크리의 옆자리 의자를 거의 보호하듯이 꽉 붙잡는다.
“워, 워, 이스트우드,” 루시우가 총잡이를 진정시키듯 손을 내젓는다. 맥크리는 금색 빛을 발하고 있는 크로스페이드 수트를 알아차린다. “괜찮아, 너 무사해. 다 괜찮아. 안전해. 트레이서가 비행선을 운전하고 있어. 여기서 나갈 거야.”
안구 뒤편에서 고통이 밀려온다. 맥크리는 앞으로 휘청인다. “도대체 빌어먹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비행선이 이륙한다. 맥크리는 몸이 쏠려 자신이 매여앉아 있는 의자 손잡이를 붙잡는다: 루시우는 깜짝 놀라서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가까운 난간을 잡는다.
“꽉 잡아, 친구들!” 레나의 목소리가 기내 통신으로 울린다. “5초 안에 리장을 벗어날 거야, 3만 피트 높이까지 올라가면 마하 2로 비행할게!”
겐지가 맥크리 옆으로 몸을 숙인다. 맥크리는 욱신거리는 두통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 눈을 찌푸린다.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걸 알아차린 게 그때다.
한조다. 의식이 없다. 이륙할 때 흔들린 건지, 머리를 왼쪽 어깨 위로 떨군 채 축 늘어져 있다. 금색 머리끈이 이마를 지나 뺨 위로 늘어뜨려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맥크리가 반복한다. 그리고, 낮게 신음하며 : “내 모자.”
“모자 내가 챙겼어, man.” 루시우가 등을 펴며 말했다. “나한테 있어, 너 물건들도 다 챙겨왔고.” 그가 맥크리를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망쳤어, man, 내가 다 망쳐버렸어. 겐지 형이 널 공격하거나 뭐 그러는 줄 알았어. 난 완전히, 그 뭐야, 자기방어 모드였다니까. 그래서 음파로 밀쳐냈는데, 조준이 안 좋았어, 그래서 너희 둘이 벼랑 끝에서 떨어졌고.”
맥크리는 곧바로 어두운 거리와, 옴닉과, 분노한 푸른 용들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울음소리를 기억해낸다. 용 : 진짜, 신에게-맹세컨대-진짜 용. 라인하르트가 항상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 날개 달리고 불 뿜고 옛날 얘기 속 기사와 싸우는 -- 그런 종류가 아닌, 맹렬하게 천공의 폭풍처럼 서로 뒤얽히는 용들.
그리고 궁수와 그 위협적인 눈매. 그 날카롭고 딱딱한 말 : 바보 같군. 제시 자신의 도발 : 그럼 날 쏘던지. 으르렁거리고, 노려보던 것. 그리고 궁수가 제시에게 몸을 굽혀 인사하고 이름을 말해주던 방식. 서로를 경계하며 서성이다 갑자기 통성명하는 게, 거의 채찍질처럼 느껴졌던 것.
그 남자의 주의를 끌면서,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도발하고, 농담을 하면서? 용이 폭풍우치는 동안 그냥 걸어가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겐지가 딱 맞춰서 도착했어.” 루시우가 계속한다. “땅에 부딪히기 직전에. 공중에서 너희 둘을 낚아챘어, 엄청났다구. 난 스케이트로 건물 타고 내려가서 너희들 들고 여기까지 옮기는 걸 도와줬지.” 이제 루시우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도, 진짜 미안해, 이스트우드, 내가 너무 성급했어. 겐지가 없었더라면” -- 루시우가 면목없어하며 고개를 숙인다 -- “정말, man, Maaan. 겐지가 없었다면...”
겐지가 고개를 기울인다. “아마 죽었겠죠.”
루시우가 눈을 굴리며 혀를 찬다. “아 쫌, man! 지금도 충분히 마음 안 좋으니까 자꾸 생각나게 하지 마.”
“한조는 어떻게 된 거야?” 맥크리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묻는다. “괜찮은 거야?”
겐지가 턱을 숙인다. "보통은 공중에서 목표물을 하나 잡으면, 문제 없이 착지할 수 있습니다만. 두 개는 약간 어렵습니다. 전..." --그가 망설이며 말한다. "-- 실수를 했습니다. 착지에 집중하느라." 녹색 바이저가 눈썹을 치켜들고 있는 맥크리를 향한다. 겐지가 다시 멈칫한다. "형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다 괜찮아," 루시우가 끼어든다.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아. 게다가," 그가 수트의 스위치를 누른다. "내가 그 의사 선생님이 주문한 걸 갖고 왔거든."
부드럽게 음악이 바뀐다.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비트가 스피커에서 볼륨을 높이며 흘러나온다. 맥크리는 뒷목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그는 두통이 가라앉는 걸 느끼며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신다.
한조는 움직이지 않는다. 비행선이 갑자기 덜컹거리며 음속의 장벽을 넘어 가속할 때도, 레나의 목소리가 기내 통신으로 울려퍼질 때도.
"위험 구역으로" -- 그녀가 웃어댄다 -- "진-입-중!"
"다시 싸움 속에 뛰어들게 되어 즐거워하는 걸 보니 좋군요." 겐지가 약간 냉소적으로 한숨을 쉰다.
맥크리가 머리 받침대에 뒤로 기댄다. 의자에 힘없이 걸려 있는 한조의 왼쪽 다리로 시선이 떨어진다. 금속 판이 발가락에서 무릎까지를 감싸고 있다. 바지에는 (맥크리는 그것을 지칭하는 'h'로 시작하는 일본어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금색 조개껍질 모양 무늬가 있다.
겐지가 작게 말한다 : "더 일찍 도착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맥크리."
"아냐," 제시가 내뱉는다. 그는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최선을 다했잖아,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야."
"형이 그곳에 없었다면, 당신을 잃을 수도 있었겠죠."
맥크리의 시선이 겐지의 바이저 쪽으로 튀어오른다. "그 용들," 그가 내뱉는다. 냉기가 등골을 타고 오른다.
"그렇습니다." 겐지의 통풍구가 찰칵 열리며 윙윙거린다. "용은 시마다 일족이 다루는 고대의 힘입니다. 형과 저는 그 힘을 불러내 빌려 쓸 수 있죠. 그 대가로 큰 정신력과 힘을 소모해야 하지만." 그의 바이저가 의식 없는 한조를 향한다. "형 입장에서 보면, 그 옴닉을 파괴하기 위해 용을 불러낸 건 큰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뭐, 시마다 가문의 아군이 아니면 모두 다 죽이는 거라고 들었는데." 맥크리는 목소리에서 짜증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 망할 것을 치워버리려고 사용했고, 내가 그놈들의 간식거리가 되든 말든 신경도 안 쓴 것 같아."
"당신은 제 아군이잖습니까." 겐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전 아직도 이름과 혈통 모두 시마다입니다. 세상에," 겐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도 형은 제가 죽었고, 자기가 시마다 가문의 마지막 후예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군요."
맥크리가 인상을 찌푸린다. "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그렇게 좋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조는 복잡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시마다로서 키워졌기 때문에 그렇게 됐죠."
"10년은 만나지 못했다고 했잖아. 아직도 그 녀석 속내를 안다고 확신해?"
겐지가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반대편 벽에 기댄다. "한조도 저에 대해 같은 의문을 가졌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기내 통신이 울린다. "기장 방송이야, 친구들. 최고 높이 19000미터에서 마하 3으로 신속하게 운행중. 감시 기지까지 2시간 반 정도 남았어. 유럽 중부 시간 기준으로 1900시 도착 예정. 그쪽은 어때?"
"맥크리가 일어났어." 루시우가 프로젝터 테이블 옆자리에서 외친다. "한조는 아직이야. 얼굴에 음파 맞아서 잠깐 기절했나 봐." 그는 스케이트를 벗고, 개구리 무늬가 있는 네온 그린 색 양말을 드러내고 있다.
"강한 전사라 해도 용을 소환하는 건 굉장히 힘이 드는 일입니다." 겐지가 덧붙인다. "형이 몇 시간 동안 기절해 있는다고 해도 전 놀라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너도 용을 소환할 수 있어?" 맥크리가 다시 한조의 금속 발목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며 묻는다.
겐지가 ‘헤’하고 기계음으로 웃는다. "한 마리뿐이지만요. 관심 있으시다면 언젠가 소개해 드리죠."
맥크리는 눈을 감는다. 냉기가 또 한 번 등골을 타고 춤추듯 올라간다. 폭풍치는 심장처럼 공기를 뒤흔들던 두 개의 입이 떠오른다. 그 이빨, 그 ²⁾초신성 같은 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도록,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포효. 맥크리는 침을 꿀꺽 삼킨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친구. 지금은 '아니 됐어'라고 말하는 쪽에 더 마음이 가네."
"알겠습니다." 맥크리는 겐지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목소리 톤으로 봐서 지금쯤 씩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용을 약간 무서워하는 게 당신이 처음은 아닙니다."
---
윈스턴, 앙겔라와 라인하르트가 비행선 착륙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트레이서는 윈스턴과 함께 비슈카르 데이터 암호를 해제하러 간다. 앙겔라는 아직 의식이 없는 한조를 치료소로 데려간다. 겐지, 맥크리와 라인하르트가 그 뒤를 따른다.
“허벅지와 무릎에 타박상을 입었네요,” 앙겔라가 진찰 결과를 알려준다. “부러진 뼈는 없습니다. 슬개골 주변이 심하게 부어오를 거에요. 의족에 영향이 갈 수 있겠지만,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할 거에요.”
“선생님의 판단을 믿습니다.” 겐지가 말한다. 맥크리는 그의 목소리에 거의 애정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메르시는 목소리도 표정도 침울해 보인다. “겐지, 이게 현명한 행동일까요? 여기로 이 남자를 데려오는 게?”
“형이 환영받지 못하는 건가요?” 겐지가 묻는다.
“아니에요,” 앙겔라가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 그녀가 라인하르트와 맥크리에게 경계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말을 멈추고서, 사이보그에게로 돌아선다 -- “당신이 괜찮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뿐이에요.”
“괜찮습니다.” 겐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화합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형의 부상이 치료되는 걸 지켜보고 안전한 곳에 있게 하는 게 제 의무입니다. 아직도 어떤 적들이 형을 쫓고 있을지 모릅니다.”
메르시가 인상을 찌푸린다. “확실하다면.”
“잠깐만.” 맥크리가 양손을 들어올린다. “뭔가 좀 이상한데.” 나머지 세 명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는 맥크리를 쳐다본다. “지금 여기서 나만 좀 소외된 기분이 드는 건 아니잖아.”
라인하르트가 머리를 긁는다. “무슨 말인가?”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게 있잖아요,” 맥크리가 계속한다. “한조에 대한 것. 아무도 말을 안 해주잖아요. 내가 화살 맞고 나서부터 계속.” 그가 겐지를 본다. “진지하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짜 화해를 한 거야, 아니면 아직도 무슨” -- 그는 손을 위아래로 휘젓는다 -- “이상하고 거대한 닌자 암살자 문제가 진행중인가…”
메르시가 한숨을 쉰다. “제시,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네요.”
그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다. 맥크리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달아오른 얼굴로 메르시에게 돌아선다. “아, 그 개소리 좀 집어치워요, 앙겔라. 도대체 언제 때가 되는 겁니까?”
앙겔라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다. “제시!”
하지만 맥크리의 분노는 커져가기만 한다. “도대체 무슨 망할 일이 일어났는지, 당신이 뭘 계속 숨기고 있는 건지, 나와 다른 사람들 전부한테 비밀로 하고 있는 그 빌어먹을 게 뭔지” -- 라인하르트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자 맥크리가 떨쳐내 버린다 -- “지금 이거하고” -- 그가 한조를 가리킨다 -- “그리고, 알잖아요,” -- 얼굴은 더 붉어지고 쉰 목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 “다른 것들도, 앙겔라, 젠장,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죠 --”
“잠깐.” 겐지가 손을 들어올리며 중재한다. “화낼 사람은 치글러 박사님이 아닙니다.” 맥크리가 녹색 바이저를 노려보며 씩씩거리지만, 겐지는 물러서지 않는다. “한조에 대한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건 접니다.”
겐지는 모든 걸 말해준다 : 시마다 형제, 북풍과 남풍의 용들 이야기 -- 두 소년, 작은 새와 늑대의 이야기. 온 세상을 물어뜯고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강력한 범죄 제국의 계승자들. 자유분방하고 게으른 영혼을 타고나, 스포츠와 하릴없이 놀기를 좋아했던 북풍의 용을, 의무에 충실한 그 형이 얼마나 유감스럽게 생각했는지. 아버지가 때이른 죽음을 맞자 형제들이 권세를 갖게 되었고 (맥크리는 인터넷으로 찾아본 기사를 떠올리며 불편해한다) 작은 새는, 변덕스럽게도, 군주가 되는 걸 거부했다는 이야기. 늑대가 분노해 으르렁대며, 더 나이 많은 친척들의 압박을 받아 작은 새를 가두고 노래를 다시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 동생이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자 -- 송곳니를 박고 작은 새를 완전히 침묵하게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앙겔라가 그를 취리히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에 수술을 거듭해, 조각난 그의 몸을 필사적으로 다시 맞추었고, 그 노력의 결과로 : 지금 그 사이보그가 여기 서 있는 것이었다. 겐지, 다시 태어난 북풍. 온전히 되살아났지만, 더 이상 예전의 작은 새가 아닌.
“전 형을 용서했습니다.” 겐지가 이야기를 끝맺는다. “제가 아직도 형을 사랑한다는 걸 인정했어요. 그리고 형의 평화와 행복을 바랍니다. 우린 정말로 화합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형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한 몇 년 동안 깊게 슬퍼했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구원을 바랐어요. 이제 그럴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전 형이 이 기회를 망쳐버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진심으로요.”
겐지가 말을 끝내고 난 이후의 불편한 침묵을, 라인하르트가 깬다. “그건, 친구여, 정말이지 고결하고 슬픈 이야기로군.”
맥크리는 그것보다 덜 젠틀하게 표현한다. “완전히 개판이군. 그런 거였어.”
“제시,” 앙겔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한다.
“널 죽였어,” 맥크리가 고발하듯 외친다. “자기 형제를 죽였다고!”
“그리고 고통받았죠.” 겐지가 대답한다. “형은 결국 군주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버렸어요. 시마다의 잔당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한조를 쫓아와서 일족을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용서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 맥크리가 말한다. “널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
라인하르트가 말을 자른다. “그만하게. 오늘 밤이 힘들었잖나, 제시. 그만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대화를 계속하세나.”
맥크리는 버틴다. “아니, 들어봐요. 진실을 듣는 걸 미루는 건 이제 질렸단 말입니다. 내가 여길 떠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채로 잠들고 일어나는 건 이제 질렸다구요.”
“제시 --” 앙겔라가 입을 뗀다.
하지만 맥크리는 단호하다. “재소집 이후로 한 달이 지났고, 뭐라도 답을 들을 때까지는, 내겐 매일 밤이 전부 힘든 밤이 될 --”
“내일.” 앙겔라가 간결하게, 말을 끊는다. “내일, 당신이 휴식을 취하고 나서. 윈스턴이 임무 보고를 받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면. 말해줄게요.” 그녀가 콧김을 내쉰다: 긴장해서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러면 되겠어요? 원하는 게 그거에요?”
맥크리가 앙겔라를 응시하며, 턱을 벌린다. “약속하는 겁니까?”
“약속해요.” 그녀는 용감하게 그를 마주본다. “뭐든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 주겠어요.”
심박수 모니터의 느리고 규칙적인 삑, 삑 소리만이, 치료소에 깔린 침묵을 방해한다. 맥크리는 한조가 누워 있는 칸막이 침대를 흘끗 본다: 불이 꺼져 있어서, 남자가 잠들어 있는 곳을 가린 흰색 커튼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좋아요,” 그가 마침내 수긍한다. “내일입니다.”
꿍쳐뒀던 버본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시고 잠들기까지 두 시간이 걸린다. 맥크리는 쇠망치처럼 눈을 짓누르는 피로에 눈꺼풀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백일몽을 꾸며 포효하는 푸른색 표면 위를 걷는다.
---
앙겔라는 약속을 지킨다. 맥크리는 다음날 커피 두 잔을 들고 치료소로 돌아간다 -- 지난 밤에 했던 행동에 대한 사과의 표시다.
“진하네요,” 그녀가 맥크리에게 콘솔 옆자리를 권하며 평한다. “일리오스 이후로는 이런 커피를 마셔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라인하르트가 만든 건가요?”
“아뇨.” 제시가 커피를 홀짝인다. “구리 주전자로 끓인 겁니다.”
앙겔라가 부드럽고, 경계하는 시선으로 그를 본다. “아, 그래서 이렇게 진하군요. 터키 스타일로 끓여서.”
“맞아요.”
“아, 제시.” 앙겔라가 손을 뻗어 제시의 어깨에 얹는다. 그녀가 갑자기 감상적으로 한숨을 쉰다. “미안해요.”
맥크리가 고개를 젓는다. “사과할 필요 없어요, 선생님. 그냥 제가 알고 싶은 걸 말해주면, 그걸로 충분할 겁니다.”
앙겔라는 제시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 주고, 더한 것들까지 보여준다. 국제 연합의 서명이 있는, 오버워치의 해산 과정과 모든 부차적 산물을 상세히 설명하는 12페이지짜리 문서. 부록 19편은 -- 그 중 다섯 개는 앙겔라가 직접 쓴 것이고 -- 조직에 소속되어 있던 수많은 인력의 행방을 서술하는 내용이다. 앙겔라는 폭발과, 죽음과, 잭과 가브리엘의 장례식 이야기를 들려준다 -- 총잡이가 멕시코 남부에서 현상금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치는 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두 번의 장례식. 제시는 앙겔라에게, 블랙워치를 떠나고 2주 후 전(前) 데드락 단원에게 샷건을 맞아 왼팔이 날아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앙겔라는 사망 당시 게이브가 입었던 부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기록을 꺼내며, 부검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제시는 앙겔라에게 자신이 5년 동안 은신처에서 또 다른 은신처로 숨어다니는 동안, 아예 새 기지를 하나 살 수 있을 정도로 현상금이 높아져 버린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은 그녀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커피 얘기로 충분했다.
앙겔라는 이메일 인터페이스를 띄우고 맥크리에게 전(前) 오버워치 멤버들과 주고받은 기다란 메일 리스트를 보여준다. 맥크리는 이름을 몇 개 알아보지만, 많은 숫자는 아니다: 대부분 과학이나 조사 부서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남극에 있는 기후학자에게서 온 메시지가 화면에 뜬다: 그녀는 이제서야 재소집에 응답하고 감시 기지로 올 일정을 잡는 중이다.
“좋은 소식이죠,” 앙겔라가 리스트를 넘기면서 말한다. “하지만 원래 보여주려고 했던 건 이게 아닌데, 어디 보자 ” -- 그녀는 뭔가 찾아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린을 보며, 콧노래를 부른다 -- “아, 여기 있네요.” 앙겔라가 빨간색 아이콘으로 표시된 폴더를 터치한다. “여섯 달쯤 전부터, 발키리와 카두세우스 시리즈의 의학적 원리를 물어보는 메일을 받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무시했지만, 그래도 계속 메일이 오더라구요. 그런데 내용이 점점 상세해지는 거예요. 기술적이기까지 했죠. 내가 쓴 책에 나와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어요. 그래서 답장을 보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아냈냐고 물었죠. 그리고 --” 그녀가 멈칫한다. 앙겔라가 두 손바닥으로 무릎을 감싼다.
맥크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리고 뭡니까?”
앙겔라가 메시지 하나를 클릭하자 스크린이 파란색으로 반짝인다. 메일 송신자의 프로필이 딱 한 줄로 나타난다. 솔져: 76.
“자기가 제가 예전에 봐줬던 환자들 중 하나라고 했어요,” 앙겔라가 답한다. “이젠 무슨 용병처럼 활동하고 있구요. 절 조사하고 있었다는군요.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는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고.”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네, 사실은,” 앙겔라가 나직하게 말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알았죠.”
“무슨 얘기요?”
그녀가 무릎에 얹은 손으로 깍지를 낀다. “내가 그 사람을 구해준 얘기.”
영원처럼 느껴지는 정적이 둘 사이에 흐르다, 맥크리가 빈 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쉴 때 깨진다.
“자,” 그가 입을 뗀다. “이걸 말해주는 게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정말 그만큼 힘들다면, 나한테 말해주는 게 너무 힘들다면, 알겠어요. 어느 정도는 모르는 채로 살 수 있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 그 때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앙겔라가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환자실로 향한다. 한조가 깨어났다: 그가 일어나 앉아서, 주먹쥔 손으로 이불을 잡고, 휙 털어버린다. 한조는 왼쪽 다리를 침대 밖으로 빼내려 하다가 멈칫한다. 무릎이 너무 심하게 부었다. 그가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린다.
맥크리가 메르시 뒤에서 나타나자, 한조가 노려본다.
“여긴 어디지?” 한조가 묻는다.
맥크리도 단호하게 마주 노려본다. “Well, 더 이상 리장은 아냐, 아가씨. 그건 확실하지.”
“안전한 곳이에요,” 앙겔라가 맥크리를 야단치듯 째려보며 끼어든다. “전 앙겔라 치글러 박사입니다. 여긴 제 치료소에요. 오버워치 구역 안입니다. 당신은 안전해요.”
한조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손가락을 풀며 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맥크리는 그 움직임이 새처럼 빠르다는 걸 알아차린다. 통증이 있는지 모든 근육을 시험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낙하해서 부상당한 겁니다,” 앙겔라가 파티션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말한다. “무릎과 햄스트링 주변을 다쳤지만, 가벼운 부상이에요. 며칠 지나면 고통은 사라질 거에요.”
“날 수술한 건 아니겠지,” 한조가 앙겔라를 피해 몸을 움츠리며 말을 자른다. 당장이라도 빛나는 송곳니를 드러낼 것 같다. “수술 같은 걸 했다면 --”
“안 했어,” 맥크리가 박차를 짤강이며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럴 필요도 없었어. 그냥 떨어져서 좀 다친 거야.”
한조가 손을 내린다. 제시는 한조가 거의 샐쭉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난 떨어진 게 아니다. 네 동료가 날 공격했지.”
“실수한 거야, 네가 날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대.”
한조가 콧방귀를 뀐다. “겐지는 어디 있지.”
“근처에 있을걸.”
“보고 싶군. 여기로 데려와.”
“좀더 정중하게 요청한다면.”
“주시죠,” 한조가 말하자, 맥크리는 놀란다. 그 어둡게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정중함과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있긴 했지만.
“제가 데려올게요.” 메르시가 돌아서서 통신기로 겐지를 호출하러 간다. 그녀가 멀어지자, 맥크리는 한조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 가까이 다가간다. 한조는 치료소 전등 불빛 아래로 인상을 쓰고 있다.
놀랍지 않은 것 :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 더 밝은 조명 아래에서 보니, 눈꼬리 주변의 잔주름이 더 깊고 날카롭다. 놀라운 것 : 눈동자는 검은색이 아니라 갈색이다 -- 흙이나 초콜릿 같은, 따뜻하고 짙은 색. 길고 검은 속눈썹은 여자도 질투하게 할 것 같다.
또 하나, 놀랍지 않은 것 : 눈앞에 있는 게 뭐든 간에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숱 많고 뚜렷한 눈썹. 맥크리로 하여금 이런 남자가 미소라는 걸 지을 줄 알기나 할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엄격한 옆모습. 하지만, 더 놀라운 것 : 강하고 확고한 턱선. 대담한 광대뼈에 잘 어울리는, 잘 다듬어진 수염. 근엄한, 심지어 제왕 같은 인상을 주는 회색 머리카락들. 왕에 걸맞을 듯한 얼굴의 틀을 잡고 있는 부드러운 흑담비 털 같은 구레나룻.
마지막 놀랍지 않은 것은: 또 한번 혐오감에 차서 노려보는 시선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 한조가 자신이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잘생긴 남자 중 하나라는 거다. 실물은 인터넷 기사 사진 따위와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다.
맥크리가 다가오자 한조는 시선을 돌리며, 옷소매를 끌어올린다. 맥크리는 용 문신이 옷자락에 가려 사라질 때 눈썹을 찌푸린다. 그는 문신의 모양과 디테일을 조금 더 살펴볼 기회를 노리며 시선을 떼지 않는다. 가슴 위의 금실로 수놓인 것 같은 띠도 --
“뭐냐.”
가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맥크리의 시선을 알아차린 한조가 멸시하는 듯한 눈으로 노려본다. 맥크리는 거칠게 찌푸린 얼굴 뒤로 어색함을 감추면서 물러난다. “아무것도 아냐.”
한조가 콧방귀를 뀐다. “그럼 날 혼자 둬라.”
그 말에 상처받은 (그리고 상처받았다는 것에 짜증이 난) 맥크리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만약 이 치료소에서 감시하는 눈 없이 혼자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네, 친구. 네가 여길 나가도록 놔둘 일은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없어 --”
“흠.” 한조가 인상을 쓴다. “그만해라.”
“뭘 그만해.”
“말하는 것.”
맥크리가 움찔한다. “뭐라고?”
“무슨 텍사스 카우보이처럼 말하잖나. 진짜 카우보이냐?” 한조의 윗입술이 말려들어간다. “아니면 날 놀리는 거냐?”
“내가 뭐 때문에 그러겠어?” 맥크리가 조소한다. 그가 방어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누가 누굴 놀리겠냐고, huh? 난 그냥 나야.”
“그렇다면, 넌 바보로군.” 한조가 대답한다. 그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다. “왜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하는 거냐” -- 그가 턱으로 맥크리의 묵직한 벨트 버클을 가리킨다 -- “무슨 캐리커처에나 나올 것 같은, 로데오 총잡이처럼 --”
맥크리가 발끈한다. “그래, ³⁾용 문신을 한 친구가 잘도 말씀하시네.”
한조는 맥크리가 인용한 게 뭔지 모르거나, 그런 걸 신경쓸 만큼 관심이 없다. “이치에 맞을지도 모르겠군. 바보같은 녀석에겐 바보같은 옷차림이 어울리지.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싸움에 무턱대고 머리부터 들이밀거나 바퀴벌레처럼 미친 듯 도망치고 --”
“지붕 위에서 닌자 놀이를 하는 친구가 말씀하시네!” 맥크리가 받아친다. “뒤나 밟고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임무 중에 그렇게 뛰어들고, 우릴 다 죽일 뻔 --”
“넌 그러지 않아도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지!” 한조가 말을 끊는다. “널 지켜봤다. 계속 지켜봤어. 처음부터 네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거든, 그 망할 입 닥--”
“이길 수 없었어!” 한조가 소리친다. “다리 하나 달린 황소 같은 움직임에, 그 반만큼도 분별력이 없지!” 그의 눈동자는 경멸감으로 타는 듯하다. “그 어설픈 총 솜씨로 누굴 죽일 수는 있나? 더 장전할 탄환도 없이, 크기가 네 5배는 될 옴닉을 쏘다니. 하물며 안전하게 탈출할 감각조차 없었고.”
맥크리는 발끈한다. 한조의 목소리는 비꼬는 듯 신랄하다. 앙겔라가 모퉁이 뒤편에서 끼어들 각을 재며 상황을 눈여겨본다.
“그렇게 해서 옴닉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네가 그만큼 강하다고 생각했나? 하.” 한조가 조롱한다. “해봐. 더 성내 봐라, 바보 녀석. 전장에서 동료들을 잃을 때 자만심이 도와주진 않을 거다.”
제시의 목소리는 위협하듯, 낮게 깔린다. “그래, 자기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동료를 잃는 것에 대해서 잘 아시겠군.”
한조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하얗게 질린다. 겐지가 도착하고 (곧바로 물리적으로 끼어들어 중재한다) 한조를 막는다. 앙겔라가 궁수와 마지막 모욕을 교환하는 맥크리를 치료소 밖으로 데려간다. 그는 시마다 형제가 다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복도를 걸어내려간다.
맥크리는 담배와 거의 비어가는 버본 위스키 병을 들고 토르비욘의 수리소 뒤에 있는 남쪽 구역으로 간다. 그는 나무 그늘을 찾아, 자갈을 걷어차고, 앉아서, 불을 붙인다. 맥크리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더 피우고: 열이 식고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천천히 흘러가는 배를 한 시간 정도 바라본다. 평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며 감각을 갉아먹는다.
형제 살인마. 용을 부리는 자. 자신에게 화살을 쏴박아 바늘꽂이처럼 만들어버릴 못된 개자식. 도대체 놈이 뭐라고 제시 맥크리를 바보라고 부르나?
“캐리커처를 보여주지,” 그가 두 번째 담배를 물고, 왼쪽 의수의 엄지손가락으로 벨트 버클에 새겨진 'F'자를 두들기며 중얼거린다. 그는 마음 속으로 그런 개자식이 그렇게까지 잘생겨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
윈스턴이 1600시에 리장 임무 결과를 보고받기 위해 요원들을 소집한다. 트레이서의 팀이 가지고 온 데이터는 비슈카르의 활동 내역과 내부 프로토콜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금광이나 마찬가지였다. 윈스턴이 예상한 대로, 더러운 정보들도 있다. 통상 조약 위반, 외교 제재, 사기, 불법 거래, 그리고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들을 은폐한 흔적.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있었던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슈카르의 다음 재개발 목표지는 리장이었다 -- 그래서 정원 주변 길이 텅 비어 있었던 거라고, 맥크리가 지적했다. 40개의 디렉토리 중 첫 3개만을 복원하고도, 윈스턴은 비슈카르 사에 거대 언론 스캔들을 안겨줄 만한 증거들을 충분히 모아낸다.
그 날 하루종일 뉴스에서는 리장 정원에서 있었던 사건이 흘러나온다. 비슈카르 사는 그 원격조종 옴닉이 깁스 자유방어 프로그램이라는 보안 플랜의 일부라는 게 알려져, 중국 정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었다.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옴닉을 풀었다는 비슈카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옴닉의 파괴 행각에 대한 문제가 회사에 제기된다. 아무도 그런 프로그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비슈카르는 방어적으로 나온다. 윈스턴은 비슈카르가 다음 몇 달 동안 신중하게 행동하며 리장 재개발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려 할 거라고 예상한다.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오버워치에게도 영향이 있다. 현재 오버워치의 가장 큰 적은 위험 부담이다. 윈스턴은 중국 정부의 조사로 제 3자의 개입이 있었던 게 드러날까 걱정한다(4인조 팀 말이다). 그렇게 되면 대중들이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거다. 윈스턴은 이미 보안 위성이 지브롤터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곧 오버워치가 관계된 사건의 단서를 찾아 세계 곳곳을 수색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새 명령이 내려진다 : 다음 8주간 임무는 없다. 비행도, 로켓 발사도, 신규 요원도 없다. 지브롤터나 주변 도시로 공공연히 나가는 것도 안 된다. 신규 요원 영입은 이메일, 통신 위성과 홀로그램 통신으로만 이뤄질 것이다. 모든 자원(식료품 포함 : 라인하르트가 분통해한다) 또한 이목을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들어올 예정이다. 윈스턴은 그 기간 동안 팀원들이 할 일 리스트를 나눠준다. 보충할 재고와 공급품이 산더미 같았다 : 장비, 무기, 도구, 기술, 업그레이드 등등. 아테나는 요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훈련 시설에 15개의 새로운 전투 및 방어 프로그램을 추가했다고 공지한다. 개인 능력과 팀워크 능력을 재정비할 두 달의 시간이 있었다.
윈스턴이 이 명령을 내리고, 겐지가 자신의 형이 감시 기지 구역을 떠나는 것도 위험 요소를 고려하면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공식적으로 한조가 공동 숙소 1인실을 사용하고 출입이 허용된 구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제안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맥크리는 말을 꺼낼 마음도 들지 않아서,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말없이 씩씩거리고만 있는다. 겐지가 중재한 결과로 논쟁이 잦아들자 앙겔라가 겐지의 요청에 찬성하고, 윈스턴도 동의한다. 한조는 기간적 체류를 허락할 만큼은 협조적인 태도였다. 그 궁수가 또 다른 폭력성을 보인다면, 구류되거나 추방될 것이다. 맥크리가 눈을 굴린다. 라인하르트가 그걸 보고 맥크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입모양으로 말한다 : ‘괜찮을 걸세’.
브리핑이 끝나고 겐지가 맥크리를 잡아세운다. 겐지를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니면, 음, 둥둥 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샴발리의 옴닉 젠야타, 겐지의 스승이다. 그가 맥크리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자기 소개를 하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옴닉의 엄숙한 기계 얼굴은 거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맥크리는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제 형을 대신해서 다시 한번 사과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겐지가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인 관계로, 그렇게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군요.”
맥크리가 고개를 젓는다. “자, 진지하게 말하는데. 여전히 나쁜 감정 없어.” 그의 손가락이 경련한다: 정말이지 담배가 절실하다. “네 형과 나 사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지.”
겐지가 고개를 기울인다. 그는 거의,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말한다. “아, 잘됐군요. 형과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으신 거군요.”
맥크리가 말을 더듬는다. “그게, 우리 둘 일이니까. 그것 때문에 너와 내 사이가 영향을 받으면 안 되잖아.”
겐지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다. “맥크리, 당신이 얻은 교훈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진실이란 게 항상 쉬운 길로 보이진 않죠. 하지만 저는 다시 한 번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스승님께서 알려 주셨 --”
“그래, 그래.” 맥크리가 말을 끊는다. 또다시 짜증이 나고 기분이 상한다. “알겠어. 시간은 많아. 어차피 다음 8주간 여기 갇혀 있어야 한다고.”
“만약 형과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도와--”
“됐어.” 맥크리가 박차를 짤강거리며 휙 돌아선다. “고맙지만, 겐지 군, 다음에 보자고. 윈스턴이 시킨 일이 좀 있어서.”
총잡이가 멀어지는 동안 젠야타가 조용히 흠, 하고 중얼거린다. 그는 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보이며 겐지에게 돌아선다.
“때가 올 겁니다,” 그가 나직하게 말한다. 겐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
0117.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스위스 본부에서 블랙워치는 통금 시간이 없었지만 실력이 느슨해진 요원들은 질책을 받았다. 그는 요즘 들어 통 쉬질 않았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듯한 폭죽 같았다.
아마 그녀 때문일 거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부정했고, 그리고 나서 인정해도 될 것 같다고 결정한다. 동요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 왜냐하면, 원하는 사람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고통받지 않으면, 제시 맥크리는 완전히 무법자니까. 행동 같은 걸 하지도 않을 거다. 블랙워치는 그가 ⁴⁾ 새 나뭇잎을 뒤집었다고 말한다. 레예스가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면, 와서 나무를 걷어차버릴 거다.
그녀는 그의 선생이다. 애도 있다. 맥크리보다 6살 어린 딸. 게다가 2500 미터 밖에서 날아가는 공도 맞출 수 있다. 그 사실들이 매번 머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됐다. 모든 걸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제시는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서, 3층 식당 부엌 안에 있는 스토브에 기대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편한 차림으로 -- 후드티에 운동복 바지, 검은 운동화, 포니테일 -- 끓고 있는 ⁵⁾ 셰즈 주전자를 쳐다보고 있다. 그녀는 이 장소를 좋아했다. 다른 곳보다 조용하고, 취리히의 야경을 내려다보기에 좋으니까.
“운이 좋구나, 카우보이,” 그녀가 인사한다. 연기처럼 따뜻하고, 흐르는 듯한 낮은 목소리. “두 명이 마실 만큼 끓였거든.”
“뭐, 어차피 컵도 작잖아요.” 맥크리가 열망을 숨기며 말한다. 어린애처럼 들뜬 목소리가 나지 않게.
둘은 커다란 창문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취리히 전역에 걸쳐 반짝이는 빛을 바라본다. 한번은 그녀가 이 풍경이 카이로에서 살던 첫 번째 아파트에서 보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었다. 고급스러운 동네였다 : 나일 강이 바로 보이는 가든 디스트릭트. 제시는 그녀의 삶 중에서 이 부분, 젊었을 때 이집트에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정말 듣고 싶지만, 입을 꼭 다문다. 그녀가 그 아파트를 떠난 지가 20년도 넘었다.
“사격 성적 봤어,” 그녀가 컵 너머로 중얼거린다. “잘 하던데. 연습했구나, 확실히. 타이밍이 젬병이던 게 없어졌어.”
“그렇죠,” 제시가 한 모금을 맛보며 대답한다. “저 빨리 배우는 거 아시잖습니까. 토르비욘은 제법 놀랐겠죠. 지난번에 포탑을 완전히 날려버렸거든요. 6연발 리볼버가 그 정도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답니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사실, 못 하는 게 맞지. 토르비욘까지도 그게 장난감 같은 무기라는 걸 아는군.”
“음,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맥크리가 빈 컵을 창틀에 올린다. “제 커리큘럼에 뭐가 더 남아있는지 좀 궁금해서요.”
“너한테 가르칠 것? 하, 모든 게 남아 있지.” 그녀가 새끼손가락으로 컵 가장자리를 톡톡 친다. “네가 다 늙어버린다고 해도 내가 가르칠 게 아직 남아있을 거야, 카우보이. 이 눈(dead-eye)은 많은 걸 봤고” -- 그녀가 검지로 왼쪽 눈 아래의 호루스 마크를 두드린다 -- “넌 배울 게 많지.”
“그거에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레예스는 -- 다가오는 작전들에 대해서만 애기하고 있고, 조만간 절 들볶을 걸요. 당신이 절 이렇게 불쌍히 여겨 주시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요. 자기 밑에 있는 훈련병이 다른 교관 수업 듣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그녀가 눈을 굴린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 레예스는 항상 좋은 의도밖에 없어. 네가 여기 있는 이유를 기억하게 하고 싶은 거겠지. 그냥 확실한 길을 택해. 레예스는 솜씨가 좋지.”
“레예스가 항상 최고의 사수(the best shot)가 아니라서 유감이네요.”
“하지만 넌 그렇게 될 수 있지.”
“그게 제 목표죠(I aim to be).”
“말장난하지 마, 카우보이.”
제시는 그녀가 웃는 방식을 좋아했다. 뱃속에서부터 물결쳐 올라오는, 깊고 구르는 듯한, 즐거운 하-하. 그녀는 커피를 다 마시고 그를 따라 창틀에 걸터앉는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 얼굴을 스치고, 맥크리는 자신이 그 위풍당당하고 날렵한 이마를 넋놓고 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 입술의 곡선과 여왕처럼 기품 있는 눈썹도. 한 줄기로 높고 매끈하게 묶인 윤기 나는 흑발도.
“그 기술을 배울 준비가 된 것 같구나.”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그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꿰뚫어 보면서. 열망에 넘쳐 앞으로 몸을 굽힌 채 앉아 있는 그의 군살 없이 마른 몸을 지나, 더 먼 곳 어딘가에 시선이 꽂힌다. “쉬운 기술은 아냐. 위험해. 열심히 해야 할 거다. 레예스가 널 압박한다고 해도, 익혀야 할 거야.”
“저 알잖아요, 선생님. 집중하고 있어요. 준비됐습니다.”
아나가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미소에는 뭔가 현명한 게 있다. 계산적이지만 피곤에 지친.
“넌 네가 준비됐다고 생각하지, 카우보이. 넌 항상 그래.”
---
맥크리는 생생한 꿈에 놀라 숨을 들이마시며 깨어난다. 그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답답한 공기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방에선 오래된 세탁물과 퀴퀴한 카펫 냄새와 담배 연기 냄새가 난다. 맥크리는 숨을 돌리고 일어나 앉아서: 침대 옆 바닥에 놓인 버본 위스키 병을 들고 벌컥벌컥 마신다. 그게 마지막이다. 더 마시려면 다른 병을 찾아봐야 할 거다. 아니면 라인하르트의 식료품 리스트에 추가하든지.
벽시계의 약한 붉은색 빛이 시간을 알린다 : 0320. 맥크리는 턱을 문지르고, 이를 너무 세게 악물어서 통증 때문에 움찔한다. 오른손이 덜덜 떨린다: 다시 잠들지 못할 거다.
맥크리 일어나서 소변을 보고 화장실 세면대 물로 얼굴을 씻어낸다. 그는 옷을 입고, 부츠를 신고, 벨트를 찾아내고, 빗과 루시우에게 빌린 머리끈을 꺼내서 머리를 뒤로 짧게 모아 묶는다. 맥크리는 탄약 벨트가 떨어져나간 홀스터를 차고 피스키퍼를 찔러넣는다. 모자, 장갑, 서라피는 입지 않는다.
맥크리는 윈스턴의 연구실 아래쪽 복도를 지나 2번 훈련장으로 향한다. 연구실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었지만, 걷는 게 더 좋았다. 피를 돌게 하니까. 맥크리는 비상 계단 C로 이어지는 문을 밀어 연다. 높이 솟은 콘크리트 벽으로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래쪽 층계참에 멈춰선 건 한조다. 움직임 없이 뻣뻣하게 굳어, 한쪽 발은 계단을 한 걸음 오르고 있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맥크리의 출현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보아하니 무기는 없다 -- 최소한, 활과 화살통은 없다. 혼자다.
맥크리는 오른손을 계단 난간에 올린다. 그는 한조를 똑바로 쳐다본다. 한조는 바닥을 보고 있다.
겁쟁이, 라고 제시는 생각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볼 배짱도 없군. 아니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 배짱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무서워하고 있는 건지도.
“좋은 저녁.” 제시가 냉담하고 무뚝뚝하게 말한다.
한조가 의미심장한 침묵 끝에 내뱉는다. “거의 새벽 4시다.”
“아, well. you know. 시차 때문에.” 제시가 느릿하게 말한다. “시간 감각이 엉망이 돼버리지.” 한조는 대답하지 않는다. 제시가 혀를 찬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떠나고 있다.”
“미안한데, 친구, 앞으로 몇 달간은 이 바위섬을 아무도 나가지 못한다고 너도 들었을 것 같은데 --”
“이 구역을 떠나고 있다.” 한조가 층계참을 가로지르며 몇 발자국을 내딛는다. 시선이 바닥에 딱 달라붙은 채로. 그는 왼팔을 유카타 깃에 찔러넣고, 옆구리로 소매를 늘어뜨리고 있다. 맥크리의 눈에는 그가 다쳐서 붕대나 깁스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카마(Hakama). 그 단어다. 비행기에서 생각나지 않았던 것.
맥크리는 마침 둘밖에 없으니 뭔가 날카로운 말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다. 죄책감이 든다. 아마 수면 부족이나, 늦은 시간이나, 오래된 꿈 때문일 거다. 아니면 한조가 거의 절뚝거리듯이 걸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맥크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인내심을 잃는다.
“이봐,” 제시가 무게중심을 옮기고 삐딱하게 서서, 입을 뗀다. “우리 사이가 처음부터 좀 꼬였지. 진짜 안 좋게.”
한조는 말없이 계단으로 다가선다.
“내가 사이좋게 지낼 준비가 됐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두 달 동안 널 피해다닐 것도 아니야.”
아직도 말이 없다. 이제 한조는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진짜야, 친구, 안 피해다닐 거라고. 그런 거에 신경쓸 시간 없거든. 우리가 여기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팀워크 뭐 그런 게 있어.” 맥크리는 망설인다. “어, 내 말은, 이제. 돌아왔거든. 오버워치가. 팀워크” -- 한조가 계속 올라온다 -- “팀워크라는 건 일을 다같이 한다는 거고, 난 그 일부니까” -- 그가 점점 가까워진다 -- “네가 두 달 동안 있을 손님이라는 건” -- 네 걸음 남았다, 이제 세 걸음이다 -- “내가 널 피해다닐 수가 없다는 뜻이지. 네가 내 근처에 있다고 해도 굳이 돌아서 가진 않을 거야. 그러니 문제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걸” -- 한조는 바로 앞, 주먹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로 적당히 예의차리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것뿐--”
한조가 제시가 서 있는 층계참에 올라서는 태도는, 대담하다. 그는 제시가 길을 비켜서지 않으면 어깨로 밀쳐낼 것처럼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제시는 물러나고: 신발 밑창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어 박차가 짤강거린다. 그는 한조를 내려다본다. 너무 가까워서 입술 선이 보일 정도다. 눈을 둘러싼 속눈썹 한 가닥까지도.
이제 그를 응시하고 있는 한조의 눈은 -- 꿰뚫고, 조용히 재어 보고, 판단하며, 동시에 묵살하고 있다.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는 가볍게 ‘흠’하고 코웃음친다 -- 그리고, 사악하게 : 한조는 웃음짓는다.
모든 게 끝나고 맥크리는 혼자 남겨진다. 한 마디 말도 없이. 한조는 시끄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 너머로 사라진다. 절뚝거리며, 시야 밖으로, 소리가 닿는 거리 밖으로. 제시는 흠칫하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오한이 뒷목을 휩쓸고 축축한 손바닥까지 내려간다. 맥크리는 층계참을 돌아보고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몸이 떨린다. 감전당한 것 같다.
“빌어먹을(Son of a gun),” 그가 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훈련장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준비를 끝낼 때까지, 계속해서. 맥크리는 피스키퍼를 꺼내고, 땀을 닦고,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최근 몇 주, 아니 몇 달, 아니 몇 년간의 사격 최저 기록을 경신한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역주]
¹⁾ 바이탈 : 맥박, 호흡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
²⁾ 초신성(超新星) : 별의 진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대폭발을 일으켜 태양의 천만 배에서 수억 배까지 밝아지는 별.
³⁾ 용 문신을 한 친구 : 원문은 Mister Fella with the Dragon Tattoo(리스벳 살란데르가 용 문신을 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한 영화 Girl with the Dragon Tattoo의 인용).
⁴⁾ 새 나뭇잎을 뒤집다 : 원문은 turned a new leaf라는 숙어. 태도를 바꾸고 다시 시작하는 것. ‘새 사람이 되다.’
⁵⁾ 셰즈(cezve) : 터키 스타일로 커피를 끓일 때 쓰는 구리로 된 주전자.
챕터5
Hang the Fool - Chapter 5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443496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한조와 함께 있으면, 모든 일은 아주 느리게, 아니면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감시 기지에서의 첫 번째 주. 오버워치 요원들은 매일 저녁 모여서 라인하르트가 만든 식사를 다함께 먹는다. 트레이서와 토르비욘은 3일마다 기지를 나가 지역 시장에서 라인하르트의 식료품 리스트에 적혀 있는 물건들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 루시우는 1630시까지 음악 연습을 하고 식당에서 라인하르트가 식사 준비를 하는 걸 돕는다. 나머지는 1800시 정도에 도착한다. 1930시에 팀이 휴식이나 오락을 위해 흩어지고 나면 메르시와 맥크리가 교대로 설거지를 했다. 젠야타는 뭔가를 먹지는 않지만 항상 나온다. 옴닉 승려는 식탁 앞에 앉아 다른 이들이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며, 맥크리가 보기에 평온한 미소 같은 것을 짓는다.
한조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가 하루종일 뭘 하는지는 겐지만 알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은 훈련이나 명상을 한다고 겐지가 보증한다. 맥크리는 한조가 다른 사람들이 기지 어딘가에서 바쁘게 뭔가 하고 있는 동안 몰래 식사를 한다고 추측한다. 짧게 스쳐 지나가거나 주변에서 잠깐 보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마다 형제 중 나이 많은 쪽은 팀원들을 피해 다녔다. 그는 마치 야생 동물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 은신처를 드나들 때, 멀리서 아주 잠깐씩만 보였다.
층계참에서 마주쳤던 일 같은 것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제시는 기쁘기도 했고 약간 언짢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 맥크리가 식당 홀로 걸어들어가자 라인하르트가 옛날 노래를 들으며 요리를 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라인하르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추면서 스토브 위로 달걀을 뒤집는다. 그는 검은색 작업복 위로 빨간 앞치마를 입고 있다.
“오늘 메뉴는 뭐죠?” 맥크리가 가슴팍을 긁적거리며 느릿하게 말한다.
“깍둑썰기한 햄, 스위스 치즈, 체리 토마토 오믈렛,” 루시우가 넓은 주방 조리대 너머로 외친다. “얇게 썬 아보카도, 내가 만든 ¹⁾팡 지 케이주, 그리고 디저트로 샤베트.” 그는 맥크리에게 갓 구운 빵이 가득한 바구니를 떠안겨 준다. “하나 먹어봐, 이스트우드. 이거 진짜 쩔어. 이런 거 먹어본 적 없을 거야.”
설거지를 끝내고, 맥크리는 메카 기어 솔리드를 하고 있는 루시우와 레나를 지나쳐 토르비욘의 정비실 뒤편으로 전망을 보러 간다. 그는 통신 타워 높은 곳에 겐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 소리를 듣는다. 무의식 저편에서 목소리들이 밀려온다 : 오늘 사격은 어땠어, 맥크리? 잘 하고 있나? 팀이 다시 모였는데도 오래된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웅얼거리는 유령들은 절대 사라질 것 같지가 않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연료 창고에서 계단으로 조용히 내려가고 있는 검은 형체를 본다. 그는 잠깐 멈춰서 그 형체가 기둥 뒤로 사라졌다 나타나 숙소 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가로지르는 걸 본다. 노란색 천 조각이 그 뒤에서 휘날린다. 제시가 실눈을 뜬다. 한조.
“이것저것 생각 중이에요,”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유령이 아직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앙겔라가 다음 날 아침 조깅을 함께 한다. 그녀는 한조가 사람을 피하는 데에 놀라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거에요,” 그녀는 로켓 발사 지지대 옆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겐지가 말하기를, 지난 10년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떠돌아다녔대요. 쫓아다니는 시마다 일족을 떼어내고 추적자들을 지치게 만들려고요. 여기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겐지가 이게 최선이라고 설득했다는군요.”
맥크리는 그녀 옆에서 숨을 헐떡인다. 얼굴이 빨갛다. “그냥, 그렇게 현관 밑에 사는 쥐처럼 몰래 숨어다니는 게 진짜 그러고 싶어서인지가 궁금할 뿐이에요.”
“그가 나와서 함께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세상에, 제시, 그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제시가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친다. “뒷간에 가득찬 말벌보다 싫어하죠, 앙겔라, 그건 확실히 합시다.”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며 기침을 한다. “녀석이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두 달 동안 기지를 돌아다니는 게 불편할 뿐이에요. 시야 안에 있는 게 낫죠.”
“겐지에게 아무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대요.” 이른 아침 태양 아래에서, 달리는 앙겔라의 피부가 반짝인다. 따뜻해진 뺨이 발갛게 물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시, 지금 상황이 그에겐 완전히 낯설 거에요. 이런 환경,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동생도요. 지난 10년을 겐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매일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죠. 그런 걸 상상할 수 있어요?” 콘크리트 트랙을 달려올라가며 그녀가 햇살에 눈을 찌푸린다. “그렇게 오래,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다시 살아있다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초 동안, 맥크리는 갈망이라는 멈출 수 없는 고통에 짓눌린다 -- 거의 달리기만큼이나 숨쉬기 힘들게 하는 고통.
이 골목을 돌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 파란색 비행복을 입은, 목에 건 인식표가 반짝거리는, 키 크고 호리호리한 여자. 바람에 날리는 날개 같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죄책감도요, 아, 그게 더 힘들었을 거에요, 제시. 그가 느꼈을 죄책감! 분명히 뭔가 했을 거에요. 겐지가 형의 고통이 줄었다고 했거든요. 그 고통은 둘 다에게 끔찍했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진 말해줄 수 없지만요, 환자 기밀 유지랑 뭐 그런 거 알잖아요. 그래도 왜인지는 알 것 같아요” -- 앙겔라가 멈춘다. 맥크리가 뒤처졌다. “괜찮아요?”
맥크리가 속도를 늦춘다. 그는 손을 무릎에 대고 기침을 하며 몸을 구부린다. 폐가 고장난 엔진처럼 삐걱거렸다. 그는 보라색 레깅스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앙겔라를 올려다본다. 금색 머리카락이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다. 그녀는 전혀 숨이 가빠 보이지 않았다.
“숨 좀 돌릴게요,” 그가 겸연쩍어하며 웃는다. “나이를 먹어서, 앙겔라, 가끔 이렇게 뛰다 보면, 바퀴가 하나 떨어져서 차체가 질질 끌리는 것 같다니까요.”
“그래요, well, 지난 몇 년간 내가 충고한 대로 담배를 끊는다면, 좀 더 잘 뛸 수도 있겠죠.”
---
그 이후, 맥크리는 통로를 걸어내려간다. 그는 어제 한조가 내려갔던 그 계단으로 간다. 계단은 정비용 수직 통로로 이어진다. 수직 통로를 다 내려가면 절벽 위에 있는 바위 고원이 나온다. 줄어드는 빛 속으로, 절벽을 오르는 작은 길 입구가 보였다. 귓가에 바람이 세게 불어댔다. 맥크리는 올라가기 전에 길을 수상쩍다는 듯 쳐다본다.
등반 장비가 없었다. 산등성이는 가파르고 좁았다. 지형이 날카롭고 불균일하고, 이끼와 바람에 닳은 돌들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했다. 바닷가 절벽은 어설픈 등반가를 곧바로 아래쪽에 있는 바위와 물 속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듯했다. 맥크리는 두 번 발을 헛디딘다. 그는 담배를 떨어뜨리며 바닥을 짚고 올라간다. 그리고 거의 벼랑 끝에서 미끄러질 뻔했다는 걸 깨닫고 두려움에 침을 꿀꺽 삼킨다.
세상에 누가 이런 곳을 일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돌아서려던 순간 바람에 실려온 소리를 듣는다. 탁 하는, 희미하지만 날카로운 소리. 길게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 맥크리는 고원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약간 완만한 경사면 아래를 내려다본다.
절벽의 평평한 곳 위에서 금방이라도 동작을 취할 태세를 갖추고 -- 바람과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건 -- 한조다. 그는 30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에 기대어진 연습용 로봇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다. 그는 맥크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용 문신이 구부러진다.
맥크리는 일어나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위 아래로 느긋하게 걸어내려간다. 한조가 활을 내린다. 그는 화살통에서 다음 화살을 빼낸다. 주변을 둘러싼 바다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린다. “원하는 게 뭐냐, 바보 녀석(fool).”
“안녕,” 그가 왼손으로 모자를 잡아누르며 대답한다. “어.” 그가 목을 가다듬는다. “사실은 --”
“중요한 건가?” 한조가 오른쪽 어깨 너머로 제시를 노려보며 말을 끊는다. “무슨 일이 있나?”
제시가 입을 벌린다. “아니, 그런데 --”
“그러면 사라져라.” 한조가 돌아선다. 그는 화살을 장전하고, 당기고, 쏜다. 정확히 로봇의 목에 맞는다.
기분이 상한 채, 제시는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다. 바람이 세라피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들어봐, 시마다 씨(Shimada-san).”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지난번에, 우리 사이가 처음부터 안 좋게--”
“네놈이 되는 대로 지껄이는 이야기를 들어 줄 생각 없다, 바보 녀석.” 한조가 활을 내린다. 그의 제왕 같은 얼굴이 짜증으로 어두워진다.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게 아냐, 예의바르게 굴려고 하는 거지.” 제시가 씩씩거리며 말한다. 그는 두 번째로 로봇을 힐끔 본다. 토르비욘의 불량품 중 하나다. 한조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꺼내온 게 분명하다. “예의바르게 굴 수도 있잖아, y'know, 꼭 그렇게 서로, 어 --”
갑자기 연습용 로봇이 앞으로 뒤집힌다. 로봇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하자 한조가 달려나간다.
“-- 아, 젠장.” 맥크리는 그것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 본다 -- “hup, welp, 저렇게 가는군.” -- 그리고 튀어나온 바위 아래로 사라질 때, 그것에 꽂혀 있던 화살이 번득이는 것도. 맥크리가 휘파람을 분다. “안됐구만.”
한조가 질책하는 듯한 눈빛으로 총잡이를 노려본다. 꼭 로봇이 떨어진 게 완전히 그의 잘못인 것처럼 말이다. “다 했냐, 바보 녀석아?”
“Y'know,” 제시가 꾀어낸다. “꼭 훈련하러 여기로 몰래 오지 않아도 돼. 시설이 있거든. 출입금지 구역도 아냐. 그냥 물어보기만 하면 돼. 이 망할 바위산을 매일같이 염소처럼 올라오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걸.”
한조가 코웃음친다. “내 실력을 연마하는 데 너희 시설 따위는 필요없다.”
“그런 것 같네.” 맥크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석양을 바라본다. “그래도 여기서 햇빛에 타고 바람 맞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안 그래?”
“나약한 자들만이 자연에 의해 진보를 방해받지.”
바람이 날카롭게 불어와 제시는 모자를 움켜쥔다. “진심이야, 친구.”
“너나 네 동료들과 어울릴 생각도 없다.” 한조가 강철 같은 목소리로 계속한다. “너와 내 동생의 관계를 보면, 내가 분노와 불신으로 환영받을 것이라는 게 명백하지. 네가 직접 그걸 확실히 했잖나. 내가 왜 스스로를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 멸시당하도록 해야 하지?”
제시는 좌절감을 꾹 참는다. “내 말은, 두 달 동안 네가 무슨 귀신처럼 이 바위를 들락날락하도록 놔두진 않을 거라고. 내가 지켜봐야 하잖아.”
“바보 녀석, 그런 걸 두려워하나?”
맥크리가 인상을 찌푸린다. 한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 속에는 뭔가 어둡게 웅성거리는 게 있었다. 가슴이 공허한 아픔으로 차오른다. 그는 소용돌이치며 밤하늘을 가르던 용들을 떠올린다. 층계참에서처럼, 신경줄이 비틀린다. “아마도.” 그리고, 매섭게 : “네가 뭘 알아.”
맥크리는 한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거슬렸다. 그는 뭔가 잔인한 대답을 들을 준비를 마쳤다. 한조는 무슨 말이든 내뱉기만 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침묵한다.
“아, 됐어, 마음대로 해, 시마다 씨.” 제시가 수평선을 돌아본다. 지는 태양 위로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자, 훈련 시설 쓰려면 내 체크인 아이디가 필요해. 번호는 414-111. 다른 사람들 피하고 싶으면 밤에 가. 2번 훈련장에는 저녁 식사 이후로는 아무도 없어. 적어도 이젠 아무도 없을 거야.” 그가 모자를 고쳐쓴다. “아테나한테 궁술 연습용으로 세팅해 달라고 하면 처리해 줄 거야.” 맥크리가 경사면을 다시 올라가려 돌아선다.
열 걸음 떨어지자 한조가 그의 뒤에서 소리친다. “기다려.”
맥크리가 혀를 깨문다. 그가 돌아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한조가 무뚝뚝하게 묻는다. “다른 사람의 식별 번호를 사용하는 자를 들여보내 주진 않을 텐데.”
“돌아가서 내가 세팅해 놓지. 손님 자격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면 돼.”
한조가 낮게 말한다. “난 손님이 아니다.”
“이제 그런가 보지.” 제시는 갑자기 기진맥진해진다. 그들이 마주칠 때마다 줄다리기하듯 싸우는 게 지쳤다. 그는 통로까지 도착해서 담배 한 개피를 더 피운다.
한조를 다루는 건 절벽을 오르는 것 같았다. 느리고, 위험하고, 보상은 전혀 없다. 세상에 누가 그런 귀찮은 일을 하겠나?
그는 방으로 돌아와 콘솔 앞에 앉아서, 버본 위스키 한 잔을 들이키고 오버워치 인원 파일을 불러온다. 윈스턴이 한조의 프로필을 임시로 추가했다. 제시는 한조를 선택하고, 훈련장 방문 자격을 추가하는 코드를 입력하고, 파일을 저장한다. 그는 한 잔을 더 들이켜고, 샤워를 한 뒤, 세 잔째를 마시고, 침대로 기어올라간다. 그는 높이 뜬 뉴 멕시코의 태양 아래를 로드러너 새 떼가 달려가는 꿈을 꾼다.
다음 날 아침 확인한 메시지에는, 방문객 1이 2번 훈련장에 2310시에 체크인하고 0156시에 체크아웃했다고 쓰여 있다.
---
윈스턴은 3주째 초, 1번 훈련장을 단체 전투 시뮬레이션 모드로 세팅한다. 맥크리는 트레이서, 라인하르트와 함께 성공적으로 2회의 전투를 끝마친다. 루시우와 메르시는 처음엔 실패하지만 토르비욘이 가세하자 눈에 띄게 나아진다. 겐지는 젠야타에게 함께하자고 하지만, 옴닉은 컨트롤 센터 스크린 너머로 보고 있기를 선호한다.
매일 아침 맥크리가 스크린으로 읽는 한조의 체크인 기록은 항상 같았다. 궁수는 매일 밤 2300시쯤에 2번 훈련장으로 내려가, 코드를 입력하고, 3시간 정도 뒤에 나간다.
맥크리는 월요일에 메모를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저녁식사 후, 그는 2번 훈련장으로 내려가 노란색 포스트잇을 컨트롤 기판 위에 붙여놓는다.
시마다 씨 -
보급품하고 식료품은 일주일에 2번 들어와.
뭐 필요한 거 있어
내가 전달해줄게
-JM
맥크리는 뻣뻣한 통증을 느끼며 알람이 울리기 12분 전에 일어난다 -- 0548시 -- 그리고 2번 훈련장으로 뛰어내려간다.
메모는 없어졌다. 아무것도 없다.
그 날 저녁, 제시는 다시 시도해 본다:
안녕 나 맥크리야-
뭐 필요한 거 없어?
화살깃/목재/도구/음식 그냥 말만 해
-JM
한조는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한다. 맥크리는 잠들었다가, 일어났다가, 훈련장으로 간다. 실망스럽게도, 또 한 번 : 응답이 없다.
수요일 저녁, 그가 붙여 놓는 포스트잇은 오렌지색이다.
시마다 씨
보급품 필요해?
-JM
목요일 저녁, 그는 한조가 다시 대답하지 않기를 선택하면 그냥 메모 놔두는 걸 관둬야겠다고 결심한다.
내일 장 보러 가
필요한 거 적어서 남겨두면 갖다줄게
-JM
금요일의 메시지에는 궁수가 아예 체크아웃을 찍지도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맥크리는 훈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기판 옆에 서 있는 한조와 마주친다. 한조는 맥크리에게 찢어진 노란색 포스트잇 조각을 내민다.
“펜을 찾아야 했다.” 그가 당황한 총잡이에게 설명했다.
맥크리는 깔끔하게 쓰여진 리스트를 읽는다 : 대나무, 잉크, 유리섬유 ²⁾장부촉, 화살깃, 실, 풀, 흰쌀, 참치, 사케, 그리고 엽차 네 상자. “이미 몇 개는 창고에 있는 것 같은데.”
²⁾접합용으로 나무・플라스틱・금속을 못같이 만든 것.
“요구한 물건들 값은 내가 치르겠다.” 한조가 뜯어보는 듯한 시선으로 맥크리를 휩쓴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제시와 눈을 마주치려 턱을 들어올린다. “짐이 되지는 않을 거다.”
제시가 어깨를 으쓱한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걸, 시마다 씨.”
“흠.” 한조가 불편한 듯한 소리를 내곤 왼팔을 유카타에 찔러넣는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뭘?”
“날 지원하는 것.”
제시가 턱선을 긁는다. “내가 온 곳에서는 말야, 친구, 그냥 손님을 환대한다고 하는데.”
“어디 출신이냐.” 한조가 코웃음친다. “텍사스냐.”
맥크리가 눈을 굴린다. “사실 남부 지방이야.”
한조의 눈동자에 혼란이 스며든다. “텍사스 남부?”
“아니, 미국. 미국 남부 지방.”
한조가 주제를 바꾼다. “그렇다면 넌 보답으로 뭔가를 바라겠군. 나를 회유하거나, 아니면, 네게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서 모욕하거나.”
“아냐.” 제시는 거의 놀란 것처럼 대답한다. “아니, 그런 건 원하지 않아.”
“그럼 뭐냐?” 한조가 실눈을 뜨고 총잡이를 면밀히 살핀다. 혼란스러워하는 시선이 찌르듯이 뱃속을 파고든다. 여전히 야생동물이군, 그가 생각한다. 속임수와 함정을 경계하는 야생동물.
“이건 어때, 어” -- 제시가 천장을 슬쩍 올려본다. 그곳에서 제안할 것을 찾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 “네가... 조준하는 걸 보여줘.”
궁수가 인상을 쓴다. “뭐.”
“훈련하는 걸 보여줘.” 맥크리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가 체중을 뒤쪽 발로 옮겨 싣는다. “조준이 정확하잖아. 모두 봤어. 나는 확실히 봤지.” 그가 왼쪽 팔꿈치를 흔들어 보인다. 거의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 나쁜 감정 없어. “우리 실력을 비교해 보자고.”
한조가 약간 공격적인 말을 들은 것처럼 맥크리를 째려본다. “네 총을 가지고?”
“아니, 침 뱉는 그릇 가지고.” 한조의 입술이 혐오감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지 못했다면 맥크리는 아마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래, 내 총으로.” 그가 허리춤에 걸린 홀스터에 꽂혀 있는 무기를 쓰다듬는다. “원래 난 혼자 훈련하는 걸 좋아하지만” --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한다 -- “뭔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한조가 대답하기까지 몇 초가 걸린다. “나와 함께 훈련하자고 하는 건가.”
“그래.”
한조가 혀를 찬다. “안돼.”
맥크리가 멈칫한다. “왜 안돼?”
“방해될 거다.” 한조가 주장한다. “그 시끄러운 무기와 네 시끄러운 입 모두.” 그는 맥크리가 항의하기도 전에 손을 들어올려 막는다. “만약 내가 조준하는 걸 관찰하고 싶다면, 그래 -- 봐도 좋다. 하지만 그것뿐이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잡담으로 내 집중을 흩뜨리는 건 금지다.”
제시는 거의 모든 평정심을 눈동자를 굴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그게 다야? 그냥 보는 거?”
“받아들이거나 떠나라. 이것 말고 다른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맥크리가 손을 들어올린다. “좋아, 됐어. 네 방식대로 하자고, 시마다 씨.”
한조가 코를 찌푸린다. “왜 날 그렇게 부르지.”
“뭐 말이야?”
“‘시마다 씨’. 그건 일본인을 부르는 제대로 된 호칭이다.” 그가 불쾌한 냄새라도 맡은 것처럼 콧김을 들이마신다. “지금까지 너는 날 상스러운 호칭으로만 불러왔지. 왜 이제는 그렇게 부르는 거냐?”
제시가 가슴께를 긁적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Well, 넌 제대로 된 일본 친구가 아니던가?”
한조가 삐딱하게 웃는다. 제시는 뒷목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낀다.
“그래.” 그가 총잡이를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치며 말한다. “그리고 네녀석은 제대로 된 아무것도 아니지.”
---
한조의 요구에 맞춘 연습이 시작된다 : 대화도 방해도 없고, 소음에 대한 인내도 없다. 맥크리는 말하는 것 자체를 금지당한다. 그는 최소 3미터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을 허락받는다. 그는 궁수의 자세나 실력에 대한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없었다. 거리를 지키는 선 안에서만 장비나 목표물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게 허용되었다. 한조는 맥크리가 반경 1.5미터 안으로 들어오는 걸 꺼려하는 것 같았다.
제시는 이런 조건들에 순응한다. 그는 의자에 앉아, 부츠를 창고 컨테이너 위에 올려놓고 지켜본다. 한조는 언제가 됐건 연습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에 훈련장을 떠난다. 그는 화살을 회수하고, 장비를 어깨에 걸치고, 맥크리에게 조용히 고개를 까닥여 작별을 고한다. 총잡이는 그가 떠난 뒤에 문을 잠그고 불을 끈다. 그는 샛노란 달빛 아래를 지나 숙소로 돌아간다.
---
토르비욘은 새로운 포탑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는 작업장 밖에 작은 정원도 만든다. 맥크리는 매일 저녁 2번 훈련장으로 가기 전에 물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설익은 열매들이 활짝 핀 노란 꽃들과 함께 늘어진다.
레나는 예전 멤버들이 쓰던 구역에서 고장난 노래방 기계를 찾아낸다. 윈스턴과 함께, 그녀는 기계를 고쳐서 휴게실 메인 모니터에 걸어놓는다. 저녁 식사 후에 팀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맥크리는 모두에게 ³⁾<Ring of Fire>를 불러준다. 루시우가 열정적으로 호응한다. 그는 몇 분 뒤에 라인하르트가 ⁴⁾<Careless Whisper>를 고함치며 부르기 시작하자 끙 하고 신음한다.
³⁾<Ring of Fire>
⁴⁾<Careless Whisper>
“다시는 춤 안 출 거야.” 그가 단호하게 노래 가사에 동의하자 앙겔라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 날 저녁 연습에서 제시가 그 노래의 색소폰 후렴구를 휘파람으로 불자 한조는 날카롭게 째려본다.
“그만해라, 바보 녀석.” 그가 투덜거린다.
“미안해, 시마다 씨.” 맥크리는 궁수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서는 걸 본다. 문신이 새겨진 팔 윤곽이 땀으로 젖어 반짝인다.
그는 한조가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걸 상상해 보다가, 차라리 돼지가 나는 걸 볼 가능성이 더 클 거라고 결론짓는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화력입니다.” 시뮬레이션 전투 12번째 실패 이후에 회의실에서 윈스턴이 발표한다. 아테나가 홀로그램 프로젝터 위에 팀의 낮은 인원수를 보여주는 영상을 덧씌운다. 윈스턴이 포인터로 그것을 클릭한다. “공격수, 전문가, 토르비욘의 포탑을 보충할 다른 엔지니어, 아니면 라인하르트를 도와줄 수비 요원.”
“저격수라도 괜찮을 거야,” 토르비욘이 테이블에 기대며 내뱉는다. “포탑을 엄호할 저격수. 옛날에는 아마리가 내 새끼들이 쏘는 동안 계속 지켜봐줬지. 단 한 놈도 그 앞을 지나쳐갈 수 없었어.”
맥크리는 앙겔라의 시선이 방 건너편에서 꽂히는 걸 느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시간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팀은 협동 훈련에서 애를 먹는다. 열기가 식는다. 맥크리는 시체로 가득찬 황갈색 협곡의 꿈을 꾸다가 두 번 깨어난다. 골짜기 위로 까마귀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희멀건한 해골이 붉은 사막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타이밍이 젬병이야, 꿈 속에서 한숨쉬는 듯한 목소리가 말한다.
---
지역 신문에는 낱말풀이 퍼즐이 있었다. 맥크리는 한조가 새 활시위를 시험해 보는 동안 그걸 풀어본다.
“흠.” 제시가 말한다.
“뭐냐,” 한조가 어깨 너머로 노려보며 낮게 말한다.
총잡이는 올려다보지도 않고 말하기 시작한다. “‘d’로 시작하는 6글자짜리 단어, ‘불쾌한 냄새가 나는 과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잡담에 대해 내가 뭐라고 했었지?” 한조가 훈련장으로 등을 돌리며 으르렁거린다. 그는 맥크리가 또 한 번 느릿한 말투로 거슬리는 잡담을 꺼낼 거라고 예상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는 다시 돌아본다. 맥크리는 신문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다.
한조는 줄을 당기고 조준한다. 쏜다. 화살은 정중앙에서 오른쪽으로 1센티미터 벗어난 곳에 꽂힌다. 그는 한숨을 쉰다. 경멸로 가득찬 목소리로, 한조가 중얼거린다. “두리안(durian).”
맥크리가 귀를 쫑긋 세운다. “흠?”
“두리안.” 한조가 반복한다. “‘d’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 단어.” 그가 활시위에 모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과일이다.”
그 단어가 맞다. 제시는 미소지으며 펜으로 신문을 톡 두들긴다. “고마워, 시마다 씨.”
똑똑한 친구야. 잘 쐈어.
다음날, 궁수는 ‘사제’라는 설명에 맞는 여섯 글자 단어로 ‘priest’를, ‘스페인어로 꽃’을 뜻하는 4글자 단어로 ‘flor’를, 그리고 ‘카우보이’를 대체하는 여섯 글자 단어로 ‘dimwit(멍청이)’를 제안한다.
맥크리는 훈련 마지막 30분 동안 한조가 머리를 내리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한다.
---
겐지가 4주 째 저녁에 그에게 말을 건다.
“한조에게 보급품을 가져다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습니다.” 제시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가 말한다. “제가 태만해 직접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형이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저도 그랬습니다.” 겐지가 고개를 기울인다. “필요한 게 뭔지 당신이 먼저 물어봤다고 하기에 놀랐습니다. 제 형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계신 겁니까?”
“Well, 겐지 군.” 맥크리가 오렌지색 쟁반을 닦아낸다. “그냥 손님을 환대한다고 하는 거야, 내가 온 곳에서는 그래.”
겐지가 말한다. “아, 그렇죠. 텍사스에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맥크리는 거의 눈을 굴린다. 또야? 이건 아니지. “그냥, 미국 남부 전체가 그래.”
겐지는 그의 형만큼이나 지리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개념이죠. 형이 무례하지 않게 받아들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호의를 보여도 그 동기를 의심하거든요.”
맥크리가 어깨를 으쓱한다. “우리가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다음 날 아침, 라인하르트와의 살인적인 강도의 운동 이후에 숙소에서 기어나오자, 또다시 통신 타워 위에 겐지가 보인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시마다 형제는 바다를 향해 함께 앉아 있었다. 머리끈 두 개가 바람에 깃발 한 쌍처럼 펄럭인다.
---
수면은 공포만을 가져온다. 맥크리는 높이 쌓인 건조한 모래 안에 죽은 새들의 시체가 가득한 꿈을 꾼다.
“몰골이 끔찍하군,” 한조가 훈련 때 그를 보고 놀라며 거칠게 말한다. 그는 피곤에 지친 총잡이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본다. “아픈가?”
“전혀,” 제시가 거짓말을 한다. 그는 입을 다물고 평상시의 침묵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돌아갔을 때 방 문 앞에는 상자가 있다. 한조가 작은 종이 상자 안에 엽차 티백 4개를 넣어 두고 간 거다. 오렌지색 포스트잇 쪼가리가 작은 깃발처럼 상자 끝부분에 붙어 있다.
맥크리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로 차를 한 잔 끓여낸다. 그는 차가 버본 위스키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잠든다. 악몽은 어쨌든 찾아왔지만.
---
하루 동안 한조가 보이는 빈도가 늘어난다. 루시우는 오후에 그가 화물선 선박장 근처를 걷고 있는 걸 본다. 레나는 그가 휴게실 공용 서가에서 책을 휙휙 넘겨보고 있는 걸 목격한다. 그는 누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 떠난다.
저녁 훈련 시간에 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떤 주제들은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맥크리는 한조와 말하는 게 금지되어 있는 주제를 세는 것보다 말할 수 있는 주제를 세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무기, 전투, 그리고 전술은 모두 꺼내도 괜찮은 주제였다. 농담과 장황한 이야기는 안 괜찮았다. 맥크리가 1분 이상 말하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한조가 말을 끊었다.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부르는 건 아직도 금지였다. 그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면 날카로운 시선이 돌아왔다.
맥크리는 가끔씩 그냥 한조가 '조용히 해라, 바보 녀석.'이라고 말하는 걸 듣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
5주차에 한조는 마침내 총잡이에게 함께 훈련하는 걸 허락한다. 그는 맥크리가 여섯 개의 움직이는 목표물을 총알 여섯 발만으로 제거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는 제시에게 재장전하고 다시 해 보라고 명령한다. 맥크리는 그렇게 한다. 그는 궁수의 놀란 얼굴에 대고 히죽히죽 웃지 않으려고 애쓴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했는데." 한조가 못 믿겠다는 듯이 말한다.
“그랬지.” 제시가 스피드로더를 돌린다. "그 임무에서 누군가를 죽일 생각은 없었거든."
"비슈카르는 분명히 널 죽이려고 했다."
그가 씩 웃는다. "Well, 누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지 보라고, 응, 시마다 씨?"
한조가 혀를 찬다. "아무리 멍청한 자라 해도 운이 좋을 수는 있지."
그는 생각한다 -- 아니, 확신한다 -- 한조가 눈을 돌리는 건 어느 정도 좋은 인상을 받아서라고.
---
"내가 간다!" 주말, 스트리트 하키 경기 중이다. 루시우가 도로 건너편에서 스케이트를 딸깍거리며 미끄러져 오자 라인하르트가 퍽을 패스해 준다. 그가 골대 쪽으로 퍽을 쳤지만 골키퍼인 토르비욘이 막아낸다. 같은 팀인 트레이서가 환호한다.
제시는 담배를 피우며 통로에서 구경을 한다. 그는 한조와 겐지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가끔씩, 겐지가 하키 경기로 형의 주의를 끌기 위해 뭔가를 이야기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한조는 편안해 보인다.
---
6주차, 한조가 접근해왔을 때 제시는 익어가고 있는 토마토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는 한조가 무뚝뚝하게 '바보 녀석'하고 인사하자 놀라서 뛰어오른다.
"내 동생이 너희 조직에 인재가 더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맥크리를 노려본다. "이게 내가 훈련하는 걸 보자고 한 이유냐? 너희 팀에 내 지원이 필요해서?"
제시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어, 아니, 그런 의도는 없었어." 그가 놀란 걸 얼버무리듯이 약간 바보처럼 씩 웃는다. "그것보단,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지."
한조가 생각에 빠진다. "너희 팀을 지켜봤다. 너희에겐 응집력이 부족해. 네 동료들에게 부족한 전술적 정확성을 내가 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제시는 '개인적인 관심'이라는 말에 한조가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당황했는지 알 수 없었다. "Well, hey, 시마다 씨. 도와주겠다고 하면 윈스턴이 정말 좋아할 거야. 그냥 참가하겠다고 말만 하면--"
"아니." 한조가 날카롭게 말을 자른다. "너희 오버워치에 가담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전투 시뮬레이션을 지원하는 것뿐이다. 그게 최종이고, 그 이상은 없어."
맥크리가 물 호스를 잠근다. "상관없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도와준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한조가 눈썹을 치켜올리고 맥크리를 재어 본다.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된다면, '바보 녀석'말고 다른 호칭으로 널 불러야 할 것 같군."
제시는 이 대화가 꼭 야생 동물을 인내심 있게 꾀어내서 마침내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 같네."
"앞으로는 이렇게 부르겠다." 한조가 떠나기 전에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훈련 시간에 보지, 양키 씨(Yankee-san)."
---
팀의 전력 통계 수치는 한조가 시뮬레이션에 가담한 후 두 배로 늘어난다. 궁수는 전(前)오버워치 최정예 요원들과 비등한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시뮬레이션 전투의 AI 적을 달리기, 오르기, 저격 모두에서 월등하게 이긴다. 한조는 팀을 완벽하게 보충한다. 그의 태도는 딱딱했지만 무례하지 않았고, 비평은 간결하게, 사기를 꺾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졌다. 윈스턴과 아테나는 그를 얼마나 칭찬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의 통찰력으로 현존하는 5개 임무 전략 중 2개를 아예 새로 써낼 수 있었다.
맥크리는 그 별명만 아니었어도 이 열기에 완전히 동참할 수 있었을 거다. 고된 훈련이 끝날 때까지 한조는 계속해서 그 별명으로 그를 불러댔고, 그는 부루퉁하게 탈의실로 들어간다.
어쨌든 궁수는 전투를 진짜로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맥크리는 컨트롤 센터 스크린으로 그가 싸우는 모습의 리플레이 영상을 본다. 날개처럼 민첩하게 벽에서 벽으로 뛰어다니며, 창백한 화살을 퍼부어 재빠르게 팀원들을 커버하는 모습. 한조가 감시탑을 오르는 모습. 한조가 포탑을 파괴하려고 하는 로봇을 저격하는 모습. 한조가 활의 넓은 부분으로 지나가는 목표물을 매섭게 후려치는 모습.
제시는 황급히 스크린을 꺼 버리기 전까지 리플레이를 다섯 번 더 본다.
---
아침 조깅 후 열을 식히고 있을 때 한조가 말한다. "파란색."
제시가 숨을 헐떡이며 올려다본다. "뭐라고, 시마다 씨?"
"좋아하는 색깔." 한조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숨을 내쉰다. 맨 어깨가 땀으로 젖어 번들거린다. "전에 물어봤잖나. 쉴새없이 떠들던 도중에 말이다. 답은 파란색이다."
맥크리가 기억해내면서 낮게 신음한다. 그는 멈춰서서, 한조의 목울대를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고 몸을 숙여 신발끈을 묶는 척한다. "아, 맞아. 생각나네.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이지. 네 얼굴 같은. 네가 했던 쓸데없는 소리들 중에 몇 가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한조가 목을 가다듬는다. "가자, 양키 씨. 윈스턴이 훈련장에서 기다릴 거다."
거의 웃을 뻔했다. 그 바보같은 망할 별명만 아니었다면.
---
"내일 저녁 먹으러 와."
한조가 활을 내린다. 그가 제시를 돌아본다. "뭐?"
7주째다. 맥크리는 피스키퍼를 해체해서 닦고 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부품들 위로 시선을 올려 한조를 쳐다본다. "팀원들이랑 식사하자고. 내일 저녁. 치킨 데리야끼야. 너도 와야지."
한조가 얼굴을 찌푸린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맥크리는 낮게 키득거렸다. "라인하르트는 매번 침례 교회 하나를 먹일 양을 만들어 버리거든. 입이 하나 늘어나면 우리한텐 좋은 일이야."
그는 한조가 침묵을 지키며 거절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다음날 밤에 그가 동생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방 전체가 고요해진다. 팀원들이 서로를 흘끗흘끗 보는 동안 라디오만이 떠든다. 한조는 그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가장 놀란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것처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들어오지 못하고 망설인다.
제시가 따뜻하고 느릿하게 "안녕하신가."하고 인사하며 침묵을 깬다.
"좋은 저녁." 한조가 말하고, 팀은 친절하게 맞아준다. 그는 겐지와 맥크리 사이에 앉아서 대화 없이 식사한다. 총잡이는 한조가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식사하는 방식에 감탄한다. 부스러기 하나 흘리지 않았다.
시마다 형제 둘 다 앙겔라가 설거지하는 걸 돕는다. 한조는 음식에 대해 라인하르트에게 뻣뻣하게 감사 인사를 한다. 기사는 활짝 웃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원기 왕성하게 그의 어깨를 두들긴다.
"음식 괜찮았어?" 제시가 훈련 중에 묻는다.
"그 덩치 큰 자는 잘 싸우지." 한조는 그 말밖에 하지 않는다.
토르비욘은 그가 식사 시간에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레나는 이틀 후 한조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 말에 내깃돈을 걸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 빠짐없이 나왔다.
---
감시 기지에 구금된 기간이 끝날 때쯤, 궁수는 완전히 섞여들어 갈매기나 정원처럼 일상적인 존재가 된다. 어느 날 저녁에는 루시우가 스케이트를 타고 트랙을 내려오면서 정원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한다. 한조는 격자 구조물을 타고 덩굴지며 올라가는 흰 꽃들을 보고 있었다. 맥크리는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며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루시우는 바람 소리에 섞여서 그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제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한조 : 아주 천천히, 아니면 너무 빠르게 일어나는 일들.
따로따로 저녁을 먹는 날이었다. 토르비욘은 일찍 자러 갔다. 레나, 윈스턴, 라인하르트와 루시우는 휴게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앙겔라는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다. 겐지와 젠야타는 절벽으로 명상하러 갔다. 맥크리는 애호박과 토마토에 물을 준다. 그는 벌레 몇 마리를 잡아내고 토르비욘이 닭장을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2번 훈련장으로 갔지만 한조가 없었다. 제시는 스크린을 켜고 어젯밤에 둘이 나간 이후로 출입 기록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아낸다.
“통신 연결 가능합니까?” 그가 음성 인터페이스로 아테나에게 묻는다.
“1번 훈련장에 마지막으로 체크인했어요.” 아테나가 대답한다. “두 시간 전입니다.”
제시가 목을 긁는다. “그럼, 체크아웃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감시 기지를 가로질러 1번 훈련장에 도착할 때까지 5분이 걸렸다. 으스스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기분이 떨쳐지질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건 한조답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참 우습다. 그 두 명이 함께하는 규칙적인 일상이 생겼다는 게 말이다. 그는 훈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체크인하고 로비를 둘러본다. 비어 있다. 맥크리는 훈련장으로 걸어가 받침대에 기대어져 있는 한조의 화살통과 푸른색 활을 발견한다. 맥크리는 얼굴을 찌푸린다. 주인의 손 밖에 있으니 그 무기들은 쓸모 없고, 거의 무해해 보이기까지 했다.
탈의실 쪽에서 계속해서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전기 때문에 공기가 찌릿찌릿하다. 샤워기 중 하나가 계속 켜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수증기 너머를 눈을 찡그리고 쳐다본다. 그냥 놔두고 돌아서려고 하던 때였다.
거칠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양 - 키 - 씨.”
그의 뒤편에 있는 모퉁이 벤치에 한조가 앉아 있다. 양볼이 붉고 얼굴은 젖어 있다. 그는 도금한 호리병처럼 생긴 술병을 오른쪽 무릎에 대고 아무렇게나 흔들고 있다.
취했다.
“내가 훈련을 빼먹었지.” 한조가 오른쪽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으며 게으르게 말한다. “날 혼내려고 이 먼 길을 왔나?”
제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오른쪽 귀가 웅웅거린다. 정전기 때문인지 올라가는 심장 박동수 때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조는 자극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차림으로 벤치 위에 기대앉아 있다. 유카타 왼쪽 부분이 배까지 다 흘러내렸다. 그 광경에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제시는 문신을 따라 팔에서 가슴팍까지 그의 맨살과 근육을 시선으로 핥아올리고 싶은 욕구에 맞서싸웠지만 패배한다. 그의 시선은 수치를 잊는다. 충동이 그를 괴롭힌다. 몇 달을 참았는데, 몇 달을 한조에게 맞춰 천천히 걸으면서 목말라했는데. 지금 이건 서로 쳐다보기만 하는 것 이상을 해볼 근사한 기회 아닌가?
맥크리는 인상을 쓴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한조가 그를 놀리는 것 같았다.
제시는 자기 목소리가 쉬었다는 걸 깨닫는다. “시마다 씨, 여길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조가 콧방귀를 뀌곤 한 모금을 더 마신다. “넌 멍청해.”
제시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이 개자식은 그에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한조가 벤치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방을 활보한다. 술병에 입술을 대고 음흉하게 쳐다보면서. “텍사스에선 이렇게 말하지 않나, 양키 씨? ‘여기서 당장 나가’ 무슨 마을 보안관처럼?”
제시는 당장이라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그는 입을 쩍쩍 다신다. “난 텍사스 출신이 아냐.”
“맞아.”
“아냐.”
“맞아.”
“아니라고.”
한조가 가까워져 오면서 노려본다. “네가 어디 출신인지 알 게 뭐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약간 실망스럽게도) 궁수는 그를 지나쳐간다. 제시는 따라가기 위해 돌아선다. 세라피는 옆구리에 접어서 낀 상태다. “여기서 이렇게 술을 퍼마시고 있는(drink like a fish)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한조가 어깨를 으쓱한다. 유카타 자락이 다시 떨어진다. 그는 문신을 한 팔 너머로 맥크리를 쏘아본다. “내가 강 위로 충분히 올라가면, 돌아와서 이유를 알려주지.”
제시는 그가 뭘 인용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왜인지 알 수 없었다. 한조가 활을 집어들려고 몸을 굽혔을 때, 그는 끼어들기로 한다.
“그거 내려놔,” 그가 한조의 화살통으로 손을 뻗으며 말한다.
한조가 제시의 기계 팔을 쳐낸다. “내 물건에서 그 앞발 치워.”
“너 지금 엄청 취했다고, 친구, 뾰족한 거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할 줄 알아.”
“돌려줘!” 한조가 달려든다. 제시는 궁수가 비틀거리는 동안 화살통을 뒤로 빼고 활을 휙 들어올린다. “이 도둑 --”
“짐 싸, 시마다 씨. 여기 있으면 안 돼.”
“내가 그러고 싶다면 여기 있을 거다!”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 무기 근처에 있으면 안 된다고.”
“내 화살을 돌려주지 않으면 네 지저분한 목을 잘라 버리겠다.”
제시가 비웃는다. “그래? 칼은 어딨는데.”
“난 절대 무기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뇌가 반이라도 남아 있다면 내게 그걸 증명해보라고 하지 마라. 그냥 믿는 게 좋을 거다, 양키 씨” -- 한조가 다시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 “널 찌르고 싶었다면 필요한 칼을 뽑았을 거다.”
제시는 한조의 노출된 옆구리에 신경이 분산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대화가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조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보는 게 터무니없지만 않았어도. “어디에서?”
한조가 생각한다. 그리고 능글맞게 웃는다. “내 엉덩이에서.”
그만하면 충분했다. 그는 화살통을 잡아 곧바로 가슴에 끌어안는 한조의 팔을 잡아끈다. 맥크리는 깜짝 놀란 한조의 어깨를 왼팔로 감싸고 그를 이끈다. “이리 와.”
한조가 팔 밖으로 꿈틀거려 벗어나기 전에, 그들은 로비를 다 지나간다.
“어디로 가는 거냐.”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때쯤 한조가 비틀거리며 맥크리에게서 떨어지며 투덜거린다. 그리고, 거의 죄책감을 느끼는 목소리로 : “샤워기를 틀어놓고 왔는데.”
“내가 돌아가서 끌 거야.” 제시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주먹으로 친다. 문이 열린다. 한조는 화살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고분고분하게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제시는 뒷벽에 기대서서,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약간 떨리는 숨을 들이쉰다. 그는 한조를 본다. 한조는 바닥을 보고 있다. 그리고 제시를 본다. 제시는 눈을 돌려 문을 본다.
“가끔씩,” 한조가 중얼거린다. 그리고 후회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 “난 술을 마시지.”
“잘 알겠어.” 제시가 대답한다.
“난 주정뱅이가 아니다.”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내 사생활이다. 너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 없어. 난 너희 오버워치 요원이 아니고 그렇게 될 일도 없을 거다. 내가 취할 때까지 마신다고 해도 그건 내 선택이고 내가 질 짐이야.”
제시는 한조의 묶은 머리카락이 느슨하게 풀리려고 하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손을 뻗는 도중에 손가락이 부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머리끈을 바로잡아 줬을 거다. 그 대신, 그는 한숨을 쉰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습관이 있어, 시마다 씨.”
한조는 취한 채로 조용히 생각에 빠진다. 그의 시선은 제시에게로 올라간다. “넌 왜 담배를 피우지.”
“좋아하니까.”
“담배는 독이야.”
“사케도 독이지만, 시마다 씨. 난 그걸 가지고 널 힘들게 하진 않을 거야.”
한조가 혀를 찬다. “털이 많군. 수염을 다듬기는 하나?”
“면도기도 없어.”
한조가 술병을 흔들어 술이 출렁거리게 만든다. “아주 잘 어울려. 야성적인 얼굴이야.” 제시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시무룩하게 말한다. “이 일 때문에 날 경멸하겠지. 날 웃음거리로 삼고 내 명예를 비난할 테지.”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한조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제시의 벨트 버클 쪽으로 떨어져 있다. “이건 무슨 뜻이지?”
제시는 궁수가 제발 그의 가랑이 쪽 말고 아무거나 다른 쪽에 있는 걸 봐주기를 바란다. 그는 온몸으로 한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숨결에 실려오는 알코올 냄새 아래로 희미한 땀과 비누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한조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오면, 제시는 놀라서 펄쩍 뛰어오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건 약자야.”
한조가 기대온다. “맞춰 보지. 멍청한 카우보이 대화를 하자고.”
“맨정신일 때 알려줄게.”
한조가 셔츠 깃을 움켜잡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제시는 홱 잡아당겨져 바닥으로 넘어진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깨로 그보다 작은 남자를 감싸 받친다. 모자가 앞으로 젖혀진다. 그는 활을 떨어뜨린다. 그들은 부딪힌다. 한조는 그를 밀쳐 벽에 옆으로 부딪히게 한다. 총잡이는 숨쉬는 것을 잊어버린다 : 한조가 무릎에 차고 있다가 그의 허벅지에 들이댄 나이프.
그가 너무 빌어먹게 가까이 있어서 제시는 날렵한 갈색 홍채의 줄무늬까지 볼 수 있었다.
“무슨 뜻인지 말해.” 한조가 얼굴 1센티미터 앞에서 으르렁거린다. “아니면 죽인다.”
천천히, 제시는 다시 한 번 잡혔다는 걸 깨닫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한 가닥 실로 매달려서. 지금 얼마나 쉽게 그를 끌어당겨 안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그는 기쁨과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는 밀쳐내고 싶었다. 그는 싸우고 싶었다. 그는 그 입술을 담배 냄새 나는 키스로 질식시켜 버리고 싶었다. 그는 총을 뽑아 한조의 얼굴에 들이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 행동 모두가 그의 죽음을 뜻할 뿐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적에 의해 맞는 때 이른 죽음. 그들 둘 다 킬러였지만 한조는 용이었다. 그는 충분히 경고했다. 다음 공격은 빗나가지 않을 거다.
제시는 입술을 적신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젓는다.
“해봐.” 그가 실에 매달린 채 내뱉는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 알람이 높은 소리로 울려댄다.
한조가 멈칫한다. 그는 맥크리를 놓아주고, 밀쳐내고, 벽으로 기대선다. 그들은 시선으로 놀라움과 증오와 갑작스러운 열기를 교환한다. 한조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다. 제시가 손을 뻗어 거의 닿으려 할 때 한조가 몸을 숙여 활을 잡는다. 그는 빠르게 문을 통과한다. 제시가 비틀거리며 그를 쫓는다. 박차 소리가 울린다. 한조는 사라졌다. 가득 차오른 노란 달빛 아래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맥크리는 거칠게 벽에 등을 기댄다. 그는 구겨진 셔츠 깃을 만져보며 심호흡을 한다.
이명 소리에 맞춰 심장이 천둥치듯 쿵쿵댄다 : 바보(fool), 바보(fool) --
넌 바보로군(You are a fool).
[역주]
¹⁾팡 지 케이주(pão de queijo) : 포르투갈어로 ‘치즈 빵’이라는 뜻. 브라질의 보편적인 간식 겸 식사용 빵이다.
²⁾장부촉 : 접합용으로 나무・플라스틱・금속을 못같이 만든 것.
³⁾Ring of Fire : 노래는 이쪽에서 들어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l3dsHCScxU
⁴⁾Careless Whisper : 이 노래는 놀랍게도 들어본 적 있는 노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zGwDsrQ1eQ
챕터6
Hang the Fool - Chapter 6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553599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 비슈카르 사
* 깁스 프로토콜 - 작전명 : 블랙햇
* 시스템 1단계 - 감시 기지 침입
* 위치: 36°08'28.8"N 5°20'39.1"W
* 작전 관리 간부: 산제이 코팔
* 지휘관: 아펙서스
* 파견 요원: 스칼릭스, 테셀라, 카이랄, 아마릴리드, 파린드로스
* 지원: 20
* 메모: 목표 지점이 명확히 보이는 지브롤터 연안 구역에 팀 배치. CET 2000시 기준(UTC+01:00) 금요일 저녁 텔레포터 준비 완료 후 1단계 감시 기지 침입 예정.
* 메모: 본사 정보 회수 - 중요도 ‘높음’. 시료 C-1193 회수 - 중요도 ‘보통’. 임무 수행을 위해 방해하는 적들은 무력화할 것.
기록: 작전 관리 간부 코팔이다. 최종 확인을 마쳤다. 진행을 허가한다.
기록: 요원들 모두 행운을 빈다. 브리핑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도록 : 세상은 오버워치의 귀환을 원하지 않는다.
기록: 1단계, 대기 중.
---
엘리베이터 밖에서, 이명이 잦아들자, 제시는 숙소로 직행한다. 그는 박차를 울리며, 힘겹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들썩이는 가슴을 안고 한조의 방 문 앞으로 간다. 그는 주먹으로 문을 두들긴다. “시마다 씨, 이봐.”
대답은 없다.
두 번 더 두들긴다. 제시는 금속 의수를 문에 기댄다. 그는 콧구멍으로 빠르게 숨을 내쉬곤 입술을 적신다.
“시마다 씨, 나와 봐, 지금.” 그가 목소리를 높인다. “안에 있어?”
침묵. 제시는 가능성을 따져 본다. 감시 기지에는 궁수가 갔을 법한 장소가 꽤 많이 있다. 한조는 절벽을 올라가서 술이 깰 때까지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도 있었다. 제시는 술 취한 한조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낭떠러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빠르게 털어버린다. 그는 그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술에 취하고도 한조는 달아났다. 이 시점에서, 뭐가 한조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지 누가 알지? 적어도 제시는 아니었다.
맥크리는 숙소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정원을 확인하고, 2번 훈련장에 다시 가 본다. 한조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는 낙심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벽에 박힌 빨간 눈처럼 시계가 빛난다 : 2248. 그는 세라피를 던지고, 모자를 벗어 옷장에 놓고, 옷장을 걷어차고, 돌아서서, 빈 담뱃갑을 갉아먹힌 러그 건너편으로 걷어차버리고, 발뒤꿈치로 텅 빈 엽차 상자를 밟아서 구겨버린다. 맥크리는 의수로 얼굴을 문지르고, 턱을 꼬집고, 거친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한조는 자기 몸을 스스로 챙길 수 있다. 다른 한편, 맥크리는, 빗속에 버려진 개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창틀 너머로 삐죽삐죽한 절벽 실루엣이 보였다. 밝게 빛나는 드론들이 줄지어서 통신 타워와 윈스턴의 연구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맥크리는 관능적인 한조의 목울대를 생각하는 대신, 금속에 비치는 빛 - 인공 조명과 여름밤의 달빛 - 에 집중하려 애쓴다. 잘 발달된 가슴, 문신이 새겨진 어깨. 늘씬하게 잡힌 복근.
그는 엄지와 검지로 콧날을 문지른다. 지브롤터에 있는 담배를 전부 피운다고 해도 머릿속의 이 이미지들은 타버리지 않을 거다. 다른 종류의 불꽃으로 정신을 둔하게 하고 싶다면, 버본 위스키도 있다 - 하지만 그는 이미 찌릿하게 불이 붙었다. 제시는 한조의 눈빛과 목소리 때문에 온몸이 안에서부터 화끈거린다. 허벅지 근처에서 찰랑거리던 그 망할 술잔.
그는 샤워를 한다 : 뜨거운 물, 그 다음에 차가운 물. 그는 피스키퍼를 닦고 기름칠을 한다. 그는 차를 한 잔 마신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맥크리는 포기한다.
운이 없어, 무의식 중에서 탁한 목소리가 한숨을 쉰다.
“가서 딸이나 쳐(Go blow yourself),” 그가 내뱉는다 - 그리고, 따뜻하고 담배 냄새 나는 침대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고, 비참한 기분으로 어둠 속에서 자위한다.
---
맥크리는 아침에 일어나 윈스턴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는다. 다가오는 시베리아에서의 큰 임무를 앞두고 팀을 충분히 휴식시키기 위해 오늘과 내일 - 목요일과 금요일 - 훈련을 취소한다고 쓰여 있었다. 모든 요원에게 1번 훈련장 샤워실을 쓸 때 샤워기 끄는 걸 잊어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약간 수동공격적인 요청도 있었다. 어제 물을 너무 오래 틀어놔서 바닥에 물이 넘쳤던 모양이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방을 대충 치우고, 옷을 입고, 복도를 걸어내려가 다시 한조의 방 앞으로 간다. 문은 닫혀서 잠겨 있다. 그는 조금씩 다가서며, 왼손을 들고 가볍게 주먹을 쥔다. 그는 멈춘다. 한조는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숙취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제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을 두들긴다고 해서 그게 바뀌는 건 아닐 터였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거에요. 오래 전 아침에 들었던 안젤라의 고지식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그걸 일깨워준다. 제시는 한숨을 쉬고 자리를 떠난다.
그들은 저녁 시간에 재회한다. 한조는 겐지와 함께 도착한다. 겉모습은 보통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맥크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한조가 얼마나 빨리 시선을 돌리는지를 알아차린다. 특히 지난 2주간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옆에 나란히 앉을 때 - 한조는 평소처럼 깔끔하고 조용히 식사한다.
맥크리는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자기 혼자만 한조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다고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보아도, 한조는 그저 변함없이 과묵해 보인다. 아무것도 잘못되거나 이상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크리는 한조의 옷소매가 스치기라도 하면 의자 위로 뛰어오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아무에게도 설명해낼 수 없을 것이다.
저녁 식사 후, 한조가 숙소로 돌아가는 걸 봤을 때 그는 (식후 세 개피째의 담배를 피우며) 정원의 화분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맥크리는 황급히 수도꼭지를 잠그느라 물에 흠뻑 젖을 뻔한다.
“이봐,” 맥크리가 겨우 그를 따라잡으며 소리쳤다. “이봐, 시마다 씨. 잠깐만 좀, 기다려 줄래?”
한조가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지자, 제시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오른다. “원하는 게 뭐냐.”
맥크리가 손에 묻은 물을 털어내고 세라피 끝자락에 닦는다. “어, 그냥 네가 괜찮은지 보려고, y'know, 음, 어젯밤 이후로.”
한조의 표정은 거의 즉시 바뀐다. 그는 멈춰서, 제시와 마주서고, 노려본다. “난 괜찮다.”
한조가 이렇게 방어적인 투로 말한 적이 있었나? “아, 잘됐네. 나도 그래.” 제시가 모자를 기울여 보인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 좀 이상한 저녁이었잖아.”
“이상한 저녁이라.” 그는 제시가 그를 위협하기라도 한 것처럼 반복해서 말한다. 그는 발끈 화를 내기 직전인 것처럼 어깨를 뒤로 젖힌다. “그게 무슨 뜻이지.” 총잡이가 직접 그 얘기를 꺼내 보라는 듯이, 신중한 목소리였다 : 목숨이 아깝다면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마라.
제시는 순진한 척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Y'know. 우리 그렇게 많이 대화해본 적 없잖아.”
그런 설명을 기대한 게 아니었다는 듯이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우린 충분히 많이 대화한다.”
“그랬던 것 같네.” 제시가 머리를 긁는다. 이제 그는 한조가 어젯밤 일을 기억이라도 하긴 하는 건지 궁금해한다.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야. 계속 괜찮은 건지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어.” 한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제시가 불쑥 내뱉는다. “사실은, 네가 날 피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난 식사할 때 네 옆에 앉았다. 난 지금 여기 네 앞에 서서, 너와 직접 말하고 있다. 이것들 중 뭐가 내가 널 피한다는 인상을 주지?”
제시의 뱃속이 훅 들렸다가 가라앉는다. 한조의 목소리 톤만 아니었다면 이 말은 완전히 긍정적이었을 거다 --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휙 사라졌다. 좋아, 날 피하는 게 아니군. “아냐, 네가 맞는 것 같네. 그냥 내가 쓸데없이 걱정했던 것뿐이야.”
한조는 제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턱을 들어올린다 : 제시가 이보다 더 유혹적인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만한 몸짓. “널 피하는 건 훈련에 해로울 거다. 오늘 저녁 훈련장에서 보지. 시베리아에서는 모든 요원들이 최대치로 능력을 발휘해야 할 거다. 그 어떤 실수나 계산 착오도 허용되지 않아. 그 과학자가 시뮬레이션 훈련을 취소해서 실망했다. 그런 관계로 : 우린 훈련해야 해.”
“어.” 제시가 담배를 뻐끔거린다. “알았어.”
“네 총으로 할 수 있는 걸 전부 보고 싶다.”
제시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그래?”
“내 말을 들었잖나, 양키 씨.” 그리고 나서, 눈을 가늘게 뜨고 : “전부.”
찌릿한 느낌이 맥크리의 뒷목을 내달린다. 그는 입술을 일그러뜨려 담배를 강하게 문다. “내가 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말이지, 응?” 제시가 엄지를 벨트에 건다. 그는 담배를 이 사이로 물며 씩 웃어보인다. “좋아.” 그는 가볍게 눈썹을 위아래로 씰룩거린다. “알겠어, ¹⁾친구(friend).”
궁수가 뒤로 물러난다. 젠장, 제시가 생각한다. 너무 도발적이었어. 눈썹은 하지 말걸 그랬다.
한조는 제시를 몇 초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본 끝에 중얼거린다. “친구.”
“그래.” 맥크리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알잖아. 넌 내 친구야.”
“친구.”
“친구.” 제시가 반복한다. “프랜드, F-R-I-E-N-D, y'know, 다섯 글자” -- 그가 멈추고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 “어, 여섯 글자 단어로 뜻은 --”
“무슨 뜻인지는 나도 안다.” 한조가 소리친다. 그는 물러난다. “오늘 저녁에는 최상의 상태로 훈련장에 와라. 쉽게 봐주지 않을 거다.”
“고마워, 시마다 씨.”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제시가 외친다.
맥크리는 발을 끌며 가슴 보호대를 가지러 방으로 간다. 그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어젯밤 그를 벨트 버클 같은 사소한 것 때문에 죽이려고 했던 남자에게 그렇게 쉽게 굴복한 게 불공평한 일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는 아무래도 이 모든 걸 너무 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한조는 취했었다. 경험상, 취하면 사람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하게 되는 법이다. 여기서 생각할 거리가 더 생긴다. 어젯밤 일은 묻어두고, 그가 맨정신일 때 어떻게 그 안의 개자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는 것.
무심결에, 맥크리는 한조가 젊었을 때도 이랬을지 궁금해한다. 무뚝뚝하고, 매력적이고, 위협적이고, 무자비하고, 잘생겼고, 엄청나게 자존심 센 남자. 그는 나중에 겐지에게 물어볼 것이다.
숙소 방으로 가는 길에, 그는 복도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빛을 보고 음악 소리를 듣는다. 그는 문 근처에 멈춘다. 루시우의 방이다.
“Hey, 'sup, 이스트우드?” 음악 치료사는 나무로 된 ²⁾파파산 의자의 쿠션에 기대앉아 있다. 소리 증폭기가 연주되고 있었다. 그는 밝은 노란색 운동복 바지와 웃고 있는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달랑거리는 발 끝에 개구리 슬리퍼가 걸려 있다. 그는 씩 웃고 헤드폰을 내린다. “잘 지냈어, man?"
"³⁾개구리 머리카락처럼 잘 지내고 있지." 맥크리가 느릿하게 말한다. “넌 어때?”
루시우가 콧방귀를 뀐다. “뭐? ‘개구리 머리카락처럼 잘 지내’? Man, 너희 남부 사람들 속담은 가끔 진짜 이상해.”
“맞아, 네가 이건 좋아할 줄 알았지.” 그는 빠르게 방 안을 훑어본다. 루시우의 방은 기운을 북돋우는 분위기였다 : 밝은 색 커튼, 라임색 베개, 전세계를 투어하는 동안 찍은 사진과 풍경 포스터들. 계란 껍질처럼 볼록한 청록색 방음판이 콘솔과 녹음기 옆 벽을 둘러싸고 있다. 오디오 믹서와 턴테이블 위에는 루시우의 트레이드마크인 청개구리 인형이 올려져 있다. 침대 위에는 브라질 남자 하키 팀의 로고가 박힌 형광 노란색 깃발이 걸려 있다. 로고 아래에는 RIO 2056 - GOLD 라는 글씨가 있다. 로고 위에는 검은 펜으로 쓴 사인들이 휘갈겨져 있었다.
루시우가 증폭기를 끄고 일어선다. “이봐, man, 넌 어떤지 몰라도 난 윈스턴이 오늘 훈련 취소해서 너무 좋아. 나 밤샜어, 라인하르트랑 레나랑. 다같이 반지의 제왕 봤어. 한숨도 못 잤어.” 그가 숨을 내쉰다. “1편하고 2편이 무슨, 다 합쳐서 4시간이나 되는 줄도 몰랐어.”
“반지의 제왕을 안 봤다고?” 맥크리가 턱선을 긁는다. “세상에, 그거 고전 명작이잖아.”
“맞아, 라인하르트가 그랬어.” 루시우가 발을 까닥거린다. “걔가 진짜 괜찮던데, 이름이 뭐더라 -- 간달프. 쩔었어. 막 이렇게” -- 루시우가 장갑 낀 손을 벌리고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흔든다 -- “넌 지나가지 못한다(you shall not pass)” -- 그는 주먹을 쥐고 기다란 물건을 땅에 박는 것처럼 내리찍는다 -- “‘브아아아,’ 그리고 그 악마같이 생긴 게 막, ‘그아아아,’ 그리고 프로도는 막” -- 그가 양손을 뺨에 대고 눈을 크게 뜨며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 “간-달프!‘” 루시우가 자기 허벅지를 찰싹 때린다. “진짜 대단했어, man. 옛날 영화가 그렇게 긴장감 넘칠 줄은 몰랐다고!”
“그래, 나도 그 부분 기억나네. 산에서 나오는 부분이잖아.”
“Damn, man, 그리고, 바로 그 다음에? 오크가 그 남자 쐈잖아, 그 ‘모르도르에 단순히 걸어 들어갈 수는 없다(one can’t just walk into Mordor)’하는 걔.”
“보로미르.”
“그래, 보로미르.” 루시우가 고개를 젓는다. “와, man, 나 울 뻔했어. 그렇게 죽어선 안 될 사람이었는데. 그냥 도와주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맥크리는 온몸에 화살이 박혀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남자를 떠올릴 때 뱃속이 꼬이는 걸 무시하려고 한다. “맞아, 그랬지.” 그는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잠시 멈춘다. “이봐, 뭐 좀 물어볼게 -- 혹시 면도기 있나?”
루시우가 자기 턱을 가리킨다. “뭐, 수염 깎게? 있어, man. 빌려줘?”
“괜찮다면 빌려줘. 재소집 이후로 내 걸 가져오지 않아서, 얼굴에 자라난 이 숲을 좀 정리해야겠어.”
“문제 없어, man. 여기.” 루시우가 뛰어올라 화장실 안으로 사라졌다가 검은색 면도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맥크리는 루시우에게 고맙다고 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턱수염을 다 다듬고 나서,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본다. 맥크리는 턱을 움직여 보며, 눈가에 묻은 작은 눈곱을 떼어내고 코 밑을 문지른다. 그러고선 거울에 앞으로 기대며, 눈을 내리깔고 크게 씩 웃는다. 거울에 비친 상에 대고 그가 낮게 말한다. “이봐, 잘 있었어, 시마다 씨? 나 어때? 이제 야성적인 얼굴 아니지.”
약간 바보 같을지도, 그가 생각한다.
맥크리는 오른손을 L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거울에 대고 쿡 찔러넣는다. “내 총으로 할 수 있는 걸 전부 보고 싶다고, huh?"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고, 씩 웃어보이며, 총신에서 나오는 연기를 불어서 날리는 흉내를 내며 손가락 끝에 입김을 뿜는다. "하하, 그래. 보여주지."
그는 2번 훈련장으로 가기 전에 그렇게 혼잣말했다 -- 그는 그곳에서 그 동안의 훈련 중 가장 불쾌했던 시간을 보내고, 피곤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훈련은 그냥 실력을 보여주는 것에서 누가 더 정확하게 쏘는지를 겨루는 경쟁이 되어버렸다. 한조는 거의 모든 위치에서 그를 이겼다. 제시는 결국 한조가 더 잘 쏜다는 걸 인정하고 총알을 낭비하는 걸 그만뒀다.
그들은 조용히 탈의실이나 엘리베이터를 지난다. 밤하늘 아래로 걸어나갈 때가 되어서야 한조가 짧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나저나, ‘BAMF'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시가 새로운 약자를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인다 -- 로빈 훗보다 더 잘 쏘지 못하는 카우보이에게 어울리는 걸로 말이다.
“뱀보다 비열해,” 그가 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이 모든 게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느낌, 따뜻하지만 이상한 기시감을 털어버리려 애쓰면서.
다음날 아침, 토르비욘은 다가오는 임무 때문에 윈스턴이 부탁한 물건 준비를 끝내야 한다는 이유로, 맥크리에게 대신 트레이서와 함께 장을 보러 가 달라고 부탁한다. 맥크리는 동의한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피우며, 라디오의 ⁴⁾옛날 노래 채널을 틀어놓고 트럭을 운전한다. 레나는 발을 자동차 전면 계기판 위에 올려놓고 조수석에 타 있다.
⁴
"어때, 시베리아 가는 거 흥분되지 않아?" 트레이서가 묻는다.
"약간," 맥크리가 실눈을 뜨고 길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오버워치가 다시 모인 이후로 첫 번째 큰 임무잖아, 이럴 땐 약간 흥분할 수밖에 없는 거지."
"진짜로. 윈스턴은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으려고 밤낮으로 바쁘다니까. 모든 상황에 대해서 예비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아."
"예전부터 항상 준비된 걸 좋아하는 친구였지."
"맞아, 그래도, 윈스턴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좋아. 오버워치를 다시 시작하는 데 100% 집중하고 있다고. 러시아에서 시작하는 것도 그래. 거기선 우리가 돌아오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일 거야. 러시아에서 옴닉 사태 때 7만 5천 명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 거 들었어?"
"망할, 7만 5천이라니 너무 많군."
"금방 가서 그 숫자가 더 높아지지 않게 막을 테니까, 난 차라리 기쁘네."
감시 기지에서 지하 터널을 나가면 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트럭은 덜컹거리며 먼지와 자갈을 뒤쪽으로 날려보낸다. 맥크리는 바다와 선명한 푸른 하늘, 해변가에 줄지어 선 흰색 건물들의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함을 즐긴다.
방향을 홱 틀어 커브를 돌 때 트레이서가 코웃음을 친다. "아직도 빌어먹을 미치광이처럼 운전하네."
"자기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아가씨. 망할 겁쟁이라면 안전벨트나 매."
"하." 레나가 머리 위로 팔을 쭉 뻗는다. "그거 알아, 내가 너 보고 싶어했던 거. 가끔씩 꽤 많이 생각났어."
"그랬어?"
그녀가 씩 웃는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비행사 선글라스의 금색 테두리가 반짝거린다. “지난 5년간 가끔씩 ‘와, 그 늙은 맥크리는 요즘 뭐하고 지낼까.’할 때가 있긴 했지.”
“대부분은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해서 도망치고 있었지.”
“그래, 처음 떠올린 게 그거였어. 그리고 : ‘몇 년 전에 같이 놀러 나갔던 것처럼 뉴올리언스에 있을지도 몰라, 그 때처럼 바에서 귀엽게 생긴 남자애들 꼬시고 있을지도.’
맥크리가 웃음을 터뜨린다. “Hey, 나도 그 때 기억나. 블랙워치 들어가고 나서 바로 다음 해잖아.”
“아직도 그걸 기억하는 뇌세포가 남아 있다니 놀랍네. 가브리엘이 진짜 말 그대로 널 잭슨 스퀘어 길바닥에서 떼어냈잖아. 너네 둘이 불렀던 그 ⁵⁾멕시코에서 부르는 술자리 노래가 세 블록 떨어져서도 들렸다고. ‘아이-야이-야’ 하는 그거. 너네 완전 취했었는데.”
⁵
“맞아. 인정해.” 그가 덧붙인다. 그가 씩 웃는다. “너랑 그 사랑스러운 아멜리 양이 여행 계획을 다 짜고 우릴 데리고 다녔지. 그 때 네가 통역도 다 해줬잖아, 그 귀신 들린 집 구경할 때.”
트레이서의 대답은 약간 망설이는 듯이 짧게 잘린다. “뭐,” 그녀가 눈썹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어낸다. “맞아. 나보단 걔가 더 많이 했지.”
“정말 재밌었는데. 언제 또 한 번 가야겠어.”
“그래.” 레나가 침묵한다. 대화의 공백을 라디오 소리가 채운다. 맥크리는 자기가 했던 말 중 어느 부분이 그녀를 그렇게 빨리 식게 했는지 궁금해한다.
트레이서, 맥크리 둘 다 자신들을 마을 입구에서부터 미행하는 흰색 차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상점에 들어간 후 아래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그 차가 주차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타고 있던 사람들 - 세련된 흰색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와 여자 한 명 - 은 나와서 주차장으로 걸어올라간다. 여자 쪽이 트럭의 차체 아래쪽에 평평한 디스크를 붙인다. 그녀는 디스크의 파란색 버튼을 누르고, 트레이서와 맥크리가 상점 안에서 물건을 사는 동안, 동료와 함께 신속히 떠난다.
---
그들은 2시간 뒤 식료품, 보급품, 그리고 좋은 소식을 트럭에 싣고 기지로 돌아온다.
“⁶⁾내 빵에 버터를 바르고 날 비스킷이라고 불러주게,” 맥크리가 활짝 웃으며 주방 조리대 위에 큰 박스를 내려놓으며 모두에게 말한다. “노다지를 발견했어, 다들 한번 보러 오라고.”
루시우, 앙겔라,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각자 먹을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그들은 흥미를 보이며 맥크리가 낚은 보물을 관찰하러 가까이 다가온다. 그는 상자 위를 열어, 비닐로 포장된 채 가지런하게 줄지어 놓인 색색깔의 과자 빵을 보여준다.
“이게 뭐죠?” 앙겔라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케이크인가?” 라인하르트도 묻는다.
“⁷⁾문 파이(Moon pie)!” 맥크리가 소리쳤다. “아무도 문 파이를 먹어본 적 없다는 거야?!”
“파이?” 앙겔라가 눈썹을 찌푸리며 묻는다. “이게 파이라구요? 파이처럼 생기진 않았는데.”
“이게 여러분 모두의 인생 과자가 될 겁니다,” 맥크리가 박스 안에서 과자 빵 몇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쌓으며 떠든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미국에서 여기까지 그 망할 태평양을 다 건너왔는데, 이 지중해 끝에서 신에게-맹세컨대-진짜 문 파이를 찾았다니까요.” 그는 노란색 파이를 앙겔라에게, 핑크색을 루시우에게, 갈색을 라인하르트에게 내민다. “먹어봐요.”
라인하르트가 포장을 벗기고 한 입 문다. 루시우는 냄새를 맡아보고 끝부분을 조금 뜯어서 야금거린다. 앙겔라는 포장을 뜯지 않고 파이를 뒤집어서 뒷면의 영양 성분 표를 보며 코를 찌푸린다.
“나쁘지 않군!” 라인하르트가 수염에 프로스팅 조각을 튀기며 모두에게 말한다.
“100퍼센트 설탕이네요.” 앙겔라가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맞아, 진짜 그래!” 루시우가 환호하며, 이제 더 열정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아, man, 이스트우드. 진짜 맛있다. 하루종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췌장과 치아를 위해서라도, 제발 그러지 말아요.” 앙겔라가 그녀의 문 파이를 라인하르트에게 내밀자, 그는 바로 받아서 포장을 뜯기 시작한다. “레나, 그나저나 말인데. 윈스턴이 시간 가속기를 좀 손봤어요. 설치해 줄 테니 시간 되면 치료소로 와줘요.”
“알았어요!” 레나가 냉장고 근처에서 대답한다.
“아, 그나저나, 루시우.” 맥크리가 찬장에 문 파이를 넣으며 말한다. “이걸 진짜 제대로 먹고 싶으면, 30초 동안 전자렌지에 돌려봐. 나한테 감사할 거야.”
---
8월 말의 열기가 감시 기지를 구워버린다. 맥크리는 창문을 열어놓고 오후 내내 방에서 낮잠을 잔다. 그는 한조에 대한 꿈을 꾼다. 엘리베이터에서 싸웠을 때와 누가 더 잘 쏘는지 경쟁했을 때가 뒤섞인 야릇한 장면들. 꿈에서의 육체적 접촉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특히 궁수가 활시위를 굉장히 변태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부분이. 그는 베개에 침을 흘리다가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난다.
벽시계는 1925시였다. 맥크리는 옷을 걸쳐입고 식당으로 가기 위해 저녁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수평선 위의 하늘은 오렌지색이었고, 이른 별들이 박힌 예쁜 연보랏빛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바뀌어갔다. 바다새들이 절벽 근처의 바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맥크리는 새들이 날아올랐다가 급강하하는 걸 보기 위해 잠깐 멈춘다.
놀랍게도 식당은 비어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없고, 싱크대 안에는 설거지거리가 약간 있었다. 그는 찬장을 열고 핑크색 문 파이를 꺼낸다. 잠들어 있는 동안 개수가 줄어든 것 같다. 분명히 루시우, 아니면 라인하르트겠지.
그는 셰즈 주전자를 꺼내서 물을 채운다. 스토브 위에서 주전자가 끓는 동안, 그는 앙겔라가 만든 그래놀라 바 위에 올려져 있었던 커피 봉지를 찾아낸다. 봉지를 열 때 식당 바깥에서 소리가 들린다.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던 소음이, 두 남자가 일본어로 화가 나서 다투는 소리로 바뀐다 - 거친 목소리와 기계음. 맥크리는 후자가 겐지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한조가 쿵쿵거리며 식당으로 들어온다. 등에 활과 화살통을 걸쳐메고 있다. 머리끈이 문신을 한 어깨 위로 늘어뜨려져 반짝인다. 눈이 마주친다. 제시의 따듯하게 가르랑거리는 듯한 ‘안녕하신가’에 한조는 무뚝뚝한 신음으로 답한다.
“괜찮아?” 제시가 봉지 안에서 굵게 간 커피 콩을 꺼내며 묻는다.
“괜찮다.” 한조가 소리 없이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한 병 꺼낸다. 그는 뚜껑을 한 손으로 따고는, 불쾌한 표정으로 길게 꿀꺽꿀꺽 마신다. 제시가 하는 일이 주의를 끈다. “뭘 하는 거지?”
“커피 만들어. 한 잔 할래?”
한조가 혀를 찬다. “이 시간에? 됐다.” 그가 가볍고 빠르게 다가와, 주전자를 세심히 살펴본다. 시선이 나무로 된 긴 손잡이를 훑는다. “이런 식으로 커피를 만드는 건 처음 보는군.”
“터키 스타일이야, 시마다 씨. 평범하게 끓이는 것보다 시간이 좀 더 들지만, 더 세. 맛도 더 괜찮고.”
“시간이 든다고?” 한조가 제시의 손에 담긴 커피 한 줌을 쳐다본다. “인스턴트 같은 게 아니냐?”
“아냐, 끓이는 거야. 이대로는 못 마셔.”
“끓인 커피라.” 한조의 목소리는 약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 꽤 괜찮아. 진짜 안 마셔볼래? 두 명 마실 양은 되는데.” 그가 찬장에서 에스프레소 잔 두 개를 꺼낸다. “어차피 컵도 작잖아.”
한조가 거절한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사양하지.”
“좋을 대로 해.” 제시가 셰즈 주전자 불을 끄고 그라인더 안을 젓는다.
한조는 매처럼 지켜본다. “이렇게 늦은 저녁에 강한 커피를 마시는 건 위벽에 좋지 않다, 양키 씨. 잠이 안 와서 임무 수행력도 떨어질 거다. 차를 마시는 게 나아.”
“차는 낮에 많이 마시는데.”
“제대로 된 차,” 한조가 거의 인상을 쓰며 말을 자른다. “네가 식사 때마다 마시는 그 불쾌한 시럽과 얼음 덩어리 말고.”
“기분 안 좋아 보이네.” 맥크리가 셰즈 주전자를 다시 불 위에 올린다. 그는 문 파이 포장을 찢어서 연다. “뭐가 신경을 건드린 거야, 시마다 씨?”
한조가 물병을 들고 조리대에 기댄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제시가 어깨를 으쓱하곤 수염에서 빵 부스러기를 털어낸다. “여기 들어와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네. 무슨 일이야? 또 활시위 끊어졌어?”
“개인 사정이다. 더는 말 못해.”
그렇다면 분명히 아까 겐지와 다툰 일 때문이겠군. 제시는 파이를 한 입 베어물며 작게 흠, 하고 콧소리를 낸다. “알았어, 그럼. 더 캐묻지 않을게.”
한조가 핑크색 빵을 쳐다본다. “먹고 있는 게 뭐냐.”
“아, 이건 문 파이라고 해. 이런 데선 찾기 힘든 남부 과자야. 여기까지 와서 이걸 구하다니, 엄청 운이 좋았지.” 제시가 다시 찬장을 뒤진다. 그는 하얀색 파이를 꺼내 궁수에게 가볍게 던진다. 그는 한조가 분명히 거절하고, 밀어내며, 역겹다고 조롱할 거라고 예상했다. “여기, 먹어 봐.”
한조가 파이를 잡는다. 놀랍게도 : 그는 머뭇거리며 포장지를 뜯는다. “파이처럼 보이지 않는데.”
“앙겔라도 그렇게 말했지. 필링이 들어 있어, 마시멜로 같은 거야.”
한조가 내용물의 냄새를 맡아보고, 집어들고, 한 입 문다. 제시는 그가 단맛을 감지하고 턱을 움직이며 인상을 쓰는 걸 본다. 그리고 나서 그는 포장지를 깔끔하게 접은 뒤 다시 냄새를 맡는다. 그가 눈썹을 치켜올리고 총잡이를 돌아본다. “설탕이군.”
“맞아, 어때?” 한조가 어깨를 으쓱하고 계속 먹기 시작하자, 제시는 빙긋 웃는다. “그건 바닐라 맛이야.”
한조가 파이를 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가 혀를 찬다. “흥미롭군.”
“흠?”
“일본에도 비슷한 게 있다. 문 케이크라고 해야 하나, 파이는 아냐. 이것과는 달라 - 설탕이 훨씬 덜 들어갔어. 팥이나 꿀이 들어 있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만들지. 축제나 결혼식에 행운을 비는 상징이다. 먹어본 지 오래 됐어.”
제시는 셰즈 주전자를 두 번째로 끓이며 씩 웃는다. 이 대화가 기분을 밝고 들뜨게 한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맛있을 것 같네. 나 단 거라면 환장하거든.”
“아, 내 동생도 그래. 이런 걸 좋아하지.” 한조가 얼굴을 찌푸린다. 그는 남은 물을 마저 마시고서 중얼거린다. “좋아했지.”
제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셰즈 주전자에서 머그 컵으로 커피를 따른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 운이 좋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제시는 머그 잔을 홀짝이곤 두 번째 잔을 한조에게 내민다. “자, 커피 들고 밖에 나가서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앉자고.”
한조는 총잡이가 오줌이라도 준 것처럼 머그 잔을 내려다본다. “마시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내가 두 잔 다 마시지 뭐. 그래도 들고 가 줄 순 있잖아, 안 그래? 손도 따뜻해질걸.”
“내 손은 차갑지 않다.”
“아, 그래?” 제시가 눈을 내리깔고 한조를 옆걸음질쳐 지난다. 멈추기 전에 그가 말한다. “그런지 아닌지 내가 판단해주길 바라게 될 거야.”
한조가 머그컵과 문 파이를 들고 따라잡으며 그를 노려본다. “그게 무슨 뜻이냐?”
“아무것도.” 제시가 씩 웃으며 커피를 마신다. 그는 드론 비행장 구역을 벗어난다. 한 가닥 즐거움이 그를 끌어당긴다 : 한조는, 최소한, 제시가 가는 곳이 어디든 따라올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아냐, 시마다 씨.”
“장난치지 마. 네 유치한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한조의 입은 반쯤 차 있다. “내 손이 차갑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거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제시가 문 파이를 다 먹어치우고, 비닐 포장을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그의 목소리가 음흉한 톤으로 바뀐다. “직접 보여줄 수도 있고.”
“기쁘게 그렇게 해주지, 내 주먹이 네 지저분한 턱에 공격적으로 접촉하는 건 어떻나.”
“이봐,” 널찍한 격납고 문을 지날 때 제시가 한조를 날카롭게 쳐다본다. “누굴 지저분하다고 하는 거야? 나 수염 다듬었어.”
“그랬나? 몰랐군. 넌 아직도 야만인 같아.”
제시가 엄지 끝으로 수염을 문질러, 핑크색 프로스팅 조각을 튕겨낸다. 그가 중얼거린다. “Well, 망했군. 조금은 깔끔한 이미지로 바뀐 줄 알았는데.”
한조가 그의 옆을 걷는다. 몇 분간 조용히 길을 걸어내려간 끝에 그가 중얼거린다. “어울려.”
“뭐라고?”
“들었잖나, 양키 씨. 어울린다고 말했다.” 한조가 문 파이 한 입을 의기양양하게 야금거린다. “야만인에게는 야만인 같은 얼굴이 제격이지.”
“Well.” 제시는 세라피에서 빵 부스러기를 털어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바보가 되는 것보단 그게 나은 것 같군.”
그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일은 엘리베이터, 화살, 그리고 용보다 더 그를 놀라게 한다. 궁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며, 턱을 당겨 내린다. 그리고 나서 문신을 한 어깨를 뒤로 젖히며 흑담비 같은 머리를 뒤로 기울인다. 가슴에서부터 즐거운 소리가 굴러나온다. 히죽거릴 때보다 더 부드럽고, 덜 사악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가 미소짓는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 한조가 웃는다.
“넌 항상 바보일 거다.” 그가 말한다. 또다 : 그 호감 있는 것 같은 목소리. 부드럽고 애정 가득한 말들이 가슴 속에 차오른다. “네가 나이를 먹고 현명해지면, 양키 씨. 내가 더 이상 널 그렇게 부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바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거다.”
제시는 커피 컵 뒤로 표정을 숨긴다. 뱃속에서부터 피어나는 따뜻한 감정의 온도가 거의 커피의 그것과 맞먹는다. 그는 달에서 금이라도 빼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Well, 네가 사실을 좀 알아보고 날 양키 씨라고 부르는 걸 그만두는 게 더 빠르길 바라.”
“그렇게 부르는 건 절대 멈추지 않을 거다.”
“난 망할 양키가 아니라고." 맥크리가 건조하게 웃는다. “양키는 북쪽 놈들이고, 나랑은 전혀 상관 없--”
너무 빠르다 : 말하던 문장을 끝내지도 못할 정도로. 한조가 갑자기 그를 붙잡고 격납고 벽에 밀어붙이자 커피가 쏟아지며 세라피에 검은 자국을 남긴다. 궁수가 오른팔을 제시의 가슴팍에 대고 단단히 힘을 주자, 등이 돌로 된 벽을 강하게 누른다. 제시는 반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한조가 더 강하다. 그는 총잡이의 흉골을 압박한다. 커피 컵이 떨어진다.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한조의 머리카락이 모자 챙을 스친다. 그가 내뱉는다.
“대체 뭐 하는--”
한조가 오른손 손바닥으로 제시의 입을 막는다. 마른 입술을 지나 손가락 두 개가 입 안으로 파고든다. 제시의 심장이 아플 만큼 고동치며 목구멍까지 뛰어오르려고 한다. 그는 벽에 눌린 채 몸을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공간을 확보하고 자세를 고쳐 보려고 한다 -- 하지만 한조가 그를 완전히, 핀으로 꽂은 것처럼 고정하고 있다. 박차가 짤랑거리며 바위를 긁어댄다.
“쉿.” 한조가 낮게 속삭인다. 궁수는 활주로 아래를 쏘아보고 있다. 제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머릿속엔 온통 혀를 문지르고 있는 한조의 가죽 장갑의 감촉뿐이다. 그리고 진짜 정말로 : 이 손가락들은 움직이고 있다. 한조는 치열을 만져보는 것처럼 손가락을 구부린다. 또 그 비누 냄새다 -- 희미한, 약초 같은 냄새.
이 용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걸 좋아하나? 농담하고, 웃고 나서, 바로 거친 애무로 넘어가는 거? 제시는 흥분에 몸이 오싹해진다. 벌써 굴복할 준비가 끝나서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젠장, 마음대로 하라지. 벽은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다. 하지만 루시우가 밤 늦게 이 근처에서 스케이트를 자주 타는 걸 고려해 보면, 차라리 일찌감치 침실(이나 화물 보관창고, 관리실, 아니면 어디가 됐든 눈에 들어오는 첫 장소)로 가는 게 나을 거다. 그런 취향이 아니라면, 10대 애들한테 이런 곳에서 하고 있는 걸 들키는 건 좋지 않 --
“움직이지 마.” 한조가 거칠게 말한다.
그러니까 그런 녀석들 중 하나군. “우-웅.” 제시가 왼팔로 한조의 등을 감싸려고 하며 대답한다. 한조가 온몸으로 그를 벽에 밀어붙이자 금빛이 나는 문신을 쓰다듬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진다. 불꽃 같은 떨림이 척추를 타고 오른다. 제시가 한조의 손 때문에 발음이 뭉개진 채로 욕을 내뱉는다. “빌어먹을, 읍, 진짜 죽겠네 --”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댜기야,” 제시가 한조의 귀에 속삭인다. “담깐만 놔주읍 -- ”
“침입자다!” 한조가 이를 악물고 매섭게 내뱉는다. “저 아래쪽, 트럭 옆에. 움직이지. 마."
제시가 얼어붙는다. 그는 미친 듯이 눈을 굴려 곁눈질로 흰색 형체를 포착한다. 활주로 끝부분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한조가 기대온다. 그의 엉덩이가 총잡이의 벨트를 꾹 누른다. 한조가 그를 벽에 납작하게 붙이려고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뇌가 몇 초간 혼란스럽게 오발을 쏴댄다.
“하얀 제복.” 한조가 입모양으로 말한다.
이제 피가 다시 뇌로 빠르게 쏠린다. 그가 한조의 손가락을 뱉어낸다. “뭐?”
“비슈카르다.”
“젠장.” 속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몇 명이야?”
“여자 하나. 광자 총으로 무장했다.” 한조가 턱에 뜨거운 숨결을 뱉는다. “순간이동기가 있어.”
“젠장!” 믿겨지지 않았다. “잠입한 게 틀림없어. 젠장!” 한조가 날카롭게 가슴을 치자 그가 목소리를 낮춰 작게 속삭인다. “벌써 놈들 한 무리가 침입했거나 침입하는 중일 거야. 총은 너무 시끄러워. 내가 한 번에 맞추지 못하면 순간이동기에서 놈들이 더 쏟아져나올지도 몰라. 네가 쏴야 해. 가능한 한 조용히 처리해.”
“가만히 있어. 자세를 낮춰 쏴야 한다. 시야는 확보했다.”
맥크리는 한조가 천천히 자세를 낮추는 걸 본다. 이가 입술을 너무 세게 파고들어서 피 맛이 났다. 한조가 무릎을 꿇는 것에는 뭔가 본질적으로 황홀한(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미칠 것 같게 만드는, 망할)것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그들은 위험에 처해 있고, 감시 기지도 위험에 처해 있다. 어쩌면 그 위험 때문에 지금 여기서 바로 불붙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말하긴 어려웠다. 맥크리는 움찔하곤 집중하려 애쓴다.
그런데, 솔직히 : 입 안에 꼭 손가락을 넣었어야만 했나?
궁수가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긴다. 그가 조준하고 발사한다 : 화살이 높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요원이 쓰러진다. 경고음이 머리 위에서 시끄럽게 터져나와 창고 구역 전체에 울린다. 한조는 벽을 따라 빠르게 이동해 코너를 돌며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매긴다. 제시는 총을 코킹해 놓고 서둘러 따라간다.
그들은 붉은 점멸등 아래에 얼어붙어 있는 두 번째 비슈카르 요원과 딱 마주친다. 요원이 돌아서서 가장 먼저 본 건 피스키퍼의 총신이다.
“안녕하신가, 친구!” 맥크리가 말하곤 요원의 양쪽 눈 한가운데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요원이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맥크리의 통신기가 작동한다. 윈스턴이다. “아테나! 무슨 일입니까? 보고하세요!”
“18번 격납고에 침입자 감지,” 그녀의 전자 목소리가 울린다. “옴닉 신호와 생체 신호 모두 읽히고 있습니다. 총 개체 수 26.”
“비슈카르가 왔어,” 맥크리가 끼어든다. “시마다와 내가 순간이동기를 찾았어, 우리가 --”
맥크리가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빙글 돈다. 세 대의 번쩍거리는 휴머노이드가 순간이동기 옆에 있는 한조를 둘러싸고 있다. 비슈카르의 옴닉이다 : 중국에서 그를 추격했던 흰색 기계의 좀더 작은 버전 같은 모습이다. 한조가 가장 가까이 접근해오는 놈을 화살로 꿰뚫자 목 부분에서 스파크가 튄다. 맥크리가 이를 드러내며 조준하고 두 번째 놈의 머리를 쏜다. 한조가 활을 휘둘러 세 번째 놈을 때려눕히고, 맥크리가 남은 총알 4개를 퍼붓는다.
한조가 맥크리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낸다. “양키 씨! 순간이동기를 부숴야 해. 날 지원해라.”
순간이동기에 총알이나 화살을 쏘는 건 쓸모없었다. 그들은 송신기가 투사체에 대한 보호 장갑을 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제시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트럭에 올라탄다. 그는 차를 순간이동기 위로, 회색 디스크가 부서질 때까지 후진시킨다. 형광 푸른색 불빛이 깜박거리다가 꺼진다.
“맛이 어때,” 그러고서 제시가 울려퍼지는 경고음과 트럭 라디오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컨트리 송 노랫소리 너머로 소리친다. 한조의 뒤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봤다. “젠장! 트럭에 타!”
“뭐라고?” 한조가 외친다.
“망할 트럭에 타라고!”
한조가 어깨 너머를 보자 격납고 벽에서 흰색 옴닉 7대가 더 뛰어내려오고 있다. 궁수가 화살을 쏴 뛰어내리고 있던 옴닉 한 대에 명중시킨다. 그는 더 빨리 탑승하기 위해 열려 있는 조수석 창문을 넘어 들어간다. 맥크리가 차에 시동을 걸고 로봇들이 범퍼에 달려들기 직전에 출발하고 가속한다. 한조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다. 머리끈이 격렬하게 휘날린다. 그는 활을 뽑아들고 트럭 뒷문에 매달려 있던 옴닉을 제거한다. 레이저 광선들이 그들을 지나친다. 이 옴닉들은 무장했다.
“이것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트럭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 너머로 제시가 소리친다.
“그게 중요한가? 우릴 죽이러 왔다는 것만 알면 되지!”
“몇 놈이었어?”
“이제 다섯 놈!” 도로의 튀어나온 부분에 차가 부딪혀 흔들릴 때 한조가 외친다. 그는 레이저를 피하기 위해 몸을 휙 튼다. “아직 쫓아오고 있어! 속도가 빨라!”
“맞출 수 있겠어?” 제시가 급커브를 돌자 차가 미끄러진다.
한조가 휘청거려 화살이 빗나간다. “네가 미친 놈처럼 운전하지 않는다면!” 그가 다음 화살을 장전하며 소리친다.
“그건 약속 못해, 시마다 씨!”
이번엔 조준이 빗나가지 않는다. 가슴 부분에 화살을 맞은 옴닉 한 대가 산산조각난다. 그 동료들이 도로 위에 흩어진 잔해를 넘어 쏜살같이 내려온다.
통신기 너머로 앙겔라가 말한다 : "치료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트레이서, 윈스턴, 그리고 제가 있어요! 연구실을 방어해야 해요, 놈들이 정보를 되찾으러 갈 겁니다!“
“내가 가고 있네!” 라인하르트가 통신선 너머로 외친다. “교전 시작! 토르비욘, 내 친구여! 날 지원해주게!”
“라져!” 엔지니어가 대답한다. “포탑 가동!”
“나도 있어!” 루시우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터져나온다. “지금 스피드 올려줄게!”
“바지 잘 붙잡고 있어,” 맥크리가 느릿하게 말하면서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콱 밟는다. “돌아간다.”
도로 끝에서 맥크리가 트럭을 거칠게 돌리자 한조가 문을 붙잡고 버틴다. 남은 옴닉 3대가 차량 앞부분으로 돌진한다.
“뭐 하는 거야!?" 한조가 다음 화살을 걸며 격분한다.
“꽉 잡으라고 했잖아!”
“양키 씨!”
제시가 옴닉 한 대를 깔아뭉갠다. 옴닉을 직격으로 들이받자 트럭 타이어가 끽끽거린다. 레이저 때문에 일어난 불꽃이 계기판과 자동차 덮개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창문에는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간다. 제시는 그 보복으로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피스키퍼의 총알 여섯 발을 모두 발사한다. 옴닉이 구겨진다. 그는 곧바로 남은 놈들을 들이받는다. 한조는 손상된 로봇 머리가 날아오는 걸 몸을 숙여 겨우 피해낸다. 그는 차 문을 꽉 붙잡으며 일본어로 욕설을 내뱉는다. 도로의 푹 패인 곳을 트럭이 건너갈 때 제시는 크게 워, 하고 소리친다.
“죽고 싶나!” 한조가 크게 뜬 눈에 분노를 담아 제시를 본다.
“아직 우리 둘 다 갈 때는 아냐, 자기(sweetheart)!”
이제 한조는 이를 드러낸다. “난” - 그가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고 - “네” -- 그들이 향하는 도로 앞에서 나타난 옴닉 한 무리에게 갈래 화살을 쏜다. “애인(sweetheart)이 아니야!” 사방으로 튀는 빛줄기에 길을 막고 있던 로봇들이 찢어진다. 맥크리가 남은 놈들을 처리한다.
서둘러 통신 타워를 지나자 라인하르트가 2층의 연구실 입구에서 인간 로켓처럼 기세 좋게 발사되어 나오고 있다. 그는 흰 옷을 입은 비슈카르 요원 두 명을 아래쪽 도로로 짓뭉개 버린다. 트럭이 급정지한 지점에서 바로 한 걸음 앞 지점이다. 라인하르트는 충격으로 생긴 작은 작은 분화구에서 일어나 모습을 드러낸다. 요원들은 그러지 못한다.
“여기가 바로 자네들이 있어야 할 곳일세!” 기사가 선포한다.
“조심해!” 한조가 차 창문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친다. “위쪽이다! 양키 씨!”
통신 타워 다리에서 내려온 건 리장에서 봤던 것과 크기가 비슷한 비슈카르 옴닉이다. 맥크리는 놈들이 어떻게 그걸 순간이동기로 옮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가 운전석에서 허겁지겁 굴러나온 바로 다음 순간 옴닉이 트럭을 짓밟는다.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차량이 뭉개진다.
“작전명 블랙햇, 무력화 단계로 전환.” 옴닉 안의 목소리가 말한다.
라인하르트가 곧바로 기계에 망치를 휘두른다. 강철로 된 외장이 우그러지며 우드득 소리가 난다. 망치가 끼어버렸다. 망치를 빼낼 수 없어 기사가 소리를 지른다. 옴닉의 승강구가 열리고 검은색 덩어리가 나온다 -- 아니, 제시가 깨닫는다 : 그건 조종사다 -- 그리고 옴닉이 삑삑거리기 시작한다. 기계의 날개 달린 바이저가 붉은빛으로 빠르게 번쩍인다. 맥크리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쳤던 포탑의 붉은 빛을 떠올리며 몸을 쭉 편다.
폭탄이야, 그가 생각한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도 알아차린다 -- 기계가 흔들리고, 진동하고, 빛나기 시작할 때. 라인하르트는 방패 뒤로 숨는다. 옴닉은 더욱 강하게 진동하다가, 휘청거린다. 터질 준비가 된 것처럼.
지옥 같은 붉은 빛을 뚫고, 밝게 번쩍이는 초록색 빛 한 줄기가 달려들어, 자폭하는 옴닉을 쾅 터지는 베이스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려버린다! 옴닉은 위성 방송 수신 안테나를 부수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바닷물 위에서 폭발한다.
땅이 흔들리는 걸 멈추자, 맥크리는 루시우가 쿵쿵거리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수트를 입고 쉭 지나가는 걸 올려다본다. “간달프, baby! 내 활주로 위에서 꺼져!”
“하-하!” 라인하르트가 거대한 주먹을 치켜들며 일어난다. “놀랍군, 루시우! 이렇게 하는 거구만!”
맥크리가 두 발을 딛고 일어선다. 먼지와 재를 뒤집어썼다. 그는 모자와 세라피에서 부서진 유리 조각과 플라스틱 쪼가리들을 털어낸다. 통신기 너머로 기계 목소리가 백업을 요청한다.
“조종사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겐지가 빠르게 말한다. “수화물 구역을 벗어나고 있어요. 강화 장비 때문에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한조! 도와줘!”
맥크리가 올려다보자 겐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통신 타워를 오르고 있는 한조가 보인다.
“정보는 안전해,” 토르비욘이 말한다. “이 옴닉 놈들을 해치워버리고, 요원은 가능하면 산 채로 데려와!”
맥크리는 한조를 뒤따라 출발해 길을 뛰어내려가며 피스키퍼를 재장전한다. 근처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화물 구역의 움푹 들어간 높은 천장으로 울려퍼진다. 그가 검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감지하자마자 한조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내달려 사라진다.
그는 쌓여 있는 보급품 상자 뒤에 엄폐한다. 상자 모서리 너머를 슬쩍 내다보자 조종사가 겐지를 쫓아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는 리장에서 봤던 요원이 쓰던 것과 같은 푸른색 장비를 발에 신고 있다. 맥크리는 시야를 좀더 확보하기 위해 상자를 돌아 기대선다. 이 거리에서라면 잘 조준해 쏴서 요원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겐지는 겨우 그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다. 저 개자식의 속도를 줄일 수만 있다면.
휘파람 같은 높은 소리가 주의를 끈다. 올려다보자 한조의 화살 세 발이 날아서 지나친다. 궁수는 천장 서까래 기둥에서 다른 기둥으로 뛰어다니며 요원을 쏴맞춰 속도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그가 점프할 때마다 머리끈이 희미하게 빛나는 깃발처럼 펄럭거린다.
요원이 소리친다 : “테셀라! 저격수를 처리해!”
맥크리가 물러난다. 그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체크한다. 옴닉이나 다른 요원의 기척은 없다. 그가 돌아서서, 총을 겨누고, 보급품 상자 주변을 살핀다.
헉 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린다. 한조가 고함친다. 뭔가가 서까래에서 떨어져내린다. 맥크리는 급히 굴러서 보급품 상자에서 멀어지느라 모자를 떨어뜨린다. 그는 한조가 천장에서 추락해 곤두박질치는 걸 목격하고 눈을 크게 뜬다 -- 제시는 공포로 굳어버린다. 입이 바싹 마르고 턱이 벌어진다. 한조가 -- 분명히 -- 죽을 거라는 걸 깨달은 찰나에 그의 정신은 멎어버린다.
불가해하게도 : 궁수는 공중에서 튀어오른다. 그는 흔들린다. 붙잡힌 거다. 맥크리가 헉 하고 숨을 내뱉는다. 한조는 서까래에 매어진 푸른색으로 빛나는 그물망에 얽혀 있다. 그가 거칠게 몸부림친다. 화살통에서 쏟아진 화살들이 바닥으로 빗발친다. 활도 떨어진다.
“잡았어, 아펙서스!” 신난 듯한 여자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맥크리가 그녀 : 테셀라를 본다. 흰 제복을 입은 두 번째 요원이 멀리서 통로를 걸어내려온다. 총신이 길고 넓은 큰 총을 들고 있다.
그물, 그가 멍하니 생각한다. 야생 동물을 사로잡는 방법 중 하나.
갑자기 겐지 쪽에서 비정상적인 소리가 난다. 고함과 헐떡임의 중간,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소리. 제시는 쾅 하는 폭발음을 듣는다! 겐지가 팔다리를 벌리고 땅바닥에 미끄러진다. 아펙서스가 날카로운 푸른색 선을 남기며 겐지 위로 뛰어내리는 걸 본 맥크리가 놀라서 뒤로 홱 물러선다.
“겐지!” 한조가 그물 안에서 몸을 비튼다. 그의 남동생이 거친 소리로 울부짖는다.
“이 녀석이군. 시료번호 1193.” 울부짖는 소리 너머로 맥크리는 아펙서스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트락서스를 죽인 놈이야. 테셀라, 이쪽으로 내려와. 한번 보라고.”
총을 든 요원이 통로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맥크리는 그녀도 푸른색 가속 부츠를 신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녀는 스프링처럼 몸을 구부린다. 요원들은 흰 독수리 떼처럼 겐지 근처에 모여선다. “그래? 맞네. 수트에 환풍구 달린 놈. 이 녀석이야.”
겐지가 일본어로 고통과 분노에 찬 말을 내뱉는다. 요원들이 수리검을 피해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다시 다가선다. 그를 조사하듯 뜯어보며, 검토한다. 테셀라는 허리에 찬 홀스터에서 광자 총을 뽑아들고 겐지를 겨눈다.
아펙서스가 손을 들어올린다. “안돼. 산 채로 데려가야 해. 코팔의 명령이야. 귀중한 시료다.”
“꼭 의식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가 권총을 들어올린다. “아트락서스의 몫이다.”
위쪽에서, 한조가 고함친다. “겐지! 안돼!”
그녀가 광선을 쏘자, 겐지가 맞은 충격에 뒤로 밀려난다. 피격당한 가슴에서 흰 수증기가 쉭쉭거리며 피어오른다. 몸이 경련한다.
한조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겐지! 겐지!” 그는 절박해서 미쳐버린 것 같은 목소리를 낸다. “겐지를 놔줘! 날 데려가라!”
총을 들어올리는 테슬라의 바이저가 번뜩인다. “저 놈도 필요한가?”
“날 대신 데려가!” 한조가 몸부림치며 소리친다. “도망가! 겐지, 도망가!”
“아니.” 아펙서스가 무릎을 꿇는다. “죽여.”
맥크리는 가쁜 숨을 빠르게 들이마신다. 한조가, 그물 안에서, 죽기 직전이다. 겐지가, 바닥에 쓰러져 연기를 내면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비슈카르 요원 두 명은, 그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고.
그리고 제시와 그의 총.
그리고 그 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조에게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
시작은 이렇다 : 심장 박동이 미친 북 소리처럼, 지진처럼, 뉴 멕시코 교회 종 소리처럼 쿵쿵거린다. 그리고 붉은, 바위투성이 협곡에 불어내리는 거친 바람. 모래 속에 남은 발자국의 뚜렷한 이미지. 그 다음은 그녀의 목소리다. 부드럽고, 희미하게 슬픈 듯한. 배우기 쉬운 기술은 아냐. 위험해. 시간은 몇 초 뿐이야, 그리고 바로 그거지(and that's it).
맥크리의 폐가 올라가고 눈매가 가늘어지고 턱이 벌어진다. 흐르던 정맥의 피가 얼어붙으며 정지한다. 모든 게 느려진다. 모든 게 회색으로 변한다. 한 번은 : 회전초를 봤다고 맹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표적들이 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전부 눈으로 하는 거야. 손도, 총도, 방아쇠도 아냐. 총알이 하는 것도 아니란다, 카우보이. 죽이는 건 눈이야.
동공에 핀포인트가 잡힌다. 피처럼 붉은, 지옥처럼 붉은.
넌 놈들을 모두 죽일 거야 -- 네가 순서대로 줄 세운 놈들 하나하나를 전부. 그걸 인정하도록 해. 총구에서 꽃을 피워내면서 전쟁을 이긴 저격수는 아무도 없어.
그녀는 항상 말솜씨가 좋았다.
그녀의 주문 같은 목소리 아래로 수천 개의 목소리들이 서곡을 합창한다. 그 위로 아마리의 목소리가 고조된다 : 매 같은, 선명한 클라리온 나팔 소리 같은, 단 하나의 목소리. 천국보다 깊고 견고한 단 하나의 큰 목소리. 메트로놈처럼 뛰는 맥박에 목소리들의 함성이 뚝뚝 끊긴다. 그는 테셀라와 아펙서스를 훑어본다. 약간 숨이 차 보이긴 하지만, 온전하고 건강한 표적들이다. 그는 속사해 뚫어버릴 두개골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면 놈들은 죽을 준비가 된 거다. 앞으로 나오시지(Step right up). 잘 시간이야(Say goodnight).
원리는 똑같아, 카우보이. 네가 그런 걸 신경쓰는 부류라면, 기도라도 해. 내가 온 곳에서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 놈들을 죽여야만 평화가 왔지. 그러니 나를 잘 봐. 심장으로 조준해. 눈으로 죽여.
그가 총을 들어올린다. 그는 왼팔이 다시 온전해진 것처럼 단단히 힘을 준다 -- 모두 살로 이루어진 한 조각인 것처럼. 살아 있는 느낌까지 든다. 그는 피스키퍼의 총신을 내려다본다.
영혼으로 방아쇠를 당겨.
시계가 째깍이고 있다. 시간이 됐다.
“드로(Draw)," 그가 세 번 발사하며 말한다. 총알은 두 명의 요원의 머리에 명중한다.
요원들이 쓰러진다. 한조의 그물은 세 번째 총알을 맞고 잘려나가 채찍처럼 튕기며 끊어진다. 그는 푸른색 추처럼 흔들리다가 자유로워진다 -- 그리고 고양이처럼 발끝으로 착지할 때의 충격으로 신음하는 걸 참아낸다.
제시 주변의 세상이 빙빙 돈다. 그는 피스키퍼를 낮추고 사이보그의 곁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한조는 순식간에 그의 옆에 있다. 겐지가 신음한다. 살아 있다. 가슴과 어깨의 환기구가 손상되어 연기가 나고 있다. 피와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메르시!” 맥크리가 통신기에 대고 소리친다. “겐지가 다쳤어요. 이제 치료소에서 나와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조는 이미 남동생을 어깨에 메고 들어올리고 있다. “도와줘.”
“조심해, 일단 안정시켜야 해.”
“도와달라고, 망할! 옮기는 걸 도와줘!”
“알았어! 젠장! 기다려 봐!” 제시의 머리가 어질거릴 듯한 조짐을 보인다. 발포음이 아직도 귓가에서 울리고 있다. 겐지의 다리를 들어올리려 몸을 굽힐 때 시야 가장자리의 초점이 풀린다.
그들은 겐지를 치료소로 데려간다. 제시는 복도를 내려가는 게 힘겹다. 그의 속도에 비해 한조가 너무 빨라서 거의 질질 끌리다시피 한다. 그는 윈스턴의 거대한 옆구리와 앙겔라의 후광 같은 금발을 감지한다. 그리고 한조는 소리를 지르고 (왜 그는 항상 소리를 지르는 걸까) 그리고 트레이서의 소프라노 목소리, 토르비욘은 통신기로 말하고 있고 (“지점 확보, 이제 안전해”) 그들이 겐지를 데려갔고 한조는 따라가려고 하고 윈스턴이 말리고 있다. 그리고 앙겔라가 뭔가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하고 있고 (그리고 이제 떠났다, 겐지도 떠났고), 통신기는 아직도 울려대고 (“루시우가 순간이동기 파괴를 확인했어, 하지만 우리 위성도 하나 터졌어”) 이제 그는 소음과 잡음을 피해 물러나서 복도로 나와, 벽에 기대 털썩 주저앉고, 눈을 감으며, 고요함을 바란다. 머릿속에서 총알들이 그만 울리고 튕기고 두들겨대길 바란다.
잘 쐈어.
누군가 어깨를 날카롭게 잡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어깨를 홱 잡아당겨서 그를 벽에서 떼어놓는다. 그는 앞으로 휘청거린다.
“양키 씨.” 한조다. “겐지는 살아있어. 지금 사람들이 봐주고 있다.”
“잘됐네.”
“네가 겐지를 살렸어.” 그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우리 둘 다를 살렸어.”
“음.” 제시가 실눈을 뜬다. “그렇지.” 한조가 얼굴 바로 앞에 있다. 아몬드처럼 매끈한 갈색 눈동자 두 개가 눈 앞에서 빛난다. 아니, 아몬드라고 하기엔 너무 어두운 색이지. 커피, 아니면 -- 초콜릿 색깔. 제시는 애정을 가득 담아 미소짓는다 : 문 파이 같은 색. “그냥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y'know?"
“양키 씨. 어떻게 한 거냐?” 제시는 정말로 한조가 그를 그만 흔들어댔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두개골이 글자 그대로 쪼개져 버릴 것 같다. “어떻게 두 놈을 다 죽이고 그물을 쏴서 떨어뜨렸지? 어떻게? 전에는 그런 적 없잖아. 그런 건 본 적도 없어. 네 총으로는 그런 걸 할 수 없어.”
제시가 손바닥을 들어올린다. 세상이 빙빙 도는 걸 멈춰야 했다.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멈춰야 했다. 그는 양손으로 무릎을 지탱한다. “잠깐만. 시간 좀 주겠어?”
한조가 그를 뭔가 무례한 일본어 호칭으로 부른다. “내 말을 들어!” 그가 제시의 세라피를 잡아쥐고 그를 일으켜세운다. “네가 내 목숨을 구했다고! 네가 내 동생의 생명을 구했어! 대답해라, 바보 녀석! 어떻게 한 거냐? 그게 뭐였지? 그 멍청한 총으로 뭘 한 거야?” 제시가 반응하지 않자, 그는 격분하며 그를 꽉 움켜쥔다. “대답해!”
제시의 머리가 뒤로 기울어져 벽으로 늘어진다. 그가 내려다본다. 궁수는 올려다본다. 그는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고 있다. 총알들이 제시의 뇌 안에서 튕겨다니고, 중공탄처럼 터지고 이명을 울려대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할 정도로 분별력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인정한 깨달음 모두의 최종형태 같은, 가장 중요한 판단.
화를 버럭 내면서, 씩씩거리며, 거의 그의 얼굴에 침을 튀기고 있는 : 시마다 한조는 그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그가 팔을 들어올린다. 궁수가 얼어붙는다. 한조는 제시의 단단한 팔 안에 꽉 사로잡힌다. 제시가 그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한조가 저항 끝에 완전히 끌려온다.
“뭐 하는 짓이냐.” 그가 붉은 세라피를 움켜쥔 주먹에 힘을 주며 내뱉는다.
“시간을 갖고 있지.” 제시의 뺨이 한조의 이마를 누른다. 이 남자는 팔에 딱 맞아서 -- 꽉 들어차고 무게감 있고, 껴안으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좋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않았다. 그의 상상력이 현실에 미치지 못했다.
“멈춰라.”
“젠장할, 말벌보다 지독하구만. 잠깐만, 몇 초만 이러고 있어 줄래?”
“멈추라고 했다!” 그리고, 제시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 “넌 바보같이 굴고 있어.”
“칭찬도 한 번 들어본 적 없어?” 제시가 한조의 관자놀이 옆의 흑담비 같은 머리카락에 대고 느릿하게 말한다. 그는 처음 맡아보는, 희미한 향을 알아차린다. 기름, 아니면 다른 종류의 비누 냄새. “빌어먹을. 너 진짜 나쁜 놈이야. 너도 알지?” 제시는 자기가 하는 말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건 좋았다. 그는 한조도 좋았다. 따뜻한 냄새와 가까운 숨결과 단단한 몸 전부. 이명으로 울려대는 귀와 연신 총알이 울려대는 두개골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됐어, ⁸⁾바보야." 제시가 그를 풀어준다. 그의 절벽 위 은신처로 도망가게 해준다. 놔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야만 했다. 그 용은 길들였다고 생각할 때쯤, 도망쳐 버리니까.
그렇다 : 도망친다. 그는 지금 도망치고 있어야 했다. 그게 한조가 하는 일이니까. 용은 한 자리에 눌러앉는 생물이 아니다. 그는 아직도 여기 있다. 왜 떠나지 않는 거지?
“가봐, 이제.” 제시가 중얼거린다. “가.”
한조가 가슴 보호대 위를 덮고 있는 붉은 모포 위로 손끝을 미끄러뜨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속절없이 속이 뒤집힌다. 그 손짓이 너무 부드러워서.
“이봐, 내가 말했잖아.” 그가 반복한다. 이번에는 좀더 분명하게. “가라고.”
“네게 빚을 졌어.” 한조가 돌처럼 딱딱하게 대답한다.
“그건 나중에 얘기해도 되잖아.” 제시가 답한다. 한조는 언제나처럼 뻣뻣하기 그지없다. 언제쯤이면 좀 긴장을 풀까?
“이 빚은 반드시 갚겠다.”
“괜찮아, 시마다 씨. 아무것도 아냐. 맹세할게.”
“이건 명예의 문제란 말이다!”
그는 농담을 던진다. 완전히, 전적으로 농담이었다. “그럼 키스해줘.”
한조가 충격을 받아 그를 쳐다본다. 수치심 없는 단순한 충격. “날 놀리지 마라.”
“말했잖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제 가줘, 모자도 찾아야 하고. 윈스턴하고, 라인하르트하고 --”
너무 빠르다. 예측했어야 했어. 제시는 철썩 맞는 소리를 감지하기 전에 아픔을 먼저 느낀다. 한조의 장갑 낀 손이 턱을 때린다. 제시가 휘청거린다. 숨이 턱 막힌다. 피를 보겠군.
하지만 키스로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는 그 날 밤, 그리고 며칠 후 -- 몇 주, 몇 달, 몇 년 후까지 그 일을 회상한다. 한조가 그의 입을 잡고, 가까이 끌어당기는, 어색하지만 본능적인 동작. 그는 화살을 쏘듯이 입을 맞춘다. 온몸으로, 전심전력으로, 모든 각도를 고려해서. 마치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최선을 다하거나 -- 수천만 번은 해 봤고 이번 키스는 예정에 없었던 것처럼. 길지는 않았다. 화답할 기회는 없었다. 꿰뚫기 위한 무기 같은 몸짓이다. 한조가 그에게 키스하는 것은. 그 반대는 있을 수 없었다. 바보 녀석이 감히 그 반대를 생각지도 못하도록.
그가 물러난다. 제시가 입을 연다. 한조는 부드럽게 눈을 내리깐다. 그가 숨을 내쉰다.
“미쳤어,” 제시가 소리친다. 하지만 한조는 돌아선다. 그는 치료소 안으로 사라진다. 제시는 문에 박힌 것처럼 기대서서 그가 사라진 문을 쳐다본다. 몸을 떨면서, 입술을 문지르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그를 쫓아가려는 생각이 들어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내딛는다. 빨갛게 물든 귓가에선 아직도 총알 소리가 들린다.
제시가 멈춘다. 아니 :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는 모자를 가지러 간다. 아니면 담배를 피울지도. 아니면 쓰러져 버릴지도.
제시는 벽에서 떨어져나온다. 그는 복도를 걸어내려간다.
그는 출입구 문 뒤에 끼어서 모든 걸 보고 있던 사람을 지나친다.
얼빠진 채 눈이 커져선 방해할 엄두도 못 내던 루시우는, 조용히 입 모양으로 말한다 : 대 - 박(hooo-lyyy-shiiit).
[역주]
¹⁾ 친구(friend) : 맥크리가 한조를 ‘friend’라고 부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²⁾ 파파산 의자 : 이렇게 생긴 거.
³⁾ 개구리 머리카락처럼 잘 지내다 : 원문은 Fine as frog hair. 아주 잘 지낸다는 뜻의 관용어구.
⁴⁾ 맥크리가 트럭 안에서 듣는 옛날 노래 : 저자는 ‘꼭 이 노래인 건 아니지만 이게 어울릴 것 같다’고 링크를 올렸다. http://www.youtube.com/watch?v=OdYGnAFaeHU
⁵⁾ 레예스와 맥크리가 술에 취해 부른 멕시코 노래의 레퍼런스 : www.youtube.com/watch?v=xn41DDwHc0k
⁶⁾ 내 빵에 버터를 바르고 날 비스킷이라고 불러주게 : 좋은 소식이 있을 때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해 던지는 말. 원문은 butter my bread and call me a biscuit.
⁷⁾ 문 파이 : 이거 완전 초코파이 아니냐 https://en.wikipedia.org/wiki/Moon_pie
⁸⁾ 바보야 : 원문은 ‘Bless your heart’. 미국 남부에서, 애정을 담아 돌려 말하는 것(Urban Dictionary에 사용된 예시는 어린아이가 손가락 4개를 펴며 자기가 6살이라고 하자, 엄마가 “Oh honey, bless your heart, but that's only 4 fingers."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챕터7
Hang the Fool - Chapter 7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664398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流れに棹さす
나가레니사오사스
“흐르는 물 속에 장대를 찔러넣다”
“변화에 저항하는 것”을 실수라고 일컫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속담. 사실 이 경구에서 ‘장대’라는 단어는 배의 방향을 잡는 노, 즉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도구를 떠올리게 하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
한조는 지브롤터의 태양빛에 잠이 깬다. 그는 눈을 뜨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난다. 용은 동틀녘에 일어날 때 몸을 뒤척이거나 하품하지 않는다. 그는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둘 중 하나였고, 그 사이에 나른하게 머무는 일은 없었다. 굼뜨게 움직이는 일도 없었다. 두 발로 서 있는 한 정신은 또렷했다.
그는 가문의 문장이 없는 궁도복과 하카마를 걸치고, 빌려 쓰고 있는 방의 모습을 점검한다. 회색 벽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고, 석고 보드가 미약하게 빛나는 금속재 바닥의 틀을 잡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 창문이 하나 있고, 옷장이 있고, 컴퓨터 콘솔과 서랍장 사이에는 큰 오렌지색 플라스틱 트렁크가 놓여 있다. 침대와 문 사이 바닥에는 큼직한 고무 매트가 깔려 있다. 한조는 의도적으로 서식지를 검소하고 엄격하게 관리했다 : 장식도 꾸밈도 없고, 불필요한 가구나 잡동사니가 없도록. 침대 옆에는 활이 걸려 있고, 그 옆에 화살통이 기대어져 있다. 활을 쏠 때 끼는 가죽 장갑은 손 닿는 거리에 있다. 머리끈은 잘 개어져서 서랍장 위에 놓여 있다. 칙칙한 숙소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밝은 색깔을 가진 물건이었다.
산뜻한 새 아침의 햇빛을 받으니 또 하루의 우울한 날에 정면으로 맞설 준비가 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려서, 자신을 묶어놓는 힘에 반항하는 기분이다. 그는 답을 모르는 질문에 얽매여 있었다 : 무엇을 -- 그리고, 쓰라린 질문 -- 왜?
한조는 매트 위에 무릎을 꿇는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벽과 문을 마주하고 앉아, 등과 어깨를 꼿꼿이 편다. 그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는다. 명상하는 건 아니다. 뇌는 생생하게 살아서 주변 환경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심지어 전투 도중에도 그는 생각을 완전히 텅 비게 두지 못한다. 살아남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머리로 외우고 있는 절차와 순서를 따라야 했다. 그가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 있는 건 오직 활을 쏘는 순간뿐이었다.
그는 어제, 그리고 그제 생각했던 것을 오늘도 똑같이 생각한다. 동생 겐지는 감시 기지 치료소에서 치유되는 중이다. 비슈카르의 습격 이후로 3일이 지났고, 그 동안 흉부에 뚫린 구멍과 등의 환기구를 수리하기 위한 수술이 있었다. 그 스위스 외과의사는 빠르면 내일 겐지가 치료소를 나올 거라고 했다. 그는 무사할 거다. 용은 기뻐했다. 아주 깊게 --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계곡이나 산 아래쪽에서 공명하는 거센 바람 같은 고마움을 느꼈다. 한번은 (갑자기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함께 제트기를 타고 교토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큰 제트기였다. 거대한 엔진들이 웅웅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누그러지고 진정되더니 결국 졸음까지 쏟아졌었다.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다. 고마움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 어마어마하게 크고, 안심되고, 발 아래를 믿음직하게 지탱해주는 것.
그는 그 때 어린애였다 --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정도. 높이에 겁먹어서 의자를 꽉 움켜쥐던 어린애. 그는 그 여행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떠올린다 : 미야가와 쵸의 자갈길, 네온 불빛, 여관 밖에서 딱딱거리던 ¹⁾시시오도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귀엽게 생긴 어린 기생들. 꽃다발처럼 그를 둘러싸고 모여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을 채워주고, 비둘기처럼 수다를 떨었지 : 시마다 씨 아드님이 제일 잘생겼네요! 이 눈! 이 뺨! 작은 군주 같은 얼굴이야!
¹⁾대나무에 물이 졸졸졸 하다가 딱 하는 그거.
그리고 겐지, 그 시끄러운 작은 새. 그는 남동생이 장난감 칼을 들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지 문을 다 찢어놓다가, 아버지에게 잡혀서 칼을 뺏길 때까지 빽빽 소리를 질러대던 걸 기억한다. 늘 그렇듯이, 모든 걸 망쳐놓았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한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콧구멍으로 내쉰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왜 여기 머물렀나?
그는 머리를 뒤로 묶고 규칙적으로 매일 하는 매트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그의 육체가 가지는 원래 목적을 일깨우는 8개의 혹독한 단계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한다 : 항상 무기로서 움직이고 공격해야 한다는 목적. 끝날 때쯤에는 땀에 흠뻑 젖는다. 그는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짜내고, 다시 옷을 입는다. 새 옷이 필요했다. 궁도복의 자수가 놓인 부분과 옷소매 솔기가 느슨해지고 있었다. 한조는 거지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겐지가 나아지면, 입을 것을 더 얻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해야 할 거다.
한조는 돌아서서 플라스틱 트렁크를 쳐다본다. 쳐다보기 싫어질 때가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바보 녀석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다. 그것도 가능한 선택 중 하나였다. 사실 : 겐지의 상태를 고려해 보면,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일 거다. 양키 씨는 이전에도 그에게 보급품을 가져다 줬고, 심지어 갈래 화살을 만들기 위한 복잡한 재료들까지 구해다 줬다. 옷가게나 재단사를 찾는 게 힘들지는 않을 터였다. 잠시 동안, 한조는 그에게 부탁할지 고려해 본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줄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는 트렁크로 가서 뚜껑을 열고 안을 볼 뻔한다.
그 때 치료소 바깥 복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 빨간 망토, 강한 팔의 갑작스런 포옹. 그를 때렸던 것. 충격적인,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키스 : 약간 담배 냄새가 나는 타액의 맛. 그 이후로 천 번은 더 때렸어야 마땅했고, 거의 그럴 뻔했다.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니 : 그 바보 녀석에게는 부탁하지 않을 거다. 이것에 대해서는, 당분간은.
짜증난 상태로, 한조는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빗어넘긴다. 그는 벽시계를 본다 : 0648.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 녀석은 보통 정오나 그 이후가 되어서야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그 화합이라는 걸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로, 아침 시간은 온전히 동생만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남겨뒀다. 멈추지 않는 생각 속으로 그 바보 녀석이 살금살금 더 깊이 기어들어오는 걸 느끼자 마음이 불안해진다. 나쁜 징조야, 그가 생각한다. 이 징조가 부디 결실을 맺지 않기를.
습격 이후로 양키 씨를 보지 못했다. 꼭 피하려고 했기 때문인 건 아니지만, 한조는 그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어 기뻤다. 비슈카르의 습격 이후로 감시 기지에서의 모든 일상적 활동들이 궤도를 벗어났다. 다같이 식사하는 일도 없고, 훈련 시간도 없고, 정원에 물을 주거나 늦은 저녁에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다. 모두가 보수 작업과 보안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 그러니, 그 바보 녀석도 분명 바쁘겠지. 한조는 최근 들어 겐지의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야 겨우 평상시와 비슷한 일상으로 돌아왔고, 때문에 곧 필연적으로 찾아올 그 카우보이와의 마주침에 대한 대비를 마쳤다. 그는 그 개자식과 마주치는 우스꽝스러운 희극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본다. 그 모자, 느릿한 말투, 그 입술, 그리고 이상스러울 만큼 강력한 총. 의미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를 꺼내며 그를 꾀어내는 모습 : 영화, 컨트리 음악(으!), 아니면 십자말풀이.
그 키스 얘기는 꺼내지 않길 바란다. 한조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주제.
궁수는 화살통과 활을 등에 걸쳐멘다. 그는 18번 격납고를 피해가는 길로 감시 기지를 가로질러 치료소까지 걸어간다. 유지보수 드론들은 아직 비슈카르 요원이 겐지를 쐈던 곳에 남은 검은색 자국을 지워내지 못했다. 그 자국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근처에 가지 않을 거다.
스위스 의사가 치료소에서 그에게 인사한다. 한조는 그녀의 희미하게 미소짓는 얼굴에서 아직까지 경계심을 읽어낼 수 있다. 혈육을 기계로 바꿔놓은 여자에게 걸맞는 인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녀는 이 바위섬에서 그가 가장 따뜻하게 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겐지는 자고 있어요.” 그녀가 활기차게 말한다. “15분 뒤에 바이탈 체크하고 냉각수를 교체할 거에요. 그 때까지는 보고 계셔도 괜찮아요.”
당연하게도 : 그녀는 시간을 재고 있다. 몇 달 전에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그녀는 그를 의심하고, 어쩌면 그에게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들기까지 한다. 그녀를 덜 좋아하게 될 일이 생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조는 동생의 침대 머리맡에 앉는다. 겐지의 얼굴 보호대는 근처에 있는 트레이 위에 있다. 한조는 겐지가 항상 잘 때만큼은 조용했다는 걸 기억해낸다. 코와 뺨을 지나는 상처들만 아니었다면, 순수한 소년같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었다.
냉각수를 교체한다고. 정말 이상한 말이다. 겐지가 기계나, 자동차라도 되는 것 같은 -- 침대 위에 힘없이 누워 있는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그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말쑥한 흰색 제복을 입고 겐지 옆에 서 있던 요원들과, 그들의 악의에 찬 목소리도. 그들은 동생을 데려가려고 했다. 동생의 몸에 칼을 대고 안을 보려고 했다. 실험을 하려고 했다. 용을 사로잡아서 실험 재료로 만들려고 했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동시에, 무의식 중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속삭인다 :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너 때문이야.
한조가 의족 무릎을 꽉 잡아 떨림을 멈춘다. 메르시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곧바로 일어선다. 그만 자리를 떠나달라고 요구하는 기쁨을 그녀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서 그는 영국 여자, 레나를 발견한다. 그녀는 새로 들어온 요원에게 기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뺨이 동그랗고, 코가 작고, 커다란 검은 눈을 가진 통통한 여자. 레나는 그녀가 오버워치의 기후학자 메이 링 저우이고, 다가오는 시베리아에서의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에 도착했다고 소개한다. 그녀는 하늘색 코트, 핑크색 바지, 그리고 두껍게 털이 대어진 부츠를 착용하고 있다. 소매에는 파스텔톤 분홍색 실로 꽃과 기호 모양의 자수가 놓여 있다. 등에 멘 북극곰 모양 책가방은 크리스털 열쇠고리를 달고 있다. 그는 출입구에서도 매화꽃 향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조는 감시 기지의 삭막한 회색에 대비되는 부드러운 색깔들에 놀란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안심시켜 주는 듯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메이 링은 미소지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아침 시간을 방해해 미안하다고 한다. 놀랍게도 : 그녀는 일본어를 잘 한다. 그 만남으로 거의 기분이 좋아질 뻔한다. 실제로 좋아지는 데까지는 약간 모자랐다.
한조는 통신 타워 위에서 혼자 달걀과 밥으로 식사를 한다. 작은 새 두 마리가 근처에서 짹짹거린다. 그는 밥알 몇 개를 덜어 새들에게 던져준다.
그는 동생과 거의 매일 여기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습격이 있던 날 저녁에 동생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시작은 늘 비슷했다 : 쾌활하고, 애정이 깔려 있고, 추억으로 맥박치는 대화. 겐지는 낯선 새로운 육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치있었다. 그는 예전처럼 옆구리를 찌르며 농담을 던지고, 가끔씩 엉뚱하게 굴기도 한다.
“그리고 타케시 씨.” 겐지가 모국어로 말하는 편안함을 누리며 말을 꺼냈다. “이발사였던 사람. 우리한테 사탕 훔쳐다 줬잖아.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 어리석은 녀석 말이지.” 한조가 콧방귀를 뀐다. “엉뚱한 사람 목을 잘라서 신세를 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를 목표물로 착각한 거지. 제거당한 친구가 하필이면 좋은 집 아들이었어, 그래서 책임이 더 무거웠지.”
“운이 안 좋았네.”
“그래, 엉망진창이었어. 뉴스에도 나왔고.”
겐지가 웃음을 터뜨린다. “유감이야. 그 사람 좋아했는데.”
“넌 그랬겠지. 나보다 널 편애했으니까.”
“나 대학 들어갈 때 머리도 해줬었다고. 기억나지. 그 초록색?”
“그 초록색!” 한조가 소리친다. “으! 정말 끔찍했지. 아버지가 널 그 꼴로 내보냈던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머리 꼭대기에 잎이 돋아난 홍당무 같았는데.”
“무슨 말이야, 그 머리 끝내줬는데.” 겐지가 어깨에 힘을 주며, 이마 보호대를 쓰다듬는 것처럼 바이저 위를 손으로 문지른다. “여자들은 신경 안 썼어. 홍당무를 다 먹어버렸지.”
동생과 함께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한조는 그 동안 웃음이라는 걸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닫는다 -- 온전히, 입을 벌리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 겐지는 계속해서 그런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재미있지 않은 주제들도 끌어냈다.
“유키.” 그가 긴 침묵 끝에 물었다. “유키는 어떻게 됐어?”
한조는 발등에 붙은 돌을 털어낸다. “내가 떠나고 나서, 놈들이 그녀를 불러들였지.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지, 내가 떠난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지 확인하려고 한 거야. 그리고 놔줬지. 날 향한 공격들이 그녀에게까지 미치지 않은 게, 솔직히, 운이 좋았어. 그래도 하나무라 밖으로 이사한 걸 보면 무서웠을 거야. 감당하기 힘들었겠지. 4년 전에 이와테 현에서 돌아다니다가 ²⁾오후나토 시장에서 그녀를 봤어. 그 인적 없는 곳에 있었던 거야. 귀신이라도 보는 것 같았지.”
“유키도 형을 봤어?”
“못 봤어, 다행히도. 그랬다면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그가 머리를 흔든다. “아이를 데리고 있었어.”
“남자애, 여자애?”
“아들 같았어. 대여섯 살 이상으로는 안 보이더군. 엄마 손을 잡고 있었지. 남편은 안 보였지만, 모르는 거지.”
겐지가 혀를 찼다. “모르는 거야.”
그리고 나서는 나쁜 감정들이 밀려왔다 : 실망, 죄책감, 그리고 실망을 먼저 느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대화는 오버워치와 그 아군으로 주제를 바꾼다. 한조는 오버워치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조소한다.
“매일 함께 훈련하잖아.” 겐지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의견을 말한다. “함께 싸우면서 형의 지혜와 전문성을 빌려주고 있지. 그들은 형을 믿고 있어. 아직도 오버워치의 대의를 받아들이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게 놀랍네.”
“무슨 대의?” 한조가 묻는다. “죄없는 자들을 지키는 것? 세상을 보호하는 것? 영웅이 되는 것? 하.” 그가 한숨쉰다. “날 봐, 겐지. 진지하게, 날 봐라. 내가 그런 걸 위해 싸우는 사람이냐? 인생이 망가지고 나서 몇 년 동안, 내가 그런 적이 있어?”
“더 좋은 질문이 있어, 한조 : 왜 지금부터라도 그런 것을 위해 싸우지 않는 거지?”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겐지의 확신과 믿음에 반응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러지 않았을 거다. 한조는 겐지가 너무나 흔쾌히 받아들인 그 사실을 수용하기에도 벅찼다 : 그가 두 번째 삶을 살 기회를 얻어서, 다시 완전히 부활했다는 것. 그래서 한조에게 다음으로 넘어갈 자격이 생겼고 -- 10년 전부터, 그 모든 걸 지나보낼 수 있게 된 그 날까지의 자기 자신을 그만 용서해야 한다는 것. 둘은 그 주제를 이야기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부딪혀 닳아갔다. 늙은이처럼 불평하고, 어린애처럼 말다툼하면서.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논쟁을 끝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젠야타에 대한 이야기가 결정타였다. 겐지는 형이 평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며, 수도 없이 그의 스승의 가르침을 들어 보라고 요구했다. 한조는 거절했다. 겐지는 집요했다. 한조는 요지부동이었고, 겐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삶 속에서 뒤로 물러나기만 할 거냐고 그를 책망했다. 한조는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심지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짐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뭘 아냐고 동생을 비난했다. 형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동생이 화를 내며 뒤를 쫓아왔다. 식당에 들어가며 잘라버린 동생의 마지막 말이 아직까지도 귀에 따끔거렸다.
“고여 있는 물은 방향을 바꿀 수 없어.”
한조가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젠야타가 있다. 윙윙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 그가 바로 옆에 둥둥 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옴닉에게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기쁨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진짜 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조는 그 옴닉이 살아있는 존재가 느끼는 것처럼 시야라는 감각을 느끼는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 하찮은 로봇은 마음을 읽을 수 없겠지만, 한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 불편해진다.
“뿐만 아니라, 물이 흐른다면,” 젠야타가 깊게 공명하는 목소리로 계속한다. “바위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요. 나의 스승에게서 나에게로 전해져, 나를 통해 제자에게로 다시 전해지는 지혜의 말들이 그 바위 같은 것이라오.”
“너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 그가 낮게 말한다. “무슨 영적인 헛소리를 주절대러 왔다면 다시 생각해라, 옴닉. 오늘은 듣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내일은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는군요.” 젠야타가 거의 노래하듯 대답한다. “당신의 동생은 그렇게 믿습니다. 그는 말씀 속에 살지요. 진정한 조화를 바라고, 형제 간에 평화가 싹트길 바라며.”
“조용히 해라.” 한조가 발끈한다. “본인이 있지도 않은 자리에서 뻔뻔스럽게 내 동생을 대신해 말하는 네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스승이냐?”
젠야타가 웅웅거리는 금속음을 낸다. “하나의 존재는 동시에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시마다 한조. 특히 타인의 시선 속에서는.”
“뭔가 암시하는 말을 하는군. 벌써부터 맘에 들지 않아. 아까도 말했지만, 다시 생각해라.”
“시간은 지나고, 계절은 바뀝니다. 저는 겐지에게 단순한 스승이 아닙니다. 전 그의 친구죠.”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의 혐오감이 솟구친다. “겐지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것처럼 잘난 체하지 마라.” 그는 어깨에서 머리끈 끝부분을 털어낸다. “그리고, 나에 대해 뭐라도 안다고 생각할 엄두도 내지 마.”
“내가 아는 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라오.”
한조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난다. 그는 통신 타워를 내려가 지면으로 뛰어내려 젠야타를 떠난다. 그는 멀리서 라인하르트와 함께 위성 안테나를 고치고 있는 토르비욘이 손을 흔드는 걸 무시하고, 숙소로 가는 길을 폭풍처럼 휩쓸며 내려간다. 한조는 정원 근처를 지나는 코너를 돌 때에만 잠시 멈칫하며 빨간 망토와 모자를 찾아 흘끗거리는 시선을 던진다. 아무도 없다. 왜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 기분이 더 나빠진다.
양키 씨는 어디 있지? 평소라면 그 얼간이는 이 때쯤 일어나, 이 정원에서 그 역겹도록 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꽃 향기나 맡고 게으름피우며 어슬렁거린다. 시간 낭비를 하는 거지. 오늘 아침은 뭐가 그렇게 바쁜 걸까? 지난 몇 일간 녀석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무슨 상관이야, 그가 혼잣말한다. 그리고, 완전히 확신에 차서 : 난 신경 안 써.
한 숨 돌릴 장소를 찾기 위해, 한조는 연료 창고 근처의 계단을 지나 절벽으로 이어지는 바위투성이 길을 올라간다. 2번 훈련장을 쓰기 전에 궁술 연습을 했던 평평한 지대에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위험 지역이라 수평선에는 배가 보이지 않는다. 검은 회색이 도는 푸른빛 바다 위로 스페인에서 그어 놓은 삐죽삐죽한 흰색 선이 보인다. 한조는 제트기 엔진과 높은 곳에 대한 오래 전의 공포를 떠올린다. 그는 의족 발목을 돌려 보고, 바닥에 앉을 때 인공 근섬유가 가볍게 진동하며 웅웅거리는 걸 느낀다. 그는 앉은 채로 활을 무릎 위에 올리고,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든다. 그는 화살깃을 손바닥에 놓고 경치를 내다본다. 오랫동안 그러고 있는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들을 부르는 말을 바람에 실어보낸다.
부름에 대한 응답은 감각이 거꾸로 흐르게 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작한다. 바람을 타고 오는 낮은 휘파람 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한조는 -- 지난 몇 년간 그들이 응답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처럼 -- 여기서 끝나버리지 않을까, 아주 잠시 동안 걱정한다. 하지만 그 걱정은 우렁찬 포효를 들었을 때 증발해 버린다. 주변의 공기가 살아 움직이며, 태풍이 몰고 오는 비처럼 거세게 몰아친다. 그들이 형태를 이루는 것은 정신을 마비시킬 정도로 성스럽기까지 했다.
도착했군 - 그게 신호였다. 그걸로 그들이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뒤틀리며 터져나오는 빛. 눈부신 푸른색으로 솟구치며, 서로를 휘감는 장대한 빛줄기들. 그들이 출현할 때마다 마음은 늘 새로운 경외심으로 가득해진다.
시마다 가문의 용들이 그 주인에게 끓어오르는 듯한 사나운 눈으로 인사한다.
“왔구나,” 그가 소리내어 말한다.
용들의 숨결이 조금씩 끊어지며 떨린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 왔노라.
“예전에,” 한조가 계속한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는 나에게 와주지 않았지. 내 동생을 죽이고 2년간 헤맬 때 너희는 날 인정하지 않았어. 내가 그 죄를 갚기 위해 삶을 내려놓을 준비를 했을 때, 돌아왔지.” 한조는 용들이 서로 교차하고 겹쳐지고, 채찍처럼 꼬리를 휘두르고, 별들로 이루어진 리본처럼 수염을 휘날리는 걸 본다. “너희는 날 죽게 해주지 않았지. 쉬게 해주지도 않았어. 죽음 말고 다른 방법으로 동생의 명예를 기리게 했지.”
용들은 하늘에서 천천히, 조용히 원을 이루며 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살면서 지금처럼 너희가 강했던 적이 없었어.”
그는 왜 용들이 더 강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가설은 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겐지와 다시 합친 게 용들을 더 강하게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신비로운 생명체들은 조화와 질서 속에 사는 존재니까. 아니면 행성과 달의 배열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 맞거나,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한조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힘을 이 세상의 논리로 해석하려고 하는 건 오래 전에 포기했다. 그저 신의 뜻이려니 하고 이해하는 게 더 나았다.
한조는 입술 사이로 숨을 들이마시고, 콧구멍으로 내쉰다. 용들은 듣고 있다. 바다가 지켜보고 있다.
“난 강하지 않아.” 한조가 고백한다. “난 겐지를 잃을 뻔했어. 내 눈 앞에서, 겐지가 쓰러졌지. 죽었을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난 무력했다. 내 나약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럴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어.” 그가 턱을 들어올린다. “이게 내 벌이냐?” 그리고,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보이며 : “난 계속 여생을 이렇게 보내게 되는 거냐?”
용들이 가까워진다. 조용히, 고요하게, 반짝이는 깃발처럼 바람 속에서 파도치며. 한조는 그들이 대답해주길 원했다. 그리고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용들은 기꺼이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말하기보다는 보여주는 편이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가 용들이 떠나기 전에 소리쳐 묻는다. “내가 왜 머물렀나?”
대답이 없다. 한조는 한숨쉰다.
그 바보가 즐겨 말하듯 :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it was worth a shot).
---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조는 답사를 떠난다. 그는 절벽을 오르고, 방해자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본다. 지난 두 달 동안, 그는 아테나의 드론과 보안 센서들의 경로를 기억해 놓았다. 오늘 그는 바람 때문에 쓰러져 손상된 드론을 발견해서, 수리시키러 갖고 돌아가기로 한다. 절벽을 내려가는 길에, 갈매기 둥지가 눈에 띈다. 한조는 못생긴 새끼 갈매기 두 마리에게 점심에 먹었던 참치 육포 한 조각을 던져준다.
윈스턴이 드론을 회수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한다. 그와 한조는 다가오는 시베리아에서의 임무에 대해 약간 어색한 대화를 나눈다. 윈스턴은 감시 기지 습격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일정대로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한조는 그게 좋은 생각인지 의문이었지만, 윈스턴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득한다.
“당신이 함께한다면, 우리가 러시아 방위군에게 지금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말한다. “정말 많이 노력해 주셨잖아요, 한조. 지금까지 노력해온 걸 멈추고 보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윈스턴을 본다. “적을 도발하게 될 거요. 비슈카르가 임무에 끼어들어 방해 행위를 하면, 반격하는 동안 죄없는 생명들을 잃을 수도 있소. 오버워치 귀환에는 나쁜 징조지.”
윈스턴이 씩 웃는다. “비슈카르의 개입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겁니다. 곧 보실 거에요. 준비가 끝나면 이틀 안에 브리핑을 할 겁니다.”
한조가 낮게 말한다. “참석하지.”
“잘됐군요.” 윈스턴이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하다가, 그를 올려다본다. “저, 그나저나 겐지 일에 대해선 정말 유감입니다. 금방 나을 거라니 다행이에요.”
한조는 대답 없이 떠난다.
그는 밤이 되자 2번 훈련장에서 혼자 연습한다. 평소보다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는 동생이 치료소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메르시가 소리 없는 걸음으로 그 주위를 맴도는 모습도. 그리고 젠야타를 생각하자 화가 치솟는다. 그 옴닉은 겐지와 함께 절벽 위에서 몇 시간씩 명상을 하곤 했다. 한조는 겐지가 스승과 그런 시간을 보낸다는 게 거슬렸고, 심지어 그 시간을 귀중한, 빼놓을 수 없는 시간으로 생각한다는 게 모욕적이기까지 했다. 한조는 초대받은 적이 없었다. 초대받았다고 해도 분명 거절했겠지만, 그럴 때마다 완전히 소외된 기분이었다. 그들이 명상하러 간 마지막 날에, 한조는 기분이 너무 나빠서 몇 달 전에 양키 씨가 조달해 준 사케 한 병을 꺼내서 땄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마셨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한조는 1번 훈련장 샤워실에서 어쩌다 다친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양키 씨가 얼빠진 채 들어와서 -- 카우보이 분장을 한 남학생처럼 박차를 철커덕거리던 것도 그랬다.
커다란 문을 지나 훈련장으로 들어가면서, 한조는 그 바보의 모습을 그렇게 상상한다. 박차를 짤랑거리고, 벨트 버클이 반짝거리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햇볕에 탄 얼굴로 한조를 향해 크게 씩 웃음짓는 모습. 그는 녀석이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목표물에서 시선을 돌린다. 어쩌면 생각이 그를 부를 수도 있겠지 -- 마치 한조가 녀석에게 뜻을 설명하라고 했었던 속담처럼 :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speak of the devil).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조는 표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그는 유난히 크게 빗나가는 화살을 쏘고서 화살을 반으로 부러뜨려 버리곤, 화를 억누르지 못한 자기 자신을 꾸짖는다. 차를 마셔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잠자리로 간다. 3일이나 그 바보 녀석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치료소 밖에서 그러고 나서보다도 더 마음이 불안하다.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조는 미야가와 쵸 찻집 기생들의 꿈을 꾼다. 기생들 중 하나가 기모노 위에 그 바보 같은 빨간색 망토를 걸치고 있다. 한조가 그걸 벗으라고 하자, 그녀는 예의바르게 그 물건이 세라피라고 한다는 걸 알려주고 나서, 날카롭고, 담배 냄새 나는 키스를 선사한다.
---
다음 날 아침 한조가 치료소에 도착했을 때 겐지는 의식을 되찾고 일어나 앉아 있었다.
“치글러 박사님께서 그 후로 4일이나 지났다고 했어.” 그가 작게 말한다.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비슈카르가 내 통제 시스템에 손상을 입히는 무기를 개발했다는 것 말곤. 과열돼서 속도가 느려졌어.” 그가 천장을 올려다본다. “박사님은 놈들이 리장에서의 전투 이후로 날 연구했다고 생각하셔. 내 몸을 개조한 방식을 분석했다고.”
“널 살려서 잡아가려고 했다.” 한조가 엄하게 대답한다. “널 더 연구하려고 했어. 네 옆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네가 죽인 동료의 복수를 하려고도 했지.”
겐지가 앞으로 몸을 숙이려다 움찔한다. 한조가 달려들어 그를 안정시킨다. 겐지가 빠르게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는 팔을 돌려보며 목을 푼다. 그는 가쁘게 한숨을 내뱉는다. 한조는 그가 완전히 지쳐 보인다고 생각한다.
“맥크리가 우릴 구해줬다던데.” 그가 말한다. “치글러 박사님이 말해주셨어. 빨리 만나서 감사 인사를 해야겠어.”
“그래, 양키 씨였다. 그 총으로 뭔가 했--”
겐지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든다. “이제 그 별명으로 불러선 안 된다고 생각해.”
한조가 웃음을 참아낸다. “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재미있구나. 네가 생각해 낸 것 아니냐. 네가 그랬잖아 : 텍사스 사람들은 ‘양키’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
“그래, 하지만 생각해봐.” 겐지가 진지한 눈으로 한조를 쳐다본다. “우리 생명의 은인이야. 이 빚을 존중해야지.”
감사의 마음이 한조의 가슴 속에 차오르려 하지만, 그는 억눌러 버린다. “녀석은 그 빚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이미 확인했다.” 한조가 그 키스를 떠올리며 으르렁거린다. “그냥 바보일 뿐이야.”
“정말 확신하는 것 같네.”
“이 확신이 들기까지 그 놈 옆에서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그가 형과 내 목숨을 살렸어. 행동이 좀 바보 같을진 몰라도, 그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더 잘 표현하지.” 겐지가 고개를 기울인다. “그가 형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 있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이번 주에 몇 번이나 듣게 되는 걸까?
잠시 후 한조는 치료소를 떠나다가 트레이 위에 올려져 있는 모자를 발견한다. 그는 모자 테두리에 꽂힌 배지와 총알들을 알아본다. 그는 멈출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것을 향해 걸어가, 너덜너덜한 모자 챙으로 손을 뻗는다. 그는 모자 아래에 뭔가 위험한 게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경계하며 집어든다. (그 바보가 사막에서 맞닥뜨렸다고 쉴새없이 주절거리던) 전갈이나, 뱀 같은 것.
당연하게도 : 모자를 집어들자마자 그 소름끼치는 의사가 나타난다.
“모자를 두고 갔네요!” 그녀가 한조 뒤에서 말하자 그가 놀라서 뛰어오른다. “불쌍한 제시. 아, 통신을 걸어서 모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야겠어요.”
한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메르시를 본다. “그 녀석이 여기 있었나?”
메르시가 어깨를 으쓱한다. “가지러 돌아올 거에요. 말 그대로 머리에서 분리할 수 없는 물건이거든요.” 그녀는 미소짓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걸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던가요? 제가 오버워치에 들어왔을 때, 스위스 본부 투어를 했었는데, 복도에서 만났어요. ‘안녕하신가’하고 인사하면서 모자를 기울이더라구요. 내 눈이 잘못됐나 의심했죠, 본부에 진짜 카우보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 --”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가 말을 자르자 메르시가 눈을 가늘게 뜬다. “네?”
“이 물건을 소중히 여기잖나. 놔두고 가다니 녀석답지 않아. 왜 여기 있었던 거지?”
“치료소 방문에 대해 말하는 건 환자 기밀 보호 규율에 의해 금지되어 있어요, ³⁾시마다 씨.” 그녀가 밝게 대답한다.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요.”
그가 생각했던 대로다 : 경계심. 의심. 그녀의 보호 범위가 그 바보 녀석에게로까지 넓어진 게 틀림없다. 겐지가 그녀에 대해 말할 때마다 들뜬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한조는 모자를 집어든다. 그는 메르시를 내려본다. “내가 가져다 주지.”
“괜찮아요, 시마다 씨. 그냥 통신기로 불러내면 되는데.”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조가 돌아서서 떠난다. 메르시가 계속한다. 목소리에 약간 날이 선다. “자고 있을 거에요. 꼭 직접 갖다 줘야겠다면, 부탁인데 그에게 공간을 좀 줘요.”
한조는 대답하지 않고 치료소를 떠난다. 그는 양키 씨가 습격 이후에 기대앉아서 뭔가 중얼거리며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던 벽을 날카롭게 쳐다본다. 아마 겐지를 보러 자신보다 먼저 들렀거나, 왼팔을 검사받으러 온 거겠지. 그는 항상 의수 회로에 대해서 불평했었다.
공간을 좀 주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벌써 공간은 충분히 주지 않았나?
밖으로 나와서, 그는 라인하르트와 함께 보급품 상자를 옮기고 있는 루시우와 마주친다. 한조는 소년이 따뜻하게 인사하자 놀란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서로 스쳐지나갈 때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인사를 하진 않았다.
“헤---이, 시마다 씨!” 루시우가 부른다. “오늘 좀 어때, man?"
“나쁘지 않아.” 한조가 손을 흔드는 라인하르트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며 대답한다. “겐지가 일어났어.”
두 명 모두 오른손에 든 모자를 알아차린다. 그들은 짧은 순간 가볍게 시선을 교환한다. 라인하르트가 한조에게 활짝 웃어보인다. “아주 좋은 소식이로군! 굉장히 안심하셨겠소!”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았지,” 한조가 대답한다. 그는 양쪽 귀 끝까지 미소가 걸린 루시우를 본다. “시베리아 임무는 취소되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위험한 임무지,” 라인하르트가 동의한다. “나도 맘에 들지 않네. 그 많은 요원들을 현장에 내보내기 전에 좀더 시간을 들여서 기지를 강화해야 할 텐데.”
한조가 허리끈에 모자를 찔러넣고, 라인하르트에게 다가간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돕겠다는 뜻이었다. “윈스턴을 설득하려면 따로따로 말하는 것보단 단합해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거요.”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들은 상자를 통신 타워까지 옮겨내곤 감시 기지 보수 작업에 대해 논의하느라 잠깐 멈춘다. 토르비욘은 이번 주말까지 위성을 다 고쳐낼 전망이고, 라인하르트는 손상된 격납고와 도로를 손보는 데 시간이 더 들 거라고 생각한다. 한조는 이 거대한 기사와 이야기하는 게 거의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에게서는 한조가 존경을 표할 만한 온화함이 넘쳐흘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성량을 항상 환영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떠나려 하자 두 동료 모두가 그를 멈춰세우고 질문을 던진다.
“이봐, man.” 루시우가 중얼거린다. “그 뭐야, 참견하거나 그러는 건 아닌데, 이스트우드 괜찮지, 그치?”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는 그 별명이 양키 씨가 항상 떠들어대는 서부 영화 배우의 이름이라는 걸 알고 있다. “무슨 뜻이지?”
루시우가 얼굴을 찌푸린다. “잘 지내고 있어? 어제 오후 지나고는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man. 그걸 보고 나니까, 좀 걱정이 돼서.”
한조는 소년의 말에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드는지, 스스로에게 놀란다. “뭘 봤다는 거지?”
“아.” 루시우가 라인하르트와 시선을 교환하며 했던 말을 취소한다. “거기 없었나? 어, 잠깐만” -- 그가 한조의 허리끈에 끼워져 있는 모자를 내려다본다 -- “내 기억엔, 잠깐만, 아니 그거 몰랐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왜냐하면, 그게 - 알잖아.”
“뭘 모른다는 거냐?”
“젠장, man, 그게 말야, 그, 난 너희 둘이 --”
“루시우,” 라인하르트가 끼어든다. “시마다 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 같네만.”
“아, 젠장.” 루시우가 자기가 한 말에 당황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린다. “미안해. 내가 하려던 말이, 그게, 뒷얘기 하려는 건 아닌데 --”
“괜찮네, 루시우.” 라인하르트가 당황한 한조에게 손짓을 한다.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똑같이 해주게나.”
루시우가 입술을 핥으며 왼쪽 오른쪽을 흘겨본다.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그래, 좋아, 어제 이스트우드한테 무슨 일이 있긴 했어. 빌려준 면도기 돌려받으러 방에 찾아갔었는데,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거야. 그래서 노크를 했는데 -- 총 소리가 들리더라고.”
한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왜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느낌이 파도처럼 뱃속을 때렸다. 그의 시선은 미친 듯이 루시우의 양 눈 사이를 헤맨다.
“그리고, 난 완전 놀라서,” 루시우가 계속한다. “땅에 납작 엎드렸지. 방 안에서 소리지르는 게 들렸어, 그래서 난 ‘젠장, 자해했어, 나 때문에 놀랐거나 뭐 그런 거 아냐’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문이 열렸어. 괜찮아 보이더라고. 실수로 쏜 거라고 했어. 그 모습이 무슨” -- 소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마에 손을 짚는다.
한조가 소리친다. “모습이 어땠는데?”
“완전 망가졌더라고, man, 정신이 나갔어. 다친 곳은 없는데, 꼴이 엉망이었어. 계속 사과하고 사과하고, 엄청 놀라 있었어.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했어. 내 말은, 무슨, 내가 치료소 한 번 가보라고 설득했는데 --”
“지금은 어디 있지?” 한조의 시선이 라인하르트와 루시우 사이를 빠르게 오간다.
루시우가 눈을 깜빡인다. “어, 치료소에 없으면, 아마 자려고 하고 있을 것 같아. 아마 방에 있을걸.” 그가 가까이 다가선다. “우리 셋이서만 얘기하는 건데, 무슨 불안장애 같은 게 온 거 같아. 공황발작이나 뭐 그런 거. 외상 후 증후군 같은 거. 계속 땀 흘리면서 막 ‘눈이야, 눈,’ 이러더라고. 계속 자기 눈 가리키면서. 근데 눈은 멀쩡해 보였어. 이스트우드가 그러는 건 처음 봤어, man. 엉망진창이었어.”
한조는 세 발의 리볼버 총성을 기억해낸다. 겐지를 함께 치료소로 옮겼던 것도. 동생을 구하는 데 미쳐서, 그 바보의 뭉그러진 발음과 휘청이는 머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포옹, 그 키스. 그 스위스 의사의 찌푸린 얼굴. 공간을 좀 줘요. 그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놓친 듯한 기분이 든다.
헤매는 생각을 라인하르트가 중단시킨다. “왜 그러는지 알 것 같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혹시, 맥크리가 재소집 이전의 오버워치에서 자기가 했던 일을 말해준 적이 있나?”
한조의 눈썹이 천천히 코 위로 모이며 찡그려진다. “현장 요원이라고 했었는데.”
“그냥 현장 요원이 아니었네. 제시는 기밀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오버워치 내부 조직의 일원이었지. 아주 강력하고 위험한 전문 요원들, 대부분은 킬러였지. 의심쩍은 조직 그 이상이었어. 항상 그들이 수행하는 임무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 잠입, 함정 수사, 정치적 방해 공작.” 라인하르트가 인상을 쓴다. “납치, 암살, 심지어 고문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윤리적이었지. 난 그 보고를 듣고 나서 계속 항의해 왔어. 그 조직의 지휘관은 가브리엘 레예스라는 남자였고, 제시는 정예 요원 중 하나였다네.”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놀라며, 한조가 묻는다 : “그 조직의 이름이 뭐였지?”
“‘블랙워치.’ 맥크리는 블랙워치를 통해 오버워치 현장에 배치받았다네. 가브리엘 레예스가 갱단에서 그를 빼내고 나서 가입시켰지.”
“갱단이라고.”
“그래, 데드락이라는 녀석들이지. 블랙워치가 미국에서 함정 수사로 잡은 아주 지독한 범죄 조직이었네. 맥크리는 감옥에 가거나 블랙워치에 가입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고, 후자를 선택했지. 그렇게 우리가 그를 얻게 된 걸세.”
한조는 미친 듯이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그 이름을 기억해낸다. 데드락이라는 이름은 규칙적으로 시마다 가문의 기록에 나타났었다. 가끔은 아군, 가끔은 적군으로. 그는 양키 씨가 블랙워치나 데드락에 대해 말했던 기억은 찾지 못한다. “그런 일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군.”
“나도 그랬어,” 루시우가 끼어든다. “내 말은, 막 엄청 명사수였다는 건 알고 있었어. 레나가 많이 말해줬거든. 완전 터프한 현상금 사냥꾼이었다는 거 말야, y'know, B-A-M-F 그거. 근데 무슨 ⁴⁾제임스 본 같은 과거사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 추측하려면 할 수는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멀리 갈 줄이야.”
“제시 얘기를 퍼뜨리고 다니려 했던 건 아니네만,” 라인하르트가 아주 약간 선량한 척하는 톤으로 말한다. 마치 맥크리의 이야기를 퍼뜨리게 된 건 좋은 의도에서 나온 불행한 결과물인 것처럼. “과거가 복잡한 남자라네. 블랙워치 요원들은 임무와 전술에 육체와 정신이 손상되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받곤 했지. 아, 거의 항상 결과는 똑같았다네. 망가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걸 망가뜨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
한조는 침묵하며 이 사실들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그가 입을 뗀다. “내게 공유해 준 정보에 대해 감사하오.”
라인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맥크리가 가슴 속에 과거를 묻어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네. 하지만 자네 같은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야. 자네와의 우정을 유지하고 싶어서 이런 것들을 말해주지 않은 것일 수도 있네.”
한조는 당황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그 세 가지를 모두 섞은 것처럼 보였다. “모자를 돌려주러 가야겠어.”
그들은 한조가 금색 머리끈을 오후의 태양 속에 휘날리며 떠나는 걸 본다. 루시우는 입술을 오므리며 양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넣는다. 그가 라인하르트를 올려다본다.
“그래서, man.” 그가 말한다. “지금 나랑 같은 생각 하고 있죠.”
“무슨 말인가?”
루시우가 눈썹을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가서 그거 할 거라고.”
라인하르트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럴지도 모르지, ⁵⁾개구리 친구여, 그들에게 사생활을 좀 허락해주게나. 벌써 많이 염탐하고 다니지 않았나.”
“이봐요, man, 염탐하고 다닌 게 아니라구요! 내가 다 봤어, 복도에서 대놓고 키스하고 있었는데!”
몹시 당황해서, 라인하르트는 손을 닦아내고 보급품 상자를 까기 시작한다. “남 얘기는 그만 하게, 루시우. 용한테 잡아먹혀서 죽을지도 몰라.”
루시우가 문워크로 라인하르트를 지나며 웃음을 터뜨린다. “지금 이스트우드를 먹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heyooo!”
---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한조는 오렌지색 플라스틱 트렁크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는 뚜껑을 열고 가지런히 정리된 내용물들을 살펴본다. 화살촉, 사케, 십자말풀이를 다 채워넣은 신문들. 차, 향, 화살깃, 지브롤터 절벽에서 모은 재밌게 생긴 돌멩이들. 여분의 궁도용 장갑 한 켤레, 붕대, 가위, 도구 상자, 박하 한 봉지. 그는 맨 위에 올려진 공책을 꺼낸다.
총 3권이었다 : 검은색 표지에, 줄이 그어져 있는, 1센티미터 두께도 되지 않는 그 공책들은 한조가 손으로 쓴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감시 기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기록한 깔끔하고 곧은 글씨들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처음 두 권은 펼치지 않는다. 지금은 감시 기지에서의 첫 두 달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지를 볼 때가 아니었다. 그는 기지 근처의 지도를 그리며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 -- 바위의 모양, 조수 간만의 차에서 물떼새 깃털 모양의 변화까지 -- 그리고 오버워치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를 기록했다. 부끄러운 기록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윈스턴을 과학자가 아니라 원숭이라고 지칭해 본의 아니게 모욕했던 것이나 -- 1번 훈련장 라커룸에서 마주친, 벌거벗은 라인하르트가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던 것. 몇몇 기록은 개인적인 즐거움이었다. 통신 타워 위에서 동생과 석양을 바라보았던 추억이나, 루시우의 스트리트 하키 경기를 지켜봤던 일들. 그는 바보 녀석과 함께 훈련하며 자신이 몇 대 몇으로 이겼는지를 상세히 집계한 기록에 덧붙여 바보 녀석을 조롱하는 말을 적어놓았다. 두리안을 그린 스케치도 있다. 토르비욘의 정원 격자 구조물을 휘감고 자라난 이상하게 생긴 흰색 꽃들에 대해 두 페이지에 걸쳐서 쓴 부분도 있다. 한조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그 꽃이 시계꽃속으로 분류된다는 걸 알아내고 이름을 베껴써 놓았다. 그 종류의 꽃들은 모두 똑같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바보 녀석은 유쾌하게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 어때, 사진에서 본 것처럼 예쁘지?
한조는 천천히 세 권째의 공책을 펼친다. 표지에는 그 바보 녀석의 삐뚤삐뚤하고 뭉뚝한 글씨가 적힌 4개의 형광색 포스트잇 쪼가리가 붙어 있다. 그 중 하나는 모서리가 찢어져 있다. 한조는 찢어진 부분을 따라 손가락을 훑어내린다.
세 번째 공책의 처음 두 페이지는 영어 문장들과, 그에 뒤따르는 일본 문자와 기호들로 채워져 있었다.
If that is not a fact, God’s a possum = 그게 사실이라는 뜻 [진짜로]
Ain’t seen that in a dog’s age =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뜻
Bless your heart = 보통은 무례하고 윗사람인 척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애정을 표시하는 말[???]
I could sit still for that = 그게 뭐든 간에 좋다는 뜻
The dog does not hunt = 그게 별로 좋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라는 뜻
mesquite = 바비큐 양념 중 가장 좋은 종류 [다른 종류가 있긴 한 것인지]
Over yonder = 일정 거리 떨어진 어딘가를 가리키는 말 [?? 얼마나 떨어진 건지]
Couldn’t find his butt with a bell on it = 그 사람이 계속해서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뜻
My eyeballs are floating = 그 사람이 소변을 보러 가야 한다는 뜻
Fine as frog hair = [?????]
그는 남부 속담과 그 뜻이 적혀진 페이지들을 넘긴다 -- 돌이켜보면,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 동안 이것들의 뜻을 알아보려고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그 뒷부분의 기록을 훑으며 ‘블랙워치’나 ‘데드락’이라는 단어가 나오는지 살펴본다. ‘갱 단원’이나 ‘특수 요원’같은 단어들도. 아니면 (그는 낮게 신음하며 턱을 벌린다) ‘고문을 자행하는 비밀 조직’.
한조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생각했던 대로 : 바보 녀석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는 공책을 돌려놓고, 트렁크를 닫고, 모자를 집어들고, 방을 나선다. 그는 제시의 숙소 방 문 앞으로 간다. 그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시고 벨을 누른다.
대답이 없다.
“양키 씨.” 그가 벽에 대고 낮게 소리친다. “나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한조.”
아직도 반응이 없다. 그는 벨을 다시 한 번 누르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반복해 말한다. 문틈이 끽 소리를 내며 살짝 열린다. 한조가 올려다본다. 그가 있다.
“안녕,” 바보 녀석이 쉰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한조가 대답한다. 그는 인상을 써야 한다는 걸 기억해내고 그렇게 한다. “무슨 일이 있었지?”
바보 녀석은 그를 조용히 쳐다본다. 한조는 그의 상태가 너무 나빠 보여서 깜짝 놀란다.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지저분해 보였고, 셔츠는 구깃구깃했고, 얼굴은 땀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갈색 눈동자 밑에는 짙게 다크 서클이 내려오고, 흰자위 구석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면도를 하지 않아 자라난 희끗희끗한 털이 턱과 코 밑에 덥수룩했다. 술을 마시고 있었나 보다. 한조는 오래된 담배 연기 냄새를 맡고 거의 코를 찌푸릴 뻔한다.
마침내 바보 녀석이 말한다. “별 일 없었어.”
“몰골이 끔찍하군.”
“Well, 나도 만나서 반갑네.”
한조는 양키 씨가 이렇게 방어적으로 괜찮은 척 술술 말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 별 일 없었다는 말, 조금도 믿지 않는다. 넌 훈련에 나오지 않았어. 기지 근처에서 보이지도 않았고.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왔다. 네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했지.”
바보 녀석은 눈을 내리깔고 궁수를 내려다본다. “그래서?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어. 지금 여기 있을 만큼은.”
바보 녀석이 사라진다. 그는 문틈에서 멀어져서, 스위치를 누르고, 한조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다. 퀴퀴한 냄새가 콧구멍을 찌른다. 땀 냄새와 세탁하지 않은 옷들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다. 시마다 가문의 추적자들을 피해다니던 시절에 묵었던 싸구려 모텔이나 낡은 집을 떠오르게 한다.
“이 방 밖으로 나간 지 얼마나 됐나?” 한조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그에게서 멀어져가는 바보 녀석에게 묻는다. 텅 빈 음료수 캔이 밟힌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캔을 발로 밀어 옆으로 치우고, 바닥을 살펴본다. 온통 쓰레기로 어질러져 있다 : 텅 빈 버본 위스키 병, 소다 캔, 깡통, 포크,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바보 녀석의 침대 옆에 놓인 구겨진 물통은 담배 꽁초들로 가득했다. 한조는 그 냄새가 공기 중에 짙게 배어 있는 걸 알아차리고 움찔한다. 양키 씨의 옷들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옷들은 방 구석에 쌓여 있거나, 가구 위에 걸쳐져 있거나, 딱 하나뿐인 창문 위에 핀으로 고정되어 빛을 막고 있었다. 은둔자의 동굴 안에 걸어들어온 것 같았다.
“좀 쉬었을 뿐이야,” 바보 녀석이 투덜거린다. 한조는 그가 발을 질질 끌며 방 건너편의 컴퓨터 콘솔 의자에 앉는 걸 본다. “자격 미달이었지, 쉴 시간이 좀 필요했어.” 그가 몸을 구부리며 갈색 셔츠 가슴팍의 단춧구멍으로 가슴을 긁적거린다.
“시베리아에서의 임무는 취소되지 않았어. 이런 데 숨어서 낭비할 시간 없다.”
“무슨 망할 시간,” 그가 매섭게 대답한다. “내 시간은 내 거야, 그 시간에 뭘 하든 망할 내 마음이라고.”
“네 시간은 오버워치의 것이다. 네 시간은 네 임무의 것이고.” 그리고, 분노에 차서 : “네 동료들의 것이기도 하지. 나의 것이기도 해.”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바보 녀석이 으르렁거린다.
말없이, 한조는 그를 지나쳐 창문을 가리고 있는 빨간 천 조각을 잡아내린다. 오후의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바보 녀석은 신음하며 얼굴을 찌푸리면서 머리를 숙인다. 한조는 양키 씨를 뜯어보며, 천 조각을 그에게 떠넘긴다. 낡아빠진 붉은 세라피.
“그만하면 충분해,” 한조가 말한다.
그는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하자 바보 녀석이 자신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걸 느낀다. 한조는 버려져 있던 쓰레기 봉지 안에 바닥에 널린 쓰레기들을 차곡차곡 넣으며 욕지기를 꾹 참는다. 그는 등 뒤에서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할 때까지 조용히 마음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한조는 바보 녀석이 일어나서 몸을 구부리고 팔꿈치 안쪽에 위스키 병을 주워모으는 걸 알아차린다.
한조는 유리와 재활용 쓰레기들을 바깥에 버리고, 손을 닦으며 돌아온다. 양키 씨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조가 손을 뻗어 그 담배를 잡아채자, 그가 움찔한다.
“안돼.” 그가 담배를 주머니에 넣으며 냉랭하게 말한다. 그는 코를 찌푸리며 냄새를 맡는다. “목욕을 해야겠군.”
바보 녀석은 한조가 그를 한 번 더 후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물러난다. “이봐, 시마다 씨.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
한조가 샤워실을 가리킨다. “가.”
“내 말 좀...”
한조는 바보 녀석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걸어가 버린다. 그는 샤워실 문을 열고 불을 켠다. 그는 때 묻고 더러운 욕조와 변기를 보고 놀라지도 않는다. 한숨을 쉬며, 그는 물을 튼다. 뜨거운 물이 샤워기 헤드에서 쏟아져나온다.
“가서 씻어.” 그는 밖으로 나와 샤워실을 가리키며 바보 녀석에게 소리친다. “네가 씻고 나오기 전까진 말하지 않을 거다.”
바보 녀석은 다른 나라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그를 쳐다본다. 그는 머리를 긁고, 꾸물거리다가 -- 잠시 망설인 끝에 --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한조는 팔짱을 끼고 바보 녀석이 발을 끌며 지나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비켜선다. 샤워실 문이 닫힌다 : 그는 만족의 한숨을 내쉰다.
한조는 방을 정리한다. 그는 양키 씨의 라이터와 장갑을 가리지 않도록 신경써서, 모자를 서랍장 위에 놓는다. 그는 세탁이 절실해 보이는 침대 시트와 까끌까끌한 담요에서 먼지를 털어낸다. 한조는 주전자나 가열기를 찾아봤지만, 없다. 바보 녀석이 어떻게 차를 끓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빨랫감을 질질 끌고 복도에 있는 자동 세탁기 중 하나에 넣는다. 바닥에 깔려 있던 러그도 갖고 나와서 털어버린다. 돌아왔을 때 샤워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샤워를 끝낸 게 틀림없다.
망할! 세라피가 아직 컴퓨터 콘솔 의자에 걸쳐져 있다. 세탁물 쪽으로 분류해 넣는 걸 잊어버렸나 보다. 한조는 세라피를 집어들고, 잘 개서, 뭉친 털오라기를 제거한다. 그는 끝단 쪽의 다이아몬드 모양 무늬를 따라 시선을 미끄러뜨린다. 그리고 들어올려 냄새를 맡는다. 담배 냄새, 가죽 냄새, 약간의 금속 냄새 -- 그리고 옅게 나는 자극적인 냄새. 향나무나 유칼립투스, 아니면 박하.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바보 녀석이 샤워실에서 나온다 : 흠뻑 젖어서, 물을 뚝뚝 흘리며, 홀딱 벗고. 양키 씨는 젖은 머리카락 너머로 그를 쳐다본다.
한조는 무심결에 그를 마주 본다. 노출에 놀라지만 않는다면, 보기 나쁠 곳은 없었다. 그는 건장한 몸을 똑바로 펴고 당당하게 서 있다. 바보 녀석은 온몸이 햇볕에 타서, 한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피부가 거무스름했다 -- 털도 더 많았다. 두터운 가슴에, 근육이 잘 잡혀 늘씬하게 빠진 팔(금속이 그 윤곽을 끊는 왼팔만 빼고), 폭이 넓은 엉덩이, 더 넓은 어깨. 강한 다리의 단단한 근육. 허리 주변에는 -- 나이보다는 게으름의 증거인 -- 약간의 살집. 다른 몸이었다면, 그 결점이 그렇게까지 사랑스럽진 않았을 터였다. 아랫배에 난 검은 털들 아래로, 한조는 그의 --
“수건.” 바보 녀석이 손을 내밀며 말한다. “깨끗한 게 필요해.”
한조가 도전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마주본다. 그가 턱을 치켜든다. “세탁 중이다.”
“그럼 그걸로 하지.” 양키 씨가 방을 가로질러 세라피를 집으러 간다.
그가 접근해오자 궁수는 움츠러든다. “멈춰라, 바보같은 놈.” 한조는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거기 있어라! 바닥에 물을 다 흘리잖아!”
“그냥 물이야. 놔두면 말라.”
한조는 자신이 보호하듯이 세라피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낮게 신음하며, 그는 바보 녀석에게 그 물건을 떠넘긴다. “다 젖은 개처럼 물 튀기지 말고 닦아라.”
바보 녀석은 세라피로 얼굴과 어깨를 닦아내고, 머리카락을 털며 온 사방에 물방울을 튀긴다. 한조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린다. 그는 바보 녀석이 이렇게까지 그를 화나게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키스했을 때거나, 그를 ‘레골라스’라고 불렀을 때겠지. 머릿속엔 온통 화나는 생각들뿐이다 : 난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여기로 왔지? 왜 여기 서서, 저 대물 바보 녀석에게 더러운 습관을 고치라고 씩씩대고 있는 거지? 왜 돌아섰지? 왜 그냥 떠나버리지 않는 거지?
서랍장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한조는 어깨 너머로 본다. 벌거벗은 바보 녀석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다. 그가 고개를 다시 돌리곤 성을 낸다. “빨리 옷 좀 입지 그러냐?”
“입고 있어, 자기(sweetheart)."
한조가 휙 돌아선다. “날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날 ‘양키 씨’라고 부르는 걸 그만둔다면, 비긴 걸로 하지.” 한조는 바보 녀석이 사각 팬티를 찾아입고 허리 부분의 고무 밴드를 튕기는 걸 본다. 트럼프 카드 무늬가 그려져 있다. 한조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는 상상을 한다.
“뭐라고 부르길 원하나,” 한조가 이를 악물고 말한다.
“맥크리. 남들이 부르는 것처럼.” 그는 소매 없는 러닝셔츠를 입는다. 한조는 그가 몸을 굽힐 때 등 근육이 물결치듯 올라오는 걸 본다. “망할, 제시라고 불러도 돼, 상관없어, 시마다 씨.” 이제 그는 서랍 속에서 바짓단에 구멍이 몇 개 뚫린 검은색 운동복 바지를 꺼낸다.
그 때 한조가 그걸 발견한다. 양 무릎 뒤쪽에, 희미해진 문신이 있다. 자물쇠를 물고 웃고 있는 해골을 양쪽에 날개가 둘러싸고 있는 문신. 그가 돌아선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문신 자국을 잠깐 보는 게 그 개자식의 알몸을 보는 것보다 더 거슬렸다.
“맥크리.” 그가 그 단어를 시험해 보듯이 중얼거린다. “좋아, 그러면.” 한조가 텅 빈 벽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이제 씻고 나왔으니, 너와 말하도록 하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라.”
“‘무슨 일’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빌어먹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시작해.”
“그것보단 더 상세하게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 총.” 한조가 소리친다. “그 총으로 네가 한 것. 비슈카르가 습격했던 그 날 밤.”
등 뒤에서, 맥크리가 서랍장을 쾅 닫는다. 한조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자 그는 모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맥크리가 말한다. “나쁜 놈들을 죽여서 좋은 놈들이 계속 살아있게 하는 일.”
“그렇게 쏘는 걸 본 적이 없었어.” 이제 한조는 맥크리를 마주본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넌 잘 쐈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냐. 어디서 배운 거냐? 블랙워치? 데드락?”
“그 얘긴 어디서 들었어?”
“그게 중요한가? 이제 안다. 그 총에 대해서 말해. 내 동생을 살리기 위해 한 일에 대해서도.”
한조는 돌아섰을 때 맥크리가 그렇게 피곤해 보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샤워를 해도 눈 아래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비참하고 지친 얼굴로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가 한숨을 쉰다. 한조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어디 다른 곳에서 얘기해,” 맥크리가 마침내 대답한다. 목소리는 듣기 싫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이 방에서 잠깐 나가야겠어.”
---
그들은 총잡이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정원에 자리를 잡는다. 한조는 정원에 딱 하나 있는 나무 그늘 아래, 그의 옆에 앉는다. 그는 맥크리가 말썽을 피우고 꾸중을 들을 때의 어린 겐지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거칠게 말을 내뱉는, 축축한 세라피 너머의 걱정하는 것 같은 얼굴.
“그러니까 데드락에 대해서 안다는 거지. 누가 말해줬나 보군. 차라리 잘됐어. 비밀로 하려던 건 아냐, 그냥 신경쓰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시마다 가문의 군주라면 범죄 행위 정도야 많이 봤을 텐데, 미국 남부 쥐새끼들 한 무리가 큰 의미가 있겠어? 우린 ⁶⁾데드락 협곡에서 잡혔어. 난 멕시코 연방 정부군이 잘 상대할 줄 모르는 6연발 권총을 잘 썼지. 그래서 일이 많았어. 그 일 때문에 가브리엘 레예스 분대에 들어가게 됐지. 아마 그 놈 같은 부류의 친구들을 이미 잘 알지도 모르겠네. 항상 엄숙한 표정 하고 있는 개자식.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접는 의자가 있는 방에 단둘이 있고 싶지 않은 부류. 녀석들이 날 잡았을 때 집어넣었던 방에 접는 의자가 있었다는 말이야. 벽돌로 막힌 사방에 그 망할 접는 의자가 있었다고. 거래를 제안하기 전까지 그걸로 나를 날 새도록 두들겨팼지. 난 바닥에 누워서 빠진 이빨들을 물고 있었고 -- 그리곤 다가와서 장전된 총을 머리에 들이밀고 그게 빌어먹을 거래라고 하더군.
‘오버워치에 가입해라’ 정확히 말하면 블랙워치 -- 놈의 특수 조직이었지. ‘네 바보 같은 총을 더 나은 곳에 사용하라고.’ 아니면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거라고 했지. 그 심문이 끝나기 전에 놈이 날 토르티야처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지 않는다면, 아마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 그런 짓 하는 걸 좋아했지. 게이브 레예스는 킬러였어. 살인으로 이루어진 인간.
그래서 옵션 1을 선택했어. 분대에 가입하는 거. 놈들은 날 스위스 본부로 데려가서 바로 주말부터 작전을 수행하게 했지. 빌어먹게 힘들었어. 가장 바쁠 시기였다고, 시마다 씨. 블랙워치는 오버워치 규칙에 따르지 않았어. 진짜 더러운 일들까지 했지. 일이 잘못되면?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다 정리해 버렸지. 그리고 난 그게 좋았어. 그 모든 순간이 좋았다고. 들어오고 나서 3달이 지나기도 전에, 레예스는 내가 일을 너무 무모하게 한다고 했지. 여기서는 화물을 잃어버리고, 저기서는 중요한 목표물을 놓친다고. 날 협박했어. 안 좋은 기억이 될 뻔했지만 마지막 기회를 주더군.
여자가 하나 있었어. 그 여자. 이집트 방위군 출신, 아나 아마리. 오버워치 창립 멤버 중 하나지. 매 같은 눈을 가졌어. 2500미터 밖에서 움직이는 표적도 맞출 수 있었지. 엄청나게 강인한, 세계 최고의 망할 저격수였다고. 게이브는 그녀에게 날 데려가서 내가 총은 잘 쏘는 데 돌대가리라면서, 좀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치고, 오버워치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라고 부탁했지. 빌어먹을, 시마다 씨, 뱀 똥을 한 바구니 먹으라고 하는 게 나았을 거야. 그녀는 나한테 사무실에서 썩 꺼지라고 하면서, 덜떨어진 카우보이한테는 가르칠 것 없다고 하더군. 게이브가 말 그대로 달려들어 싸우고 있는 우릴 뜯어놨지. 도라도 작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까지 우리 사이엔 증오밖에 없었어. 긴 얘기를 짧게 말하자면 : 잠복 근무 중에 내가 그녀를 구해줬지만, 남은 놈들을 처리하다가 총을 맞았어. 운송 수단을 타고 함께 돌아왔지. 내가 운이 나쁜 카우보이라고 했고, 타이밍이 젬병이라고 했어. 갈비뼈 사이에 총알이 박혀서 누워 있었는데, 내가 절대 못 잊을 말을 들었지. 빌어먹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그렇더라고. 뭔가에 너무 집중해서 흘려보낼 수가 없게 돼. 그리고 : 정말인데, 그녀는 말솜씨가 진짜 좋았어.
그녀가 말했지, ‘영혼으로 방아쇠를 당겨.’ 내 손이라도 잡아 줄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 잡아줬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그 말을 들을 때 내 안의 뭔가가 바뀌어버렸어. 스위치를 올리는 것처럼. 기지로 돌아가서 수슬을 받고 내 발로 걸을 수 있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일이 아나 아마리를 찾아가서 사과하는 거였어.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쭈뼛거리면서, 모자를 움켜잡고, 부츠를 바닥에 문지르고 있는 나한테? 날 용서해줬어. 빌어먹을 용서를 해 줬다고.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다가와선, 자기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냐고 물었지. 물론 그런 기분이라고 대답했어. 그리고 정말 더 나아지고 싶냐고, 레예스가 시키는 대로 새 인생을 살고 싶냐고 했지. 물론 그렇다고 말했어. 진심이었지. 그녀도 알았을 거야.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어. “‘맥크리, 넌 똑똑한 녀석이야. 그리고 잘 쏘지’.”
한조는 총잡이의 눈가에서 촉촉하게 반짝이는 빛을 본다.
“그녀가 그 기술을 가르쳐줬어. 단거리 스캔 저격. 목표물을 줄을 세워서 마킹해 맞추는 거지. 그녀가 개발한 기술은 아냐, 다른 사람들 기술을 개작한 거였지. 하지만 나한테 가르쳐 줄 때는, 내 것으로 만들라고 했어. 그래서 그렇게 했지. 나만의 것으로 만들었어. 한두 군데를 고쳤지, 젠장 -- ‘석양’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고. 내가 말해줬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빌어먹을, 몸에 무리가 가. 영혼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지. 사용하면 할수록 내 안을 갉아먹는 거야. 매번 그래, 눈 안에서부터 갉아먹혀. 눈에서 뇌까지가 심각하게 아파. 가르쳐 주면서 그녀가 경고했지만, 충분히 경고해 주지 않았던 거지. 아니면 그 때 이미 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시점까지 갉아먹혀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녀를 잃었는지도 모르지. 그게 떠나버린 이유일지도 몰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맥크리가 고개를 젓는다. “죽었어.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군인이었다고, 시마다 씨. 그녀가 있을 곳은 전장이었어. 빌어먹을, 그녀가 얼마나 거기서 죽고 싶어했는지를 알면, 아예 거기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궁수는 그들 사이에 깔린 침묵을 느낀다. 그는 이 이야기의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는다. 마침내 그가, 약간 무뚝뚝하게 말한다. “이 여자를 사랑했군.”
“아냐.” 그리고, 약간 확신이 줄어든 목소리로 : “내 선생이었다고.” 한조가 반박하려던 찰나에 맥크리가 계속한다. “특별한 존재긴 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어.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 딸도 있었다고. 그 딸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군. 연락해볼 생각은 있었는데, 너무 오래 도망쳐다녀서 그게 좋은 생각 같진 않았어.”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서 넌 몇 살이지?”
“서른여덟.” 그가 말을 멈추고, 그를 흘끗 보며 물어봐야 할지 망설이다 묻는다. “넌?”
한조가 낮게 말한다. “같은 나이다.”
“말도 안 돼(No, shit).”
“말이 돼(Yes, shit).”
맥크리가 빙긋 웃는다. 한조도 거의 똑같이 한다.
그는 맥크리가 또다시 다른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슨 주제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건 덜 거슬렸다 : 깊고, 낮게 울리는, 솔직한 날것의 이야기. 하지만 가슴 밑바닥에 낮은 웅웅거림이 돌아왔다 --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거운 고마움. 그것은 용의 숨결처럼 목구멍 위로 솟구친다.
“일본의 명절에 대해,” 한조가 입을 뗀다. “아는 게 있나?”
맥크리가 고개를 젓는다.
“5월마다 기념하는 날이 있다. 다섯 번째 달의 다섯 번째 날이지. 코도모노 히. 너희들은 어린이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총잡이가 한조를 쳐다본다. 한조는 하늘을 본다.
“이 날은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다. 가족들,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이 날에는 중요한 상징이 있는데, 코이라는 것이지. 알고 있나? 물고기 말이다. 잉어.”
맥크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 알고 있다.
“사람들은 이 날 장대에 깃발을 걸지. 잉어 모양 깃발, 코이노보리. 검은색은 아버지, 빨간색은 어머니, 그리고 아이 한 명마다 파란색 잉어를 걸어. 바람에 날리면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지. 하나무라에 있던 집에서도 그렇게 했어. 하나는 겐지, 하나는 내 것이었지.
코이에 대한 전설도 있어. 그 물고기는 흐르는 물에 맞서서 거슬러 올라가지. 파도를 거슬러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하는 코이를 막을 수 있는 바위나 폭포는 없어. 그 곳으로 가면, 코이는 용으로 변해. 그리고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 행운과 부를 안겨주지. 그 모든 난관을 극복했다는 게 큰 자랑거리가 되고, 가장 큰 성공과 명예가 되지.”
한조가 눈을 감는다. 맥크리가 보고 있다. 바다도 지켜보고 있다.
“내 동생은 어린이날에 죽었어.” 그가 말한다. “나를 배신했기 때문에, 내 손으로 죽였지. 가문을 실망시키고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매년 그 날이 되면 하나무라로 돌아가 동생을 기렸고, 그 날 동생과 다시 만나 두 번째 기회를 받았지. 내가 가문이 바라는 대로 용이 되려 그 목숨을 끊은 지 10년이 되는 날.”
맥크리가 움직인다. 한조는 눈을 뜨고, 바다를 보고 있는 그를 본다. 맥크리의 옆모습은 야성적이고 강하다 -- 내리쬐는 햇볕에 드러나는 윤곽은 날카로웠다. 총보다는 검에 가까웠다. 한조는 응시한다. 가슴 속에서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웅웅거리며 치밀어오른다. 그는, 잠시 동안, 그 감정이 용의 포효만큼 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너에게 빚을 졌어.” 그가 말한다. “목숨과 명예의 빚을. 넌 내 동생을 구하고, 날 구했다.”
맥크리가 한숨을 쉰다. 한조는 그 소리가 그렇게 덩치 큰 남자치고는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보통은, 난, 반대라고. 내가 큰 빚을 지면 빚쟁이가 받으러 오는 식으로 말야.”
“이제 네 목숨은 내 것이나 같다. 내가 널 죽음에서 지켜줄 거다.”
“진짜 그럴 필요는 없는데.”
“명예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내가 명예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빚이라는 게 이런 식인지도 모르지. 네가 신경쓰고 말고는 상관없이.”
“더 좋은 생각이 있어.”
“네게 더 좋은 생각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용서해 주겠지.”
“남아(Stay).” 한 마디. 맥크리는 그 야성적인 짙은 눈으로 한조에게 돌아선다.
한조가 눈썹을 찌푸린다. “뭐라고?”
“여기 남아. 오버워치에 남으라고. 우리에게, 팀에 합류해. 이전에 절대 합류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젠 부탁하는 게 아냐. 빚을 갚으라고 하는 거야.”
“왜지?” 그리고, 당황하며 : “싫어.”
“그래야 해. 선택권은 없어.” 맥크리가 고집한다.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한조는 물러나려 한다. “빚이라는 게 그런 거라면, 이렇게 해야겠어. 날 존중한다면, 시마다 씨, 이 팀의 진짜 일원이 돼. 오버워치엔 네가 필요해. 우린 네가 필요해. 내 생명을 지켜주겠다고? 그럼, 반갑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과 뜻을 함께하라고.”
한조가 시선을 돌린다. 믿을 수가 없다. 피가 얼굴에 쏠렸다가 빠져나간다. 시선이 수평선 위를 헤맨다.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도대체 녀석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가슴 속의 덩어리가 묻는다. 왜 머물렀나?
“내가 그렇게 한다면,” 그가 한참 동안 침묵한 끝에 말한다. “내 동생이 반대할 거다.” 맥크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본능적으로 잘못된 선택처럼 느껴졌지만, 그는 기적을 바라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여기 있길 바라지 않을 거야.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벌써 결정했잖아.”
“아냐!”
“자, 이게 내가 원하는 거야, 시마다 씨. 이 이상도 이하도 아냐.”
“말했잖아, 남지 않을 거라고!”
“그럼 날 매달아, 빌어먹을!”
맥크리가 그를 붙잡는다. 한조가 휘청인다. 그는 총잡이가 주먹을 날리거나 다시 그를 껴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는 덜 중요한 문제였다. 움직일 수 없었다. 타는 듯한 시선이 그를 사로잡고, 그 자리에 못박는다.
“날 매달아.” 맥크리가 으르렁거린다. “내 말 들었잖아, 목매달아 죽이라고! 빌어먹을 빚을 갚지 않을 거라면, 그냥 날 죽여. 나무에 목을 매고 화살을 쏴 죽이라고 -- 그래, 똑바로 말한 거야. 이제야 들어주다니 고맙네.” 그의 목소리가 낮아져 치명적인 속삭임으로 바뀐다. “이게 내가 원하는 거야. 이게 내 빚을 갚을 방법이라고. 넌 여기 필요하고, 여기 속해 있어. 이 곳이 널 원해, 그게 사실이야. 겐지도, 윈스턴도, 빌어먹을, 나도, 그리고 처음에 널 믿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난 네가 여길 떠나서 어디로 갈 생각인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몰라. 하지만 상황은 변하는 거야. 여기 남아.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나와 함께. 그러지 않을 거라면, 이 눈을 보고 바보 녀석을 매달 준비가 됐다고 말해.”
가슴 속의 감사가 강하게 그를 사로잡는다. 한조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렇게나 그를 -- 후려치거나, 키스하거나, 갑자기 껴안거나 가슴에 화살을 박아서 -- 공격하고 싶은데도, 해내지 못한다. 총잡이는 그를 붙잡고 있고, 그는 천천히 흘려보낸다.
“알겠다.” 그는 망연자실하게 말한다.
제시가 말을 더듬는다. “허?”
“알겠다고. 그렇게 하겠다. 오버워치에 합류하겠다.”
“어.” 제시의 턱이 떨어진다. “어.” 그리고, 안심해서 잠시 감전된 듯 멈췄다가 : “그래.”
“놔라.”
맥크리가 말을 듣는다. 한조는 그를 거칠게 떠밀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 감정은 이미 누그러들었다. 그가 물러나서,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턱을 다시 다무는 모습은 뭔가 애정을 느끼게 하는 게 있었다. 그는 야단맞은 사냥개처럼 숨을 몰아쉰다.
사랑스러운, 야성적인 눈을 가진, 세라피 아래로 몸을 움츠리는, 바보 녀석(Bless his heart).
“고마워.” 맥크리가 몸을 가볍게 떨며 중얼거린다.
“가서 쉬어라.” 한조가 한숨을 쉰다. “바람과 햇빛이 거칠다.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해.”
숙소로 돌아가자 세탁이 다 되어 있었다. 한조는 옷을 개고 정리하는 걸 도와준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둘 다 아는 것 같았다.
제시는 깨끗해진 침대 시트 위로 올라간다. 그는 신발을 벗고, 담요 밑으로 들어가, 벽으로 붙는다. 그는 한조가 세라피로 창문을 다시 가리는 모습을 본다. 방이 어두워진다. 그는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궁수가 그 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조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의 귀는 사라지지 않을 두 개의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번 주에는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듣는 건 충분히 했다. 갑자기 지쳐서, 그는 눈을 감는다. 그는 문 쪽으로 돌아선다.
제시가 부드럽게 말한다. “이리 와.”
한조가 그렇게 한다. 흐릿한 물 속을 천천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들은 접촉 없이 함께 눕는다. 침대는 두 사람에게는 좁았지만, 어떻게든 공간을 만든다. 제시는 벽 쪽으로 붙고, 한조는 침대 끝부분을 껴안는다. 그들은 서로 등을 돌리고 눕는다. 거의 등을 맞댈 뻔하지만, 빠듯하게 닿지 않는다. 몸에 걸친 천이 스칠 뿐이다. 침대가 삐걱거리고 담요가 바스락거린다. 어둑하고 좁은 방 안에서, 그들은 서로가 숨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누구에게 말하기라도 하면,” 한조가 중얼거린다. “죽여 버리겠다.”
“말해도 믿을 사람 없어,” 제시가 벽에 대고 속삭인다.
그들은 잠시 동안 잠든다. 제시가 좀더 오래. 한조는 제트기와, 자기 손을 쓰다듬는 아버지의 큰 손에 대한 꿈을 꾸고 나서 깨어난다. 그는 등에서 온기를 느끼고 덜컥 놀라 움찔한다. 아직도 맥크리가 옆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다. 그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몸을 접촉하려 하면서. 그의 손은 어린아이처럼 턱 아래에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한조는 -- 칠흑같이 새까만 방에서 잠든 그를 떠나 --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근다.
[역주]
¹⁾시시오도시 : 대나무에 물이 졸졸졸 하다가 딱 하는 그거.
²⁾오후나토 : 이와테 현에 있는 시.
³⁾시마다 씨 : 맥크리를 제외한 사람들이 ‘시마다 씨’라고 부르는 건 ‘Shimada-san’이 아니라 ‘Mister Shimada’이다.
⁴⁾제이슨 본 : 영화 본 시리즈(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제이슨 본)의 주인공. -제임스 본
⁵⁾개구리 친구 : 원문은 Frosch, 독일어로 개구리.
⁶⁾데드락 협곡 : 66번 국도 간판에 쓰여 있는 지명. 참고 이미지 : goo.gl/CDgYAL
챕터8
Hang the Fool - Chapter 8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6844254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 주 의 >
※ 행더풀은 맥한조맥 소설로, 맥한조와 한조맥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번 챕터에는 한조가 맥크리에게 핸드잡을 해주는 내용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블랙워치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3일짜리 심문 작전. 그는 지휘관과 목표물과 함께 ¹⁾앨커트래츠 섬의 지하실 중 하나에 숨어 있었다. 레예스는 이곳이 원래는 감옥이었다가 폐쇄되고 나서 국립공원으로 바뀌었고, 그 뒤 실리콘 밸리 전체가 계엄 구역이었을 때는 시민군의 벙커로 사용됐다가, 옴닉 사태 이후로는 영원히 폐쇄됐다고 말했다. 곰팡이가 낀 더러운 벽에는, 색이 다 바랜 표지판이 계단이 미끄럽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그들의 시선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언어인 스페인어 글씨로 이끌린다. Cuidado. 조심하라.
¹⁾예전에 교도소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작은 섬.
레예스는 목표물에 착수한다. 그는 두 개의 정보를 뽑아내고서, 느닷없이 말한다 : “담배 좀 피자.” 그는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끄고, 남자의 입 안에 거즈를 쑤셔넣고, 손을 물로 씻어내고, 담배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맥크리가 따라간다. 그들은 콘크리트 벽에 기대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운다 -- 서늘하고, 안개 낀 여름날이다. 맥크리는 게이브의 모자에 그 남자의 입술 살점이 붙어 있는 걸 알아차린다. 분홍색과 빨간색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게이브는 그게 있는 줄 모르거나 아예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게이브는 처음에는 대화를 가볍게 이끌어간다 : 야구, TV 프로그램, 오늘 일 다 끝내고 랍스터를 먹으러 가자는 얘기. 하지만 맥크리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챈다. 그는 뭔가 다른 할 말이 있고, 좋은 얘기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항상 그를 지켜봐 왔다고, 맥크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뒤통수를 봐주고 있었다고. 아마리가 그를 보살피고, 그 한심한 모리슨이 그를 좋아하는 건 다 괜찮지만, 가브리엘은 맥크리가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를 기억하길 원한다. 그 멍청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이건 ²⁾‘건스모크’ 따위가 아냐, 멍청한 놈(cabrón). ³⁾‘더 브레이브’ 따위가 아니라고, 이건 진짜야. 그 갱단 꼬맹이들이 들려주는 얘기 따위와는 전혀 다를 거다. 넌 영웅이 아냐. 이봐(Oye), 넌 그 녀석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 놈들 치료소에서 피를 흘리고, 그 녀석들이 나한테 정말 잘 부탁하면 그 애들 장난 같은 작전에도 널 보내 주지만, 결국에는 말이다, 넌 내 거야. 넌 블랙워치라고. 너 같은 촌뜨기 녀석이 총알 맞고 죽어갈 때 신경이라도 써주는 건 우리야. 그 신발 핥는 아첨꾼들이 너한테 망할 신경이라도 쓸 것 같냐? 아마리? 치글러?” 그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마치 지옥처럼. “모리슨? 아니지, 이 녀석아. 나뿐이야. 내가 너한테 기회를 줬고, 새 인생을 살게 해줬잖냐. 네가 아는 건 전부 내가 가르쳐 준 거야. 아,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잘 봐라(Mira) -- 찢어버릴 거다. 듣고 있냐, 카우보이? 듣고 있어? 그 귀엽게 알랑거리는 얼굴을 계속 멀쩡하게 유지하고 싶냐? 그럼 ‘네, 사령관님(Yes, sir)’이라고 말해. 뭐냐? 안 들리는데, 뭐라는 거냐(como) -- 더 크게 말해. 다시. 그래, 네, 사령관님. 똑똑히 기억해. 넌 블랙워치야. 넌 내 거다.”
²⁾1975년부터 1995년까지 방영한 서부극 TV 프로그램
³⁾원제는 True Grit, 2010년 개봉한 서부극 영화
맥크리가 그에게 -- 연기를 뿜어내며 억울해하는, '보스도 엿이나 드세요‘하는 입모양으로 -- 모자에 뭐가 붙어있다고 말해준다. 레예스가 손을 올리고, 그 남자의 입술 살점을 집어들고, 쳐다본다. “이런.” 그가 벽으로 그걸 던져버린다. 갈매기가 급강하해 낚아챈다. “저것 봐(Mira)!” 레예스가 그걸 가리키며 웃는다. 쇳소리가 섞인 하-하-하. “저걸 먹었어(El párajito lo comió)!” 그가 씩 웃으며, 맥크리의 어깨를 친다. “좋아, 카우보이. 다시 일하러 가자.”
그들이 들어간다. 그 남자는 덜덜 떨기 시작하며, 입에 문 거즈 너머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 레예스는 아까보다 기분이 좋다 : 그는 라디오를 다시 켜고, 느릿한 기타 반주와 노랫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퉁긴다. “우-.” 그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그가 엉덩이를 흔들며, 발바닥을 바닥에 미끄러뜨리며, ‘마마스 앤 파파스’에 맞춰 춤을 춘다. 그는 펜치를 들고 미소짓는다. 다시 일할 시간이다. ⁴⁾“Stars shinin’ bright ab-ooove yooou…”
⁴⁾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첫 소절 가사
맥크리는 구석에 서서 팔짱을 끼고 지켜본다.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가브리엘 레예스가 누군가 한 놈 잡아다가 어금니를 하나씩 뽑으면서 말을 시키는 동안 대기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누군가가 머리 위에 불이라도 켠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타는 듯이 노랗게 빛나는 : 경고 신호.
---
주말 동안, 제시는 데드아이의 후유증을 털어버린다. 그는 숙소 밖으로 나가 감시 기지를 돌아본다. 토르비욘이 위성 안테나를 수리했다. 윈스턴이 손을 흔들며, 어떻게 지냈냐고 묻고, 그의 용기를 공개적으로 칭찬한다. 라인하르트와 트레이서는 그를 남극에서 온 메이 링에게 소개해 준다. 맥크리는 그녀의 첫인상이 마음에 든다. 쾌활하고 겸손하고, 재치있는 과학자. 그녀는 재소집에 너무 늦게 응답해서, 습격자들을 진압하는 걸 도와주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그들은 문 파이와 맥주를 먹으며 오버워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메이 링은 먹는 속도보다 더 빨리 마시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래서 더 딸꾹질이 심해지고, 그래서 더 크게 웃는다. 맥크리는 그렇게 상냥한 사람이 어떻게 살의를 가진 적을 상대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하물며 비슈카르 사에서 온 자들을.
안젤라가 그를 치료소에서 검진한다. 그녀는 그가 전투에 적합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충고해 준다. 루시우는 형광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다 : 그는 맥크리를 향해 손가락 총을 쏴주고, 보답으로 엄지 척을 받는다.
팀은 그를 이해해 준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서 지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거의 행복감을 느낄 만큼 기쁘다. 예전엔, 치유되는 과정이 아픔이었다. 지금 이게 훨씬 나았다.
이제 곧 시베리아로 떠날 거다. 보급품은 모두 챙겼고, 무기와 도구들 모두 잘 준비되어 있었다. 요원 라인하르트, 메르시, 트레이서, 메이, 맥크리, 그리고 한조가 운송 수단에 타서 러시아 방위군에 가세하러 출발할 예정이었다. 해산 이후 첫 공식 오버워치 임무였다.
요원 한조. 이것도 공식이다. ID 번호는 3945_84. 그는 8월 25일자로 아테나의 인원 관리 시스템에 등록되었고, 8월 26일에 생체 측정 정보와 전투 프로필이 더해졌다. 윈스턴은 8월 27일에 (그가 절대로 입지 않을) 전투복을 맞춰 주었고, (그가 받자마자 오른쪽 귀에 낀) 통신기도 지급했다. 8월 28일에는, 데이터베이스 코드 상에서 : 그는 새로 시작한 오버워치의 인원 명부에 두 번째로 등록된 멤버가 되었다. 메이 링이 루시우를 도와 작은 케이크를 굽는다. 그녀는 차가운 파란색 프로스팅으로 케이크 위에 오메데토라는 가나 문자를 쓴다. 저녁 식사 때 한조에게 케이크를 내가자 그는 깊게 허리숙여 인사한다. 그는 고마움을 표하고 작은 조각 하나를 받아들인다.
“혹시 당황했던 건 아니겠죠?” 맥크리가 설거지하는 동안 메이 링이 귓속말을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더라구요. 좀 미안하네요.”
“아니에요,” 맥크리가 대답한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친절한 일이었어요.” 그가 미소짓는다. “요리도 잘 하시고.”
“정말요?” 그녀가 귀 뒤를 긁적인다. “그게, 한번 웃지도 않던데요.”
그는 물컵을 씻어내며 코웃음을 친다. “원래 잘 안 웃어요. 진짜 금욕주의자 같은 친구죠. 따뜻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아.” 메이 링이 웃는다. “그 말 믿을게요. 당신이 그 사람 잘 아니까.”
그는 그녀의 말에 은밀하게 짜릿해한다. 새로 온 여자마저도 그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아차린 거다. 훈련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의무적인 것이었지만, 데드아이 사건 이후로 서로 간에 좋아하는 감정이 완전히 명확해졌다. (완전히 수리되어, 매일 아침 통신 타워에서 형과 한 시간 정도를 보내는) 겐지와 함께 있지 않을 때는, 한조는 항상 맥크리를 따라다녔다. 그의 존재는 지속적이며 확실했다. 심지어 쥐가 뜯어먹은 침대로 들어가 온기와 수면제로 악몽을 쫓아버리려 할 때까지도.
가끔씩은 이야기를 한다 :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돌아다니는 길고, 재미있는 대화. 어떤 주제는 아직도 금지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겐지나, 시마다 가문의 교육 방식에 그들이 받은 영향 같은 것들. 하지만 한조는 다른 주제를 열어 놓는다 : 좋아하는 음식, 음료, 음악, 그들이 갔던 여행지 중 겹치는 곳. 제시는 그들의 일상 생활 순간순간의 극명한 차이를 생각하며, 계속해서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아주 드물었다. 그런 공통점들은 차이점들 사이에서 황금처럼 빛났다. 하룻밤은 라멘을 제대로 끓이는 법에 대해 한 시간 내내 서로에게 동의하며 이야기했다. 또 하루는, 그들 둘 다 그 분야의 전문가를 자칭하는, 승마가 주제였다. 제시는 네바다 주 산 속의 텅 빈 고속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며, 눈 덮인 산꼭대기와 높다란 나무들과 끝없는 도로를 봤던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한조의 입술 끝에서 소리 없는 웃음기를 감지한다. 한조를 웃게 한 건 그게 두 번째였다 -- 첫 번째는 '초월하다(transcend)'라는 단어의 철자를 모르는 맥크리를 비웃는 웃음이었지만 -- 그는 그 소리를 소중히 간직한다. 연이어 굴러나오는, 거칠고 깊고 풍부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나란히 일만 하고 있는 시간도 있다. 머릿속은 그를 살아있게 하는 목소리들의 합창으로 항상 시끄럽지만 -- 그러고 있으면 한조와 함께 침대에 누웠던 밤의, 거의 평화에 비견할 만한 고요함이 떠오른다. 제시는 그 일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면 현기증이 났다 : 어둠 속에서 가만히 마주 댄 그 따뜻하고, 넓은 등. 깊고 부드럽게 쉬던 숨. 그 안도감. 메르시가 처방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약보다도 더 좋은 것.
엘리베이터에서는 힘들었다. 키스 때는 더 힘들었다. 이제 맥크리는 언제라도 한 번 스치기만 하면 바로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어쩌면, 그 노래처럼 불이 붙어 버릴지도 -- 그 <Ring of fire>. 한조는 데드아이 때 하룻밤을 같이 보낸 이후로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걸 그만뒀다. 그는 전보다 가까이 앉고, 나란히 걷고, 거리낌 없이 손 닿는 거리 안으로 들락날락한다. 그러다가 몇 번 아슬아슬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 손이 스치거나, 우연히 팔이나 엉덩이가 부딪히거나, 짖궂은 농담에 대한 반격으로 거칠게 밀치거나. 어느 날 밤에 그는 훈련장에서 궁수가 대놓고 가랑이 쪽을 쳐다보는 걸 알아차린다.
“거기 뭐 좋은 거라도 있어?” 제시가 스피드로더를 꺾어 당기며, 느릿하게 말한다.
그는 맥크리의 벨트 버클을 가리킨다. “그런 천박한 물건은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거냐?”
“베가스.”
“뭐?”
“농담이야, 시마다 씨.” 그가 코웃음친다. “비밀이야. 다른 사람이 가서 똑같은 거 사면 안 되거든.”
한조가 눈을 굴린다. “세상에 그것 같은 물건이 더 있다는 말이군. 졸렬한 모조품 같은 것들이.”
“천박하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렇게 왼쪽 몸을 다 드러내 놓고 다녀도 되는 거야?”
“수도 없이 말했지만 : 활을 제대로 당기기 위해서는, 어깨에 방해되는 게 없어야 한다. 옷소매가 있으면 조준이 흐트러지고 제한돼. 내놓고 자랑하기 위한 게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이 있어서다.”
“확실히 보기 좋긴 해.”
“뭐.”
“아니 : 여기 경치가 보기 좋다고!” 제시가 표적 정중앙에 정확히 세 발을 맞춘다.
한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총잡이의 벨트 아래쪽을 마지막으로 쏘아본다.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느리거나 망할, 너무 빠르게. 맥크리는 속도를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는 거울 앞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며, 모든 변수를 따져보며, 진정해야 할지 이 불꽃을 정면으로 충돌시켜야 할지 고민한다. 밤이 되면 그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면을 회상하듯이 그들 사이의 모든 교류를 되감아 재생한다. 모든 움직임과 모든 말을 꼼꼼히 돌이켜본다. 한조의 강철 같은 목소리가 오르내리는 어조 하나하나까지. 그 말투는 흥분되기도 했고, 그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맥크리는 이 기억들도 다른 행복한 기억들처럼 닳아버릴까 걱정한다. 한때는 보물같이 여겼지만 수명이 다 해 죽어버려서, 이젠 더 이상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는 기억들.
뭔가 일어나야만 했다 : 확실하게 해줄 연료, 스파크가. 손 안에서 맛볼 수 있는 구체적인 한조와의 현실이.
맥크리는 시베리아로 떠나기 전의 마지막 팀 브리핑에서 공상에 잠긴다. 여섯 명의 요원이 브리핑 룸 원형 탁자 주변에 모여앉아 윈스턴이 홀로그램 프로젝터에 띄운 목표물에 주목하고 있다.
"볼스카야 체크포인트에 집결하고 나면, 자리야노바의 팀이 스뱌토고르 소대 배치 지점으로 인솔해줄 겁니다. 두 명씩 짝지어서 워커를 타고 이동할 예정입니다. 워커가 위험 구역으로 진입하면, 작전 2단계가 시작됩니다." 윈스턴이 3차원 영상을 프로젝터에 띄운다 : 수많은 파이프에 연결된 4개의 거대한 발전기. 여섯 대의 스뱌토고르 로봇 - '워커'가 발전기 주변 붉은색 원형 구역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러시아 방위군이 옴닉 기지 전원 발전기를 제거하는 걸 보조하고 후방을 지원하면 됩니다. 위험 구역 안에는 대량의 옴닉 병대가 있어요. 최소한 2대의 워커를 지켜내야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2대 미만으로 떨어지면 발전기 4개를 모두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사라져요.” 공격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영상이 반짝거린다 : 라인하르트를 나타내는 아이콘이, 메르시를 나타내며 빛나는 카두세우스 아이콘의 보조를 받으며 돌진해 들어간다. 워커의 경로 사이에서 뛰어다니는 공격군 트레이서와 맥크리 아이콘을 메이 아이콘이 푸른색으로 빛나며 호위한다. 한조의 아이콘은, 짙은 남색 테두리로 표시되며, 벽 위에서 저격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발전기가 작동을 멈추면, 방위군이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도록 위험 구역 밖으로 이동해 순간이동기를 사용합니다.” 흰색 타원이 스크린에 나타나자 6개의 아이콘 모두가 빠르게 그 지점으로 후퇴해, 눈 쌓인 지도 위에서 깜빡이며 사라진다. “훈련 때와 똑같습니다.”
아테나가 덧붙인다 : “옴닉 기지 재충전 사이클은 1시간입니다. 그 안에 임무가 완수되지 못할 경우, 순간이동기가 지정된 탈출 지점에 투하됩니다. 10분 안에 도착해야 순간이동기가 비활성화되기 전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옴닉들이 한 시간 안에 우리 방어선을 뚫는다면,” 윈스턴이 말한다. “그게 가장 큰 위험 요소입니다. 스뱌토고르 로봇이 순식간에 제압당해서 기동력을 잃을 수 있어요, 그러니 방어 라인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가 활짝 웃어보이는 메이 링과 서로 엄지를 치켜든다.
“순간이동기를 놓치면, 탈출 대체 계획은 있어?” 트레이서가 묻는다.
“러시아 방위군이 우리 팀을 위해 비행 후송 수단을 마련해 놨습니다만, 날씨에 의존하겠죠. 하지만, 최근 1년 간 가장 좋은 날씨가 예상되는 날에 진입 예정이니,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윈스턴이 안경을 밀어올린다. “자리야노바의 팀과 합류하면 임무 계획을 재확인할 겁니다. 그 때까지, 질문 있으신가요?”
라인하르트가 손을 든다. “제 3자의 개입에 대한 계획은 있나? 오버워치가 다시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뉴스를 타고 확인되면, UN이 분명 개입할 걸세. 아니면 용병단이나, 또 -”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한조와 시선을 교환한다 -- “우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들도.”
“1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텐데요,” 메이 링이 말한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게 누가 있죠?”
“비슈카르.” 한조가 말한다.
“탈론.” 트레이서가 어두운 목소리로 끼어든다.
“비슈카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윈스턴이 말한다. 아테나가 프로젝터 화면에 금 장식이 달린 남색 재킷을 입은, 화난 남자가 나오는 영상을 띄운다. 그의 딱딱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다.
“-- 당신들이 그 조약을 확실하게 끝내게 하기 위해서요. 그녀는 우리 건축가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하고 재능 있으니, 우리가 동의한 것들 중 가장 상세한 사항들이라도 어긋난다면 행동이 일어날 거라 보장하오. 믿어도 좋소 --”
윈스턴이 재생을 멈추자 남자의 얼굴이 일말의 호의도 없이 찌푸려진 채로 얼어붙는다. “산제이 코팔, 비슈카르의 작전 지휘 간부 중 한 명입니다. 기지에 정보를 되찾으려고 침입했던 사건 배후에 있었죠. 조만간 공공 방송에서 오버워치의 귀환과 페트라 조약 폐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할 예정입니다.”
모두가 놀란 눈빛을 교환한다. 맥크리는 한조가 쏘아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알아차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 나도 전혀 몰랐던 일이야.
“대신,” 윈스턴이 계속한다. “비슈카르가 리우, 리장, 그리고 새롭게 재개발 예정인 멕시코에서 저지른 부패와 범죄 사실을 상세하게 항목별로 구분한 정보를 주요 언론사에 보내는 건 삼갈 겁니다.”
“그러니까아,” 트레이서가 말한다, “협박이라는 거지?”
“음, 그렇게 부르기보다는 --”
한조가 단호하게 윈스턴의 말을 끊는다. “이게 바로 협박이라는 단어의 정의라는 확신이 드는군.”
“포상 휴가나 휴전에 더 가깝죠.” 윈스턴이 주위를 둘러본다. “녀석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석에 몰아넣었고, 우리에게 추진력을 줄 수 있는 걸 얻어내기까지 했잖습니까.”
라인하르트가 얼굴을 찌푸린다. “이런 전술은 내 취향에는 너무 부정하군. 비슈카르의 악행은 널리 알려져야만 하네. 놈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위험까지 무릅썼는데, 곧바로 협상할 수는 없어.”
한조의 이마에 주름이 진다. “거의 모든 국가에 발 디딜 곳이 있는 부패 조직과 협상하다니, 추가 공격이 들어올 게 분명해.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손을 쓰겠지. 이미 우위에 있는 게 아니라면.”
“저도 동의해요.” 앙겔라가 나직하게 말한다. 그녀가 턱을 괸다. “이 정도로 거대하고 비윤리적인 기업이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조종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에요. 우리에겐 그쪽 화력에 대응할 만한 규모의 힘도 자원도 없어요. 그리고 조약을 폐지할 거라는 말을 어떻게 믿죠?”
아테나가 간결하게 말한다 :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1200시 감시 기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맥크리는 멍해 있다 -- 한조에 대해 생각하며, 의자 위에 구부정하니 앉아 의수 손바닥에 턱을 괴고 -- 트레이서가 그에게 손가락 총을 쏘는 걸 보자, 그는 눈을 깜빡이며 입모양으로 묻는다 : 뭐야? 그리고 알아차린다 : 1200. High noon! 그도 손가락 총을 쏴준다. 한조가 테이블 아래로 그를 걷어찬다. 맥크리는 그에게 옅은 미소를 띄워보내고 경멸 어린 눈총을 받는다 : 그럴 때가 아니다.
“비슈카르 측 대변인과 직접 만나기로 했습니다.” 윈스턴이 말한다. “코팔 휘하의 건축가 중 한 명이죠. 공식적으로 발언할 내용에 대해 협상하기 위해 3일 간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 라인하르트가 물러나 앉으며 중얼거린다. “더더욱 내 취향에 안 맞는군.”
“정말로 비슈카르 사 구성원을 이 기지에 머물게 하진 않겠지,” 한조가 비난한다. 거의 발끈하고 있다. “임무 때문에 오버워치 중요 인물들이 그렇게 많이 자리를 비우는데 --”
“기지 밖에서 머물 겁니다.” 윈스턴이 말을 막는다. “그 여자 혼자고, 다른 요원은 없을 겁니다. 무기도 없을 거고, 아테나가 계속 모니터링할 거에요. 동행인 없이는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겁니다.”
“그게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궁수가 으르렁거린다. “날 용서해야 할 거야.”
“3일이에요, 한조.” 윈스턴이 장갑 낀 손가락을 펴 보인다. “딱 3일입니다. 당신이 시베리아에서 돌아오면, 비슈카르는 지지 선언을 마칠 거고 그녀는 없을 거에요.”
한조의 목소리는 완강해진다. “기지를 완전히 망쳐놓는 데에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어. 3일 동안 놈들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건축가 한 명으로는 강화된 방어 시스템에 손상을 입힐 수 없습니다.” 아테나가 머리 위에서 대답한다. “위험 요소 계산 평가 결과, 그녀가 머무는 시간 동안 혼자서 감시 기지를 비활성화할 확률은 약 700,000분의 1 --”
한조가 벌떡 일어난다. “그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 해도 똑같아.” 그는 의자 옆에 기대어져 있던 활을 들어올린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일에는 동의 못 해.” 그가 걷잡을 새도 없이 방을 떠난다.
침묵. 맥크리는 모두가 어색하게 뭔가 기대하듯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당황한다.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네 친구잖아.
“아, 젠장.” 그가 한숨쉰다. 그가 짧게 내뱉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 “잠깐만 있어 봐” -- 한조를 쫓아 달려간다.
맥크리는 궁수가 18번 격납고로 들어갈 때쯤 따라잡는다.
“이봐, 기다려.” 그가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한조가 속도를 늦추지 않자 :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겐지를 찾으러.”
“어, 그래.” 맥크리가 격납고 안으로 직행하는 한조 옆에서 박차를 철컥거린다. “왜?”
“주의를 줘야 해. 즉시. 내 동생이 이 무모한 결정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맥크리가 한숨쉰다. “있잖아, 그냥 통신을 걸어도 되거든. 그렇게 일어나서 나오지 않아도 됐어.”
한조의 의족 발바닥이 바닥에 거칠게 마찰되며 멈춘다. 그는 총잡이를 사납게 올려다보곤, 돌아서서, 오른쪽 귀에 달린 통신기에 손가락을 대고, 빠르게 일본어로 뭔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맥크리는 몇 개의 키워드를 집어낸다 : ‘비슈카르’, ‘오버워치’, ‘아키테크(건축가)’, 그리고 -- 놀랍게도 -- ‘양키 씨’. 한조는 대화를 끝내고 돌아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맥크리를 발견한다. “뭐냐.”
“이제 더는 그렇게 부르지 않기로 한 줄 알았는데,” 그가 양손을 허리춤에 걸치고 불평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방금 들었어, 겐지한테 말하는 거. ‘양키 씨’라고 했잖아. 들었다고.”
“그런 말 한 적 없어.”
“말도 안 돼.”
“확실히 환청 같은 게 들리나 보군.”
맥크리가 한조를 내려다본다. “말 했잖아! 그 일본어 사이에서, 제대로 들었다고!”
“지난 몇 달 간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라는 내 충고를 새겨들었다면, 내가 한 말을 멋대로 듣지 않고 사실대로 들을 수 있었겠지.”
맥크리가 눈을 찌푸린다. “아, 이제 날 갖고 노는 거야.”
“난 단 한 번도 널 가지고 논 적 없다.”
맥크리는 목 뒤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정말 뻔뻔한 거짓말이구만. 그렇다면, 자기(sweetheart), 이제 서로 별명 부르지 않기로 했던 거래는 끝난 것 같네.”
한조는 쏘아보는 눈빛으로 맥크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아. 한 시간 안에 비슈카르 요원이 여기 올 거다. 안전의 문제란 말이다!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어!”
“아, 좀, 시마다 씨, 아테나 말 들었잖아. 위험 요소 계산했다고 --”
“AI가 말하는 것 따윈 상관없어!” 한조가 반박한다. “겐지가 위험해. 기지 전체가 위험하다고! 모든 면에서 위험한 징조야.” 그가 맥크리를 무서운 얼굴로 올려다본다. “윈스턴이 현명해 보이나? 우리가 시베리아에 가 있는 사이 비슈카르 요원을 들이겠다는 게? 민심을 얻기 위해 잠입과 파괴 행위로 악명 높은 다국적 기업을 협박하는 계획이?”
맥크리가 모자 꼭대기 아래쪽을 긁는다. “뭐, 과학자잖아, 시마다 씨.”
한조가 조소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뭘 하기 전에 항상 분석한다구.” 맥크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그냥 눈 딱 감고 저지르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내 말은, 이렇게 하기 전에 몇 달은 계획했을 거라고.”
“너희 조직을 복귀시키기 위해 몇 달을 계획한 그 실질적 리더가, 벌써 섬세하게 계획된 협박을 저지를 만큼 비열해졌군. 그게 아주 영웅적이지는 않다는 걸 너도 알겠지.”
“대단히 합법적인 수단은 아니지만, 그것 말곤 딱히 방법이 없을 거야, 시마다 씨. 게다가, 비슈카르도 정직하게 승부하는 놈들은 아니라고. 우리도 똑같이 해주는 것뿐이야.”
“그래? 그럼 말해봐 : 데드락과 블랙워치에 있는 동안, 그런 전략을 쓰면서 목표물이 공격적으로 돌변해서 보복당하지 않고 무사히 끝난 적이 있긴 했나?”
맥크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서늘한 여름날의 기억을 억누른다 : 앨커트러츠의 지하실에서 울부짖으며, 의자에 묶여 있던 남자와, <Dream a Little Dream of Me>를 휘파람으로 따라부르며 피투성이 펜치를 가지고 이 하나를 더 뽑아내던 레예스. 그는 신음한다. “어, well, 솔직히 말하면, 몇 번은 그랬어.”
한조가 그 대답을 듣고 인상을 쓴다 : 맥크리가 손을 들어올린다.
“들어봐, 나도 알아 -- 우리 둘 다 일하면서, 이런 식으로 할 때 완전히 망해버리는 걸 많이 봤지. 하지만, 이봐, 지금 계획은 이거야. 정상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더러운 방법을 써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맥크리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다. 그가 한조의 팔을 가볍게 두들긴다. “약간 손을 더럽히는 거지.”
한조가 손을 털어낸다. “언제부터 영웅이 손을 더럽혔지.”
단념하지 않고, 맥크리가 가까이 다가선다. “그 얘기를 들을 생각이 있으면, 정말 들려주고 싶은데.”
한조가 낮은 소리로 일본어 욕을 내뱉는다. 그는 다시 거칠게 격납고를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 맥크리가 몇 걸음 떨어져서 따라간다. “어디 가는 거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침울하게 : “혼자서.”
제시는 화가 나 속이 끓는다. 그가 분개하며 왔던 길을 가리킨다. “Well - 어. 브리핑 아직 안 끝났거든!”
“상관없어!”
“아, 좀 -- 시마다!” 그러나 한조는 돌아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맥크리는 눈을 굴리곤 콧날을 문지른다.
한조답군, 제시가 혼잣말한다. 동료, 친구, 그리고 맥크리가 그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에 아주 약간 가까운 존재이기 이전에 -- 그는 용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한조의 이름 옆에 달린 오버워치 로고는 딱 고양이 목걸이만큼 쓸모가 있을 거다. 이름을 부르면 와줄 거라고 아주 약간 보증하는 물건.
---
메르시와 맥크리는 정확히 정오에 도착한 비슈카르의 대변인을 마중한다. 우뚝 솟은 발사대 아래, 충전 패드 위에 정확히 착지한 작은 흰색 헬리크래프트가 웅웅거리며 엔진을 정지시킨다. 그 문을 열고 키 크고 예쁜 여자 한 명이 내린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보라색 제복을 입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뒤로 모아 묶어올렸고, 오렌지색 바이저가 달린 헤드셋을 끼고 있다. 웃음기 없는 입매와 꿰뚫는 듯한 눈. 그 눈동자의 색깔이 맥크리를 잠깐 동안 사로잡는다 : 선명하고, 예쁜 헤이즐 색. 거의 금빛에 가깝고, 매력적이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 차갑지만 않았다면.
제시는 앙겔라가 팔짱을 끼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엄지를 벨트에 걸고, 무게중심을 다른 발로 옮긴다.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안심시키려는 듯, 소리 없이 : 이 여자는 아무것도 아냐.
“사티아 바스와니라고 합니다.” 그녀가 작은 서류 가방을 들고 접근하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바스와니 씨.” 앙겔라가 말한다. “저는 --”
“-- 앙겔라 치글러 박사, 코드네임 ‘메르시.’” 의사가 말을 꺼낸 걸 완전히 무시하고 사티아가 계속한다. “국적은 스위스, 발키리 비행 수트와 카두세우스 전투 치료 시스템 개발자.”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맥크리에게로 넘어간다. “그리고 당신은 제시 맥크리, 코드네임은 성과 같고. 국적은 미국, 전(前) 데드락 갱 단원. 현상금 사냥꾼이죠. 당신 이름으로 수배된 현상금은 현재 8천 5백만 미국 달러.”
맥크리가 코웃음을 치며 눈을 굴린다. “Well, 이거 놀랍군. 현상금이 올랐네. 어떻게 된 일인지 참.”
사티아가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 “불법 무기 소지, 절도 혐의, 텍사스 주 휴스턴으로 가는 고속 열차 공격--”
맥크리가 손을 내젓는다. “아, 내가 실수했군. 비유적인 질문이었어.”
“비유적인 질문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맥크리 씨.” 그녀가 간결하게 말한다. “비슈카르 사에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죠. 올바른 답이. 당신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답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녀 뒤쪽에서 헬리크래프트가 반짝인다. 가장자리 부분의 밝게 빛나는 푸른 빛이 윙 소리와 함께 증발한다. 사티아가 오른팔을 들어올린다 : 장갑 손바닥에 박힌 깨끗한 흰색 디스크 안으로 푸른 빛이 이동한다. “이제 저를 당신들의 --”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춘다 -- “리더 격에 해당하는 자에게 데려다 주실 줄로 아는데요.”
맥크리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다. “물론 그래. 하지만 그 전에 충고 하나 해 주지 : 뭘 하든 상관없지만, 원숭이라고 부르지는 마.”
“제 파일에는 그가 포유강(綱) 영장목(目) 사람과(科) 고릴라속(屬)으로 분류된다고 적혀 있--”
“그는 과학자에요.” 메르시가 끼어든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다. “당신과 같은 과학자. 그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들은 사티아를 윈스턴에게로 데려간다. 1차 협상이 끝나자, 그녀는 근처 섬의 임시 숙소로 떠나기 전에 식사를 함께 할 것을 제안받지만, 점잖게 거절한다. 그녀는 대신 비슈카르 요원들이 공격했던 구역을 간단하게 둘러보며 손상된 장비 잔해를 되찾고 싶다고 한다. 윈스턴도 점잖게 거절한다. 루시우와 한조는 그녀를 발사대로 데려가, 그녀가 장갑의 가속 디스크를 이용해 헬리크래프트를 재구축하는 걸 지켜본다. 한조는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건축가를 노려본다. 사티아가 탑승하자, 루시우는 조용히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자기 눈을 가리켰다가 그녀를 가리킨다. 사티아는 냉랭하게 인상을 찌푸려 보인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로 어깨를 털어낸다. 먼지라도 있었던 것처럼.
“이게 믿겨져요?” 루시우가 전자렌지에 문 파이를 돌리면서 토르비욘에게 투덜거린다. “요원들 유품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구요. 자기네 사람들보다 박살난 순간이동기 쪼가리를 더 신경쓴다니까요.”
“사람보다 기술을 더 중시하는 회사는 결국 기술자 윤리학 교육과정이나 밟게 되지.” 토르비욘이 답한다. “먼저 그 길을 밟은 놈들 이름이 듣고 싶다면, 몇 개 있어. 몰톤-씨오콜, 옴니카 사, 기타 등등. 정말이라고.” 그가 루시우를 향해 커피 스트로를 흔든다. “역사는 반복되지. 비슈카르는 실패한 기업 목록 바로 다음 순서야.”
---
저녁 식사 후, 맥크리는 정원에 물을 주고 2번 훈련장으로 간다. 한조가 먼저 와 있다. 활과 화살통은 없다.
“오늘 밤 훈련은 없다.” 그가 말한다. “임무 전에는 휴식이 더 중요해. 따라와 : 좀 걸어야겠다.”
한조는 식당에 들러 엽차 한 잔을 끓인다. 그리고 드론이 화물 구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향한다. 머리 위로 18번 격납고에 정박된 운송 수단이 흐릿하게 보인다. 연료가 다 채워져서 아침이면 출발할 준비가 끝나 있다.
“생각할 시간은 다 가진 거야?” 맥크리가 세라피의 뭉친 털을 풀며 묻는다.
“그래.” 한조가 찻잔을 가까이 든다. “기회가 있을 때 멀리서 그 건축가를 지켜봤다.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만 했어.”
“그렇게 예쁜 사람이 그런 악당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유감이야.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한조의 목소리에서 혐오감이 뚝뚝 떨어진다. “잘못된 원칙으로 세상을 재구축하려는 자에게 걸맞지 않는 아름다움이지.”
“아, 맞아. 잘못된 원칙도 있었지.”
궁수가 천천히 차 한 모금을 마신다. “동생이 그 건축가에게는 위험 요소가 없다고 날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가 비슈카르에게 지시한 것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고도 했지. 나에게 불안감을 떨치고 시베리아 임무에 임하라고 했다. 생각해 본 결과,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어.” 맥크리가 턱을 긁으며 대답한다. “잘됐네, 왜냐하면, y'know -- 네가 안 간다고 하면, 임무 자체가 취소될 것 같았거든.”
“윈스턴과 아테나가 나 없이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정해 놨을 거다.”
“그래도 7주 동안 훈련한 내용을 조정하진 못할 거야.” 맥크리가 반박한다. “이봐, 너도 알잖아. 자기가 임무에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 시마다 씨.”
한조가 차를 홀짝인다. “아닐 수도 있지.”
맥크리가 눈을 굴린다. “우린 말하자면 네가 필요하거든. 넌 말하자면 중요한 존재라고.”
“말하자면.” 한조의 목소리는 이제 의기양양하다. 그는 맥크리에게로 턱을 들어올린다. “날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던 자가, 이런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제시가 거의 빙글 돈다. “아, 또 이러는 거야.”
“뭘 한다는 거냐?”
“나 가지고 노는 거!” 맥크리가 웃음을 삼킨다. 신경이 날뛴다. “소중하게 여기는 거 알면서, 내가 멍청한 말 하게 하려고 미끼 던지는 거잖아.”
“그렇게 하는 데 미끼 같은 건 필요없다. 불경한 농담을 늘어놓는 네 타고난 재주 덕분이지.”
맥크리는 생각에 잠긴다. 화물칸 문을 돌 때쯤 결심이 선다 : 시도해 보자(take the shot). “Well, 낚싯줄 한번 던져 보지.” 그가 멈춘다. “오늘밤 훈련 안 할 거면, 가서 맥주나 마시면서 얘기나 좀 더 하자고.”
“얘기?”
“그래. Y'know, 그 때처럼.” 제시는 한조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고, 그 때라는 게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 필요가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된다 : 그들 두 명 모두에게 정원 옆 그 나무 아래에서의 오후는 기억할 만한 일이었던 거다. “오랫동안 얘기 나누면 긴장도 풀린다고. 데드락에 있던 시절 얘기도 더 해줄 수 있어. 놈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얘기도 많지.”
한조가 찻잔을 내린다. 맥크리가 숨을 참고 기다린다. 금방이라도 거절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면서.
“맥주를 가지러 돌아가려면 길이 너무 멀다.” 마침내, 한조가 대답한다.
제시의 가슴이 조여온다. “아냐, 내 방에 있어.” 그가 모자를 고쳐쓴다. “독일 맥주야, 라인하르트가 만든 거지. 그래도 맛은 좋아. 진짜 잘 넘어간다구.”
이제 진짜 도박이다. 한조가 바닥의 금속 판을 내려다보며 흠, 하고 말한다. 그가 뒤꿈치에 체중을 실으며 몸을 흔든다. 제시는 컵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며 생각한다 : 안 가겠지. 저녁 시간에 조용히 긴장을 풀고 쉬면서 차를 즐기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안내해라.” 한조가 차를 마신다. 그 말을 들은 제시의 귓가에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거린다.
맥크리의 방은 한조가 마지막에 봤던 것보다 덜 정돈되어 있는 상태다. 그는 문을 열고 바로 환기를 좀 시킬걸 하고 후회한다. 오래된 담배 냄새가 콧구멍을 찌른다. 방 구석에는 또 더러운 옷들이 쌓여 있다. 서랍장 위에는 소다 캔이 쌓여 있다. 가슴 보호대는 위아래가 뒤집어져서 벽에 기대어져 있다. 한조는 제시가 허둥지둥 방을 정돈하는 동안 복도에서 차를 다 마신다.
“됐어, 들어와.” 맥크리가 미니 냉장고에서 갈색 병 두 개를 꺼내며 말한다. 그가 의수 손가락으로 병을 딴다. “일본에선 독일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거 있잖아” -- 그가 한조에게 병을 건네기 전에 라벨을 읽어본다 -- “슈나이더, 바이스, 어, 아이젠보커 같은--”
“고맙군.” 한조가 찻잔을 문 근처에 내려놓고 병을 받아든다. “컵은 없겠지.”
“어.” 제시가 서랍장 위에 있던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빼낸다. “없어.”
“알겠다.” 한조가 병 입구 냄새를 맡는다. “밖으로 나갈까?”
제시가 뺨 안쪽을 깨문다. 미끼를 던져. “그냥 여기 있을까 하는데.”
“여기.” 한조가 딱 잘라 말한다. “네 방에 있겠다고.”
“좀 좁긴 하지만, 의자만 하나 더 가져오면 --”
한조가 그를 스쳐지날 때, 가볍게 어깨가 부딪힌다. 그가 딸깍 소리를 내며 창문을 연다. 시원한 저녁 공기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한조가 제시를 흘끗 보며, 말없이 동의를 표시하듯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잡았다. 제시의 내장이 가슴까지 올라붙는다.
맥크리는 세라피를 벗고 컴퓨터 콘솔 앞 의자에 휙 던져서 건다. 흥분에 오른손이 떨린다. “앉을 거 찾아올게.”
한조는 이미 침대 가에 앉으러 가고 있다. “됐어. 그 의자는 네가 써라.”
“어, 알겠어.” 제시가 무릎을 쫙 벌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의자에 앉는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맥주를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려 애쓴다. “그래.” 그는 단추를 채우지 않아 벌어진 셔츠 사이로 가슴을 긁적이며, 손을 뻗어 찬장 위에 있는 라이터를 집어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조는 뭔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고 있다. 제시는 가볍게 입술을 적신다. “그래서, 어. 불안해?”
“뭐가 말이냐?”
“내일 임무.”
“내가 왜 불안해야 하지?”
“뭐, 알잖아. 오버워치를 다시 시작하는 거. 내 의견이 궁금하다면, 그건 꽤 큰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게다가 너의 첫번째 임무이기도 하잖아. 그것도 큰 일이지.”
“난 임무에 대해 전혀 불안감이 없다. 남겨두고 갈 것에 대해서는 있지만.”
제시가 담배를 뻐끔거린다. “괜찮을 거야.”
한조가 맥주 냄새를 맡는다. 그는 무표정하게 맥주를 마신다. 제시는 한숨을 쉬고, 목 뒤를 긁으며, 무릎을 위아래로 흔든다.
자, 여기, 그들은 방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살핀다 : 문 (닫혀 있고), 창문 (열려 있고), 맥주 (맛있고), 저녁 (조용하고), 한조 (잘생겼고, 멋지고,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고, 맥크리의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병째 맥주를 마시면서도 침착하고 위엄 있다). 이게 바로 원했던 거라고 -- 이러길 원했던 거라고, 그가 혼잣말한다. 이게 한조에게 그가 필요로 했던 거라고 -- 그럼 왜 그는 할 말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왜 이게 쉽지 않지?
그래고 왜 한조는 갑자기 맥주 병을 뒤로 기울이면서, 사막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처럼 마셔대는 거지? 왜 그 긴 목을 꿈틀거리며 전부 마셔버리고 나서, 한숨을 내뱉는 거지? 제시는 혀를 잘근잘근 씹는다. 그는 의자 다리 뒤로 박차 달린 뒤꿈치를 찔러넣는다.
“좀 천천히 마셔,” 그가 약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 맥주, 어, 좀 센 거야. 나라면 빨리 취하고 싶은 게 아닌 이상 그렇게 마셔대진 않을걸.”
한조가 코웃음친다. “이걸 세다고 하는 거냐?”
“12%는 될 거야, 시마다 씨. 맥주치곤 센 거지.”
“말도 이것보단 센 걸 마실 거다.”
맥크리가 실눈을 뜨고 맥주 병 입구를 내려다본다. “헛간 여물통 전문가인 줄은 몰랐네, 시마다 씨. 그래도 그 말 믿을게.” 그가 한조를 흘끗 올려다보자, 한조가 그를 매처럼 응시하고 있다. “왜 그래?” 한조가 일어난다. 그가 제시를 향해 다가오자, 제시가 뻣뻣해진다 -- “농담이었어, 농담” -- 그리고 궁수가 그의 옆에 멈춰서자 완전히 굳는다. 궁수는 빈 맥주 병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서, 허리춤에 찬 호리병을 빼내, 그에게 내민다. 음각으로 새겨진 문양이 빛난다. 두 마리의 금빛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이게 뭐야,” 제시가 말한다.
“사케다.” 한조가 대답한다.
“그래, 나도 이 안에 든 게 뭔지는 알아, 지금 --”
한조가 호리병을 그에게 까닥이며, 내용물을 찰랑이게 한다. “그게 세다고 했지? 이게 센 거다.”
“나 아직 맥주도 다 못 마셨는데.”
“망할 맥주는 버려.”
제시가 입맛을 다시곤, 맥주 병을 내려놓고, 호리병을 받아들고, 금속 뚜껑을 딴다. 그가 안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곤, 마셔도 되는지 확인하려 한조를 한 번 흘끗 본다. 그리고 시험삼아 한 모금 마신다. 인상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강한 한 모금이었다.
한조가 웃음을 터뜨린다. “봤냐? 훌륭한 술이다.”
제시가 사케를 돌려주며 코를 찡그린다. “네가 이 맥주가 별로라고 한 걸 알면, 라인하르트가 서운해할걸.”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 벌을 줘야 할지 알고 있지.” 한조가 호리병 뚜껑을 닫고 다시 허리춤에 찬다.
맥주 반 병 가지고는 주량에 미치지도 못하지만, 제시는 한조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취해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선은 한조의 드러난 가슴 윤곽 위에 머물며, 뱀처럼 팔을 휘감으며 내려가는 문신을 따라 내려간다. 그 실루엣에 눈이 저절로 내리깔린다. 또다시 감전된 것처럼 몸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뛰어댄다. 사라지지 않는 충동. 제시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서 그의 허리를 안을 수 있다. 한조는 서랍장에 기대 서 있다. 담배 연기를 신경쓴다면, 그 흔적은 없다.
천천히, 제시가 나직하게 말한다 : “내일 임무에 네가 있어서 정말 잘됐어.”
“그런가.” 한조가 생각에 잠긴다.
“그래, 우리 편에서 싸우는 그 모든 친구들 중에, 네가 있다고.” 그가 능글맞게 미소짓는다. “용.”
“용은 내 힘이다. 난 그저 인간일 뿐이지.”
“내 말은, 알잖아. 용-인간.” 한조가 눈을 찡그린다. 제시가 다시 목을 가다듬는다. “그러니까, 그냥” -- 그의 시선이 한조의 문신에 고정된다 -- “어, 용 --”
“그 재주 말이다,” 한조가 말을 자른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전부 말해버리는 재주. 네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 가설을 하나 세웠지.”
“뭔데?”
그가 차가운 눈으로 제시를 쳐다본다. “네 머릿속의 빈 공간을 소리로 채워서, 고요함이라는 불편한 감각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다.”
제시의 목구멍이 따끔거린다. “그래, 어, 그런 가설이군. 알겠어.”
“넌 오랫동안 혼자였지.” 한조가 손을 뻗어 제시의 모자 챙을 들어올린다. 그가 모자를 벗겨서 서랍장 위에 올려둔다. “도망다니는 현상금 사냥꾼. 네 과거. 블랙워치와 데드락. 도망쳐 다니는 몇 년 동안, 안전이란 고립을 의미했겠지. 고립된다는 건 정신이 미쳐버린다는 것이고. 넌 명상의 가치를 몰랐어. 넌 외로운 남자였지.”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한조가 마지막으로 여기 왔던 때가 떠오른다 -- 청소, 샤워, 두려움을 문질러 없애면서 부질없이 갈망했던 것. 척추를 타고 오르는 전율에 몸을 떨며,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누구나 극복해야 하는 게 있는 거잖아, 시마다 씨.”
“네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안다.”
“내 말 좀 --”
그가 자세를 고쳐 앉으려 할 때, 한조가 손을 뻗어 담배를 잡고, 입에서 빼낸다. 재가 끝부분에 뭉쳐 있다. 한조가 그걸 제시의 무릎에 털어버린다. “어, 들어봐, 극복하는 거 -- 그게 주제지. 내 말은, 오늘 하려던 게 그 말이었다고, 그런데 --” 한조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다. 비단처럼 부드럽게, 소리조차 내지 않고. 타고났어. 제시의 피가 끓는다. “어, y'know, 너도 할 얘기 있을 거 아냐” -- 한조가 그 날렵하고, 사악한 눈으로 그를 붙든다 -- “너도 도망쳐 다녔으니까, 생각할 게 많았을 것 같은데 --”
예상했어야 했어 : 다음이 이거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한조가 입술을 오므렸다가 흰색 연기 한 줄기를 제시의 붉은 얼굴에 곧바로 뿜어낸다. 그가 눈을 감고, 콜록거리며 기침한다. 전기가 오른 것처럼 온몸이 찌릿하다 : 똑똑한 놈이야. 잘 쐈어. 운이 없는 카우보이 --
“역겨운 물건이야,” 한조가 제시의 무릎에 재를 더 뿌리며 말한다. “몇 년이나 이걸 참고 살았는지 상상할 수조차 없군.”
“충분히 오래.”
“더 좋은 물건이 있어. 훨씬 더 좋은 게.”
“나중에 그거 갖고 나 꼬시려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고.”
제시가 씩 웃는다. “그래주면 고마워할 거라는 거 알잖아.”
“흠.” 한조가 주위를 둘러본다. “맥주를 따를 컵도 없고, 재떨이도 없어.” 그가 담배를 서랍장에 비벼 끈다. 그가 비뚤게 웃는다. “야만적이야.”
“들어봐, 시마다 씨, 생각해 봤는데 --”
한조가 그에게 팔을 뻗는다. 왼손이 텁수룩한 턱선을 훑어내리며, 턱까지 거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려가, 엄지가 입술 아래에 닿는다. 처음엔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망설임 없는 -- 손으로 더듬어 살피는 것과 애정 어린 손길의 중간쯤에 있는 동작. 사냥개를 쓰다듬는 것 같은.
제시는 앉은 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그는 몸을 떨며 콧구멍으로 숨을 빠르게 들이마신다. 할 거라면, 지금이어야 했다. 지금까지 한조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타이밍이 젬병이야.
처음에는 약간 주저하며, 제시는 입을 약간 벌리고 한조의 엄지를 입술 안으로 미끄러뜨린다. 감각에 비누 향이 쏟아져 들어온다 : 그는 그 냄새를 쫓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검지에도 입을 맞추고, 달아나는 손을 잡으려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는 한조의 손가락 마디를 자기 손으로 감싸고 집요하게 파고들며 다시 입술을 묻는다. 방어벽은 댐처럼 무너진다 -- 줄곧 원해왔던 스파크가 튀며 팔다리에 시동이 걸린다. 그는 기계 팔로 한조의 허리를 감싸고 끌어당긴다 -- 궁수가 순응하자 몸 안쪽에서부터 기쁨이라는 감정이 뜨겁게 치밀어오른다 -- 여전히 팔에 딱 맞는, 단단한 몸.
제시 위에서, 한조는 제시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낸다. 칭얼댄다고 하기엔 너무 고고하고, 으르렁거린다고 하기엔 너무 부드러운. 꼭 한숨 같은 소리. 그는 궁수가 언제라도 그를 밀쳐낼 거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손바닥 대신 손가락 마디에 키스했고, 손가락 마디 대신 손목에 키스한다. 그는 밀쳐내지 않는다. 한조는 다른 손으로 제시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좋아하는 것처럼. 등골을 타고 기분 좋은 전율이 기어오른다.
실현되고 있어. 진짜 현실이다. 그는 궁수의 피부에서 소금기까지 맛볼 수 있었다. 상상 따위가 아니다. 용에게 입맞추고 있는 거다.
한조가 갑자기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당겨, 목이 졸린 총잡이가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순간적으로 별이 보였다.
“빌어먹을,” 제시가 거친 숨을 내뱉는다.
“이 조심해라.”
“도대체 뭐야 --”
“이가 닿았어. 안 닿게 조심해라.”
“Sweetheart,” 제시가 숨을 내쉰다. 뺨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쿵쿵댄다. 실수를 인정하고, 그가 미소짓는다. “Ah, sweetheart.” 지금 당장 해주고 싶은 말이 백 가지는 넘게 있었지만, 망할 : 그랬다가 용이 휙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그가 올려다보자 흐릿하게 한조의 그림자진 실루엣이 보인다. 조용히 그를 관찰하고 있는. 면밀히 뜯어보고 있는. 제시는 자신이 몸을 떨고 있는 걸 알아차린다 : 한조는 고여 있는 물처럼 잠잠하다. 뱃속이 뒤틀린다. 지금 이 상황이 전보다 나은 건가, 아니면 더 나쁜 건가?
한조가 제시의 머리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린다. 진정이 된다. “멈췄군.”
“멈추려고 한 건 아냐,” 그가 나직하게 말하며 한조의 궁도의 옷감을 손끝으로 훑는다. 치료소에서 살펴봤을 때보다 더 부드럽고, 덜 빳빳해 보인다. 어렴풋이 훈련 중에 그걸 유카타라고 잘못 말했을 때 한조가 짧게 둘의 차이점을 설교했던 게 기억난다. 심지어 한조가 이렇게 빌어먹게 가까이에서 따뜻하게 그를 만지고 있는데도, 야단맞는 기분이 떠나질 않는다. “조금 생각 중이야, 그것뿐이야.”
“생각할 게 뭐가 있지?”
“오랫동안 이렇게 하고 싶었어. 널 원했다고.” 제시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몇 주. 아니, 몇 달.”
“몇 달 전에, 우린 적이었는데.” 한조가 다른 손 엄지로 천천히 그의 턱을 쓰다듬는다.
“화살 맞은 날 이후로 넌 계속 날 괴롭혔어.”
“아냐.” 장난스러운 부정.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야. 내 머릿속엔 네가 있었어. 내 망할 머릿속에 온통 너뿐이었다고. 빼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됐을 거야.” 한조는 대답하지 않는다. 제시가 궁도의를 잡아당겨, 한조의 배 위로 옷깃이 교차되는 부분에 이마를 부빈다. “빌어먹을, 너 때문에 진짜 미칠 것 같아. 이 방에서 계속 너만 생각하면서, 네가 신경이라도 쓰는지 궁금해했다고. 네가 날 건드릴 때마다 놀라서 뛰어오를 뻔했어.”
한조가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그가 비꼬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 적이 많진 않았겠군, 그러면.”
“음.” 제시가 한쪽 눈을 뜬다. “내 입 안에 손가락 넣은 적 있는데.”
그제야 한조가 흥미를 보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내가?”
“그 비슈카르가 습격했던 -- 아, 좀, 시마다, 내가 망할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나 벽에 밀어붙였잖아! 젠장, 이거 가지고는 괴롭히지 말아줘.”
한조가 웃음을 터뜨린다 : 깊은 곳에서부터 굴러나오는, 약간 목이 쉰 듯한 그 소리에 머리끝이 곤두선다. “네가 소음을 내서 우리 안전을 위협했어. 위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급소를 제압했을 뿐이다. 턱 바로 아래의 침샘이지. 입 안에서 압력을 가하면 1초 안에 널 바닥에 쓰러뜨릴 수도 있었을 거다.”
제시는 이 사실에 좋아해야 할지 실망해야 할지 모른다. 둘 다일지도. “그래, 아무튼. 키스도 했잖아.”
“때리기도 했지.”
“다시 해줘.”
한조가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춘다. 눈썹이 올라간다. “때려달라고?”
“아니, 키스.” 제시가 말한다. 대답이 없다. 제시는 궁도의 자락을 움켜잡는다. “제발. 시마다 씨.”
“야만인에게 예의라는 걸 기억하게 해 주기 좋은 시간이군.”
“죽을 것 같단 말야, sweetheart. 개한테 뼈다귀 좀 던져줘.”
경고도 없이, 한조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는다. 민첩하게 무릎이 구부러진 다음 순간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제시 위에 올라타, 군림하며, 씩 웃는다. 그가 제시의 셔츠 단추를 풀어서,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며 바지까지 흘러내리게 만든다. 제시가 몸을 꿈틀거리며, 숨이 막히는 듯 헐떡거린다. 한조는 셔츠를 벗겨, 바닥에 떨어뜨리고, 안달하는 듯한 제시의 팔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멈춘다.
“잠깐만, darlin',” 그가 한조를 붙들며 말한다. “지금부터 뭘 하든 간에 --”
“쉿.” 궁수가 그의 가슴을 따라 손을 미끄러뜨리다, 상처 자국이 있는 곳에서 멈춰, 갈비뼈와 쇄골을 엄지로 쓰다듬는다. 제시는 그가 만지는 곳마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카락과 살결을 손끝으로 훑어내리는 능수능란한 손놀림. 더듬어나가며, 평가하는 듯한. 그가 자기 자신을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왜? 어느 부분을? 털이 많은 걸 한조가 좋아할까? 가슴이 넓은 건? 피부가 부분적으로 타서 소매 라인이 생긴 건? 그의 손이 나뉘어진 복근과 말랑말랑한 뱃살과 배꼽을 지난다. 제시가 움찔거린다.
“Sweetheart, 간지러워.” 그가 힘없이 웃는다 : 한조는 무시한다. “계속 그렇게 내려가면 --”
“쉿.” 이번엔 좀더 날카롭다 : 경고하는 소리다. 한조는 그 딱딱한 손바닥으로 갈비뼈를 쓰다듬으며, 단단한 뼈와 그렇지 않은 살을 한데 모아, 제시가 아파 신음할 때까지 주무른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나선을 그리며 타원형의 총상 자국 근처를 건드린다.
제시가 신음한다. “거기 총 맞았던 데야.”
“그랬나.”
“왜 아직 옷 입고 있는 거야?” 그가 푸른색 오비를 잡아당긴다. 한조가 손을 밀어낸다. 제시가 다시 오비를 잡아당겨, 느슨하게 해서, 바닥에 떨군다. 호리병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용물이 찰랑거린다. “널 보게 해줘.”
놀랍게도, 한조는 허락한다. 그가 소매를 끌어내리고 궁도의를 벗는다. 제시의 숨이 가빠진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 그의 위에 한조가 올라타, 팔 안에 단단히 안겨 있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완벽한 모양이다 -- 바닥에는 둘의 옷이 뒤엉켜 있고, 그들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진다. 의자가 삐걱거린다. 그는 한조를 허벅지 위로 좀더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예뻐,” 그가 속삭인다.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예뻐. 네가, 망할, 최고야.” 제시의 손이 한조의 등 근육을 더듬으며, 척추의 요철을 훑어내린다. “진짜 잘 해줄게, darlin', 기분좋을 거야. 내가 진짜 잘 해줄게.”
한 번 더 거칠게 잡아당겨진다. 아으으. 한조가 뒷머리를 한 움큼 잡고 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다시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아까 말했던 걸 증명해 주마.”
제시는 화가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고, 행복한 패배감으로 다시 뜨거워진다. 야단맞는 것. 그게 그렇게 기분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했을까?
궁수가 솜씨 좋게 벨트를 느슨하게 풀고 찰칵 소리와 함께 묵직한 버클을 끌러낸다. 그 소리는 제시의 귓가에 발포음만큼이나 크게 울린다. 한조가 그의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끌어내릴 때의 심장 박동 소리보다 더 크게. 제시는 입 밖으로 가쁜 숨을 내쉰다. 박차가 울리고, 신발 굽이 바닥을 긁는다. 한조가 체중으로 그를 의자에 못박아 놨다. 너무 빨라, 예상했어야 했어. 이제 그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다. 총잡이는 굴복하고, 몸을 움찔거린다 -- 골반에 달린 줄에 조종되는 인형처럼. 아니면 목에 달린 줄이겠지. 그곳에서 터져나오는 그 모든 품위 없는 소리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상관하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며, 한조가 손에 침을 뱉는다. 제시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마주본다. 그 날렵한 갈색 눈에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다 : 아, 젠장.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다. 다시 한번, 그의 상상력은 현실에서의 행위 앞에 무색해진다. 느리지만 지속적인, 한조의 손가락의 마찰. 한조가 그것을 감싸쥐는 방식은 : 정확하고, 간단명료하고, 효율적이다. 무기를 다루는 것처럼. 키스할 때와 똑같다 : 화답할 수는 없다. 제시는 그저 꾹 참고 버티며, 숨을 헐떡거리고, 한 손으로 의자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딘가 잡을 곳을 찾는다 -- 팔, 어깨, 항상 드러내고 다니는 그 문신이 새겨진 가슴, 엉덩이, 허벅지 --
“안돼.” 제시가 다리 사이로 손을 뻗자 한조가 사납게 소리친다. 그가 속도를 올린다. 제시가 애원한다.
“왜 안돼?” 제시는 거친 숨소리 너머로 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박하게 들려, 몸을 움찔한다. “나도 좀 하게 해줘, sweetheart.”
“네 앞발을 내 몸에 올리고 싶으면, 내가 초대할 거다.”
“빌어먹을, 그게 뭐야, 개자식” -- 제시가 의자 다리를 덜걱거리며, 그의 밑에서 고함친다 -- “어떻게 그게 공평할 수가 있어” -- 그가 한조의 어깨에서 빛나는 용의 비늘 사이로 손톱을 박고, 땀에 젖은 손가락 사이로 머리끈을 붙든다 -- “제발. 제발.” 그리고, 악문 이 사이로 : “한조.”
“안돼.”
제시는 빠르게 도달해 버린다. 당황스러울 만큼 빨리 -- 남자라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거라고 생각될 만큼 빨랐다. 한조의 거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귓가에 대고 속삭이던 그 목소리 때문에. 아니면 냄새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누 같은 향내 (약초? 나무? 땀? 가죽? 그는 모든 향을 다 기억할 능력이 없었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향이었다). 아니면 그 모든 시간 동안 계속 원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담배 연기, 훈련, 그리고 나란히 걷는 고통, 한조가 상징하는 끝나지 않는 딜레마. 친구, 적. 자기 꼬리를 먹는 용, 덫에 걸린 바보 녀석. 그는 그 모순을 비웃을 수도 있었다 : 신을 믿는 녀석들과 갱단에게 똑같이 환영받지 못하는, 두 명의 도망자, ⁵⁾페르소나 논 그라타. 그 두 명이 감시 기지 의자 위에서 서로를 애무하는 모습. 사망 원인 : ⁶⁾야쿠자에게 당함. 죽기 딱 좋은 방법이지.
⁵⁾personae non gratae : 외교용어로 기피인물, 호감이 가지 않는 자
⁶⁾waxed by the yakuza : 속어 wax의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임.
(1)죽이다 (2)섹스하다.
정정 : 한조가 그를 애무한다. 그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한조는 키스를 원하지도 않고, 원한 적도 없으며, 제시가 키스하려 들자 거의 쳐내 버린다. 제시는 그 손을 붙들고, 궁수의 담배 냄새와 맥주 냄새가 섞인 숨결을 들이마신다. 한조는 경고하듯 으르렁댄다 -- 키스는 필요없다. 그는 총잡이가 폭발하기 직전이 되는 시점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대비하고, 제압하고, 그 굴욕적인, 짐승 같은 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걸 억누르기 위해 제시의 입술에 이를 박아넣는다. 피가 난다 : 화살에 맞았을 때보다는 적게, 후려쳤을 때보다는 많이, 충분히 아플 만큼. 한조는 소란을 떨지 않는다. 제시가 시끄러운 쪽이다. 주먹을 꾹 쥐고, 너무 오래 끓인 냄비처럼 요란하게 의자를 덜걱댄다.
마침내 시야에서 안개가 걷힌다. 한조는 그를 놓아주고, 그의 위에서 내려온다. 제시가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헐떡인다. 목이 땀으로 젖어 있다. 그는 뭔가 말하려고 한다 -- darlin’, sweet darlin’, sweetheart of mine -- 하지만 목이 걸린다. 그가 기침을 한다. 한조는 말없이 몸을 굽히고 그의 갈색 셔츠를 바닥에서 주워올려, 접어서, 배에 묻은 피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닦아낸다. 제시는 턱이 쇄골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고, 지켜본다. 속으로 그 동작을 싫어하면서. 너무 체계적이었다. 꼭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Darlin',” 그가 마침내 말을 꺼낸다. 그리고, 똑바로 앉으면서, 앞으로 몸을 숙이며 : “네 차례야.”
한조가 가볍게 그를 밀어낸다. 단념하지 않고 제시가 그를 안는다. 한조의 어깨에 새겨진 용의 가죽에 붉은 반달 모양으로 손톱 자국이 남아 있다. 그가 그 자국에 입맞추고, 문신에도 입맞추고, 그의 목울대에 입술을 묻는다.
“자, 네 차례야.” 그가 애정 어린 거친 목소리로 말한다. “원하는 걸 말해봐.” 그리고 여운에 빠져들며 : “잘 해줄게, sweetheart. 기분 좋을 거야. 약속할게.”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키스를 허락하고, 앞발을 올리는 것도 허락하고, 제시가 온몸으로 그를 껴안는 것도 허락한다. 하카마를 쓰다듬는 손은 허락하지 않는다. 제시가 그의 허벅지 근처에서 부풀어오른 것의 숨길 수 없는 감촉을 느꼈을 때, 한조가 빠져나간다. 그가 바닥에서 궁도의를 주워든다. 제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궁수가 떠날 거라는 걸 알았을 때의 피가 식는 듯한 감각을 떨쳐내려 애쓴다. 한조는 옷을 입고, 오비를 매고, 묶은 끈을 조정하고 있다. 제시가 그의 손을 잡는다. 한조가 멈춘다 : 그는 바닥을 본다.
“어디 가는 거야?” 제시가 묻는다.
“내일 임무가 있어.” 그가 말한다.
제시가 그의 팔에 대고 웅얼거린다. “그래서?”
“휴식은 중요해. 그만 가야겠다.”
“이제 막 왔잖아, honey.” 제시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가 한조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다시 입맞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안 끝났어.”
“오늘밤엔, 끝났어.”
“음. 아니라면?”
한조가 물러난다. 그가 삐딱하게 웃는다. “맥주 고마웠다.”
제시가 얼떨떨하게 내뱉는다 : “나 갖고 노는 거야? 진짜로, 지금. 정말로 나 갖고 노는 거야?”
한조가 손을 뻗어 제시의 귀를 잡고 가볍게 비튼다. 제시가 뒷걸음질친다. 놀랄 만큼 애정어린 몸짓이었다. 거의 모순될 만큼. 그렇게까지 다정해선 안 되는 거였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 손을 뻗거나, 붙잡거나, 다시 안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전에 -- 한조는 문까지 가 버린다. 제시가 따라가려 일어선다. 무릎이 꺾인다.
“한조,” 그가 말한다. “나랑 있어(Stay).”
“잘 자라.”
“한-조.” 그가 바지를 골반에 걸치고, 벨트 버클을 짤랑거리며, 느릿느릿 움직인다. 한조는 가 버렸다. 제시는 문이 옆으로 닫히는 걸 쳐다본다. 오른쪽 귀가 울린다. 그는 서랍장 위에 찌부러져 있는 담배와, 빈 맥주 병과, 모자, 라이터를 본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주변의 모든 게 흐릿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입술이 아프다.
깨달음 : 그게 마지막 남은 깨끗한 셔츠였다.
---
다음날 아침 0640시, 트레이서가 시험 운행을 마치고 팀에게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지 이륙할 수 있다고 방송한다. 감시 기지에 남아 있을 멤버들이 이륙하는 걸 보기 위해 모인다.
“전부 메일함 확인해 봐, 특별한 거 보내 놨어.” 루시우가 활짝 웃는다. “임무 시작하기 전에 꼭 들어야 돼.”
“냉정을 잃지 마라,” 토르비욘이 충고한다. “우리 모두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보도 자료 뜨는 대로 녹화해 두겠어. 이제 우릴 자랑스럽게 할 일을 해.”
윈스턴이 짧은 연설을 한다 : 그들이 가는 장소가 그 언제보다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겐지는 손을 들어 경례한다. 젠야타는 팀에게 축복의 말과 간략한 격려의 말을 해준다 : “자신을 알면, 적을 알게 되고 -- 당신들이 지켜야 할 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오.”
볼스카야 체크포인트로 가는 비행은 리장으로 가는 것보다 빨랐다. 트레이서는 기체를 마하 3으로 운행시킨다. 난기류는 없다. 메이 링은 트레이서 옆 조수석에 앉는다. 라인하르트와 앙겔라는 의료 물품과 토르비욘이 만들어 준 방어구를 한 번 더 체크한다. 한조는 맥크리 근처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형광 푸른색 이어폰을 끼고 있다. 맥크리는 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얼굴까지 모자를 늘어뜨린 채로 잠깐 눈을 붙인다.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책도, 맥주도, 예상치 못했던 그 일도 없었던 것처럼. 2시간의 비행 동안 그들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그들은 오후의 눈보라 속에서 러시아에 착륙한다. 다섯 시간의 시차 때문에 약간 적응하기 힘들지만 -- (라인하르트가 장담하는데) 한 잔의 커피로 치료할 수 없는 건 없다. 체크포인트가 어렴풋이 보인다 : 얼어붙은 강을 따라 태세를 갖추고 있는 공업 구역. 앙겔라가 코트와 망토를 나눠준다.
팀은 붉은색 창고 건물을 향하는 눈 쌓인 활주로에 착륙한다. 어깨가 떡 벌어진 자리야노바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라인하르트를 빼놓고는 키가 가장 컸다. 그녀의 핑크색 머리카락이 눈보라에 휘날린다. 밝은 푸른색 눈동자에서는 거의 감전될 것 같은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 그 눈으로 적들을 내려다보는 건 분명 치명적일 거라고, 맥크리는 생각한다.
맥크리 옆에서, 메이 링이 약간 상기된 한숨을 내쉰다. 맥크리 왼쪽에서, 한조는 소리 없이 ‘흠’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그들이 다가오자 자리야가 외친다. “우리 국민들을 돕기 위해 위대한 영웅들이 돌아오다니.” 그녀가 활짝 웃는다. “라인하르트!” 늙은 기사가 즉시 그녀에게 다가선다 : 그들은 포옹하고, 오래된 친구들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작은데요? 줄어들기라도 한 겁니까?”
“자네는 더 커졌구만!” 라인하르트가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대답한다.
“와우,” 트레이서가 휘파람을 분다. “멋진 사람이네.”
맥크리가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 머리카락 맘에 들어.”
메이 링이 경외감에 찬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저 팔.”
“그리고, 세상에, 상처 자국 좀 보세요.” 앙겔라가 덧붙인다.
“그리고 이 날씨.” 한조가 중얼거린다. “악천후에 상태가 약화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야가 그들을 창고 안으로 안내하고 스뱌토고르 조종사 팀을 소개한다 : 러시아 방위군 정예병 6명. 임무는 앞으로 2시간 동안은 시작되지 않을 거다. 자리야가 그들에게 식당 시설과 임시변통으로 만들어 놓은 체육관 시설(라인하르트와 자리야가 곧바로 ⁷⁾윌크스 점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을 보여주고, 구역 내에서 마음껏 다녀도 된다고 말해준다.
⁷⁾윌크스 점수(Wilks scores) : 체중이 다른 선수들의 파워리프팅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식으로 산출한 점수
맥크리는 담배를 피우러 바깥에 나간다. 그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벽에 기대선다. 건너편 도로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후의 태양빛이 얼음에 반사된다. 잠시 후 한조가 곁으로 온다. 머리끈이 바람에 거세게 휘날린다. 코트를 벗고 있다.
“여기서 망할 뭐 하는 거야?” 맥크리가 말한다. “들어가.”
“시뮬레이션은 진짜에 비할 바가 못 되는군.”
“뭐, 그렇지. 항상 그래.” 맥크리가 몸서리를 친다. “젠장, 오줌이 얼어붙을 만큼 춥구만.”
한조가 이를 부딪히며 떤다. “그래, 그 말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있는 거다.”
“이런 날씨에 그렇게 옆구리를 다 드러내 놓다니,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군.”
“제대로 조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이 구역을 한 바퀴 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럼 한 바퀴 돌고 와, 로빈 훗.”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맥크리가 천천히 한조를 내려다본다. “코트는 어디 갔어.”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맥크리가 담배를 빨아들인다. 그들은 늦은 오후의 태양빛이 얼음 위에 보랏빛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 강을 내다보고만 있는다.
결국 제시가 한숨을 내쉰다 : “ah, hell, sweetheart.”
그가 세라피 잠금쇠를 풀고, 활짝 펼쳐서, 궁수의 어깨까지 감싸도록 한다. 한조가 가까이 다가와, 몸을 붙이며, 너덜너덜한 붉은색 모직물을 잡아당겨 가슴을 덮는다. 제시가 세라피 끝부분을 다시 모아쥔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 덜덜 떨며, 구름처럼 흰 입김을 뿜어낸다.
긴 침묵 끝에, 그가 속삭인다 : “우리 사이 어색해진 건 아니지?”
“아니다,” 한조가 낮게 말한다.
“정말?”
“그래, 진짜다.”
“어젯밤엔 왜 가버린 거야?”
“그렇게 하는 게 적절한 행동 방침이었다.”
“같이 있어줬으면 했는데.”
“난 혼자 자는 걸 선호해.”
맥크리가 눈을 굴린다. “하룻밤은 같이 잤었잖아.”
“그 땐 달랐어.”
“뭐가 달랐는데?”
“넌 그 때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네가 없어서 난 어젯밤에도 고통받았는데.” 제시가 담배 끝을 질겅질겅 씹는다. “젠장, 그냥 버리고 갔잖아. 굿나잇 키스도 안 해줬어.” 한조가 혀를 찬다. 제시가 그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키스하는 거에 무슨 망할 문제라도 있어? 조금 더 해줬어도 상관없잖아. 사람은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야.”
“그렇고 말고. 내 취향엔 그 불쾌한 담배 냄새가 포함되지 않을 뿐이다.”
“빌어먹을,” 제시가 투덜거린다. “알았어. 다음엔 그냥 그렇게 말을 해줘.” 그가 한조에게 기댄다. 그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따스함에 황홀한 나머지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법을 어기고 도망치는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다. 사실, 실제로 그렇지. “이 얘기 계속 하고 싶어?”
“아니.”
“왜?”
“두 시간 안에 임무가 시작될 거다. 목표물에 집중해야만 해.”
“우리 지금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게 맞긴 한가?”
“네가 일본어를 공부한다면 언젠간 그럴 수도 있겠지.”
“됐어, y'know, 이럴 줄 알았으니까.” 제시가 몸을 굽힌다. “항상 나한테 이렇게 어색하게 굴잖아.”
한조가 세라피를 끌어올려 입술을 덮는다. “난 어색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네가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 거야. 네가 말하는 ‘어색하다’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아냐, 그 말은 알아들었어.” 제시가 말한다. “이 얘기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괜찮아, 조만간 난장판이 시작될 테니까. 애초에 넌 나랑 대화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것도 괜찮아. 그래도 보답은 해 주고 싶었어. 아직도 그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고 어두워진다. 가슴 속에서 욕망이 끓어오른다. “잘 해주고 싶었어.”
한조가 능수능란하게 말한다. “기회가 돌아올지도 모르지. 임무가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니까.”
“진심이야, 시마다. 널 내 걸로 만들고 싶어.”
“하.”
“뭐가 웃겨?”
한조가 씩 웃는다. 제시는 그의 팔이 세라피 아래로 스치고, 팔꿈치가 닿는 걸 느낀다.
“왜냐하면,” 그가 따끔거리는 침묵 끝에, 말하고 만다. “그 반대니까. 네가 내 것이다.”
---
2킬로미터 밖, 30층짜리 고층 건물 옥상 위에, 그가 있다. 얼음 가운데 웅크리고 앉아서. 천천히 바이저 스캐너의 다이얼을 돌리며 -- 찰칵, 찰칵, 찰칵 -- 강 건너 벽에 기대서 있는 두 명의 모습을 확대한다.
빨간 망토. 모자.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좀더 키가 작다. 시마다 형제의 다른 쪽이겠지. 어떻게 녀석들이 영입했는진 몰라도 -- 상관없다. 제시를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 확정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 그들이 돌아온 거다. 오버워치. 창단 멤버들과 신규 멤버들. 데이터로 추측한 것과 똑같다 -- 객관적 사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찰칵, 찰칵, 찰칵. 그가 계속해서 확대한다. 새 한 무리가 지저귀며 지나간다. 그가 한숨을 쉰다.
잠깐. 저 녀석들 키스하는 거야?
그가 바이저 스캔을 그만둔다. 전형적인 카우보이로군. 상관없다 :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가 몸을 구부리고 펄스 소총의 형광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는 안전 스위치를 올린다. : 방아쇠를 당길 땐 조심해야지.
인터셉트까지 2시간. 시작할 준비가 됐다.
그는 그들을 그리워했다.
역주 ------------------------------------------------------------------
¹⁾앨커트래츠 섬 : 예전에 교도소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작은 섬.
²⁾건스모크 : 1995년부터 1975년까지 방영한 서부극 TV 프로그램.
³⁾더 브레이브 : 원제는 True Grit, 2010년 개봉한 서부극 영화.
⁴⁾Stars shinin' bright ab-ooove yoou : 위 그룹의 노래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첫 소절 가사. 여기서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wnmkEqYpo
⁵⁾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e non gratae) : 외교용어로 기피인물, 호감이 가지 않는 자.
⁶⁾야쿠자에게 당함(waxed by the yakuza) : 속어 wax의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임. (1)죽이다 (2)섹스하다.
⁷⁾윌크스 점수(Wilks scores) : 체중이 다른 선수들의 파워리프팅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식으로 산출한 점수. http://wilkscalculator.com/kg 에서 계산 가능.
챕터9
Hang the Fool - Chapter 9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7048757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前門の虎、後門の狼
젠몬노 토라, 코우몬노 오카미 - “앞문에는 호랑이, 뒷문에는 늑대”
안 좋은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는 상황을 이르는 속담 -- “도둑을 피하려다, 강도를 만난다.”
---
오버워치 팀과 러시아 방위군 연합은 볼스카야에서 항공기를 타고 북쪽으로 7km 떨어진 스뱌토고르 배치 구역으로 이동한다. 팀은 장비와 무기를 준비하고 널따란 회색 탑승장에 모여 최종 브리핑을 한다. 구역 전체가 흥분으로 떠들썩하다. 기름때로 얼룩진 작업복을 입은 기술 지원팀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준비와 조정을 하고, 빠르게 터져나오는 러시아어로 확성기를 통해 서로를 부른다. 장비 카트가 탑승장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경로를 따라 떠다닌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 발전기 소리, 그리고 도구들이 선적되는 소음에 팀의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대화하기 위해서는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한조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시 기지에서 조용한 시간을 몇 주씩 보낸 이후라, 소음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다. 목표물에 집중해야만 한다. 특히나 지난 24시간 동안 있었던 그 모든 행위에 집중력이 분산된 걸 생각하면.
탑승장을 지나갈 때 여섯 대의 거대한 스뱌토고르 워커가 머리 위로 어렴풋이 보인다. 모두 다 약간씩 휴머노이드 형태다 : 커다란 토르소 몸체에, 강철로 된 두 다리와, 로켓 무기가 달린 큼직한 두 팔. 사람이 조종하도록 설계된 그 로봇들에는 온갖 종류의 유압 펌프와 고정품들이 꽂혀서, 조만간 있을 장거리 운행을 위한 연료가 채워지고 있다. 한조는 경외하는 시선으로 로봇을 관찰한다. 사진과 홀로그램 영상으로 이미 보았지만, 실물과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겐지가 좋아할 거다. 그는 어렸을 때 동생이 그런 종류의 기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떠올린다 -- 더 거대하고, 더 많이 폭발할수록 좋았지. 그는 핸드셋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까 생각한다 : 그 날 아침 감시 기지를 떠나기 전에 윈스턴이 나눠준, 딱 손바닥 크기로 매끈하게 빠진 검은색 기기.
그는 찍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야기해주는 걸로 충분할 거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한조는 인원을 점검한다. 지휘관인 자리야노바처럼, 워커 조종사들은 러시아인이다 : 추위에 익숙하고, 체구가 건장하고, 온통 문신을 한 갖가지 머리색의 전투원들. 그 중 두 명은 옴닉 폭동에 파괴당한 마을에서 온 시끄럽고 천박한 젊은이들이다. 세 명은 러시아 방위군의 노련한 군인으로, 한 명은 은퇴한 남성이고 둘은 40대 후반의 늘씬한 근육질 여성이다. 여섯 번째 조종사는 곱슬거리는 연초록색 머리카락 위로 핑크색 헬멧을 쓴 나이든 부인이다. 기계로 된 오른팔에 아이들이 낙서해 놓은 것 같은 그림과 서투른 키릴 문자 글씨가 휘갈겨져 있다. 멀리서 한조가 지켜보는 걸 알아차린 그녀가, 그림을 가리키며 약간 끊어지는 영어로 소리친다 : “손주들이 해 준 거야, 내가 싸우는 이유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줘.”
계획된 시간에 맞춰서 팀이 짝을 지어 각자의 워커에 올라탈 때, 주변의 툰드라 지대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다. 라인하르트와 메르시가 함께 타고, 한조는 메이 링과 함께한다. 조종석 탑승구로 향하는 승강기를 타자 긴장이 된다. 땅이 아래쪽에서 점점 줄어들다가, 시야에서 깨끗이 사라진다. 한조는 자기 자신의 페이스로 직접 올라가는 걸 선호한다. 자동 승강기는 항상 불쾌한 존재였다.
높은 장소와 뼈가 시리는 추위. 현재 시마다 한조가 맞닥뜨린 장애물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견뎌야 하는 것들. 쓸데없이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남자 하나 (그 바보 녀석) 때문에 가입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반 정도 신뢰하는 동료들과 팀을 이뤄 수행해야 할 임무에 포함된, 그가 마음 속으로 두려워하는 요소 두 가지. 그렇다고 지금 그것에 대해 걱정할 정신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 그는 임무에 집중한다. 두 개의 문제, 두 개의 해결책.
단 하나의 결과 : 그는 실패하지 않을 거다. 죽더라도.
탑승장 건너편으로, 붉은색이 보인다. 그 바보 녀석이 (맥크리, 라고 그가 정정한다) 레나 옆에 서서 (트레이서, 라고 다시 고친다 -- 지금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생각을 멀리하기 위해, 오버워치 코드네임을 써야만 한다) 승강기에 탄 채 위로 올라가고 있다. 눈이 마주친다. 한조는 망설인다 : 맥크리는 웃음지어 보이며, 뭔가를 입모양으로 말하며, 모자를 기울인다. 안녕하신가. 한조가 눈을 굴린다. 그는 트레이서가 다시 워커를 멍하니 쳐다보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른손을 들고 손가락 두 개를 무뚝뚝하게 까닥여 보인다. 맥크리가 씩 웃으며, 가슴 보호대를 움켜잡고 뒤로 기대며 황홀함에 기절하는 척한다. 뒤꿈치로 중심을 옮기고, 입술을 오므리며.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양.
한조는 메이 링이 말을 걸 때까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진짜 화살로 맥크리를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해 생각한다. “저기, 탑승할 시간이에요.”
그들은 보조석에 낑겨 앉아, 장비를 집어넣고 안전띠를 맨다. 젊은 조종사가 버튼이 잔뜩 달린 계기판 앞의 커다란 조종석 의자에 앉아 있다. 검은색 작업복 위에 쇠고리와 스파이크가 달린 낡은 회색 갑옷을 입고 있다. 귀, 눈썹, 그리고 입술에 은색 피어싱을 했다. 체리색 머리카락은 모히칸 스타일로 꼿꼿이 서 있다. 한조는 목 뒤쪽과 손등에 문신으로 새겨진 갱단 마크를 알아차린다 -- 시마다 가문의 오래된 적이다. 조종사가 자기 코드네임을 알려주자, 한조는 왜 기내에 닭 사진과 스티커, 장식품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한다. ‘루스터(수탉)’.
윈스턴의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로 울린다. “좋아요, 친구들. 감시 기지에서 여러분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아테나의 드론이 잘 작동하고 있고, 위성으로 그쪽 위치도 잡고 있어요. 해 봅시다.”
라인하르트의 목소리가 통신선에서 치직거린다. “지휘관 자리야가 1호기 출발을 허가했네. 2호기, 그쪽은 어떤가?”
“아주 좋아,” 맥크리가 느릿하게 말한다. “트레이서와 내가 따라가고 있어, 덩치 큰 친구.”
한조가 오른쪽 귀에 꽂힌 기기에 대고 말한다. “3호기는 정위치에서 대기 중이다. 곧 따라가겠다.”
루스터가 스위치를 올리고 기어를 넣자 스뱌토고르 로봇에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동력이 들어간다. 고정대가 분리된다 : 끽끽거리는 금속음이 조종석을 채우고, 낮은 마찰음이 뒤따른다. 한조는 워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보조석을 꼭 붙든다. 거센 바람이 기체를 때린다. 기내가 삐걱거린다. 루스터가 조종간을 홱 끌어당긴다.
“경치를 잘 봐요,” 그가 조종석 창문을 가리키며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죠. 내 고향.” 광활한 백색의 툰드라 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검은 산과,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놀에 둘러싸여서. 워커 1호기와 2호기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짙은 남색 기체들이 눈보라를 헤치고 굳건하게 전진한다.
“아름답네요,” 메이 링이 진심을 담아 미소짓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곳이 제 취향이에요.”
“좋아요. 우린 잘 싸울 수 있을 겁니다.” 루스터가 발 밑으로 손을 뻗어, 칸막이 벽을 열고, 빨간색 키릴 문자 로고가 박힌 성에투성이 병을 꺼낸다. 그는 뚜껑을 돌려 열고 길게 한 모금 마신 후 뒤쪽에 앉은 두 명에게 권한다. “마실까요? 오버워치를 위하여.”
“러시아를 위하여!” 메이 링이 보드카를 받아들고 열렬하게 들이킨다.
“그래! 러시아를 위하여!” 루스터가 씩 웃는다 : 금니가 3개 있다. “옴닉 녀석들을 쳐부수자구요.”
“그러지.” 한조는 동의하지만 술은 사양한다.
“위험 구역 진입까지 20분 남았어요,” 철커덕거리고 쿵쿵거리면서 대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루스터가 말한다. “추워질 겁니다. 너무 추우면, 서로 껴안으면 돼요. 괜찮죠?” 그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농담이에요. 저 결혼했어요. 만약 그렇게 하면 아내가 제 거시기를 잘라 버릴걸요.”
“이 분인가요?” 메이 링이 조작반에 테이프로 붙여져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묻는다. 자그마한 빨간 머리 여자가 활짝 웃으며, 거대한 검을 위로 치켜들고 있다. 한조는 그녀가 50kg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마 검이 더 무거울 거다.
“아, 내 유일한 사랑. 두 달 전에 결혼했어요. 현상금 사냥꾼이에요. 빈 깡통 찌그러뜨리듯이 얼굴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구요. 핵폭탄 같은 섹스 해봤어요? 자지가 완전 폭발할 것 같다구요.” -- 그가 폭발음을 흉내내며 뺨을 부풀린다 -- “이 세상에서 최고죠. 진짜 사랑해요.”
한조는 간신히 눈을 굴리는 걸 참아낸다. 메이 링은, 반면, 즐거워 보인다. “아, 끝내주는 사람 같네요.”
“맞아요, 끝내주죠. 우린 뭐야, 애를 한 50명은 가질 거에요.” 루스터가 코에 한 피어싱을 엄지로 문지른다. “당신은 어때요 -- 아내 있어요? 남편?”
“혼자에요,” 메이 링이 말한다. “지금은 일이랑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죠.”
루스터가 코를 들이마신다. “아, 그것도 좋네요. 용 양반, 그쪽은 가족 있어요?"
“없다,” 한조가 낮게 말한다. 로봇이 천둥 치듯 발을 디딜 때마다 몸이 흔들린다. 끝없는 난기류 속에 갇힌 제트기를 타고 꽁꽁 얼어붙은 하얀색 바다 위를 나는 기분이다.
그의 옆에서, 메이 링이 일본어로 속삭인다 : “오늘 아침에 빌려드렸던 이어폰 아직 갖고 계세요?”
“있다.” 한조가 대답한다. “돌려주길 바라나?”
“아니에요. 그냥 좀 멀미 나시는 것 같아서. 음악 들으면 도움이 되거든요.” 그녀가 펭귄 무늬 파란색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핸드셋을 흔들어 보인다. “여기 다 들어 있어요. 클래식이 괜찮더라구요.”
“그래, 편리하더군. 여기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었지.”
“음악을 듣거나, 저랑 20분 동안 얘기하거나인데,” 그녀가 웃는다. “음악 듣는 게 아마 나을 거에요.”
한조는 거의 미소짓는다. “그게 나쁜 일인 것처럼 말하는군.”
“음, 전 일본어도 잘 못하구요.”
한조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이 팀의 그 누구보다 잘 하는데.”
“전 재미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녀가 안경을 벗고 렌즈를 닦는다. 그리고 활짝 웃어보인다. “맥크리 씨랑 얘기하는 것 근처에도 못 미칠 거에요.”
한조는 희미한 뒷얘기 냄새를 감지하고 코웃음을 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 팀원들이 그들의 관계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여기서 싹을 잘라야겠다. 임무가 있으니까. “허튼소리. 그 많은 서부극 영화 얘기를 참아낼 수 있다면 모를까.”
워커 콘솔이 경보음을 울린다. 자리야 지휘관이 러시아어로 뭔가 말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루스터가 뭐라고 답신한다. 모든 조종사들이 대답한다. 루스터가 웃음을 터뜨린다. 자리야가 최종 메시지를 보내고 연결이 끊긴다. 메이 링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나온다.
“지휘관님은 너무 멋져요,” 그녀가 한조에게 속삭인다. “한 번도 이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장비 챙기기 전에 얘기를 좀 했거든요. 역도 세계 기록을 깰 예정이었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모두가 그분이 해낼 거라고 확신했대요. 그런데 조국을 위해 싸우려고 대회 출전을 취소했다구요.” 메이 링이 눈을 굴리며 극적으로 숨을 길게 내쉰다. “너어어무 멋져요.”
한조가 한숨을 억누른다. 꼭 주변의 모든 사람이 연애 감정에 취해 있어야만 하는 걸까?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핸드셋과 형광 파란색 이어폰을 꺼낸다. “그런가.”
“네. 그리고 제 오버워치 근무지가 어디인지 말해줬더니,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는 거에요! 실제로 남극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 봤어요. 그런 사람이 흔하진 않죠, 그래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잠깐, 지금 그냥 친절하게 대해주는 걸까 아니면’ --”
한조가 메이 링을 무시하고 지문 인식으로 핸드셋 스크린을 켠다. 사용자 정보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난다.
|| {athena: MOBILE} || 로그인 >> [Agent ID]: 3945_84
|| {athena: MOBILE} || 로그인 >> [Password]: 7!7bVcL22tg9
로그인 성공. 어서 오세요, 한조 요원님.
[기본 언어 설정: 일본어]
적재 구역 체크포인트 근처에서 로그인하셨군요. 드론과 통신기 센서를 통해 모니터링 중입니다.
2 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메일 아이콘을 탭해 읽어보세요.
“--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거 같아요. 냉동 수면 때문에 연애 시장에서 밀려난 건지” -- 메이 링이 메일함을 열어보고 있는 한조에게 수다를 떤다. “그래도 저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진 않아서, 다행이에요. 당신은 어떤지 몰라도 전 상대가 비슷한 나이대였으면 하거든요. 그게 좀 힘들죠,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으니 --”
FROM: [3945_83] 코레이아 도스 산토스, 루시우 (루시우)
To: DL_OW_시베리아 팀 알파
제목: 킥오프 노래: “WE’RE GONNA BE HEROES”
안녕 친구들!!! 이걸 들려주려고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드디어 때가 왔구나!!! 내 최신곡을 첨부했어: WE’RE GONNA BE HEROES 라는 노래야. 감시 기지에 갇혀있는 동안 새로운 ¹⁾크로스페이드 알고리즘을 써서 작곡했어. 거기에서 라이브로 하는 것만큼 좋진 않겠지만 텐션이 확 오르긴 할 거야!!!!! 시작하기 전에 한번 들어봐. 너희들 진짜 잘 해낼 거고 난 진짜 자랑스러워!!!! 오버워치가 돌아왔다!!!! 전부 사랑해!!! 행운을 빌어(BOA SORTE)!!!
첨부파일 1개:
TRACK_8-8-76.mp3
한조는 메시지를 ‘읽음’으로 표시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FROM: [3945_49] 시마다, 겐지 (겐지)
To: 시마다, 한조 (한조)
제목: 행운을 빌어
이걸 읽고 있을 때쯤이면 시간이 됐겠지. 형이 자랑스러워. 어젯밤에 말했던 것처럼 : 최선을 다 해.
그는 의자에 뒤로 기대서 얼굴을 찌푸린다. 그 메시지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공허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 하루종일 억누르고 있었던 감각이. 한조의 생각이 전날 저녁으로 되돌아간다. 달아오른 맥크리를 당황한 채 방에 남겨두고 떠나서, 그는 동생을 찾으러 갔다. 겐지는 젠야타와 함께 기울어가는 달 아래 나란히 앉아 바위투성이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겐지는 일어서서 형을 반겼고, 함께 명상하자고 제안했으며, 그에 대한 거절을 받아들였고, 임무 전에 마지막으로 회의를 하자는 형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임무에 대해 대화하고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자는 한조의 고집을 무시했다. 겐지는 완강하게 반대하며 기계 손을 들어올렸다: 형은 살아서 돌아올 거야, 분명히. 그리고 나서 행운을 빌어주고, 잘 자라고 하고선, 젠야타에게로 돌아갔다. 한조는 이상하게 텅 빈 것 같은, 버려진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갔다.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인데, 정확히 어떻게 무시당했는지는 말하기 힘든.
한조는 글자를 다시 읽고 또 읽는다. 예상하지 않았던 축복의 말이다 -- 너무나 불충분한. 스위스 의사가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제한하더니, 이젠 겐지까지 그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가 동생이 다른 사람과 보내는 데 할당한 시간을 침범하면, 거절당할 거다. 그가 동생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그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해도. 마치 겐지가 예전에 알고 아끼던 그 작은 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이 임무 중에 죽을 수도 있다. 그냥 최선을 다하라는 말보다 더 나은 걸 들을 자격이 있지 않나?
메이 링이 조용히 보고 있다. 그가 주위의 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나쁜 소식인가요?”
한조가 황급히 메시지를 닫는다. “아. 아니다.” 그가 이어폰 줄을 풀고, 귀에 꽂는다. “그냥 멀미야,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 알겠어요.” 메이 링이 미소짓는다. “그럼, 좀 느긋하게 있죠.”
한조는 푸치니의 음악 리스트를 선택하고 랜덤으로 재생시킨다. 겐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나자, 정신이 맥크리에게로 팔린다.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녀석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총잡이는 아마도 컨트리 음악을 들으면서 워커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거다. 아니면 그쪽의 천박한 조종사와 함께 술이나 담배를 하고 있을지도. 트레이서도 메이 링만큼 말이 많을까? 뒷얘기를 하고 있을까? 팀원들이나, 플러팅이나, 섹스에 대해서? 당연히 그 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거다. 볼스카야 창고 밖에서 한 번 더 키스해달라고 간청했던 것도. 확실히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거다. 필요하다면, 한조는 즉시 예의라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줄 거다.
그는 기침을 하고, 떨고, 담배 연기 같은 한숨을 내뿜는다. 용의 숨결. 기내의 웅웅거리는 소리들을 뚫고 키스했을 때의 관능적인 감각이 돌아온다: 추위, 얼음, 늦은 오후의 태양빛. 담배 냄새 (심하게 자극적이고, 바닐린 향이 나며, 기분 좋게 짙은), 세라피 (양모 재질의, 낡고 지저분한, 삼나무 냄새가 나는), 입술의 마찰. 한조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즐기고 말았다. 굿나잇 키스도 제대로 안 해주고 가버린 보상을 줘.
그 녀석에게 제대로 된 구석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제 잘 정돈된 생각들 사이를 그 바보 녀석이 지나다니기 시작한다. 한조는 어젯밤 일을 돌이켜본다. 그 모든 불필요한 잡담에도 불구하고, 그 날 일이 불쾌했다고 하면 잘못일 거다. 맥크리가 그의 손에 키스하고, 팔을 쓰다듬고, 손을 뻗어 끌어당기고, 온몸으로 그를 원하는 모습은, 볼 가치가 있었다. 굶주림과 애착으로 가득한 몸짓들, 절박함과 부드러움과 난폭함의 딱 중간 지점. 그를 귀여워하며 팔로 감싸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맹목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입술과 손가락의 애정어린 접촉이 얼마나 좋은지. 그 바보 녀석이 얼마나 빨리 그의 손 아래 굴복했는지 떠올리면 흥분이 됐다. 흐트러질 만큼 갈망하며, 호소하던 목소리. 그의 이름을 가쁜 숨에 실어 부르는 얼굴. 곧 부서질 것 같은 의자 위, 그의 아래에서 몸부림치던 모습.
그가 자세를 바꾼다. 다리를 꼬고,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다. 같은 침대를 썼을 때처럼 비좁고 답답하다. 한조는 메이 링 대신 그가 옆에 앉아 있는 걸 거의 상상해낼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껴안으려 들고, 손을 가만히 놔두질 못하는. 맥크리의 움직임에는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가죽 옷에 박차에, 투박하고 시끄럽지. 그리고 모든 게 컸다 : 몸, 움직임, 소리, 욕구. 입술, 턱, 손바닥, 가슴. 강한 두 다리. 미소짓는 입. 그리고 --
“루스터?” 메이 링이 병을 치켜들며 말한다. “보드카 돌려줄까요?”
“아, 그렇지.” 그가 러시아어로 무슨 말을 한다. 한조가 아는 단어다. “스파시보.” ‘고마워요.’
한조는 핸드셋 볼륨을 높인다. 짜증이 난 상태로, 그는 눈을 감는다. 돌아가서 그와 잠자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랬어야 했다. 적어도 그곳에서 다시 잘 수도 있었다, 그저 함께 누워 있는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 불안감을 완화해 줄 무언가를 위해서. 총잡이는 절묘한 단점들로 그를 편안하게 한다: 약간 살이 붙은 몸통을 빼고는 전부 근육질인, 크고 넓은 몸. 건방지지만 사랑스럽고, 야성적이지만 젠틀하고. 똑똑하지만 멍청한 -- 그리고, 때로는, 전혀 멍청하지 않은. 그는 재치 있고, 능란하고 -- 가끔은 교활하기까지 했다. 한조는 그가 그 뉴멕시코 이야기에 나오는 사막개 같다고 생각한다 -- 공책에 코요테라고 적어 놓은, 그 약아빠진 사기꾼 녀석. 그리고 그 무모함! 수많은 나쁜 습관! 더 젊어지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그 결점을 정당화할 수 있지? 나쁜 식습관에, 흡연에, 무계획적인 잠버릇까지. 한조는 그가 자는 모습을 생각한다: 몸을 새우처럼 말고, 자기 자신을 껴안고, 말처럼 코를 골아대면서, 근처에 있는 아무 것이나 따듯하기만 하면 탐욕스럽게 붙잡고 보는 습관.
그의 딜레마 : 이 털 많고 태평스러운, 길들여진 짐승.
어쩌면 매일 저녁 숙소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조는 치료소에서의 키스가 판단 실수였다고 더는 말할 수 없다. 그 바보 녀석이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조는 적이 있는 게 마음에 들었고, 휴전 선언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싹트기 시작한 우정을 품는 것에는 마지못해 만족했다. 하지만 그 상태는 붕괴되었고, 문제는 더 커졌다. 그 바보 녀석 때문에, 생명의 빚을 졌고: 그 빚 때문에, 오버워치에 가입했다. 오버워치에 가입했기 때문에, 그는 이 철커덕거리는 러시아 워커의 객석에 쑤셔넣어져서 쿵쿵거리며 거대한 위험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향해.
최선을 다하라고, 겐지가 말했다. ‘살아서 돌아와’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하면 무리한 요구인가?
최악인 건 : 이 모든 재난이 분명히 주목을 끌 거라는 사실이다. 언론 매체들은 오버워치가 활동하고 있다는 흔적 하나라도 잡을 수 있다면 호랑이처럼 달겨들 거다. 시마다 가문이 텔레스크린에 뜬 그의 모습을 보고 그쪽 요원을 보내는 건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한조는 오버워치를 궁지에 몰려면 암살자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슨 감상적인 저녁 드라마에 강제로 출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에 쓸려 잊혀진 먼지 쌓인 전설들과 함께 말이다. 관객석에서 끌려나와 무대에 어색하게 선 가운데 큐 사인이 내려오고, 뭔가 엄청난 실수로 인해 주연 배우 중 하나로 발탁되는 거다. 기억해야 할 대사는 너무 많은데 리허설 시간은 적다. 나머지 팀원들은 15분 동안 유명하고 정신 나간 이타주의자 연기를 잘 해낼 수 있다. 실제로 그러니까. 하지만 한조는 영웅이 아니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왜 머물렀나?
그만 됐어, 그가 결심한다. 이 무질서한 혼란에 대해 반추하는 건 그만둬야겠다. 그의 양가감정이 어떻든 간에, 임무에 집중하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명예를 지킬 것이다. 그게 시마다의 방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한조는 궁도의 옷깃 매무새를 고치며,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노래를 바꾼다. 처음에 푸치니를 선택한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책망하면서. 세상에 누가 비행하기 전에 나비 부인 같은 걸 듣나? 게다가, 형편없는 오페라다.
10분 뒤, 옴닉 기지의 강철 외벽이 새하얀 지평선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다. 경보음이 조종석에서 울려댄다. 한조는 이어폰을 잡아뺀다. 자리야가 스피커를 통해 러시아어로 소리친다 : 루스터가 레버를 당기자 워커의 속도가 줄어든다.
“발전기를 우측에 두고 전진 중,” 그가 말한다. “무기 챙겨요.”
메르시가 통신선으로 말한다. “여러분, 루시우가 보내준 음악을 듣기 좋은 타이밍이네요.”
한조가 무릎 위에 올려둔 활을 꽉 잡는다. 그가 메이 링을 쳐다본다. “꼭 그래야 하나?”
“엄청 좋아요!” 그녀가 말한다. “치유 노래랑 스피드 부스트 비슷한 효과가 나서, 기분이 끝내줘요!”
루스터가 그녀의 핸드셋을 대시보드에 꽂는다. 활기찬 음악으로 내부가 밝아진다 : 높고 선명한 멜로디가 베이스 위로 깔린다. 전자 종소리가 기타 코드 위로 겹쳐지며, 강렬하게 빛나는 듯한 하프 소리와 섞인다. 깊게 울리는 드럼 소리가 한조의 혈관 안으로 고동친다. 소리가 피를 통해 맥박친다. 그가 앉은 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와우,” 루스터가 환호한다. “와-우! 좋은데!” 그가 핸드셋을 쿡쿡 찌른다. “섹스보다 더 좋아! 이게 뭐지?”
한조 옆에서, 메이 링이 템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우리 전투 노래에요!”
한조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는 기분 좋은 전율에 충격을 받고, 황홀해하고, 정신이 깨어난다. 그 음악을 딱 30초 들었을 뿐인데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높은 벽 10개를 오르거나,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동시에 전부. 갑자기 그는 감각을 열망한다 : 등에는 바람, 발에는 물, 피부에는 증기가 쇄도한다. 달리고, 뛰어오르고, 활을 쏘고 싶다. 살고, 죽고, 죽음에서 돌아와 전장으로 다시 뛰어들고 싶다. 기운이 차올라서, 그는 어깨를 돌리고 활을 움켜쥔다. 용들이 피부 아래에서 굶주린 채 휘돌고 있다. 두려움이 옅어진다.
두 번째 경고음이 삑삑거린다. 위험 구역에 진입했다.
메르시가 말한다. “1호기, 강하 준비 중입니다!”
워커가 감속하다가 멈추고, 방향을 바꿔, 발전기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마주하고 선다. 한조는 맨 앞에 있는 스뱌토고르 로봇 옆 지면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본다. 라인하르트다 --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은 -- 그는 워커에서 지면까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내린다. 착지의 충격에 눈이 주변으로 흩어진다. 그 뒤에서 불빛이 깜박거린다 : 메르시의 발키리 수트다. 날개를 작동시켰다.
“여기서 정지합니다!” 루스터가 메이 링에게 핸드셋을 돌려주고 회색 레버를 당긴다. 워커가 덜컹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린다. 승강구 문이 열린다. 바깥에서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온다. 루스터가 엄지를 치켜든다. “어이, 기억해요. 함께일 때 우린 강합니다!”
메이 링이 승강구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한조가 민첩하게 뒤를 따른다. 그녀의 냉동 탱크 뚜껑 위로 파란색 드론, 스노우볼이 튀어나와 주위를 빙글빙글 맴돈다.
오버워치 팀은 툰드라 지대를 다같이 걸어서 가로지르기 위해 집결한다. 한조와 메이 링이 착지해, 먼지를 털어내고, 서둘러 합류한다. 트레이서가 쏜살같이 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바람에 세라피를 휘날리며 그 뒤를 쫓아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는 맥크리를 보자, 반가움에 심장이 쿵쿵 뛴다.
이상하군. 수없이 이 상황의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루시우의 노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집중해, 그가 자기 자신을 꾸짖는다. 모든 방해 요소를 무시해라.
4개의 옴닉 기지 발전기가 통통한 검은색 진드기처럼 얼음 덮인 평지에 나란히 박혀 있다. 한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위치를 파악한다: 20미터 높이, 기지에서 약 1km 떨어진 곳. 윈스턴의 지도가 거리를 제법 정확하게 추측했다. 오버워치가 방어선을 유지하는 동안 스뱌토고르 로봇 여섯 대가 빠르게 처리해낼 수 있을 거다.
땅을 뒤흔드는 사이렌 소리가 멀찍이 떨어진 옴닉 기지에서 들려온다. 무시무시한 비명처럼 바람을 찢는다. 그 소리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모두가 멈춘다. 메이 링의 드론이 삑삑거리며 그녀의 등 뒤에서 붕붕 날아다닌다.
“옴닉 기지에서 신호 변경이 관찰되었습니다.” 아테나가 통신으로 말한다. “여러분의 접근을 알아차렸습니다.”
“인사 한 번 더럽게 하는구만,” 맥크리가 코웃음친다.
“제한 시간 1시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윈스턴이 말한다. “해봅시다, 여러분.”
“2단계 개시! 적들이 오고 있네!” 라인하르트가 흰색 방패를 위로 휘두른다. “각자 위치로!”
태양이 기울어가는 어둑한 보랏빛 하늘 아래로, 로봇 군단이 옴닉 기지 밖으로 쏟아져나온다. 요동치는 회색 파도가 툰드라 지대에 넘실거린다. 크롬 소재 머리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빨간 센서의 빛이 섬뜩하게 번쩍거린다. 그들이 굉음과 함께 전진해온다. 수가 너무 많다: 수백, 아니 수천쯤 되는 것 같다. 한조가 스쳐지나가는 공포를 느끼며 그 무리를 본다. 시뮬레이션이 소름끼친다고 생각했었다: 현실로 보는 건 훨씬 나빴다.
“2단계 승인,” 아테나가 오른쪽 귀에서 말한다. “요원 메이, 그리고 한조 : 수비를 시작하세요.”
“올라가요!” 앞질러가는 메이 링이 흐릿한 푸른색 형체로 보인다. 그녀가 흡열 블래스터를 발사한다. 땅이 흔들린다. 한조는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뛰어나가, 흔들리는 땅을 가로지르며 속도를 높인다. 빛나는, 두꺼운 얼음 벽이 툰드라 땅 위로 솟아오른다. 한조가 벽을 올라가, 유리 같은 표면을 가로질러 달린다. 금속재 발바닥이 윗면을 미끄러진다. 고양이처럼 날렵하다.
“수비 팀 준비 완료!” 트레이서가 크게 말한다. “맥크리, 시작하자!”
“알겠어,” 맥크리가 대답한다. 두 번째 얼음벽이 땅 위로 튀어나온다. 첫 번째 벽에 거의 수직으로 맞닿아 있다. 두 개의 벽은 지면에 V자를 그리며 라인하르트의 망치로 로봇들을 인도한다. 로봇 무리가 방향을 바꿔, 벽을 따라 이동하며 두 벽이 맞닿는 지점으로 밀려든다.
윈스턴의 훈련대로다 : 공격적인 AI에게 길을 주면 보통 그걸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 길 끝에 으스러지는 종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한조는 메이 링의 얼음벽 중간에 도달한다. 그는 활시위를 매기고, 당기고, 화살대에 달린 스위치를 올리고, 쏜다. 로봇 무리 위로 기하학적인 선을 흩뿌리며 푸른색 금속의 비가 쏟아진다. 그 과정은 반복된다: 계속해서 뿌려지는 갈래 화살. 휘둘러지는 망치 너머로 권총 발포음이 들린다. 트레이서는 옴닉들이 라인하르트의 방패에 도달할 때 첫 공격을 완수한다. 맥크리의 피스키퍼가 여섯 발의 시끄러운 총성을 울린다. 탕! 망치가 때리고, 또 때린다. 더 많은 총성이 울린다. 권총이 재장전된다. 메르시의 카두세우스 광선이 성스러운 끈처럼 그 광란의 현장 가운데를 가른다.
연습했던 대로: 첫 번째 옴닉 무리가 전멸한다.
“하-하!” 기사가 외친다. “토르비욘!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해주게나!”
“뽐내는 것 좀 그만하라고, 늙은이!” 토르비욘이 통신기로 말한다. “뉴스 드론은 아직 가지도 않았어!”
“발전기 하나가 처리됐습니다.” 윈스턴이 알려준다. “워커가 외벽을 파괴했어요. 방어 전략 B를 준비하세요.”
“준비해요!” 메이 링이 숨을 헐떡인다: 달리고 있다. “벽 하나 더 올라갑니다!”
“올리게나! 내가 놈들을 내리찍어 버릴 테니!” 라인하르트가 원기 왕성한 웃음을 터뜨리며 옴닉 10대를 땅바닥에 쓸어버린다.
메이 링의 두 번째 얼음벽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내린다. 한조는 라인하르트가 방패를 올려 차고, 망치를 높이 들고, 로봇 무리 안으로 거세게 돌진하자 또 한 차례 화살을 쏟아붓는다. 창백하게, 천사처럼 빛나는 메르시가 파편을 피해 이리저리 날며 그 뒤를 따른다. 그녀의 카두세우스 지팡이가 맑은 소리를 울린다: 라인하르트는 완전히 치유되어, 다시 한 번 돌진한다. 로봇들이 또 한 번 삑삑거리며 말살당한다.
“좋았어!” 맥크리가 외친다. “메르시, 왼쪽 조심하고! 트레이서, 뚫린 곳 커버하러 가!”
새로운 얼음 벽이 그가 올라가 있는 벽과 평행하게 솟아오른다. 그가 그쪽으로 뛰어내려, 다시 올라가서, 돌진하는 라인하르트 뒤를 쫓는 옴닉들에게 화살을 퍼붓는다. 라인하르트의 측면을 엄호하는 맥크리를 보자 루시우의 음악 첫 부분이 기억 속에서 재생된다. 그리고 금속 덩어리가 화난 듯한 붉은 눈으로 나타나는 걸 발견한다. 그 로봇이 총잡이의 뒤를 들이받기 직전에 한조가 그 머리를 꿰뚫는다.
맥크리가 통신기로 말한다. “고맙네, 친구!”
“총 똑바로 들어, 맥크리. 내가 뒤를 보고 있다.” 한조가 다시 활을 쏘기 시작한다.
맥크리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well, 오늘 들은 것 중에 제일 안심되는 말인걸!”
“집중해요, 여러분,” 윈스턴이 통신으로 낮게 말한다. “또 한 무리가 옵니다.”
쾅! 스뱌토고르 로봇들이 첫 번째 발전기를 부쉈다. 그들은 잔해를 내버려둔다. 두꺼운 검은 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겨울 황혼 속으로 사라진다.
“발전기 하나 처리했고! 3개 남았습니다!” 통신기 너머로 자리야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러시아 조종사들이 뒤따라 환호한다.
두 번째 옴닉 무리가 공격해온다. 한조는 메이 링이 올려주는 벽에서 벽으로 점프해 다닌다. 라인하르트와 메르시가 그녀의 얼음 벽으로 기계 무리를 유도한다: 이탈하는 놈은 몇 없다. 자리야가 1호기에서 인간 포탑처럼 뛰어내린다. 무리를 벗어난 옴닉들이 워커에 접근하기 전에 그녀가 입자포를 쏜다.
“잘 하고 있어!” 팀이 세 번째 옴닉 무리를 파괴하자 토르비욘이 외친다. 네 번째 -- 그리고 다섯 번째까지. 스뱌토고르 로봇들이 두 개째의 발전기를 부숴버리고 다음 발전기를 향해 쿵쿵거리며 접근한다. 두 번 정도 옴닉 무리가 워커에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 한조가 벽 위에서 저격하는 걸 중지하고 스뱌토고르 5호기에 기어올라가 어깨 위에서 화살을 쏜다. 모든 화살이 명중한다. 갈래 화살 파편 하나하나가 로봇 무리를 정확히 찢어버린다.
“한조, 와우!” 윈스턴이 환호한다. “시뮬레이션 기록을 방금 깼어요! 목표물 400개 명중입니다!”
“잘 쐈어, 똑똑한 친구.” 맥크리가 통신선 너머로 건방지게 말한다. “우리 몫도 좀 남겨주지 그래?”
“꿈도 꾸지 마라.” 한조가 얼음 벽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옴닉을 맞춘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웃음짓기를 허락한다.
오버워치 팀이 방어 전략 E를 수행할 때쯤, 한조는 다시 벽 위로 올라간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루시우의 음악이 기운을 북돋운다. 쿵쿵거리며, 몸을 덥히고,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로 폐를 채우는. 모든 움직임에 동력을 공급하는 음악. 라인하르트는 한조가 본 적 없는 힘을 휘두르며 싸운다 -- 시뮬레이션에서도 인상적이었지만, 현실과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더 많은 총성. 더 많은 금속음. 트레이서의 푸른 잔상. 깃발처럼 휘날리는 진홍색 세라피. 전투가 가장 격렬해질 때, 팀은 기름칠이 잘 된 기계처럼 작동한다. 정교하게 짜인 안무로, 춤추듯이. 그 어떤 훈련에서보다 더 아름답게, 모든 행동이 계획에 맞추어 수행된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모든 게 망가지기 전까지, 한조는 아주아주 약간 영웅적인 기분을 느낄 뻔한다.
콰광! 커다란 폭발음. 뭔가가 여섯 번째 워커를 공격한다. 자리야노바가 두 번째 발포음 바로 전에 통신기 저편에서 소리를 지른다. 한조가 멈추고, 돌아서서, 6호기가 앞으로 비틀거리는 걸 올려다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워커의 다리가 무너진다. 워커는 몸통부터 눈 덮인 바닥에 넘어지며 천둥 치는 듯한 소리를 낸다. 깜짝 놀라, 한조가 벽에 웅크린다. 놀란 숨을 참는다. 통신선이 아수라장이다.
“공격당했어요!” 자리야가 소리친다. “6호기가 당했습니다! ”
라인하르트가 망치를 휘두르다 말고 올려다본다. “뭐야!?”
자리야가 전달하는 목소리 뒤편으로 러시아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시끌법석하게 들려온다. “방어선에 보고합니다! 스뱌토고르가 적군 사격을 당했습니다!”
맥크리가 외친다: “바스티온 기체인가?”
“아니오,” 윈스턴이 대답한다. “바스티온 신호는 없습니다. 아테나가 상황 파악 중입니다, 작전에 집중해요!”
푸른 빛 한 줄기가 하늘을 가른다. 한조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그 빛이 가는 곳을 본다. 다른 스뱌토고르 로봇의 다리 관절에 명중한다. “뒤에서 공격하고 있어!”
“플라즈마 로켓입니다,” 아테나가 보고한다. “현재 의심되는 무기 목록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메르시가 끼어든다. “다시 말해줄래요? 플라즈마 로켓이라고요?”
“확정. 삼중 탄환입니다.”
또 한 발이 하늘을 가른다. 이제 한조에게 분명히 보인다 : 그들의 방어선 뒤에서 스뱌토고르에게 로켓을 쏘고 있는 습격자가. 워커는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조정한다. 뚫린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통신기가 치직거린다. 자리야가 러시아어로 외치고, 라인하르트는 또 한 번 쏟아지는 옴닉 무리에 밀려나고, 윈스턴은 감시 기지 팀이 누가 로켓을 쐈는지 알아내는 동안 방어선을 지켜달라고 간청한다. 로봇들이 기사의 빛나는 방패에 짓눌려 찌그러진다.
“습격자가 있어!” 한조가 소리친다.
아테나가 발표한다: “제 3자 개입을 확인. 드론 두 대가 격추당했습니다.”
“젠장,” 맥크리가 말한다.
“상황 분석을 위해 위성 위치를 조정합니다. 한조 요원님!”
“그래!”
“습격자와 교전 가능한 위치로 이동하세요.”
“가고 있다.” 한조가 얼음 벽을 미끄러져내려가, 푸른 광선이 발사된 지점을 활로 겨눈다. 펄스 탄환이 두 번 더 하늘을 가른다. 한조가 공격자의 위치를 발견한다 : 툰드라 지대의 거센 바람을 맞고 서 있는 어두운 그림자 하나. 뭔가 거대한, 로켓 런처 같은 무기를 스뱌토고르 워커에 겨누고 있다. 5호기의 다른 쪽 다리 관절에 펄스가 명중한다. 5호기가 무너져내려, 앞으로 쓰러지고, 눈 속으로 파묻힌다.
한조가 활을 쏜다. 그림자가 움찔하며 몸을 굽히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제대로 맞았다.
“시메트라 연결.” 여자 목소리가 통신선을 울린다. “비슈카르 요원 사티아 바스와니입니다. 데이터 분석 중입니다. 이건 비슈카르의 개입이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이건 비슈카르 측 개입이 -- ”
“어이!” 트레이서의 화난 듯한 높은 목소리. “이 여자 우리 통신선에서 뭐 하는 거야?”
“윈스턴의 분석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무기 특정 결과 헬릭스 시큐리티 시스템으로 판정됐어요.”
한조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바스와니의 목소리는 지금 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통신에서 이 여자를 빼!”
사티아의 목소리는 거의 화난 것 같다. “습격자는 펄스 소총을 사용하고 있어요. 제 자료로는 정확한 모델 넘버를 특정할 수 없어요. 신규 개발된 기술이거나, 자료에 없는 프로토타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스와니의 목소리 아래로, 메르시의 숨소리가 섞인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단어 하나를 말한다. 이름이다.
“잭.”
맥크리도 그 목소리를 듣는다. “뭐라고?”
한조는 소리를 감지하기 전에 눈으로 목격한다 : 세 번째 발전기에서 피어오른 구름 위로 시야를 가리는 하얀 눈. 거센 굉음이 툰드라 지대를 흔든다. 스뱌토고르 2호기, 4호기 옆에서 발전기가 폭발한다. 한조는 벽에서 미끄러질 뻔한다. 그가 얼음 끝을 잡고 매달린다. 오른쪽 귀의 통신기가 잡음과 찢어지는 소리로 시끄럽다. 워커가 폭발하는 걸 보자 한조의 가슴이 철렁한다. 땅 위에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조각나 흩어진다.
스뱌토고르 로봇처럼: 임무가 바로 눈앞에서 슬로모션으로 산산조각나고 있다.
“발전기에 자폭 시퀀스가 있는 게 분명해요!” 윈스턴이 가쁜 숨을 들이마신다. “폭탄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라인하르트!” 한조가 메르시의 목소리를 듣는다. 반딧불이처럼 밝게 빛나며, 옴닉 무리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후퇴해야 해요!”
“안돼!” 메이 링이 울부짖는다. “안돼, 안돼, 안돼! 워커가 격추됐어요! 전부 다!”
“아직 하나 남았어!” 트레이서가 말한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구!”
맥크리의 목소리는 어둡다. “메르시!”
한조가 다시 벽을 오른다. 그가 툰드라 땅 위에 서 있는 습격자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쏜다. 명중한다. 검은 그림자가 휘청인다. 가슴에 두 발 맞았다.
그리고, 사라진다.
한조가 소리친다: “습격자가 사라졌어!”
“사라졌다구?” 트레이서가 말한다.
아무 곳에도 흔적이 없다. 한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뚫어져라 살핀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반복합니다, 후퇴해야 해요!” 메르시의 새된 목소리가 통신기를 울린다. “의료진에게 우선권이 있어요! 조종사들 -- 조종사들에게 가야 해요, 발키리 시스템을 가동 --”
“메르시!” 맥크리가 소리친다. “뭐라고 한 겁니까!”
방어선은 완전한 혼돈에 빠진다. 마지막 옴닉 무리가 툰드라 지대를 집어삼킨다. 한조가 얼음 벽에서 뛰어내려, 땅을 딛고, 습격자가 있었던 방향으로 달린다. 눈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시체도, 펄스 소총도. 라인하르트가 철커덕거리며 후퇴한다. 메르시의 카두세우스 지팡이가 쉬지 않고 작동한다. 라인하르트를 자기 발로 걷게 하기 위해서 광선을 혹사시키고 있다.
“5호기, 6호기, 4호기의 생체 신호가 끊겼습니다,” 통신기 저편의 자리야가 분노한다. “내 조종사들이 당했어요. 방어선: 보고를!” 그리고, 절박하게 : “오버워치, 응답하세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고 있소, 자리야!” 라인하르트가 외친다. “기다리시오! 메르시와 내가 이동 중이니!”
“빌어먹을, 안젤라,” 맥크리가 통신기 너머로 으르렁거린다. 한조는 그가 그렇게 화내는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무슨 망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도대체 --”
“탈출해야 합니다,” 메르시가 사납게 대답한다. “나중에 설명해요, 지금은 움직이고!”
“작전상 후퇴를 개시합니다,” 윈스턴이 확정한다. “메이 요원, 스노우볼이 필요해요. 옴닉들의 공격을 늦출 수 있을 겁니다.”
“윈스턴!” 메이 링이 놀라 숨을 들이마신다. “그건 진짜 위험해요! 환경 반응이 기상 조건을 바꿀 수도 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지금 하세요! 그 옴닉들 한가운데에 던져야 탈출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서! 순간이동기를 가동해요!”
“알았어요! 지금 할게요!” 메이 링이 드론을 던진다. 스노우볼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가며, 자그마한 파란색 점처럼 작아진다.
크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터져나와, 굉음으로 커진다. 구름이 회오리치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옴닉 무리에 얼음을 퍼붓는다. 온도가 급강하한다: 도망치고 있는 오버워치 팀 주변으로 살을 에는 바람이 휘몰아친다. 거대한 눈보라가 지역 전체를 뒤덮는다. 팀은 스뱌토고르 로봇의 잔해로 뛰어든다. 트레이서가 한쪽 팔 아래에 순간이동기를 끼고 선두를 달린다. 한조는 맥크리가 돌풍 때문에 뒤처지는 걸 알아차린다.
“따라와!” 그가 총잡이에게 소리친다. 바람 부는 소리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빠르게 소음이 커지고, 공명하며, 높은 이명으로 귀가 아플 때까지 귓전을 때린다.
“러시아를 위하여!” 자리야가 마지막 남은 워커에서 뛰어내리며 외친다. 그녀가 네 번째 발전기를 향해 입자포로 보라색과 검은색이 섞인 구형의 에너지 탄을 쏜다. 중력자가 웅웅거린다. 한조는 폭발의 진동에 턱과 이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낀다. 소름끼치는 우드득 소리와 함께 발전기 외벽이 안으로 우그러지며 붕괴한다. 통신기에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그들이 해냈다. 발전기가 모두 파괴됐다. 목표를 완수했다.
“순간이동기 설치할게!” 트레이서가 말한다. “이 눈보라는 언제 끝나는 거야?”
“어, 이제 끝나야 하는데!” 메이 링이 소리친다. “스노우볼이 돌아오지 않아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찬바람이 한조의 뒤꿈치를 핥는다. 그가 주위를 둘러본다. 팀은 전진하고, 눈보라는 비명을 지르고, 옴닉들은 뒤처져 있다. 습격자의 흔적은 없다.
붉은 세라피도 없다.
“맥크리!” 한조가 소리친다. “맥크리를 찾아봐! 트레이서, 맥크리가 그쪽에 있나?”
“아니, 친구. 지금 막 가동시켰어. 아직 통과 인원 제로야!” 한조가 저만치 앞에 있는 푸른색 타원형 순간이동기 근처의 트레이서를 발견한다. 메르시와 할머니 조종사가 러시아 방위군의 부상병들이 빛나는 원반을 통과하는 걸 도와주고 있다. 라인하르트와 자리야가 워커의 잔해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있다. 모자도, 박차도 없다. 총잡이는 없다.
“맥크리 요원!” 윈스턴이 부른다. “상태를 보고하세요!”
응답이 없다. 한조가 뒤돌아보고 주변을 샅샅이 살펴본다 : 포효하는 눈보라, 돌풍 저편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옴닉들, 폭풍 저편으로 보이는 메이 링의 얼음벽 잔해. 우박과 얼음, 부서진 로봇과 금속 잔해밖에 보이지 않는다. 뼈가 시리도록 춥다.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휘몰아친다.
잠깐. 바람 소리만이 아니다. 다른 소리가 들린다. 경쾌한 리듬, 높은 음조의 피리 같은 소리. 의심할 여지 없이 음악적인.
설마 진짜 휘파람 소리인가?
옴닉 기지의 사이렌이 울린다. 전원 동력을 잃고 있다.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지며 꺼지는 그 소리에, 한조의 머리끝이 쭈뼛 선다.
“눈보라의 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테나가 경고한다. “정보 갱신이 방해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옴닉 기지에 신호가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순간이동기를 통과하세요.”
“기다리게!” 라인하르트가 고함친다. “확인해야 해: 맥크리는 어디 있나?”
“통신기 센서에 응답이 없습니다,” 윈스턴이 말한다. “손상된 걸지도 몰라요, 위치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워커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한조는 추위를 느낀다. 등골을 타고 서늘하게 오르며, 가슴을 파고든다. 루시우의 노래가 귓가에서 사라져 버린다. 갑자기 발 아래의 땅이 느껴진다 : 꽁꽁 얼어붙은, 미끄러운 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가 활을 들어올린다. “내가 찾으러 가겠다.”
“한조 요원.” 아테나가 오른쪽 귀에 대고 강조한다. “남은 옴닉들이 아직 위험 구역 안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위험한 행동입니다.”
“여기 그 녀석을 놔두고 가서는 안돼.”
“긴급 상황이에요! 한조 요원: 시간이 많지 않아요!”
“순간이동기가 꺼지기 전에 찾아내겠다.” 그가 전력으로 질주한다.
“한조!” 윈스턴의 목소리다. “조심해요, 아직 습격자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됐군.” 그가 이를 악문다. “그놈이 숨을 곳이 없을 테니까.”
한조가 눈보라를 뚫고 전진한다. 드론은 시야 밖에서, 통제 불가능한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삐죽삐죽한 얼음과 쓰러진 옴닉들을 건너가는 동안 찬바람이 시야를 막고 살을 엔다. 한조는 숨을 내쉬고, 덜덜 떨며, 메이 링이 남긴 최후의 벽을 오른다. 정신이 나갈 듯한 휘몰아치는 돌풍이 채찍질을 해댔지만, 그는 건틀렛과 금속 발을 벽에 콱 박아넣는다 -- 더 높이, 더 빨리, 최대한 빠르게 -- 벽의 가장 높은 곳까지. 머리끈이 눈 앞으로 휘날린다. 미끄러질 뻔한다. 한조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집중한다. 생각해라: 바보 녀석은 어디 있지?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봤었지? 무리에서 뒤처져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통신기를 썼지? 메르시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녀가 말했던 이름에 대해서 물을 때였다. 잭. 습격자는 어떻게 됐지?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한조가 몸을 웅크린다. 얼굴이 따끔거린다. 코와 뺨의 피부가 벗겨져서 쓰라렸다.
붉은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아래, 벽 아래쪽, 옴닉 잔해 가운데에, 맥크리가 엎드려 있다. 쓰러져, 눈에 뒤덮여서, 아직 머리에 모자를 달고. 숨이 가빠온다. 죽었나? 아니, 움직이고 있다 -- 아주 약간이지만. 따뜻한 물 같은 안도감이 한조를 휩쓴다. 벽 아래로 내려가서, 녀석을 데리고, 옴닉들이 도착하기 전에 -- 다시 기계로 된 파도가 땅 위를 휩쓸기 전에 -- 도망친다면, 구할 수 있다. 순간이동기가 꺼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 형상은 갑자기 그 곳에 있다.
한조가 몸을 숙인다. 심장 박동 소리가 천둥처럼 귀에 울린다. 그는 얼음 벽 끝에서 얼어붙어,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충격으로 몸이 굳는다. 그 광경 : 섬뜩하고 키 큰 형상이 맥크리 옆에 서 있다. 그것의 긴 코트와 후드가 검은색 깃발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강철 갑옷이 강해 보이는 팔을 감싸고 있다. 허리와 몸통에는 수류탄과 화약이 꽂힌 벨트가 둘러져 있다. 한조는 그것이 신고 있는 강화소재 신발을 본다. 무거운 부츠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커다란 총을 들고 있는 손에는 뾰족한 손톱이 있다: 소총이다. 시메트라가 통신기로 말했던 것 같은. 크고, 빛나는, 선명한 파란색. 양손으로 들어야 하는 종류의 무기.
경고도 없이, 그 형상이 펄스 소총을 땅바닥에 내던진다. 그것이 후드 안에서 뭔가를 꺼낸다 -- 두 눈으로 보는 바이저 같은 것이다 -- 그리고 눈 속으로 던진다. 이제 그것의 가면이 보인다. 뼈처럼 하얗고, 움푹 들어간 홈이 눈과 코 모양을 그리는. 칼 같은, 약간 부리처럼 보이는 가면. 매의 두개골 같기도 했다. 방금 전에 들었던 소리가 다시 바람에 실려온다. 형상이 휘파람을 분다 : 또렷하고, 즐겁고, 변덕스럽고 경쾌한 소리. 멜로디.
악몽 속에서 튀어나온 존재 같다.
그가 공포를 억누른다. 한조는 활을 앞으로 뻗고, 매끄럽게 자세를 취해,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기려 한다. 그는 형상의 가슴에서 튀어나와, 바람에 흔들리는 화살대 두 개를 볼 수 있다. 좋아: 저 불길한 머리에 마지막 화살을 꽂을 거다.
형상이 휘파람 부는 걸 멈춘다. 그가 느긋한 걸음으로 맥크리에게 다가간다.
“그 녀석들을 그리워했다.” 그것이 말한다. 한조는 침묵한다. 숨이 막힌다. 그 형상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크지 않은데도 귀에 크게 들리는 소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저음. 한조는 이 생명체가 말하는 내용을 폭풍을 뚫고 듣지 않는 편이 좋았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명하게 들린다. 지옥에서 올라온 무언가의 고요하고 악의에 찬 목소리. “녀석들 모두가 그리웠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것은 한조가 본 것 중 가장 큰 샷건 한 쌍을 꺼낸다.
“특히 네가 보고 싶었지, 이 배은망덕한 놈.”
분노가 그를 집어삼킨다. 날카롭고 달콤하게. 그 추위와 얼음과 지독한 눈보라 속에서 -- 얼음 한가운데 몸을 뻗고, 지독한 바람과 찌르는 얼음에 지친 몸으로 -- 한조는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는 분노에 굴복한다. 결과는 하나뿐이다. 죽는다고 해도.
피부 아래의 떨림이 그들이 돌아왔다는 걸 알린다. 격동하는 회색 바람이, 눈보라를 뚫고 스파크가 튈 때까지 그의 주변을 소용돌이친다. 한조는 그들이 형태를 이루는 것을 느낀다. 빛나는 푸른색 줄기에 생명이 깃든다. 그 어떤 눈보라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주인이 명령하면, 폭풍이라도 삼킬 거다.
우리가 왔다.
기분 나쁜 형상이 흐릿하게 맥크리에게 다가간다. 한조가 이를 악문다. 그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준한다.
너의 분노를 안다. 우리는 널 쉬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에게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턱을 움직이면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원한다.
그가 활을 당긴다. 마음이 비워진다. 용들이 포효한다.
먹이를.
“삼켜라!” 그가 외치고, 시마다의 용들이 부름에 답한다.
한조가 쏜다. 용들이 빛나는 분노와 함께 날아오르며, 집어삼키고, 울부짖는다. 악몽의 존재가 목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신음을 토한다. 옴닉 기지의 경고음처럼, 비정상적인 소리다. 한조는 그것의 머리를 맞췄다는 걸 안다. 용들의 꼬리가 나눠지고 시야가 트이자, 그 생명체의 오른쪽 눈에 명중한 게 보인다.
한조가 벽을 내려가, 눈 위에 착지하고, 용들이 대지를 휩쓰는 사이 맥크리에게 달려간다. 한조는 그 생명체가 뭔지 보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놈이 살아 있는 채로 잡아먹히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게 바람 소리 너머로 들린다. 그는 총잡이를 들쳐메고 달린다. 눈을 뚫고 -- 최대한 빠르게. 용이 일으키는 날카로운 돌풍이 그를 앞으로 밀며, 피에 불을 붙인다. 내 것, 내 것이다 -- 이건 나의 것이야 --
통신기가 울린다. 아테나다.
“한조 요원!” 지금까지 계속 아테나가 조용했던 건가? 아니면 계속 말하고 있었는데 벽을 올라가고 나서부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가? “텔레포터가 꺼졌어요!”
새로운 공포가 등골을 타고 오른다. 한조는 아직 옴닉들이 전장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어깨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다. 한조는 그 옴닉들이나 유령 녀석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 맥크리의 무게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아드레날린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한계라는 게 있다.
“비행 수단은 어디 있지?” 그가 숨을 헐떡이며, 부서진 스뱌토고르 로봇의 팔을 뛰어넘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탈출시켜 드릴 수가 없어요,” 윈스턴이 암울하게 대답한다. 거의 비참한 목소리였다. “눈보라가 통제 불가 상태입니다. 메이의 드론이 내려오질 않아요, 아직도 위에 있습니다.”
한조는 또 한 번 추위를 느낀다: 난폭하고, 갑작스런,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추위. 용들 때문에 탈진했고, 눈보라 때문에 약화되었다. 맥크리를 오랫동안 이렇게 들고 옮길 수는 없을 거다. 유일한 탈출 기회가 사라졌다. 언덕에는 깜박거리는 푸른색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
“잠깐!” 다시 아테나다. 이번에는, 희망적인 목소리. “가능한 해결책이 있어요. 4번 발전기에서 ²⁾600피트 떨어진 곳 지하에, 정비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폭풍을 멈추거나 러시아 방위군 인력을 투입할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 대피해 있을 수 있어요.”
²⁾약 180미터.
그녀는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한조는 방향을 바꾸고, 워커의 부서진 다리를 넘어, 부서진 발전기들을 지나 달린다. 그가 지나치면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마침내 네 개.
“바로 앞에 있어요,” 아테나가 재촉한다. “눈으로 보이나요?”
한조는 언덕 위로 살짝 보이는 출입구 문의 검은 윤곽을 본다. “확인했다.”
“문은 닫혀 있어요. 발전기가 파괴되어서, 잠금이 풀려 있을 겁니다.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다시 잠그는 건 힘들 거에요.”
“알겠다.” 그가 출입구로 접근하며, 길을 막고 있는 금속 덩어리를 피해 지난다. 그는 눈 속에서 어렴풋이 빛나는, 쪼그라든 붉은색을 보고 깜짝 놀라 잠시 멈춘 다음에야 반응한다. 금속이 아닌: 갑옷이다. 시체. 비통함이 치밀어오른다: 루스터다.
“할 수 있어요, 한조!” 윈스턴이 통신기로 말한다. “정비실에 도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안에 들어가면, 안전할 거에요!”
“문을 열면 옴닉 무리가 쏟아져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지?”
“없을 겁니다,” 윈스턴이 간결하게 답한다. “지하 터널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에요. 한두 놈 있을지 몰라도, 그 정도는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화살이 얼마 안 남았어.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지금 말해라.”
“그래도 그게 최선입니다. 들어가세요.”
그가 문에 도달해 핸들처럼 생긴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린다. 끼긱거리며 문이 열리자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퀴퀴한 공기가 코를 찌른다. 제일 아래쪽 바닥을 약한 붉은색 빛이 비추고 있다. 첫인상은, 지옥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다.
“아주 좋군,” 한조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맥크리의 가슴 보호대 줄을 잡고 질질 끌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가 총잡이의 벨트에서 섬광탄을 하나 빼내 계단 아래로 던진다. 밝은 빛이 터져나오며 콘크리트 벽을 때린다. 아무 반응도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들어가고 있다.”
한조가 무거운 강철 문을 닫고 손잡이를 돌린다. 잠금이 걸리지 않는다. 다시 해 본다. 운이 없다. 한조는 거칠게 손잡이를 아래, 위, 왼쪽, 오른쪽으로 잡아당긴다. 잠금쇠가 듣기 싫게 긁는 소리를 낸다. 그는 문 옆의 컨트롤 패드를 때린다. 버튼 사이로 장갑 낀 손가락을 찔러넣고, 잡아당긴다. 판이 딱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와 합선을 일으킨다. 삑삑거리다가 크게 철컥 소리가 난다. 잠금 장치가 문틀 안에서 작동한다. 볼트로 걸어잠겼다.
한조가 눈을 깜박이고, 문을 쳐다보고, 키패드를 떨어뜨린다. 다행이다. 아직 어딘가에 전원 장치가 있는 게 틀림없다. 비상등이 켜져 있고 합선이 일어난 걸 보면...
총잡이의 몸이 약간 움직인다. 한조가 무릎을 굽히고, 검은 벽에 그를 기대어 놓고, 어둠 속에서 가까이 다가앉는다.
“맥크리.”
“망설였어,” 맥크리가 쉰 소리로 말한다. 떨고 있다. “타-타이밍이 젬병이야 --”
“맥크리!” 그가 소리친다. 한조가 맥크리의 목에 손을 대고, 안정적인 심장 박동을 느낀다. 피부가 축축하다. “다친 곳이 있나?”
“아나.” 맥크리의 머리가 벽에 기대 처진다. 춥고, 졸음이 오는 듯한 목소리다. “미안해요, 아마리.”
그 이름을 듣자 뜨거운, 칼날 같은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그가 맥크리의 어깨를 잡고 밀친다.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보다 더 거칠게. “대답해!”
“어으.” 맥크리가 덜컥 깬다. 어둑한 붉은 빛 아래로, 가늘게 뜬 눈에 한조가 보인다. “한조?”
“다친 - 곳이 - 있나.” 한조가 화난 것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실패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여기가 어디야?”
“대답해, 바보 녀석아! 다쳤냐고!”
“젠장할.” 맥크리가 잠긴 목을 그릉거리며, 손바닥을 짚고 일어난다. 카우보이 부츠가 짤강거린다. “안 다쳤어. 빌어먹을. 잘 모르겠는데, 쓰러졌어. 뭔가가 날 쳐서 쓰러졌어.” 그가 긴장한다. “도대체 여긴 어디야?”
“정비실이다.” 한조가 세라피를 걷어내고, 부상의 흔적이 있나 손으로 만져보며 살핀다. 그의 가슴 보호대 센서에서 나오는 빛이 더 밝다. “우릴 탈출시켜줄 수 없다고 한다. 눈보라가 통제 불가 상태야.”
“정비실?” 맥크리가 이를 딱딱 부딪힌다. “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진정해,” 한조가 진정하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이를 악문다. “방위군이 올 때까지 이 곳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네가 다쳤다면 내가 알아야만 해.”
바깥에서, 눈보라가 문을 쾅쾅 때린다. 낮은 기계음이 어둠 속에서 공명한다. 맥크리는 벽에 기대서서, 자기 몸을 더듬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고 불그스름한 빛이 주변을 비춘다. 맥크리의 라이터가 그들 사이에서 빛을 내며, 축축하고 텁수룩한 얼굴 뒤로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코에는 피가 얼룩덜룩하고 뺨은 군데군데 갈색으로 얼룩졌다. 야성적인 눈이 반짝인다. 살아 있다.
한조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한다: 지치고, 닳고, 얼음에 긁힌 모습. 머리끈이 느슨하고, 팔다리는 부분적으로 마비되고 떨린다. 뼛속까지 피로가 스민다.
“무슨 일이 있었지?” 제시가 반복한다.
“네가 공격을 당했다.”
“젠장, 나도 알아, 근데 뭐가 공격한 거야? 그 습격자인가?”
“그래. 암살자 같은 놈이었다.”
“워커를 격추시킨 녀석 말이지.”
“그래. 생각나는 게 있나? 놈이 널 쐈나?”
제시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그냥 쓰러진 것만 기억나. 큰 바람 같은 것에 밀려서. 숨을 쉴 수가 없었지. 그리고 쓰러졌어. 얼굴을 아래로 하고, 바로 눈 속에. 살면서 그렇게 추운 적이 없었어. 무기를 본 기억은 없어, 총알이나 총 소리도 없었고.”
“그냥 바람이었다고?”
“그래. 속이 울렁거리는 바람. 토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 그 전에 얼어죽지 않는다면.” 맥크리가 희미하게 신음한다. “토한 것도 얼어붙을걸.”
한조가 계단 아래를 흘끗 내려본다. 입구에 계속 있는 건 현명하지 않은 짓이다: 정비실에 로봇이 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하지만 맥크리는 여기에 있다. 거의 온전한 몸으로 안전하게. 몸을 떨고 있지만, 의식도 있다. 다쳤다면, 큰 부상은 아닐 거다. 그 유령 같은 놈이 뭔가 다른,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종류의 무기를 쓰지 않았다면 -- 생체 무기나, 아니면, 산란 광선 같은 것 --
“놈을 봤어?” 맥크리가 기침한다. “총 쏘던 친구.”
“그래.”
“어떻게 생겼어?”
“그 남자 -- 남자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검은색 옷이었다. 코트, 후드, 전투용 보호구. 강화 부츠. 하얀색 가면.”
“가면?”
“그래. 해골 같은 가면. 화약과 수류탄을 갖고 있었어. 펄스 소총에다 샷건까지 있었지.”
“샷건에다가 펄스 소총?” 총잡이가 혀를 찬다. “망했군. 그게 탈론이 아니면 뭐겠어.”
“아마도.” 한조가 다시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여기 안전을 확보해야 해.”
“그래, 좀 기다려 봐. 젠장, 내 통신기.” 맥크리가 귀를 만져보며 법석을 떤다. “쓰러질 때 잃어버렸나 봐.” 그가 멈춘다. “잠깐 -- 임무는. 발전기는. 전부 처리했나?"
“그래. 자리야노바가 마지막 발전기를 폭파했다.”
맥크리는 깜짝 놀란다. “그럼 우리가 이겼네.”
“할 수 있으면, 일어나 봐라. 팔다리 조심하고. 계속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전부 나갔어? 메르시랑 트레이서는 어딨어? 라인하르트랑 메이는?”
“순간이동기로 탈출했다.” 한조가 일어난다. 맥크리가 그의 팔을 잡는다. 라이터 불꽃이 흔들리며, 세라피 주름에 오렌지색 빛을 비춘다. 맥크리가 그를 붙잡고, 크게 뜬 눈으로 올려다본다.
“날 위해서 돌아온 거야?” 제시가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묻는다.
한조가 불타는 어둠 속을 내려다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날 위해서 돌아왔구나.” 제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한다.
“그랬지.”
“혼자서.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는데.”
“그래.”
순간의 침묵. 한조가 물러난다. 제시가 그의 손목을 잡는다. “시마다, 네가 날 살렸어.”
“또 한 번 말이지.”
총잡이가 비틀거린다. “아. 시마다...”
“임무 프로토콜에는 오버워치 요원을 전장에 버려두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
“날 위해서 돌아왔잖아. 날 죽지 않게 구해줬어.”
“위험 상황에서 내린 전략적 판단이었다.”
제시가 땅을 딛는다. 한조가 일어서고, 제시가 따라 일어난다.
“그 눈보라를 뚫고 날 구해준 거야. 워커 여섯 대를 쓰러뜨린 탈론 암살자한테서 날 지켜줬다고.”
“너라도 똑같이 했을 거다.”
“그 이유도 알고 있겠지.”
“이유?”
“나 갖고 놀지 마,” 그는 떨고 있다. “시마다, 제발. 이거 가지고는 그러지 마. 이건 아니지.”
“내 임무였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한조.” 갑자기, 바보 녀석이 두 발로 서서, 앞으로 훅 다가서며, 그의 두 팔을 잡는다.
“이러지 마라.” 한조가 이를 악물고 물러선다. 기진맥진해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바보 녀석은 계속해서, 추워서 이를 맞부딪치면서도 지껄여댄다. “빌어먹을. 네가 한 일이잖아. 그냥 말해, 왜 못해? 돌아와서 날 구해줬잖아. 말해, 시마다, 말하면 죽기라도 해?”
“할 말 따위 없어!”
“무슨 말인지 잘 알잖아!”
“그만해라!”
쓸모없는 시도였다. 제시가 그를 붙들고 있다. 그가 강하게 밀어붙인다: 축축한 세라피, 얼음 같은 가슴 보호대, 덜덜 떨리는 몸으로. 철과 살로 된 손가락으로 그를 잡고서. 그 담배 냄새 나는 턱수염과 입으로. 어둠 속에서 그들은 벽에 부딪힌다.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울린다. 제시가 그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짐승처럼 코를 파묻으며.
갑자기 한조는 지쳐 버린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피곤함이다. 모든 근섬유에 기운이 빠지고, 강물 속의 바위처럼 닳아버린다. 완전히 탈진한다. 그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돌연 무너진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을 잔뜩 엉킨 제시의 머리카락 안에 찔러넣는다.
“날 위해 돌아왔어.” 제시는 기도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복한다. 무릎을 후들거리며, 팔을 단단히 잡고.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한조가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나직이 말한다. 그리고 나서, 한숨. “널 위해 돌아가는 것.”
제시가 키스할 때 그는 놀라지 않는다. 입맞춤이 깊어지고, 분별없이 질척해지며, 격식이나 체계를 완전히 잃을 때에도. 반쯤 얼어붙은 상태로도, 맥크리는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sticks to his guns): 전력으로 키스하며, 목표물을 맞출 때까지 멋대로 조준하는 것. 한조는 총잡이가 혀를 마음대로 놀리도록 놔둔다. 담배 냄새와 쇠 맛이 난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피의 맛. 그 피가 제시의 것인지 자기 것인지,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큰 손으로 그를 끌어당겨 안을 때, 한조는 그의 뒷목을 붙잡는다. 그가 주도권을 뺏고 키스를 돌려주고서, 멈춘다. 당황한 제시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에 즐거워하며. 맨손으로 잡은 헝클어진 머리 한 움큼, 등 윗부분을 껴안은 장갑 낀 손. 제시는 열망하며 흐느끼는 듯한 숨을 뱉는다. 언어도 형태도 없는 간청. 한조는 말없이 입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자기(Darlin’),” 거의 피가 날 만큼 입술을 깨물린 제시가 숨을 내뱉는다. “내 사랑(Sweetheart). 이 미친 개자식.”
한조의 속이 탄다. 그는 두 개의 충동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그 코요테 같은 입을 후려갈기고 밀쳐내거나, 바닥에 쓰러뜨리고 옷을 벗겨서 그를 갖거나. 제시는 그를 벽에 밀어붙이고, 서툴게 오른손으로 가슴과 배를 쓸어내리며 애무한다. 한조는 거의 그렇게 하도록 놔둘 뻔한다. 지금 이 시간이 위험하지만 않았다면.
밀쳐내려는 충동이 옷을 벗기려는 충동을 이긴다. 한조가 제시를 아주 약간 밀어낸다.
“그만,” 그가 내뱉는다. 폐가 아프다. “시간이 없어.”
제시의 깊고 낮은 목소리가 떨린다. “네게 목숨을 빚졌어 --”
“이 곳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목숨은 아무 의미없는 것이 될 거다.” 한조가 맥크리를 팔꿈치로 밀며 떨어져나가, 활을 잡고 계단 몇 걸음을 내려간다. 약간 망설이며, 제시가 그를 뒤따라간다. 뒤꿈치가 부딪히고 박차가 짤그랑거린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원형의 제어실이 나온다. 양 옆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콘솔 화면으로 덮여 있다. 붉은 보조등 불빛 아래로 스크린의 지직거리는 검은 화면이 보인다. 복도로 이어지는 모든 문은 세게 두들겨맞은 것처럼 찌그러져서, 반쯤 열려 있다. 방 하나에는 라커가 줄지어 있고, 화장실 수도꼭지는 부러졌고, 세면대에는 금이 갔으며, 칸막이는 부서져 있다. 싸움으로 파손된 흔적이다. 찌그러진 냉장고, 탁자, 넘어진 의자들도 있다. 흙, 먼지, 파편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맥크리의 부츠가 깨진 유리 조각을 밟는다.
시체는 없다. 생물의 흔적 자체가 없다. 쥐새끼 한 마리조차도. 배터리가 꺼져가고 기름이 닳아가는 비상 발전기가 하나 있다. 그들은 수납장 안에 쑤셔넣어진 옴닉 잔해를 발견한다. 총 맞은 부분이 불에 타서 검은 자국이 눌어붙어 있다.
춥고, 더럽고, 음침하고 폐소공포증을 유발하지만 --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안전하다.
제시의 제안으로 그들은 갖고 있는 물품을 점검한다: 피스키퍼 재장전용 스피드로더 3개, 화살 7발, 섬광탄 4개. 응급치료 키트 2개, 혹한 대비 보급품 키트 3개, 각자의 휴대용 식량 1세트. 핸드셋 2개, 메이 링의 파란색 이어폰. 여벌 옷은 없고, 여분 배터리는 조금밖에 없다. 한조의 통신기는 절전 모드로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다.
아테나가 나쁜 소식을 전한다. 스노우볼이 오작동했고,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모든 연료를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인공 눈보라가 주변 지역 전체의 기상 환경을 망쳐놨다. 저압 기후가 폭풍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운송 수단의 경로를 막았다. 돌풍 때문에 비행선이 날 수 없고, 드론도 마찬가지다. 아테나는 피난처를 모니터링할 수 없다. 약 2m 높이의 눈이 아침까지 쌓일 거라고 한다. 그 날 밤에는 아무도 나갈 수 없다. 동시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설차 하나는 있더라구요,” 윈스턴이 농담을 한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목소리에 압박감이 뚜렷하게 묻어난다.
“이 상황은 언제 끝나는 거지?” 한조가 묻는다. 그의 뒤쪽에서 제시가 제어실 바닥 쓰레기를 쓸어내며 대화를 건너듣는다.
“다음 48시간 동안 계속 눈이 내리고 폭풍이 칠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멀찍한 목소리가 윈스턴의 송신 너머로 들려온다. 한조는 루시우, 토르비욘, 그리고 낮은 여자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바스와니겠지. 시메트라 -- 그 바보 같은 비슈카르 코드네임. “눈이 그치기만 하면 지상으로 인력을 투입하고, 그 다음에 바로 항공기를 띄울 겁니다. 버티실 수 있겠죠.”
한조가 먼지 쌓인 콘솔 화면을 무섭게 쳐다본다. “지하에서 이틀이다, 보급품도 아주 많지는 않아. 놈들이 발전기를 고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재작동할 수 있는 옴닉들 바로 옆에서.”
“발전기는 파괴됐어요, 한조. 아무도 그걸 이틀만에 고치진 못할 겁니다.”
“순간이동하는 암살자가 우릴 쫓고 있어. 아직 밖에서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만 잘 닫고 있으면 안전할 겁니다. 그 습격자에 대해서 분석 중이에요.”
“잭에 대해서 물어봐,” 맥크리가 복도에서 외친다.
지친 채로, 한조는 그를 향해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그가 노려보며 통신기를 작동시킨다. “맥크리가 잭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라고 하는군.”
긴 침묵. 윈스턴이 한숨을 쉰다. “그것도 -- 지금 분석 중입니다. 설명드리기 전에 정보가 더 필요해요.”
“잭이 누구지?” 한조가 묻는다.
“이봐,” 맥크리가 다시 부른다. “뭐라고 했어?”
한조가 올려다보며 인상을 쓴다. 말을 옮겨주기엔 너무 피곤하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으니, 좀 기다려라.”
“네?” 윈스턴이 통신기로 묻는다. “저기, 저한테 한 말인가요, 맥크리한테 한 말인가요?”
“맥크리다, 네가 아니라.”
“아.” 윈스턴이 대답한다. “어 --”
“잭이라고 했어,” 맥크리가 끼어든다. “임무 중에 메르시가 잭에 대해서 뭔가 말했는데 --”
한조가 맥크리에게 소리를 지른다. “입 좀 다물어라, 지금 얘기를 듣고 있잖나!”
“여러분,” 윈스턴이 끼어든다. “진정해요, 지금 이 난장판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 중이니까. 러시아와 UN 양측에서 반응이 엄청납니다. 팀은 볼스카야에 돌아가 있고, 뉴스가 난리에요. 정말 이런 말 하기 싫지만, 거기 가만히 대기하면서 배터리 아끼고 있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한조가 콘솔에 통신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48시간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게 확실한가? 육상 경로로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부분은 러시아 방위군이 힘쓰고 있습니다. 그 장소를 떠나지 마세요. 500미터도 못 가서 저체온증에 걸릴 겁니다. 이미 걸린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가 손가락으로 콘솔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긴다. 마음을 졸인다. “1시간마다 통신하길 바란다. 60분마다 우리에게 연락이 없거나, 우리가 그쪽 연락을 받지 못할 경우에 따를 행동 프로토콜이 필요해.”
“1시간마다 체크, 알겠습니다. 프로토콜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맥크리가 모자를 들고 뒤에서 걸어온다. “뭐라고 했어?”
“쉿!” 한조가 손가락을 치켜든다. 그가 통신기에 대고, 낮게 말한다: “60분이다.” 그가 통신기를 콘솔 모서리에 꽂고 맥크리에게 돌아선다.
“나갈 수 없어.” 그가 말한다.
“얼마나 오래?”
“48시간.”
맥크리가 멈칫한다. “젠장.”
“눈보라가 악화됐어. 드론이 통제를 벗어난 거다.”
“그러니까 여기 갇혔다는 거야?”
한조가 눈을 굴린다. 뭐라고 할 기운도 없다. “그래, 맥크리. 여기 갇힌 거다.”
맥크리가 발을 끌며 걷는다. 그가 세라피를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말리고, 가슴 보호대를 풀고, 셔츠 주름을 편다. 미약한 불빛 아래로, 한조는 그가 죄책감에 찬 소년 같다고 생각한다. 거의 무력한. 무슨 일을 해야 화난 부모님의 기분을 풀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Well, 젠장,” 그가 한숨을 쉰다. “그냥 여기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군. 빌어먹을, 담배가 필요해.”
“꿈도 꾸지 마라.”
그들은 제어실 청소를 끝낸다. 제시가 의자 3개를 쌓아 층계참과 제어실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친다. 한조가 핸드셋에 신호가 없는 걸 확인하고, 콘솔 위에 올려둔 통신기 옆에 놓는다. 그는 물자 보관함을 뒤져서 두꺼운 코트 두 벌과, 사이즈가 너무 큰 부츠와, 밝은 오렌지색 바람막이를 찾아낸다.
제시가 코트를 받아들며 중얼거린다. “내가 통신기 받을 테니까 좀 앉아 있을래?”
한조가 비틀거린다. 피로 때문에 대답도 겨우 해낸다. “그래 준다면.”
바닥은 차갑지만, 콘솔과 벽 사이 구석은 웅크리고 앉아 있기 적당하다. 한조가 혹한 대비 보급품 키트에서 보온 담요를 꺼내 다리 위에 덮는다. 그는 (너무 크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코트를 두르고, 옹송그리고 앉아서, 구석에 머리를 기댄다. 머리끈이 거치적거린다. 그가 머리끈을 풀고, 왼쪽 손목에 감고,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을 떨궈내린다.
맥크리가 콘솔 옆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뭐냐.” 한조가 코트를 덮고 덜덜 떨며 말한다.
“아무것도 아냐.”
한조가 벽에 이마를 댄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젠장. 그렇게 화내지 좀 마.”
“그럼 그만 쳐다봐라.”
침묵. 맥크리의 의자가 삐걱거린다. 그가 돌아앉는다. 한조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콧구멍으로 내쉰다. 잠이 가까이 다가온다. 느낄 수도 있었다.
방 건너편에서, 제시가 중얼거린다: “그냥 머리 내린 거 한 번도 못 봐서 그래, 그것뿐이야.”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답할 말이 수없이 떠오르지만, 그 중 하나를 고르기엔 너무 피곤했다. 용은 지쳤다: 지금은 쉴 시간이다.
그는 얼마 후 몸을 움찔하며 깨어난다. 맥크리가 귀에 뭔가 속삭이며 그를 진정시킨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잠꼬대를 했던 거다. 한조가 얼굴을 찌푸린다. 입이 마르고 쓰다. 방이 이렇게 어두웠었나? 맥크리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보조등을 끄는 스위치를 찾아낸 거다. 새벽 2시다. 윈스턴에게선 새로운 소식이 없고, 제시는 자고 싶어한다.
“일으켜 세워줘.” 한조의 목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아냐.” 제시가 바닥에 앉아,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가까이 다가앉는다. 빌린 코트를 걸치고 덜덜 떨면서, 담요를 하나 더 들고. “여기 있어.”
“통신기는.”
“망할 통신기는 놔둬, 울리면 내가 받을게.”
한조가 구석으로 당겨 앉는다. 제시에게선 땀과 삼나무 냄새가 났다: 그가 침을 삼키고, 이를 부딪히며, 몸을 떨면서 옆으로 붙는다.
천천히, 피로 때문에 몽롱해진 한조가 자세를 바꾼다. 제시가 몸을 움직여 공간을 내준다. 궁수가 이마를 자기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한조가 그렇게 한다. 그는 눈을 감는다. 용이 살짝 움직인다: 내 것.
감시 기지 침대에서처럼: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완전히 지옥이군,” 맥크리가 속삭인다.
“그래.” 한조가 희미하게, 쓰라린 고통을 인식하며 말한다. 담요 아래로 맥크리의 손을 찾으며.
적어도 우린 안전해, 지옥에서.
역주 -------------------------------------
¹⁾크로스페이드 : 두 개의 음악이 부드럽게 교차되는 효과.
²⁾600피트 : 약 180미터.
챕터10
Hang the Fool - Chapter 10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7207470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주 의>
맥한조 수위 요소가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https://twitter.com/pasyuratan/status/776324060934316032 를 참고하세요
針の穴から天を覗く
하리노 아나카라 텐오 노조쿠 – “바늘 구멍으로 하늘을 엿본다”
좁은 관점으로 결정을 내리는 이에 대한 속담.
---
센다이에서 북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 언덕 두 개 사이에 작동하지 않는 옴닉 기지가 있다. 한조는 그 잔해를 둘러싸고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그는 샛길로 다니는 걸 선호했다. 대도시나 큰 도로로 다니면 주변에 산재한 시마다 가문의 정보원과 마주칠 확률이 더 높으니까. 또, 옴닉 사태 이후 황폐화된 채 남아 있는 장소에 되살아난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자라나는 나무와 수풀에 파묻힌 인공 시설물. 야생 동물들이 행진해 들어와서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보금자리: 바퀴벌레, 쥐, 새, 멧돼지들. 그는 사슴 가족이 다 허물어져 가는 울타리 근처에서 풀을 뜯어먹는 것을 본다. 부서진 옴닉의 가슴 부분에는 노란색 데이지 꽃이 피어 있다. 팔 부분에는 들쥐가 둥지를 틀었다.
한조는 뉴스에서 들은 소식들을 떠올린다. 이 구역이 폐쇄되고 나서, 막대한 크기의 등나무 덩굴이 얽히며 뿌리를 내렸다. 늦은 봄이 되면 나무 덩굴에 보랏빛 꽃들이 풍성하게 활짝 피어난다. 그 향기가 덤불 속에 스며든다: 강렬하고 부드러운, 설탕처럼 달콤한 향. 과학자들이 매년 자연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다. 그들은 생태계 분석 결과 독성이나 방사능 때문에 일어난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조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여기에 분석 따위를 하러 온 게 아니다. 그저 꽃이 보고 싶을 뿐이다.
옅은 여름 하늘 위로 태양이 빛난다. 한조는 폐허를 서쪽에서 굽어보는 절벽 위로 올라간다. 되새 한 무리가 그를 피해 날아올라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는다. 그는 배낭을 낮추고, 등에 멘 활과 화살통 위치를 조정한다. 눈 앞 -- 시야에 들어오는 곳 전체 -- 에 보랏빛 덩굴이 펼쳐져 있다. 덩굴이 끝나며 색깔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지점까지 온통 보랏빛이다. 꽃 향기가 절벽 위까지 퍼져오른다.
라벤더 꽃이 눈에 선하다. 흰색과 분홍색에 하나무라가 떠오른다. 참나무 색, 돌의 검은색, 자갈의 회색과 엷은 갈색이 가슴에 무겁게 남아 있다. 주황색, 청색, 금색은 호화롭고 수치를 모르는 색이다. 그가 가질 자격이 없는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색. 적색은 피를 볼 때에만 허용되는 색이었다.
녹색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는 그런 색을 품을 자격을 갖지 못할 것이다.
---
0606 시, 통신기가 삑삑거린다. 한조는 오래된 꿈과 얕은 잠에서 깨어난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그를 반기며, 쓰라린 부위가 어디어디인지 확인하라고 경고한다 : 머리, 목, 어깨, 팔, 등, 엉덩이, 허벅지 뒤까지. 그가 앞으로 몸을 굽히고, 얼음장 같은 숨을 들이마시며 인상을 쓴다. 추위 : 그리고 어두운 방. 그는 왼쪽 발을 뻗다가 무릎의 감각이 둔해진 걸 알아차린다.
제시가 그에게 기대어 자고 있다. 잠든 채 숨을 쌔근거리면서, 다리를 움찔거린다. 보온 담요가 부스럭댄다. 한조가 제시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낸다. 손가락은 아직 뻣뻣하긴 하지만 온기를 나눠서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마 뼛속까지 시리지 않은 유일한 부위일 거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지? 그가 손을 잡은 건가, 아니면 제시가 먼저? 한조가 손가락을 구부려 본다. 그가 코를 찌푸린다.
곧바로 제시가 깨어난다. "흐어."
"통신기," 한조가 쉰 소리로 말한다. 소리가 목 안에 걸린다. 그의 현재 상태를 잘 말해주는 : 마르고, 지치고, 몸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듯한 음색.
"내가 받을게." 제시의 부츠가 바닥을 긁는다.
"아니." 한조가 일어난다. 고통이 동반된다: 그는 다음 48시간 동안 통증이 얼마나 심해질지 궁금해한다. 그는 코트 안에 몸을 웅크리고, 깜깜한 어둠을 뚫고 콘솔을 향해 걸어가, 통신기를 집어들고, 목을 가다듬고,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참으며 송신기를 켠다. "한조다."
"안녕하세요." 윈스턴이다. "확인 연락입니다, 몇 분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밤중인데도 진짜 정신없이 바빠서 말이죠."
"알겠다."
"괜찮으십니까? 눈 좀 붙이겠다고, 맥크리가 그러던데."
한조가 콘솔 위로 몸을 굽힌다. 그는 사실대로 얘기할지 고민한다: 춥고, 더럽고, 아프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불편하고, 60제곱미터도 안 되는 버려진 지하실에 갇혀 있는데 -- 그쪽은 어떻냐고. 그 대신, 그가 중얼거린다: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다."
“알겠습니다.” 윈스턴이 코를 킁킁거린다. 윈스턴의 목소리는 거의 그들만큼이나 피곤하게 들린다. “이쪽도 그러고 있습니다. 제 평생 동안 제일 많은 전화에, 영상 미팅에, 메일을 주고받고 있어요. 그래도 몸은 멀쩡하죠. 그쪽은 어떻습니까? 부상이 있나요? 저체온증이 제일 걱정되네요. 특히 한조, 당신이요.”
“쓰리고, 아프다.” 한조가 바람에 긁혀 난 어깨와 가슴의 상처를 긁지 않으려 노력한다. “수분도 부족해.”
“예상했던 대로군요. 메르시의 카두세우스 시스템을 보니 당신이 전투 중에 치유를 많이 받지 못했더라구요. 기록된 정보를 보니 딱 한 번 광선을 받았어요.”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공책을 넘겨 보듯 전투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가 그를 치유했다면 기억이 날 거라고 생각한다. 시뮬레이션 때 그 이상한 지팡이의 빛을 몇 번 맞은 적이 있다. 카두세우스 기술의 차갑고, 오싹한 냉기는 항상 그를 약간 불쾌하게 만들었다.
“듣고 계십니까?” 윈스턴이 재촉한다.
“그래.” 한조 뒤에서, 맥크리가 담요를 부스럭거린다.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응급치료 키트와 식량 두 세트가 있다. 지금은 식수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야.”
“정비실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마시지 마세요. 그 곳 정보를 찾아보니, 몇 년 정도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테나가 그 시설에 대해서 많이 분석해내진 못했지만, 방사능 때문에 환경 상태가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답니다. 지층도 제대로 보존되었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멋지군,” 한조가 한숨쉬며, 정비실의 검은 금속 벽을 흘끗 본다. “그 말은 우리가 이 안에서 전자파에 천천히 데워지고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이틀 정도로는 아무 문제 없을 거에요.” 윈스턴이 말한다. “맥크리는 어때요?”
한조가 어깨 너머를 본다. 총잡이는 일어나 있다. 그가 헝클어진 머리칼로, 하품을 하면서 두 팔을 머리 뒤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한조는 구겨진 갈색 셔츠 끝단을 본다. 맨살이 약간 드러난다 : 갈색으로 탄 피부에, 말랑말랑하고, 털이 거뭇한 아랫배. 한조는 돌아서서, 이를 꽉 물고, 손가락 끝으로 콘솔을 쿡 찌른다. “괜찮다.”
“후유증 같은 건 없나요?”
“없어.”
“알겠습니다, 좋아요. 지금까지 아테나가 습격자의 단서를 분석했습니다. 맥크리도 아까 보고해 준 게 있고요. 현재 시점에서는, 탈론에서 보낸 요원이었다는 추측이 꽤 그럴듯하네요. 사실, 정확히 누구였는지도 이미 알아낸 것 같습니다.”
“누구지?”
“‘리퍼’라는 이름의 암살자요. 제가 재소집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감시 기지를 습격했었습니다.”
“리퍼라.” 한조가 조소한다. 꼭 적들이 그렇게 바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나? 그가 어깨 너머를 본다 : 맥크리는 복도의 보조등 스위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방이 붉은 기가 도는 오렌지색 빛으로 밝아진다.
“네. 정말 위험한 녀석이죠. 저희가 갖고 있는 정보를 보면, 탈론 현재 멤버 중에 전(前)블랙워치 요원이 아주 많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리퍼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겁니다. 정확히 누구인진 아직 모르겠지만요.”
“흠.” 한조는 맥크리가 끼어들고 싶어하며, 가까이 오는 걸 알아차린다. 한조는 그를 곁눈질로 보며, 소리 없이 탈론이라고 말한다. 맥크리도 입모양으로 답한다: 썩을 놈들.
윈스턴이 계속한다. “그게 누구든 간에, 오버워치에 원한이 깊은 게 틀림없어요. 습격하는 동안, 아테나의 레지스트리를 해킹하고 전(前)오버워치 요원들 모두의 현재 위치를 다운로드받으려고 했어요. 그런 정보가 탈론 손에 들어가면, 그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간 사람들 전부 목숨이 위험했을 겁니다.”
“이 리퍼라는 자가 공격한 방식을 보면, 놈들이 이미 갖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도 생각해 봐야 할 거야.”
“그 부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윈스턴이 거칠게 한숨을 쉰다. “세 번째 발전기에 폭발물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어요. 리퍼가 설치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녀석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게 안전하겠죠.”
“잭은 어떻게 된 거야,” 맥크리가 한조 옆에서 지껄이며, 즉시 그를 짜증나게 한다.
윈스턴이 그걸 듣는다. “방금 제시였나요?”
“그래.” 그리고, 화를 내며 : “그 밖에 또 누가 있겠나?”
“죄송합니다, 그게 -- 아니, 당신이 맞아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당황해 콧김을 들이마시는 소리. “이 잭 이야기에 대해서는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직 모르겠네요. 메르시가 그 상황에 대해서 저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고 싶다고는 하는데, 만나서 직접 하고 싶답니다. 리퍼가 사용했던, 그 헬릭스 시큐리티 시스템이 탑재된 펄스 소총에 관련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좀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거라고 합니다. 잭이 비슷한 종류의 무기를 사용했던 적이 있나 데이터베이스를 훑어봤는데, 그런 기록은 없었 --”
“잭이 누구지,” 한조가 끈질기게 끼어들려 하는 맥크리를 손으로 가로막으며 말한다.
“음,” 윈스턴이 시작한다. “이걸 말하려면 완전히 역사 강의가 될 텐데, 아무튼 -- ‘잭’은 오버워치 리더, 우리가 존 모리슨이라고 부르던 사람이에요. 오버워치 창립자 중 하나였고, 오버워치의 첫 강습 사령관이었죠.”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잭이 6년 전, 오버워치가 해체되기 직전에 죽었다는 것도 아마 알고 계시겠군요. 스위스 본부가 폭파됐을 때요. 그 사람과 다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그렇군. 그리고 : 이 탈론 요원이 그의 무기를 갖고 있었다고?”
“아니오. 그게 문젭니다. 이 무기가 잭이 쓰던 것일 리가 없어요. 사티아가 그 소총이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프로토타입이라고 했습니다. 잭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생산되지도 않았어요.”
혼란에 빠져, 한조가 눈썹을 찌푸린다. 지친다. “연결점을 찾기 힘들군.”
“저도 그렇습니다. 메르시가 이 퍼즐의 빠진 한 조각을 갖고 있어요. 꼭 이 감시 기지에 돌아와야만 얘기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게 있다는군요. 이틀이나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을 꺼내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윈스턴이 키보드를 딸깍거린다. “그 안은 아직 안전합니까? 리퍼가 3미터 높이로 쌓인 눈을 뚫고 다닐 수는 없겠지만요. 게다가 바람까지 불고.”
한조는 리퍼가 용들에게 무릎을 꿇던 모습을 떠올린다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의 포효와 밴시 같은 비명. “그 녀석이 자초한 공격을 받고도 아직 살아 있다면, 남아있는 몸을 끌고 찾아온다고 해도 환영이다.”
“하. 바로 그 정신이죠.” 윈스턴이 힘없이 웃는다. “좋아요. 48시간만 버티세요, 친구들. 거기서 꺼내서 감시 기지로 데려와 드릴게요. 시베리아 팀은 아직 러시아 방위군과 함께 볼스카야에 있습니다. 이제 그쪽하고 연락해 봐야겠어요. 더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없다. 이쪽에서 상황을 판단하겠다.” 그리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 “겐지가 근처에 있나?”
“어, 아니오 -- 밤에는 쉬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여긴 지금 새벽 1시 정도 됐어요. 그쪽보다 5시간 빠르죠.” 윈스턴이 잠시 멈춘다. “뭐라고 전해 드릴까요, 아니면...?”
한조가 오른쪽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가능하다면 다음 교신 때, 직접 얘기하고 싶은데.”
“물론이죠. 아, 맥크리한테 말했지만 -- 4시간 간격으로 바꿉시다. 저도 좀 자야겠어요. 루시우나 토르비욘이 다음 교신을 할 겁니다. 안전하게 있으세요.”
“알겠다.”
한조가 통신기의 스위치를 끄고, 뭔가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제시에게 돌아선다. 그는 모든 대화를 하나하나 전달한다. 제시는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돼(hogwash)’라고 내뱉곤, 안젤라의 그 많은 망할 비밀들에 대해 뭐라고 투덜거린다. 그의 시선이 한조의 목을 향한다.
“망할,”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응급처치 해야겠어. 젠장, 살이 얼음에 다 찢어졌잖아.”
“물이 최우선 순위다.”
“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앉아 있어. 망할, 그 왼쪽 옆구리가 어떨지는 생각도 하기 싫군.” 제시가 응급치료 키트를 뒤져서 빨간 십자가가 박힌 푸른색 원통을 꺼내들고 돌아선다. “이게 있었네. 이걸 보고 이렇게 기쁠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한조가 실눈을 뜬다. “생체장 방출기로군.”
“맞아. 한두 시간 쓰면 피부가 좀 나아질 거야. 치유량이 작은 버전이긴 한데, 키트 하나에 두 개씩 들어 있어. 이걸 다 쓰고도 낫지 않으면 하나 더 쓰면 되겠군.”
한조가 물러선다. “메르시의 지팡이 같은 거냐?”
“비슷하지. 작동하는 동안 한 곳에 가만히 있어야 돼.”
“물을 --”
“나한테 계획이 있어. 일단 지금은, 이리 와.” 그가 턱을 까닥여 의자를 가리킨다. “앉아.”
한조가 자리에 앉는다. 맥크리가 엄지로 방출기에 달린 스위치를 누른다. 활기찬 금색 빛이 중심부에서 뿜어져나온다. 즉시 고통이 누그러진다. 오후의 태양빛을 쬐는 것 같은 기분이다.
“괜찮은 물건이지?” 제시가 방출기를 콘솔 가장자리에 고정시키며 묻는다. “그 지팡이도 이렇게 따뜻하게 치료해 주면 좋겠는데. 왜 주변 온도가 10도는 낮아지는 기분인지 모르겠어.”
방출기가 한조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동안 맥크리는 제어실을 돌아다니며 조사한다. 모든 물건에 키릴 문자 라벨이 붙어 있다: 그는 읽을 수 있는 영어 글씨가 쓰여진 물건들을 사용하기로 한다. 양동이, 컵, 휴지, 쥐가 갉아먹은 여벌 코트와 방한복. 진공 포장된 인스턴트 커피(좋은 것), 보드카 세 병(더 요긴한 것), 찌그러진 실내 난방기(찾아낸 것 중 제일 유용한 것). 응급처치 물품 보관함 안에서 의료 용품을 추가로 확보했고, 도구함과 보관함에서는 배터리 키트, 신호탄, 내열 테이프를 찾아냈다. 2년 전에 유통기한이 지난 가루 수프와 소스는 -- 식량이 적으니, 최후에 의존할 수단이라고 제시가 말한다. 보관함 하나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온다. 더 찾아보지 않기로 결정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근거다. 다른 보관함도 많으니까.
한조는 맥크리가 피곤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쾌활하다고 생각한다. 살아있어서 기쁜 것이겠지. 고마워하는 바보 녀석의, 착한 성격.
그들은 난방기를 보조 전원 장치에 연결한다. 계속 작동시켜 놓자니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아껴 쓰기로 한다. 주로 눈을 녹이는 용도로 사용할 거다. 제시가 잠금을 다시 풀고 출입구 문을 여는 데에는 15분 정도가 걸렸다. 아테나가 말한 대로, 문 근처는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다.
“루시우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가 눈이 가득 담긴 쇠 양동이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며 투덜댄다. “아마 저 자물쇠가 제대로 작동하게 할 수 있을 거야. 메인프레임을 고칠 수 있을지도. 전자 기기에 대해선 ¹⁾시정잡배들(ramblin’ wreck)보다 똑똑하니까.”
¹⁾ 조지아 공대생(ramblin’ wreck)
: 조지아 공대에서 부르는 노래 <Ramblin' Wreck from Georgia Tech>를 인용하는 말이다.
첫 가사가 “나는 조지아 공대의 시정잡배, 망할 엔지니어라네” 정도 되려나.
한조는 맥크리가 양동이를 난방기 위에 올려놓는 걸 지켜본다. 무거운 것을 다루는 데 선천적으로 익숙한 것처럼, 움직임이 능숙했다. 목장 일꾼 같다고, 그가 멍하니 생각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남부 말이야, 옴닉 사태 전에는 조지아에 공업 대학이 있었지. 거기 다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영재들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곤 했어. 아무튼 간에.” 맥크리가 턱을 젖힌다. “루시우는 거의 뭐든지 해킹할 수 있어. 분명히 아테나가 가끔씩 그 녀석 때문에 불안해할걸.”
그들은 난방기에 녹은 미적지근한 물을 컵에 담아 마신다. 한조는 그가 식은 차를 마시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벌써 쓰라리게 튼 피부가 나아지는 느낌이다. 피부에 난 상처가 생체장에 완화된 거다. 맥크리가 가까이 다가앉아, 광선을 함께 쬔다. “그거, 빼서 닦아야 하지 않아?” 맥크리가 턱으로 한조의 다리를 가리키며 묻는다. “의족 말이야.” 한조가 종이컵을 홀짝이며 대답한다. “이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
맥크리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래?”
“버팀대, 무릎 보호대, 금속판 몇 개는 떼어낼 수 있지만, 나머지는 내장형이다. 인공 부품과 생체 조직이 얽혀 있지.”
“아, 그렇군.” 맥크리는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내 건 분리해야 할 거야” -- 그가 기계 팔을 들어보인다 -- “부품 몇 개는 교체해야 돼. 메르시가 임무 전에 손목 부분 상태가 불안정해 보인다고 했거든.”
한조가 컵 너머로 제시의 팔을 훑어본다. 예전에 그 의수를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다: 분할된 철판, 미세하게 부식된 관절부, 팔 위를 덮은 요란한 해골 그림. 뒷골목 의사가 대충 만든 싸구려 물건이다. 시마다 가문에 고용된 싸움꾼들이 종종 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것. 조직 심볼이나 문신 도안으로 장식된 의수. 그의 다리에 정교한 솜씨로 이식된 기계와는 전혀 달랐다. 그 바보 녀석이 어쩌다 의수를 달게 되었다고 했지? 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날아갔다고 했다. 한조는 그게 사실일지 의문해 본다. “그 여자가 그렇게 신경을 썼으면, 새 걸 하나 달아줬겠지.”
“그래. 그럴지도.”
“넌 규칙적으로 그 팔에 대해 불평하는데, 왜 더 나은 걸 쓰지 않나?”
“왜냐하면 비싸니까?”
“교체 비용을 오버워치가 내주지 않는 거냐?”
“오버워치에 짐을 지워주기 싫어서 그래. 지금까지 나한테 많은 걸 해줬거든.”
“강화된 의수로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텐데. 그 점을 개선하면 오버워치의 짐은 오히려 줄어들 것 같군.”
맥크리가 컵 너머로 건방지게 혀를 찬다. “어쩌면 내가 이 멋진(cool) 금속 손이 맘에 드나 보지.”
한조가 눈을 굴린다. “더 멋진 걸 가질 수도 있을 거다.”
“왜 네 멋진 금속 다리는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그럴 필요 없다. 오르고 점프하는 데 특화된 기술로 만들어진 의족이야. 외장과 강화된 근육이 결합되어서, 신체 능력은 향상되고 피로와 손상은 줄어들지.”
맥크리가 감탄하는 눈으로 한조의 발목을 쳐다본다. “Well, 그거 참 고급지군.”
“보통의 뼈와 관절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게 충격을 더 잘 흡수하지.”
“의족은 어쩌다 하게 된 거야?”
한조가 멈추고, 맥크리를 매 같은 눈으로 노려본다. 그는 방금 보이지 않는 선을 넘었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시마다 가문이 치료하고 강화했지.”
“어이쿠.” 맥크리 빈 컵에 대고 중얼거린다. “제법 심했나 보군.”
“부상이 상당히 심각했지.”
“상대방은 더 심각했을 것 같은데.”
한조가 천천히 컵을 내린다. 그가 턱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고, 콧구멍으로 숨을 내쉰다. 심기가 불편한 용. “다른 이야기를 해라.”
맥크리가 턱을 긁는다. “실수했군.” 그가 물을 꿀꺽 넘기고, 몸을 구부려, 부츠를 내려다본다. 야단맞은 사냥개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어, 탈론. 윈스턴이 얘기한 것 같은데, 탈론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약간. 잘 알진 못한다. 테러리스트지.”
“맞아. 내가 휴스턴으로 가는 기차 타고 있을 때 얘기 기억나? 예전 블랙워치 교본대로 행동하던 거?”
“그래.”
“정말로 탈론이 블랙워치 깡패들을 한 무더기 고용한 것 같더군. 기차에서 만난 놈 몇은 날 알아보는 것 같았어.”
“이 리퍼라는 놈도 널 알아본 것 같았다. 내가 공격하기 전에, 널 보고 싶어했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
맥크리의 어깨가 떨리며 움찔한다. “빌어먹을. 진짜로?”
“그래.” 그가 컵 안에 대고 대답한다. 용이 꿈틀거린다. 지금도 보고 싶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진짜 소름끼치네. 블랙워치를 나가고 나서 매일매일이 즐거웠다고.” 그가 한조를 흘끗 본다. “그 얘기도 해줬어. 맞지?”
“인간성을 저버린 지휘관과 너의 도덕심 때문에 블랙워치를 나갔다고 했지. 네 스승이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목소리가 딱딱하게 들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다리 대부분을 잃어버렸던 그 전투에 대해 농담을 듣는 걸로 충분했다. 녀석이 문 앞에서 울며 이름을 부르던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시간을 쓰진 않을 거다. 아나. 한조의 가슴 깊숙한 곳을 탐욕스럽게 갉아먹는 그 단어.
“그래.” 맥크리가 계속 턱수염을 만진다. “레예스가 그 요원들을 뒤틀린 길으로 인도했지. 망할: 이 리퍼 친구, 그 샷건 하며, 완전히 게이브 책에서 몇 페이지를 뜯어낸 것 같구만.” 그의 목소리에 무딘 날이 선다 : “게이브는 항상 신발에 피가 튀는 걸 좋아했지.”
“통제권을 쥐는 걸 좋아했군.”
“아, 맞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 같았지. 우린 뒤에서 몰래 ‘레예스 임금님(King Reyes)'이라고 불렀어.” 그가 말을 멈추고, 조소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순간 처량해 보이는 모습으로. “왕좌에 앉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리더는 아니었잖나.”
“그래. 그래서 잭이랑 문제가 좀 있었어.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같은 거였지.” 맥크리가 머리를 쓸어넘긴다. “잭하고 게이브는 오버워치 창립자로서 조직 운영할 때 항상 먹이사슬 맨 위에 있었지만, 게이브는 넘버 원(numero uno)이 되고 싶어했지. 오래 전에 잭이 사령관이 됐을 때는 뒤통수를 맞고 공을 가로채인 것 같다고 느꼈었고.”
“흠.” 한조가 물을 삼킨다. “어리석은 판단이군. 라이벌 관계인 두 사람이 그렇게 강력한 조직을 운영하게 하다니.”
맥크리가 옅게 웃는다. 그의 웃음은 뭔가 아쉬움 같은 걸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라이벌이 아니었어. 절친한 친구였지.” 코웃음. “젠장, 그것보다 더했어.”
한조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더했다고?”
“솔직히, 사실혼 관계나 마찬가지였어. 장교 사관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그 강화군인 실험을 거치면서, 둘 다 진짜 강해졌지. 그러다 보니 유대감 같은 게 생긴 거야, y'know? 그런 개 같은 걸 함께 겪으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고.”
“알겠다. 그래도 어리석군. 일하는 곳에서 그런 관계를 맺으면 일이 복잡해지지.”
맥크리가 고개를 떨군다. 목소리에서 건조한 우수가 느껴진다. “솔직히 말야, 시마다, 난 그게 그들이 같이 일하게 한 유일한 요소라고 생각해. 그게 목숨을 살려주진 않았지만, y'know, 잘 될 수도 있었어.”
“잘 되지 않았다니 유감이군.” 한조가 전혀 유감스럽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
그들은 생체장 안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눈다. 제시는 폐소공포증이 생길 것처럼 비좁은 공간을 신경쓰지 않는다: 현상금 사냥꾼들에게서 도망치며 숨어다녔던 은신처가 떠오르는 장소다. 한조는 열린 하늘과 바람을 선호한다: 그는 하나무라 성의 높다란 천장과, 두꺼운 기둥과 장대한 탑에 대해 말해준다. 그 성이 가문 대대로 내려왔다는 것도. 제시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곳에 줄지어 있던 낮은 층수의 공동 주택들과, 갱단에 있을 때 살던 가축우리 같은 방과, 맛없는 저녁 식사와 타코 트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한조는 그에게 스페인어를 몇 개 시켜본다: abrigo(코트), tengo hambre(배고프다)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hace pinche frio(더럽게 춥다)는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 cojones(고환), cochino(호색한), el es cariñoso(사랑스럽다)도 마찬가지다. 맥크리는 마지막 단어를 말하면서 씩 웃는 걸 멈추지 않는다. 뭔가 천박한 말인 게 틀림없다.
대화의 주제가 따뜻한 것들로 바뀐다. 제시는 계피가 들어간 코코아와 사막의 쏙독새, 그리고 높이 뜬 노란 태양 아래를 달리는 줄무늬 로드러너 새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하며 공상한다. 한조는 코나의 모래 해변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사업상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을 때, 형제가 해변에서 물장난을 치며 노는 걸 시마다 가문 부하들이 지켜본 장소다. 공통점도 발견한다 : 둘 다 한쪽만 프라이한 반숙 계란을 좋아한다는 것. 비록 제시는 식당 메뉴에 파이가 있으면 그걸 아침으로 시키는 부류이긴 했지만. 그는 한조에게 거의 사람처럼 생긴 사구아로 선인장 모양에 대해 얘기해 준다. 고속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동안 동전처럼 반짝이던 캘리포니아 양귀비 꽃에 대해서도. 한조는 되새와 사슴 한 무리, 옴닉 기지를 덮고 있던 보랏빛 꽃들을 기억해낸다. 제시가 미소짓는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예뻐. 남부 지방에선 덩굴은 유해 식물이다.
한조는 주변에 주의를 분산시킬 만한 게 없어지자 총잡이를 관찰하는 게 너무 쉬워서 놀란다. 이런 환경에서는 주목할 만한 다른 곳이 없다. 빛은 어둡고, 적나라한 주황색이다 -- 검은 밤하늘 저편에서 떠오르는 태양빛 같은 색. 기분 좋게 큰 맥크리의 존재감이 방 안을 채우며, 한조의 눈 안에 들어와, 초점을 빼앗는다. 그가 생각 속으로 넘쳐 들어온다. 여기 우리가 있군, 단둘이.
그는 그게 싫다. 너무 가깝고: 너무 따뜻하다. 숨을 곳이 없다.
마침내 한조가 컵을 내려놓는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관절이 더는 아프지 않다. "씻으러 가야겠어."
맥크리가 담배를 다시 말다가 그를 올려다본다. "뭐라고?"
그가 양동이를 가리킨다. "물. 이제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가 손목에서 머리끈을 풀어낸다. "샤워실에 있겠다."
"아, 그래." 맥크리가 등을 구부리며 손에 쥔 컵을 몸 가까이 붙인다. "그래도, 씻기엔 너무 춥지 않겠어?"
한조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물 양동이를 들고 복도를 걸어내려간다. 샤워실의 미약한 불빛이 벽을 어두운 푸른색으로 물들인다. 한조는 세면대 옆 바닥에 양동이를 놓는다. 맥크리가 옳았다 : 얼어죽을 것 같다.
한조는 오비를 풀고, 궁도의를 벗고, 두꺼운 삼각형 모양으로 머리끈을 접어 가장자리를 미지근한 물로 적신다. 천천히, 공을 들여, 가능한 한 철저히, 궁수는 치유된 피부를 닦는다. 팔, 어깨, 목을 씻고, 귀 뒤를 꼼꼼히 문지른 후에 세수까지 한다. 하얗게 김이 낀 벽거울에 가슴과 복부를 닦아내는 희미한 윤곽이 비쳤다가 사라진다. 부서진 찬장 안에는 포장된 비누가 하나 들어있다. 싸구려 여관 화장실 같은, 체리와 인공 아몬드 향이 났다. 지금 당장은 천국같이 느껴지는 향. 뭐라도 이 땀과 피 냄새를 씻어낼 수 있기만 한다면.
한조는 조심스럽게 다리 보호대 끝부분에서 바지 천을 풀어낸다. 볼트 4개를 누르자 찰칵거리며 금속 판이 무릎에서 떨어져나온다. 그는 금속 판 조각들을 화장실 선반 위에 나란히 둔다. 그는 체계적인 손놀림으로 무릎 아래의 충격 흡수판을 풀고, 종아리를 감싼 외피를 벗긴다. 모든 부품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몇 개는 남아 있는 조직에 튼튼하게 꿰매져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을 씻을 수는 있다. 특히 종아리 위의 비교적 부드러운 부분들. 굳은살 박힌 뒤꿈치와 인공 발이 가장 창백했다. 구부러진 발가락을 둘러싼 아치형 구조의 금속부.
겐지가 베어낸 부분이다. 검과 수리검으로 깊은 상처를 낸 곳. 그의 검 아래에서 몸부림치며, 필사적으로 울부짖으며 형제의 피 흘리는 다리를 베었던 곳. 하나무라의 찬 바람 부는 봄날 밤이었다. 낡은 성에는 코이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한조는 몸을 씻으며 겐지를 생각한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전투하는 동안 지켜보고 있었을까? 그랬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선을 다해, 한조: 그 열의 없이 에둘러 말하는 격려. 너무 다정하고 동시에 너무 충분치 못한, 그 얄팍한 확신. 차라리: 무사히 돌아와. 아니면: 형이 해낼 거라고 믿어. 라는 말은 안 되었던 걸까.
그가 드러난 허벅지의 맨살을 닦아내며,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자기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전투 후의 개인 병실에서였다는 걸 기억해낸다. 초록색 옷을 입은 쇠약한 시마다 가문 장로가, 침대 머리맡을 맴돌며, 망가진 다리를 재건하는 수술을 승인했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정중한 웃음을 지으면서. 새로운 군주께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시는군요.
한조는 피부에 비누를 둥글게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린다. 어둑한 빛이 깜빡인다: 양동이 안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를 남기며 흩어진다. 살아 있는 새라도 삼킨 것처럼 뱃속이 분노로 요동친다.
이 장소는 한조에게 위험하다. 그는 음울한 과거를 회상하는 걸 두려워했다. 그 끝없는 나선 속으로 떨어질 시간 따위는 없다 -- 그를 나약한 잉어처럼 아래로 쳐내리는 거센 강물 같은 기억. 이 곳에서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고, 생각은 너무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장소에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고여서 썩다가 죽을 뿐이다. 한겨울의 잿빛 강처럼, 얼어붙어서.
48시간. 그 시간을 무사히 보내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겐지에 대한 오래된 생각도, 의심도, 뒤늦은 추측도 더는 안 된다. 해묵은 절망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복도에서 소리를 들었을 때 물은 거의 차가워져 있다: “이봐, 한-조.”
퐁당. 그가 머리끈을 양동이 안에 빠뜨린다. “뭐냐.”
“괜찮아?” 목소리의 거리로 봐서, 맥크리는 문 근처에 있다.
“그래. 들어오지 마라.”
“들어갈 생각 없었어. 그냥 확인하는 거야.” 작은 투덜거림. “빌어먹을, 여기 정말 추운데.”
“시베리아 지하, 눈보라 한가운데다. 또 뭘 기대했나?”
“눈사람 만들 기회는 있을 줄 알았지.”
한조는 머리끈을 물에 잠긴 채로 둔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한번 해 봐라.”
“아마 잘 하지도 못할 거야. 겨울이 많이 추운 지역에서 자라지 않았거든. 저게 내 평생 본 것 중에 제일 많은 눈일걸.”
한조가 이를 꽉 물고, 양동이 안을 쏘아본다. 저 바보 녀석이 씻는 동안 계속 문 앞에 느긋하게 서 있을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냐.”
“콜로라도 근처에는 눈이 오는데, 그걸 보러 가진 않았어. 우리 같은 갱단한테는 너무 호화로운 곳이었지. 타호를 지나갈 때 산 위에 쌓인 건 본 적 있는데...”
멋지군: 입술을 나불거리며 계속 저러고 있을 생각인 게 분명하다. 한조는 그를 쫓아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가시 돋힌 말을 뱉기로 한다. “확실히 텍사스에는 눈이 많이 안 왔을 것 같군.”
“남부라고,” 맥크리가 헐뜯는다. “남서부. 젠장, 시마다, 언제 그 텍사스 놀이 그만할 거야? 내가 거기 출신 아닌 거 알잖아. 충분히 말했는데.”
“어떻게 잊겠나. 항상 얘기하는데.”
그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세며 예전에 머물렀던 은거지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산타페는 텍사스가 아냐. 뉴올리언스는 텍사스가 아냐. 아틀란타는 텍사스가 아냐. 샌프란시스코는 -- well. 어떻게 그게 텍사스가 아닌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날 방해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양키 씨?”
낮은 조소. “방해한다고.” 제시는 아직도 그 별명을 싫어한다. “아니.” 그리고, 약간 거짓말하듯 :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아서 그래, 자기(sweet pea), 저 밖에서 조용히 있는다고 좋을 게 있겠어.”
한조가 뒷목을 닦는다. “여기 있는 동안은 사생활을 좀 존중해라.”
“Well, 그래, 그건 그렇지만. 여긴 우리 둘뿐이잖아.”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달라질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제시의 목소리가 감정으로 들끓는다. “우리가 달라지게 할 수도 있겠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냐?” 한조가, 그게 무슨 뜻인지 완전히 아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 알잖아.” 제시가 라이터를 켠다. 찰칵찰칵.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몇 일 말이야.”
한조의 생각이 그 바보 녀석의 숙소 방으로 빠진다 : 콘솔 의자, 담배 키스, 매끄러운 살결. 임무가 시작됐을 때부터 그가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것. 이제 그를 떨게 하는 건 추위뿐만이 아니다. “경계 태세를 낮출 시간이 없다. 아직도 상황은 위험해. 언제라도 더 나빠질 수 있어.”
“더 좋아질 수도 있어,” 제시가 가르랑거린다.
“그 말을 의심한다고 해도 날 용서해야 할 거다.”
“내 말 좀 들어주고, 그렇게 안달하는 것 좀 그만한다면 용서해 주지.”
“할 일이 얼마나 없든지 간에,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
“시간 때울 아이디어 몇 개 있는데.” 맥크리의 말은 노래하듯, 관능적이고 부드럽다. “보드카 한 병 마시고, 불 끄고. 히터는 꺼도 돼.” 그 낮은 목소리. 꿀처럼 달콤한.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또 그 침실에서처럼 말이지. 한조는 공격받았다고 느껴야 할지 흥분해야 할지 헷갈렸다. 이 굴 속에서까지 같이 자길 원할 정도로 욕정이 큰 건가? 눈앞의 위험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그쪽에 피가 쏠리는 건가? 물론 맥크리는 더러운 침대에서, 얼음과 먼지에 둘러싸여, 음식과 탄약과 보급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흐트러지고 싶겠지. 테러 조직에서 나온 유령 같은 암살자가 아직도 뒤를 쫓고 있을지 모르는데도. 리퍼가 그들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떠돌이 옴닉들에게 발견당할 수 있다. 로봇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추위에 죽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스릴 아닌가, 이 위험한 친밀감이? 이 곳에서 달리 해야 할 일도 없고, 아직도 바깥에 쌓인 눈만큼이나 두터운 욕망이 목구멍을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총알과 화살뿐이었으니, 이제 침대에 같이 눕는 건 어떤가? 더 우호적인 불꽃으로 취하는 걸 반기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한조의 옆구리에 돋은 소름을 짜증이 휩쓴다. 이곳 : 침0대도, 창문도, 자연 광원도 없는 지하 정비실에서. 그는 어색하고, 선정적인 각도로 그들이 한데 뒹구는 걸 상상한다 -- 팔다리와 피부가 땀으로 더럽혀져, 벽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바닥으로 서로를 밀어붙이는 것. 확률적으로 자외선에 목욕하면서.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는 거의 세면대를 걷어찰 뻔한다.
“제발, 시마다.” 제시가 복도에서 느릿하게 말한다. “내가 갚아줄 빚이 있잖아.”
한조가 혀를 찬다. “내게 갚아줄 빚 같은 건 없다.”
“난 널 기분좋게 해줄 의무가 있다고. 어제 창고에서 말한 거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어제. 한조는 지금과 볼스카야의 얼어붙은 강 사이에 천 년쯤 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넌 정말 말이 많군.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많아.”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그렇지, sweetheart.” 맥크리의 목소리는 설탕과 연기로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나 지난 밤에 내게 보여준 친절을 생각하면.”
“그걸 친절이라고 부르다니.”
“‘핸드잡(Handjob)’. 남자에게 정말 잘해주는 것을 일컫는 일곱 글자 단어.”
너무 천박해! 그는 눈을 굴리며, 머리끈을 짜 물기를 뺀다. “꼭 지금 이 얘기를 해야 하나?”
“그 얘기를 할 더 좋은 시간도 없어.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우릴 방해할 팀이나 임무도 없고.” 한조가 대답하기도 전에, 제시는 사냥개처럼 숨을 내쉰다. “알겠어, y'know. 귀찮게 졸라대는 게 맘에 안 드는 거지. 그래도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어. 이 문제를 얘기할 다른 방법도 있지.”
한조가 목욕을 마칠 때 -- 찰칵, 찰칵 -- 라이터 소리가 한 번 더 들린다. 그는 다리를 다시 조립하고, 옷을 입고, 머리끈을 짜내고, 배수구로 더럽혀진 물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축축한 금색 천으로 다시 머리를 묶고, 밖으로 나간다. 맥크리는 복도 벽에 기대 서 있다: 머리는 빗었고, 셔츠는 바지 안쪽으로 밀어넣어져 있고, 덧대 입는 가죽 바지와 가슴 보호대는 없다.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씹고 있다.
그들이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다. 총잡이의 진흙색 시선 안에서 미지근한 갈망이 깜박거린다. 한조는 당황스러움을 꾹 참는다. 그의 일부는 그 바보 녀석이 셔츠를 풀어헤치고 음흉하게 웃으며 인사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기엔 너무 춥지.
“기분은 좀 나아?” 제시가 말한다. 그리고, 아쉽다는 듯 아, 하고 탄식한다. “머리 올렸네.”
“눈을 더 녹여야 해.”
“물론이지.” 제시가 박차를 철컥거리며 그에게 다가오고, 한조가 물러나자 한 번 더 다가선다. “이봐.”
“날 지원해라.”
“그러려고 하는 거야, sweetheart."
“날 지원하라고.” 한조는 제시가 가까이 와서 그 큰 손을 어깨에 올리도록 놔둔다. “식량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해. 더 머물기 좋도록 이 장소를 정리할 필요도 있다.”
제시가 용 문신을 쓰다듬는다. “하지만 너도 원하잖아, darlin'.” 그의 미소는 부드럽고, 유혹적이다. 사실상 깨물어 달라고 부탁하는 셈이다. “널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더 따뜻해진 기분인데.”
한조가 맥크리에게 양동이를 거칠게 내민다. “가자.”
맥크리가 웃음을 터뜨린다. “Ooh, darlin', 먼저 가” -- 한조가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른다 -- “oof, 이봐” -- 그리고 그를 지나쳐서 -- “시마다, 하-하, 있어 봐, 저기” -- 제어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제시가 양동이를 들고 느긋하게 따라간다. “좀 기다려.”
한조가 보급식량 한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점검한다. 진공 포장된 음식 양은 한조가 얼마간 버티기엔 충분했지만, 맥크리는 이 양으로 만족하지 못할 거다.
“한-조오,” 제시가 그의 뒤에서 거친 목소리로 부른다. 그가 큰 두 팔을 한조의 가슴에 두른다. “나하고 말도 안 할 거야.”
“다음 이틀간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이 음식을 나눠야 해.”
까칠거리는 턱수염이 한조의 목을 문질러, 몸을 떨게 한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건 너뿐이야.”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개자식. “네 물건 대신 위장이 결정을 내릴 때쯤에는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될 거다.”
“아, Darlin.’” 이제 총잡이는 그의 등을 안고 감싸며, 덥수룩한 턱을 한조의 어깨에 묻는다. 그의 체취: 흙 같고, 강렬한. 땀과 황무지 냄새. “빌어먹을, 왜 이렇게 차가워. 소름도 돋았네.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맥크리.” 한조의 신경이 팽팽해진다. 거의 한계다.
제시가 오른손을 한조의 궁도의 안에 찔러넣고, 가슴을 쓰다듬으며 엄지로 왼쪽 유두를 애무한다. “그 벽 위에 있을 때 어떻게 가슴이 얼어붙지 않는지 항상 궁금했어” -- 그는 한조가 뒤로 손을 뻗자 신음한다 -- “hey, hey, heeey ” -- 그리고 손가락이 가랑이 사이의 커다란 것을 꽉 쥐자 -- “woo, honey, 하-하, 조심해, 소프라노 목소리 나오겠어.” 하지만 맥크리는 한조가 손바닥으로 그를 쓰다듬고, 천 위로 그것을 쥐자 몸을 굽히며 무너진다. 한조는 그 깊은,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를 즐긴다. 총잡이가 손 안으로 그것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도.
제시가 그의 어깨에 키스하며 중얼거린다. “Aw, hell.”
한조의 목소리는 작고, 낮고, 건조하다. “그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아닌가?”
“계속 거길 만져주면 천국이 될 거야.”
“바보는 어느 가축우리라도 낙원처럼 느낄 것 같은데.”
“떠돌이 인생은 외로워, darlin’. 빌어먹을, 그 많은 밤들을 너 같은 사람과 보낼 수 있었다면 뭐든지 했을 거야.”
“나 같은 사람이라.”
“그냥 너.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어.” 이제 그는 집요하게 손 안을 문지르고 있다. “젠장, 너 때문에 너무 꼴려. 다른 누구도 이렇게 원한 적 없는데.”
“그래?”
“단 한 번도. Hell, 그냥 네가 방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서 버려. 시뮬레이션 하면서 항상” -- 한조가 콘솔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벨트에 엄지를 걸고, 바지 허리춤을 끌어당길 때 제시의 숨이 최고조로 가빠진다 -- “네가 달리고, 벽 오르는 걸 봤어. 자리에 앉아서, 그래야 하는 것보다 더 오래 보고 있었지.”
“날 봤다고.” 한조는 거의 의기양양해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그런 걸 원해?” 제시가 입술을 핥는다. 황홀함이 일말의 죄책감과 함께 엄습한다. 그렇다, 그래 -- 그걸 원한다. “그 날 밤 엘리베이터에서는 너무 꼴려서, 끝나고 바로 자위했어.”
그래: 1번 훈련장 샤워실에서의 그 밤. 술에 취해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후 거의 키스할 뻔했던 밤. 한조는 제시의 폭 넓고 두터운 입술에 대해 생각하며 절벽 위에서 술이 깼던 걸 기억해낸다. “적에게 가슴을 끓이다니 안됐구나.”
“넌 내 적이 아냐, darlin’. 그건 오래 전에 끝났어.” 제시는 불꽃과 욕정으로 가득해, 귀 끝까지 달아올라 있다. “지금, 넌 내 거야.”
벨트 버클이 풀리며 찰카닥거린다. 제시가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꾹 쥐고, 행복감에 어지러워한다. 한조가 그 눈을 보니, 총잡이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길들여진 짐승. 파블로프의 카우보이. 누가 누구의 것인지 알게 될 거다.
막 바보 녀석에게 버릇을 가르치려던 참에 통신기가 울린다. 제시가 품위 없는 신음을 내뱉는다. 그가 한조의 머리끈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춘다. 끈이 풀리기 전에 한조가 홱 비켜서며, 방을 가로질러 삑삑거리는 통신기로 향한다. 제시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는다. “하필 빌어먹을 지금이야.”
한조가 통신기를 귀에 꽂고 교신을 위해 손가락을 갖다댄다. “한조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답한다. 고지식하고 경쾌한 톤이다. “시메트라 연결. 사티아 바스와니입니다.”
분노로 시야가 홱 돌아버린다. “뭐라고.”
“예정에 없던 연락이라 죄송합니다. 윈스턴이 당신과 맥크리 요원에게 오버워치와 UN 상황에 대한 브리핑 내용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토르비욘과 루시우 요원은 네트워크 방화벽 문제 때문에 연락을 할 수 없었 --”
“이 통신선 사용 허가를 누가 내줬지?” 한조가 소리친다. “왜 아직도 감시 기지에 있는 거냐?”
사티아가 물 흐르듯 대답한다 : “오버워치 부활에 대해 상당히 많은 반응이 있어 제 비슈카르 대변인 지위가 연장됐습니다. 이 연락과는 관계없는 내용--”
“아니.” 한조가 발끈 성을 낸다.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당신이 믿고 말고는 관계없어요. 전 사실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전 공식적 오버워치 부활에 대한 상황 브리핑을 전달하기 위해 연락한 거에요.”
“네가 감시자도 없이 이 통신선을 쓰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렇지 않아요. 당신들 AI가 모니터링 중입니다.”
“상관없어. 다른 요원과 말하고 싶다.”
사티아가 브리핑을 전달한다. “UN이 공식적으로 모든 오버워치 요원들을 고발했어요. 시베리아에서의 임무 활동이 페트라 조약의 직접 위반으로 간주됐죠. 우리가 합의한 대로, 비슈카르 사가 방어 선언을 했습니다. 대중의 반응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고요.”
“다른 요원을 연결해.” 맥크리가 그를 잡는다: 그가 뿌리친다. 맥크리가 놀라 낮게 신음한다.
한조가 말을 한 적도 없는 것처럼, 그녀는 계속한다. “러시아 정부 공무원들도 방어 선언에 합의하도록 로비했습니다.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시베리아 임무에 대한 시민 반응이 좋아요. 뉴욕에 있는 UN 본부에서 긴급 공청회가 열렸고--”
“그만!” 한조가 으르렁거린다. “겐지는 어디 있지?”
그녀가 멈춘다. “겐지 요원의 상태나 위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군요.”
“다른 요원과 연결을 요구한다. 내 동생을 연결시켜.”
그녀의 목소리에 아주 작은 짜증의 흔적이 묻어난다. “겐지 요원의 상태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아는 바가 없어요. 차라리 바로 연락해 보시죠. 제가 말한 대로 --”
“아니. 끊겠다. 괴물 같은 놈들에겐 참아주는 척할 필요도 없지.”
사티아가 약간 목소리를 높인다. “당신의 사견이 어찌됐든, 한조 요원, 비슈카르 사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가장 정교한 과학 기술을 개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
“인간으로 실험을 하는 것들에게 인류가 무슨 의미가 있지!”
모욕당한 것을 그녀가 되갚는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말 지독한 상상이군요. 인체 실험은 우리 기준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비도덕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게 큰 오해를 하고서 참아주고 말고를 논하다니 --”
“그 썩은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우리 기지에 침입했을 때 들었어.”
“진실이 당신 편견을 방해할지 몰라도, 한조 요원, 그렇다고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에요. 확실히 말하는데: 비슈카르 사는 절대로 그런 야만적인 실험을--”
“시료번호 1193.” 그가 한 음절마다 힘을 주며 내뱉는다.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해.”
침묵. 사티아가 대답한다. “뭐라고 하셨죠?”
“1-1-9-3. 이게 무슨 뜻이냐.”
“숫자의 나열이죠. 본사 분류 시스템의 --”
“네놈들이 겐지를 데려가려고 했어. 너희 요원들이 ‘귀중한’ 실험 재료라고 했다. 내 동생을 산 채로 잡기 전에 그 번호로 지칭했지.”
“이 연락에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
“동물처럼 그물로 잡아가려고 했다. 특수한 총도 있었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이 귀로 직접 들었어!” 한조가 송신기에 대고 격분한다. “시료번호 1193.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해라, 비슈카르. 내 동생을 가지고 실험을 하려 한 게 아니라고 말해 봐라.”
반응이 없다. 기계가 치직거리는 소리가 배경으로 들린다. 윈스턴의 연구실에 있는 게 틀림없다. 사티아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을 때, 한조는 그녀가 화가 난 건지 당황한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아마 둘 다일지도. “오해하신 겁니다.” 빠르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시료번호 1193은 프로토콜 상 비적대적 생물체로 지정되어 있어요. 비슈카르 동물학 연구소에서 지브롤터의 파충류 수집을 요청한 건에 관련해서요.” 이제 목소리에서 뚜렷한 혼란이 감지된다. “높은 우선순위도 아니었어요. 잘못 들으신 게 분명합니다.”
“이 귀로 직접 들었다.” 한조가 몸을 굽힌다. 치명적으로, 공격 태세를 갖추고. 그녀가 몇천 마일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다. 시마다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는데: 내 동생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기만 해도, 땅 끝까지 쫓아가서 널 찢어버리겠다.”
침묵. 한조가 숨을 내쉬고, 몸을 떨며, 콘솔 모서리를 무섭게 쳐다본다. 맥크리는 근처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놀란 상태다.
사티아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차갑게, 모든 단어를 숙고하듯 대답한다. “잘 알겠습니다.”
“겐지를 연결하지 않으면, 끊겠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저는 현재 위치를 모르--”
한조가 통신기를 끄고, 콘솔에 집어던지고, 돌아선다. 그는 빠르게, 통증을 수반하는 숨을 들이마신다. 모든 신경과 근섬유가 불타는 것 같다.
그의 뒤에서, 맥크리가 지껄인다. “도대체 뭐야?”
“그 건축가다.”
“바스와니. 그래. Shit, 정말 안 좋은 것 같던데.”
“나한테 브리핑을 하려고 했어. 윈스턴의 요청으로.”
“윈스턴이 요청했다고?”
“우리 통신선을 쓰도록 허가를 내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여자가 쓸 수 있는 마지막 통신선이 있다면 그게 우리 통신선이야.”
맥크리가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긴다. 아직도 버클이 풀려 있는 바지가 허리춤에 헐렁하게 걸려 있다. “Well, 임무 중에 갑자기 끼어들기도 했잖아. 우리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이 일이 잘 풀리길 바랐던 것 같군.”
한조가 불평한다. “그 여자가 내 동생 근처에 가지 않아야 하는데.”
“그 시료 어쩌구 하는 일 때문에?”
“내가 잘못 들었다고 했어. 거짓말인 게 분명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도 기억하지. 그 이유 말고 무엇 때문에 겐지를 목표물로 삼았겠나?”
제시가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고, 혼란스러워하며 콘솔 근처에 머문다. 벨트 버클이 허벅지 근처에서 반짝거린다. “음. 복수?”
“그 여자가 거기 있는 이상 감시 기지는 안전하지 않아.” 한조가 씩씩거리며 이를 악문다. 그가 폭풍처럼 맥크리를 지나쳐, 금속 양동이를 들고, 층계참에 의자로 친 바리케이드를 뛰어넘는다. 맥크리가 바지춤을 치켜올리며 내뱉는다.
“어디 가?”
“물을 더 가지러.”
“그래, well” -- 총잡이가 계단을 오르는 한조를 부른다 -- “어, 다 하면 꼭 여기로 돌아와야 돼.” 한조에게 갈 곳이 더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문에 도착해, 자물쇠와 전기선을 만지작거리며 4분 정도 헤매다가 결국 잠금을 풀어낸다. 눈더미를 퍼내고 나서, 그는 문을 잠그고 층계참으로 다시 내려와 꺼진 난방기 위에 양동이를 올려놓는다. 그가 딸깍 소리를 내며 난방기를 켠다.
“중간에 방해를 받다니 안타깝네,” 맥크리가 중얼거린다.
“침대 만드는 걸 도와라.”
맥크리가 흥미를 보이며, 귀를 쫑긋 세운다. 아직도 원하고 있는 거다. “그래.”
총잡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조는 충전재로 사용할 것을 모아서 (남는 코트, 바람막이, 빈 도구 가방, 기름때 묻은 방수 천) 방 한가운데에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초라한 침대를 하나 만든다. 한조는 핸드셋과 파란색 이어폰을 가지고 거기 누워, 고요함을 찾아 떠나버린다. 그는 맥크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지 않는다: 실망했을 거라고 상상할 뿐. 신경쓰지도 않는다.
“겐지가 전화하면 깨워라,” 그가 말하곤 비발디 재생 목록을 켠다.
---
루시우가 다음 연락을 한다. 사티아는 더 이상 통신기를 사용할 권한이 없다. 방금 전에 윈스턴이 끼어들어서 루시우와 사티아의 논쟁을 말리려 떼어놓았다고 한다. 윈스턴은 현실적으로 팀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녀와 휴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설득했다. 다른 요원들은 그걸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특히 루시우가.
“Man, 진짜 대단한 여자라니까.” 그가 혀를 찬다. “리우 이후로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윈스턴 생각도 전혀 모르겠고.” 그가 잠깐 멈췄다가,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속삭인다: “우리 사이 얘긴데, 시마다 씨? 윈스턴이 그 여자를 좋아한다거나 뭐 그런 것 같아.”
한조가 물을 마시다 사래가 들린다. “커흡 -- 뭐!”
“아니, 마음으로-좋아하는(like-like) 게 아니라, you know, 그거 말고, 뇌로-좋아하는 거(brains-like). 방정식 같은 거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과학 얘기할 때는 죽이 딱딱 맞아.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면 계속 주시하려고 하는 거겠지. 아무튼.”
“잘됐군.” 한조가 목을 가다듬으며, 콜록거리고, 갑옷 입은 고릴라가 그 거만한 바스와니에게 장미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린다. “그 여자가 보안을 위협하지 않게 계속 잘 감시해야 할 거다.”
“잘 아네, 시마다 씨. 아무것도 망쳐놓지 못하게 할 거야.” 음악 치료사가 통신기 너머로 씩 웃는 게 보이는 것 같다. “그쪽은 따끈하게 잘 있어?”
“할 수 있는 한은.”
“서로 붙어서 체온 유지하는 건 아직이야?”
한조가 컵을 내린다. “뭐라고 했나?”
“이스트우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알지? 그 조니 캐시 옛날 노래.” 루시우가 Ring of Fire의 흥겨운 트럼펫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빰-빠-밤 빠-밤 빠-빠-바 --”
한조가 방 건너편의 맥크리를 쏘아본다 : 그는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피스키퍼 부품을 닦고 있다. “알고 있다.”
“이스트우드한테 말만 해, man. 분명히 노래 해줄걸.” 통신선이 끊기려 하며 치직거린다. “좋아, 그만 끊을게. 다시 일하러 가야 돼.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동생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다. 연락할 때마다, 시마다 형제 중 더 어린 쪽은 행방불명이다.
한 시간이 지난다. 그들은 생체장 방출기를 두 개 더 켠다. 한조는 멍하고, 열에 들뜬 상태로 대화하고 잠들고 일어난다. 그들은 신경써서 나눈 식량을 먹고, 눈을 녹여 만든 물을 마시고, 톡 쏘는 보드카를 한 잔씩 한다. 한조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고, 음악을 듣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힘을 회복하고, 화를 억누르며. 그는 등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몇 개 한다. 맥크리는 The Strawberry Roan의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으면서 지켜본다.
몸을 더듬거나 애무하는 일은 더는 없다 : 맥크리는 두 번 정도 시작하려 해 보지만, 한조가 강하게 거부한다. 그 혐오스러운 건축가가 한 말들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맥크리는 포기한다. 그의 교활한 입이나 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깜박 잠들어서, 그는 옴닉 기지의 보랏빛 덩굴 꿈을 꾼다. 되새들이 다시 바위로 돌아와, 짹짹거리며 덤불 안으로 종종 뛰어간다. 그 중 한 마리가 그의 무릎 위에 앉는다.
안녕, 되새가 높은 음조로 일본어를 한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너 지금 접근 규칙을 어기고 있어. 방사능에 너무 가까워. 경찰이 널 보면, 벌금을 물릴 거야. 한조가 새를 쏘아보여, 1마일 이내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으으래, 그렇다면, 새가 노래한다. 고환에 종양이 날 거야. 큰 거. 홍당무만큼 큰 거.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가 짜증을 내며 확언한다. 방사능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돌아보자, 되새는 작은 카우보이 모자와 빨간색 스카프를 하고 있다. 그럼, 딸이나 쳐(Go blow yourself), 친구! 그가 새를 쫓아버린다. 새는 듣기 싫게 웃어댄다. 으스스한 기계음이다. 수화기 건너편의 송신자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작은 소리. 못된 작은 새에게 잘못 걸려온 전화.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깨어난다. 제시가 옆에 누워 있다. 등을 맞대고, 추위를 피해, 보온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리고. 나른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드셋으로 뭔가 하고 있다. 십자말풀이 퍼즐 앱이다. 싸구려 아몬드 비누 냄새가 난다. 씻고 온 게 틀림없다.
수면(Sleep). ‘다른 할 일이 없음’을 의미하는 다섯 글자 단어.
그는 다시 눈을 감는다.
---
0335시에 두 번째 날이 시작된다. 일어나선 안 될 시간이라고, 몸이 그에게 말하지만: 뇌가 잠에 물려서 더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는 어둠을 뚫고 움직여, 화장실로 가 소변을 보고, 돌아와서 물을 두 잔 마신다. 달콤한 담배 냄새가 복도에 남아 있다. 자는 동안 바보 녀석이 몰래 나가서 담배를 피운 게 틀림없다. 맥크리는 침대 위에서 코를 골고 있다. 세라피를 돌돌 말아 베개 대신 베고서.
통신기는 울리지 않는다. 한조는 통신기를 집어들고, 의자로 친 바리케이드를 넘어, 어두운 층계참을 올라 계단 중간에 앉는다. 엉덩이뼈를 타고 냉기가 스며든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웅웅거리고 있다.
그는 지브롤터와 감시 기지를 생각한다. 5시간 전이라고 했지. 그가 송신 버튼을 누르고 요원 번호를 입력한다: 3945_49. 통신선이 삑삑거리다가, 찰칵 소리와 함께 연결된다.
“여기는 겐지,” 왜곡된 목소리가 답한다.
안도감이 맥박치며 메스꺼움을 씻어낸다. 한조가 일본어로 말한다. “동생아.”
“한조!” 겐지의 목소리는 기쁜 듯하다. “와, 거기 지금 몇 시야? 늦은 시간인 것 같은데. 좀 어때?”
“괜찮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좌절감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 “아니.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다.” 졸음에 반쯤 마비된 인지 감각을 뚫고 화가 배어나온다. “왜 전화하지 않았냐?”
“했어야 했나?”
“그쪽으로 연락할 때마다 너와 말하고 싶다고 했어. 아무도 전해주지 않았나?”
겐지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 들었어.”
분노가 한조의 가슴에 꽃처럼 활짝 핀다. “그럼 도대체 왜 연락하지 않은 거냐?”
“바빴어!” 겐지가 웃는다. “임무 시작하고 나서부터 미친 듯이 일이 많아. 토르비욘하고 감시 기지 주변 보안 체크하느라 바빴어. 기지 안을 엿보려고 하는 드론도 있고, 헬리콥터도 있었다고. 이 바위섬 모든 절벽을 다 기어올라야 했지. 러시아 방위군과 함께 출발하고 나서부터, 뉴스엔 온통 오버워치 얘기뿐이야.”
그럴싸한 변명이었다. 한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럴싸했다. “자, 그럼, 그쪽은 안전한 거냐? 다 괜찮은 거야?”
“그래. 다 괜찮아. 왜: 걱정이라도 했어?”
“아니.” 그리고,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 “약간은. 나와 얘기할 시간 5분도 낼 수 없었다는 거냐?”
“그게, 솔직히 말하면...”
“제기랄, 겐지. 5분이 없었다고.”
“진짜야! 여기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왜 화났는지는 알겠지만, 형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임무 때도 보고 있었나?”
“물론이지!”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봤을 것 아니냐!”
“맞아! 정말 대단했어!”
한조가 어둠 속을 째려본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대단했다’고.”
“정말이야, 한조. 정말 훌륭했어. 계속 응원했다고. 형이 기록 깼을 때는 연구실이 아주 난리였지!”
“그게 아니라, 망할! 암살자! 눈보라!”
겐지는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아! 맞아, 그것도 있었지. 뭐, 윈스턴이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걱정하긴 했어. 제 3자 개입 말이야. 몇 달 전에 기지에 침입했던 탈론 요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말했던 대로지. 보안 수준을 올린 거야. 토르비욘의 말을 옮기자면, ‘세상에, 겐지, 네가 잠을 많이 잘 필요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네가 없었으면, 이 많은 포탑을 돌리다가 맛이 가 버렸을 거야 --’”
한조가 말을 자른다. “난 죽을 수도 있었어. 이 임무 어느 때라도, 죽을 수 있었단 말이다. 얼마나 많은 게 잘못됐는지 봤잖아. 망할 촌극이었다고.” 말을 끝내고 몇 초 후 한조는 자신이 아버지가 일이 망쳐졌을 때 쓰던 말을 따라했다는 걸 깨닫는다. “네가 지켜보는 동안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거냐? 지금도?”
“어, 그래. 맞아.” 겐지가 코웃음을 친다. “이런 상황에는 일반적인 일이지. 형은 이제 오버워치야. 사람들은 항상 죽어나가.”
한조가 콧날을 문지른다. 머리가 아파온다. “아주 안심되는 말은 아니구나.”
“그리고 뒤처진 채 남겨지지. 그게 항상 제일 슬픈 일이야. 팀이 돌아가서 다른 요원들을 되찾다가 일이 너무 위험해지곤 하지. 그런 식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잃었어. 하지만 형은 아냐. 한조, 형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위해서 돌아갔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예전에는 많이 보지 못한 일이기도 하지.”
예전. 한조는 바보 녀석이 문 옆에 털썩 주저앉아, 그 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걸 기억해낸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고, 침을 삼키고, 목이 따끔거리는 걸 알아차린다. 다시 속이 메스꺼워진다. “내 안전을 희생해서. 내 목숨까지 걸고.”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말야, 그거 알아?”
“뭐 말이냐?”
당차게, 노래하는 듯한 대답 : “형은 안 죽었어.”
한조가 으르렁거리며, 턱을 문지르고, 콧날을 문지른다. “좀 진지하게 굴어라.”
“내가 안 죽을 거라고 했던 것처럼!” 겐지가 주장한다. “떠나기 전날 밤에 말했지만, 형이 무시했잖아. 아, 예나 지금이나 듣는 걸 정말 못 한다니까. 아무튼. 형은 아직 살아있고 아직도 쿨가이(badass)야. 내가 말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했지. 맞지?”
거친 목소리로, 한조가 인정한다: “그런 것 같구나.”
“돌아오면 더 얘기하자. 타워 위에 앉아서. 괜찮지?”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평스럽게 말한다 --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의 목소리. “맥크리랑 거기 갇혀서 스트레스 받는 거 알아. 그래도 형한테 감사하고 있겠지. 잘 대해줘.” 잠깐의 침묵. “내가 부탁한 대로 ‘양키 씨’라고 부르는 건 그만뒀지? 그걸 너무 싫어해서 마음이 안 좋네.”
“싫어하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한조가 말한다.
“내가 신경써! 나 맥크리 좋아한다구, 기억해? 항상 임무 때 나한테 잘해줬어. 일본어도 몇 개 가르쳐달라고 했었는데. 별로 잘 하진 못했지만, 욕하는 거 가르쳐줬어. 재밌었지.”
한조가 눈을 가리며 늘어진 머리카락을 입김으로 불어 날린다. “아주 재미있겠구나, 분명히.”
“아직도 ‘양키 씨’라고 부른다면, 최소한 농담이라고 해. 그럼 그렇게 싫어하진 않을 거야. 아니면, 혹시 몰라 -- 항상 형이랑 어울려 다니는 걸 보면,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
“겐지.” 이번에는 목소리에 날이 섰다.
쾌활하게 : “형, 진정해.” 그리고, 사무적인 목소리. “자, 이제 끊어야겠어. 염탐하는 놈이 없나 주변 순찰 돌아야 해. 계속 응원하고 있을게, 알았지? 앗 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와 있을 거야.”
“동생아, 잠깐. 안전하게 있어야 한다. 그 건축가가 계속 거기 있다면--”
“풉.” 겐지가 야유한다. “그 여자는 걱정하지 마. 하나도 안 무서워. 전혀 위협이 안 돼. 아, 맥크리한테 안부 전해줘. 알았지? 그리고 -- 한조.”
궁수가 낮게 말한다. “그래.”
겐지는 능글맞게 말한다. 뭔가 사적인 일을 알아낸 것처럼 음흉하게. “살살 해.”
한조가 발끈한다. “이 자식 --”
“또 연락할게!”
통신이 끊어진다. 한조는 통신기를 계단 아래로 던져버릴까 고민한다.
그는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가, 침대로 돌아간다. 맥크리는 그가 누울 때 약간 움직이긴 하지만 깨어나진 않는다. 한조는 등이 맥크리의 등에 닿을 때까지 보온 담요 아래로 들어간다. 그가 몸을 구부리고 만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가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한 그 말을 중얼거린다. “내가 왜 남았지?”
그냥 네가 답을 모른다는 걸 인정해, 꿈 속에서 되새가 짹짹거린다. 제시의 세라피를 입은 어린 기생의 어깨 위에 앉아서. 그녀는 작은 커피 잔 너머로 미소를 던진다. 그게 완벽한 대답이야. 그가 아니라고 주장하자,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그의 볼을 꼬집으며. 아, 꼬마 군주님!
---
그들은 한참 후 일어나서 초라한 아침 식사를 천천히 먹는다. 제시는 피스키퍼 정비 키트 안에 끼워져 있던 트럼프 카드 한 세트를 찾아낸다. 한조는 포커 게임을 거부한다 : 총잡이가 속임수를 쓴다고 트레이서가 지난 번에 경고해 줬었다. 제시는 담배를 질근질근 씹으며 혼자서 할 수 있는 솔리테르 게임을 한다. 한조는 활 손잡이 부분을 재정비한다. 대화가 오간다: 카드 게임, ²⁾고 피쉬, 취미로서의 낚시, 스시 중 가장 좋은 종류. 제시는 복어나 참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한조는 복어는 몰라도 참치를 먹어 본 적 없다는 걸 믿지 못한다. 지브롤터로 돌아가면 반드시 이 참사를 바로잡을 거다.
²⁾카드 게임의 일종.
그럼 데이트네, 하고 제시가 말한다. 한조가 코웃음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은 메추라기 알 같은 게 올라간 건 뭐라고 불러?” 제시가 묻는다. 그는 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카우보이 부츠는 근처에 벗어 놨다. 그걸 벗는 건 한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³⁾우즈라.” 한조가 활의 상감 장식 부분을 꼼꼼히 살핀다. 이가 나가기 시작했다. 지브롤터에 돌아가면 교체해야 할 거다.
³⁾ 메추라기 알이 올라간 초밥
“그래. 항상 그게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했지. 맛도 괜찮고.”
“그렇다면, 겹치는 취향이 하나 더 늘어나는군.”
“아, 그래?”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점점 좋아진다고 하지. 난 항상 좋아했어.”
“Well, 지금 좀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한조가 입술을 오므리며, 활 손잡이를 까닥거린다. “국물이 나을 거다. 육수로 우려낸 것.”
“빌어먹을, 맞아.” 제시가 빨간색 에이스 카드를 내려놓는다. “라인하르트 요리에 불만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괜찮은 국수 먹은 게 리장에서의 첫 번째 임무였어. 몇 일 정도 루시우랑 같이 야시장에 죽치고 있었지. 매일 밤 그 작은 라멘 가게에 갔다고. 괜찮은 곳이었어. 데드락에 있는 동안 줄기차게 먹은 전자렌지 컵라면하고는 비교가 안 됐지.”
한조가 코웃음친다. “역겹군. 항상 진짜가 더 나은 법이지.”
“그래. 솔직히, 리장 여행 중에 제일 좋은 게 그거였어. 맛있는 음식.” 맥크리가 펼쳐 놓은 카드를 내려다보며 씩 웃는다. “Well, 물론, 널 만난 것도.”
한조가 멈칫한다. “날 만난 것.”
“그래, 너도 알잖아. 우리가 만난 데가 아마 거기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한조가 생각한다. 그는 시간을 되짚어본다: 그 곳에서 통성명을 했다.
“감시 기지에서 만난 것까지 치면 또 모르겠지만.” 맥크리가 빨간 카드 위에 검은 카드를 겹친다. “그 땐 네가 누구인 줄도 몰랐거든. 그냥 날 쏜 똑똑한 친구였지.”
그가 맥크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먼저 쏜 건 너였다.”
“그랬지. 그리고 빗나갔어. 넌” -- 제시가 한조 쪽으로 손가락질을 한다 -- “안 빗나갔지. 모자를 맞추고, 팔도 맞추고. 팔꿈치에 맞은 것 때문에 수술까지 했던 거 알고 있었나?”
한조가 인상을 쓴다: 모르고 있었다.
제시가 카드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날 죽일 뻔했지.”
“죽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
“활 들고 있었잖아. 화살 매겨서. 쏠 준비하고.”
“쏜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널 포함해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지.”
제시가 담배를 씹는다. “Y'know, 그 몇 달 동안, 직접 물어본 적 없었는데 말야.”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 위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겐지를 찾고 있었다. 하나무라에서부터 따라왔지.”
“그건 예상했어. 그런데 왜 거기였어? 왜 그 자리였던 거야?”
“겐지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절벽 위에서 기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드론 비행경로를 외워서 발견당하지 않을 수 있었지. 그 지점이 사각 지대 중 하나였다.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대가 많지 않아서, 몇 일 정도 계속해서 비슷한 시간에 관찰하기로 했지. 넌 셋째 날 저녁에 연구실 바깥, 그 곳에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사람이 너였지.”
“망할, 엄청 오래 지난 일 같군.”
한조가 눈썹을 찌푸린다. 그는 볼스카야, 콘솔 의자, 침대, 치료소를 기억해낸다. 천 년쯤 되는 시간. 맥크리는 하트 2를 스페이드 3과 맞붙인다. “그 땐 네가 그냥 낯선 사람이었지. 난 온 사방에 날 죽일 준비가 된 놈들이 가득하고, 현상금 노리는 놈들한테 쫓기던 기억이 생생했어. 그리고, 젠장 : 넌 완벽하게 쐈다고. 그 때로 돌아가면 뭘 다르게 해볼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
“네가 날 쏘지 않았다면, 나도 쏘지 않았을 거다.”
맥크리가 코웃음친다. “확실해?”
“그게 사실이다.” 궁수가 의자에 앉은 상태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널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어. 그 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지.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으니. 쉬운 목표물이야.”
“너한테는 쉽겠지, honey.” 그가 한조를 올려다보며 씩 웃는다 : 짖궂고, 삐딱한 웃음. 헝클어진 머리에, 부스스한 수염으로, 이를 반짝이는 얼굴. 따뜻함과 달콤함. 그가 속삭이는 애정어린 말 같은.
기억이 절벽에서의 일을 되짚는다 : 난간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며, 바다를 보고 있는 바보 녀석. 그 모자, 빨간색 세라피. 홀스터에 꽂힌 피스키퍼. 유럽 가장자리에 서 있는 카우보이 : 캐리커처.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활시위를 걸고, 당기고, 조준하며 태세를 갖추고 -- 쏘고 싶지는 않지만, 쏠 준비는 된 상태로 -- 그 자리에 서서 죽거나 죽일 준비를 마쳤던 것을. 죽임과 죽임당함이 공존하는 아찔한 순간과, 단호한 양자택일. 바람 한가운데 붙잡히고, 바위 벼랑 끝에 내몰려, 바람과 바다 소리에 둘러싸여서, 기다렸던 것을. 그 지점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것을. 활시위에 모든 걸 걸고 :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을.
맥크리가 하품하듯 신음하며 한조의 생각을 끊는다. “젠-장, 추운 게 너무 싫어. 다른 곳에 있고 싶네.” 그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른다. “빌어먹을 사막이라도 좋겠어, 이 쓰레기장을 펄펄 끓는 모래로 뒤덮어버린다고 해도 좋을 거야.”
한조의 뱃속이 익숙한 짜증으로 뒤틀린다. 자기 자신을 멈출 틈도 없이, 그가 중얼거린다: “이집트.”
제시가 올려다보며, 턱을 벌린다. 담배가 입술 끝에서 툭 떨어질 뻔한다. “뭐라고?”
“빌어먹을 사막. 모래라고 했잖나.”
“아, 잠시만.” 맥크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조를 보며, 느릿하게 말한다. “방금 내가 ‘이집트’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게 맞아, 아니야?”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맥크리가 눈을 찌푸린다. 불편한 침묵이 깔린다. 얼음장처럼 두꺼운 침묵.
“Well,” 제시가 공백을 깨며, 건조하게 대답한다. “방금 그걸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이상한 말로 기억해 둬야겠군.”
“네 스승이 거기 출신이지, 너의 아마리.”
맥크리의 시선이 홱 돌아간다. “내 누구?”
“내가 널 눈 속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네가 그 여자 이름을 말했다.”
총잡이의 입에서 놀란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랬나? 제기랄.” 그가 벽에 등을 기댄다. “Well, 망할, 그건 몰랐네. 꿈을 꾸고 있었나 봐.”
“이 아마리라는 여자를 꿈꾸고, 그녀를 생각하지. 아직도.”
“가끔씩 떠오르곤 해. 나한텐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어.”
“그 여자를 사랑했던 거야.”
“Well, 그런 셈이지.” 제시가 망설인다. “내 선생이었다고. 블랙워치에 가입했을 때 난 강아지였어. 시간이 지나고 아마리가 날 지켜봐 줬지. 젠장, 사실을 알고 싶어? 그녀가 날 돌봐줬어. 문제가 생기지 않게 지켜줬다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가 힘들지.”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 “전부 알고 있었잖아. 예전에 얘기해 줬어.”
한조는 뭔가에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할지, 안심해야 할지 모른다. 둘 다일지도. “그러니까 이집트라는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라는 거군.”
제시가 당황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가 담배를 끈다. “또 나 가지고 노는 거야?”
한조가 활을 내려놓는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좁은 공간을 가로질러, 침대로 몸을 낮춘다.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무릎을 꿇어앉으며, 날렵한 눈으로 제시의 덥수룩한 얼굴을 예리하게 살핀다.
맥크리가 앞으로 몸을 구부린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시마다?”
한조가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처럼 미끄러져 온다. 총잡이는 그가 무릎 사이에서 나타나, 턱을 잡고, 목덜미를 쓰다듬을 때 얼어붙어 버린다. 첫 번째 키스는 약하고, 조용하고, 부드럽다. 제시는 한조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약한 소리를 낸다. 제시의 손은 갈 곳을 모르고 망설이며 한조의 어깨 주위를 맴돈다. 또 한 번의 키스 : 이번엔 좀더 강하다. 입술이 완전히 맞닿는, 완전한 결합의 몸짓. 입 안의 담배 연기는 짙고 뜨겁다. 그가 좋아하기도 하고, 동시에 싫어하기도 하는 맛이었다.
그들은 덜컥 떨어지고 나서 다시 달라붙는다: 제시는 뜨거운 회로라도 만진 것처럼 홱 물러나서, 한조의 어깨를 가만히 감싼다.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다잡으며. 사냥감이 다시 도망칠까 두려워하며.
언제가 되어야 용이 멋대로 행동하는 방식을 알게 될까? 특히 언제 용이 즐거워지고 싶어하는지를?
그들은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다른 쪽이 따라올 수 있도록 조절하면서. 제시는 키스 사이로 작은 소음을 낸다. 가슴 속에서 천둥치는 미세한 떨림. 한조는 그걸 삼키고, 핥고, 옆구리를 쓸어내리는 큰 손을 반긴다. 제시는 거칠게 움켜잡다가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다정함보다는 불안함이 크고, 미는 힘보다 당기는 힘이 큰 손짓.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온통 흩어지는 생각들.
“Sweetheart,” 그가 숨을 몰아쉬며, 묶인 머리끈을 더듬는다. “신이 계시는군, sweetheart. 나한테 올 줄 알고 있었어.”
한조는 말하지 않는다. 키스하며, 혀로 대답을 대신한다. 제시는 노란 천을 풀어내고 쏟아져내리는 한조의 머리카락을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비단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흠모하는 손짓. 그렇게 키가 큰 사내라면 사람들 앞에서 절대 내지 않을 미약한 신음이 제시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한조는 그 신음을 먹어치우며, 서로의 무릎을 얽고, 햇빛에 탄 제시의 팔을 손톱으로 긁어내린다. 완전히 중독됐다. 더 해줘(Give me more).
그들은 침대 위에서 구르며 서로를 뜨겁게 달군다. 벨트가 마침내 풀려나갈 때, 파란색 오비가 짤강거리는 버클과 함께 떨어진다. 옷을 벗기엔 너무 추워서, 그들은 그냥 서로의 옷 안으로 손을 뻗고 아무 것이나 닿는 걸 만진다. 한조는 제시의 왼쪽 옆구리에 난 총상을 찾아내고, 제시는 한조의 왼쪽 유두가 아플 때까지 엄지로 애무한다. 아직도 짜증이 날 정도로 민감하다. 눈 때문에 상처가 난 곳이다.
“계속 내놓고 다니면 그렇게 되는 거야,” 한조가 손을 뿌리치자 제시가 씩 웃으며 속삭인다. 침 때문에 입술이 끈적거린다.
그래, 당연히 이걸 하는 동안 떠들어대겠지: 영원히 입을 다물고 서로를 만지기만 하지는 못할 거다. 키스가 끝나면 볼 개그 같은 걸로 조용히 시킬 수도 있겠지(혹시 모른다, 그런 걸 좋아할지도). 한조는 최소한 잡담을 가능한 적게 할 수 있었다. 깨무는 건 통하지 않을 거다: 용은 오늘밤 이 먹이를 물 이빨이 없다. 그는 총잡이의 털 많은 배로 손을 내리며, 반응을 이끌어낸다. 웃음, 그리고 익숙한 귓속말. 간지러워. 한조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을 떠나, 꼿꼿이 선 것으로 손을 옮긴다. 그는 손바닥으로 그것을 감싸고, 정확하게 계량된 솜씨로 쾌감을 선사한다. 제시는 한조의 목에 짐승처럼 숨을 내뱉으며, 소리 높여 좋아한다. 그를 녹이는 손길.
“한-조.” 제시가 품격 없는 남부 억양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네가 좋아하는 걸 말해봐.”
“너.” 잔인한 솔직함. 한조는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제시는 흥분에 몸을 떨고, 숨죽여 웃는다. 금이라도 손에 넣은 듯한 웃음이다. “그럼 내가 뭔가 하게 해줘.”
“어떻게?”
“뒤집어서 누워.”
한조의 몸이 굳는다. 제시가 알아차리고, 그의 등을 커다란 손으로 쓸어내리며 진정시킨다.
“살살 할게. 애정표현 조금만 하게 해줘.”
살살 하라고. 겐지가 한 말이 한조의 귀에 울린다. “뭘 어떻게 할 거냐?”
그들은 둘 다 어두운 오렌지색 불빛 아래에 난잡하게 달아올라 있지만,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건 제시 쪽이다. “여긴 시베리아라고, darlin’, 여긴 ⁴⁾장미 꺾을 때 필요한 물건도 없잖아.”
⁴⁾ 장미를 꺾다(stem the rose) : 애널 섹스의 은유.
애널이 장미 꽃봉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표현이 있다.
한조가 몸을 일으키고, 제시의 얼굴을 살피며, 얼굴을 찌푸린다. 정말 지금 그 바보 같은 남부 속담을 꺼내야 하나? “아, 신경쓰지 마.” 제시가 그를 팔꿈치로 찌른다. 한조는 그들의 무게가 이동하는 걸 느낀다. 아래에 깔린 방수 천이 마찰음을 낸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 그는 한 손으로 한조를 옆으로 눕히고, 부드럽게 엉덩이를 잡고, 하카마 끈을 느슨하게 풀어낸다. “뒤로 누워, darlin’. 하게 해줘.”
하지만 한조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장미? 지금 로맨틱하게 구는 건가? 그가 일어나 앉는다. 제시가 그를 뒤로 밀어뜨리고, 무릎을 눌러 고정시키고, 복근에 기습 키스를 한다. 그 풍경에 시야가 순간적으로 흔들린다. “먼저 대답해.”
“네가 좋아할 만한 거야.”
한조가 제시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긴다. 총잡이가 고개를 들며, 숨을 헐떡인다. 그 얼굴에 떠오른 황홀해하는 표정에 한조의 입이 바싹 마른다. 그런 걸 좋아하는군.
“말해,” 그가 거칠게 내뱉는다.
제시가 송곳니 끝에 혀를 댄다. 그리고 입술을 핥는다. 당당하게, 그가 말한다 : “빨아줄 거야.” 또다시 그 천박함이다. 한조의 뺨이 경련한다. 그가 머리카락을 놔주고, 팔꿈치로 기대고 상체를 세운다. 바짝 긴장해 있다.
제시도 알아차린다. “긴장 풀어, darlin’.”
“그러고 있다.”
“그러긴 망할, 등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같이 뻣뻣한데.”
“꼭 그렇게 떠들어야만 하나?”
“금방 조용해질 거야. 잠깐만 놔둬 줄래? 믿음을 가져(Have faith).”
한조가 콧구멍으로 숨을 내쉰다. 총잡이가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가, 천을 바로잡고, 풀어내, 옷을 벗기고 따뜻한 오른손으로 그를 애무한다. 한조는 입술 안쪽을 깨물며, 아래에 깔린 천을 움켜쥔다.
그가 맞았다. 금방 조용해졌다.
제시의 얼굴에 떠오른 황홀함은 거의 그를 부끄럽게 하기까지 한다. “네가 얼마나 예쁜지 말해준 적 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그가 총잡이의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 몇 올을 쓸어올린다. “주의해라. 여긴 추워.”
“곧 따뜻해질 거야, darlin’.”
냉담하게, 한조가 숨을 내쉰다. “이 조심해라.”
처음에, 그는 제시의 늘어난 입술과 열렬한 소리의 음탕함을 음미하며 관찰한다. 척추를 타고 올라 뱃속을 담배 연기처럼 짙게 채우며 퍼져나가는 불꽃만큼이나 좋았다. 하지만 벨벳 같은 입과 매끄러운 혀보다 더한 게 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것에서 타오르는 열기, 깊은 감탄. 그의 애무는 능숙했고, 차분했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쾌락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그 전의 어떤 것보다 월등하게. 너무 오래됐어. 한조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긴장을 풀며, 팔꿈치를 굽힌다. 그가 제시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뒤로 눕고, 한숨을 내쉬며, 폐가 가슴 속에서 고함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금과 태양과 사막 쏙독새 생각을 하려 애쓴다. 그런 새는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생겼지? 무슨 소리를 내지?
그리고 그 느낌이 온다. 한조가 온몸을 긴장시키며, 제시의 머리카락을 홱 당긴다.
잡아당겨진 제시의 혀가 가볍게 떨린다. 붉게 번들거리고 있다. 음란하게. “왜 그래?”
“그만해.” 한조가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뭘?”
“손가락 빼라.”
“아.” 제시가 움직이며, 담요를 부스럭거리고, 턱을 숙인다. 그 느낌이 사라진다. “좋아할 줄 알았지.”
한조가 이를 악문다. “네 차가운(cool) 금속 손을?”
“차가운가? 차가우면 알 수 있는데.” 그리고, 자신있게 : “안 차가워.”
궁수가 가볍게 무릎으로 제시의 어깨를 친다. “다른 손을 써.”
“그 손이 지금 좀 바빠서.” 제시가 씩 웃는다. “자, honey, 믿어봐. 왼손도 괜찮아.”
“못 믿겠다면 --”
“긴장 풀어.” 낮은 속삭임. 한조가 이 사이로 숨을 들이마신다. 제시가 엉덩이를 제자리에 누르고,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명령한다. 거칠지만 관능적인 목소리. “뒤로 누워.”
한조가 몸을 펴고 눕는다. 심장이 목구멍 근처에서 뛰어댄다. 그는 최선을 다해 약간이라도 진정해 보려 애쓰며,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는다. 마침내 그가 제시의 턱 근처에 엄지를 대고, 뺨을 쓰다듬으며, 다시 시작하게 한다. 또 한 번의, 음흉한 재촉을 참아내면서. 총잡이가 콧노래를 부른다. 믿음을 가져.
아무렴 어때, 한조가 생각한다. 바보 녀석이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도록 놔두자. 새로울 것도 없다. 어쨌거나, 그는 훈련할 때도 반쯤은 이런 식이었다 : 닥치는 대로 행동하고, 마음대로 끼어들고, 총, 박차,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지. 최악의 경우에는 창피를 당할 거고, 잘 해봐야 --
한조가 침대를 와락 잡는다. 아. 황홀감은 빠르게 되돌아온다. 두 번째로 -- 그리고, 속사포처럼, 셋-넷-다섯-여섯. 그가 허리를 아치형으로 굽히며 숨을 헐떡인다. 제시는 그와 함께 움직이며,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손에 머리를 부비며 집요하게 계속한다. 한조는 금방 예상치 못한 쾌감에 땀에 젖고, 눈을 크게 뜨고, 목이 메인다. 그는 발뒤꿈치를 침대에 대고 누르며, 제시의 머리카락을 놓고 뒤로 쓰러져, 근처의 천을 움켜잡고, 몸을 떨며, 모든 근육을 긴장시킨다. 한조는 천으로 얼굴을 가린다. 뭐라도 그 품위 없는 숨소리를 가릴 수 있기만 한다면 바랄 게 없었다. 담배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송진과 박하 향. 몸을 떨며, 한조가 한쪽 눈을 뜬다. 빨간색 세라피.
경고도 없이, 예고도 없이. 한조는 거친 신음과 함께 정신을 놓는다. 제시는 능숙하게 다룬다: 그의 배에 코를 묻으며, 본능적으로, 빠르게, 뿌리까지 혀로 훑어내리자, 한조의 이가 부딪히고 동공이 커진다. 총잡이는 끈질기게 계속하며, 너무 민감해질 때까지 그를 쥐어짠다. 떼어내려면 턱을 꼬집어야 했다. 별이 보이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만,” 그가 목쉰 소리로 내뱉으며, 애원하는 소리가 검은 제어실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그의 아래에서, 총잡이가 그 말을 듣고, 바스락거리며 그의 허벅지를 풀어준다. 한조는 그가 옷 매무새를 고쳐주는 걸 느낀다. 그가 한조의 턱에서 빨간색 천을 치운다.
“괜찮아, darlin’?” 그가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 그 예쁜 얼굴 숨기지 마. 보게 해줘.”
한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식어가는 땀이 목, 팔, 등허리에 맺힌다. 완전한 쾌락이 온몸을 감싸고 천천히 흐른다. 팔다리가 감전된 것처럼 작게 움찔거린다. 그가 입모양으로 대답한다. 날 죽이려고 한 거냐?
제시가 엄지 뒤쪽으로 입가를 닦아내면서,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한조는 세라피를 움켜쥔다. 제시가 옆에 누워 햇볕에 탄 오른손을 그의 명치에 얹는다. 태양처럼 따뜻한 팔이 들썩이는 갈비뼈를 두른다.
그들은 조용히 누워 있는다. 제시가 한조의 잘 나뉜 복근을 쓰다듬는다. 그가 마침내 전율하며 입을 뗄 때까지. “좋아.”
“응?”
천천히, 흥분이 가라앉는다. 그는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는 걸 기다린다. “재주가 좋군.”
“칭찬 고마워, darlin’,” 제시가 가까이 다가오며 대답한다. “이제 전부 네 거야.”
한조가 총잡이의 귀를 가볍게 비튼다. 불만은 없다. 생각하는 건 불가능했다. 말하는 건 더더욱 그랬다.
제시가 담요를 끌어올리고 나서 얼마 후, 그는 졸음에 굴복한다. 꿈은 꾸지 않는다: 한조는 오후에 통신기가 울릴 때까지 깜빡 잠든다. 그는 맥크리가 윈스턴과 이야기하는 소리에 깨어난다.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는 제시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셔츠 단추를 잠그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쪽 발목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가 웃음을 터뜨릴 때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젖, 뒤로 기울어지는 덥수룩한 턱, 반짝이는 짙은 눈동자. 그는 너무나 편안하고 침착해 보였다. 아침으로 나온 파이를 앞에 두고 커피라도 마시는 것처럼.
제시가 통신을 끊고 한조에게 활짝 웃어보인다. “안녕, 잠꾸러기(sleepin’ beauty).”
“몇 시지?”
“1605. 러시아 방위군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대. 폭풍이 약해져서, 다음 세 시간 안에 들어올 거라는군.” 제시가 씩 웃는다. “여기서 나가는 거야.”
안도감이 썰물처럼 한조를 휩쓴다. 그가 이마를 문지르고, 머리를 쓸어넘기고, 턱을 쓰다듬는다. “금방이군.”
“그래.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가 무릎을 하나씩 옮기며 침대로 내려온다. 한조는 그가 보온 담요 위로 몸을 쭉 펴고, 용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불쑥 들이미는 걸 본다. 한조는 그 튼튼하고 남성적인 턱을 받친다 -- 유혹하듯 웃으며 외설적인 농담을 던지는 신체 부위 : 딱 좋네.
제시가 올려다본다. “이봐.”
“음.”
“괜찮아?”
그가 제시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그래.”
“잘됐네.” 기분 좋은 목소리. “기분 좋았어?”
“그래.” 또 한 번 피어나는 정직함. 그리고 : “네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군.”
제시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난 상관없어. 너에 대한 거였으니까.”
한조가 옷소매를 잡고, 그를 끌어당긴다. 소리 없는 주장 : 아직 안 끝났어.
제시는 빠르게 이해한다. 그들은 다시 서로 겹쳐져, 파고든다. 누웠다가, 몸을 말았다가, 온몸을 비틀다가, 육과 욕으로 서로를 탐닉한다. 이번에는 한조가 주도권을 내준다 : 그를 감싼 팔을 받아들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올 때까지 손바닥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며. 십대들이 어설프게 자위하는 것처럼, 서투르고 어색한 기분이다. 한조는 신경쓰지 않는다. 제시는 욕설을 내뱉고, 이를 악물고 자기(darlin’), 빌어먹을(god-damn) 같은 말로 간청하다가, 결국 한조보다 먼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다. 한조는 키스를 허락하고, 얼얼한 혀와, 절정을 맛보며, 더없는 쾌락으로 인한 작은 죽음을 맛본다. 그는 일본어로 무언가 작게 말한다. 제시는 그 말을 다시 들으려 그를 되살려내고,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나의 것.
끝나고 나서는, 현기증이 조금씩 밀려온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피로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가슴을 베개 삼아 베고 있는 제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상황을 자각하고, 몸을 닦고, 등을 맞대고 나란히 눕는다. 제시가 담뱃불을 붙인다. 한조는 황옥색 빛이 도는 천장을 쳐다본다.
“Well,” 맥크리가 말한다. “이렇게 됐네.”
한조는 대답하지 않는다. 뱃속이 꼬인다. 이건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제시가 돌아본다. “이 얘기 해도 될까?”
“아니.”
“왜?”
“곧 여기서 나갈 테니까.”
“그래서?”
그가 손을 뻗고, 담배를 빼내서, 한 모금 빨아들이고, 회색 연기를 뿜어내고, 돌려준다. 그리고, 아까보다 덜 부드러운 목소리로 : “이건 끝날 거다.”
제시가 일어나 앉는다. “뭐?”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을 거야. 우린 떠날 거다. 감시 기지로 복귀해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더 많은 훈련과 더 많은 임무가 있을 거고, 영웅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떠날 여행도 많겠지. 여기서 있었던 일은 그 평범한 나날들 속에 사라질 거야.”
침묵. 제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당황과 상처를 섞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런 거야?”
“그래.”
“아니.” 제시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팔을 무릎 주위에 건다. “아니, 개소리하지 마. 또 나 가지고 노는 거야.” 그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나 가지고 노는 거지, 한조. 하나도 안 고마워.”
“그럼 어떻게 해야 고마워하겠냐?”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제시가 소리친다. “내 가슴 찢어놓으려고 하는 거야? 젠장,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 모든 걸 놔두고 떠난다고.”
“그래, 우린 이 구덩이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을 거다.”
“내 말은 이거.” 맥크리의 팔이 둘 사이를 휙휙 움직인다. “이거. 방금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 이걸 버릴 순 없어, 한조. 이건 러시아에서 처음 생긴 게 아니라고.”
그가 건조하게 수긍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난 진지해, 시마다. 그냥 감시 기지로 돌아가서 다 씻어버리는 건 너답지 않아.”
한조가 눈을 내리깔고 제시를 본다. “나한테 바라는 게 뭐냐?”
“나랑 같이 있어.” 이제 그는 한조의 옆에 있다. 큰 몸으로 위압하며, 쇄골 근처에 숨을 내쉬며. “한조, 이게 좋았잖아. 그렇지? 나랑 같이 있는 거?”
불안감이 척추 아래를 거슬리게 긁어댄다. “난 항상 너와 같이 있다.”
“내 말은, 지금처럼.” 제시의 야성적인 시선이 반짝이며, 타다 남은 불꽃처럼 번뜩인다. 깊은 목소리는 거칠었다. 거의 화난 것처럼. “나랑 같이 눕는 거. 같이 잠드는 거.” 그가 힘없이 말한다. “같이 있는 거.”
한조가 얼굴을 찌푸린다. 아픔이 찾아온다. 또 한 번, 생명의 빚을 진 그 때 같은 상황. “그래.”
제시는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가까이 붙는다. “그럼 내 것이 돼, 한조. 잘 해줄게, 알잖아.”
용이 한숨을 쉰다. “만약 내가 누구의 것도 되지 않는다면?”
“날 믿어도 돼, 한조. 전에도 믿었잖아. 아니야?”
그는 생각한다. 불행히도, 그랬지.
“날 믿어.”
한조는 묵묵히 천장만 쳐다본다. 거기에 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없다. 그들 사이에 시커먼 침묵이 깔린다. 강철처럼 차가운 침묵. 제시는 결국 포기하며, ‘아, 젠장(ah, hell)’하고 신음한다. 그는 등을 깔고 똑바로 눕는다. 우울하고 낙담해서. 투덜거리며, 담배를 마저 피우며, 가슴께를 긁는다.
한 시간 남았다.
---
구조는 성공한다. 러시아 방위군이 탱크와 비행기를 몰고 옴닉 기지 내부를 휩쓴다. 지하 정비실 입구 문이 공업 장비에 떼어져 나간다. 팀은 눈 속에서 재결합해 기뻐한다. 메이 링이 제일 먼저 그들을 껴안는다. 눈물을 참으면서.
그들은 볼스카야에 돌아가 메르시의 검사를 받는다. 생체장 방출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수분 부족과 피로에도 불구하고, 한조와 맥크리는 멀쩡한 몸으로 집에 가게 될 거다. 그들은 샤워를 하고, 옷을 세탁하고, 코트와 목도리를 걸치고, 운송 수단 안에서 따뜻한 식사를 한다. 트레이서는 지체 없이 지브롤터로 돌아가는 비행을 준비한다. 그들은 몇 시간 후 자리야노바와 작별 인사를 하고 공중에 떠오른다 : 영웅들이 승리했다.
팀은 돌아가는 비행선 안에서 눈을 붙인다. 한조는 그러지 못한다: 너무 많이 잤다. 객실 불빛이 그를 깨어있게 한다. 그는 트레이서와 함께 조종실에 앉아 뉴스 방송을 듣는다 : 세상을 지키던 전설적인 조직, 오버워치의 귀환. 불안감이 뱃속에 꼬여 있는 매듭을 건드린다. 그는 너무 늦게 자서 중요한 사건을 놓친 것 같은 기분이라고 소리내 중얼거린다. 트레이서는 햇빛을 못 받아서 그런 거라고 설명한다. 비행 시차와 겹쳐서, 몸이 더 괴로울 거다. 트레이서는 그 슬립스트림 사건 이후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 수분 보급과 규칙적 생활로 치료할 수 없는 건 없다고, 그녀가 말한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몇 일만 지내면 생체 시계가 돌아올 거다.
한조가 자리로 돌아갔을 때 맥크리가 움직인다. 제시가 손끝으로 모자를 뒤로 젖힌다. 그는 세라피 위에 빌린 코트를 입고 있다. 그들이 시선을 교환한다. 둘 다 웃음짓지 않는다. 주변에는 팀원들이 눈을 감고, 머리를 떨군 채 잠들어 있다.
천천히 제시가 시선을 돌린다. 긴장감이 한조의 뱃속을 스친다. 깃털만큼 가볍게, 작은 되새처럼.
---
그들은 저녁때 감시 기지에 착륙한다. 남아 있던 요원들이 짐을 내리는 걸 돕는다. 루시우는 활기찬 모습으로 격납고를 가로질러, 맥크리와 트레이서를 껴안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라인하르트의 품에 뛰어든다. 겐지는 한조의 어깨를 두들겨 인사한다. 한조는 그에게 손을 뻗을 뻔했지만, 뱃속에 꼬인 매듭이 그러지 못하도록 손을 묶는다.
윈스턴은 앙겔라의 브리핑을 받으러 치료소로 따라간다. 나머지 팀원들은 식당으로 이끌려간다. 한조는 기지의 친숙함에 가슴아파한다. 정말로 아팠다 : 화창한 색깔, 바위 절벽, 밝은 목소리들. 루시우가 늦은 저녁식사를 만들어준다. 한조는 속이 이런 상태일 때 뭔가를 먹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스트우드는 어딨어?” 음악 치료사가 묻는다. “⁵⁾브리가데이로 만들었는데. 먹고 싶어할 거야.”
⁵⁾brigadeiro. 초콜릿 트러플의 일종. 브라질 간식이다.
모두가 주변을 둘러본다. 맥크리는 없다.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메이 링이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든다. 지난 15분간 자리야와 문자를 하고 있었다. “쉴 거래요. 많이 지쳐 보였어요.”
“그를 비난하지 말도록 하세,” 라인하르트가 덧붙인다. “힘든 몇 일이었을 테니.”
한조는 찻잎을 우리며 그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낀다.
---
그는 통신 타워를 올라가 겐지를 기다린다. 차는 맛있었다. 하늘은 넓고 별이 반짝거린다. 팔다리를 감싸는 바람은 부드럽다. 한조는 잠들지 않고 생체 시계를 다시 맞추려 애쓴다. 내일은 브리핑과 보고와 따라잡아야 할 수많은 신규 사항이 있을 테니. 그리고 다가오는 다음 주는 몰아치는 뉴스와 언론 보도의 연속일 거다. 지금 시작된 건 절대 멈추거나, 늦춰지거나, 유예되지 않을 거다. 지속적인 흐름. 그는 준비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지만, 더 많은 게 기다리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한조가 차를 홀짝인다. 강물 속의 바위다.
한 시간이 지난다. 겐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조가 통신을 걸자, 그는 꽁무니를 뺀다. 밤을 위해서 에너지를 아끼고 있어, 그가 말한다. 가서 좀 쉬어! 내일 얘기하자.
그는 통신이 끊기고 나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바닷물이 수평선과 만나는 흰 선. 등대 불빛은 천천히 돌며, 버터 같은 노란색으로, 어둠 속을 안심시키듯 비추고 있다. 믿음을 가져.
그는 통신 타워를 내려와, 연구실 건물로 걸어가서, 바다를 마주보는 통로로 나간다. 바람이 머리끈을 펄럭인다. 한조는 절벽을 보며, 뾰족뾰족한 급경사면의 윤곽을 꼼꼼히 살핀다. 여기서 그 일이 일어났지. 바로 여기, 계단 난간에서.
가슴 속에서 깊고, 낯선 아픔이 치밀어오른다. 그는 순간적으로 숨이 가빠, 난간을 붙잡는다. 현기증. 궁수는 숙소로 돌아가 그의 엄격하게 정돈된 방을 쳐다본다. 깔끔한 침대. 몇 개 없는 가구. 딱 하나 있는 매트. 활. 화살통. 오렌지색 트렁크. 공책. 집에 어서 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왜 머물렀나?
“모르겠어,” 그가 텅 빈 방 안에서 소리내 말한다. 자기 자신을, 그 텅 빈 방을 싫어하며. 그는 세 번 더 반복한다. 더 기분이 나빠진다. 뭔가 부숴버리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럴 만한 물건도 없었다. 불안감에 속이 꼬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튀어나온다. 머릿속 저편에서 떨어져나온, 생생한 파편 : 사랑스러운 바보 녀석(bless your heart).
한조는 떠난다. 그는 복도를 폭풍처럼 가로질러 내려간다. 맥크리의 문은 닫혀 있다. 그는 한참 동안 문을 쳐다본다.
노크한다. 대답이 없다. 벨을 누른다. 침묵뿐이다.
날 믿어.
한조는 출입문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올린다. 문이 옆으로 열린다.
그가 있다: 어둠 속에서, 깨어 있다. 등을 대고 뒤로 누워서, 가슴 위에 손을 겹쳐놓고. 침대의 공간 전부를 차지하면서. 문이 열리자, 맥크리는 일어나 앉는다. 한조를 보자 그는 얼어붙는다. 네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이 얼굴 위에서 교차된다: 놀라움, 기쁨, 의심, 긴장감. 어쩌면 공포일지도. 아니면 갈망일지도. 아니면 그 전부일지도.
제시가 잠깐의 침묵 끝에 말한다: “안녕, 자기(hey, darlin’).”
“그래.”
“괜찮아?”
“그래.” 그리고, 갈라지는 목소리. “아니.”
“왜 그래?”
한조는 문 근처에 멈춰선 채로, 이마를 찌푸리고, 고통스러워한다. 더는 용이 아니다. 한낱 인간일 뿐.
제시는 뒤로 눕는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제시의 눈을 보는 한조도 그걸 알 수 있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그가 미소짓는다. 설탕처럼 달콤하고 연기처럼 달큰한 미소. 그가 팔을 벌리고, 한조에게 뻗으며, 손을 까닥인다. 침대가 삐걱거린다. 목소리는 너무 따뜻하다. “이리 와(C’mere).”
해안에서 멀어지는 파도처럼 그들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진다.
한조가 움직인다. 제시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세 발자국. 문이 닫히고, 잠긴다.
역주 -----------------------------------------------
¹⁾ 조지아 공대생(ramblin’ wreck) : 조지아 공대에서 부르는 노래 <Ramblin' Wreck from Georgia Tech>를 인용하는 말이다. 첫 가사가 “나는 조지아 공대의 시정잡배, 망할 엔지니어라네” 정도 되려나. 참고 페이지 https://en.wikipedia.org/wiki/Ramblin%27_Wreck_from_Georgia_Tech
²⁾ 고 피쉬 : 카드 게임의 일종.
³⁾ 우즈라 : 메추라기 알이 올라간 초밥.

⁴⁾ 장미를 꺾다(stem the rose) : 애널 섹스의 은유. 애널이 장미 꽃봉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표현이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대사 - “you guys wasn't gettin' paid to leave the dogs to babysit the sheep while you stemmed the rose(네놈들이 개한테 양 맡겨 놓고 장미나 꺾으라고 돈 받은 게 아니라고)"
⁵⁾ 브리가데이로 : brigadeiro. 초콜릿 트러플의 일종. 브라질 간식이다. 달달해 보인다.

챕터11
Hang the Fool - Chapter 11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7398717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고개 들어!!!! 대박 소식 간다!!!! 다들 봐봐, 이건 진짜라고!!!!!
334K 리트윗 480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올 여름에 극비로 진행된 일이 있어!!!! 엄청 열심히 작업했다구!!!!!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뉴스는 다들 봤어??
389K 리트윗 102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진짜 영웅들이 무대에 나섰지. 전설들. 우리 모두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딱 내 취향이야!!!!
103K 리트윗 121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그러니까 이제 비트에 몸을 맡길 시간이다!!!! 더 꾸물대지 않고 말할게... 올 여름 루시우가 있었던 곳은!!!
67K 리트윗 80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준비됐어??????? 다들 보고 있길 바라!!!!!
102K 리트윗 123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지브롤터에서 라이브로 전해드립니다...
82K 리트윗 99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나 새로운 오버워치에 공식적으로 가입했어!!!!!! #오버워치 #영웅이될거야
873K 리트윗 1.1M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세상엔 영웅이 더 많이 필요하고 우린 볼륨을 높이고 있지!!!!! 루시우 요원!!!! 음악 치료사!!!! #오버워치 #몸이낫는음악 #영웅이될거야
245K 리트윗 199K 마음에 들어요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lucio - 1 시간 전
신규 앨범 SYNAESTHESIA AUDITIVA를 예약 주문하고 싱글 앨범 WE’RE GONNA BE HEROES를 받아가! AMO VOCÊS(전부 사랑해)!! #오버워치 #몸이낫는음악 #영웅이될거야
995K 리트윗 1.2M 마음에 들어요
---
임무 종료 브리핑을 한 날은 그 해 들어 가장 더운 날들 중 하나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고 나서 한 주가 지나자, 9월 말의 열기가 지브롤터를 덮친다. 브리핑실 밖의 활주로와 도로 위에는 은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 브리핑실 안에는 오버워치 요원 열 명이 윙윙거리는 환풍구 아래의 탁자에 둘러앉는다. 윈스턴이 안경 밑으로 땀을 닦아내며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작동시킨다. 벽에 달린 메인 스크린에 깔끔하게 정리된 텍스트가 스크롤해 내려가는 동안 프로젝터에서는 푸른색 펄스 소총의 3차원 도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첫 번째 사안 : 습격자 건과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암호화된 호출 부호가 포함된 수상쩍은 교신.
“솔져:76.” 안젤라가 검은 태블릿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용병. 단독으로 행동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세력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자. 작년 11월 말부터 제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간단한 주제였죠: 안전하게 무기를 다루는 법, 작은 부상, 전투 때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 그러다가 점점 제 작업물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히 발키리와 카두세우스 시스템에. 처음에는 무시했어요.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계속했고, 위협적인 건 없었지만 -- 메시지의 어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시스템의 세부 사항에 대한 내용을 보냈어요. 정밀하고, 기술적인 내용이었죠. 제 작업물에 대해 이미 전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처음엔 오버워치 소속이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의료 연구 팀 소속. 어쩌면 예전 동료였을 수도 있죠. 아니면 탈론 같은 조직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연락을 취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탈론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저는 정면으로 76에게 연락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어요. 그때 자기가 제 예전 환자들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 정확한 당시 상황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왜 내가 그를 치료해 줬는지. 그랬더니 하나하나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76은 제 경력 초반에 했던 특정한 작전 내용을 떠올려냈어요: 떠돌이 AI에 포위당한 캐나다 유콘의 정유 공장이 폭발했을 때, 그 임무 지휘관을 보호하기 위해 수트를 사용했던 작전이죠.
그 사람이 그 때 상황을 묘사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 임무에 참가했던 요원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둘밖에 없는데, 그 중 누구도 76이 제게 말해준 만큼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저 본인을 제외하면, 그 정도로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앙겔라가 태블릿을 내려놓고, 안경을 고쳐쓰고, 이마에 흘러내려온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제가 구해줬던 지휘관뿐일 겁니다.” 그녀가 작게 말한다. “잭 모리슨.”
라인하르트가 트레이서, 토르비욘과 시선을 교환하며 테이블에서 물러난다. 맥크리는 오른편에 앉아 있는 한조와 그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겐지를 쳐다본다. 형제 중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앙겔라는 계속한다.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정보를 얻으려면 강력하게 암호화되거나 이미 소멸된 오버워치 내부 기록을 추출해야 했겠죠. 76은 계속 메일을 보냈어요. 더 많은 힌트와 단서가 주어졌죠. 오직 잭만이 알고 있었을 법한 아주 작은 일들.”
“어떤 일 말인가?” 라인하르트가 묻는다.
“내부에서만 통하던 농담. 팀원들이 자주 가던 장소, 재결합, 모임.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맨 끝에는 저에게 질문을 했어요. 아주 개인적이거나 시급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묻더군요.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요 몇 년간 다시 일을 시작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구해주면서, 제가 행복한지. 그냥 --”
“그냥 뭔데?” 토르비욘이 재촉한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그냥 계속해서 제가 괜찮은지 물어봤어요.”
한조가 입을 연다. “그게 습격자와 무기에 무슨 관련이 있지?”
“그 메시지 중 몇 개는 펄스 소총에 적응하는 동안 입은 작은 부상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반동에 의한 좌상과 근긴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아는지 물어보더군요.” 그녀가 혀를 찬다. “나이를 먹어서 악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농담하는 것처럼 언급했죠. 인체공학적 재조정을 하려면 그 무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했더니, 저에게 이걸 보냈습니다.” 그녀가 홀로그램을 가리킨다.
“이게 시베리아에서 사용된 무기와 같은 것이라고 확신하나?” 한조가 묻는다.
“네,” 아테나가 머리 위에서 끼어든다. “이 모델은 헬릭스 시큐리티 시스템에서 출시된 비공개 프로토타입입니다. 76은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 물건과 설명서를 얻었을 겁니다.”
“훔쳤다는 거죠,” 겐지가 말한다.
“그렇습니다.”
이제 궁수는 그 날카로운 시선을 앙겔라에게 돌린다. “그렇다면 이 ‘리퍼’라는 가명을 쓰는 놈이 76이겠군. 당신이 의심한 대로,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인정을 베푸는 척하는 탈론 요원이었던 거야.”
“그렇게 설명이 되는군.” 라인하르트가 끼어든다. “76이 자네에게 말해준 것들을 -- 위험하다고 생각한 게 현명했어.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터놓게 하려는 수작이었을 수도 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죠.” 앙겔라가 답한다. “76의 메시지는 재소집 직전에 멈췄어요.” 그녀가 스크린을 돌아본다. 마지막 메일 내용이 천천히 내려간다. “로스 무에르토스라는 갱단의 불법 무기 거래를 조사하려고 멕시코로 가고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선, 연락이 끊겼죠. 안전을 위해, 제 쪽에서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 말하는 건 맥크리다. “그게 어떻게 잭이랑 연관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 녀석이 잭인 척 하고 있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 말은, 잭밖에 모르는 일을 말했다면...”
“Well. 그게 어려운 부분이죠.” 앙겔라가 태블릿을 내려놓는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정말 완전히 황당무계하게 들릴 거에요. 이런 건 절대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요원들이 앞으로 몸을 숙인다. 트레이서와 윈스턴이 시선을 교환한다. 앙겔라가 음울하고, 냉랭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탁자를 내려다본다.
“76이 제게 말해 준 내용,” 그녀가 시작한다. “그리고 이 편지에 담긴 세부 사항의 수준을 보면, 저는 76이 잭 모리슨 본인일 거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토르비욘이 외친다 : “어떻게 ?”
맥크리가 팔꿈치로 탁자를 내리찍는다. “잭은 죽었어요!”
“알고 있어요.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같죠. 우리가 아는 사실을 보면, 불가능한 것 같겠죠. 하지만 그 정보들은 정말, 너무나도 상세했어요. 그는 잭 본인이나 제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수준으로 유콘에서의 폭발 사고와 그 부상에 대해서 설명했어요. 눈 앞에 그 때 풍경이 다시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꼭 잭이 죽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죽었네 !” 라인하르트가 소리친다. “우리 모두 장례식에 갔어! 내가 추도 연설을 했고!”
“저도 알아요, 라인하르트,” 앙겔라가 간결하게 답한다. “우리 둘 다 그 장례식에 갔었죠. 하지만 고려해 볼 요소가 있어요. 잭은 미군의 엘리트 강화군인 프로그램을 통과했죠. 그 프로그램 덕분에 예전에도 정말 끔찍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적이 있고요.”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그 폭발에서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 아주 작지만 -- 있다는 직감이 들어요. 복구반이 찾아낸 시체는 신원 불명에, 인식표도 없었고 --”
“그래도 불가능해,” 토르비욘이 끼어든다. “시체를 조사했고, 보고서도 썼어. 6개, 7개, 8개도 넘는 매뉴얼에 대응해서! UN이 모든 기록을 요구했다고!”
“빌어먹을, 내가 봤어,” 맥크리가 덧붙인다. “앙겔라, 당신이 리장 임무 끝나고 치료소에서 보여줬잖아. 이 모든 걸 당신이 진행했잖아요? 생사 여부는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기록 대부분은 가브리엘 레예스 것이었어요. 블랙워치 활동을 하며 받은 혐의 때문에 조사를 더 엄격하게 받았죠. 그가 죽었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성이 있었던 거에요.” 그녀의 시선이 방 안을 휩쓴다. 맥크리는 확신한다: 그녀는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제가 신원 확인을 했고 그 시체의 최종 검사를 했어요. 가브리엘이 죽었다는 건 확실히 알아요. 잭에게는 그만한 확신이 설 만큼의 증거가 없었어요.”
“게이브에겐 부검을 안 했다고 했잖아요,” 맥크리가 말한다. “잭도 안 했다는 겁니까?”
“아니에요. 부검은 그 두 사람이 통과한 실험적 프로그램의 세부사항 때문에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작은 소리로: “보고서에는 잭의 유해가 부검을 할 만큼 많지도 않았다고 쓰여 있지만요.”
한조가 불쑥 끼어든다. “이 문제에 계속 매달려 있는 건 현명하지 않아. 모리슨이 살아있을 가능성보다는 탈론 요원이 개인 정보를 모아서 경계심을 풀려고 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모리슨이 그런 작은 사건들 내용을 문서화해서 어디 저장해 뒀고, 습격자가 찾아냈을 수도 있지.”
앙겔라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꼬집는다. “잭 모리슨이 일기를 쓰는 타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자세히 썼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겐지가 덧붙인다. “오버워치 현재 동향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 외부 세력에게 감시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윈스턴을 본다. “이 리퍼라는 녀석, 재소집 전에도 감시 기지를 공격했죠?”
“그렇습니다.” 윈스턴이 답한다. “우리 요원 데이터베이스를 다운로드받으려고 했어요. 이름, 위치, 프로필.”
“그렇다면 보안 상황을 다시 점검해야 해.” 한조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긴다. 맥크리는 그가 짜증난 것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내가 지난 몇 달간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래요, 동의합니다.” 윈스턴이 숨을 내쉰다. “때가 됐어요. 러시아에서 들어온 지원금이 있으니, 현재 갖고 있는 모든 보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걸 최우선으로 합시다. 방화벽 구축에 루시우가 아주 큰 도움이 됐지만, 이제 더 나은 하드웨어를 설치할 자금이 생겼어요.”
맥크리가 벽에 달린 스크린을 올려다본다. 뱃속이 꼬이고 뒤집힌다. 의식이 깜박이며 눈과 바람, 따끔거리는 얼음과 거친 숨소리로 이동한다. 통신기 너머 메르시의 목소리 -- 잭, 정신을 베어내는 칼날처럼, 임무 프로토콜에서 집중력을 찢어버리는 말. 그리고 침묵. 무(無). 얼굴을 얼어붙은 땅에 처박고 의식을 잃어가며, 폐가 납작해지는 감각을 느끼고, 욱신거리는 심장 박동에 맞춰 멍하니 생각했지 : 내가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
한조의 목소리에 의식이 돌아온다. “시베리아에서의 전투를 감시 기지에서 분석했다고 했지. 아테나가 리퍼의 전투 프로필을 오버워치 요원 데이터베이스와 매칭할 수 있나?”
아테나의 하얀 로고가 스크린에서 빙글빙글 돈다. “지금까지 리퍼의 전투 프로필과 현존하는 요원 명단 중 32%를 매칭했습니다. 관찰 결과 리퍼의 키는 잭 모리슨과 같았지만, 체형이나 체질량은 달랐습니다. 모리슨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프로필과 데이터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로고가 멈추며, 반짝거린다. “하지만, 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어요. 블랙워치는 창립될 때부터, 요원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한 단계 더 높은 레벨로 암호화해 두었죠. 민감한 인원 기록을 보호하기 위해 복잡한 코드로 배리어가 여러 겹 쳐져 있어요.”
맥크리가 턱수염을 긁는다. “그래. 예전에 들었어. 우리 신원 정보를 보호하려고 레예스가 그렇게 해 놨지.”
“리퍼의 감시 기지 공격으로 제 드라이브 일부가 손상을 입었어요. 그 이후로 진단 수리를 했는데도, 높은 레벨의 암호화 코드를 분석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제 드라이브를 업데이트하면, 블랙워치 요원들의 전투 프로필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겠어?” 윈스턴이 묻는다. “그것 말고도 우선 순위가 높은 작업들이 굉장히 많은데,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길 바라.”
“그 분석을 낮은 우선 순위 작업으로 분류하면, 48일 정도 걸릴 겁니다.”
실망에 찬 낮은 목소리들이 방을 채운다.
“빌어먹게 긴 시간이군,” 맥크리가 느릿하게 말한다. “그때까지 분명히 탈론과 부딪힐 거야. 리퍼 본인과 맞닥뜨릴 수도 있지.”
“만약 놈이 용의 분노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면 말이죠.” 겐지가 한조에게 다 안다는 듯한 시선을 던지며 말한다.
메이 링이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가 우리 예전 리더의 기록을 가지고 오버워치를 흔들어놓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대중의 시선 아래 돌아온 딱 이 시점에서요. 어쩌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우리 능력을 원래 이하로 꺾어놓으려고?”
“그 말이 맞아, you know.” 루시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언론사가 우릴 꽤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어. 소셜 미디어에는 우리 얘기뿐이야. 대중이 우릴 지지하지만, 지금까지 뭘 어떻게 해왔는지 질문하기 시작할 거라는 거 다 알잖아.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제일 보고 싶지 않아할걸.”
“그래도 이 문제를 그냥 치워둘 수는 없어요.” 앙겔라가 고집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해요. 76이 정말 잭이라면 --”
라인하르트가 강철같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한조의 말이 맞네. 의심은 치워 두고: 76이 정말 잭이라면,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이 방 안에서, 우리에게 힘을 보태고 있을 거라고?” 그가 둘러본다: 맥크리는 그의 표정에 떠오른 슬픔을 보고 거의 움찔할 뻔한다. “잭 모리슨은 오버워치를 포기하지 않았을 걸세. 절대로 전장에서 자기 동료들에게 총을 쏘지 않을 거야.”
“이 조직은 잭의 전부였어,” 토르비욘이 한탄한다. “잭이 살아 있는데 선두에서 지휘하지 않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오버워치가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우리 곁으로 왔을 거야.”
앙겔라가 안경을 벗고, 안경 다리를 접고, 태블릿 옆에 내려놓는다. 그녀가 이마를 문지른다. 맥크리가 유감을 표하는 시선을 보낸다. 그녀는 답례로 약한 미소를 띄워보인다.
윈스턴이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끈다. 푸른색 라이플이 사라진다.
“결론은 감시 기지 전역의 보안을 강화하는 겁니다.” 그가 말한다. “디지털, 외부 대응, 전면적으로요. 러시아로 가기 전의 구금 기간 동안 자원을 거의 다 써버렸지만, 이제 지원금이 있으니 상황이 좋아졌어요. 루시우도 음반 판매금 중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했으니, UN 청문회 결과를 준비하면서 충분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윈스턴이 키패드를 두들긴다. “그게 바로 다음 주제로 이어지죠. 인터폴이 우리 모두를 당장이라도 고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브롤터 총독은 아무도 체포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UN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는 이 지역을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트레이서가 묻는다.
“2주일입니다.”
“우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루시우가 묻는다. “내 말은, 그 메시지들 다 봤잖아. 세상이 우릴 부르고 있어. 그 사람들한테 그냥 2주일만 기다리시라고 해야 하는 거야?”
윈스턴이 귀를 긁는다. “다같이 감옥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선택의 여지가 많이 있지는 않네요.”
---
회의는 한 시간을 더 질질 끈다. 윈스턴은 러시아 방위군이 성공적으로 옴닉 기지를 점령했다는 것과, 임무 중에 죽은 스뱌토고르 조종사 4명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쏟아지고 있다는 걸 언급한다. 자리야노바 지휘관이 러시아 방위군이 허가한다면 오버워치에 가입하기로 약속했다는 것도. 아테나가 사망한 군인 중 한 명의 아내가 나오는 격려 영상을 틀어 준다: 맹렬한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남편이 영광스럽게 고향을 지키면서 그 땅의 역사 중 가장 큰 승리를 거두고 죽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열정적으로 감사를 표시한다. 메이 링이 입을 가리고 작게 한탄한다 : “아, 루스터.”
요원 시메트라의 존재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페트라 조약 정지를 기다리는 동안, 비슈카르 사는 오버워치와 자기들 사이의 영구적인 연락 담당자 신분으로 사티아 바스와니를 심어놓고 싶어한다. 한조는 반대한다: 루시우와 토르비욘도 그렇다. 윈스턴, 아테나, 메르시는 강력한 감시를 유지할 것이고 그녀가 진짜 도움이라는 걸 줄 수 있다는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팀은 결국 UN의 긴급 청문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바스와니에 대한 결정을 미루기로 한다. 한조는 그녀가 기지 안의 방을 배정받아 임시로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용납한다. 맥크리는 그 무심함의 이유를 정확히 안다 : 궁수는 아군을 가까이 하고 적은 더 가까이 한다는 수칙을 지키고 있는 거다. Cuidado. 사티아는 조심해야 할 거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2주. 윈스턴은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며, 함께 있기를 권고한다. 시뮬레이션도 기지 외부 활동도 없다. 그는 그 동안 UN 청문회 인터뷰, 언론 보도, 시스템 업그레이드 때문에 바쁠 예정이다. 루시우와 트레이서는 자원해서 외부 소통 담당을 맡고, 토르비욘은 라인하르트, 겐지, 메이 링의 도움을 받아 포탑 업그레이드 작업을 마치기로 한다. 한조는 감시 기지를 순찰하며 뉴스 드론을 격추시키고 출입구 보안을 확보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맥크리의 옆구리를 찌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으로 지원하라는 의사를 표시한다.
맥크리는 브리핑 룸을 나가 숨 막히는 더위에 직면한다. 그는 메르시가 치료소로 가는 길을 올라가는 걸 본다: 불안감이 뱃속을 갉아먹는다. 죽지 않았어요, 그가 그녀의 말들을 돌이켜본다. 부검도 없었어요. 강화 군인. 목소리들이 먼지 쌓인 나방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머릿속에서 불안하게 뒤섞인다. 총은 잘 쏘나? 눈은 어때요? 타이밍이 젬병이야, 카우보이. 작은 꿈을 꾸었네(Dream a little dream).
한조가 겐지와의 대화를 마치고 그의 옆으로 온다. 맥크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내려다보고,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긴장을 푼다. 다부진 어깨, 뻣뻣한 눈썹, 강한 하관. 짧게 스치는 비누 냄새. 내 사랑(Sweetheart.)
“안녕,” 맥크리가 말한다. “아직도 내가 같이 순찰 돌았으면 좋겠어?”
“그래.” 한조가 코를 들이마신다. “처음에는 트럭을 써야겠어. 드론이 수도 없이 많다고 동생이 그러더군. 수리검이나 총알보다는 갈래 화살로 처리하는 게 빠를 거다.”
“알겠어. 그것들 쏴맞추는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내가 가서 운전대를 잡아 주지.”
“좋아.” 궁수는 윗입술을 문지르며 격납고를 향해 성큼성큼 걷는다. “지난번보다 좀더 부드럽게 운전한다면.”
맥크리가 씩 웃으며, 따라간다. 그렇게 좋은 밤을 보내고서, 아침까지 한조와 함께하자 기분이 편해진다. “당연한 말씀을.”
또 한번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 “고맙다.”
맥크리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괜찮아?”
한조가 목을 가다듬는다. “그래.”
“콧물 나는 것 같은데.”
“사소한 거다.” 한조가 화살통 줄을 끌어올린다. “브리핑실 에어컨이 너무 셌어.”
“감기 안 걸린 게 확실해? 그 눈보라에, 지하실에, 여기 돌아와서, 이젠 엄청 더워졌으니 --”
“극단적인 기후 변화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는 건 근거 없는 믿음이다. 실제 감염은 세균 보유자에 노출됐을 때 일어나지.” 한조는 격납고를 둘러본다. “다른 트럭은 어디 있나?”
“저 아래쪽.” 맥크리가 2번 적재 구역을 가리킨다. “치료소에서 면역 촉진제 맞으면 금방 멎을 텐데. 지금 치료해야지, 일이 전부 멈췄을 때.”
“난 아프지 않아,” 한조가 점점 아파지고 있는 사람이 내는 콧소리로 답한다.
“마음대로 해, darlin’.” 제시가 트럭에 타고, 의자를 조정하고, 패널을 주먹으로 친다. 꽃 목걸이와 훌라 치마를 입은 보블헤드 옴닉 인형이 대시보드에서 흔들거린다. “망할. 이 트럭은 라디오가 없잖아.”
한조가 올라타고 보조석 문을 닫는다. 그가 허리끈에 달린 주머니에서 천 조각을 꺼내 코를 닦는다. “안됐군. 컨트리 음악 말고 다른 걸 들어야 하겠구나.”
“휴대폰 있어?”
“물론.”
“대시보드에 끼워. 네가 좋아하는 노래 듣자, 좀 변화를 줘야지.”
한조가 가볍게 흠 하는 소리를 낸다. “흡연도 자제하는 건 어떠냐.”
“안 피울 거야, sweetheart. 그 예쁜 코를 괴롭히면 안 되지.”
“고맙군.”
제시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루 동안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날인 것 같군.”
한조가 숨을 내쉰다. 그는 고개를 젓고, 핸드셋을 꽂고, 제시가 생각하기에 마지못해 애정을 표하는 듯한 목소리로 낮게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들은 한조의 클래식 재생 목록 중 하나를 들으며 감시 기지를 순찰한다. 메인 터널을 지날 때, 한조는 언론사 드론 한 무리가 튀어나온 바위 근처에 모여 있는 걸 발견한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잘 조준된 갈래 화살 한 발로 그것들을 싹 정리한다.
“잘 쐈어(Good shot),” 제시가 박수를 친다. “이제 그 시끄러운 놈들이 사라지겠군.”
“잠깐 동안은 그렇겠지.” 한조가 다시 자리에 앉을 때 노래가 모차르트로 바뀐다. “더 많은 놈들이 올 거다. 겐지는 폭발물이 설치된 드론에 대해 걱정했었지. 시마다 가문 암살자들이 예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종류 말이다.”
“아직도 쫓아올 잔당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이제 뉴스에 이름이 올라갔으니?”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한조가 점점 빨개지는 코를 가볍게 누른다. “어느 쪽이건, 준비를 해둬야 할 거다.”
“Well, 난 안 무서워.” 제시가 고개를 들며 말한다. “현상금 사냥꾼들한테 6년을 쫓겼는데, 야쿠자들한테 내가 전에 못 본 술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
“몇 가지는 쓸 거라고 장담하지.”
“갱단은 다 똑같은 놈들이야. 한 놈만 보면, 다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니. 시마다 가문은 세계 최고의 킬러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그가 다음 화살을 꺼내든다: 화살촉이 짙은 청색으로 빛난다. “하지만 인정할 건 하지. 네가 말해준 데드락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일을 비슷하게 한 부분도 있으니.”
맥크리는 속도를 줄여 한조가 또다른 드론 한 무리를 조준할 수 있게 한다. 그는 궁수가 창문 너머로 몸을 구부리는 모습을, 그 모든 근육과 태세를, 그 강한 팔을 당겨 활을 쏘는 장면을 지켜본다. 제시는 척추 가장 아래에서부터 기분 좋게 튀는 불꽃을 즐긴다. “내가 조심해야 할 암살자는 너와 그 뾰족한 끝부분뿐이야, darlin’.”
한조가 나선형의 문신 너머로 총잡이에게 씩 웃어보인다 : 그러는 게 좋을 거다.
그들은 트럭을 타고 절벽으로 향하는 길을 오른다. 드론도, 침입자도 없다. 한조는 통통한 메추라기 한 가족이 길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걸 가리킨다.
“그 용병에 대해서 메르시가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참 후 그가 묻는다. 아직도 코를 훌쩍이면서.
“그 녀석이 죽었다가 깨어난 잭 모리슨이라는 거?” 맥크리가 혀를 찬다. “Well, 솔직히 말하면, 메르시가 그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줘. 우리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거야.”
한조가 용처럼 경계하며 중얼거린다. “나는 메르시를 좀더 의심하고 싶군. 이 정보를 지금까지 밝히지 않고 있었으니, 아직도 감추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전에 말했듯이: 일을 핑계로 대며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거지.”
맥크리가 혀를 잘근잘근 씹는다. 이 주제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뭔가 씹고 연기를 들이마셔서 신경을 안정시키고 싶다. “내가 알고 나서부터 항상 그런 식이었지. ‘환자 기밀 규율’이나 뭐 그런 거.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아는데도, 정말 진지하게 그걸 지켰어. 그래도 중요한 건, 앙겔라가 인도주의적인 일을 한다는 거야. 난 아직도 그녀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쁜 의도가 있는 사람한테는, 아마도, 좋은 목표물이겠지. 하지만 앙겔라의 생업은 다른 사람을 구하는 거야. 처음 가입했을 때부터 항상 그랬어.”
트럭이 과속 방지턱을 지날 때 한조의 몸이 흔들린다. “내 동생도 그렇게 말한다. 선입견 때문에 그 여자를 옹호하는 줄 알았지만” -- 그가 재채기를 하며 몸을 굽힌다 -- “너희 둘 다 나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
“Bless you.” 맥크리가 커브를 돈 후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래, 이상한 상황이긴 하지. 아테나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이 76에 대한 걸 좀더 파헤쳐 보자고. 아니면 그 전에 윈스턴이 뭔가 방법을 찾아내겠지. 어찌됐든 그 리퍼라는 놈은 확실히 죽은 거였으면 좋겠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놈이야.”
한조가 코를 닦아내고 말한다: “감사 인사는 됐다(you are welcome).”
---
그들은 순찰을 마치기 전에 드론 무리 셋을 더 처리한다. 차분한 곡이 흘러나온다. 스메타나의 The Moldau.
맥크리는 길을 내다보며 시베리아의 눈, 가슴을 파고들던 냉기, 고통, 그리고 쓰러졌던 것을 떠올린다. 갈비뼈 사이에 박힌 총알, 자기 손을 덮고 있던 아나의 손(그게 진짜였나? 손을 잡아주고 있었나? 아니면 그냥 상상에 불과한 건가?). 타이밍이 젬병이야. 안개 낀 바닷가, 입술 살점을 먹던 갈매기. 블랙워치의 붉은색 항공기와 죽음으로 가득한 협곡. 교수대에 올라앉은 까마귀. 모래 속에 묻힌 해골. 죽은 눈(dead-eye)이 닿는 모든 곳에 펼쳐진 핏빛 지옥.
그리고 지하실, 엉망진창이었던 은신처, 그 곳에서 맛본 고통스러운 달콤함. 이마를 쓰다듬던 한조의 손. 그 애정어린, 부드러운 손길. 지하실 바닥에서 했던 첫 번째 키스 : 꿈 같고, 깃털처럼 가벼운, 시험해 보는 듯한. 두 번째 키스는 아팠고: 나머지는, 냉기가 닿지 못하는 깊숙한 곳까지 활활 불타게 했다. 그를 핥고 태우고, 흔들고 비틀며, 통째로 집어삼키던 그 불꽃. 그는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이건 끝날 거다”), 통렬한 주장과 (“우린 돌아갈 거야”), 애석함과 절망을 기억해낸다. 오직 한조만이 그의 가슴을 찢어내면서도 그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오직 한조만이 버려진 개나 길고양이처럼 그의 방으로 정처없이 걸어와, 금색 복도 불빛에 짙은 청색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제시는 문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에, 탄환이나 불꽃놀이가 터지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심장이 조여오던 감각을 생각한다. 그리고 한조가 방을 가로질러, 그의 팔 안으로 들어와, 입을 맞추고 또 맞추며, 말없이 사과하던 것을 떠올린다. 그 가까움, 친밀함, 급습하는 피로감. 말 없는 남자에게 굴복하는 다른 세상에서 온 용. 섹스하기엔 너무 피곤했다. 욕구보다는 탈진이 더 강했다. 제시는 한조를 옆에 끼고 잠든다. 재결합의 어색함이 서로를 팔에 안고 잠드는 걸 막지는 못했다.
마침내 그가 한조를 안았다. 그 반대가 아니라.
제시의 몸 안에 온기가 돈다. 그는 좌석 너머로 팔을 뻗어, 느슨하게 열려 있는 한조의 손을 찾는다. 그는 손가락을 얽고, 꼭 잡는다. 한조가 그 손을 마주 잡는다. 예상치 못한 다정함 : 그가 제시의 손바닥을 엄지로 쓰다듬는다.
트럭은 먼지를 날리며 입구까지 내려간다. 한조는 창 밖을 내다본다. 맥크리는 계속 길을 쳐다본다. 재생 목록은 리스트로 바뀐다.
---
야간 순찰이 끝날 때쯤, 한조는 두통을 수반하는 약한 감기에 걸린다. 그는 훈련을 건너뛰고, 맥크리의 방으로 숨어들어와, 그 날 아침 자기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이불 밑으로 들어간다. 맥크리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온다: 볶은 새우와 고명, 쌀밥, 죽순이 들어간 국, 그리고 큰 머그 잔에 담긴 엽차. 그는 한조가 식사하는 걸 굴에서 꾀어낸 동물을 보듯 쳐다본다.
여기 그가 있다: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살짝 부어서, 느리게 움직이며 조용히, 제시의 빨간 세라피에 싸여 있다. 여전히 머뭇거리지만 온순하게, 전보다 적은 경계심을 가지고 미끄러져온다. 그들은 러그 위에 앉아서 식사한다: 한조는 주먹밥 한 덩어리를 들고, 반 정도를 먹고, 남은 부분에 대량의 와사비를 바른다. 제시는 첫 한 입을 씹은 한조의 뺨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크게 웃어댄다.
“빌어먹을(Hot damn),” 그가 자기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리며 말한다. “코에서 불이라도 나올 것 같았어,”
“바로 그거다. 비강을 청소해 주지.” 한조가 기침하며, 약간 젖은 눈으로, 이마를 찌푸린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덩어리 하나를 집어 맥크리에게 권한다. “먹어봐라.”
“싫어.”
“하. 네가 먹는 음식에는 그렇게 핫 소스를 많이 뿌리면서?”
“매운 맛의 종류가 다르다고, sweetheart.” 제시는 찻잎 같은 초록색 덩어리를 쳐다본다. “반으로 나눠주면 안돼?”
한조가 젓가락을 가지고 맥크리를 가리킨다. “네녀석은 겁쟁이로군.”
제시가 혀를 찬다. “절대 아니지. 빌어먹을. 그거 줘 봐.” 그는 와사비 덩어리에 마지막으로 경계하는 시선을 던진다. 혀에 그게 닿자마자 작열하는 통증이 입 안 전체를 가로지른다. 제시는 삼키고, 뜨거운 숨을 뱉어내며, 딸꾹질을 한다. 그는 신음하며 금속 의수로 코를 짓누른다. 한조는 입을 막고 터지려 하는 웃음을 참는다.
“아무것도 아니네,” 제시가 숨을 헐떡이며, 촉촉한 눈으로 말한다. “따끔하지도 않아.”
한조는 식사 후 침대로 되돌아간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오른다. 제시는 방 안을 조용히 오가며, 어설픈 솜씨로 청소를 하면서, 마음 속으로 목록을 정리한다. 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 바닥 쓸기. 정리정돈, 먼지 닦아내기. 가슴 속에 짜릿한 흥분감이 치솟는다. 한조는 여기에서 좀 더 자주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방을 좀더 깔끔하게 해 놓으면 더 좋겠지.
그는 자동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으러 갈 때 사티아와 마주친다.
“맥크리 요원,” 그녀가 웃음기 없이, 깔끔하게 갠 옷들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는 허리춤에 바구니를 걸치고, 뒤꿈치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그를 깔아본다.
“안녕하신가,” 그가 쾌활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뭐 때문에 인사 같은 걸 했는지 궁금해한다. 뭐 하러 예의바르게 굴지? 여기 적이 서 있다 : 긴장한 채로, 움직임 없이, 자기 물건을 들고. 예쁜 얼굴에서는 온기도 친절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홀스터에 꽂힌 채 빛나는 피스키퍼를 경계하며 흘끗 본다. 맥크리는 당장이라도 그녀가 그 총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 무례한 말이나, 생각 없는 조롱. 전형적인 비슈카르. 아마도 그가 인간 쓰레기라고 생각하겠지.
그녀가 한 걸음 물러난다. 금빛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재빠르게 살핀다. 맥크리는 멈춰서서, 입술을 오므리고, 뭔가를 깨닫는다.
사티아는 그를 놀리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 두려워하고 있다.
“실례하지,” 그가 세탁기에 손짓을 하며 쓰라는 의사를 표시한다. 그는 옆으로 비켜서서, 공간을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덜 위협적으로. “그냥 세탁하러 온 거야. 방해하려는 건 아니었어.”
“저는 막 떠나려던 참이었어요.” 사티아가 어깨를 똑바로 편다. 두 번째 깨달음 : 그녀는 한조만큼이나 키가 크다.
“Well.” 제시가 세탁기를 연다. “좋은 밤 되시길.”
사티아가 돌아선다. 그의 시선이 바구니 안으로 끌려들어간다 : 맨 위에 검은색, 금색 천으로 테가 둘러진 밝은 푸른색 의상이 있다. 윤기 나는, 매끈한 원단이다. 다른 비슈카르 건축가들이 입는 색과는 전혀 달랐다 : 보통 흰색, 보라색, 베이지색이지. 튜닉 같은 건가? 드레스?
“좋은 밤 되세요.” 그녀가 복도로 사라지기 전에 기계적으로 반복해 말하며, 그에게 세 번째이자 마지막 깨달음을 준다. 왼손의 그건 장갑이 아니다. 왼팔 전체가 의수였다.
---
2주일은 느릿느릿 지난다. 모두가 감시 기지 보안을 향상시키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한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한다: 맥크리는 팀원들이 그들을 막는 데 쓰는 시간의 길이에 감탄한다. 윈스턴, 레나, 앙겔라와 사티아는 원격 회의로 UN 청문회에 관련한 6번의 인터뷰에 응한다 : 하루에 2번, 회의 한 번마다 4시간씩, 계속해서 점점 더 피곤하고 진을 빼는 인터뷰. 트레이서는 (사티아가 절대 나오지 않는) 저녁 식사 때 녹초가 된 목소리로, 그 건축가가 지칠 줄 모르며, 논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 사건에 배정된 대표자들과 말할 때 목소리 톤을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도 겪는다. 그녀는 언제나 반대편이 굽히고 양보하거나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자기 주장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몇 번의 재촉 끝에, 겐지는 형이 면역 촉진제를 맞도록 설득해낸다.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감기가 낫는다. 제시는 한조가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잠자기 시작할 것에 대비하며, 그런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확신시키고, 그 확신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을 낸다.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한조는 그 날 밤과 다음 날 밤에도 제시의 방으로 온다. 그 다음 날 낮에도. 그리고 :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왔다가 떠나는, 편안한 리듬.
마음 내키는 대로. 한조가 가끔씩 전조도 경고도 없이 그에게 손을 뻗어, 가까이 끌어당기고, 그의 포옹을 반기는 방식. 밤이 되면 서로 얽혀서, 나른하게 그를 쓰다듬고, 그의 숨결을 덥석 물며 날카롭고 격렬하게 키스하는 방식. 한조가 그의 몸에 팔다리를 걸고, 덮고 있는 이불을 벗기고, 단호하게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그가 애써 참아내며 삼키는, 날것의 품위 없는 소리를 끌어내는 방식. 마치 그걸 좋아하는 동시에 경멸하는 것처럼, 그 소리를 부추기는 동시에 꾸짖는 방식.
“시끄러워,” 그가 손 안에 그것을 감싸쥐고 제시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빠르지만 공들인 손놀림으로, 침대를 들썩이며, 지하 제어실 바닥에서의 불꽃 튀는 순간을 재현하면서. “넌 - 너무 - 시끄러워.”
그렇지 않다고(No shit ), 제시는 땀에 젖은 채 떨면서 생각한다. 누구라고 시끄럽지 않을 수 있겠나 : 절정을 선사하는 것만큼이나 솜씨 좋게 미간을 꿰뚫을 수 있는 남자의, 부드럽고 뜨거운 손 안에서 온몸이 조각조각 바스러지고 있는데?
---
평결 바로 전날, 젠야타가 루시우에게 길고양이가 물품 저장실에 새끼를 낳았다고 알려준다. 격납고 안에 서 있는 음악 치료사가 입고 있는 후드티 안팎으로 네 마리의 얼룩 무늬 고양이가 기어다닌다. 맥크리는 그가 숨겨진 금광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기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고양이가 목덜미를 기어올라 검은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머리를 내미는 걸 보며 루시우가 외친다. 그는 코를 들이마시고, 딸꾹질을 하며, 눈물이 나는 양 눈가를 훔친다. “이건 축복이야.” 그가 휴대폰을 들어올린다. “이스트우드, 사진 찍어줘, man. 트위터에 올릴 거야.”
맥크리는 물품 상자에 기대서서 우는 시늉을 하는 루시우와 그의 몸을 기어오르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통신 타워 옆의 더 안전한 복도에 고양이들이 지낼 수 있도록 꾸민 상자를 둔다. 포탑 팀이 구경하러 온다. 메이 링과 라인하르트는 곧바로 그 매력에 사로잡힌다.
“가만 있어봐.” 맥크리가 루시우의 휴대폰을 기억해내고, 자기 핸드셋을 꺼내서, 카메라 기능을 켠다. “여기 보고, 전부 가만히 있어.”
한조가 올려다본다: 겐지는 손 안에 고양이를 가만히 두려고 애쓰는 중이다. “뭐 하는 거냐?”
“사진 찍고 있어.”
그는 그 사진을 잠금 화면으로 설정한다: 활짝 웃는 라인하르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루시우, 너무 키가 작아서 거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토르비욘, 뺨 가까이 고양이를 대고 있는 메이 링, 손으로 피스 사인을 만들어 보이는 겐지. 옷을 타고 한조의 어깨를 기어오르는 얼룩무늬 고양이가, 짤막한 꼬리를 흔들며, 머리끈을 잡으려고 발톱을 세운 모습. 뒷배경에서 지켜보고 있는 젠야타의 빙글빙글 도는 구체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얼굴.
그는 궁수가 14일 연속으로(15일? 16일? 중간에 세는 걸 까먹었다) 그의 옆에서 잠들던 날 밤에 그 사진을 본다. 제시는 사진 속의 한조가 노려보는 얼굴을 보면서 미소짓는다. 내 사랑(Sweetheart).
---
좋은 소식이 고양이들과 함께 도착한다. 청문회는 미래가 기대되는 소식을 전하며 마무리된다 : 전 세계의 전례 없는 반응을 본 UN은 6개월의 유예 기간과 함께 페트라스 조약을 공식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새 출발을 한 오버워치는 소집, 훈련, 사전에 승인받은 12주 간격의 임무 및 지원 활동을 일시적으로 허용받는다. 요원들에게 걸린 수배서와 현상금은 조약 재검토가 끝날 때까지는 효력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취소되거나 재고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4개월마다 신규 요원을 2명씩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 재산, 자금 규제 수칙이 적힌 300페이지짜리 서류와 오버워치 활동 내역이 UN, 인터폴, 지브롤터 법률 집행관들에게 얼마나 자세히 감시당할지를 규명하는 62페이지짜리 계약서가 주어졌다. 사티아는 이 결과를 알려 준 대표자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한다. 그녀는 통신을 끄고, 윈스턴과 트레이서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자 움찔한다. 순식간에 발표 내용이 통신선에 울려퍼진다.
오버워치의 새로운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한조가 그 소식을 듣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 사티아가 비슈카르의 대리인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오버워치에 배정된 것과, 그의 인덕션이 때 이른 종말을 맞은 것. 그는 제시가 그냥 버리라고 그를 설득해낼 때까지 20분간 드라이버를 가지고 생고생을 했다. 조만간 급여가 들어올 테니, 한조는 차를 끓일 다른 물건을 살 수 있을 거다.
“Y’know,” 제시가 침대에 누워, 드러난 가슴을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매일 밤 규칙적으로 해왔듯 머리를 손질하는 궁수를 바라보면서. “그 건축가가 여기 계속 있게 된 게 아직도 진짜 화나지만, 그쪽도 별로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아.”
“그 여자 기분에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내가 신경쓴다는 건 아냐. 그래도 여기서 지내는 게 어떨지는 궁금해. 우리도 그 여자를 싫어하고 그 여자도 우리를 싫어하면, 일이 어떻게 되겠어? 윈스턴이 빨리 쫓아내고 비슈카르를 걷어차 버려야 하는데.”
한조는 금이 간 전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말았어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참 이상한 여자라는 거야. 1분만 생각하면 알 수 있어 : 몰래 숨어다니고 시야 밖에 머물면서, 일 끝나면 모두를 피해 다니지.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깨닫는 건, 그 여자가 우리 일에 엄청 상관하려고 든다는 거야.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난데없이 나타나서 말을 걸어. 좀 어색하긴 한데, 위험한 건 아니고. 그 다음에는, 꼭 자기 그림자까지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기를 쓰고 사람을 피하는 것 같아.”
“겁을 먹은 거지,” 한조가 구레나룻에 난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빗어넘긴다. 손끝으로 이마와 턱수염을 가볍게 쓸어넘기며. 잠들기 전에 몸단장을 하는 제왕 같은 모습. “주의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지. 난 그 여자가 이곳에서 편하게 있길 바라지 않아.”
“가족도 없는 것 같아. 연애 상대나, 아이도. 그냥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아. 통신기나 전화로 누구랑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젠장, 먹는 것도 본 적 없는 것 같네. 방에 숨어서 먹는 게 분명해.”
한조가 빗을 손바닥에 대고 두드린다. “전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너도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제시가 코웃음친다. “너만큼 사람을 잘 읽진 못하지만, darlin’, 나도 몇 개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고.”
“우리에게 벌써 새로 영입할 요원 후보가 생겼다는 것도 알아차렸겠지,” 한조가 주제를 바꾸며, 빗을 내려놓고 불을 끈다.
“Huh?” 궁수가 올라오자 침대가 삐걱거린다. 제시가 몸을 옮긴다: 흥분감이 솟구친다. 한조가 침대로 미끄러져 올 때의 황홀감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새로운 기쁨을 준다. “아니, 몰랐는데. 어디서 들었어?”
“자원했다는군. 남한의 젊은 군인이다. 윈스턴과 트레이서가 소셜 미디어로 루시우에게 접촉한 다음에 이야기하는 걸 겐지가 들었지.”
“정말이야? 군인?”
“최정예 중 하나라고 하더군.” 희미하게 조소하며 : “또 다른 영웅이 너희를 위해 오는구나.”
“Well,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제시가 말한다. “그래도, 좀 빠른 것 같아, y’know? UN이 우리한테 던져준 그 모든 규제 때문에, 잃은 시간을 만회할 셈인가 보네.”
“그럴지도 모르지.” 한조가 그를 보고 옆으로 눕는다. 이불 아래에서 그는 매끄럽고 완벽하다. 그 모든 근육과 서늘한 피부. 그는 제시의 아랫배에 슬쩍 손을 뻗어, 천천히 움직이며, 가슴에 난 털을 쓰다듬는다.
제시가 몸을 떤다. “조심해, 거기, honey, 나 --”
“간지럽다고. 알고 있다.” 한조는 제시의 어깨에 코를 부비며, 그의 목에 따뜻한 숨을 내쉰다.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와, 척추에 불꽃을 당기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 “너에 대해서도 몇 가지 알아차린 게 있지.”
“그래?” 제시가 한조의 흑담비 같은 머리에 대고 낮게 말한다.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머리가 어지럽고, 생각이 빙빙 돌고, 완전히 경계심이 무너져버린다. 그는 더 원하고 갈망한다. 그 깊은, 제왕 같은 목소리가 말하는 모든 음절을 전부 마셔버려도 될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어떤 거?”
“암살자는 알아낸 걸 쉽게 알려주지 않지.”
“아, 한-조, 장난치지 마.” 제시가 구슬린다. “하나만 알려줘.”
“코 고는 것.”
“Hell, 그건 나도 알아. 내가 강아지였을 때부터 시체도 깨울 만큼 크게 코를 곤다고, 엄마가 자주 그랬거든.”
태연하게 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한조가 말한다: “네 어머니가 또 무슨 말을 자주 했는지 궁금하군.”
“아, 나도 궁금해. 오래 전에 떠났거든.”
한조가 손을 멈춘다. “오래 전에 떠났다고?”
“그래.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그는 한조가 놀라서 그를 향해 움직이는 걸 느낀다. “갱단 인생이 그런 거야, honey. 데드락에 가입하면, 다른 건 전부 남겨두고 떠나야 하지.”
작은 목소리. “그렇군.”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르는 거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아주 오래 전이고, 난 이제 그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니까.”
“스페인어를 가르쳐 준 게 부모님이라고 했었지.”
“맞아. 엄마 이름은 사라였어. 아빠 이름은 몰라, 그래서 이름을 지어내곤 했지.” 한조가 다시 움직인다: 제시는 낮게, 가슴 속에서부터 웃음을 터뜨린다. “‘호간’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 서부 친구들 이름 중 하나지, 왜냐하면, y’know -- ‘호간과 사라’라는 말도 있잖아.” 그는 한조가 그 농담을 알아들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몇 번은, 버치 캐시디의 ‘버치’라고 불렀지. 아니면 ‘쉐인’. 그 이름이 좋았어. 아빠가 사실 대단히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맥크리가 하품을 하며 겨드랑이를 긁는다. “그래도, 결국엔, 별 상관이 없더라고. 데드락에 들락날락하던 놈들은 그게 다 지어낸 얘기라는 걸 알았어. 내가 늘어놓는 거짓말 같은 얘기에 그렇게 오래 속아넘어가 준 건 오버워치 친구들뿐이야.”
한조는 움직임 없이 그의 옆에 누워 있다. 완전히 고요하게, 호흡만 하면서. 잠든 것 같다. 바로 이렇게 공주님을 잠들게 하는 거라고, 그가 생각하며, 한조의 이마에 키스한다.
한조가 돌아눕는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움직이며, 가볍게 한숨쉰다. 검은 머리카락이 먹물처럼 베개 위로 쏟아져내린다.
“고로,” 그가 기나긴 침묵 끝에 말을 꺼낸다. “내 아버지 이름은 고로였다. 어머니는 아카네. 둘 다 죽었다.”
---
10월은 뜨겁게 시작된다. 1번 훈련장의 환경 조절 시스템이 새로운 전투 시뮬레이션 도중에 고장난다. 팀은 목표(주로 탈론 요원의 무력화)를 완수하려 하지만 기온이 너무 높아지자 포기한다. 메이 링은 열 교환기를 고치는 걸 돕고, 절대로 리퍼를 사막 한가운데서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고 윈스턴에게 불평한다.
처음에, 한조는 맥크리의 방에 가는 걸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문을 잠그고, 떠나기 전에는 문 앞에 잠시 멈춰서 복도가 조용한지 확인한다. 소용없다고, 제시는 생각한다. 제시는 루시우, 레나, 메이 링으로부터 그 찾기 힘든 용이 오가는 모습을 봤다는 듯한 시선을 충분히 많이 받았다. 팀은 결국 알게 될 거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때로는, 그 순간이 오는 걸 미묘하게 재촉하기까지 한다. 숙소 벽은 방음이 아니었다.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1번 훈련장 탈의실에서, 가슴 보호대와 셔츠를 벗을 때, 그는 어깨에 남은 손톱 자욱을 숨기지 않는다. 목 근처에 남은 보랏빛 자국은 더더욱.
“와우,” 겐지가 스쳐지나가다가 그걸 알아차리고, 비꼬는 투로 말한다. 그가 바이저를 기울인다. “새로운 암살자 AI가 꽤 거친 모양이군요.”
“아주 좋았지(Got me real good).” 맥크리가 악의 없이 씩 웃으며, 머리를 수건으로 턴다.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가까이 기대서면서, 근처에 있는 시마다 형제 중 나이 많은 쪽이 못 듣도록 낮게 중얼거린다. “상대편은 더했어(You should see the other guy).”
---
라인하르트의 무기 담당관 브리기테가 밴을 타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감시 기지로 도착한다. 그녀는 정문으로 차를 몰며 공격적으로 경적을 울린다: 정문에는 새로운 영웅들을 살짝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모인 리포터와 기자들이 모여서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라인하르트는 함성과 으스러뜨리는 포옹으로 반겨 준다: 그녀는 망치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명랑하게 꾸지람을 하며, 대체품을 가져왔으니 안심하라고 한다.
어느 날 오후, 겐지는 포탑 임무에서 몇 시간을 빼 한조와 절벽 위에서 훈련한다. 맥크리는 연구실 근처에서 빈둥거리며 심심해하고, 어울리고 싶어 안달을 낸다.
“Man, 뉴스 드론하고 리포터가 심했다고 생각한다면, 아테나의 기본 메일함을 봐야 될 거야.” 루시우가 코웃음친다. 그는 콘솔 위에 발을 올려놓고, 글로우-터치 사운드보드를 이용해서 새 곡을 쓰는 중이다. 오렌지색과 흰색 털이 섞인 고양이가 그의 허벅지 위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 “하루에, 무슨, 500개쯤 메일이 오는 것 같아. 대부분은 장난치는 녀석들이나 사기꾼들이야. 엄청나지.”
윈스턴이 그의 작업대 너머로 나타난다. “이봐요, 제시한테 어제 왔던 거 하나 보여주세요. 자와 왕한테 온 거.”
루시우가 키득키득 웃는다. “아, 그래, 이게 진짜 끝내줬어. 잠깐만.” 그가 사운드보드의 빛나는 원형 버튼을 빠르게 눌러대자, 모니터에 오타가 가득하고 글자 크기가 커다란 이메일 내용을 나타낸다.
아릅답고 고귀한 나라 자와에서 프랭크 왕ㅇ과 브루스 자야카르타가 보냅니다. 자와의 자카카르타 왕실을 댸표해서 교신하는 것이오. 우리는 진짜 왕족입니다(가짜 아니에요). 용감한 그쪽 영웅 조직이 북쪽 시배리아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것과 아주 비슷ㅅ한 재기동 옴닉 기지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오버워치에 간청컨대 : 이 아름다운 자와 셤에 방문해 이 웅장한 나라를 보아 주시오. 아니면 옴ㅋ닉 군대에 대항할 자금으로 착수금을 좀 주시면 (현재 총액 225,000 호주달러 - 유로는 안됩니다!!!!! 호주달러만 받아요!!!!!!!!!) 옴닉을 물리치고 우리나라 보물을 되찾아서 30%를 더 얹어서 돌려드리겠소. 위험한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오버워치.
축복을 빌며,
프랭크 왕과 브루스 자야커타
제시가 불신으로 눈을 찌푸린다. “자와 왕국?”
“그래요, 오타인 것 같습니다.” 윈스턴이 말한다. “원래는 ‘자카르타’라고 하려고 했는데 잘못 친 것 같아요. 아무튼, 자와 왕국에 보물을 찾으러 가는 사람들은 참 안됐군요.”
루시우가 웃음을 터뜨리는 걸 참아낸다. “아아, man. 제발.” 그가 눈 근처를 닦는다. “이건 진짜 안 되겠어, 막, 자와 왕국이라니,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 작은 쓰레기 친구들 같잖아” -- 그가 입에 주먹을 대고 키득거린다 -- “아. 후. 이게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단 말이지.”
“누가 보냈는지는 알아냈어?” 제시가 메일을 다시 읽으며 묻는다.
“누군지는 몰라, man,” 루시우가 웃음에서 회복하면서, 한숨쉰다. “그냥 사기꾼들이야, yknow? 어디서 보낸 건지는 몰라. 그래도, 이건 진짜 웃겨서, 추적을 해봤지. 시드니 근처 어딘가에서 온 거야. 메일 주소에 가짜 이름이 있고, 그 밑에 있는 건 등록된 유저 이름인 것 같은데” -- 그가 프로그래밍 창을 연다 -- “‘Ratpig_69_420.’” 그가 의자에 뒤로 기대며, 잠든 새끼고양이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Ratpig_69_420이 누구건 간에, 진짜 웃겼어. 최-고야.”
사티아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온다. 루시우는 그녀가 들어오자 몸을 굳힌다. 윈스턴은 맥크리가 듣기에 거의 따뜻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그녀는 세탁실에서처럼 의심하는 눈빛으로 그를 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괜찮아요, 사티아.” 윈스턴이 말한다. “맥크리는 이 곳 출입이 허가된 사람이에요.”
그녀의 시선이 루시우의 무릎 위 고양이로 향한다. 그녀가 놀란다. “왜 여기 고양이가 있는 거죠?”
“왜, 고양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왜 이 안에 고양이가 있는 거죠.”
“여기 들어와서 나랑 츄츄한테 시비 걸려는 건 아니겠지,” 루시우가 쏘아붙인다. 사티아는 당황한 듯 얼굴을 찌푸린다: 그가 낮잠을 자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가리킨다. “얘는 츄츄야. 나한테 츄츄 가지고 시비 걸지 마.”
“연구실은 동물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이 기지는 애완동물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루시우가 조소한다. “꺼져, 바스와니.” 그가 엄지로 사운드보드의 밝게 빛나는 버튼을 누른다.
그녀가 격분해, 태도를 굳힌다. “무례하군요.”
“내 고양이 건드리지 마.”
“그만 됐어요, 루시우,” 윈스턴이 주의를 준다. “사티아, 나중에 시간 될 때, 다시 도와주세요.”
맥크리는 복도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그는 젠야타가 통신 타워 위에서, 바다를 보고, 구름처럼 잔잔하게 명상하는 모습을 본다. 세상 근심이 없다. 겐지는 스승과 그 지혜에 대해 찬사 이외의 것은 하지 않는 반면, 그의 형은, 그 옴닉을 조금도 견딜 수 없어한다. 한조는 규칙적으로 그가 골칫거리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용과 로봇, 개구리와 파란 드레스. 고양이와 개. 누구나 처음부터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
저격수와 카우보이도 그렇다고, 그가 담뱃재를 털어내며 생각한다.
---
저녁이 되자, 그들은 바닷바람을 들이려 창문을 연다. 맥크리는 초췌한 신경줄과 땀에 젖은 몸으로 밤을 꼬박 샌다. 한조가 공간을 빼앗아가서, 침대는 비좁고 후덥지근하다. 결국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거다. 궁수가 계속 곁에 있길 원하지만, 그래도 영원히 이런 식으로 잘 수는 없다.
육체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소리 없이 그들 사이를 맴돈다. 침대, 공유하는 공간, 그들이 나누는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조는 갑작스럽게 쓰러뜨리고 덮치는 것에는 만족하는 것 같다: 둘 다 서로의 손과 입을 부끄러움도 없이 탐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항상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과 부드러운 거절이 돌아왔다. 한조는 무례하지 않았고 제시는 고집하지 않았다. 꼭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 적절한 시간이나, 어쩌면, 적절한 분위기.
어쩌면 경험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어느 날 아침 약간 흥분하며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을 꾸짖으며: 세상에 어느 바보가 시마다 한조와 침대에서 뒹굴고 몸에 그런 자국을 갖고 걸어나가면서, 한조의 어떤 면을 '경험 없다'고 표현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취향의 문제겠지. 제시는 뭐든 감당할 수 있었다. 한조가 그를 갖고 놀지만 않는다면, 뭐가 어디로 갈지 알아낼 수 있을 거다.
---
윈스턴이 정식으로 채용 발표를 하고 6일이 지나 송하나가 도착한다. 한국에서 온 19살짜리 군인이-된-게임 슈퍼스타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 헬리콥터에서 제복을 입은 수행원들과 함께 내린다. 그녀의 파란색 민소매 원피스가 바람에 휘날린다: 토끼 무늬가 있는 핑크색 레깅스 위에 검은 전투용 부츠를 신고 있다. 루시우, 한조, 맥크리가 발사대로 마중을 나간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고, 악수를 하고, 뺨 가득 미소지어 보인다. 루시우는 포옹을 받는다. 지난 몇 달 간 둘은 소셜 미디어로 이야기를 나눠 왔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내 팀이라는 거죠," 그녀가 줄지어 선 팀원들을 훑어보며, 커다란 흰색 선글라스를 앞머리 위로 올리며 재잘거린다. "좋은데." 그녀가 한조 앞에 멈춰서서,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문신에 집중한다. "와아아아우. 이 문신 진짜 멋있다. 이거 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한조는 조용히 그녀를 쳐다본다: 제시는 그가 놀랐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왜인지는 알지 못한다.
“터프가이구나?” 그녀가 씩 웃으며, 풍선껌을 터뜨리고, 입술로 짝 소리를 낸다. “멋진데. 제일 맘에 들어요.” 하나가 루시우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그쪽에 유감은 없어, 친구(No hate, bro).”
“괜찮아, 하나(None taken, Hana).” 음악 치료사는 운동화를 신고 신나게 뛰어다닌다. “하나, 이쪽은 시마다 씨. 요원명 한조. 그리고 이쪽은 이스트우드. 요원명 맥크리.”
하나가 맥크리에게 돌아서서, 새처럼 키득거린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진짜 이름이 ‘이스트우드’에요?”
“아니,” 제시가 웃는다. “그냥 저 녀석이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그가 모자를 기울인다. “제시 맥크리라고 해, 아가씨. 끝내주는 현상금 사냥꾼이지.”
하나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세-상-에. 진짜 카우보이야! 장난치는 게 아니었어!”
제시가 루시우를 흘끗 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악 치료사가 대답하기 전에 하나가 손을 젓는다: 손톱은 캔디 핑크 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냥 못 믿은 거에요. 이제 믿겨지네. 와우. 아무튼, 됐어요.” 그녀가 원피스 어깨 끈을 바로잡고, 어깨 너머로 돌아보며, 경호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한국어로 뭔가 딱딱한 말들이 오간다: 제시는 ‘메카’, ‘토끼’, 그리고 ‘내 물건 전부’라는 말을 알아듣는다. 그의 옆에서, 한조가 뒤로 기댄다. 약간 압도된 거다.
“좋아, 곧 우리 애기를 날려보내 줄 거래요.” 그녀가 돌아서며 말한다. “메카를 그렇게 부르거든요, 내 자식 같은 거니까.” 그녀가 고개를 기울인다. “윈스턴이 그러는데 나 숙소 방 있다면서요, 근처에 있나? 들어갈 짐이 좀 많은데.” 하나가 높은 격납고 문을 훑어보며 숨을 내쉰다. “세상에, 진짜 멋있다. 여긴 여름이 진짜 여름 같네요. 너무 더워!” 그리고,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 “훈련장 볼 수 있어요? 우리 애기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지 봐야 하는데. 입구가 몇 미터 정도는 돼야 --”
맥크리가 기계 손을 들어올린다. “워, 잠깐만. 한 번에 하나만 합시다, ma’am.”
하나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날 ‘ma’am’이라고 불렀어!” 그녀가 제시를 향해 당당하게, 고지식한 척 웃어보인다. “말 있어요? 말 이름이 ‘실버’에요?” 그리고, 홀스터에 꽂힌 피스키퍼를 보며 더 밝은 목소리로 : “와, 총 한번 보여줘요!”
“잠깐 멈추시지.” 제시가 물러난다. “자, 다른 사람 무기는 건드리는 거 아냐, 위험해. 예의에 어긋난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흥.” 하나가 눈을 굴린다. “나 총 쏠 줄 아는 건 알죠?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총도 쏴 봤거든요.”
한조가 다가선다. “우리가 숙소로 안내하지, 송 양(Miss Song).” 제시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다.
“좋-아요.” 하나가 경호원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녀는 한조 옆을 뽐내듯 걸으며, 맥크리에게 음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깨 너머로 ¹⁾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테마 송의 첫 부분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분다.
맥크리가 눈을 굴린다. “진짜 귀엽네.”
그리고 중국에서 루시우 때문에 그랬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약간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
디바 요원은 시스템에 식별 번호 3945_85로 등록된다. 그녀는 등록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식별 번호는 어떻게 배정되나? ‘요원 01’은 누구였나? 싸움에서 충분히 많이 이기면 그 번호로 바꿀 수 있나? 아테나는 어떻게 전투 프로필을 분석하고, 어떻게 그렇게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나? 아테나는 그리스에서 왔나? 아테나는 스트리밍 기능도 있나? 중요한 건데 : 기지에 초고속 랜선은 깔려 있나? 점심은 언제인가? 저녁 메뉴는 뭔가? 팀원들 중에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나? 언제 그 예쁜 천사랑, 큰 기사랑, 멋진 사이보그 닌자를 만날 수 있나?
“세상에, 정말 수다쟁이야.” 맥크리는 2번 훈련장에서 한조와 함께 사격 연습을 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1마일은 되는 입이 시속 100마일 속도로 떠드는 것 같아.”
한조가 늘어선 목표물에 화살을 쏘며 말한다. “드디어, 네 경쟁 상대가 생겼군.”
“벌써 무슨 비디오 게임 토너먼트 대회를 열겠다고 하던데. 레나랑 루시우는 거의 정신줄 놓기 직전이야.”
“시뮬레이션을 몇 번 거치면 팀에 적응하게 될 거다. 탈론 첩보원들을 상대하는 전술로 바뀌면, 전력으로 거기에 집중해야 하겠지.”
제시는 연습용 로봇 두 대를 각각 세 발의 총알로 쓰러뜨린다. “19살짜리를 탈론 상대하라고 보내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네.”
궁수는 활을 낮춘다. “블랙워치에 가입할 때 너도 비슷한 나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전에: 데드락 갱단에도 있었으면서?”
“나도 애였지. 깊게 몸을 담았지만 그게 애가 아니라는 뜻은 아냐.”
“송 양은 능력 있는 군인이다. 가장 확실히 어린애가 아닌 사람이지.”
“Well, 넌 19살 때 뭐 하고 있었는데?” 제시가 이 사이로 담배를 문다. “비디오 게임 대회를 나갔어? 친구들하고 놀았어?”
“그 나이 때, 난 가문의 군주가 되기 위해 키워지고 있었다. 그 때 이미 가문의 정예 전투원을 모두 능가했지. 그 중 몇 명은 친척이었다. 나에게 추월당해서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고. 더 중요한 건, 가문의 적들을 수도 없이 죽였지. 그 해 들어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거래와 교역을 지휘하고, 사업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3학년 과정을 마치면서 말이지.” 한조는 조준을 바로잡고, 쏘고, 목표물의 오른쪽 눈에 달린 센서를 관통시킨다. “나는 용이었다. 젊음을 누릴 시간도 없었지.”
맥크리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찾아낸 한조의 사진을 기억한다. 그 거만한 얼굴과 꿰뚫는 듯한 눈. 그는 피스키퍼의 총신에 걸린 무게를 가늠하다가 떠올린다 : 아마도 우리 둘 다 그랬던 것 같군.
그는 싸구려 아파트와 가난한 성직자들과 ²⁾과달루페의 성모와, TV에서 나오는 서부극과 반짝이는 6연발 권총 때문에 종교를 버렸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붉은 협곡과, 그 안에 파놓았던 모래투성이 은신처. 페커리 돼지와 방울뱀. 로드러너 새, 삑 삑. 접는 의자가 머리 위에 보였던 것과, 내려쳐지던 것. 쾅 쾅. 그리고, 채널을 바꾸듯이 : 제네바. 눈 속에 파묻힌 스위스 본부. 알프스 산맥 위를 날아가던 여객기의 은빛 실루엣. 블랙워치. 불면증, 쓴 커피. 무릎 뒤에 있는 날개 달린 해골이 뭐냐고 묻던 작은 여자아이. 일리오스의 태양과, 눈부시게 빛나는 총을 들고 진입하던 것. 그는 심지어 레예스가 그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를 때까지 패던 것도 말해준다. 산타페에서 온 꼬맹이를 위해 모자를 벗게나, 그가 세상을 구했다네, 만세(hoo-ray).
²⁾ 과달루페의 성모
: 멕시코의 국가 상징물이자, 멕시코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
한조는 듣고 있다. 그는 다음 화살을 쏜다. 몇 가지는 전에 들어본 이야기다.
마침내 그는 인정한다. 시마다치고는 드문 관대함이다: “팀이 지원해 줄 거다. 송 양이 그걸 필요로 한다면.”
“그래, 그러겠지.” 제시가 여분의 스피드로더를 찾아보며, 마침내 말한다. 인터넷 사진에서 본 젊고 날카로운 시마다가 19살짜리 자기 자신을 메카 기어 솔리드 멀티플레이어 모드에서 이기는 걸 상상하면서.
---
메르시는 의수 점검을 위해 아침 시간에 예약을 잡아 준다. 그는 라인하르트가 끓인 커피를 들고 치료소를 나서는 브리기테와 마주친다. 그녀가 ‘high noon’이라고 명랑하게 외치며 머그 잔을 들어올린다.
“아가씨, 아직 9시도 안 됐거든.” 그가 웃어넘기며, 브리기테의 어깨를 툭툭 친다.
“맞아요, 하지만 당신 캐치프레이즈잖아요!” 브리기테가 웃는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시계가 ‘12:00’을 가리키면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라인하르트가 그걸 크게 말한다구요. 기운이 나게 해줬죠. 항상 세계 어딘가는 정오라구요.”
치료소 안에서, 제시는 검사대에 앉는다. 그는 모자를 벗고 소매를 걷어올린다. “아직도 브리기테가 라인하르트 따라다니는 게 믿겨져요? 그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 늙은 친구랑 같이 망치질을 하고 있네요.”
“그 주제로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앙겔라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농담을 한다. 그녀가 제시의 팔을 꾹 누르고, 검사용 광원을 가까이 당겨 내리고, 살펴본다. “가끔은 브리기테도 라인하르트만큼이나 아드레날린 중독자인 것 같아요.”
진단 결과는 좋지 않다. 근섬유 악화 때문에 팔꿈치 배선이 망가졌다. 외부 판은 부식됐고, 손목에 심각한 부하가 더 가해지면 부서질지도 모른다. 갱신, 교체, 수술이 필요할 거다. 게다가: 혈압이 높다. (그녀가 꾸준히 추천한 결과로) 체중이 몇 파운드 빠지긴 했지만, 당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마시멜로랑 설탕으로 된 케이크 좀 덜 먹고, 물하고 비타민을 섭취해요.” 그녀가 태블릿에 뭔가를 휘갈겨 쓰며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권고 사항을 적어 줄게요 --”
“내가 맞춰 보죠.” 그가 가슴팍을 긁는다. “‘담배를 끊어라’.”
“그리고, 물론, 당신은 무시하겠지만 --”
“내가 다음에 여기 오면 또 써줄 거고.” 그가 소매를 걷어내리며 말을 끝마친다. “수술은 언제 할 겁니까?”
앙겔라는 태블릿 펜으로 이마에 흘러내려온 머리카락을 빗는다. “윈스턴이 다음 정보수집 임무를 11월쯤에 잡겠다고 했어요. 그 다음은, 전부 전투 임무에요. 새 파츠를 주문하고 다른 것 몇 가지는 직접 만들어야겠어요. 회복하는 데 몇 주는 걸릴 거고, 재조정하는 데 또 몇 주가 걸릴 거에요.” 그녀가 태블릿의 달력 어플리케이션을 누른다. “11월 6일을 목표로 하죠. 전투 임무 몇 개는 놓치겠지만, 연휴 전에 길게 쉴 시간이 있겠네요.”
“메리 크리스마스군.” 그가 씩 웃는다. “더 반짝이고, 더 멋있는 금속 팔이라니.”
그들은 그 이후로도 좀더 대화를 나눈다. 근황을 교환하는, 친밀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점점 우울해진다. 시베리아 일이 계속 앙겔라를 흔들어 놓는다: 그녀는 아테나를 통해 리퍼가 공격하는 장면이 찍힌 조악한 화면을 보았고, 그 후 몇 일간 악몽에 시달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리퍼와 76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 그 ‘고루해 빠진(Stick-In-the-Mud)’ 시마다가 무슨 말을 하든, 그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76이 죽을 운명을 피해 살아남은 잭 모리슨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앙겔라는 더 아는 게 없다. 그녀는 그게 잭 모리슨이길 바란다 -- 아주 많이, 그 무엇보다 더. 앙겔라는 그걸 인정한다. 하지만 라인하르트가 옳다. 잭이 살아남았다면, 왜 여기 있지 않는 건가? 돌아와서 다시 그들을 지휘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에 어느 잭 모리슨이 자기를 빼고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지키게 하겠나?
제시는 그가 답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퍼즐이 완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태블릿을 내려다보는 -- 부드럽고, 다정하고, 거의 죄책감을 느끼는 -- 표정과, 6년간 거의 전혀 나이먹지 않은 얼굴. 그는 앙겔라의 경쾌한 목소리 끝에서 비밀을 듣는다. 그녀의 오래된 확언만큼이나 희미하고 미약한 비밀 : 영웅은 죽지 않아요.
그는 그게 싫다. 한조는 더 싫어할 거다.
그들은 좀더 밝은 이야기로 대화를 끝맺는다 : 조만간 저녁 때 다같이 모여서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한 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다. 그녀는 그 때 보길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제시는 어깨를 으쓱하고, 쾌활하게 동의하며, 한조가 같이 오도록 설득해내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떠오른다.
“아, 가기 전에 말인데,” 맥크리가 모자를 쓰며 외친다. “뭐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말해 봐요.”
“어.” 맥크리가 주변을 살핀다. “여기 남는 물건 좀 있습니까?”
“남는 물건이라,” 앙겔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복한다. “남는 의료 용품 같은 거 말인가요?”
“맞아요.” 제시가 엄지를 벨트에 꽂아넣고,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오므린다. 겸손한 학생처럼. “Y'know. 남는 물건. 당신이 안 쓰는 거. 남는 시간에 쓰라고 환자들한테 주는 거요.”
“그 ‘남는 물건’이 뭔지 좀더 자세히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그녀가 대답한다. 앙겔라는 보급품 보관장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을 뒤진다. “반창고 말하는 거에요? 응급처치 키트? 작전용 구급 상자?” 그녀가 어깨 너머를 본다. 질문을 던지는 듯한 표정. “알러지 약?”
“아니, 알잖아요,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제시, 제발 좀.” 앙겔라가 다 안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다 : 우린 오래된 친구잖아요? “뭐가 필요한 거에요?”
그는 망설이며, 발을 이리저리 끈다. 마침내, 실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콘돔?”
앙겔라의 눈썹이 이마로 치솟는다. 아.
“번거로우시면, 괜찮--”
“아니, 아니, 아니에요!” 그녀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안심시키듯 손을 들고 서랍으로 부산스레 달려간다. “아니, 아니, 걱정하지 마요!” 마음이 가벼워진 듯한 웃음소리. “여기, 이 안에. 필요한 만큼 가져가요.”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한숨쉰다. “‘남는 물건’이라니, 진짜로! 걱정시켰잖아요, 수면제 더 달라고 하는 줄 알았다구요.”
제시는 필요한 만큼 집어넣고, 모자를 기울여 인사하고 떠난다. 그는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치료소 밖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제 확실히 이것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할 거다. 그는 앙겔라가 작별 인사를 하며 지었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생각한다 : 짜증스러울 만큼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
---
10월 중순이 되자 열기가 그친다. 토르비욘은 정원에 맺힌 여름의 결실을 수확할 때에 맞춰 포탑 작업을 끝낸다. 맥크리는 그를 돕는다: 둘은 그 계절 마지막 채소가 담긴 기름 묻은 상자를 식당까지 옮긴다. 토마토 샌드위치를 만들던 도중에, 제시는 용서할 수 없는 절도 행위를 발견한다: 누군가 마지막 문 파이를 먹었다. 하나가 과자 봉지와 소다 캔을 들고 휙 지나간다: 그녀는 그가 질문을 던지자 멈춰서서, 자백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사과한다. 맛있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 완전 훔쳐먹을 만했다고. 그녀는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훌쩍 떠나며 어깨 너머로 윙크한다.
“내 샌드위치도 비웃었다고,” 그 날 저녁 늦게, 제시가 열린 창문 밖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불평한다. “그 쪼그만 녀석이 나한테 빵하고 토마토만 먹는 건 역겹다고 말할 배짱이 있더군.”
한조는 콘솔 의자에 앉아, 새 인덕션과 함께 배송받은 새 옷을 훑어보고 있다. “굉장히 맛있을 것 같진 않은데.”
제시는 한조가 아무리 권해도 넘길 수 없는 냄새가 나던, 한조의 평상시 아침 식사를 조롱할지 고민한다. 쌀밥 위에 올린 달걀과 낫토. “그래? Well, 네가 뭘 안다고.”
“네가 보통 19살짜리 애들이 어떻게 감탄사를 쓰는지에 대한 경험이 적다는 걸 알지.”
“그런 것 같네.”
한조는 셔츠 칼라를 뒤집어 봉제 부위가 튼튼한지 확인한다. “송 양은 널 좋아해. 널 친하게 여기고, 귀찮게 굴기 쉬운 상대로 보지. 네가 복수하지 못할 만큼 성격이 좋고 -- 심지어 젠틀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놀리는 거야. 항상 반응을 해주니까, 계속 자극하는 거지. 네가 미끼를 계속 물어주는 한, 끝없이 널 괴롭힐 거다.” 그가 어깨에 걸쳐진 머리끈을 털어낸다. “게이머들은 ‘노력에 대한 보상(Worth it)’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
제시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Well, 고맙네, darlin’. 게이머 용어도 아는 줄은 처음 알았어.”
한조가 셔츠를 내려놓고, 반듯하게 개서, 옆에 놓는다. “감사 인사는 됐다.”
맥크리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연기를 뿜어내고, 창문을 닫고 방을 가로질러 온다. 사냥개처럼, 그는 한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살 찌른다. “말해 봐, 저격수 씨(sharp eye), 알아낸 거 하나만 더 말해줘.”
“뭐 말이냐? 너에 대해서?”
“그래.” 제시가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뒷목 근육을 엄지로 누른다.
한조는 즉시 그 손길에 몸을 맡기며, 고개를 늘어뜨린다. 그가 의자에 뒤로 기대며 말한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 샌드위치 놀렸으니까.” 그리고, 씩 웃으며, 귀에 대고 낮게 속삭인다 : “이번엔 야한 걸로 말해줘.”
한조가 눈을 굴린다. “맥크리.”
“좀 상냥하게 해줘, honey, 오늘 나한테 사람들이 너무 나쁘게 굴었다고.”
“그래서 나한테 그 터무니없이 큰 물건을 칭찬해 달라고 하는 거냐?”
제시의 눈썹이 치켜올라간다. “응?”
“분명히 말했다.”
“아, 아니, 이제야 말을 해주네. 역시 날 그렇게 계속 참게 놔두면 안 되지.”
“좀 참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다.”
“한-조오오.” 제시가 코를 묻는다: 한조는 코웃음치며, 장난스럽게 총잡이를 뿌리친다. 제시는 다시 엉겨붙으며, 한조의 다리 사이에 쭈그리고 앉는다. “말해주지 않으면 노래 부를 거야. 이 예쁜 귀에 대고 컨트리 송을 불러버리겠어.”
그 말이 먹힌다. 한조는 거친 한숨을 내쉬며, 그의 텁수룩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다. 그가 제시의 뺨을 꼬집으며 낮게 말한다. “크고, 볼썽사납고, 약간 왼쪽으로 휘어 있지.”
제시가 깜짝 놀란 척하며 숨을 들이마시고, 한조의 엄지와 검지에 입술이 꼬집힌다. 그가 일부러 지어낸 소프라노 목소리로 노래하듯 외친다. “아--아, 아니거든!”
한조가 아래로 기대며, 그의 옷을 주워들고, 서랍장 위에 올려놓으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비어 있는 서랍장 맨 아래 칸을 열고 셔츠를 넣고 닫는다. “네 나머지 부분도 그렇다.”
---
저녁 식사 후, 휴게실에는 노랫소리와 시끄러운 웃음소리로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루시우와 하나가 차례로 사회를 보고, 앙겔라와 메이가 듀엣으로 뱅글스의 Manic Monday 를 부른다. 라인하르트가 브리기테에게 헌사하는 The Safety Dance 를 열창하자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제시는 프로클레이머즈와 빌리 조엘의 노래를 부르며 떼창을 유도하고, 토토의 Africa 를 모두와 함께 부르며 마무리짓는다. 하나는 자신이 이 행성에서 제일가는 얼간이들 무리에 들어오게 됐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공표한다.
한조는 참가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겐지와 함께 구경만 한다. 젠야타는 토르비욘과 한조를 의식하며 거리를 두고, 멀리 구석에서 지켜본다. 사티아는 나오지 않았다. 맥크리는 그녀가 지나가면서, 망설이다가, 그들을 흘끗 보는 모습을 언뜻 본다. 그가 제대로 보려 돌아봤을 때, 그녀는 없다.
“제가 그 사람 불렀어요, y'know,” 하나가 말한다. 그녀는 한조와 맥크리 사이, 소파에 앉아 있다. 루시우가 다음 노래를 부른다 : 한조는 그녀가 옆에 앉는 걸 허락하고, 긴장을 풀며, 그녀의 통통 튀는 존재감을 거의 용인한다. 맥크리는 그녀가 일부러 그런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쪼그만 방해꾼 녀석. "알죠, 그 비슈카르 여자분? 와도 된다고 했어요. 올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초대하긴 했죠."
한조가 발끈한다. “왜?”
"그 사람도 여기 있으니까? 내 말은, 왜 안 부르는 거에요? 내가 안 불렀으면 예의없는 짓이 될 뻔했잖아요." 그녀가 제시에게 딸기맛 초콜릿 바 한 봉지를 준다. "사람 괜찮아 보이던데. 내 말은, 루시우가 싫어하는 건 이해하지만, 나한테는 못되게 군 적 없거든요. 조용한 스타일이고." 하나가 목에 힘을 준다. "그리고, 볼 때마다 화장이 완벽한 거 있죠? 그쪽 남자들이 그런 걸 신경쓸 것 같진 않지만, 난 신경쓰거든요."
"조심해야 할 거야," 제시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한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분위기가 좀 날카롭거든. 루시우뿐만이 아냐. 나중에 설명해 줄게."
“어. 그래요.” 그녀가 과자를 아작아작 씹으며, 뺨을 부풀린다. 햄스터처럼. “그럼 다른 거 할 때도 부르면 안 되는 거에요?”
한조가 팔을 뻗어 봉지 안에서 과자 한 조각을 꺼낸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지금까지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기대하진 말고.”
---
제시는 사람들이 모두 자러 간 후 휴게실을 치운다. 가구를 바로잡고, 쓰레기를 치우고, 그릇을 집어넣고,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고, 빗자루로 바닥을 쓴다.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이 소다 캔이 있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조가 문간에 서 있다. “아직 여기 있었군.”
제시가 올려다본다. 그가 미소지으며, 목을 긁적거리고, 기계 손가락으로 빗자루 손잡이를 톡톡 두들긴다. “아, 미안해, darlin’. 방에서 기다렸어?”
“그래.” 한조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도와주마.”
“고마워, honey.” 그가 빗자루를 바닥을 빠르고 넓게 쓴다.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야, 이렇게 놀고 있으면.”
“그러냐?”
“그래, 제네바 본부에서도 항상 이런 식으로 놀았거든. 임무 사이사이 작은 모임을 하곤 했지. 가끔은, 팀끼리 뭉치려고 모임하는 거였고. 아니면 그냥 스트레스 푸는 거였지.” 그는 소파 쿠션 사이에서 버려진 과자 조각 두 개를 꺼낸다. “정크 푸드 먹고, 엉망진창으로 놀면서, 정신에서 임무 모드를 끄는 거야.”
한조가 노래방 기기 위에 놓여 있던 소다 캔 모양대로 동그랗게 남은 끈적한 자국을 닦아낸다. “재미있게 노는 것 말이군(Having fun).”
“그래. 주로 그걸 많이 했지.” 제시는 한조가 노래방 기기의 반짝거리는 디지털 기판을 훑어보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멈춰서서, 눈을 가늘게 뜬다. 스치는 데자뷰. “네가 노래 부르는 것도 듣고 싶은데.”
코웃음. “난 노래하지 않는다.”
“전혀?”
“전혀. 내가 갖고 있지 않으며, 갖고 싶어하지도 않는 능력이지.”
제시는 깔끔하게 모인 먼지를 쓸어내고, 입술을 오므리며, 떠오르는 걸 큰 소리로 입 밖에 낸다: “그걸 포기하는 게 어렵단 말이야, sweetheart. 자기 목소리는 너무 예쁘다고.”
한조는 느긋하게 노래를 선택하는 패널을 두들긴다. “안됐구나. 그냥 내가 한 말을 믿으면 될 텐데.”
제시는 빗자루질을 멈춘다. 그가 어깨를 똑바로 편다. 그리고 나서, 굽힌다. “춤은 어때?”
“어떻다니?”
“춤은 출 수 있어?”
한조가 당당하게 코웃음치며 말한다. “물론.” 그리고, 경계하며 : “너는?”
“당연히 출 수 있지.”
궁수가 멈칫한다. “제대로 된 춤 말이다.”
“그래!”
“라인 스텝이나 마카레나 말고.”
코웃음. “진짜 춤 말이야, honey. 수업도 들었어. 모조리 다.” 제시가 분위기를 띄운다. 그가 벽에 빗자루를 기대 놓는다. “이리 와. 보여줄게.”
한조는 망설인다. 그는 기기에서 떨어져나와: 어깨 너머를 본다. 복도에 누가 있는지 주의깊게 확인하는 거다.
제시는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방을 가로질러 온다. “늦은 시간이야, sweetheart, 여긴 아무도 없어.”
“아직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하지 마, 아무도 안 볼 거야.” 그는 한 손으로 노래를 고르며, 다른 쪽 손으로 한조의 팔을 잡는다. 제시는 그가 물러나자 팔을 놔준다. “진짜야, 자기. 여긴 우리 둘밖에 없어.”
결국 한조가 말한다: “문 닫아.”
아찔한 황홀감이 제시의 혈관을 내달린다. “당연한 말씀을, darlin’.”
“고맙다.”
그들은 문을 닫고, 테이블을 옮기고, 자리를 잡고 붙어 선다. 한조가 첫 곡을 고른다: 뭔가 가볍고, 통통 튀는, 2030년대 4분의 3박자 전자-재즈 노래다. 제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고, 보컬 없이는 박자를 찾을 수 없다. 그는 한조의 발가락을 밟고 그 대가로 정강이를 살짝 차인다.
“발 조심해,” 한조가 꾸지람을 한다. “내가 리드하지.”
“왜 난 리드하면 안돼?” 그리고, 건방지게 : “다른 노래로 하자. 네 사랑스러운 발목에 멍 들게 하긴 싫어.”
그들은 좀더 느린 박자의 곡에 맞춰, 스텝을 따라 미끄러지고, 번갈아서 리드한다. 제시는 그 노래를 알고, 들으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진다(tender). 일부러 그 곡을 골랐다: 사랑에 눈이 먼 바보들에 대한, 오래된 발라드. 이 시점에서 100년은 넘은 노래지만, 아직도 주크박스로 많이들 듣는 노래다. ³⁾전설적인 사랑 노래. 로큰롤의 제왕. 한조가 얼굴을 찌푸린다. 엘비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는 익숙치 않다. 그들은 두 번 정도 무릎을 부딪힌다. 제시는 비틀거리며, 소파에 부딪히고, 턱을 당긴다. 한조의 이마에 코가 닿는다. 반쯤 키스할 뻔했다.
³⁾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love.
“젠장, 농담이 아니었네.” 그가 키득거린다. “진짜 춤 출 줄 알잖아.”
한조가 제시의 등 아래쪽을 손으로 누른다. “더 가까이.”
숨도 쉬지 못하고, 제시가 귀를 쫑긋 세운다. “뭐라고?”
“붙어라. 이리 와.”
“아, sweetheart, 자기한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
쉬익. 너무 빠르다. 예상했어야 했어. 한조가 그를 바닥까지 낮춘다. 제시는 추락을 예상하지 못한 채, 팔 안에 갇힌다. 그는 놀란 토끼 같은 소리를 낸다. 한조가 그를 당겨, 들어올리고, 돌려세운다. 낮고 깊은 소리로 웃으며. “가소롭군.”
제시는 허리를 펴고, 그에게 기댄다. 머리가 빙빙 돈다. 아직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다. “가끔은 자기가 언제쯤 나 가지고 노는 걸 그만둘지 궁금해.”
“그만둘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제시는 그에게 머리를 기대고, 발을 끌며 걷는다. “딱 한 번만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을지도 모르지.”
“그러냐?”
“그래.” 제시가 오싹해한다. 뱃속이 올라붙는 것 같다. “제발.”
한조가 말한다. “그러지.”
심장이 목까지 뛰어오른다. “진심이야?”
“한 말은 지킨다.”
그가 몸을 떤다. 드디어. “같이 있는 거 말이야. 너도 좋은 거지, 응?”
“그렇다.”
“날 좋아하지 않았으면 안 그랬을 거고.”
“그러지 않았겠지.”
그가 얼굴을 붉히며, 허둥거린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 “이런 말 혹시 들어본 적 있어, ‘밧줄로 달이라도 낚아주겠다’?”
“아니.” 한조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것도 텍사스 속담이냐?”
그 말 때문에, 제시는 일부러 그의 발을 걸어서 넘어뜨릴까 고민한다. “남부 속담이야, 그래. 뜻은,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럴 거냐?"
"당연히 그럴 거야. 너도 알잖아. 넌 내 목숨을 구해줬어. 난 네 목숨을 구해줄 거고. 천 번이라도 넘게 그럴 거야." 그가 숨을 들이마시고 따끔거리는 감각을 느낀다. 제시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될 대로 되라지(to hell with it). "넌 내 위에서 빛나는 별이야, 한조. 넌 내 하늘 위의 노란 달이야(You’re the stars shinin’ above me, Hanzo. You’re the yellow moon up in my sky)."
그들은 멈춘다. 곡이 바뀐다. 한조는 그에게 미끄러지듯 기대며, 무게를 싣는다. 그가 턱을 당기며, 어깨 너머를 본다. 문은 아직 닫혀 있다. 보는 사람은 없다.
그는 그에게 키스한다. 두 번째는, 부드럽게. 그들은 청소를 끝내고,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간다.
---
"제시," 그들이 침대에서 잠들 때, 그가 약간 쉰 소리로 말한다. 총잡이는 잠깐 잠들었었지만: 그 순간 깨어난다.
그들은 뒹굴고 몸을 옮긴다. 그가 물러난다. 한조가 그를 가까이 당긴다. 몸을 단단히 감고, 부드럽게 턱을 만지며, 귀를 잡는다.
"왜 그래?" 그가 작게 말한다. 몸 안이 공기로 변하는 것 같다.
한조는 한숨처럼 그 말을 반복한다. 두 음절로, 이에 마찰되는, 졸리운 듯한 즐겁고 부드러운 소리. "제-시."
---
밤이 되자 루시우는 헤드폰을 끼고 스케이트를 탄다. 그는 격납고를 돌고, 발사대 주변을 지나, 적재 구역으로 돌아간다. 공기는 가볍고 차다. 머리 위에는 새카만 대서양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지평선 근처는 빛으로 오염되어 흐릿하다. 부식된 에나멜 같은, 보기 싫은 오렌지색. 새벽 2시: 잠들 수가 없다. 자주 그랬다.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까지 엄마가 들려주던 브라질 민요를 듣는다.
그는 시야 끝에서 그것을 목격한다: 밝은 푸른색이, 작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 통신 타워 통로 옆에서 깜박이는 빛을. 루시우는 드론 경로를 따라가며, 이어폰 하나를 빼고, 후드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더 분명히 보인다. 그가 멈춘다. 그녀가 있다.
등대 불빛이 레몬 같은 노란색으로 반짝인다.
사티아가 벽에 기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무릎 위에 누워 있다: 다른 고양이들은 무릎 근처에서 뛰어다닌다. 그녀는 꼭두각시 인형 줄을 조종하듯 손을 움직인다. 푸른색 경화광이 손바닥의 가속 디스크에서 희미하게 빛난다. 고양이들은 그녀가 만든 자그마한 구조물들을 쫓아다니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며, 푸른 빛을 앞발로 잡으려고 한다. 그녀는 장난감 쥐, 종 모양 꽃, 기하학적 별 모양으로 이루어진 끈을 만들어낸다.
그는 바람에 실려오는 그녀의 온화한 목소리를 한쪽 귀로 듣는다. 고양이에게 말을 걸며, 웃고 있다. 힌디어다 :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역주 -------------------------------------------------------------------------------
¹⁾ 석양의 무법자 테마 : 그 유명한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dDfte32nAHc
²⁾ 과달루페의 성모 : 멕시코의 국가 상징물이자, 멕시코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

³⁾ 전설적인 사랑 노래 :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love.
챕터12
Hang the Fool - Chapter 12
저자(Original Author) almamedule
트위터 twitter.com/almamedule
텀블러 arcanebarrage.tumblr.com
원작 링크(Link to original writing) http://archiveofourown.org/works/7127210/chapters/17655721
번역(Humble translation) twitter.com/pasyuratan
< 주 의 >
아주 강한 한조맥 수위요소 있음
もちはもちや
모치와 모치야 - “떡을 사려면, 떡 장사꾼에게 가라”
어떤 일을 해내려면 전문가에게 가야 한다는 뜻의 속담.
계절이 바뀐 지브롤터에 약간 훈훈해진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 한조는 하루를 -- 초, 분, 시간, 주, 주기 단위로 -- 쪼개어 분석하기 위해 잠시 멈출 때마다, 바람에 뱃속이 따끔거리며 갉아먹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가슴 속에 새롭게 생겨난 이상한 구멍과, 그 구멍을 채워주는 사내를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항상 제시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연습이나 훈련 때 그는 머리를 비우고 손에 쥔 과제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고요한 순간, 특별히 할 게 없을 때, 일하느라 바쁠 때는 제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온다. 가끔은 그 생각에 압도된다. 그러면 잠깐 멈춰서서, 관찰한 것들을 분해하고, 한 조각씩 천천히 살펴봐야 한다. 조심스럽게 머릿속에서 수행하는 ¹⁾제유법 : 리볼버를 빙글빙글 돌리는 무법자, 등 뒤를 봐주는 동료, 친구(the friend), 중독자(the fiend), 사랑하는 이(the lover), 바보 녀석(the fool).
¹⁾사물의 한 부분으로 그 사물의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
그의 바보 녀석. 이제는 예전 같은 냉혹함 없이 -- 애정 어린 손길로 부르는 호칭. 나의 것을 의미하는 네 글자 단어.
---
함께 통신 타워에서 평소처럼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겐지가 그 이야기를 꺼낸다. 모국어로 대화하는 동안 한조는 차를 마신다. 아래쪽에서는 메이 링, 레나, 하나가 토르비욘의 정원에서 호박을 따고 있다. 셋의 명랑한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온다. 겐지는 드디어 시원해지기 시작한 날씨를 언급하며, 하나무라의 단풍잎, 시원한 저녁 공기, 깨끗한 겨울 하늘의 별들을 회상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네팔에서 보는 달과 비길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하늘에 흰색 잇자국을 내듯 뾰족하게 솟아난 산 위로,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밝게 빛나던 달.
“언제 한번 같이 갈 수도 있을 거야,” 겐지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말을 꺼낸다. 주의를 기울여 시험해 보는 듯한 제안. “형이 괜찮다면, 우리 둘이서 말야. 한 번쯤 돌아가고 싶어, 특히 형이 같이 간다고 하면.”
한조는 여자들이 호박에서 초록색 줄기를 잘라내고, 껍질에 연필로 웃는 얼굴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며, 달을 생각하면서. “흠. 그럴 수도 있지.”
“정말로?” 겐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럼 성지 순례도 할 수 있겠다, 그치?” 그리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볼 게 많아. 내가 수련했던 사원도 보여줄 수 있어.”
‘사원’ 이라는 단어가 한조를 현실로 돌려놓는다. “뭐라고?” 그가 고개를 흔든다. “내가 착각했구나. 하나무라에 같이 가자고 하는 줄 알았어.”
겐지가 김빠져한다. “아냐! 네팔 얘기하는 거였어.” 약간 뚱한 목소리. “내 얘기 안 듣고 멍하니 있는 게 오늘 아침만 해도 이걸로 3번째야. 괜찮은 거 맞아?”
한조가 차를 홀짝인다. “나는 괜찮다.”
“아, 한조,” 겐지가 고개를 기울이며 답한다. “한 번은 이해할 수 있고, 피곤하면 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세 번이면 버릇이야.”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다.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거지.”
“아니다.”
“아니, 맞아.” 겐지가 통신 타워 튀어나온 부분에 걸친 다리를 느긋하게 흔든다. “말할 것도 없어.” 그가 몸을 쭉 뻗고 하품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내 생각이 확실히 맞아.”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다. 그 이상은 아냐. 많은 일들이 있잖느냐, 다가오는 임무 하며 --”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아.” 겐지가 간단명료하게 말을 자른다. “같이 임무 뛰던 시절의 재밌는 얘기들. 남자들끼리 있으면, 지저분한 농담을 했지. 소싯적에 친구들이랑 같이 술집 돌아다니던 게 생각나곤 했어.” 그가 손가락을 하나 세워서 좌우로 까닥거린다. “하지만 부끄러운 얘기를 원한다면, 나한테 빚을 져야 할 거야. 내가 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아직 내 친구라고.”
한조가 물러난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모르는 척 하지 마, 한조!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겐지가 웃음을 터뜨린다. “맥크리!”
한조의 시선이 재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뭔가 초점을 맞출 대상을 찾는다: 그는 당황하며 저 멀리 레나의 무릎 위에 올려진 황금색 호박을 쳐다본다. 심장 박동 하나 후, 그가 말한다 : “어디까지 알고 있냐?”
겐지가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한다. “뭐, 형이랑 맥크리는 매일 같이 다니고, 거의 하루종일 붙어 있지. 내가 시마다 가문이 아니었더라도, 단순한 훈련 파트너 이상이라는 건 알아냈을 거야.” 그가 어깨를 돌린다. “하지만, 내가 시마다 가문이기 때문에, 그 이상을 알아차렸지. 형은 가끔씩 맥크리 말투로 말하거든. 단어에 주는 강세 같은 거 말야. 맥크리 억양으로.” -- 겐지가 남부 억양을 흉내낸다 --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알지? 둘이 얘기도 많이 하잖아. 맥크리가 항상 형을 쳐다보는 걸 봤어. 형 근처에 있으면 얼굴이 빨개지더라. 한쪽만 그랬지. 형은 빨개진 적 없거든. 그런데 같이 순찰 나가면서 트럭으로 걸어갈 때 형이 맥크리 귀를 잡는 거 봤어. 유키한테도 자주 그랬었지.”
한조가 그 이름을 듣고 표정을 구긴다. 그는 팔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가 뺐다가 한다. 겐지가 그걸 알아차린다. “몇 번은, 형한테서 맥크리 담배 냄새가 났지. 형이 돌아왔을 때 머리끈이 느슨해진 적도 있는데, 훈련하다 온 게 아니었으니, 다른 걸 하다가 풀어진 게 틀림없고. 아” -- 그가 머리를 끄덕인다 -- “러시아 다녀온 다음부터 형은 맥크리 방에서 밤을 보내지. 맥크리는 길고양이한테 내놓은 물고기보다 더 깨물린 자국이 많고.”
한조가 말한다. “겐지.”
“그 때부터였던 거지, 안 그래? 아니면 그 전인가? 잘 모르겠네. 그래도, 형이 맥크리를 구하러 돌아갔을 때, 확실히 진짜라는 걸 알았지.” 신이 난 목소리. “그리고, 그 지하실에 갇혔을 때 형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서, 원인이 추위 아니면 욕구불만(blue-balls)일 거라고 --”
“누가 이걸 다 말해줬지?” 한조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끊는다.
“아무도 안 말해줬어!” 겐지가 웃음을 터뜨린다. “한조, 내가 알아낸 거야.” 그가 부드럽게 안심시킨다. “형이 사생활에 얼마나 민감한지도 알고 있고.”
“또 누가 알고 있냐?”
“아직까지는 아무도 뭐라 한 적은 없어. 그래도 다들 눈은 있다구. 둘이서 항상 같이 다니는 걸 보고 추측을 하겠지.” 겐지가 고개를 돌려 다시 형을 본다. 바이저가 반짝거린다. “숨기려고 하는 건 아니지, 그치?”
“아냐.” 한조가 혀를 찬다. “그런 게 아니다.” 그는 하나가 호박 안에서 씨가 가득 든 노란색 속을 한 줌 쥐고 메이 링에게 내밀자, 메이가 웃음을 터뜨리는 걸 지켜본다. “이건 개인 문제야. ‘모두가 아는 것’의 정확히 반대 뜻이지.”
“형은 사람들이 선을 지키는 걸 좋아하지. 하지만 여기선 그럴 가능성이 낮아, 형. 가문에 있던 때랑은 달라. 팀은 이해해 줄 거야.”
한조가 머그 잔의 빈 공간에 대고 중얼거린다. “팀은 그냥 자기 일에나 신경쓸 수도 있지.”
“으휴, 한조.” 겐지가 고개를 젓는다. “진짜 그런 식으로 할 거야? 제발, 좀 -- 방어적으로 굴지 마.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다같이 있을 때 발표한다든가?”
“아마도? 내가 계획을 했는지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빠르다. “맥크리와 난 준비를 해 왔다.”
겐지가 콧노래를 부른다.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또 한 번의, 조심스러운 침묵. 겐지는 자신의 머리끈을 손가락으로 잡고, 봉제 부위를 살핀다. “유키 때랑은 다르지?”
한조는 자신이 둘 중 어느 것에 더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 겐지가 그렇게 쉽게 그녀를 한 번 더 언급한 것인지, 아니면 그 맥락에서 그 이름을 꺼내는 뻔뻔함인지. “아니! 그 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따끔할 정도로 방어적인 태도 : “네 입으로 말했잖냐: 가문에 있던 때와는 다르다고.”
“잘됐네.” 겐지가 다시 수평선을 내다본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난 맥크리가 좋아. 항상 좋아했지. 중국에 가기 전에 있었던 일을 듣고 나서부터, 형이랑 맥크리 사이가 좋아지길 바랐어. 항상 오버워치에 돌아오면 괜찮을 만한 사람으로 맥크리를 떠올렸지.”
한조는 1분 정도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다가, 마침내 입을 뗀다 : “그 녀석이 한 번도 참치회를 먹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냐?”
“진짜? 와우. 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 잘 때도 그 모자 써?”
“그럴 수 있었으면 그랬을 거다. 박차도.”
“세상에.” 겐지가 코웃음친다. “부츠 벗을 때는 뒤집어서 벗지, 최소한 뒤집어야 벗을 수 있는 거지?”
“그래. 신고 벗는 게 정말 불편하지.” 한조가 한숨을 쉬며, 어깨에서 머리끈을 털어낸다. “그래도, 예의는 있는 녀석이다. 그런 구석을 찾아보면, 확실히 있어. 그 ‘손님 환대’하는 문화 말이다. 그게 예의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주 오랫동안 날 ‘시마다 씨’라고 불렀지.”
겐지가 우쭐해한다. 명랑한 용. “내가 다 알려준 거야. 감사 인사는 됐어.”
한조가 팔짱을 끼고, 가슴 위로 숨을 내쉬며, 점잔을 뺀다. “가끔씩 형제 관계를 떠오르게 하는 말과 행동도 하지. 태도 말이다. 그런 성격이 있어. 헌신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똑똑하기도 해. 여우만큼이나 영리할 때도 있었다.” 그는 애정을 숨기지 않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리고 너무 미국인 같아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을 때도 있지. 그 녀석이 일본 땅을 밟는 걸 상상도 못 할 것 같은 날도 있어.”
“맥크리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몰라. 내 말은, 내가 알기론, 형은 텍사스에 가본 적 없잖아.”
한조가 턱을 들어올린다. “그 녀석은 텍사스 출신이 아니다.”
“우우우.” 겐지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뒤로 등을 기대며, 노래하듯 흥얼거린다. 바이저가 아니었다면, 한조는 그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거, 실례했네.”
“어찌됐건.” 한조가 눈을 굴린다. “그 얘기나 해줘 봐라.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제일 좋은 걸로.”
“그게 다야? 형, 그거 알아: 이 모든 걸로 날 놀래켜 줬으니, 그 상으로 두 개 해줄게.”
한조가 손가락을 편다. “세 개.” 겐지가 항의하자, 그는 손을 뻗어 바이저 옆부분을 가볍게 두들긴다. 맥크리가 가장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를 써먹으며: “시베리아에서 그렇게 까칠하게(sass) 굴었던 보상으로.”
겐지는 결국 네 개의 이야기를 해준다: 암스테르담 임무, 다같이 영화를 보다 엉망진창이 됐던 저녁, 제네바 훈련 캠프(얼굴에 상처 난 지휘관 레예스도 등장했다), 그리고 그 악명 높은 타코 사건. 형제가 웃어대는 소리에 놀란 여자들이 호박에서 시선을 떼고 올려다본다.
---
한조가 제시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을 때, 통신기가 울린다. 한조는 약간 뒤척인다: 통신기가 다시 삑삑거린다: 그가 일어나 앉는다. 벽시계는 0320시를 가리키고 있다. 한조가 베개를 잡고 제시의 덥수룩한 얼굴에 찔러넣자, 그가 꿈틀거린다.
한조가 총잡이의 엉덩이를 때린다. “호출이다.”
제시가 벌떡 일어난다. 그가 침대 밖으로 굴러나가며, 공중에 털이 수북한 다리를 뻗는다. 몸에 휘감긴 시트가 침대에서 흘러내린다. “제기랄.” 둘은 동시에 바닥에 놓인 자기 통신기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제시는 실수로 팔꿈치로 한조를 찌른다.
윈스턴이 급히 대답한다. 앙겔라가 76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거다: 윈스턴은 긴급 회의를 위해 시베리아 팀을 소집한다. 소집까지 딱 1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들은 옷을 입고, 출발해서, 레나와 메이 링 바로 다음 순서로 연구실에 도착한다. 마지막으로 온 건 라인하르트다. 앙겔라는 먼저 와서, 아테나의 스크린에 떠오른 메시지를 곱씹고 있다.
치글러 박사에게,
내가 보내는ㄴ(sennding)시간보다 더 적절한 때에 이 메시지가 도착하길 바라네. 연락ㄱ한(spokke)후로 꽤 시간이 지났지 --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 해도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아. 계속 그쪽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잘 지낸다는 걸 알게 돼서 마음이 훨씬 편해. 자넨 최소한 그럴 자격이 있어. 자네처럼 -- 착하고, 이타적이고, ㅊ철저하게(qquintessentially) 선한 사람들은 -- 이 세상이 암울하게라도 계속 돌아가게 하도록 해주니까. 그래서 난 우리가 자네에게 그 세상을 ㅈ줄 수 있었으면ㄴ(ccould have givenn)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²⁾현자는 임종에 이르러서야 어둠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다지만, 나는 말에 진리가 없는 놈들 중 하나인 것 같네. 말보다는 행동이 더 크게 소리내는 법이지. 결국 우리가 모두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해줘서 ㄱ고마워(Thankk you). 내가 들어가고 있는 중심부에도 돌아왔지. 어쩌면 언젠가 이 모든 걸 넘어서 다시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잘 있게, 앙겔라.
-76
²⁾ 원문은 “I guess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ut I suppose I’m one of those whose words didn’t fork much lightning.”
시인 딜런 토마스의 ‘Do not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의 일부에서 인용한 것.
그들이 다 모이자 아테나가 시작한다. “이 메시지는 멕시코 베라크루즈 근처에서 예약 발송 시스템을 통해 메르시 요원의 개인 메일함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추적한 결과, 최종 로그인 후 특정 시간이 경과된 후에 자동으로 보내진 겁니다.”
“³⁾‘죽은 자의 스위치’의 디지털 버전 같은 거죠.” 윈스턴이 중얼거린다.
³⁾dead-man’s switch.
주인이 죽거나 의식 불명이 되고 특정 시간이 지나면 작동하는 스위치.
목적은 다양함(안전 확보, 활동 정지 등).
“메시지 내용 중에 보이는 규칙적인 오타를 분석한 결과,” 아테나가 계속한다. “두 번 반복되는 글자들이 ‘n-k-q-c-n-k’이라는 문자열을 만듭니다. 그냥 보기에는 의미 없어 보이지만, 테스트 알고리즘에 넣어서 해독할 방법을 찾아냈어요.”
“기본적인 ⁴⁾시프트 암호입니다.” 윈스턴이 설명한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어떤 코드 규칙에 따라 암호화된 문자열이죠. 규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알아냈어요.” 그가 팀원들의 표정을 훑어본다. “해독 코드명은 ‘옥수수밭’이었습니다. 그 코드에 넣으면, 이 문자열은 ‘도라도(Dorado)’로 변해요.”
⁴⁾알파벳을 특정 규칙에 따라 다른 알파벳으로 대체하는 암호.
앞이나 뒤로 몇 글자씩 이동(shift)하는 방식이 흔해서, 시프트 암호라고 부른다.
“이봐,” 맥크리가 말한다. “거기 가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임무 수행한 적이 한 번 있어.” 그는 망설이며, 시선을 옮긴다. “총을 맞았었지.”
“메시지 발송 날짜와 시간도 암호화된 형식의 순열이었습니다.” 아테나가 계속한다. “베이스-64 해독기로 분석한 결과, 그 순열이 도라도의 루메리코 발전소 좌표와 일치한다는 걸 알아냈어요.”
“좌표, 코드, 숨겨진 메시지.” 윈스턴이 끝맺는다. “76이 누구건 간에, 이 장소에 우리 시선을 끌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
“함정이야,” 한조가 말한다. “거의 확실히.”
“그 코드명,” 라인하르트가 중얼거린다. “‘옥수수밭.’ 잭이 어릴 때 농장에서 자랐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래요. 76은 잭에게도 우리 시선을 끌려 하고 있어요." 메르시가 키패드의 버튼을 누르자 창에 다른 화면이 뜬다. 흰색 구체가 페이지 최상단의 붉은 제목 배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아틀라스 뉴스의 올림피아 샤라는 기자가 쓴 사설이에요. 7월에 나온 겁니다. 잭과 그가 남긴 것, 강습 사령관으로서 그가 미쳤던 영향에 대한 내용이에요. 러시아 사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행부수가 적었지만, 아테나가 보관된 복사본을 찾아냈어요. 보세요." 앙겔라가 문단 하나에 하이라이트를 친다. 솔져:76 이라는 글씨가 굵게, 밑줄까지 쳐져 있다. "76에 대해서 알고 있던 건 우리뿐만이 아니에요. 여기에 간략하게 언급된 걸 보세요. 가면을 쓰고 도둑질, 습격 행위를 하는 자경단원. 개발 중인 무기를 훔친 혐의도 있어요. 법의학 전문가가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과 잭이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보였던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확히 같은 키에 같은 체형입니다." 그녀가 스크린을 단호하게 가리킨다. "첫번째 UN 청문회 때 제가 했던 증언까지 인용했어요, 바로 여기. 더 나가서는 잭의 시체가 처음부터 발견되지 않았다고 추측하기까지 했어요!”
“‘폭발.’ ‘기지 습격.’” 한조가 기사에 나온 혐의 목록을 읽는다. “‘막대한 피해 유발.’” 그가 앙겔라를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리퍼도 같은 일을 했다.”
“이건 76이 리퍼가 아니라는 증거에요,” 앙겔라가 간결하게 대답한다. “리퍼는 잭의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았지만, 76은 일치해요. 연관성은 명백합니다.”
한조가 앙겔라를 쏘아본다. “그렇다고 이 메시지가 76에게서 온 거라는 뜻은 아니다. 예전에 왔던 메시지들도 다 마찬가지야. 그 교신이 합법적이라고 확신해선 안돼. 탈론은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해커도 고용하지. 메일 서버 주소는 조작할 수 있고, 위치도 속일 수 있--”
“이걸 무시할 수는 없어요,” 앙겔라가 말을 끊는다. 그녀가 얼어붙는 듯한 시선으로 한조를 노려본다. “이게 함정이든 아니든, 지금 분명히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린 그게 뭔지 알 자격이 있어요.”
메이 링이 끼어든다: 한조는 앙겔라의 차가운 시선에서 주의를 돌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메시지를 보낸 게 누구든 간에, 우리 주의를 잭과 도라도 쪽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어요. 치글러 박사님과의 연락을 중단하기 전에 76이 간다고 했던 곳이 거기 아닌가요?”
“맞아요,” 메르시가 답한다. “갱단 행동을 조사하러 간 거죠.”
“잭이 하던 말 같은데.”
모두가 돌아선다: 맥크리가 76의 메일을 다시 읽고 있다. 그가 빨간색 플란넬 셔츠 깃을 긁는다.
“이 문장 말입니다. 여기.” 그가 스크린을 가리킨다. “죽을 때가 돼서 어둠이 옳다는 걸 깨닫는 현자. 이건 시(詩)에요.” 맥크리가 올려다본다. “잭이 자주 외우던 시. 그렇지 않습니까?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기억나요?”
한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 시를 알고 있다. “딜런 토마스.” 그가 목을 가다듬자 팀이 그에게로 돌아선다. “유명한 작품이다.”
“나도 기억이 나네,” 라인하르트가 작게 말한다. “잭이 임무 전에 외우곤 했었지.”
“그렇다면 이건 함정이거나, 도와달라는 요청이거나, 그 두 개가 요상하게 섞인 것 같은데,” 레나가 생각에 잠긴다. “결국 메이가 했던 말로 돌아가네. 어떻게 해야 하지?”
윈스턴이 턱을 긁는다. “루메리코 발전소 근처 반경 몇 킬로미터는 전파 송신이 막혀 있어요. 위성으로는 관찰할 수 없을 거고, 드론도 격추당할 겁니다.”
“그리고 이게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는 미끼라면,” 메이 링이 말한다. “팀을 보내는 건 완전히 걸려드는 행동이에요.”
“어찌됐든, 요원을 보낼 수는 없네,” 라인하르트가 덧붙인다. “UN이 모든 단체 임무 활동을 감시하고 있어. 런던 정보수집 임무처럼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할 걸세.”
“그나저나, 그 런던 임무도 2주 뒤에 시작인데.” 레나가 한숨을 쉰다. “지금 당장은 두 임무에 분산할 인력이 부족해요.”
“그럼 -- 날 보내요.”
다시 팀원들이 맥크리에게로 돌아선다. 그는 벨트에 엄지를 걸고 마주 선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단독 임무로 하는 겁니다,” 그가 말한다. “내가 확인하게 해줘요. 블랙워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도라도에서 임무 뛴 적 있습니다. 가명을 써서 신분을 숨기고 돌아다니면서, 알아낸 걸 기지에 보고하는 거죠.”
“혼자서 말입니까?” 윈스턴이 묻는다. “제시, 그건 위험해요.”
“쓸모없어지는 것보단 낫지,” 그가 받아친다. “난 왕의 길 임무에도 참가 안 하잖아. 곧 수술 일정도 잡혀 있고. 그냥 그 때까지 빈둥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구.” 그가 모자 챙 아래쪽을 긁는다. “그 뒤로도 계속.”
라인하르트가 고개를 젓는다. “단독 임무는 팀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위험해.”
“다들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네,” 맥크리가 길게 끌며 말한다. “이런 일이 내 전문이라구요. 리장은 애들 장난이었지. 블랙워치에서 항상 했던 1인 임무에서, 진입했다가 후퇴하고, 정보를 캐내고, 내가 왔다는 걸 놈들이 깨닫기도 전에 내빼고. 밤에 다니는 도둑처럼, 흔적 하나 남긴 적 없습니다.”
“그래, 하지만 우린 도둑이 아니라네.” 라인하르트가 말한다. “이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게 아닐세. 더 이상 블랙워치는 없어. 새로운 오버워치에 특수 요원은 필요없다네.”
“제가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용서하셔야 할 겁니다,” 맥크리가 대답한다. “정확히 이런 상황에 특수 요원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탈론이 런던에서 움직인다면, 도라도에서도 움직임이 있을지 몰라요. 왕의 길 친구들에게 이득이 될 만한 걸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검지를 돌리며 원을 그린다. “이 난장판이 왜 시작됐는지 원인을 밝혀낼 수 있어요. 아무도 모르게 진입해서, 샅샅이 조사하면 돼요. 일주일도 안 걸릴 겁니다.”
“UN이 허가를 내주지 않을 거에요,” 앙겔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내가 관련된 이상, UN은 이 일에 대해서는 모를 겁니다.”
윈스턴이 콧날을 문지른다. “자, 이런 게 처음부터 오버워치를 곤경에 처하게 한 거에요. 우린 이유가 있어서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는 거니다.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는 거요. 허가받지 않은 특수 작전을 하다가 잡히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게 망쳐질 겁니다. 시베리아, 위원회, 인터뷰. 전부.” 그가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계속한다. “말할 것도 없이, 당신 현상금도 아직 걸려 있어요. 검문을 당하거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다신 여기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현상금 사냥꾼들이 5년 동안 날 못 잡았는데,” 맥크리가 이의를 제기한다. “지금이라고 운이 좋을 것 같진 않은데요. 극단적인 행동이 걱정된다면, 비(非)살상 행동규범을 적용하면 되죠. 조사를 받으면, 내가 좀 쉬는 중이라고 해요. 도라도는 휴양지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휴가 떠나는 건 범죄가 아니거든요.”
“이봐, 뉴스에 나올 거야,” 트레이서가 양손 검지와 중지를 세워 까닥거리며, 비꼬는 투로 말한다. “오버워치 소속 카우보이, 멕시코의 금빛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 포착.” 그녀가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훅 불어 넘긴다. “그 다음에는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치과 검진 계획은 어떤지 물어볼걸.”
“잠깐만요, 치과 검진도 받나요?” 메이 링이 뺨을 문지르며 묻는다.
“이건 불가능해요,” 윈스턴이 끼어든다. “내 말은, 이론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실제로 하려면 너무 위험해요. 몰래 지브롤터를 빠져나가서 아무에게도 보이거나 신원을 발각당하지 않고 도라도까지 가야 한다구요. 너무 위험 부담이 커요, 당신이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말입니다.”
맥크리가 손을 들어올린다. “좋아요, 봅시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블랙워치 전술 교본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좀 들어봐요 : 레예스하고 난 이런 일을 항상 했다고요. 설명 좀 합시다.” 맥크리가 손가락을 펼치고 손짓을 하며 계속한다. “신분을 위조하고, 2등석이나 화물칸에 몰래 타는 거죠. 자주 멈추고, 가능하면 최대한 걸어다니고. 군중 속에 섞여드는 겁니다. 가명을 쓰고: 가짜 인격을 만들고, 옷차림도 바꿔요. 멍청한 척 하면서, 똑똑하게 행동하죠. 눈은 열고, 입은 닫고,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집에 가는 겁니다.” 그가 양손을 모아 손뼉을 친다. “누워서 떡 먹기에요. 그냥 내가 옛날 방식대로 하게 해주면 이 난장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안돼.” 라인하르트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 식으로 한다고 해도 상관없네. 윈스턴이 옳아. 불가능해.”
“다른 방법이 있긴 해요?” 레나가 중얼거린다. “내 말은, 제시가 제임스 본드 놀이하러 가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런 걸 예전에 해 봤고, 우리가 진짜 빨리 해답을 얻고 싶다면 --”
“레나!” 라인하르트가 소리친다. “너무 위험해! 윈스턴이 한 말 듣지 않았나!”
“내가 한 말도 들었잖습니까, 형씨!” 맥크리가 받아친다. “이런 게 내 주특기라구요, 다시 할 준비도 돼 있어요. 76이 잭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접어둘 수 있고. 76이 잭이라면, well, 더럽게 큰 문제가 하나 생기겠네, 확실히.”
“하지만 누군지 모르잖아요,” 메이 링이 시작한다.
“증거가 있어요,” 앙겔라가 덧붙인다.
“확실한 증거는 아니네,” 라인하르트가 끝맺는다. “잭은 땅에 묻혔어.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야.”
그들은 결론 없는 논쟁을 계속한다: 말다툼하고, 아우성치고, 쉴새없이 지껄이는 소리로 방이 넘쳐난다. 라인하르트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 맥크리는 반박하면서 설득하려 애쓴다. 트레이서와 메이 링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 윈스턴과 메르시 편에 선다.
한조가 날카롭고, 짧은 헛기침 소리로 그들의 주의를 끈다.
“실례하지,”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모두의 주목을 잡았다는 걸 확인하고, 제안한다. “이 메시지를 단순한 미끼 이상으로 보는 입장에서, 가서 진실을 알아내는 게 확신을 굳히기 위한 유일한 방법 같군. 그리고 일을 할 거라면, 올바른 방식으로 해야만 해. 처음에는, 목표 지점으로 가는 것에 집중한다.”
윈스턴이 말을 꺼낸다. “하지만 당신은 아까 --”
“신분을 위조하고. 보안 수준을 최소화하기 위해 1등석에 타고, 다른 여행객을 피하기 위해 늦은 밤에 출발한다. 비행편은 무조건적으로 국제 항공사여야 해, 국내 항공사 수속 보안 수준은 지역마다 다르니까. 도착해서 땅을 밟으면, 도라도까지 고속 철도로 이동한다. 군중 속에 섞여들어야 해. 주목을 피할 만큼은 멍청하게 굴지만, 외부 개입을 끊어낼 만큼은 똑똑하게 행동하지. 멈출 때마다 인상착의를 적당히 바꾸면서, 미행을 떨궈내거나 헷갈리게 하고.”
라인하르트가 말하려 한다: 한조가 손을 털어 그를 막는다.
“UN에게 감시받고 있긴 하지만 주로 대변인을 통해서지. 이걸 이용하는 거다. 요원들이 개인적 사정 때문에 자리에 없다고 그 건축가에게 말해.” 윈스턴이 다시 끼어들려고 한다: 한조가 손을 기울이고, 윈스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계속한다. “맥크리가 혐의를 받고 있는 휴스턴 습격 사건 이후로 고속 철도 보안이 강화됐지. 기차를 공격하기엔 안 좋은 시간이지만, 승객으로서 타기에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야. 가명을 쓰고 적절하게 값 나가는 표를 사면, 충분히 신중한 방식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지.”
제시가 입을 연다 : 한조는 손날로 허공을 가른다. 방해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도착하면, 2단계를 시작한다. 마을을 조사하는 거지. 정보를 수집하고, 발전소를 조사하고 싶으면, 요원들을 루메리코 하청업자로 위장시켜서 시스템 점검, 정기 검사, 배달 같은 걸 하는 척하면서 들여보내면 된다. 프로토콜은 물리적 충돌 없이 후퇴하는 방식으로 짜고. 무기는 살상 능력이 없는 것으로 소지하고. 들어갔다가 나온다.” 한조가 턱을 들어올린다. “누워서 떡 먹기지.”
침묵. 벌어진 턱, 오가는 시선. 한조는 제시가 신의 말씀이라도 들은 양 경외하며 활짝 웃고 있는 걸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Well!” 트레이서가 말한다. “여기 계획이란 게 있는 남자분이 계셨네.”
“잠깐만요, 방금 ‘요원들’이라고 했는데.” 앙겔라가 말을 꺼낸다. “복수형이잖아요. 그 말은 --”
“한 명 대신 두 명,” 한조가 대답한다.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더 쉬운 목표물이야. 한 쌍으로 다니는 게 더 잘 녹아들지. 서로 등을 봐줄 수도 있고. 역할은 수행원이나 경호원이 좋겠군.”
트레이서가 실눈을 뜬다. “맥크리한테 경호원을 붙이라는 말이야?”
한조가 강하게 콧구멍으로 숨을 내쉰다.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다시 말하며: 가문에서와는 다르다. “아니. 나와 함께 보내라는 말이다.”
---
0400시 -- 라인하르트가 내키지 않아하며 동의한 끝에 -- 결정이 내려진다. 맥크리 요원과 한조 요원이 도라도에서 5일짜리 비공식 조사 임무를 비밀리에 수행하며 76의 미스터리를 파헤칠 것이다. 팀은 0415시에 해산하고 그 날 중으로 다시 모여서 자세한 실행 계획을 논의하기로 한다. 한조는 0430시쯤에 침대 안에서 다시 졸기 시작한다. 제시가 나른하게 엉겨붙으며 코를 부빈다.
둘이 함께하는 임무라고, 그가 말하며, 한조의 허리에 손을 얹는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미래인가: 그와 한조가 서로의 기지와 능력, 투지, 치명적인 도구로서 고용되어 쌓아온 다년간의 경험에 의지하는 모습. 두 개의 무기로 협력하며, 몇 달간의 훈련을 실전에 사용하는 풍경. 현상금 사냥꾼과 암살자, 2인조로 일하는 두 사람.
한조는 몇 분간 원치 않는 나른한 손길을 받아 주다가, 잠시 화장실로 가겠다고 한다. 그는 불을 켜고, 문을 밀어 닫고, 핸드셋을 꺼내든다. 한조는 (깨끗하고, 반짝거리고, 티끌 하나 없는) 세면대에 기대어 스크린을 터치하고, 로그인한 후, (깔끔하고, 질서정연하고, 적절하게 분류된) 메일함을 연다. 그는 장난스럽게 생긴 분홍색 토끼 아이콘이 있는 창을 밀어올리고, 대화 내용을 스크롤하고, 화면에 뜬 글자에 맞도록 키보드를 한국어로 바꾼다.
|| 0441: [3945_84]
이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하다. 오늘 뭐 좀 도와줄 수 있겠니?
그가 스크린을 끄고 수도꼭지를 켠다. 한조가 칫솔에 치약을 짜낼 때 -- 놀랍게도 -- 핸드셋이 진동한다. 새 문자가 왔다.
|| 0441: [3945_85] 송하나:
ㅇㅇ 뭔데요?
한조가 눈을 깜빡인다.
|| 0442: [3945_84]
깨어 있기에는 이른 시간이구나.
이를 닦고 있을 때 또 한 번 진동이 온다.
|| 0443: [3945_85] 송하나:
잠든 적도 없어요, 스트리밍 방송 중이었음
아저씨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맥 아저씨가 또 밤새도록 가스 브룩스 얘기했나 ᕳ◕ᴥ◕ᕲ
(역주 * 가스 브룩스 : 미국의 컨트리 가수.)
한조가 눈을 굴린다. 그는 입술을 오므려 칫솔을 물고 답장을 보낸다.
|| 0445: [3945_84]
아주 재미있지만 아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빌리고 싶은 물건이 좀 있어.
맥하고 내가 중요한 일을 맡게 돼서, 너하고 루 도움이 좀 필요하다.
돈도 좀 필요할 거야. 돌아오면 갚아주겠다.
활 가르쳐 주는 대가라고 생각해라.
|| 0447: [3945_85] 송하나:
ㅇㅋ 루한테 말할게요
근데 활 쏘는 건 공짜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뭐임 ლ(ಠᗝಠლ)
(ᗒᗝᗕ) 아저씨 넘하네요 ㅋㅋㅋ
그럼 좋은 기술 전부 다 가르쳐줘야 돼요!!! ᕳòᴥóᕲ
한조가 미소짓는다.
|| 0448: [3945_84]
알겠다.
좀 자둬라.
그는 화면을 닫고, 양치질을 하고, 물로 헹구고, 손을 씻고, 불을 끈다. 제시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그는 미끄러져들어가, 제시를 팔꿈치로 밀고, 이불을 끌어당긴다. 제시는 사냥개처럼 코를 골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한조가 손을 뻗어 그의 엉덩이를 쓰다듬을 때까지 뒤척인다. 그는 눈을 감고, 머릿속을 속사포처럼 가로지르는 생각을 닫는다. 내일 일어나면 공책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만 남긴 채로.
---
작전 계획을 짜고, 프로토콜을 연습하고, 필요한 물품을 확보하고 준비를 마치는 데 2일이 걸린다. 한조는 하나의 협조를 통해 그럴싸하고 갈아입기 쉬운 의상을 조달받는다. 그녀는 오후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 제시의 손톱을 손질하고 (제시는 좋아한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다듬고 (제시는 참는다), 족집게로 아무렇게나 자라난 눈썹을 뽑는다(제시는 강력하게 항의하며, 한조가 그가 이제 어느 정도 봐줄 만하게 됐다고 생각한 다음에도 불평한다). 루시우는 가짜 여권, 위조 신분증, 그리고 한조의 활을 넣을 특별한 장비 상자를 만들어 준다. 상자 속 내용물이 귀한 골동품이라는 서류를 꾸며서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하지 않게 할 계획이다. 피스키퍼는 분해된 상태로 검사받고 안전한 곳에 넣어야 한다 -- 이 사실이 부어오른 눈썹보다도 제시를 더 짜증나게 한다.
그들의 가짜 인격 : 돈 많고 도박 버릇이 있는 멕시코계 미국인이자, 반도체 스타트업 회사 CEO(맥크리)와 그에게 고용된 유능한 투자가(한조). 둘은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아틀란타 공항에 잠깐 멈추고, 아틀란타에서 고속 기차 크레센트 호를 타고 뉴올리언스까지 간다. 거기서 선셋 리미티드로 갈아타 델 리오까지 가고, 실버 스퍼를 타고 멕시코를 가로질러 도라도에 도착할 거다. 그 도시 남쪽에 있는 유적지 옆에 위치한 호텔에 방 2개를 3일 간 예약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정보를 모을 것이다.
둘은 할로윈 이틀 전, 목요일 저녁에 감시 기지를 떠난다. 제시는 치료소에서 라인하르트, 앙겔라, 토르비욘과 긴 대화를 마친다 --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오버워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냉혹한 현실 -- 만약 잭 모리슨이 살아 있는데 악당이 되었다면, 그게 무엇을 의미할지 -- 에 대해서. 겐지는 근처에 떠 있는 젠야타 옆에서 형에게 만족감을 주는, 진심이 담긴 작별 인사를 건넨다. 옴닉은 한조에게 축복의 말을 해 주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한조는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흘끗 보고, 정중하게 거절하며, 뻣뻣한 감사 인사를 한다.
“조각나지 말고 멀쩡하게 돌아와,” 겐지가 외친다.
하나는 더 실용주의적이다. “최소한 나한테 돈 갚을 수 있는 부분은 남겨요!”
루시우와 레나가 감시 기지 보급품 조달용 밴으로 기지 밖까지 태워다 준다. 둘은 주목을 끌지 않는 간편한 복장으로 말라가에서 마드리드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다른 심야 승객들의 시선을 피하며 뒷자리에 낑겨앉는다. 옴닉 운전수가 그들을 잠깐치고는 꽤 오래 쳐다본다 : 한조는 그가 시선을 돌리기 전에 거의 의심 같은 것을 감지해낸다.
창 밖으로 스치는 고속도로의 빛줄기와 함께, 불청객 같은 기억이 돌아온다. 아버지가 죽기 2년 전, 시마다 가문은 회의를 열어 분가(分家)에서 하위 직급으로 옴닉을 고용한 사안을 논의했다. 고로는 반대했고, 그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겼으며, 관계된 자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그들이 결정을 번복할 때까지 가문에서 쫓아냈다. 한조는 왜 자신이 아버지의 결정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동의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젊음의 혈기였나?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건가? 하인들이 복종하고 두려움에 떠는 걸 보고 싶었던 것이었나? 후일 -- 언제나처럼 회의에 빠지고, 귀여운 여자애들, 그리고 더 귀여운 남자애들과 함께 오락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던 -- 겐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한조는 작은 새의 무심함에 마음을 졸였다. 그게 왜 수치스럽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충격적인 초록색 머리를 긁으며 그가 말했다. 가문을 위해 사람들이 죽어야 가문이 번창하지. 로봇은 피를 흘리지 못하지만, 죽일 수는 있잖아. 계산이 딱 맞지 않나? 한조가 질책하려 했지만, 겐지는 무시하고, 말싸움의 불씨를 던졌다. 요즘은 아무 사당에나 가면 옴닉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할걸. 언젠간 옴닉 무녀도 볼 수 있을 거야, 한조. 새전이나 던져줘. 새한테 밥 주는 것처럼.
제시가 장갑 낀 손가락으로 그의 손을 감싸며, 그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한조는 총잡이의 손등에 튀어나온 뼈마디를 툭툭 치며 생각의 방향을 임무로 돌린다.
집중하자. 쓸데없는 불안감 없이.
---
마드리드에서 그들은 바르셀로 소여와 츠바키 산쥬로가 된다. 제시는 머리를 뒤로 묶고, 잘 다린 황갈색 바지에, 하늘색 셔츠와 군청색 재킷을 입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금으로 도금된 시계와 선글라스도 했다. 한조는 완벽하게 각이 잡힌 말쑥한 검은 정장을 입었다. 돈 많은 걸어다니는 무기 같다. 둘은 장갑을 끼고, 평범한 벨트를 차고, 모자는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의상은 하나가 잽싸게 쇼핑해 온 유명 메이커 모조품이다. 누구라도 충분히 오래 쳐다보면 진짜 톰 포드 옷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거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야간 항공편과 반나절 동안 갇힐 기차 칸에서라면, 뭐 괜찮겠지만.
제시는 텅 빈 정거장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을 보면서 말을 꺼낸다. “그 이름 어떻게 발음한다고 했지?”
“산-쥬-로.” 한조가 농담을 던질 기회를 포착해내고 씩 웃는다. “누가 물어보면, 내 나이가 40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주면 된다.”
“Huh?” 그리고, 이마를 찌푸리며 : “또 나 갖고 노는 거야?”
한조는 마음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 드디어: 그의 바보 녀석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화 농담. “진짜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니다. 농담이었어.”
“마음대로 해(Suit yourself), honey. 이리 와서 나 괜찮은지 봐줘.”
한조가 그렇게 한다. 그는 금색 머리끈을 접어 제시의 재킷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반짝이는 색, 행운의 징표. 그는 사실대로 말하며 총잡이의 잘 다듬어진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 “아주 좋아(Very good).”
Mr. “아주 좋은” 바르셀로는 문제의 여지를 최소화하며 공항을 통과한다. 수하물 검사대에서 승무원을 유혹해 피스키퍼를 실어도 된다는 허가 도장을 받아내고, 그 이후에는 심야에 근무하는 공항 보안 요원을 달콤한 말로 꼬드겨, 누가 활이 들어 있는 상자를 운반하는지 자세히 얘기하도록 한다. 돈 많고 게으른 자에게나 익숙할 법한 여유를 보이며, 웃고 손짓을 곁들이면서. 한조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 제시의 스페인어는 빠르고, 노래하는 듯하고, 깊고 낮은 소리로 굴러나오며 관능적으로 흐른다. 그는 보안 요원에게 윙크하면서 빳빳한 지폐를 슬쩍 건넨다: 그 대가로, 아무도 한조의 금속 발이나 제시의 의수에 대해 캐묻지 않는다. 맥크리는 탑승할 때는 약간 불안해했지만,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제네바에 있었을 때보다는 스페인어 알아듣는 게 어렵긴 하지만, 저렇게 만만한 목표물에 작업 칠 능력은 충분히 된다고 농을 던진다. 잘 속아넘어가는 놈은 언제나 잘 속아넘어가지, 언어에 관계없이.
비행은 빠르고 부드럽게 0300시에 시작해, 대서양을 7시간도 되지 않아서 가로지른다. 제시는 일등석에 서비스되는 공짜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시고 한조 옆에서 잠들어 있다. 한조는 그의 숨결에 실려오는 황홀한 알코올 향을 잠시 탐닉하다, 일에 다시 집중한다. 그는 휴대폰으로 아테나에 로그인해, 현재 상태를 보고하고, 임무 프로토콜을 복습하고, 76의 정보를 다시 읽는다. 뉴스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76은 무모하고, 대중의 안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적색-흰색-청색이 섞인 옷을 입고 다니는 미친 놈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힘과 민첩함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파괴 행위. 은행 강도, 하이테크 무기를 쓰는 깡패. 한조는 경멸감을 억누르며 보고서를 읽는다: 흰 머리, 이상하게 생긴 바이저, 전투용 재킷. 앙겔라에게 보냈던, 옛 추억과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에 빠진 - 약간 감상적이고 침울한 편지. 클리셰적인 시 인용. 너무나 미국적이다.
메르시가 옳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76이 리퍼가 아니라면, 한조는 어느 쪽이 더 다루기 힘든 상대일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 애국심 넘치는 프리마 돈나인지, 드라마틱한 순간이동 유령인지.
둘은 현지 시간 0358시 아틀란타에 착륙해, 귀찮은 상황 없이 입국 수속을 마친다. 제시가 미국을 떠난 지 반 년쯤 지났다. 그는 아침으로 패스트 푸드를 먹을 수 있을까 희망하며 가게 앞에 즐겁게 멈춰선다. 한조가 그에게 바르셀로 씨는 새벽 4시에 그런 음식을 탐할 사람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제시가 츠바키 씨는 달달한 냉차와 치킨 비스킷이 모든 나라에서 사랑받는 아침 식사 메뉴라는 걸 알 거라고 반박한다. 한조는 제시가 음식을 사 오는 동안 심기 불편한 얼굴로 수하물을 회수한다. 휴대폰에서 기상 예보가 울린다 : 주말 동안 도라도에 40% 확률로 천둥 번개.
한조는 시선을 느끼고 나서 그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해골, 박쥐, 잭-오-랜턴 포스터가 붙어 있는 벽 옆에 서 있는 : 머리에 푸른색 스카프를 한 나이 든 여성. 검은색 청소 조끼를 걸치고 있다. 땋은 은발이 어깨까지 내려온다. 회색 안대가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다. 왼뺨에는 멍 자국이 있다. 속눈썹 가장자리에서부터 내려오는 검은 ⁵⁾콜 자국 바로 아래에 -- 아니면 상처인가? 다크 서클? 점? -- 말이다. 한조는 그 자국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지 못한다. 제시가 돌아와서 주의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 돌아봤을 때, 그녀는 없다.
⁵⁾ 콜(Kohl) : 화장용으로 눈가에 바르는 검은 가루.
이상하다고, 그는 생각하며 머릿속에 메모를 남긴다. 두들겨 맞았고, 눈빛이 날카로운 늙은 여자.
둘은 근처 기차역에서 휴식하며, 재정비하고, 정비실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한조는 제시가 피스키퍼를 재조립하고 장전하는 동안 윈스턴과 아테나에게 교신을 건다. 제시는 모자, 부츠, 청바지에 평소와 다른 벨트 버클을 차고, 면 소재의 긴팔 붉은 체크무늬 셔츠를 걸친다. 한조는 짙은 보랏빛 드레스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테가 얇은 독서용 안경을 쓴다. 졸음이 몰려온다.
오래된, 공허한 감각도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 -- 익숙하고 생기 없고, 희미하게 무기력한, 탈력감. 마치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놓쳤는데 몇 번으로 전화를 걸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
---
기차 객실은 작고 깨끗하다. 폭이 넓은 유리 창문을 옆으로 하고, 푸른색 좌석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한조는 뉴올리언스까지 가는 동안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났다가 한다. 맞은편에 앉은 제시는 스쳐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본다. 남서부에서 더 버티기 힘들어졌을 때, 그는 동쪽으로 갔다. 한조에게 그 곳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 몽고메리, 모바일, 번쩍거리는 뉴 빌럭시. 폰차트레인 호 근처에 있던 습기찬 바, 배턴루지의 폐쇄된 공장, 미시시피 강을 꽉 채운 수문을 빠져나와 흘러내려가던 커다란 카지노 선박들. 팔을 그 곳에서 잃었다. 채터누가(아무 이유 없이 한조를 웃게 하는 지명)의 불법 자동차 판매업소에서 기계 팔을 얻었고. 그리고 은신처, 아지트, 강변 근처에 파 놓은 도피처, 보급품을 은닉해 놓은 장소. 아직도 그 시절이 약간은 그립다고, 제시는 말한다. 그 모든 모기 떼, 험한 길, 날아가 버린 팔 전부. 사막에 길들여진 자는 잡초만 잔뜩 자라난 곳일지라도 사랑하는 법이다. 어쨌든 초록색이니까.
“언제 뉴올리언스에 같이 갈 수도 있겠지,” 그가 달달한 냉차 두 잔째를 마시며 컵 너머로 중얼거린다. “진짜 멋진 게 많아. 손바닥 뒤집듯이 거리를 다 알지. 몇 번 좋은 시간 보냈었어.”
한조는 졸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창 밖에 스쳐지나가는 타에다 소나무를 바라본다. “원래 프랑스 도시지.”
“⁶⁾케이준 계 프랑스인,” 이라고 제시가 대답한다. “이 근처에서 레예스하고 임무를 많이 뛰었지. 불법 기술을 조사하면서 멤피스 남부까지 갔어. 지금처럼 위장하고 가명 쓰면서 다닌 작전도 있었지 -- 바이우 테셰(Bayou Teche) 강 근처에서 온 카지노 딜러 역할이었어. 해본 것 중에 제일 좋았던 게 그거였을 거야. 화려한 복장이었지 : 조끼에, 기다란 코트에, 가죽 구두. 현지인처럼 매끄럽게 말하고.” 그가 억양을 과장시키며, 혀를 굴리며, 눈썹을 씰룩거린다. “그쪽처럼 멋진 신사분과 정말 데이트하고 싶네요, 무슈(monsieur),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⁶⁾아카디아에 살던 프랑스계 주민들을 ‘케이준(Cajun)’이라고 부른다.
한조가 제시를 보며 피곤한 웃음을 짓는다. “연극조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다, 카드 게임에서 속임수 쓰는 손재주(handy)까지 있었으니, 아주 유용했겠군.”
“아, 손재주 하면 내가 또 아는 게 있지,” 제시가 윙크를 날리며 손가락 총을 쏜다.
둘은 선셋 리미티드로 갈아타고 나서 커피를 마신다. 제시는 슈가 파우더가 뿌려진 베이그넷을 먹으며 (한조는 바지에 가루가 떨어지는 게 싫어서 사양한다) 블랙워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는 미국 중서부를 휩쓸며 갱단과 불법 무기 상인들을 죄다 체포하고 다니던 것, 멍든 갈비뼈와 부러진 뼈를 끌고도 장시간 주행했던 것, 토페카, 포트 콜린스 같은 도시를 뚫고 그랜드 메사 감시 기지에 도착했던 것을 추억한다. 해커 한 무리를 데리고 레예스와 함께 정보 추출 임무를 수행하다가, 화물 트럭 자동 운전 프로그램이 재설정되는 바람에 포틀랜드 근처 고속도로에 거의 처박힐 뻔 하면서 일이 틀어졌던 것. 임무 중 어떤 단계에서 싸구려 타코 판매대 음식을 사고 모텔에서 잔 것. 레예스가 벽에 걸린 TV 스크린을 치면서 불안정한 수신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것. 그 다음 단계에서 정장을 빼입고 스테이크를 썰고 싱글 몰트 위스키 와인을 마시며 귀중한 정보를 가진 부자 목표물에게 사기를 친 것. 고조와 저조, 진실과 거짓, 속임수, 추궁, 걷어차여 부서지는 문. 위협이 되는 요소가 완전히 무력화되고 임무가 끝날 때까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던 레예스. 힘든 날들과, 더 힘들었던 밤.
가장 힘들었던 건 : 혈기 넘치는 일이 끝나고 찾아오는 따분한 날들의, 무기력한 권태감이었다. 가끔은 목표물이 도망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누군가 독자적으로 행동해서 임무가 빠르게 종료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나쁜 건 정보 제공자가 원하는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거나, 그들을 막다른 길로 이끌 때였다. 다음 번 아드레날린 분출까지의 대기 시간은 길었고, 뇌는 생각 속을 헤매다닐 시간이 많았다. 레예스는 창의적으로 무자비하고, 완벽한 리더였다. 제시는 건방지고 경솔한 청년이었다. 생각은 불건전한 장소로 이끌려갔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그걸 따라갔다.
그는 아마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한조는 궁금해진다. 이 모든 이야기 중에 아마리는 어디 있었지?
승무원이 문을 열고 음료 리필과 간식을 제공한다. 델 리오에서 갈아타기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그 곳에서 도라도까지는 3시간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한조가 나른하게 로터스 비스킷을 씹고 있을 때, 제시의 발이 발목에 닿는다.
“좀 어때?” 그가 부드럽게 묻는다.
“피곤하다.” 한조가 안경 테 너머로 그를 본다. “시차 때문에.”
“그래 보여. 난 이렇게 보통 사람처럼 여행한 지가 꽤 오래됐지.”
보통 사람. 한조는 그 단어를 곱씹으며, 무기력함과 불안감을 생각한다. 공항을 지나치던 수많은 얼굴들의 바다, 교통이 혼잡한 도로 같은 인파 속에서 뒤섞이는 형체. 조용하게 혼자서 하는 산책이나, 아늑한 감시 기지와는 전혀 달랐다. “나도 오래됐다.”
“사람들 사이에 다시 섞이려고 하는 게 좀 어색해. y'know? 금방 눈에 띌 것 같단 말이지.”
한조가 물병 뚜껑을 연다. “모자를 벗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하면 좀더 알아보기 어려워질 거다.”
“안돼, 이건 내 이미지 일부라고. 데드락 강아지 시절부터 모자를 썼어. 일관성을 유지해야지. 가명 쓸 때도 이게 내 키포인트야.” 제시가 숨을 들이마셔 배를 부풀리며, 울부짖는 코요테가 새겨진 벨트 버클을 내민다. “내 이미지. 거칠고 거칠은 카우보이 이미지.”
한조가 눈을 굴린다. “농사꾼 이미지겠지.”
“아냐.”
한조가 붉은 체크무늬 셔츠를 가리킨다. “그 셔츠를 보니 네가 토르비욘에게 닭장을 지어달라고 사정하던 게 떠오르는군.”
제시가 발끈하며 받아친다. “Well, 신의 창조물을 소중하게 여겨서 미안하게 됐네, 츠바키 씨.”
기관차 경적이 울린다: 뉴 유밸디를 지나고 있다. 한조는 가방에서 아스피린 두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키고, 목을 문지른다.
제시가 알아차린다. “목 아파?”
“약간.”
“잠깐 옆에 앉게 해줘, sweetheart,” 그가 부드럽게 제안한다. “어깨 주물러 줄게.”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 없다. 지금도 괜찮아.”
제시가 얼굴을 붉힌다. “그거 알아, 네가 뿌린 향수 때문에 미치기 직전이라는 거. 기지에서 그거 뿌리고 다녔으면, 개처럼 따라다녔을걸.”
개처럼 따라다니다. 공책에 따르면: 충직한 친구처럼 따른다는 뜻이다. 한조는 비스킷을 내려놓고 객실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한다.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츠바키 씨는 고상한 사내라는 설정이지(supposed to be a man of taste).”
“Well, 바르셀로 씨는 확실히 츠바키 씨가 맛있다는 걸 아는 설정인데(tastes delightful).”
“지금 임무 수행 중이라는 걸 다시 말해줘야 하나? 이번 여행에는 목적이 있어. 계속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제시는 송곳니 끝에 혀를 댄다. 음흉하고, 부끄러움 없는 도발. “그 ‘연기’ 어느 부분에 바르셀로 씨랑 츠바키 씨가 친밀한 관계인 상태에서 비즈니스 여행 온 게 아니라고 되어 있나?”
한조의 눈이 폭풍처럼 가늘어진다. 그가 벌린 무릎 위에 양손을 올린다. “그건 츠바키 씨가 다니는 회사 수칙에 어긋날 거다.”
제시가 한조의 손 위에 손을 겹친다. “바르셀로 씨는 입을 다무는 방법을 알지.”
한조는 한쪽 다리를 뻗어 제시가 그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걸 막는다. 그는 제시의 무릎 안쪽을 앞꿈치로 눌러 고정한다. 둘은 부스럭거리다 동작을 멈춘다. 제시가 날카로운 숨을 들이마신다. 한조는 피가 목구멍까지 치솟는 걸 느끼며, 경고 신호를 보낸다.
짧은 교착 상태. 용이 먼저 물러난다.
긴장하며, 제시가 약간 움직인다. 그는 주먹으로 좌석 쿠션을 꾹 누르며 사냥개처럼 숨을 뱉는다. 한조는 시험해 보듯, 제시의 청바지 솔기를 따라 발을 미끄러뜨리고, 발끝으로 양 다리 사이에 부풀어오른 것을 건드린다. 제시는 불타는 듯한 시선으로 궁수를 쳐다보며 가볍게 숨을 헐떡인다. 한조는 천천히 발을 뒤로 움직인다. 빼는 게 아니라 뒤꿈치로 문지르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을 때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복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 녀석은 언제 그런 걸 좋아하게 된 걸까?
“Shit,” 제시가 작게 중얼거린다. 입술을 깨무는 얼굴은 빨갛다.
“조심해라, 바르셀로 씨.” 한조가 말한다. 제시는 그의 발에 밟힌 채 꿈틀거린다. “신사분 앞에 있잖느냐.”
그들은 종착역에서 실퍼 스퍼로 갈아탄다. 한조는 도둑 키스 몇 번을 허락하지만 그 이상은 거절한다. 제시는 결국 수그러든다. 기다릴 수 있다. 어찌됐건, 세 번째 객실은 앞의 두 개보다 더 시끄럽고 사람이 많았다.
한조는 뒤로 기대앉고, 마지막으로 기차를 탄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아마 대학 시절이었을 거다: 사람을 가득 태우고 고속으로 달리는 신칸센에 무작정 올라탔지. 가족도, 경호원도 없었다. 겐지와 함께 타진 않았다 : 동생은 더 화려한 교통 수단을 좋아했지. 유키는 확실히 아니다,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아버지는 대중 교통을 피했고, 개인 운전수가 모는 차를 선호했다.
그는 역 이름도 목적지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아마 처음부터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저 덜컹거리는 객차, 스쳐지나가는 도시, 그를 둘러싼 인파의 소음뿐. 한조는 혼자였다. 완전히.
---
어둑한 저녁 하늘 아래, 환한 도라도의 불빛이 빛난다. 타일로 된 적갈색 지붕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초록색 나무와 반짝이는 바다를 가로지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발전소까지 이어지는 언덕을 따라 약한 빛들이 점처럼 반짝인다. 상점가(calle mercado)를 따라 늘어선 건물과 집에서는 오렌지색과 백금색이 눈에 띈다 : 웃고 있는 호박, 나무로 깎아 만든 해골, 높이와 굵기가 다양한 양초. 길가를 장식하는 화사한 금잔화 화분이 한조의 시선을 끈다. 시장가 중심부에는 색색깔의 피냐타가 달린 줄이 쳐져 있다. 그는 시원한 가을 바람에 야광 꽃처럼 흔들리는 피냐타를 바라본다.
한조는 피냐타가 어떤 물건인지 이해한다. 또 다른 기억: 소년 시절의 겐지가, 제일 좋아하는 막대기를 들고 빙글빙글 돌며, 여름 축제 때 수박을 내려치던 모습. 수박이 쪼개지자 트위터에 올리고, 한조의 소매를 끌어당기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기억. 내가 해냈어! 내가 쪼갰어! 한조는 겐지를 부드럽게 이끌어 촉촉하게 반짝이는 수박 조각을 하나 집어들게 했다. 네가 해냈어! 네가 쪼갰구나! 너 혼자서. 뭔가를 성공적으로 망쳐놓은 것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
둘은 호텔에 체크인한다. 바다를 내다보는 아치형 기둥에는 오래된 청동 종들이 매달려 있다. 낚시배 여러 척이 밤바다 위에서 흔들린다. 물 속에서 흰색 달의 반사상이 반짝거린다. 한조는 잔뜩 지쳐서도, 호화로운 안뜰과 테라스에 경탄하며 숨을 내쉰다. 그는 스위트 룸으로 짐을 옮긴다. 쉬기 전에 먼저 보안을 확보해야 했다.
한조는 2층에 위치한 방을 세 번에 걸쳐 꼼꼼하게 탐색한다. 모든 장식품을 검사하고, 벽에 걸린 그림을 전부 뒤집어 보고, 옷장, 구석진 곳, 붙박이 세간까지 전부 점검한다. 도청기, 소형 기기, 카메라, 전선이 있는지도 찾아본다. 침입자의 흔적이나 뭔가 조작된 것이 없는지 침대 머리맡의 나무판, 문간, 창문을 수색한다. 모든 점검이 끝난다. 출입구는 문제 없고 안전하다. 느슨하게 떨어지는 바닥 타일도, 헐렁한 몰딩도, 구멍도 없다. 작은 바퀴벌레 시체 하나를 빼고는 특별히 시선을 끄는 건 없다.
옆방으로 이어지는 문의 잠금을 풀자 제시가 훅 들어온다. “젠장, 마지막으로 왔을 때 지낸 곳보다 훨씬 좋은데. 욕조는 6명은 들어갈 크기고 침대는 댈러스보다 커.”
“목소리 낮춰,” 한조가 대답한다. “짐이나 풀자.”
그들은 짐을 풀고, 자리를 잡고, 천천히 긴장을 푼다. 제시는 바에서 담배를 피우고 한 잔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조는 침대 밑 손이 잘 닿는 곳에 활을 둔다. 그는 돌로 된 널찍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몸을 씻은 뒤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린 채 잠든다. 그는 제시가 노란색 계란빵과 구리 컵에 담긴 멕시코 뮬 칵테일을 가져와서 화장실 문을 두들길 때 깨어난다. 그는 길거리를 조사하고 현지 주민들, 호텔 직원과 대화했다. 만일의 경우 호텔을 탈출해야 할 때 쓸 수 있는 경로가 최소한 10개는 되었고, 잠시 몸을 숨겼다가 다시 드러낼 수 있는 장소도 많았다. 사람이 많은 게 이득이 될 수 있다. 휴일이라 여행객, 관광객이 아주 많다. 루메리코 직원들은 가족을 만나거나 기념일을 챙기려 휴가를 떠났다. 하청 업체에서 온 계약직 인력이 정규 인력을 대체해 일하며, 임시 출입증을 사용해 발전소를 드나든다.
“항상 물 마실 때는 조심하라는 얘길 들었지,” 제시가 침대 매트리스 끝에 앉아서, 시트에 빵 부스러기를 흘리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은 다 깨끗한 물이지만, 레예스가 옴닉 사태 전에 물 마시면 개처럼 병이 나던 얘기를 해주곤 했거든.”
한조는 그의 취향이 아닌 칵테일과 함께, 욱신거리는 목의 통증을 잠재우기 위한 진통제를 두 알 삼킨다. “발전소를 조사할 수 있는 건 내일, 일요일, 월요일 3일간이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
“그럼 좀 자둬야겠네,” 제시가 중얼거린다. “밤 새서 좋을 거 없잖아. 내일 시작해도 시간은 충분해.”
한조는 통신기를 충전하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아테나가 76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걸 확인한다. 지브롤터는 지금 새벽 4시다: 아마 모두 자고 있을 거다. 심지어 하나까지도. 지금 겐지에게 전화하면 받을까?
맥크리의 시선이 그를 따라다닌다. “방 2개 예약한 건 좀 낭비였던 거 같아, y’know, 기지에서 우리가 어떻게 했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럴싸해 보여야 할 것 아니냐,”
“나도 알아, darlin’.” 맥크리가 엄지에 묻은 노란 설탕을 핥는다. 순진한 척 하는 거다. “그냥 오늘 밤은 어느 방에 모자를 걸어야 하나 궁금해서 그래.”
한조는 이불 밑으로 들어가, 머리맡까지 올라가서, 발끝으로 맥크리를 가볍게 친다. “이리 와라.”
제시가 그 말에 따른다. 그는 불을 끄고, 옷을 벗고, 피스키퍼를 세 번째 베개 밑에 넣는다. 그는 이불 밑에서 한조에게 미끄러져 가, 그에게 팔을 뻗고, 귀에 속삭인다. 짙은 나무 같은 체향, 버본 위스키와 담배 냄새가 나는 숨결 : “이게 내 인생에서 제일 좋은 순간이 아니라면, 언제일지 모르겠군.”
한조의 몸이 동의한다: 떨리는 몸, 웅크린 척추, 깊은 한숨.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잔다는 기쁨.
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하다. 한조의 몸은 쉬고 싶어 안달한다: 하지만, 뇌는, 끝없이 주변 환경을 관찰하며 일한다. 그는 잠들지 못한 채 누워서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어가는 생각을 억누르려 애쓴다.
지금까지는 모든 게 매끄럽게 진행됐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다: 멕시코, 도라도, 76의 미스터리. 빤히 보이는 함정. 이제 2단계가 시작된다: 정보 수집. 한조는 아직도 집중이 안 되고, 피곤하고,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다.
총잡이가 말했던 것 같은: 권태감.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를 달리는 기차 같은, 위험한 임무와 임무 사이의 나른함. 그는 어느 부분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 감시 기지, 아니면 안전하고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
그는 피로에 굴복하며, 커다란 회색 강을 떠내려가는 금잔화의 꿈을 꾼다.
---
첫째 날. 할로윈. 바르셀로 씨와 츠바키 씨는 서늘한 날씨에 맞는 편한 옷을 입고 (스웨터, 긴팔 셔츠, 청바지, 정장 바지, 목도리) 도시를 산책한다. 둘은 서로에게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카페에 들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부터가 휴가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업 파트너 같은 모습으로.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여행객처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경치를 구경한다. 할로윈 코스튬을 입은 길거리 악사 사진 사이로, 한조는 루메리코 차량이 다른 차들 사이에서 느릿느릿 지나가는 모습을 찍는다. 그는 사진을 보며 번호판을 외우고, 차 기종을 식별하고, 직원들의 인상착의 정보를 모은다. 발전소는 오전 8시, 11시에 수송품을 실은 트럭을 받는다. 오후 배송은 4시와 6시였다.
“이리 와,” 대통령이 살던 저택의 샛노란 문을 지나칠 때 제시가 핸드셋을 꺼내들며 말한다. “루시우처럼 하자, 나랑 셀카 찍어.”
한조가 종이컵을 들어 입술에 댄다. “됐다.”
“아, 왜?” 제시는 휴대폰을 계속 들고, 엄지로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얼굴이 약간 프레임 밖으로 나간 상태로 사진을 찍는다.
“우린 조사를 하러 온 거다,” 딱딱한 침묵 끝에 : “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정말 아쉽네, sweetheart, 그렇게 예쁜 얼굴 가지고서.”
한조는 커피와 함께 그 칭찬까지 삼킨다. “고맙다.”
총잡이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젖히며, 혀를 내밀고 바보같은 표정을 짓는다. “잊어버릴 때쯤 너한테 이 사진 보낼 거야.”
궁수가 안경테 너머로 그를 쳐다본다. “왜지?”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하려고.” 그가 이 사이로 담배를 물고 얼굴을 찡그리며 카메라에 대고 중지를 치켜세운다. “전혀 예상 못할 때 보낼 거야. 화장실 가서 큰 거 볼 때.”
한조가 조소하며, 눈을 굴린다. “어린애 같긴.”
“좀, 츠바키 씨, 이리 와서 같이 한 장 찍자고. 딱딱하게 굴지 말고.”
제시가 충분히 졸라댄 끝에, 한조는 허락한다. 둘은 뒷배경에 하얀 후광을 남기는 정오의 햇살 속에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다음 몇 장은 도시의 금색 불빛 아래에서. 상스러운 제스처도, 이상한 얼굴도, 한조가 미소라고 부를 만한 표정도 없다. 재미있는 사진 한 장 : 한조가 가볍게 제시의 뺨에 주먹을 댄 상태로, 반쯤 씩 웃고 있고 -- 제시는 펀치를 맞은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사진. 그는 한조가 사진을 검사하고 별로인 것들을 지우게 한다. 한조는 제시가 33장 중 7장을 간직하도록 해 준다.
둘은 도시 북쪽 끝에 있는 발전소 정문을 정찰하고, 한적한 테라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맥크리는 블랙워치 전술을 화제로 삼고, 침입하고 들어가서 안전한 위치까지 잠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이야기한다.
“네가 최정예 요원 중 하나였다고 라인하르트가 그러더군,” 한조가 라임이 올라간 생선구이 요리를 포크로 찌르며 말한다. “어떻게 점수를 매겼지? 완수한 임무 수, 아니면 전체적인 실적?”
“둘 다,” 제시가 미가스와 옥수수 토르티야를 먹으며 말한다. “몸 던져 일했었지, 가능한 한 많은 작전에 나가면서.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까지 인생을 힘들게 만들었어.”
“스스로를 벌주는 거였지,” 한조가 데드아이를 생각하며 덧붙인다. 그리고 어두운 호텔 방, 북적거리던 기차. 나무에 덮인 옴닉 기지. 작은 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했던 거야. 신념에 맞지 않는 일.”
“그래. 그리고 레예스가 날 들들 볶아댔다고. 내 기분이 어떤지는 상관없고 -- 일은 일이라고 했지. 결국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면,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어차피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고.” 정원, 역, 그리고 2번 훈련장에서처럼, 목소리에 다시 무딘 날이 선다. “결국에는 무게 잡는 개자식이었어, 그건 확실하지.”
“그리고 잭 모리슨은 한 번도 중재한 적이 없고.”
제시가 하, 하고 거친 웃음을 내뱉는다. “잭은 블랙워치에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블랙워치 낌새만 알아채면, 뺨이 발그레해졌다고. 젠장, 감시 기지에 있던 사람들은 다 그런 식이었지. 우리가 보통 때 어떤 일을 하는지는 하나도 모르면서, 일이 잘 마무리되면 좋아했지. 일이 잘 안 풀릴 때 고개 돌리는 건 더 좋아했고. 레예스는 그걸 항상 비난했어. 제일 안 좋을 시기에는, 그 문제로 잭하고 싸우기만 하면 나한테 화풀이를 했지.”
한조는 문득 껄끄러워진다. “널 때렸군.”
“Well, 서로 싸웠지.” 제시가 포크를 내려놓고, 초조해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어떤 건지 알잖아.”
한조가 물을 삼키며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
자리를 떠날 때 한조의 휴대폰이 울린다.
|| 1415: [3945_85] 송하나:
해피 할로윈!!!!(づ◕ᴥ◕)づ
어떻게 돼가요??
|| 1415: [3945_84]
잘 돼간다. 문제 없어. 너도 해피 할로윈이다.
오늘도 훈련 했니?
|| 1416: [3945_85] 송하나:
ㅇㅇ
아테나에 접속하면 오늘 기록 볼 수 있어요
내 생각엔 잘한 것 같은데 돌아오면 아저씨 생각은 어떤지 말해줘요
이따가 코스튬 입고 방송할 건데, 쩔죠 ㅎㅎ (◕ω◕)
나랑 루랑 같이 브라질 어육 완자 만들었는데 완전 맛남
맥이 좋아할 거 같아요 기름에 튀겼으니까 ㅋㅋㅋㅋㅋ
돌아오면 만드는 법 가르쳐줄게요 (∩✿ᗜ✿)⊃━☆゚.*
|| 1419: [3945_84]
친절하구나. 왜 나 대신 그 녀석한테 가르쳐주지 않고?
|| 1421: [3945_85] 송하나:
그래야 아저씨가 맥한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ᕮ⍤ᴥ⍤ᕭ
그거 일본어로는 뭐라고 해요??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에 닿으려면 위장을 공략하라
ㅋㅋㅋㅋ 아 그나저나 보여줄 거 있어요
“세상에, 누가 그렇게 휴대폰 울려대는 거야?” 맥크리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묻는다.
“송 양,” 한조가 엄지로 키패드를 두들기며 대답한다. “할로윈 때문에 신이 났군.”
“다 코스튬 입었는지 궁금하네. 앙겔라하고 토르비욘은 할로윈을 진짜 좋아해, 본부에서도 코스튬 파티하고 그랬지. 무슨 얘기해?” 그가 휴대폰 화면에 뜬 글자를 슬쩍 본다. “Man, 팀에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인 거야?”
“한국어다.”
“한국어도 할 줄 알아?”
“일할 때 좀 주워듣고,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가 키패드를 두들긴다. “내게는 한국어 연습에 도움이 되고, 송 양은 적응하는 데 도움을 받는 거지.”
제시가 휘파람을 분다. “Damn, 츠바키 씨, 매일매일 너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는군.”
|| 1419: [3945_84]
더 간단히 말하자면: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에 닿으려면 흉곽을 공략하라”
한조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첨부 파일이 스크린에 뜬다. 하나가 사진을 보냈다.
|| 1422: [3945_85] 송하나:
루가 연구실 서랍에서 찾은 거에요
아저씨의 카우보이 맥 ㅋㅋㅋㅋㅋ (♥ ε ♥)
그가 천천히 휴대폰을 내린다.
“한조?”
그가 맥크리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본다. 다시 맥크리. 다시 사진. 맥크리.
맥크리의 사진 : 젊고, 늘씬하고, 블랙워치 근무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목에 빨간 수건을 두른 모습. 아무리 많아도 25살 이하다. 덥수룩한 갈색 머리카락이 턱 근처까지 내려왔다. 한조는 그의 보기 좋은 광대뼈와 깨끗하게 면도한 하관을 쳐다본다. 지저분한 수염도, 구레나룻도 없다. 햇볕에 탄 피부, 반짝이는 짙은 색 눈동자, 긴 속눈썹. 사진 속 제시는 귀 끝까지 걸리는 음흉하고, 달콤한 웃음을 지으며 한조를 마주본다. 멀쩡한 왼손으로 카메라에 손가락 총을 쏘는, 꼭 보는 사람을 유혹해서 자신을 잘 대해주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한 포즈.
화살이 꽂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 똑똑한 친구야(clever fellow). 그리고, 손가락 총에 초점을 맞추며, 사진보다 더 자기 자신을 놀라게 하는 생각 : 잘 쐈어(good shot).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대답하며 휴대폰을 치운다.
그 후, 저녁 시간에 발전소를 정찰할 때 맥크리가 그 얘기를 꺼낸다. 처음에는 순진한 척 물어보고 (‘하나가 뭐 보냈던 거야?’), 그 다음은 예의바르게 (‘봐도 돼?’), 그 다음은 투덜거리며 (‘아, 좀, 츠바키 씨, 보여줘’) 그리고 결국엔 그게 어차피 신 포도라고 말하며 굽힌다(‘아, 됐어(go blow yourself), 사실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았어’). 한조는 그냥 한국 농담이라고,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맥크리는 눈을 굴리며, 루시우는 자기한테 항상 브라질 농담을 한다고 받아친다. 그가 웃긴 부분을 이해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한조는 루시우는 친절한 반면 송 양은 나이보다 조숙한 면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 두 명은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친구들이라고 덧붙이며, 그는 휴대폰 속 사진 말고 다른 주제로 옮긴다.
둘은 사탕을 내놓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과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지나쳐 호텔로 돌아간다. 상점가를 지날 때 작은 행렬이 길을 가로막는다. 성자와 천사 상이 세워진 빛나는 제단이 수수한 흰색 축제 차량에 실려 움직이고 있다. 법랑을 입힌 꽃을 배경으로 성스러운 얼굴이 빛난다. 벌린 입으로 애통함을 부르짖는, 도금된 틀 안의 독생자 그림. 검은 의복을 입은 수녀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찬송가를 부르며 차량을 따라 걷는다. ⁷⁾모든 성인을 기리는 구보 기도(The walking vagil in celebration of All Saints).
⁷⁾ 모든 성인의 날 : 11월 1일, 기독교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
10월 31일 저녁에 시작해 11월 1일 저녁에 끝난다.
다음날은 위령의 날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기리는 날이다.
제시가 먼저 알아차리고, 한조에게 알려 준다. 기계적인 걸음걸이, 슬픈 표정을 한 크롬 얼굴, 기도하듯 모아쥔 손가락에 걸린 묵주. 수녀 중 하나는 옴닉이다.
한조는 행렬이 지나가는 걸 쳐다본다. 그 눈동자는 촛불 빛으로 가득하다. 제시는 성호를 긋고, 스페인어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한숨을 내쉰다. 주님이 함께 하시길(Vaya con Dios).
---
둘째 날은 별 일 없이 시작된다. 그들은 아테나에게 보고하고, 나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다닌다. 바닥에는 터진 피냐타들이 널브러져 있다. 신발 바닥에 붙은 사탕을 떼어내기 위해 두 번 멈춰서야 했다. 루메리코 발전소 관리인들이 도라도 은행(Banco de Dorado) 근처의 색색깔 종이 조각과 사탕 포장지를 쓸어내며, 지나가는 신사분들에게 발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제시는 시청 건물 마당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잡담을 한다. 아이들은 로스 무에르토스 갱단이 도시에서 사라진 지 아주 오래됐다고 -- 몇 달, 어쩌면 1년도 넘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 군인(The soldado)은, 신비로운 동물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 그는 지역 영웅, 테러리스트, 귀신, 만인의 우상이다. 소년 하나가 지난 밤 할로윈 축제에서 그를 3번이나 봤다고 농담한다. 다른 유명한 슈퍼히어로들처럼, 76 의상은 도시의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코스튬이다.
“그러니까 전설 같은 존재라는 거죠,” 윈스턴이 휴대폰 영상 통화로 보고를 받고서 한숨을 쉰다. “논란도 있는 존재. 대단하군요. 이제 어떤 종류의 정보를 얻게 되실지 예상도 안 되네요.”
“한동안 도라도에 없었던 것 같다. 맥크리가 카지노 직원 한 무리와 대화해서, 1년이 넘도록 76이 카메라에 제대로 잡힌 사진이 보도된 적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작년 가을에 은행을 턴 강도 2명에게 더 주목이 끌렸었지.”
“강도라구요?” 윈스턴이 흥미를 보인다. “저, 관련된 정보를 보내주시겠습니까? 이 사안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아테나를 통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싶군요.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한조가 휴대폰 스크린을 터치해 파일 3개를 보낸다 : 은행 보안 업그레이드에 관한 서류, 현상수배 포스터, 강도 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자 두 명의 사진. 쥐 같은 머리털을 가진 뼈만 앙상한 남자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고, 덩치 큰 쪽은 소름끼치는 돼지 얼굴 모양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하나가 보낸 사진이 사진 갤러리 안에서 깜박이며, 편한 웃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녕하신가.
“한조?” 윈스턴이 말한다. “괜찮으십니까? 뭔가 보신 것 같은데요.”
“괜찮다,” 한조가 감각을 바로잡고, 안경을 고쳐쓰며 대답한다. “오늘 밤 발전소를 조사하러 갈 예정이다. 주의를 분산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활동이 도시 안에서 일어날 테니. 6시 배송 트럭을 타고 들어가서, 좌표 지점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0분이다.”
“30분? 그게 전부인가요?”
“대략적인 수치다. 목표는 임시 출입증을 확보하는 거다. 출입증을 얻지 못하면, 눈에 띄지 않고 나와서 월요일 아침에 다시 시도해 봐야겠지.”
윈스턴이 낮게 신음한다. “알겠습니다. 비살상 수칙을 꼭 기억하세요.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았습니다. 질문 들어온 것도 없고, 평소와 다른 게 없어요. 사티아는 당신들이 없어진 것 자체를 모르는 것 같고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계속 가명으로 활동하십시오. 76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정말 잘 해주셨어요.”
---
한조는 임무에 집중하려 하지만, 제시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은 그 게임에 빠져버렸다. 맥크리가 일하는 건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는다. 그는 현지인들 사이에 녹아들며, 손쉽게 이야기를 나누고, 거침없이 어우러지며, 흠 잡을 데 없이 역할을 연기한다. 제시는 상대방과 주제를 가리지 않고 스페인어로 길고 유창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모든 목표물과 정보원에게 빠르고 쾌활하게 접근해 말문을 터낸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이어가다 보면 금세 상대방은 매혹되어, 맥크리가 듣고 싶어하는 게 뭐든 줄줄 내뱉는다. 제시는 도라도를 알고, 도라도 또한 제시를 아는 듯했다. 한조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소음, 색깔이 너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전략이나 활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며, 행동하고 싶어 조바심을 낸다. 마을 한가운데 서서, 미국 국기를 흔들며 딜런 토마스 시를 목청껏 소리치면, 그 군인(soldado) 놈이 나올지도 모르지.
한조는 정오가 지나고, 츠바키 씨의 불편한 가죽 구두 대신 금속 발로 땅을 내딛고 싶어하면서, 잠깐 동안 달리기를 한다. 도움이 된다. 그는 땀을 흘리며, 가파른 언덕 몇 개를 뛰어오르고, 금잔화 꽃으로 장식된 다리를 건넌다. 한조는 돌아와서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제시와 마주친다. 그는 알몸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며, 지난 몇 년간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었던 오르차타에 대해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한조는 그가 수건을 걸치고, 유연하고 느긋하게 방을 가로지르며,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술로 물고 방 안을 따뜻한 분위기로 채우는 것을 본다.
욕망이 가슴 속에서, 물결처럼 치밀어오른다. 그것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한조가 말한다. “뭔가 하러 갈 생각 있나?”
제시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돌아선다. “응?”
“뭔가 하러 갈 생각 있나.” 한조가 주머니에서 금색 머리끈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고, 그 색과 감촉을 갈망하며 손목에 감는다. 그 갑작스러운 충동을 잠재울 만한 물건. “이 도시 주변에서.”
“무슨 말이야,” -- 제시가 청바지를 끌어올려 입는다 -- “같이? 일하러 가자는 거야?”
“아니.” 한조가 등을 돌리고 뒷목을 손으로 누르며, 혀를 잘근잘근 씹는다. “같이 가는 건, 맞아. 일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심을 쥐어짜내서 : “뭔가 하러 갈 생각 있나, 우리 둘이서?”
제시는 말 그대로 달려들다시피 한다. “Well, 물론이지, darlin’. 당연히 생각 있어. 발전소 들어가기 전에 시간 있으니까, 그럴 생각 엄청 많아.”
목소리에 불안감이 스민다. 왜 그가 절대 yes 라고 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뭐가 하고 싶으냐?”
생각에 잠긴 흠 소리. 그리고 대답. “빌어먹을, 알겠어. 말 타러 가자.”
“승마?”
“그래. 바닷가에서 할 수 있어, 선착장 옆에 마구간이 있거든.” 그는 뭔가 떠올려낸 듯, 편해진 모습으로 가볍게 말한다. “한번 얘기했었잖아. 기억나? 승마 잘 한다면서.”
한조가 입술을 적신다. 제시의 얼굴 표정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떠오르게 한다 : 젊고, 의욕 넘치고, 저돌적인. “그래. 가는 길은 아나?”
“알아. 씻고 나가자고, darlin’.”
둘은 떠난다. 제시는 거세마 두 마리를 두 시간 동안 빌려, 갈대가 적고 바위가 드문 바닷가 오솔길을 달린다. 한조는 눈매가 부드러운 황갈색 말을 택하고, 제시는 가죽이 검게 반짝거리는 밤색 말을 고른다. 제시는 말을 잘 다룬다. 그는 목장 일꾼처럼 능숙하게 고삐를 잡고, 박차를 반짝이며, 말 위에서 격하게 위아래로 몸을 들썩인다.
한조는 마지막으로 기차를 탄 게 언제인지는 잊었지만, 말을 탄 게 언제인지는 기억한다. 특권을 가진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대학에서의 승마 수업. 그 수업 때문에 아버지가 맏아들의 멋진 활솜씨에 대한 선물로 고용한 전통 마상궁술 개인강사는 필요없게 되었다. 몸에 익은 리듬이 돌아오며, 오래된 기억이 뱃속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먼지를 박차고 울리는 발굽 소리. 안장에 부딪히는 감각. 화살을 매기고 시위를 당길 때, 손끝을 스치는 화살깃의 스릴. 앙다문 입술, 날카로운 눈. 목표물을 명중시켜 꿰뚫고, 경주로를 달려 돌아오면서, 다음 화살을 장전하던 기억.
피가 달아오른다. 한조는 말을 보통 구보로 달리게 한다. 제시가 웃음을 터뜨리며, 워 하고 소리치고, 먼지를 일으키며 따라잡는다. 말들은 빨리 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속도를 늦추고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을 맴돈다. 해변을 천천히 달려오르며, 멀리서부터 밀려온 파도가 바닷가에 부딪혀 물거품을 만드는 걸 보면서.
“어때(You good)?” 제시가 어깨 너머로 묻는다. 삐딱한 모자, 밝은 눈동자. 맹렬하게 달리는 말 위로, 바람에 거세게 휘날리는 붉은색. 커다란 웃음.
한조는 시야를 가리는 머리끈을 치우고 고삐를 모아쥔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좋아(Very good).
---
늦은 오후의 폭풍이 예정을 취소시킨다. 해변을 떠날 때쯤, 하늘이 폭발하듯 번쩍인다: 모래 언덕을 올라가는 발자국을 따라 비가 쏟아져내린다. 맥크리는 한조가 해변 바위를 2개씩 건너 오르며 비를 피하는 걸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염소 같았다고, 호텔 옆 석고 기둥 밑에 도착했을 때 그가 말한다 --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고, 몸에 착 달라붙은 셔츠를 털면서. 그는 모자를 벗고, 기계 손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훔치며, 테라스 아래로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개처럼, 비에 젖고도 행복해하는 얼굴. 그는 머리를 풀고 물기를 짜내고 있는 한조를 향해 활짝 웃어보인다.
“오늘은 발전소 침입 불가라고,” 제시가 코웃음친다. “대자연이 말씀하시는군.”
한조는 방에 도착하자 다시 가슴을 기어오르는 물결을 느낀다. 그는 불을 끄고 창을 가리는 덧문을 올린다. 바깥에서, 폭풍이 언덕을 집어삼키고 있다. 번개가 지평선 위로 부풀어오른 산등성이에 내리치며 거미줄처럼 번쩍인다. 낮게 잉잉대는 바람 소리가 거세게 부서지는 하얀 빗소리와 섞인다.
제시는 셔츠 단추를 풀고, 벗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나무로 된 의자 등에 걸며, 오랜만에 안장에 앉은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의기양양하게 떠든다. 한조는 그가 언더셔츠를 벗을 때 잘게 물결치는 배근(背筋)과, 옆구리에 패인 상처와, 전신의 근육을 따라 지는 그림자를 쳐다본다. 어떤 부분은 부드럽고 다른 부분은 단단한 몸. 아랫배부터 시작해서 벌어진 청바지 앞섶까지 이어져 내려가는 짙은, 갈대처럼 억센 털. 그가 서 있는 곳에서도 가죽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물결이 멎는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가서, 제시에게 팔을 뻗어, 붙잡고, 가까이 끌어당긴다. 입술이 먼저 겹쳐지고, 그 다음은 가슴, 팔, 배, 고관절. 서로의 몸에 꼭 들어맞는다는 짜릿한 감각이 뜨겁게 전신을 내달린다. 제시는 발을 끌며 움직이다, 숨을 내뱉으며, 허물어지는 성처럼 한조에게 무너져 내린다. 거칠게 혀를 찔러넣는 탐욕스러운 키스. 격렬함이 가라앉은 후, 한 쪽의 입이 다정하게 다른 한 쪽의 목울대로 향한다. 제시가 그를 들어올리려고 한다. 한조가 역으로 그를 붙잡는다. 총잡이는 들어올려지고, 옮겨지고, 침대에 떨어뜨려지는 동안 허우적댄다. 천둥 소리와 가쁜 숨소리 위로, 한조는 제시의 부츠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박차가 품위 없이 짤강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작전의 일부가 아니다. 어떻게 이 절차를 수행해야 하는지 적힌 문서 같은 것은 없다. 달성해야 할 수치도, 이뤄야 할 목적도 없다. 그저 언젠가 반드시 해내야 할 목표가 있을 뿐. 압도하며, 폭풍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는 --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구. 한조는 제시의 얼굴에서 그 욕망을 읽어내고, 자신의 눈동자가 그것을 비추고, 사랑하고,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몇 시간. 은밀한 장소에서, 지켜보는 눈 없이, 단둘이서. 비밀스럽게, 좋은 침대 위에서, 폭풍치는 밤에.
욕정하며 서로의 옷을 벗기고 입 안의 불꽃을 핥던 도중에, 제시가 쉰 소리로 단어 몇 개를 내뱉는다. “하고 싶어?”
“하고 싶어.”
“예전처럼 갖고 노는 거 말고, 진심으로: 그게 하고 싶어?”
“그래.” 한조가 제시의 사각 팬티 밖으로 손을 빼며, 꼬인 허리 밴드 밖으로 그것을 꺼낸다. 벌써 그렇게나 솔직하게 흐트러져 있다니 놀랍다. “너도 하고 싶은가 보군.”
“갖고 온 물건이 있어.” 그의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제시가 꿈틀거린다. “내가 가져올게. 가방 안에 있어.”
한조는 그를 쳐다보고, 제시가 용 문신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몸을 떤다. “무슨 물건이냐?”
“우리가 박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
너무 직설적이다. 한조는 제시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른다. “내가 가져오지.”
“아냐” -- 제시는 골반이 눌려 고정된 채로, 앞으로 몸을 일으키려 한다. “내가 할게, 좀 일어나게 해줘 --”
한조가 침대에서 빠져나가, 제시가 빌려온 책가방으로 미끄러지듯 접근해, 안을 뒤진다. 담배, 껌, 담배 말 때 쓰는 종이, 트럼프 카드 한 팩, 기다란 묵주, 반토막난 연필, 녹은 (아마 오래된) 땅콩버터 초콜릿 두 개, 약간 찌그러진 섬광탄 뚜껑 --
제시가 뒤쪽에서, 알몸으로 당당하게 다리를 쫙 벌리고 누워 숨을 내쉰다. “하얀 봉투.”
손에 닿은 종이 봉투가 바스락거린다. 그가 봉투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눈을 가늘게 뜨고, 어깨 너머를 쏘아본다. “이게 다 어디서 난 거냐?”
순진한 척. “어. 여기저기 있더라고, y'know, 윤활제랑 그런 게 전부 --”
“치료소에서 가져왔군.”
제시가 허둥지둥한다. “아냐.” 그리고, 패배를 시인하며: “honey, 그냥 안전하게 가고 싶었던 것뿐이야.”
한조가 손목을 스냅해 알루미늄으로 포장된 물건을 방 건너편으로 날려보낸다. 짧은 탁 소리와 함께 총잡이의 붉어진 얼굴에 명중한다.
제시가 인상을 쓰며, 그걸 떼어내고, 포장을 까기 시작한다. “그게, 네가 이런 거엔 좀 까다로울 것 같아서, 루시우한테 달라고 조르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 -- ”
그가 침대로 걸어온다. “이리 내.”
제시는 아직도 그의 아래에 있다. 먹잇감처럼 긴장한 몸. “응?”
한조가 그의 목에 코를 묻으며, 안정된 손길로 그를 진정시키며 속삭인다: “내게 줘(Give it to me).”
흐릿한 열기가 제시의 흙색 눈동자 속에서 빛난다. 그는 고무 링을 건네며, 작게 중얼거리며, 소리가 들리도록 침을 삼킨다. 어깨가 크게 떨린다. 그가 약하게 미소지으며, 동의한다. “Ah, hell.”
그들은 폭풍에 흔들리며, 거리를 좁히며, 서서히 결합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응하는 단계가 길었고, 덜 상스러웠고, 충실한 준비를 필요로 했다. 제시는 용이 힘을 빼라고 속삭일 때 긴장하고, 거부하며, 뻣뻣해진 몸을 튼다. 그리고 한조의 손을 잡고 이끌어, 미끄러워진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천천히 긴장을 풀게 하고, 그들이 함께할 때마다 한조가 삼켰던 소리를 내뱉는다. 다리를 끌고 무릎 위치를 바꾸고 나서 미끄러운 그것이 닿자, 제시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휘고, 그의 아래에서 몸을 비튼다. 그는 차오르는 만족감에 신음하며 머리를 뒤로 젖힌다. 원하고 있는 거다. 한조가 원하는 것을 준다. 제시는 아랫배를 부드러운 칼로 쑤시는 것 같은 행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 키스를 구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조용히 일을 치른다. 그 고요함은 한 번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치미는 황홀감보다 한조를 더 놀라게 한다. 신음도, 잡담도, 자기(sweetheart), 내 사랑(honey), 개자식(sonofabitch)도 없다. 그가 제시의 목에 묻었던 고개를 들고, 자신의 등을 꽉 붙잡고 더듬는 제시의 손을 멈추려 할 만큼 걱정되는 일이었다. 총잡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을 내리깔고 있다. 땀에 젖은 피부가 반짝인다. 그가 이를 악문다.
“괜찮은 거냐?” 한조는 쏟아지는 폭우 소리 위로 자신의 목소리와 숨소리를 듣는다.
길게 끄는 대답. “Ye-e-aah.”
“아프진 않고?”
제시는 한조의 등을 계속 긁는다. “안 아파.”
한조가 엄지로 제시의 장골(長骨)을 쓰다듬는다. “평소에는 이렇게” -- 그는 욕정으로 흐릿해진 의식 속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 “자제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부드럽게 해줄 거라곤 생각 안 했거든.”
그의 시선이 제시의 얼굴을 빠르게 훑는다. “뭐라고?”
가늘게 높아진, 쉰 목소리로 제시가 내뱉는다. “정말 잘 해주고 있어. 그것뿐이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한조가 몸을 낮추고, 자신의 등에 닿는 제시의 종아리의 감촉에 몸을 떤다. “너도 즐겼으면 해.” 그리고, 다시 목에 코를 묻으며 : “네가 시끄러운 쪽이 익숙하다.”
제시가 손끝으로 유두를 스치고, 용을 쓰다듬다가, 어깨를 잡는다. “그래?”
“그걸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제시가 웃음을 터뜨린다. 긴장감이 즉시 풀린다. “그래? 젠장할, 이 망할 도둑놈 같으니. 내 마음을 훔쳐갔어. 내가 입 열면 흥분이 식는 줄 알았다고.”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지,” 한조가 그의 귓볼에 대고 속삭이며, 입술을 적신다.
장난스럽고, 거의 건방지기까지 하다. “맹세하는데, 네가 침대에서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건 처음이야. 일부러 집중 안 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제 제시는 느릿하고, 나른하게 주먹을 한조의 몸에 대고 엄지를 지분거린다. 제시의 어조는 자극을 돌려주고 싶어 안달하는 듯, 약간 도전적이다. “그럴지도.”
“왜 그래, darlin’?” 확실히 건방진 목소리다. “나 때문에 너무 빨리 싸버릴까봐 무서워서 그래?”
그 말을 듣고 한조가 제시를 몰아붙이며, 허릿짓을 하고, 신음을 내지르게 만든다. 그가 일본어로 꾸짖는다. “조용히 해.”
제시는 그의 아래에서 몸을 떨며 꿈틀거린다. “빌어먹을, 네가 그럴 때 너무 좋아. 불이 붙어. 빌어먹을 식료품 리스트를 읊어줘도 꼴릴 거야.”
그 말을 듣고, 한조는 강하게 밀어붙이며, 또 한 번의 교성을 끌어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또 한 번, 교성이 기다란 신음으로 바뀔 때까지 거칠게 찔러넣는다. 제시가 손톱을 등에 깊게 박아넣으며 매달린다. 한조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히자, 제시의 목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잡도록 놔둔다. 침대 머리판이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천둥 소리와 섞인다.
복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 그게 마음에 든다고: 한조는 결정한다.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제시도 그걸 좋아한다.
제시가 총성 같은 외침을 내뱉는다. “뒤집어.”
“뭐?” 한조는 그보다 더 덩치가 큰 남자가 너무 빨리 몸을 일으키는 통에, 휘청인다.
“그냥 해줘, 제발 -- ”
뒤엉켜 다투고 몸부림친 끝에 제시가 성공한다. 침대 시트에 뒤통수가 닿자, 흰색 천장이 시야에 들어오며 한조를 반긴다. 제시가 그의 위에서 어른거리며, 허벅지를 양쪽으로 벌리고 올라앉아, 열렬하게 허리를 흔든다. 코요테 같은 교활한 미소, 헝클어진 머리카락, 욕망으로 번득이는 눈. 잔뜩 흥분해 온몸이 달아오른, 위험하리만치 매혹적인 모습.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이 그 짖궂음을 그대로 가진 채 성장해서, 망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
그걸 깨닫고 나서 한조도 흐트러진다. 도저히 정신을 잡고 있을 수가 없다. 제시는 발바닥을 침대 시트에 단단히 대고, 계속해서 허리를 흔들며, 스피드를 올린다. 한조는 턱을 악물고, 으르렁대며, 제시의 것을 잡고 격렬하게 수음한다. 그게 점수를 동점으로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절정에 달하도록 강요하며,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을 내뱉고, 제시가 떨어지지 않도록 팔꿈치를 매트리스에 찔러넣고 버틴다. 마지막 한 번의 깊은 삽입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만.
둘은 어질러진 침대 시트 위에서 절정에 달한다. 제시는 앞으로 무너지고, 한조는 받아준다. 침대가 약한 쿵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걸 멈춘다. 한조는 고래가 내뿜는 듯한 숨을 내쉬며 가슴을 들썩이고, 경련하며, 뜨거운 황홀감이 팔다리를 타고 땀처럼 내려가는 걸 느낀다. 제시는 다시 무릎으로 서서, 옆으로 넘어지며, 땀투성이가 된 몸을 한조 옆에 눕힌다. 폐부에서부터 담배 냄새가 나는 숨이 불어져 나온다.
폭풍우와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 : 아직 비가 오고 있다. 아직도 바깥은 소용돌이치고 있다. 둘을 감싸고 회오리치는, 태풍의 눈.
한조는 가슴에 묻은 축축한 무언가를 알아차린다. 제시가 그의 언더셔츠로 턱과 목을 닦아 준다. 빗소리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 사과를 하며, 과장된 숨소리 사이로 간간이 애칭을 부른다. 덧붙이듯이. Honey, darlin’. Sweetheart of mine.
---
저녁 내내 천둥이 친다. 그들은 주변을 정리하고, 씻고, 덧문을 닫고 침대에서 담배를 피운다. 둘은 기상 예보에서 밤 내내 폭풍이 칠 거라는 소식을 듣고서야 결국 다시 가까이 붙는다. 두 번째로 몸을 섞을 때, 한조는 너무 느껴서 이까지 부딪히다가 나가떨어져 버린다. 제시는 그를 눕히고, 진정시키고, 가까이 끌어안는다. 그는 자신의 단단한 가슴에 한조의 머리를 기대고,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움직이지 않는 짐승처럼, 깊고 천천히 호흡하며.
“진정해,” 제시가 속삭인다.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자갈을 긁는 부츠 같다. “몇 초 정도 정신 나간 줄 알았잖아,”
“넌 말할 자격도 없어.” 한조가 그의 흉골에 대고 딱딱하게 말한다. “그렇게 거칠게 몰아붙인 주제에.”
“난 거친 게 좋아. 뭐든지 전속력으로 하지, sweetheart. 지금쯤이면 너도 알 줄 알았는데.”
비꼬는 듯한 대답. “예상은 했다.”
제시가 코웃음친다. “웃기는 얘기 해줄까?” 그가 뺨을 긁으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판다. “감시 기지에서 말야, 네가 이걸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이유?”
“그래.” 제시가 다시 한조의 이마에 내려온, 회색이 되어가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넘기기 시작한다. “부끄러워하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냈지. 그리고, well, 어쩌면 -- y'know. 경험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깜짝 놀라, 한조가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에는 작았던 웃음은 점점 커져, 종국에는 제시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어깨까지 떤다. 키득거리는 웃음. “정말이냐?”
제시가 그 아래에 깔린 채 경직된다. “빌어먹을, 세상에.”
“뭐냐?” 한조가 코웃음치며 총잡이의 턱을 툭 친다. “농담하지 마.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거냐?”
“망할,” 제시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그런 식으로 웃는 거 처음 봤어.” 그가 긴장을 푼다. “젠장.”
한조가 제시의 가슴에 난 굵은 털을 쓰다듬고, 팔꿈치로 가볍게 그를 찌르며 쇄골 근처에 뺨을 댄다. “가끔은 네가 웃기니까 그렇지. 무슨 말을 하겠나.”
“아, 이제 날 놀리려고? 그렇게 간절하게 그걸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한조가 즐겁게 흠, 하는 소리를 낸다. “이유가 있었다면 어떻게 할 테냐?”
“있었어?”
“그래.”
“좋아, 뭐였는데?”
“침대가 너무 작았어.”
제시가 혀를 차며, 머리를 뒤로 기대며, 신음한다. “장난치지 마.”
한조가 일어나 앉는다. “사람에겐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지, 있으면 안 되나?” 그는 어둠 속에서 재떨이를 향해 팔을 뻗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 작은 방, 근처에 있는 동료들,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 대신 이런 걸 원했는지도 몰라.”
“내 말은, 나도 여기가 좋긴 한데, sweetheart, 난 너랑 같이 빌어먹을 빗자루 장에 갇혀 있어도 텐트 칠 것 같 --”
한조가 그의 귀를 잡고 비튼다. “적절한 장소와 때가 있는 법이다. 모든 것에서 분리될 수 있는 기회. 신경쓰이는 것, 방해물을 떠날 기회.”
“그러니까” -- 제시가 길게 끌며, 방을 향해 손짓하며 말한다 -- “임무 말이야?”
한조가 멈칫하고, 입술을 오므리고, 제시의 가슴을 둥글게 쓰다듬는다. 결국은 인정하면서: “적절한 순간.”
제시가 가쁜 숨을 내뱉는다. “아, sweetheart. 제기랄, 그냥 말해주면 되는 거였잖아. 난 말야, 또 어쩔 수 없이 안 좋은 상황이 되길 기다리기만 했다고. 시베리아에서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조는 마드리드 공항, 기차 여행, 커피,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생각한다. 제시의 햇볕에 탄 몸이 군중 안팎으로 드나들며, 씩 웃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그는 정신이 그 부드러움에 씻겨내려가도록 놔두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오래된 사진 같은 흑백 톤, 세피아 톤, 그리고 도라도 밖으로 쭉 뻗어나가는 언덕을 덮은 꽃 같은 선명한 풀 컬러 색상으로 회상한다. 안개 낀 생각 속에서 흐릿하게 흔들리는 그의 꿈과는 전혀 다른 기억.
긴 침묵 끝에, 한조는 담뱃재를 털어내고 말한다. “네 과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었지.”
“맞아, 그랬지. 나 알잖아, 펴놓은 책 같은 거.”
한조가 연기 한 줄기를 뿜어낸다. 용의 숨결.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무슨 얘긴데?”
“내 과거. 겐지가 죽기 전. 그 때 일 중에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
제시가 귀를 쫑긋 세우며, 라이터를 켠다. “Well, 얘기해, darlin’. 듣고 있어.”
“몇 년 전에 난 약혼 상대가 있었지.”
“아.” 제시가 이불 밑에서 몸을 움직인다. 그가 불만스럽게 신음한다. “그랬어?”
“그래. 대학에서 만난 여자였지.”
제시가 더 움직인다. 그는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조는 어둠 속에서 담배 끝에 불이 붙는 걸 지켜본다. 루비 같은 붉은색.
“그래서,” 제시가 말한다. “어떻게 됐는데?”
“미리 준비된 일이었어. 몇 년 정도 만난 끝에 결혼하기로 했지. 얘기를 하고, 논의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숙고한 끝에, 결혼하면 우리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가 잠시 멈추고,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고개를 젓는다. “그 때 그녀는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결혼 준비 때문에 하나무라로 이사를 왔어. 준비 기간은 아주 길었고, 계획된 대로 진행되지 않았지.”
“무슨 뜻이야?”
“내가 가족을 떠날 때, 그녀와도 헤어진 거다. 만나려고 했으면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을지도 몰라. 시마다 가문은 나에 대한 정보라면 뭐든 원했으니까. 그녀에게 정보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보를 빼내려다 죽였을지도 모르지. 가문을 떠나고 나서는 한 번도 다시 얘기한 적이 없어.”
“Huh. 운도 없군.”
“가끔은 그녀를 생각해. 네가 뭔가를 생각하거나 묘사하는 방식과는 달라. 네가 꾸는 그 이상한 꿈과 비슷하지. 그녀의 얼굴, 옷, 몸 -- 그런 것들이 흐릿한 형체로 돌아와. 수족관 벽이나, 유리를 통해서 보는 것처럼.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다시는 떠올릴 수 없고, 지금까지 기억하는 부분도 사실인지 의심스러워. 이제 나에게는 유령 같은 존재지. 사실 처음부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
우린 떨어져서 시간을 보냈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 날 내가 있어야 자리에 못박아 놓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치된 존재였을지도 몰라. 지금 그녀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어. 정말 도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나? 정말 내가 항상 들어온 것처럼 명망 있고 인맥이 좋은 가문 출신이었나? 아니면 그 가문 출신인 척하는 거였나? 이름은 가명이었을까? 아니면 필명? 전부 가짜였을지도 몰라. 전부 만들어진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그녀를 대학에서 만난 건가, 아니면 누군가 고심해서 설계한 끝에 나와 만나게 하고, 내가 나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조작한 건가? 내가 따라갈 거라는 걸 예상하고 그런 길을 만들어 놓았던 건가?
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일이었을지도 몰라. 그 전에도 그런 일을 했지 : 관심사, 취미, 인생의 방향. 가문은 어떻게든 날 설득했지.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되도록. 그냥 나한테 그게 옳은 일이라고 하고, 이유를 말하면, 믿어야 했어. 믿고 싶지 않아하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강제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했지. 자연의 힘 같은 존재였어. 신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대한 상처를 입히는 무기였지.
준비해 놓은 일. 너무나도 잘못된 것 같았지.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몰라. 그 시절에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나 자신에게 질문하곤 해. 항상 대답은 똑같지 : 나도 모른다는 거야.”
정적. 창 밖에서, 빗방울이 지붕을 망치처럼 두들겨댄다. 한조는 담배를 비벼 끈다. 제시도 담배를 다 피우고 똑같이 한다.
“이름이 뭐였어?” 그가 부드럽고, 졸린 듯한 목소리로 길게 끌며 묻는다.
한조가 한쪽 눈을 뜬다. “유키.”
“유-키라. 진짜 이름이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아?”
“떠났어. 일본 어딘가, 더 안전한 곳에 있겠지.”
총잡이는 그의 몸에 팔을 두르고, 등을 문질러 주며, 어깨에 입맞춘다. 그가 힘없이 기대며 그의 따뜻하고 큰 포옹에 몸을 맡길 수 있도록. “츠바키 산쥬로 씨가 혹시 아는지 물어봐야겠네.”
한조가 웃음을 터뜨린다. 용의 차가운 가죽을 찢고 나온, 한 명의 인간.
그들은 천둥 치는 소리 속에서 잠든다. 한조는 등나무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의 꿈을 꾼다. 부드럽고 하얀 손이 뭔가 따뜻한 걸 어깨에 둘러 준다. 겨울 하늘을 가로질러 쫓아오며, 심장을 감고, 밤과 낮 시간 사이에서 그를 감싸는, 붉은 커튼 같은 ⁸⁾아날렘마.
⁸⁾ 아날렘마 : 매일 태양의 궤도 경사각과 균시차를 나타내는 8자형의 눈금자.
---
3일째. 서늘하고, 안개 낀 아침. 지붕 위에서 갈매기들이 울어댄다. 약간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 덧문을 통해 들어온다. 창 밖, 아래층 테라스에서, 누군가 기타를 치고 있다.
한조가 일어나 앉는다. 그는 달콤한 담배 자취가 남아 있는 걸 알아차린다. 총에 바르는 윤활유처럼 기름진 냄새. 그가 눈을 찌푸린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파란색으로 빛난다 : 5:15 AM.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다. 제시는 통신기를 가지고 나가면서 메모를 갈겨써 놨다 : 커피 마시러 나갔다 올게, 올 때 네 것도 가져올 거야.
그는 붉은색 타일 바닥 위에 발을 딛는다. 한조는 인상을 쓰며 일어나서, 몸을 쭉 펴고, 통증에 움찔하며 관절을 푼다. 승마와 행위로 인한 익숙치 않은 고통: 전신이 아프다.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찾아보다가, 편한 트레이닝 바지와 제시의 너무 큰 셔츠 하나를 택한다. 면으로 된 격자 무늬 천이 등에 부드럽게 닿는다. 세라피처럼 편안하다. 제시가 돌아오면, 아마 돌려달라고 하며 벗기려 들겠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또 한 번 서로 엉켜서 뒹굴고, 장난치고, 침대로 들어갈 기회가 될 거다.
그리고 그는 목격한다. 옆방으로 이어지는 문 너머로 얼핏 보이는 무언가 : 푸른색을.
한조가 움직인다. 그는 램프 밑에 숨겨둔 투척용 나이프를 홱 낚아채서 던지고, 나이프가 문을 지나 반대편에 있던 무언가에 맞는 걸 본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남자의 목소리 : 크윽. 그는 활을 집어든다. 문이 걷어차여 열릴 때, 이미 화살을 걸고, 조준하고, 시위를 당기고 있다.
푸른색 펄스 소총의 총신이 빛나며, 맞조준한다.
“무기를 내려놔,” 총을 든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말한다. “쏘지 마라, 시마다.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나도 내 무기를 낮추겠다.”
남자가 그의 이름을 말하자 한조의 눈동자 저편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그는 남자의 팔에 꽂힌 나이프를 본다. 가죽 소매 위로 나이프의 나머지 부분이 튀어나와 있다. 남자가 끼고 있는 장갑처럼 붉은 피가 푸른 천을 적신다.
전투용 재킷.
한조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시선이 빠르게 남자를 훑는다. 흰 머리. 이상하게 생긴 바이저: 입과 코, 턱을 덮은 얼굴 보호판. 눈을 가리고 있는 붉은 렌즈. 그들이 찾고 있던 자다.
76은 소총을 낮추고 내려놓는다. 그는 쭈그려앉아 총신을 바닥에 비스듬히 미끄러뜨리며, 거칠게 내뱉는다. "무기를 버려.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발포하면 여긴 ⁹⁾7월 4일처럼 되겠지. 이 호텔 안에서 총격전을 벌이면 탈론이 피 냄새 맡은 상어처럼 우리에게 달려들 거다."
⁹⁾ 7월 4일 : 미국의 독립기념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빅스버그 전투가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왜 네놈이 여기 있는 거지?" 한조가 으르렁댄다. "지금 당장 죽이겠다."
"그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 내가 진짜 죽었다면 아주 많은 일들이 훨씬 편해졌을 테니."
한조가 활시위를 당긴다. "지금 당장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정확히 그렇게 해 주겠다."
"내가 누군지 알잖나." 76이 양손을 들어올리며 다시 일어선다. "나도 네가 누군지 안다. 오버워치, 한조 요원. 시마다 겐지의 형. 이곳에 맥크리 요원과 함께 왔지. 둘 다 신분을 숨기고. 여기 온 이유는 확실히 모르지만, 이젠 상관없어. 이곳에 왔다는 게 중요한 거다."
"정체가 뭐냐?" 한조가 쏘고 싶어 안달하며 묻는다. "네가 잭 모리슨이냐?"
"내가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 시베리아 일도 알고 있어. 제때 도착해서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네가 - 잭 - 모리슨이냐?"
"맥크리를 보호해야 해. 너희 둘 다 위험하다. 여기에 탈론을 사냥하러 온 거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놈들은 오버워치 요원 전부를 체계적으로 제거하려 하고 있어. 예전 요원, 현재 요원 전부. 모든 관계자들까지. 재소집 이후로 더 불이 붙었지. 신규 영입된 자들도 목표물이 되었고, 거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가서 수백 명이 더 목표물이 되었다. 모든 게 위기에 처해 있어. 너희는 인력도 부족하고 자원도 --"
한조가 성을 내며 말을 자른다. "네 팔에는 칼이 꽂혀 있고, 이 화살은 네 두개골에 꽂히기 직전이다. 지금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이 질문들을 끝내버리고, 널 이 자리에서 죽여서 모든 의문을 없애겠어." 낮고, 치명적인 목소리.“네가 잭 모리슨이냐.”
76이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턱을 내린다. 한조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근육에 힘을 주며, 쏠 태세를 갖춘다.
"그래." 바이저 뒤의 거친 목소리가 한숨을 쉰다. "맞아. 내가 잭 모리슨이다." 그리고, 강철같이 단단한 목소리로 : "전(前) 오버워치 강습 사령관."
한조가 턱을 벌렸다가 다문다. "스위스 본부에서 죽은 게 아니었군."
"그래."
"자경단이 됐어."
"그렇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질문할 게 많은 건 알겠는데, 우선 너희가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
"대답하지 않으면 이 화살이 날아간다."
"시마다, 안전을 확보해야 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대답해!"
“레예스가 살아있어.”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용병은 손가락을 구부린다. 가빠지는 숨을 억누르고 있다. 두려워하는 거다.
“뭐라고,” 한조가 덜컥 놀라며 대답한다.
“가브리엘 레예스가 살아 있어. 그리고 이곳에 있다. 우리 둘 다 그렇지. 우리가 동시에 이 곳에 있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유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놈이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맥크리를 보호해야 해. 그리고 둘 다 여길 나가. 여기서 하려는 임무가 뭐든 간에 이제 중단해야 한다.”
그 이상한 권태감이 난데없이 돌아온다. 가슴을 기어오르고, 목을 긁는다. 그는 활을 낮춘다. 정신이 혼비백산하다. 분명한 깨달음의 파도가 폭풍처럼 엄습하며, 그를 무너뜨린다.
"리퍼로군."
기념일. 11월의 둘째 날, 위령의 날.
Día de los Muertos -- 제시가 말해주었던: 망자의 날이다.
역주 --------------------------------------------------------------------
¹⁾ 제유법 : 사물의 한 부분으로 그 사물의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
²⁾ 현자는 임종에 이르러서야(후략) : 원문은 “I guess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ut I suppose I’m one of those whose words didn’t fork much lightning.” 시인 딜런 토마스의 ‘Do not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의 일부에서 인용한 것. 전문은 http://62tae.blog.me/220741144173 에서 읽을 수 있다.
³⁾ 죽은 자의 스위치 : dead-man’s switch. 주인이 죽거나 의식 불명이 되고 특정 시간이 지나면 작동하는 스위치. 목적은 다양함(안전 확보, 활동 정지 등).
⁴⁾ 시프트 암호 : 알파벳을 특정 규칙에 따라 다른 알파벳으로 대체하는 암호. 앞이나 뒤로 몇 글자씩 이동(shift)하는 방식이 흔해서, 시프트 암호라고 부른다.
⁵⁾ 콜(Kohl) : 화장용으로 눈가에 바르는 검은 가루.
⁶⁾ 케이준 계 프랑스인 : 아카디아에 살던 프랑스계 주민들을 ‘케이준(Cajun)’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인디언 전쟁 중 강제 추방되어 루이지애나에 흩어져 이주한 역사가 있다.
⁷⁾ 모든 성인의 날 : 11월 1일, 기독교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 10월 31일 저녁에 시작해 11월 1일 저녁에 끝난다. 다음날은 위령의 날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기리는 날이다.
⁸⁾ 아날렘마 : 매일 태양의 궤도 경사각과 균시차를 나타내는 8자형의 눈금자. 참고 - goo.gl/NQP1lu

⁹⁾ 7월 4일 : 미국의 독립기념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빅스버그 전투가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12챕터에 등장하는 음식 모음(너무 많아서 따로 뺌) ---------------------------------------------
(1)치킨 비스킷 : 치킨버거의 간단한 버전 같다 - goo.gl/yP4IUo

(2)베이그넷(Beignet) : 슈가 파우더 올라간 빵 - goo.gl/9uRqwF

(3)계란빵(pan de huevo) : 계란 노른자를 섞어 만든 반죽으로 구운 멕시코 빵 - goo.gl/w5bz8V

(4)멕시코 뮬(Mexican mule) : 보드카, 라임 주스, 생강 맥주로 만든 칵테일 - goo.gl/dfSHn9

(5)미가스(Migas) : 볶음밥같이 생김 - goo.gl/hx2zai

(6)오르차타(horchata) : 쌀과 우유로 만드는 달콤한 멕시코 음료 - goo.gl/57Hk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