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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 바쁜 일정을 만들었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헤어져 다른 친구에게 찾아가 인사를 하고 작은 물건을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 팔았다. 그 일정 틈틈에 적당한 수납 바구니를 찾으려 발품을 팔았다. 마땅한 걸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얼추 감은 잡혔다.

 

점심을 먹다 냄비 손잡이에 손목이 데였다. 내 몸에 처음으로 손톱만한 화상이 생겨났다. 이만치 큰 화상은 생겨본적이 없었다. 아픈게 누구보다 싫어서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몸이 무거우면 몸살약을 먹는다. 뜨거운 무언가 닿이면 살가죽에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물을 수십분 흘린다. 애초에 흉터도 잘 남지 않는 체질이다. 어렸을 적에 선풍기 날에 손가락 서너개가 찢어졌었다. 휴지로 둘둘 감아 지혈을 하고 약국에서 소독약을 들이붓고 테이프와 거즈를 사와 꽁꽁 감쌌다. 그래도 흉터하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 손을 보고 언제나 게으른 손이라 했다. 유독 곱게 생겨먹었다고. 이젠 영 그렇지도 않지만. 상처와 멍이 남아 예전처럼 잘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게을러 진건지 몸이 게을러진건지. 오늘도 바로 찬물을 들이부었으면 이보다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괜찮겠지 생각하고 밥을 먹다 결국 퉁퉁부어오른 화상자국에 얼음컵을 문질렀다. 친구는 카페 안에서도 내내 음류컵에 손목을 기댄 나를 신경썼다. 심하게 아리기보다 살짝 거슬렸던지라 나는 별 말 하지 않았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은 상처라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랬다. 둘 모두 얼어죽어도 아이스라 커피컵은 차가웠고 살이 차가우면 아리지않아서 좋았다. 아 그 카페 커피는 산미가 강했다. 그리고 내 주변 대부분은 산미있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아는 많은 불호가 그랬다. 그래서 카페를 나와 다른 친구가 일하는 곳에 물건을 전해줄겸 커피 한잔을 샀다. 커피를 마실 줄 알게 된 건 얼마되지 않는다. 시험기간 종종 퀭한 상태로 얼음이 다 녹아빠진 아메리카노를 마신 덕이었다. 친구가 일하는 곳을 찾아갈때는 음류를 달랑 달랑 사들고 걸어가는 시간을 좋아한다. 오천원짜리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내 여유와 갑자기 봐서 반가울 친구와 시원한 음류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금전적이 걱정을 하지 않고 하나 하나 작은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해줄 수 있는 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을 때 그렇게 찾아왔던 친구들에게 내가 느낀 반가움과 고마움 신남 시원함을 알고있어 좋아한다. 워낙 얼음 부숴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이 상하기 딱 좋은 버릇이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다행히 친구는 산미가 덜한 커피를 좋아했고 나는 산미가 적은 원두를 선택해 주문했었다.

나는 발열내의와 목티, 기모 맨투맨, 마스크, 롱패딩을 입고 땀이 났다. 추운 건 싫지만 땀이 나는 건 민폐기에 까만 목 티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작은 우울감은 수용성이다. 매일 매일 깨끗하게 씻고 잠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면 괜찮을거라 믿는다. 대부분 기분이 구릴 때는 씻지않아 더럽고 며칠의 밤낮이 바뀐 때니까. 작은 우울은 물로 쓸어내릴 수 있다. 밥을 잘 먹고 내일 해먹을 점심을 생각해보고 오늘의 좋은 일을 생각해보자. 친구를 만나는 건 즐겁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역시 반갑다. 작은 스피커를 팔았고, 내가 호의로 베푼 다른 작은 물건에 나는 오천원짜리 거래에서 만원을 받았다. 좋아해주실 줄은 알았지만 정말 감사하다. 돈 최고 짱짱. 그 길로 페퍼론치노 한 통을 샀고 내일은 알리오 올리오 앤 페퍼론치노를 해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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