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가고 싶냐 미래로 가고싶냐고 하면 나는 차라리 미래를 선택하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야한다면 나한테 권력이나 부라도 줬으면 좋겠다. 일어날 일을 알고있는데 어떻게 그걸 그냥 두고보나. 사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과거로 돌아가면 가장 돌이키고 싶은 순간을 꼽으라면 2014년 4월 16일이다. 문득 생각해보다 내가 일어날 일을 알고 배에 탄다면 바꿀 수 있을까? 정말? 하고 물어보게된다. 모두가 아닐지는 몰라도 확신은 있지만 한계가 있겠지. 그렇게 일어났던 내가 기억하는 비극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알고있었지만 구하지 못한다면? 화장실에서 사람이 찔리고, 카페에서 칼을 맞고, 길을 가다, 숙소를 가다, 집에 가다, SNS를 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을 알고있지만 알지못해서 구하지 못한다면? 일어날 일을 알고있는데 방치한다면 거기서 오는 죄책감과 무력함은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좋아지지못할거라 생각한다.
물론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먼 과거로 가더라도 나는 그럴 거 같다. 그리고 더 개인적으로 가자면 나에 대한것도 바뀌지 못할 걸 알아서 돌아가고싶지않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우리집보다 몇층 높은 곳에 살던 애가 있었다. 그 애는 별 이유없이 왕따를 당했다. 나는 그 즈음에 우왁스럽지만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경향이 컸다. 그래서 아무말없이 그 상황에 숨어있었다. 심하진 않지않냐고 합리화했던거 같다. 그저 집에 혼자 돌아가고, 밥을 혼자 먹고, 복도를 혼자 걸었어야했고, 수련회에서 본인옆에 사람이 없는 거 뿐이지 않냐고. 겨우 열몇살짜리가 그런 일을 몇주를 넘게 당하면 어쩌면 죽고싶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모르지만 외로움을 가장 많이 타고 친구를 가장 좋아할 나이니까. 난 겨우 나만 빼고 모두를 생일파티에 초대한 상황에서 눈물을 줄줄흘리면서 집으로 뛰어갔는데 걔는 오죽했을까.
그리고 그 이유없는 따돌림은 참 이상하게 끝이 났다. 수련회를 갔고, 아침밥을 기다리는 줄에서 누군가 그 애에 대한 얘기를 했고, 그럼 이제 왕따를 끝내도록 하자는 결과가 단지 몇분만에 튀어나왔다. 그리고 혼자 줄을 선 그 애한테 모두 달려가 밥을 같이 먹자 권했다. 그 날 아침 공기가 참 이상했었다.
난 아파트에서 같이 놀던 친구가 있었고 수련회 이전에 그 친구에게 그 애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나와 다른 반이었다. 난 겁이 많았고, 친구에게 그 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뭐 어때서? 하고 지나가던 그 애에게 인사를 건냈다. 아마 그 때 가장 부끄러웠었던거 같다. 난 그 애에게 며칠 눈인사를 하다 이마저도 그만두곤 아파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중학교로 올라가고 나는 그 애와 다시 같은 반이 됐다. 우리는 같이 노는 친구가 겹쳤고, 같이 밥을 먹고, 말뚝박기를 하고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는 경찰과 도둑을 했다. 그렇지만 난 그 애에게 어색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때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어서, 내가 편하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다시 커다란 친구 무리에 끼여서 가끔 이름을 불러 부르는 같은 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아마 이 기억 그대로 중학교때로 돌아가더라도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을 거다. 흐지부지한 반 친구는 반이 갈리고 복도를 지나쳐도 서로 아는체 하지않고 지나가는 사이가 됐다. 만약에 다시 그 친구를 다시 만나더라도 나는 숨막히는 어색함에 숨기 바쁠 것 같다. 그 친구는 언제나 내색하지않았기에, 그 단단한 표정에 내가 더 부끄러워져 피할 거 같다.
그 친구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망설이지 않고, 서슴없는 성격이었다. 처음 만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갈때 자기 실내화를 꼬박꼬박 스스로 빨고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자기 실내화랑 동생 실내화까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부도 잘했으니까. 용기도 없고 참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다시 만나면 말 할 수 있을까 싶어 상상해보는데 영 입이 떨어지지않는다. 차라리 보잘것 없는 기억이 되서 그 시절에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럼 조금 덜 부끄러울까.
결국 난 불의를 싫어하고 참지않으려하지만 그닥 떳떳하진 못하고 한구석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있다. 뻔뻔하게 살아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않는다. 멋진 사람이 되긴 글러먹었다.