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
얼마전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었다.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며 우는 일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서운함을 포기했고, 애정을 갈구하기에는 훌쩍 커버려서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사소하자면 사소했고, 중대하자면 중대했다. 그깟 돈 문제떄문이었다. 부는 내가 아는 한 모에게 온전히 생활비 명목의 돈을 맡긴 적이없다. 애초에 본인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실행하고 싶었지만 돈은 절대 주지않았다. 가끔 같이 장을 보러가 몇만원 주는 거에 생색은 잘냈지. 그러다 그건 재난지원금에서 정말 놀랄만치 예상한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는 4인 가정이었고 그에 해당한 금액 100만원은 세대주인 부가 수령해야했다. 나는 이 점이 불만스럽고 걱정됐다. 만약 부가 모에게 이걸 넘기지 않는다면 사실 뺵뺵 소리를 지르며 자기가 혼자 쓸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부의 이름으로 재난지원금 신청을 도와주지않았다. 그 덕에 우리는 동사무소에서 직접 카드를 수령해야했고 그는 온전히 100을 받았음에도 모에게 40만원짜리 카드 한장만을 넘겼다. 우리집에서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 건 오빠와 나뿐이었다. 모와 부는 오빠 밑 피부양자로 들어가있었다. 나와 오빠는 당연히 모에게 넘기는 돈이었고. 모가 따지면 부는 항상 큰소리를 쳤다. 내가 한 말은 정말 이게 다였다. 그래도 아비랍시고 말을 고르고 골랐다. 잘한게 뭐가있다고 큰소리를 내냐고, 어서 주기나 하라고.
사실 나는 부에게 한번도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혼이 난 적도 없다. 당연히 매를 든 적도 없다. 언제나 부의 호통 소리의 끝은 모에게만 향해있었고 나는 그걸 막기만 했을 뿐이다. 언제나 친척들이 그랬다. 네 아비는 언제나 널 제일 좋아했다고. 들을 떄는 매일 '아 그래서 우짤라빔...'만 생각하긴 했지만. 그닥 와닿지도 않았다. 그는 충분히 널리고 널린 나쁜 아비였다.
하여튼 이런 부의 유일한 업적이 있다면 나에게도 오빠에게도, 매를 들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단 점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업적은 그 날 깨졌다. 부는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처음으로 내게 소리를 내질렀다. 딸을 아껴서 혼내지 않은게 아니다. 딸을 아껴서 매를 들지 않은게 아니다. 그저 본인에게는 유하고 작았던 딸이었기 떄문에 그럴 이유조차 없었던거지. 부의 말은 놀랍게도 아무렇지 않을거라 생각한 내 안을 후벼팠다. 그는 자신이 자식을 키워놨다 생각했고, 잘 먹여살렸다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웃길 따름이다. 내가 중학교때까지는 자신이 잘 벌었다 오해하고 있길래 정정해주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급식비가 밀렸고, 중학생때는 모든 미납영수증을 뭉텅이로 받아야했으며, 오빠는 고등학교 시절 급식비를 내는 대신 학교 급식봉사를 했다고. 언제 한번 자식이 돈걱정 하지않게 만든 적은 내가 기억도 못할 4살적이라고.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본인이 이 가정에서 뭘 못했는지는 알거라 생각했던 내가 기대감이 컸던건가? 그게 그렇게 많이 바란거였나? 가장은 무엇이고 남자에게 주어지는 가장의 위신은 무엇인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만 못하다.
결국 남은건 모에게 가지게 되는 죄책감과 동시에 왜 저런 부를 일찍 저버리지 않았냐는 원망이다. 자식을 핑계로 삼을텐가 아니면 우리의 무능을 탓할것인가.
나는 한시 빨리 이 집을 기어나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